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존 이론

[스크랩] 아이작 뉴턴에서 위튼까지, 데이비드 봄이 통일하다

자유지향 2011. 10. 31. 23:40

 

 

 

 

뉴튼 [ Newton, Isaac ]  영국, 1643~1727

 

 17세기 영국 최고의 물리학자, 수학자. 왕립 조폐국 장관과 후에는 왕립학회 회장이 되었다.
운동의 세 법칙(관성, 힘과 속도의 비례, 작용과 반작용이 동등하다고 하는 세 법칙), 광학이론, 미적분법의 발견으로 고전역학, 고전물리학을 확립했다.

볼테르나 칸트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또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의 기계적 세계관도 뉴튼의 역학사상에 의존하고 있다.
그는 케플러, 갈릴레이의 입장을 계승하여 '자연현상을 수학적 법칙으로 환원하는 것'을 자연연구의 방법으로 하고, 수학적 법칙을 신의 속성으로부터 이끌어 내지 않고, 수학적 연역을 보완하는 실험을 중시했다.
결국, 여기에는 세계의 객관적 실재의 승인과 이것을 알 수 있다고 하는 사고가 내재하고는 있지만, 다른 한편 뉴턴은 종교를 옹호하여 이신론(理神論)의 입장에 서서 천체운동의 최초의 동인(動因)을 준 것이 신이라고 인정한다('최초의 충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역학사상은 그 후의 유물론 철학에 강한 영향을 끼쳤으며 근대 과학 성립에 최대의 공로자라 할 수 있다.

 

 

 


조셉 존 톰슨 (Joseph John Thomson) 영국, 물리학자 1856~ 1940 

 

1856~1940 영국의 물리학자. 기체속의 전기 전도와 분자의 분해와의 관련성 여부에 대한 연구를 했으나, 그 현상 자체의 복잡성과 유효한 실험장치의 부족으로 인해 명확한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95년 독일에서 W. C. 뢴트켄이 발견한 X선이 기체를 전기전도성으로 삼는 것이 밝혀지자, X선 장치를 사용, E. 러더퍼드 등과 함께 기체 속의 전기전도의 연구를 진전시켰다.

 

음극선(陰極線)에 의해 X선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X선의 발견은 음극선의 연구를 자극했다.

H. 헤르츠, E. 골트슈타인 같은 독일 전기전도성 물리학자들은 음극선을 전자기파(電磁氣波)라고 주장했는데, 톰슨은 음극선이 마이너스의 하전입자(荷電粒子)라는 입장에서 연구를 진행, 음극선의 자기(磁氣)스펙트럼이 물질의 종류와 관계없이 동일하게 되는 것과, 자기장 속에서는 음극선과 기체방전의 현상에 차이가 생긴다는 것 등을 밝혔다.

 

그는 자기장과 정전기장(靜電氣場)을 사용한 음극선의 굴곡실험에서 마이너스 하전입자의 비전하(比電荷)를 확정하고, 음극선의 본성이 이온화된 수소원자의 비전하의 약 1,000배나 되는 비전하를 가진 물질임을 밝혀냈다.

 

전자의 발견(1897년)은 원자보다 작은 최소단위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확증함으로써 20세기 원자물리학의 길을 열었다.

 

1906년에는 이들 일련의 연구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음극선을 구성하는 하전입자가 물질의 보편적 성분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원자 모형을 제시했으며, 05년부터 음극선 연구를 시작해 네온의 동위원소를 발견하는 한편, 양극선(陽極線) 질량분석의 방법을 개발, F. W. 애스턴 등의 질량분석법의 기초를 닦았다.

 

84년 캐번디시 연구소장이 된 그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캐번디시 연구소를 원자물리학의 실험적 연구의 세계적 중심지로 만드는 데 공헌했다.

 

 

 


 막스 플랑크 (Max Planck) 물리학자, 독일  1858년 ~ 1947년

 

킬에서 태어났다. 뮌헨대학교를 나온 뒤 베를린대학교에서 헬름홀츠, 키르히호프의 강의를 듣고, 클라우지우스의 저서에 심취하였다. 학위논문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하여〉 이후 열역학을 연구 주제로, 엔트로피·열전현상(熱電現象)·전해질용해 등을 연구하는 등 열역학의 체계화에 공헌하였다. 그 총정리인 《열역학강의》(1897)가 있다.

 

1880년 뮌헨대학교 강사, 1885년 킬대학교 교수를 거쳐 1889년 키르히호프의 후임으로 베를린대학교로 옮기고 1892년 정교수가 되었다. 베를린으로 옮긴 뒤부터 당시 학계의 화젯거리였던 열복사(熱輻射) 문제에 몰두, 처음 선형진동자(線型振動子)로부터의 복사의 사출흡수법칙(射出吸收法則)을 문제로 다루었으나, 이것이 벽에 부닥치자 뒤에 열역학적 방법으로 바꾸어 엔트로피와 에너지 관계를 추적, 빈의 법칙을 정당화시키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루머, 프링스하임, 루벤스, 쿠를바움 등에 의해 제시된 실험과의 차이가 명백히 드러남에 따라 빈 분포식의 개량으로 나아갔고, 1910년 마침내 실험과의 일치를 보게 된 ‘플랑크의 복사식(輻射式)’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그 물리적 해석을 둘러싸고 독창적인 에너지양자(量子)에 대한 생각에 도달, 보편상수 h(플랑크상수)를 도입하였다. 이것은 매우 혁명적인 생각으로서 마침내 양자론의 전개를 초래하였고 물리학에 커다란 전기(轉期)를 가져왔으며, 이 공로로 191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상대성이론에도 관심을 가져 1914년 아인슈타인을 베를린대학교에 초빙하였다. 1913년부터 베를린대학교 총장으로 근무하다가 1928년 물러나 그 후는 프로이센학사원의 종신 이사로 있었다. 사상적으로는 처음 에너지론의 영향을 받았으나 후에는 볼츠만의 생각을 지지하고, 마흐의 감각론(感覺論), 사유경제설(思惟經濟說)에 반대하였다. 물리학적 인식론에 관한 많은 에세이가 있다.

 

 

 

 

러더퍼드 [ Rutherford, Ernest ] 영국 물리학자, 1871~1937

수상 노벨화학상(1932)
  


톰슨과 함께 X선에 의한 기체의 이온화 연구를 시작, 음양(陰陽) 이온의 발생, X선 세기와의 관계, 포화전류 등을 조사하여 기체의 전기전도 현상 해명에 공헌하였다. 이를 계기로 방사선의 α선·β선을 발견. 1902년 ‘러더퍼드-소디의 이론’을 발표. H. 가이거 등과 α선 산란실험을 통해 가이거와 공동으로 계수관을 제작했다.

 

1913년에는 러더퍼드-보어의 모형이 나오게 되었고 1917년 질소 원자에 α선을 충격시켜 수소를 관측, 처음으로 원자핵의 인공전환에 성공했다(1919년). 채드윅과 공동으로 가벼운 원소의 인공전환을 연구, 중성자·중수소의 존재를 예상하는 등, 핵물리학 전개에 지도적 역할을 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미국, 1879.3.14~1955.4.18]  

독일 태생의 이론물리학자. 광양자설, 브라운운동의 이론, 특수상대성이론을 연구하여 1905년 발표하였으며,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였다. 미국의 원자폭탄 연구인 맨해튼계획의 시초를 이루었으며, 통일장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에서 유대인으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평범한 사업가였으며 가족들은 유대교 의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어린시절 판에 박힌 학습과 교육방식을 경멸하여 무례한 행동이 잦았다고 전해진다. 청소년기에 수학과 물리학에 취미를 가졌고 아라우(Aarau)에 있는 주립학교로 진학하여 과학수업에 심취했다.

 이 시기를 그의 일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겼다고 회고했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 낙방하였다가 재수를 하여 물리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에서는 고전 물리학에 염증을 느끼고 루드비히 볼츠만, 구스타프 키르히호프 등 이론 물리학자들의 저서를 탐독하며 혼자서 공부하기를 즐겼다.

 

 1905년 빛이 에너지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광양자설, 물질이 원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브라운운동의 이론, 물리적 시공간에 대한 기존 입장을 완전히 뒤엎은 특수상대성이론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때 발표된 논문들은 단 8주만에 작성된 것이지만 그동안의 인식을 전환시킨 논문으로 평가되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갈릴레이나 뉴턴의 역학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종래의 시간·공간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혁시켰으며, 철학사상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몇 가지 뜻밖의 이론, 특히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等價性)의 발견은 원자폭탄의 가능성을 예언한 것이었다.

 

브라운운동에 관한 기체론적 연구는 분자물리학에 새로운 국면을 열었고, 플랑크의 복사법칙을 검토하여 광양자설에 도달, 그 예로서 광전효과를 설명하였다. 1911년 국제물리학회가 최초로 개최될 때 참가하여 세계적인 물리학자로서 인정을 받았으며 형이상학에 반대하고 철학은 과학으로 부터 결론을 얻어야 한다는데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1913년 베를린대학 교수겸 카이저 빌헬름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하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나, 그 동안 자신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중력(重力)이론이 포함된 이론으로 확대하고자,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 이 이론에서 유도되는 하나의 결론으로서 강한 중력장(重力場) 속에서는 빛은 구부러진다는 현상을 예언하였다. 이것이 영국의 일식관측대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광전효과 연구와 이론물리학에 기여한 업적으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으며, 그 후 중력장이론으로서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중력장과 전자장의 이론으로서의 통일장이론으로 확대할 것을 시도하였다.

 

1920년대에 들어서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특히 그의 특이한 외모(헝클어진 머리, 콧수염, 보헤미안적 스타일)와 체면을 세우지 않는 행동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유대인 출신인 그는 유대민족주의·시오니즘운동의 지지자, 평화주의자로서 활약하였다.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유대인 추방이 시작되자, 1933년 독일을 떠나 미국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로 취임, 통일장이론 개척에 힘을 기울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원자폭탄 연구에 몰두하자, 미국의 과학자와 망명한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을 가질 필요성을 통감하여 당시 대통령 F.D.루스벨트에게 그 사정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다. 이것이 미국에서의 원자폭탄 연구, 맨해튼계획의 시초가 되었다.

 

한편, 그는 통일장이론을 더욱 발전시키기에 힘썼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리만기하학을 이용한 것으로서, 그것은 2차 대칭하는 텐서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가 만년에 생각해낸 통일장이론은 2차 대칭이 아닌 텐서에 의거한 이론이다. 이것을 아인슈타인 최후의 통일장이론이라고도 한다. 미국에서는 그의 이름을 기념하여 아인슈타인상(賞)을 마련하고 해마다 2명의 과학자에게 시상하고 있다. 

 

 

 

 

닐스 헨리크 다비드 보어, 독일 물리학자 (1885년 10월 7일 ~ 1962년 11월 18일)

 

원자 구조의 이해와 양자역학의 성립에 기여한 덴마크의 물리학자로서, 훗날 이 업적으로 192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보어는 코펜하겐의 그의 연구소에서 많은 물리학자들과 함께 공동으로 일하였다. 상보성 원리를 발견하여 양자역학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였다. 

 197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보어는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물리학자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진다.

 

 

 


에르빈 슈뢰딩거, ( 1887년 8월 12일 - 1961년 1월 4일)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비롯한 양자 역학에 대한 기여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이다.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또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유명한 사고 실험을 제안하였다.

 

 

 

 

드브로이 Louis Victor de Broglie 1892~1987 프랑스의 이론물리학자.

 

22년 빛과 전자에서의 입자성과 파동성의 대응관계 확립을 목표로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설(光量子說)의 기초가 되는 식 E=hv, p=h/λ 가 임의의 물질입자나 빛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식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 물질파(物質波) 이론은 24년에《양자론의 연구》라는 제목의 학위논문으로 파리 대학에 제출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논문의 초고를 보고 신이론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지했다.

 

이를 계기로 E. 슈뢰딩거는 물질파의 연구를 발전시켜 파동역학(波動力學)을 전개했으며, 27년에 이루어진 C. J. 데이비슨과 L. H. 자머의 전자빔 회절 실험 등에서 전자의 파동성이 검증되어 물질파의 개념과 파동역학의 기본개념으로서 부동의 것이 되었다.

이 업적으로 드브로이는 2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30~50년에 걸쳐 P. 디랙의 전자론, 새로운 빛의 이론이나 원자핵물리학에의 파동역학의 확장을 시도했고, 51년부터는 다시 양자역학의 해석과 관측이론의 문제를 논했다.

 

1920년대 양자 역학의 개척시대에 ‘드 브로이 물질파’의 개념을 주창하여, 양자 역학의 입자-파동 이중성 개념에 도움을 주었다. 제6대 브로이 공작인 형이 1960년 후계자 없이 사망한 후 제7대 브로이 공작이 된 귀족으로 현대의 과학자들 중에 가장 높은 세습 귀족의 지위를 가진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파울리 [Wolfgang Pauli, 1900.4.25~1958.12.15]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 상대성이론을 전개하는 데 공헌하는 한편, 양자
론의 체계화에 힘썼으며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발견하였다. 이것은 당시의 원자
구조론에 크게 공헌함과 동시에, 전자의 스핀을 해명하는 데 기여하였다.

 

 

 

하이젠베르크 Werner Karl Heisenberg (1901~ 1976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뷔르츠부르크 태생. 1925년에 양자학(量子學)의 한 형식인 마트릭스(Matrix)역학을 창시함으로써 미시적인 세계를 지배하는 근본법칙인 양자역학(量子力學)의 태두로 불린다.

 

마트릭스 역학은 슈뢰딩거(E.schrdinger)의 파동역학(波動力學)과 함께 현재 이론양자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이 2종이 후에 동일한 결과를 낳는 것이 실증되어 양자를 포함한 일반적 이론체계로서의 양자역학이 생겼다. 그가 발견한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역학의 원리와 철학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으로 이름났던 그는 괴팅겐 대학 2학년 때 N. H. D. 보어의 연속강의를 들었는데, 날카로운 질문이 보어의 주목을 받아 두 사람은 사제(師弟)와 친구로서의 친교(親交)를 갖게 되었다.

 

 

 

 

유진 폴 위그너 ( Eugene Paul Wigner 1902년 11월 17일 – 1995년 1월 1일)는 헝가리 태생 미국인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다.

 

그는 1963년 "원자핵과 기본 입자에 관한 이론과 기본 대칭입자의 발견" 에 관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는데, 나머지 반은 마리아 괴퍼트-메이어와 J. 한스 D. 옌젠이 수상하였다.

 

위그너는 양자 역학에서 대칭 이론에 대한 기초를 세우는데 공헌하였고, 원자핵의 구조와 여러가지 수학적 정리에 관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위그너는 원자로에서 제논 동위원소 Xe-135의 독성을 처음 발견하였는데, 이 때문에 "위그너 독"으로 불리기도 한다.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 1903년 12월 28일 - 1957년 2월 8일)은

헝가리 출신 미국인 수학자이다. 무신론자였으나, 나중에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가

되었다.

 

양자 역학, 함수 해석학, 집합론, 위상수학, 컴퓨터 과학, 수치해석, 경제

학, 통계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작용소 이론을

양자역학에 접목시켰고, 맨해튼 계획과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참여하였으며, 게임

이론과 셀 자동기계의 개념을 공동 개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존 아치볼드 휠러(John Archibald Wheeler, 미국 이론물리학자, 1911년 7월 9일 ~ 2008년 4월 13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년의 공동연구자이도 했던 그는 아인슈타인의 통일장이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블랙홀과 웜홀라는 용어를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비트에서 존재로(it from bit)"라는 구절도 유명하다.

 

 

오스틴으로 옮겨 1976년 부터 1986년 까지 그 곳의 이론물리센터 소장을 지냈다. 말년에는 다시 프린스턴으로 돌아와 명예 교수로 지냈다. 휠러의 대학원생은 리처드 파인먼, 킵 손 등이다. 그는 가르치는 일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학문적으로 명성을 얻고 난 이후에도 대학교 학부의 초년생과 2학년생 물리를 가르치곤 했는데, 그는 젊은 지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곤 했다.

 

휠러는 이론 물리학에서 중요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1937년에 S-행렬을 소개하였고 이것은 이후 입자물리학에서의 필수불가결한 도구가 되었다. 닐스 보어, 엔리코 페르미와 함께 핵분열 이론의 선구자였으며 1939년에 보어와 원자핵분열의 액체방울모형을 제안했다.

 

 

 

 
데이비드 봄(David Bohm)


데이비드 봄(1917-1992)은 20세기 과학 사상가이자 철학자로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공부하고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프린스턴 대학의 물리학 교수를 지냈다.

 

아인슈타인의 영향을 받은 봄은 과학자로서는 드물게 동양 사상에도 관심을 보였다. 

양자 퍼텐셜 이론으로 유명하다. 특히 인도의 사상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와 달라이 라마와의 대담은 봄이 과학 이론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리처드 파인만 [Richard Phillips Feynman, 1918.5.11~1988.2.15]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양자전기역학의 재규격화이론을 완성한 연구 업적으로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북아일랜드 출신의 물리학자 벨(John Stewart Bell, 1928~1990)

 벨은 1964년에 벨의 부등식(Bell’s inequality 을 제안했다. 이것은 코펜하겐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양자물리학의 예측과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숨은 변수 이론의 얽힘 상태에 대한 예측이 측정 가능한 정도의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주는 식이었다. 이식으로 인해 과학자들은 어떤 이론이 옳은지를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머리 겔만(Murray Gell-Mann, 1929년 9월 15일 ~ ) 미국의 물리학자

 

뉴욕에서 태어났다. 예일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교 고등과학연구소원으로 있다가(1951), 1956년 캘리포니아공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K중간자(中間子)의 붕괴가 기묘한 점을 연구하여 1953년 소립자(素粒子)가 갖는 스트레인지니스(strangeness: 奇妙度)라는 양자수(量子數)를 도입했으며, 상호작용의 전후에서 이 양자수의 선택규칙을 발견하였다. 이 규칙은 나카노[中野董夫]·니시지마[西島和彦]도 독립적으로 발견하여, 나카노니시지마겔만의 규칙이라고 한다.

 

1961년 많은 소립자들을, 8개씩의 조(組)로 나눌 수 있다는 팔중도모형(八重道模型: eightfold way model)을 발표하였고, 그 후 이 설에 따라서 예언한 크사이입자·오메가마이너스입자 등의 미지(未知)의 소립자가 발견되었다.

 

또한 1964년 소립자는 쿼크라는 전하(電荷)가 전자의 1/3 또는 2/3인 입자(粒子)로 구성된다이론을 발표하였다. 그 외에도 장(場)의 양자론, 약한 상호작용의 해명(파인만겔만의 이론 1958) 등 여러 업적으로 196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로저 펜로즈 경(Sir Roger Penrose, OM, FRS, 1931년 8월 8일~) 영국 이론물리학자이자, 수학자

 

 런던대학교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 UCL)에서 공부하였으며, 훗날 이 대학에서 오랫동안 강의하였다.

 

1970년 스티븐 호킹과 로저 펜로즈는 이 작은 점(특이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호킹-펜로즈’ 이론을 내놨다.


 

 

 

와인버그 Steven Weinberg 1933~ 미국의 물리학자.

 뉴욕에서 태어나 1954년 코넬 대학을 졸업하고 57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콜럼비아 ·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를 거쳐 69~73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교수로 있었으며 이어 73년부터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를 지냈다. 장(場)의 양자론을 비롯하여 우주론까지  많은 연구를 했다.

 

1967년 소립자(素粒子)의 통일모형(統一模型)을 제출했으며 양자(量子) 크로모 역학을 전개했다.

1979년 위와 같은 연구로 A. 살람, S. L. 글래쇼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중요 저서〕 《Gravitation and Cosmo-logy》(1972), 《The First Three Minutes》(1977).

 

 

 

 

스티븐 윌리엄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년 1월 8일~) 2009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의 루카스 수학 석좌 교수로 재직한 영국의 이론물리학자이다.

 

 그는 (특히 블랙홀이 있는 상황에서의) 우주론과 양자 중력의 연구에 크게 기여했으며, 자신의 이론 및 일반적인 우주론을 다룬 여러 대중 과학서를 저술했다.

 

그 중 시간의 역사는 런던 선데이 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최고기록인 237주 동안 실렸다.

 

호킹은 스물한 살 때부터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을 앓아 현재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중요한 과학적 업적으로는 로저 펜로즈와 함께 일반상대론적 특이점에 대한 여러 정리를 증명한 것과 함께, 블랙홀이 열복사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 있다(이는 호킹 복사 혹은 베켄슈타인-호킹 복사로 불린다.). 그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물리학자이다.


 

 

알랭 아스펙트 (Alain Aspect)

 연구인, 물리학자 출생 1947년 6월 15일 (프랑스) 나이 65세 (만64세) 성별 남성 별자리 쌍둥이자리 띠 돼지띠 소속 광학연구그룹 (소장)

 

 양자얽힘 (quantum entanglement)현상에 대한 실험으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양자얽힘 또는 간단히 얽힘은 상호작용하는 여러 물체들의 양자상태 간에 발생하는 양자역학적 현상이다. 이 현상은 물체들이 공간적으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나타날 수 있으며, 관측 가능한 물리계 간의 상호작용이다.

 

예를 들어, 두 입자를 일정한 양자상태에 두어 두 입자의 스핀이 항상 반대가 되도록 하자. (예를 들어 두 스핀의 단일항 상태.) 양자역학에 따르면, 측정하기 전까지는 두 입자의 상태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측정을 한다면, 그 순간 한 계의 상태가 결정되고 이는 즉시 그 계와 얽혀 있는 다른 계의 상태까지 결정하게 된다. 이는 마치 정보가 순식간에 한 계에서 다른 계로 이동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양자얽힘 이론이 등장한 이후 양자암호, 양자컴퓨터, 양자전송 실험 등이 꾸준히 진행되었고 이를 통해 양자얽힘 이론의 예측을 실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실험적 결과들이 점점 쌓여가는 한편 철학적인 논의도 꾸준히 진행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이 양자얽힘 현상이 국소성의 원리를 위배한다는 논의였다.

 

이 국소성의 원리는 계의 상태에 관한 정보가 항상 그 계의 주위를 통해서만 매개될 수 있다는 원리로, 만약 양자얽힘 현상에 의해 정보가 전달된다면 주위를 통하지 않고도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 국소성의 원리와 모순을 일으키게 된다. 결국 양자얽힘 과정에서 실제로 정보가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고, 이후 이 모순을 없앨 수 있는 양자역학의 새로운 해석방법이 대두하게 되었다.

 

 

 


에드워드 위튼  1951년 8월 26일(1951-08-26~).미국 이론 물리학자 

15세에 브랜다이스 대학교에 입학하여 역사학을 전공하였으며 1971년 졸업 후 저널리스트로서, 또한 1972년 미국 대선 당시 민주당 조지 맥거번(George McGovern) 대통령 후보의 선거운동 참모로 일하였다. 그러던 중 홀연히 물리학으로 관심을 돌려 프린스턴 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하였으며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1976년 25세의 나이로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물리학에 입문한 지 5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이후 하버드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28세에 프린스턴 대학교 정교수가 되었다.

 

현재 이론물리학에서 표준모형의 최대 난점인 중력과 양자론 사이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양자중력이론의 후보로 초끈이론을 꼽고 있는데, 그는 이 초끈이론의 제1인자  평가받고있다. 1970년대 난부, 닐센, 서스킨드에 의해 처음 제기된 끈이론은 이후 여러 어려움 속에 발전을 거듭하다가 1980년대 후반 이후에 이렇다할 진전 없이 정체되는 상황에 처하였다.

 

10차원 상에서의 끈이론이 5가지나 존재하는 등의 모순과 그 수학적 난해성으로 인하여 물리학자들이 끈이론의 효용성에 대해 의심하면서 회의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바로 이 때에 위튼이 이들 5가지 끈이론이 사실은 11차원에 존재하는 하나의 이론(M-이론)이라는 것을 1995년 발표함으

로써 끈 이론의 2차 혁명이 시작되게 된다. 1990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수학자회의에서 물리학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수학계의 최고권위인 필즈상을 수상하였다.

더보기


제로존;


....


누구나 소망하듯이 1초의 정의는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만 통할 것이 아니라 안드로메다에 사는 존재까지 통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보편적인 정의가 요구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로존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초라는 용어, 길이 또는 공간이라는 용어 등에 집착해서 안된다는 사유로 모든 측정에 필요한 용어 개념 전체로 확장할 필요가 유용함을 제로존 이론의 초기 연구 과정에서부터 무지 애를 쓴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상대성 이론은 뉴턴 역학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에 반해서 모든 관찰자가 어떠한 운동 상태에서도 무관하게 관찰되는 빛의 속도를 모든 측정의 제 1원리로 삼게 되었습니다.

소위 빛의 속도의 일정성(최고 속도 한계 설정)을 '절대적인 척도'로 삼게 되어 관찰자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가지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혹자는 상대성 이론을 절대성 이론으로 해석하기도 하였습니다.

양자 역학은 플랑크의 양자론을 기초로 하여 복사 에너지의 최소 한계를 상정하는 작용 양자h(quantum of action)를 받아들이면서 본격적인 미시 세계의 에너지나 물질 입자에 대한 운동 법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두 이론 모두 또 다른 형태의 완결 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것은 일반 경험 영역의 포괄적인 이상화이며 그 법칙은 시간과 장소에 관계 없이 대개의 물리학자들은 타당하다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타당성은 오직 그들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제한된 경험 영역에서만 성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둘 이론의 완결성이란 특정의 경험 영역에만 적용될 수 있는 자기 완결적인 개념과 법칙 체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어 결코 모든 경험 분야에서 보편 타당적인 진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편 타당성 ?

우리 삶을 지배하는 종교적 신앙의 근거를 이러한 과학적 부류의 이해에서 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님을 잘 알지만 보편 타당성의 개념의 범주는 가능한한 일상적인 영역까지도 포섭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것 또한 절망적인 한계 상황은 아닐 것이라 봅니다.


조금 다른 방향에서 <케플러>가 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성삼위일체를 상징하는 바 신(성신)은 근원적 원동력으로써 구의 중심에 존재하며, 그 아들(성자)이 일하는 곳인 이 세계는 구의 표면에 비유되며 성령은 구의 중심에서 표면을 빛나는 빛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상은 본질적으로 어떤 합리적인 방편이거나 직관적으로도 설명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주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파울리>는 이해란 의식 속에서 합리적으로 형성되기 훨씬 전부터 무의식의 과정에서 시작된 장기간의 걸친 일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자연과학과 공학이 오직 세심한 관찰과 추론적, 합리적 사고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오해는 불식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확실히 망치와 끌이 목수의 작업에 속하듯이, 합리적 사고와 세심한 관찰은 과학적 작업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은 어디까지나 과학적 작업의 도구이거나 연장일 뿐 작업 내용 자체는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게시글에 올린 1초의 정의와 관련된 내용을 생각하면서 제로존은 위에 언급된 내용과 같은 연구와 관련하여 많은 학자들이 그러했듯이 시간의 개념 정리에 대해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적이 있습니다.

제로존은 시간의 보편적인 정의에 대해서 이미 제로존 이론의 출발 공준(가정)에 정의한 바 있습니다!


즉 1초란 뉴턴 역학이나 위에서 이야기한 상대론이나 양자론과 다르게 단순히 손목에 차고 있는 물리적인 작위적 개념에서 확장하여 우리가 물리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본 언어로써 7개의 단위 개념 전반으로 관계성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인 수식 가령 a=b=c=d=...라고 할 때 이를 다른식으로 표현하는 a/b=1또는 b/c=1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므로 수식 일반은 무한하게 '='이라는 기호를 사용함에 있어서 이 기호의 좌우변은 겉으로 드러나는 수식 표현은 다르더라도 토톨로지(동어 반복)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등가식(예 : 항등식)을 변형하면 숫자 1이 의미하는 바가 '서로 같다'는 소위 비율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제로존 이론에서 1초란 '무엇이 같은가'를 물리적 언어인 단위로써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셈이 됩니다.

서로 다른 수식과 용어들의 결합이라 하더라도 같은 값을 가지는 물리량들은 이미 시간적, 공간적으로 동시적 존재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동시적 존재상태가 바로 1초라는 개념을 상정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 길이, 질량, 온도, 전류, 몰, 광도 등의 물리학에서 정의하고 있는 물리량들을 이름 그대로 개개적인 물리적 특징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관계망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우리 지구상에서 사는 사람들끼리 정의한 내용에 기반한다면 ...


즉 1초s란 최고 속도인 광속c이며 최소 에너지 다발로써의 작용 양자이며 공간으로써의 거리299792458m이며 전자 질량과 전자 전하의 비이며...(안드로메다에 사는 존재는 이들 또한 우리와 같은 개념을 가지겠지만 표현하는 방식의 기호나 수치가 다를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관계성의 불변항이 중요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설명하여 수식 표현은 다르더라도 진동수가 같으면 동일한 1초 개념을 제공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진동수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물리량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수치만 같다면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1초의 정의가 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굳이 1초란 말을 쓰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공간으로도 설명할 수 있고 전류 또는 온도의 측면에서 1초의 개념을 확장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일상 언어로 원자적 현상을 이해하려면 언제나 애매함과 모호함이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이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특정한 부류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수학적 언어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조차도 진정한 해결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얻고자하는 자연의 보편적인 원리에서 특정한 정의 개념을 모색한다는 것은 곧 일상 언어와 깊은 괴리를 갖고 있는 수학이나 물리학적 언어와의 자연스러운 통일성을 찾아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통일적 언어가 바로 참된 자연 언어이며 반수 반언어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제로존 이론의 숫자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로존 이론을 반양자 물리이론이라고 칭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결합을 시도한 것입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성신과 성자와 성령은 예전에 블로그에서 자주 언급햇던 바 제로존 이론에서는 각각 0과 1 그리고 허수 i로 메타포해내고 있습니다.

제로존이 출간한 책(새로운 양자 물리 이론을 찾아서)에서 성신은 존재(정신, 영혼)이고 성자(마음)는 표현이고 이 둘을 이어주는 성령(의식)은 표상으로 비유하여 3단계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언어적 수단이 필요없는 단계로써 존재층과 우리가 살고있는 측정의 단계에서 표현층, 그리고 이 두층을 이어주는 단계가 표상층으로 존재-표상-표현의 전체적인 비언어적 메세지는 출간된 책 겉표지에 묻어두었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에 있어 소리에 이치가 들어 있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자음과 모음을 만들었다면 숫자에는 마찬가지로 이치가 들어있어 기수(크기)와 서수(방향,순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로존 이론에서 기수 그 자체로도 크기와 방향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숫자 1은 크기면에서 1이면서 모든 수를 구성할 수 있는 모수(단위수)가 되고 있으며 방향면에서 숫자 1은 360도 곧 1회전(Hz)을 유도 단위에서 자체가 정의되고 있습니다. (1라디안=57.2957...도)

그러므로 어떤 입자가 아주 큰 스케일의 숫자로 되있다면 2π로 나누면 초당 몇 회전(360도가 1회전이므로)을 하고 있는 가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1초의 정의와 관련하여 제로존이 이야기 하고자 싶은 의도는 다음 <에딩턴>의 이야기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지의 해안가에서 이상한 발자취를 발견해 왔으며 그 유래를 설명하기 위해서 심연한 이론들을 차례로 고안해 냈다. 마침내 그 발자취를 만든 생물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오! 그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닌가.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마음 자신이 자연속에 부여해 왔던 그 것을 다시 자연 속에서 획득했을 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 것이 제로존이 의도하고 있는 하나와의 일치는 마음이라 해도 그 뜻은 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2011년 11월 4일 금요일 입니다.

오늘 새벽에 올린 내용을 숫자로 설명하면 아마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어떤 내용?

->
이 두 이론 모두 또 다른 형태의 완결 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것은 일반 경험 영역의 포괄적인 이상화이며 그 법칙은 시간과 장소에 관계 없이 대개의 물리학자들은 타당하다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타당성은 오직 그들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제한된 경험 영역에서만 성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

각각의 이론은 완결이론이고 이 완결된 이론에서 제한된 경험 영역에서는 성립한다는 것은
속도가 광속 가까이 상당히 높은 상대성 이론은 우주 거시 이론에 관측 사실과 대체로 일치하고
최소의 복사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양자역학은 미시 세계에서 소립자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관측 사실과 대체로 일치하는 바 이 두 이론을 통합하는 방법은 두 부분의 공통 요소를
함께 취급하는 방법입니다.

어터케?


상대성 이론은 연속 이론으로 숫자로 1년을 365.242 199 074 074 074 074 074 ....일 (day) 로
정의한다고 가정합니다.

양자론은 불연속 이론으로 숫자로 1년을 365. 242 2일 (day)로 딱떨어지게 정의한다고 가정합니다.

그러면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을 통합하는 1년을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좋을까요?

숫자로 아래 좌변항의 수치와 우변항의 수치를 일치 시키는 숫자 관계를 이용하는 것 입니다.

365.2422 /365.242 199 074 074 074 074 074 ....= 3.155 692 608 x 10^7 /3. 155 692 6 x 10^7

따라서 365.2422 x 3. 155 692 6 x 10^7 = 365.242 199 074 074 074 074 074 ...x 3.155 692 608 x 10^7=

1.15259210774772e+10

그러니까 상대론의 주장과 양자론의 주장을 서로 통합시키는 수치, (1.15259210774772e+10) 는
불변수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 통합된 새로운 1년을 계산해 내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통합 과정의 예는 굳이 수치로 표현될 필요가 없이 일반화된 기호로 통일의 형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이론이 A를 고집하여 주장하고 어떤 또 다른 이론이 B를 고집하여 주장한다면(또는 정의한다면)
이 둘의 정의 아래에서 관측 결과가 각각 정당성을 확보한다면 통일된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A/B = C/D로 두어서 AxD = BxC = E가 됩니다. 이 E가 A와 B를 통섭하는 일반화된 모형이 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여기서 A /B 의 비율과 같은 C 와 D를 찾아내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 입니다.

제로존 이론의 공준을 보면 각각의 단위 계는 이러한 단위 계가 필요한 물리 영역에서 모순 없이
그 결과를 표현해 내지만 미터법 단위계 (SI단위계)에는 일부 모순이 생깁니다.

이러한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다른 말로 모든 미터법 단위계에 정합성을 가지는 단위계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바, 각각의 입장을 대변하는 변수 조항을 다른 변수를 이용하여
얻어내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제로존 이론이 각각의 모순을 상생 통일하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복잡한 개념보다도 숫자로 보여주는 방법이 전문가 뿐만 아니라 일반인 까지
훨씬 이해시켜 설득시키는 주요한 방법론이 될 수 있다는 뜻 입니다.

과학 철학자 <토마스 쿤>은 서로 경쟁하는 이론들이 통합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논쟁이
계속되는 이유는 '공약 불가능성 또는 통약 불가능성 (incommensurability) ' 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