제로존 이론

제로존 이론 !!!

자유지향 2008. 11. 29. 12:58

제로존 이론 !!! 

    제로존은 이 세상에 존재하여 행복을 느껴서 다양한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이 다음과 같은 쌩뚱맞은 4가지 질문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자연의 표준을 이루는 변수(variable)가 몇 개입니까?

    둘째, 그리고 그 변수의 고유 값(Igen value)은 무엇입니까?

    셋째, 지상의 모든 인류를 설득할 수 있는 가장 객관인 자료(data)는 무엇이며, 어디에 있습니까?

    넷째, 3가지 질문의 답을 얻었다면 세상의 진리(truth)는 한마디로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제로존은 위에서 언급한 4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기 위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그야말로 피 말리는 작업의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 4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미 제로존 블로그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질문을 이어갑니다.

    형이상학자와 과학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어느 한쪽의 집단이 다른 한쪽의 집단 보다도 두뇌가 뛰어나거나 현명하다고 판단할 근거는 전혀 없다고 하면 두 집단 모두 대체로 수긍할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조합하여 어떤 학자가 말하기를 단지 차이가 있다면 실험실의 유무와 그 실험실에서 나온 데이터의 유무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자연의 진리나 진실을 펴는 차원이 서로 다르다는 관점이겠지요.

    전세계의 처음 물리학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있어서 첫 번째 물리학 강의는 <단위(unit)에 대한 정의>로부터 시작합니다.

    단위의 정의로부터 드디어 자연과학의 언어와 조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학적 진리에 대한 유일한 방법은 전가의 보도처럼 ‘실험(experiment)’뿐이라고 침을 튀기며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늬만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제법 경험이 많은 신중한 과학자들은 한결같이 잘못된 실험결과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다음과 같이 한마디로 이야기합니다. 정확성이 결여 되기 때문입니다 !

    그러면 ‘그 정확성은 어디서부터 담보하는가?’ 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쉽게 답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론이나 실험에 노회한 과학자는 ‘정확성의 담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무엇인가 단위의 정의에서부터 초기이론을 두고, 이후 실험에서 나온 ‘정확성’이라는 것이 결여되는 사유는… 무엇인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다양한 이론들간을 연결시키는 순수한 사고의 법칙>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경험과학으로서 자연과학이 귀납법을 소중히 생각했던 관성을 가졌던 것입니다. 드러난 자연의 결과 사실을 보고 초기이론이나 가정을 맞추는 방식입니다.

    마지막 이런 말을 할 정도면 그는 이미 인생에서 온갖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마친 참된 학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뜨기 직전의 기온이 가장 낮습니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경험한 학자는 형이상학과 과학의 경계가 이렇듯 차가운 우주의 진공에너지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주의 기원에 이르면 이러한 경계 같은 것은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한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든 철학은 꿀로 쓰인 것과 같지 않은가? 처음 숙고해 볼 때는 놀라운 듯 하지만 다시 돌아보면 모두 사라지고 허튼 소리만 남는다.”

    형이상학자로 치부되는 동양의 시성 <타고르>는 실체의 관점에서 인간의 존재는 필수적이라는 신비주의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잘 알려진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은 인간의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듯 하다는 생각을 피력하여 물리적 실체에 대해서 <타고르>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그러나 형이상학적인 개념과 달리 <아인슈타인>은 ‘신비감’을 과학의 원천으로 보고 과학의 정수라고 할 고찰들은 모두 깊은 종교적 감정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경험은 ‘신비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는 물론 예술과 과학에서 펼쳐지는 모든 진지한 노력의 배경에 자리잡은 원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이어 다음 말을 이어갔습니다.

    “내 안에 무엇인가 종교적이라고 부를 만한 게 있다면 그것은 아마 과학적 이해를 통해 비로소 품을 수 있는 우리 우주의 구조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이라 할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나는 결코 무신론자가 아니지만 범신론자라고도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神은 블로그에서 자주 언급한 <스피노자>의 神이었습니다.

    그 神은 말하자면, 대우주를 지배하는 단순(simple)하고, 우아(elegant)한 법칙을 창조한 神이라고 해석한바 있습니다 !

    그는 유독이 ‘빛’을 사랑한 것 같습니다.
    달빛이 물 밑까지 뚫어도 물위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그와 같은 빛, 그리하여 길 없는 길을 여행하는 순례자와 같은 주인공이 바로 ‘빛’인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을 두고 세상 사람들이 ‘숫자 놀음’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숫자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

    아니 의미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의미(意味)라는 글자를 나름대로 풀어보면 최초에 ‘소리(音)’가 있어 그 소리를 ‘마음(心)’으로 느끼고, 그 느낌을 ‘맛(味)’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소리라는 작은 입자의 움직이는 사물에 대하여 최초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제로존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숫자’에 현재의 과학자들이 고려해 왔던 해석 또는 정의를 새겨 넣어서 비로소 변화하는 우리의 세계상을 기술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상에 나온 어떤 자연 단위계도 숫자에 의미를 넣지를 않고, 단순히 계산의 편의성만을 고려한 것입니다.

    천재 수학자 <가우스>는 수학의 참된 목적은 계산하는 표기나 유사한 방식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개념(notion)’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개념이 없이 계산의 편의성만을 추구하게 되면 나중에 어찌어찌 하여 드러난 수식들에 대한 해석이 참으로 어렵게 됩니다. 모든 전설적인 과학자가 수식은 발견했는데 그 수식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엄청난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수식에 동료학자들에게 설득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소위 ‘직관’을 가지고 물리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결과로 나온 수식은 상대적으로 해석이 용이한 편입니다. 상대성이론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계산의 편의성만을 추구한 수식은 직관이나 상식으로 해석이 어렵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행렬이나 확률개념입니다.

    특히 행렬식에서 드러난 결과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본인 자체도 어려워서 폐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양자역학의 다양한 관계식이 오늘 날 해석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이유도 애초에 물리적 그림 없이 단순히 선배들의 패턴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제로존 이론>이 아무 실체도 없는 숫자에 세상 처음으로 ‘실체’를 부여하는 일을 맡은 것입니다. 숫자에 빛의 속성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숫자는 우리 삶의 모든 원리를 정성적, 정량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개념적 수단의 방편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결과의 수식이 나오면 전체적인 물리학적 모습을 그려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소리와 더불어 빛이 이 세상에 나와 온갖 언어를 구성하는 ‘문자’도 생겼습니다. 문자는 자연의 원리, 우리 삶의 모든 원리를 일반화(generalization)하기 용이하며, 숫자는 검증(verification)이 용이한 방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자와 숫자를 비교하건 데, 숫자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의사를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으며, 무한 하면서도 매우 체계적이라는 점입니다.

    양자역학은 ‘양자’라는 이론을 기초로 한 수학적 수단입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수학적 형식을 갖추는 일과, 물리학적으로 충분히 이해하는 것은 또 다릅니다.

    주방기구를 능숙히 다룬다고 하여 요리를 잘한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다양한 자연현상에 대한 원리를 펴는 방식에 있어서 ‘표현’이나 ‘표기’의 복잡성이 수학이나 물리학 개념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문제는 수학이나 물리학 자체가 아니라 이런 학문들에 대한 ‘표현’, ‘표기’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표현(representation)’을 공부하는 이유는 자연의 원리나 법칙을 <가장 작은 수의 방식>으로 찾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언뜻 보면 모든 학문의 지향점이 하나 밖에 없는 ‘진리’를 찾는다기 보다도 간단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편리한 방법’을 찾는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

    제로존은 한발 더 나아가서 편리한 방법과 함께 모든 사람들이 내가 어디서 온 누구며, 이 우주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는가에 대한 이유, 찬 비바람을 피하고, 질병의 고통에서 헤어나는 방식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편안’한 방법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언제나 제로존이 강조 했듯이 이러한 학문의 목적, 그리하여 필요한 한 목적성을 가진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을 찾아 나섬에 있어서 가장 나쁜 해결방식이 모든 학자들이 일률적으로 같은 방식을 고집하여 문제를 풀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

    제로존이 오랫동안 사색해온 핵심의 과정 속에는 자연의 원리와 법칙과 더불어 학문의 목적을 생각하고 오늘 내가 사는 의미를 생각하면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학문의 방식이 ‘숫자’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숫자는 다양한 언어 문자와 달리 삶과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인식의 저 너머에 비교와 분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 측정의 세계에서 한 눈에 ‘중복’이나 ‘누락’을 정확히 살필 수 있다는 점도 대단히 매력 있는 방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자연과학 전체를 통하여 설득적인 면에서 대단히 호소력이 강한 요소를 가집니다.

    그래서 고래의 학자들은 전 수학이나 물리학 이론이 복잡하여 이해가 어려운 표현이나 표기의 방식을 ‘산술화’ 하는 것을 최대의 목적으로 삼은 이유를 이제 이해할 것입니다.

    줄기세포가 원천세포라면 원천언어와 문자는 ‘숫자’가 되는 셈입니다. 숫자는 단 10개의 기호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학문을 하는데 이 보다 좋은 방편과 수단이 없을 것입니다.

    <탄허>스님도 이미 숫자의 중요성을 간파하여 숫자로 이 세상을 설명한 책을 남겨두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실제 세상에서 밝혀진 바로는 이렇게 좋은 교향곡을 펼칠 수 있는 피아노는 있는데 좋은 악곡은 아직 없는 셈입니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중국계 미국인 <양첸닝>은 자신의 논문이지닌 의미를 깨닫는데 20여 년이 소요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분이 양자역학에서 주무기가 되는 ‘장이론’을 펴는데 중요한 수학적 수단이 되는 <양-밀스 이론>을 발견할 만큼 대단히 천재적인 수학자 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학책의 종류가 딱 2종류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한 줄의 수식도 읽을 수 없는 수학책,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한 페이지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수학책이 그것입니다.

    도저히 그 수식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가를 알아 들을 수 없을 만큼 학문을 펴는 방식의 표현이나 표기가 너무나 다양해졌고, 세분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수학의 기본 기초에 있어서 변수가 1차인 수학적 대상의 대수적 구조를 연구하는 교과로서 <선형 대수학>은 그 정리만 해도 64개가 됩니다. 이 정리를 달달 외워 나름대로 습득해야 그런대로 응용할 방법이 생기는 것입니다.

    연탄불 꺼지는 줄도 모르고 열중해도 한 청춘의 중요한 시절이 다 가는 것입니다. 그래 바야 기초중의 기초 중의 기초 중의… 기초를 배우는 단계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 다음 비선형 대수학을 배우는 것입니다 !

    그래서 학생들은 얼렁뚱땅 한 학기 시험을 넘기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고, 졸업을 하면 모조리 철저하게 까묵어서 ‘선형 대수학이 뭐드라?’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지상에서 가장 실제적인 과학적 업적으로 성공을 이룬 학문분야가 바로 물리학에서 그 이름도 희한한 양자 전기역학(QED)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양자 전기역학의 첫 번째 가정이 배꼽 잡는 이야기입니다 !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용어 중에 전자(electron)가 있는데 그 전자를 차원이 없는 ‘점’으로 취급한 것입니다. 애송이 과학자가 첫 눈에 보기에도 터무니 없는 전제에 가정한 이론입니다.

    전자를 차원이 없는 점으로 두게 되면 전자의 질량이나 전하가 나중에 무한대의 값을 가집니다. 그래서 현실 데이터에 맞게 맞추려면 소위 <재규격화(renormalization)>라는 복잡한 수학적 방식을 개발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는 것입니다. 이 부분만 하더라도 한 권의 책을 만들 지경입니다.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 입니다.

    물리학자들은 출발이론을 개시할 때 ‘터무니’없어 보이는 개념을 가진 가정을 기꺼이 받아 들일 것인가? 그리하여 종종 상식에 지극히 반하는 불가능성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수학적 모순을 믿거나 허용할 것인가? 를 두고 선택해야 하는 엄청난 고민을 합니다.

    그런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물리학자들은 어김없이 누구나 한결같이 수학적 모순을 피하고 전자(前者)를 선택해 왔습니다 !

    전자(前者)의 경우 도저히 말도 안돼 ! ‘불가능’이라는 말을 받아 들일 때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 따져보면 명확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수학적 모순을 뻔히 보면서 받아들이기 보다도 차선책으로 도저히 상식에 반하는 개념을 가지는 가정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을 두고 가정이 잘못되었다?는 공식 발표를 한 기관의 학자들은 참으로 공부를 더해야 합니다 ! 제로존은 이런 발표에 국내 과학자들의 지식 정도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어 삼류 코미디 같다고 이야기 한적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비통함도 느꼈습니다. 다른 말을 했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이런 점을 두고 계속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러나 지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론으로 알려진 QED는 놀랍게도 그 가정이 매우 만족할 만한 결과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매우 높은 정확도로 실험을 통해 입증할 수 있는 예측을 제공한 것입니다.

    소위 기본적인 차원을 배웠으면 폐기할 수밖에 없는 전자가 점소립자(point particle)로 구성되어 있다는 비실제적인 가정이 애초에 모든 사람들이 가졌던 생각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내주었던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제 ‘간’이 커져서 가령 25개의 공간 차원과 한 개의 시간인 26차원, 26차원의 시공간에서 진동하는 1차원 끈이라는 가정을 물리학자 <베네치아노>가 도출했습니다. 이 가정의 공식을 난해한 방식으로나마 2008년 노벨상 수상자인 <남부>가 해석을 내리곤 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물리적 실재와 상응하는 해석을 발견하는데 뛰어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분명 앞으로 해결해야 할 흥미로운 연구거리가 될 것이라고 이상한 가정들을 서슴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형편입니다.

    또 재미있는 해석도 있습니다 !

    전자는 실제로 보지 않을 때에 ‘파동’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파동’은 관측하는 즉시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반적인 상식이나 직관과도 너무나 다른 이야기지만 상식 밖인데도 불구하고 왜 이 기묘한 법칙을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기이 하지만 어쨌든 믿으세요!’ 라고 합니다. 현대 물리학이 이쯤 되면 이상한 종교 같지 않습니까?

    이제 제로존 이론이 등장했습니다.

    지금까지 성공했던 주류의 물리학 이론은 복잡하고 난해하기에 혀를 내 두를만합니다. 그런데 물리학자를 비롯하여 모든 학자들은 이러한 ‘난이도’와 ‘중요성’은 별개라는데 합의를 하고 있습니다.

    곧 참으로 표현이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일수록 반드시 중요한 이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잘 알려진 소위 10대 물리학 법칙은 고등학생들이 보아도 너무나 간단하다는 것을 잘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이나 또는 전문학자건 간에 오히려 <중요한> 이론일수록 단순하고 쉽다는 역사적 경험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금을 위시하여 최고의 수학자나 물리학자들이 요구하는 최종 목표이론은 어린 학생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형태로 재구성하자 !>는 것입니다.

    결과를 즉각적으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가진 이론은 없는가?

    이제 그 답변이 제로존 이론의 등장으로 그 숱한 학자들의 어려웠던 구구 절절한 사연의 존재에 대한 실체를 목도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제로존 이론이 나오자 학자들은 ‘가정부터 잘못되었다’는 옆집 강아지도 웃을 수 있는 코미디 같은 소리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제로존이 어떤 사유건 강하게 어필하자 이런 소리는 금새 ‘쏙’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고 하는 말이 두 번째로 나왔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제로존 이론에 대해서 조금씩 그 본질을 알게 되면서 말이 바뀌고 있습니다.

    좋다~ 좋아~! 그라믄 그 숫자를 가지고 어디에 써묵을 것인가 하고 이제 짐짓 유용성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고, 제로존 이론은 ‘이론’이 아니라 ‘테크닉’의 일종이라고 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국내의 많은 학자들이 제로존이 보기에 인식적으로 많이 발전되었습니다.

    ‘심플하고 우아하다’라고 한 제로존이나 편을 든 사람들의 입장과 달리 간단한 ‘산술식?’으로 표현된 것을 보고 무엇인가 복잡하거나 난해한 기호가 없는 것이 허전한 것 같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이것을 순전히 지금까지 학문적 표기에 대한 ‘버릇’ 같은 것입니다.

    편미분이나 추상적 수학에 등장하는 기호가 주렁주렁 달려야 무엇인가 중요하거나 심오한 이론?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나 습관입니다.

    그런데 제로존 이론은 그 수식의 형식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쉬운 구성의 표기나 표현으로 보기 십상이지만 거꾸로 답을 보고 어떤 계산을 했는지 알아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원리나 법칙을 드러나게 하는 제반 물리학 범주에서 목표하는 이러한 간단하면서도 우아한 형식을 가지면서 컴퓨터 과학에서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비공개 암호 키> 같은 개념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비공개 암호 키>는 제대로 된 기호의 수치가 한자리라도 틀리면 그 해를 찾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입니다.

    방정식에는 ‘부정방정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방정식의 개수가 미지수의 개수보다 적은 연립방정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령 ax+by+c=0 같은 수식은 a, b는 계수이고, 미지수 x, y의 차수가 1로 1차 부정방정식이라고 합니다.

    <제로존 이론>에는 방정식의 개수가 하나이면서 물리학 상수에서 보듯이 서로 다른 값(value)을 가진 미지수의 개수가 다수가 있는 연립방정식을 보았을 것입니다.

    가령 a^α∙b^β-c^γ∙d^δ=0 의 경우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간단하고 우아하게 보이지만, 하나의 식에 8개의 미지수가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슈퍼 컴퓨터를 동원해도 미지수 8개의 값을 찾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 할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푸는 것 보다도 푼 문제가 제대로 맞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것이 일반 수학의 밝혀진 원리입니다.

    물리학자들에게 정보학자들은 컴퓨터의 원리를 모르게 되면 제대로 된 물리학 이론이나 물리학의 진전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고 종종 이야기합니다.

    컴퓨터 과학의 목적이 무생물을 잘 다루기 위한 작업이기 때문이고, 이러한 무생물은 물리학자들이 다루는 입자, 우주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차가운 기계와 같은 무생물은 그 작동방식이 조금만 그들의 질서에서 어긋나면 ‘버그’가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작동방식이 유저 입장에서 복잡하거나 난해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 그렇다고 하여 초등학생의 산수와 같은 단순성은 쉽게 암호를 풀 수 있는 수식이 되어 당장 개인적, 사회적으로 엄청난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제로존 이론>이 어려운 수학기호나 물리학 수식이 없어 단순한 산술식 같고, 허전하며, 이론이 아니고 단순히 테크닉에 해당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한 줄의 수식도 슈퍼컴퓨터가 맥없이 물러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눈에 수식의 진위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로존이 자주 이야기하기를 제로존 이론에서 사용하는 수치가 숫자의 특성을 이용한다고 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문자는 ‘일반화’하기 용이하고, 숫자는 ‘검증’하기 용이한 방편이라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여기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과학철학자 <칼 퍼프>는 실험에 의한 반증 가능성이 수학에는 잘 작동하지 못해서 유효하지 않지만 실험으로 그것이 거짓임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 이론은 과학적이라는 주장을 한 바 있습니다.

    <제로존 이론>에 나오는 문자와 수치는 모두 물리학의 기존 용어와 잘 입증된 정밀한 실험데이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로존 이론>의 수식은 문자와 수치가 기호 논리학에 적합한 논리 계산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컴퓨터 사용이 편리하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은 빛이 이 세상에 나오고부터 인류사에 가장 어려운 사건, 어떻게 서로의 신뢰성을 담보할 것인가?

    곧, 설득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여기에서 온갖 부정과 부패가 생긴 것입니다. 서로가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전쟁의 기원 한가운데 ‘신뢰성’이라는 용어와 관련해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신뢰성에서 종교와 철학, 그리고 자연과학이 생긴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은 남의 말을 어떻게 믿고, 확신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일반론적 방법을 새로운 표기법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거래를 공정하게 성사시키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일반론적인 방식이란 당신이 풀어낸 답이 정답인가를 스스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확신하기 위해 눈금이나 저울이 정확해야 하는 점을 이해시키는 것입니다.

    철학과 과학적 이론의 목적을 함께 이루면서 설득에 있어 그 수단이 되는 표기법의 복잡성을 개선하는 방식의 근원을 숫자에서 찾아낸 것입니다. 숫자의 유연성, 확장성, 체계성이 학문적 표기법의 통일성을 이루면서 특히 중요한 누락과 중복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수천 년 전 인류는 수를 인식하기 시작한 이래, 우리들은 숫자를 모양이 있는 실재와 대응되는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물리량이란 사랑이나 미움 같은 감정은 제외하여 오직 셀 수 있는 대상에 집합을 생각하여 그 집합의 특성에 맞는 단위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7개 기본단위가 그것입니다. 그 기본단위들끼리 양을 넣어서 1m, 2kg, 3s 등으로 계산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곧 물리량은 숫자에 단위가 붙은 실제적인 계산 수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눈으로 보고, 손으로 감촉할 수 있는 실제의 대상에 대응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로존 이론이 등장하면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감촉할 수 없는 것도 직접 셀 수 있게 하였습니다.

    거리를 나타내는 집합의 단위는 미터이고, 무게를 감촉할 수 있는 집합의 단위는 킬로그램 이고, 오늘과 내일의 세월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집합의 단위는 초입니다.

    그러나 미터와 킬로그램, 초 등의 단위 그 자체는 도저히 눈으로 보고, 손으로 감촉할 수 없는 속성을 가진 개념입니다 !

    개념 그 자체에 숫자를 붙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성을 가진다는 것을 이해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개념에 숫자를 붙이는 작업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모든 것이 하나’라는 관점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라는 관점은 고금을 통하여 형이상학이나 과학의 경계를 허물어뜨릴 것입니다.

    춥고 그리하여 배고픔을 달래는 양식을 주고, 비와 눈보라를 피하는 건물을 지어주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류가 가장 목표로 하는 고통을 수반하는 온갖 이름을 가진 질병에서 구제해 줄 방편의 기초를 놓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요?

    이 질문이 바로 오늘날 형이상학과 과학이 존재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지금의 형이상학과 과학이 건널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것의 변수를 ‘최적화’ 하는 컴퓨터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컴퓨터의 한계가 바로 <튜링>과 <노이만>이 이야기한 ‘계산 가능성의 한계’입니다.

    <계산 가능성의 한계>가 형이상학과 과학을 하는 사람들 머리의 한계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한계를 구체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모든 온갖 형식의 서로 다르게 보고 있는 불편한 겉옷을 당장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로존 이론이 탄생한 것입니다 !

    빛(광자)은 결코 붕괴하지 않습니다. CERN이나 페르미 연구소의 어느 누구도 빛이 붕괴하여 아기 빛(광자)이 생겨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무한한 숫자로 되어 있고 그 어떤 숫자에도 반드시 ‘하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중력이 ‘비대칭성’을 만든다는 사실을 물리학자들이 심증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대칭성’은 서로가 하나라는 사실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사건의 시작을 만든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인데 서로 다른 하나로 바라본 것입니다 !

    중력의 개념과 함께 드디어 ‘시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시간의 개념이 서로 다른 사건을 만들게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시간의 개념이 인류로 하여금 바로 하나가 서로 다른 하나로 이해 하게끔 만든 것입니다.

    그것이 ‘변화(change)’라는 개념입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개입하여 역설적으로 동시에 다양한 사건이 일어날 수 없도록 한 것같이 보입니다. 이것이 속았든 어쨌든, 사람이 살아가는 실재의 표현방식 이고, 눈으로 보는 세상입니다.

    그리하여 고요히 생각하면 중력과 비대칭성, 시간, 변화라는 말의 개념조차 바로 참된 ‘하나’에서 나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

    <제로존 이론>은 겉으로 보기에 단순하고 우아한 ‘미학(Aesthetics)’입니다.

    이것이 자연이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은 진실이라고 소곤거리는 것 같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것입니다.

    Esse est Co-esse !

     

    왜 하필 빛이 1초 동안 움직인 거리가 2.99792458x10^8인가?

    제로존은 그 수열이 다음과 사연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00년 동안 찾아 헤매던 미세구조 상수의 수치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수열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정수 A, B, C는 온갖 물리량과 연관하여 재주를 부립니다.

    m= A/216 X (B α^-1 +C)=1/2.99782458X10^8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