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존 이론

[스크랩] 제로존 이론, 석가세존께서 설하는 ‘하나’는 홀수인데, 짝수는

자유지향 2010. 5. 21. 21:07

 

오늘은 불기 2554년 4월 초파일 석가탄신일입니다.

 

석가모니 세존이 탄생하자마자 처음으로 외쳤습니다.

 

당연히 세존은 탄생하자마자 뻥~! 하고 ‘빅뱅’이라고 외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탄생게(誕生偈)'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외친 천지인(天地人)이라는 수인(手印)입니다.

 

반라(半裸)의 형상에 한 손은 하늘을, 다른 한 손은 땅을 가리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기 나오는 수인이란 용어는 모든 불, 보살이 스스로의 바람을 이루고자 다짐한 본서를 나타내는 손 모양을 말합니다.

 

인(印)은 여래의 내증(內證), 즉 스스로의 깨달음과 서원(誓願), 또는 공덕(功德)의 표지입니다.

 

여기서 수인(手印)에 대해서 함께 알아봅니다.

(아래 내용인데, 누군지 모르지만 참 잘 정리되어 참 고생했심니더.) 

 

수인을 쉽게 설명하면 야구경기할 때 감독이 일절 언어로 표현하지 않고 언어 대신 그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을 특정한 자기편에게 전달하는 싸인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야구 감독이 자기편에게 싸인을 내리 듯이 석가세존은 제자에게 수인을 내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의 이심 전심 표현법이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긴 말 안해도 알겄제~!)

 

 

불교의 手印 

 

수인(手印)이란 모든 불보살의 깨달음과 서원을 손 모양으로 나타낸 것을 말합니다. 

 

수인의 종류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근본 5인(항마촉지인, 선정인, 전법륜인, 시무외인, 여원인), 비로자나불의 지권인(智拳印), 미륵불의 시무외인, 여원인, 아미타 부처님의 구품인(九品印) 등이 있습니다.

 

 

(1) 선정인(禪定印)

 

결가부좌한 상태로 참선 즉 선정에 들 때의 수인입니다. 왼쪽 손바닥을 위로 해서 배꼽 앞에 놓고, 오른손도 손바닥을 위로 해서 그 위에 겹쳐 놓으면서 엄지 손가락을 서로 맞대어 놓는 형식입니다. '법계정인(法界定印)'이라고도 합니다.

 

  

(2)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부처님이 마귀를 항복시키고 성도한 뒤, 당신의 깨달음을 지신(地神)에게 증명해 보라고 말하면서 지은 수인입니다. 선정인에서 왼손은 그대로 두고 위에 얹은 오른손을 풀어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입니다.

 

(3) 전법륜인(轉法輪印)

 

부처님이 성도 후,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하며 취한 수인으로 시대에 따라 약간씩 다른 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 예가 많지 않습니다.

 

  

(4)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與願印)

 

시무외인은 중생에게 두려움을 해소시켜주는 수인이고, 여원인은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게 하는 수인입니다. 시무외인과 여원인은 부처님마다 두루 취하는 수인으로 통인(通印)이라고도 하며, 석가모니불(또는 미륵불) 입상(入像)의 경우 오른손은 시무외인, 왼손은 여원인을 취하고 있습니다.

 

  

(5) 지권인(智拳印)

 

이(理)와 지(智), 중생(衆生)과 불(佛), 미(迷)와 오(悟)가 본래 하나라는 상징으로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서 각각의 엄지손가락을 손바닥으로 감추고 다른 손가락을 감싸 주먹을 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손모양을 통해 진리를 즉시 깨우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비로자나불의 수인입니다.

 

 

(6)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미타정인(彌陀定印)이라고 함

 

아미타불이 취하는 9가지 수인으며, 상품상생인, 상품중생인, 상품하생인, 중품상생인, 중품중생인, 중품하생인, 하품상생인, 하품중생인, 하품하생인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7) 약기인(藥器印)

 

병마를 없애준다는 의미로 손에 약사발을 들고 있는 수인을 말하는데, 병을 고쳐준다는 약사불의 계인입니다.

 

(8) 설법인

 

(9) 합장인

 

 

(10) 연화 합장인

 

 

(11) 금강합장인

(12) 금강권인

 

 

제로존 : 세존이시여~! 제로존은 5번 지권인이란 수인을 받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디 아직 세상에 아마추어라... 저 한테는 한번도 안 주네요~!   

 

석가세존 : (니, 6번의 하품하생 수인을 받아봐야 정신이 들겄나?....!)

 

제로존 : (쏙~! 기냥 들어갑니다.) 앞에서 설한 탄생게는 즉 이 우주 만물 중에는 내가 가장 존엄한 존재라는 뜻으로 인간의 존귀한 실존성을 상징하는 말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불이문이라 모든 것이 ‘하나, oneness’라고 알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하나', 'oneness'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단순히 이 단어를 숫자로 표현하면 ‘1’이 되는데, 자연수의 성질 중에 짝수와 홀수가 있습니다.

 

숫자 ‘1’은 명확히 누가 봐도 홀수입니다. 그런디, 하나, oneness가 숫자 ‘1’로 홀수라고 한다면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을 받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단어를 단순히 홀수의 성질을 가지는 숫자 ‘1’로 볼 순 없을 것입니다.

 

숫자 ‘1’이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홀수(odd number)가 아니고 짝수(even number)의 성질도 함께 존재할 것 같습니다. 쌍 개념을 지금보다 더 좋은 표현이 없을까요?

 

세존 : 있따~! 앞뒤가 별도로 존재하는 평면의 띠를 비틀면 앞뒤가 오직 '하나'의 면으로 나오는 '뫼비우스의 띠'도 생각할 수 있겠지. 

 

또 부동점 정리도 있고, 물리학에서는 패리티 개념도 있지. 오늘은 특별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법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제로존은 눈을 바로 뜨고 귀를 열어 잘 들어 보라!

 

내가 설하는 바는 소위 니가 지목하는 ‘1’이란 단순한 홀수를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도 있지...

 

1 = <0, 0, 0, 0, 0...>

 

제로존 : 이 타이어 굴러 가는 듯한 똥그래미는 무슨 뜻입니까?

 

세존 : 숫자 ‘0’은 느그들이 말하는 자연수가 아니지만 짝수(even number)로 설명된다. 우째서요라고 묻고 싶제?

 

짝수에 대한 정수론 정의를 생각하면 숫자 ‘0’은 짝수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지.

 

느그들 세상에 정수론에 의하면 ‘짝수 + 짝수 = 짝수!‘ ’짝수 + 홀수 = 홀수!

‘0’에다가 어떤 임의의 짝수를 더하더라도 짝수가 안 되나?

 

제로존 : 아 그러고 보니 ‘0’은 짝수네용~!

 

세존 : 머리 과히 나쁘지 않아 좋다~! 그라믄 우째서 숫자 ‘1’을 위에서와 같이 ‘0’으로 좌르륵 표시할 수 있는가?

 

고건, 사람들 마음에 달려있다고 하지 않았겄나? 무신 말인고 하니...

 

자연수 n의 ‘소수 지수 표현’에 대한 일반화는 다음과 같다고 설명하지.

 

 

제로존 : 왜 이런 씰데없는 이런 복잡한 짓을 하고 있을까요?

 

세존 : 다~, 언어의 분석과 관련하여 심오한 바가 있고 유용성이 있기 때문에 표현하는 것이니라.

 

여기서는 자연수 n을 소인수분해 했을 때 소수 p가 몇 개가 나타나는 지를 알려주지 않겠나?

 

나중에 별도로 이야기하겠지만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도 이런 표현법을 유용하게 써 묵고 있지!

 

수학적 기본 대상에는 숫자가 있지만 숫자의 본질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수의 개념을 설명하는 수론 그 자체도 수학의 대상이지. 

 

자기 언급 그 자체를 또 설명해야 하는 소위 메타수학이야!

 

제로존 : 아니 그 유명한 불완전성 정리에도 써 묵고 있다고요?

 

거~ 참, 점점 내용이 어려워집니다요.

 

세존 : 예를 들어서 n = 280을 소수 지수표현으로 기술해 본다.

 

 

따라서 자연수 280의 소수 지수표현법은 다음과 같으니라.

<3, 0, 1, 1, 0....>

 

이런 소수 지수표현법은 소인수분해의 일의성에 따라 소수 지수표현은 자연수와 1 : 1 대응한다는 것을 보이면서 소수 p가 몇 개 나타나는 지의 정보를 보여주고 있지.

 

위의 예에서 자연수 280은 소수 2가 3개, 소수 3은 하나도 없음(0), 소수 5는 1개, 소수 7은 1개, 소수 11은 하나도 없음(0)을 보여주고 있느니라.

 

그 뒤에 나열되는 소수 13, 17, 19, 23..... 은 자연수 280의 소수 지수표현에 하나도 없음(0)을 보여주어서 더 쉽게 표현하면

 

 

어떤 자연수이든 소수 지수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은 역으로 소수 지수표현에는 반드시 대응하는 자연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소수 지수표현만 보더라도 다음을 보면 어떤 자연수에 대응할까를 알 수 있을 것이니라.

예를 들어 <1, 0, 2, 0, 0, ......>

 

 

그라믄 <0, 0, 0, 0, 0....>은 어떤 자연수에 대응하것나?

아주 쉽지 않나?

 

 

제로존 : 이 이외에도 소수 지수표현으로 곱셈도 가능하것네요?

 

세존 : 올커니...! 그런데 옳거니!가 맞나? 그냥 넘어가자.

 

제로존 : 세존님도 사투리 잘 쓰네요?

 

세존 : 얄마~! 니가 갱상도라서 그렇다! 엉뚱한데 테클 걸지 말고...

 

두 자연수 a, b의 소수 지수표현이 다음과 같다고 가정할 수 있지.

 

 

이때 두 수의 곱셈 a * b는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을 것이야.

 

 

예를 들어 볼께.

 

12 * 30을 소인수분해하여 지수표현법을 사용하여 곱셈으로 표현하면

 

12 * 30 → <2, 1, 0, 0, .....> * <1, 1, 1, 0, .....>

= <2 + 1, 1+1, 0+1, 0+0, .....>

= <3, 2, 1, 0, ....>

 

이 지수표현은

 

 

느그들 세상에서 평소에 사용하는 ‘곱셈’을 ‘덧셈’으로 표현할 수 있는 까닭은 소수 지수표현이 소인수분해라는 귀찮은 계산을 마친 뒤의 표현이기 때문이야.

 

이렇게 소수 지수표현법을 쓰면 ≪자연수의 구조≫를 명확하게 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보여주는데 그 매력이 있지 않겠어?

 

언젠가 니가 Sci카페에 중학생도 알 수 있는 대수식을 보여준 바 있는데 브루스인가 부루인가 하는 친구가 날카롭게 문제의 개념을 직시하고 샤브샤브인가 샤브로인가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로 다른 물리량을 예시하여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은 서로 다른 차원끼리의 덧셈, 뺄셈을 하더라도 결과론적으로는 원래의 목적하는 계산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준 바 있지.

 

제로존 : 아~ 그 내용 말입니까?

 

문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서로 다른 차원을 가진 물리량들이라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일관적인 대수적 사고방식으로 계산이 가능할 수 없는가? 물론 이런류의 수식이 결과가 차원이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는 경우를 동시에 일관적으로 생각해보는 방식인 그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소립자와 천체물리학, 우주론 등의 물리학 분야를 마지막으로 어느 정도 공부한 후 과학의 계산과 해석의 한계를 선대의 과학자와 같이 절실하게 체험하면서 당면한 첫 번째 화두였습니다!”

 

세존 : 여기서 왜 뻔한 대수식을 설명하고 있노?

 

제로존 : 위에서 세존께서 지수 표현방법을 보여주어서 단순한 ‘곱셈’을 ‘덧셈’으로도 가능하다고 한 것은 <수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일련의 가정을 두게 되었고 이 가정에서는 일정한 규칙을 이미 정해두었기 때문에 처음보는 표현법과 계산의 방식에 대해서 의아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존 : 이번에는 옳거니! 계속 읊어 봐라!

 

제로존 :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 <파인만>은 그 유명한 경로적분을 창안한 적이 있고, 이 방법을 사용하여 실험데이터와 11자리 가량의 정합도를 보여준 이상전자의 모멘트 g값을 계산해 내어서 노벨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어떤 기시점(출발점) i에서 도착점, f까지 가는 경로는 잘 아는 바와 같이 무한한 경로의 길이 있다는 것을 이용하여 그 무한한 방법의 경로의 길 중에서 경로에 관계없이 가능한한 나올 수 있는 모든 경로를 더하는(적분) 계산 방법을 쓴 것입니다.

 

여기서 전자가 p에서 q로 가는 길이 5m라고 하며, 반전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다른데 -5m로 둔 것입니다.

 

이 -5m는 전자가 가는 일정한 크기를 가지고 양의 방향으로 달리는 것에 비해서 반전자는 같은 크기의 반대 방향으로 달린 것이라고 해석한 것인데, 이는 시간의 방향에 거슬러서 달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세존 : 그라믄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이 거꾸로 달린다고 해석하여 난리법석을 떨지 않겠나?

 

제로존 : 그렇습니다.

 

계산의 최종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 이런 저런 해석을 해대면 여기저기서 아전인수식 해석을 한다고 난리가 납니다.

 

쉬운 말로 그런 계산이 물리적 의미가 있나용? 요따구 소리를 해댑니다.

 

요런 말은 계산하는 자가 어떤 흉계를 숨기고(일정한 계산방식에 대한 나름대로의 가정을 마련해 두는 것) 어떤 식으로든지 계산 결과에 치중했기 때문에 과정에 대한 계산과 해석은 너무나 생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왕왕 이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듯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지수 표현방법을 창안해낸 지상의 수학자도 마찬가지 사정일 것입니다.

 

세존 : 그렇지!

 

자연수가 가진 내적구조를 표현하는 방법을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소위 수론을 연구하다가 자연수의 내적구조를 소수 지수표현법으로 기술함과 동시에 자연수와 1 : 1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고 이 방법은 곱셈을 단순히 덧셈으로 처리해도 좋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서울 왕서방집 찾아가는 방법을 새로 알게 되었고 이 방법은 기존의 서울 왕서방 집 찾아가는 방법보다도 새로운 해석과 함께 유용성도 가질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야.

 

제로존 : 제로존 이론도 겉으로는 서로 다른 단위끼리 마구잡이로 계산해도 좋다고 했지만 그 마구잡이 계산이 실험적 정합성을 갖추면서 가능하도록 일정한 가정아래 변환규칙을 정해두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해석과 계산 방법이 나오고 이런 일련의 해석과 계산 방법을 전물리학분야로 확장해가는 것입니다.

 

비단 물리학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 철학 분야에 대한 공통관심사를 하나의 언어가 가진 속성도 설명할 방법을 강구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제로존 이론의 핵심논증은 어떤 물리적 의미가 있나?, 어떤 해석이 가능한 가? 이 이론에 대한 응용은 어떤 식으로 보여 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모두 엄밀히 이야기하면 사족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세존 : 두말하면 잔소리!

 

제로존 : 다시 말하자면 어떤 패러다임을 보존하고 있는 굳건한 체계에 대해서 일정한 형식 체계를 이용하여 반증을 가하는 것으로 완료된다는 것입니다.

 

현대 대학 물리학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이 정식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두 물리량을 가감하고자 할 때 =, >, < 으로 하고자 할 때는 기호의 양쪽에는 서로 같은 차원의 양이 있을 때만 성립된다. 그러나 승제(곱셈, 나눗셈)를 하고자 할 때는 같은 차원의 양이 있을 필요는 없다.]

 

곧 ≪모든(Every) 차원이 다른 물리량끼리는 가감연산이 불가능하다≫에 대한

 

반증을 펴고자 할 때는

≪어떤(something) 차원이 다른 물리량끼리는 가감연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형식적 체계를 이용하여 그 정당성을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모든 백조가 희다 라는 명제에 대한 반증은 한 마리라는 특수한 경우에도 희지 않는 백조를 발견하면 그 명제는 기각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물리적 의미라든가 해석, 응용에 대한 부분은 자연스럽게 제로존 이론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첨부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존 : 내가 위에서 보니까 저번 과총 토론회 할 때 위에서 한 말, 간단히 할 것을 가지고 뭐가 그렇게 말이 많던데...

 

아인슈타인의 다음과 같은 명언을 잘 기억하고 있을 터!

 

I want to know God's thoughts. The rest are details!

나는 하느님의 생각을 알고 싶다.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이다.

 

제로존 : 지가 쫌 아마추어라서 그렇습니다.

 

그런디 세존이시여 하나, 숫자 ‘1’이 홀수도 되고 짝수가 되는 사연도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보시다시피 조용한 세상은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 하나, 숫자‘1’이 나와서 세상이 이렇게도 시끄럽습니까? 숫자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세존 : 하나가 조용하다고라, 시끄럽다고라? 니가 아직 말은 ‘하나’라고 하면서 제대로 모르고 있구먼...

 

그래서 아직도 지권인을 받지 못했지...

지수함수 의 테일러 전개를 알고 있겠지? 모르면 책 찾아보고...

 

 

 의 테일러 전개는 다음과 같다.

 

 

 의 테일러 전개는 다음과 같다.

 

 

 에서  를 대입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식이 유도 되지...

 

 

그래서 결론적으로 오일러가 아래와 같은 수식을 발견했지.

 

 

좌변은 지수함수이고 우변은 삼각함수이니라.

 

완전히 다른 성질의 다른 함수가 오일러 공식에서 등호로 이어져 있는 것이 참 신통방통하지.

 

변수 π를 대입하면 cos π = -1, sin π = 0 이 되지 않겠어?

 

단위 원의 원둘레 위의 편각이 π인 복소수는 -1과 같다는 것이 오일러 식에 대한 수학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지.

 

위의 지수에서 가 2nπ(n = 1, 2, 3.....)가 되면 그래서 복소수 평면에서는

 

 

순으로 끊임 없이 움직여야하는 느그들 말마따나 쌔가 빠지게 달려야만 하는 세계가 펼쳐진 것이지!

 

숫자 '1'을 다른 방식으로 쓰면 허수, 초월수 두개로 표현할 수 있겠지!

 

그러니 단순히 '하나', 숫자 '1'이라고 하더라도 움직이는데 필요한 발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야!

 

제로존 : 아~, 방향성이 드디어 보이네요! 그런데 그 방향성을 따라가면 원래로 회귀하는 통일성도 보이네요!

 

세존 :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원형성인 주체의 수식을 오일러가 발견했고 나름 원칙성을 가지고 움직임을 보이는 동인성, 방향성, 회귀성, 통일성을 볼 수 있겠지.

 

제로존 : 또 홀이 있으면 응당히 또 다른 짝이 있으니까 보상성이 있겠지요.

 

세존 : 니, 말대로 그리니까니 그 보상성으로 빛의 성질이 입자로 나타났다가 파동으로 나타나는 것 아니겠어?

 

제로존 : 그래도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장난이네요?

 

세존 : 당근!

 

제로존 : 요래 하다가 왜 이런 대칭성(symmetry-breaking)이 깨지나요?

 

세존 : 대칭성이 깨지는 것이 아니라 깨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hidden symmetry). 자발적 대칭성 파괴(spontaneous symmetry breaking)라고 하데? 니 눈에 1과 허수밖에 안 보이나? 유리수도 있고, 초월수도 있고, 복소수도 있고...

그 엄청난 숫자는 어떻게 설명할래?

 

제로존 : 그라믄 제로존 이론에 의하면 숫자 ‘1’은 길이가 1인 빛이 1을 반경으로 주기진동하는 표현이 바로 오일러 공식이네요?

 

세존 : 당근~, 투!

 

제로존 : 아~, 그러고 보니 제로존 이론을 하나의 수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눈에 보이네요. 괴델의 완전성 정리와 불완전성 제1, 제2 정리를 하나로 묶는 식이 참말로 보입니다.

 

앞으로 세상에 밝힐 좋은 논문 제목과 내용이 보입니다용~!

 

세존 : 당근~, 쓰리는 ‘하나’로 다시 돌아가제! 色卽示空 空卽示色!

 

제로존 : 반야 파라미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출처] 제로존 이론, 석가세존께서 설하는 ‘하나’는 홀수인데, 짝수는 어디로 갔습니까?|작성자 제로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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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존 :

2010년 5월 19일 수요일입니다.

본 글의 주제는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이 내용을 브릭의 Sci 카페에만 올릴려고 하다가 본 블로그가 너무 조용해서 일부로 올리게 됐심니다.

오늘 댓글의 주제는 21세기?(가만있어 봐라... 지금 21세기 맞나? 어, 맞네!)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했는데 한마디로 어떤 종류의 패러다임 전환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의도의 표현은 다양하겠지만 21세기 패러다임의 전환은 아마 어떤 식으로든지 새로운 계산 방식의 전환이라는 방식에서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옛날, 옛날 한 옛날 호랑이가 담배물고 당구 치던 시절, 계산은 순수 이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아마 생활체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절에는 내꺼, 니꺼의 먹을 것이나 토지의 어떤 양을 가지고 주먹질을 하고 많이 싸웠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일정한 길이의 밧줄로 둘러싸인 러시아의 시베리아 광활한 토지를 주겠다고 한다면 미련한 놈은 공짜로 줘도 쫘~악, 쫘~악 정사각형 모양으로 밧줄로 둘러쌀 것입니다. 이거 내꺼~ 하면서... 사실인지 모르지만 가로 세로 1킬로미터에 백만원 정도? 와~ 싸다! 그런디 그 추운 동토를 사서 뭐할라고...? 뭐 허긴, 석유가 나오면...

뭐 1킬로미터, 1킬로미터에 십원하다고 해도 아마 시작, 요이씨 땡! 하고 알아보는데 기천만원 이상 들낍니더.

여하튼 토지를 준다고 할 때, 영리한 사람은 어김없이 원형으로 둘러쌀 것입니다.

지금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 솔찍히 말해보소? 정사각형 만든다고 한 사람 분명히 있을 겁니다. (아이고, 무씩해라~!)

넓이나 체적을 계산할 때 기하학 도형을 생각하게 되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이나 구가 특별한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체험을 통해서 둘레의 길이가 일정한 토지의 면적은 원형일 때 가장 넓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면적이 일정할 때 체적이 가장 큰 것은 구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둘레가 같은 4각형 중에서 면적이 가장 큰 것은 정4각형이고, 3각형 중에서는 정3각형입니다.

이것들 도형의 특징은 모두 대칭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도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뜻에서 원은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도형일 것입니다.

또 구는 어디를 잘라도 그 단면이 시종일관 원이 되기에 더욱 신비하게 보입니다.

숫자 1을 아무리 잘라 제껴도 1이 나오는 것과 유사하지 않습니까?

유럽 수학의 원형이 되고 있는 유클리드 기하학은 ‘원’과 ‘직선’의 기하학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작도 문제에 있어서는 컴퍼스와 자만을 사용한다는 점을 엄격히 내세운 것도 그 시절입니다.

직선을 긋는 자와 원을 그리는 컴퍼스는 다른 기하학의 도구에 비하여 너무나 간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쫘~악 그은 직선 도형과 꼬불꼬불한 곡선도형의 넓이가 같아지는 예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쪼깨이라도 어딘가 이빨이 안 맞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히포크라테스라는 사람이 생각한 곡선모양의 ‘초생달’의 면적을 생각한 것입니다.

이 초생달은 직선으로 둘러싸인 도형과 같은 넓이의 곡선 도형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준 것입니다. 거~참, 맞는 소리인가?하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맞아요!)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원과 같은 넓이를 가진 정4각형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자와 컴퍼스만으로 다음 3가지를 작도해보라는 것이 ‘유명한 작도의 3대 난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첫째, 주어진 원과 똑같은 넓이를 갖는 정4각형,

둘째, 주어진 정육면체의 꼭 2배가 되는 정육면체,

셋째, 주어진 각의 3등분.

할 일 없는 소피스트가 문제를 제기한지 2천 수백년이 지난 뒤에 풀리지 않는 다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그런디 이 문제를 가지고 난 할 수 있다.고 떠든 사람이 국내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사람은 신문 일간지에 광고도 내고 수학자가 만나주지 않으니까 얼마나 씩씩거렸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열이 올라서 죽지 않고 살아 있는지 모릅니다.

문제의 발단은 잘 모르겠지만 그 아마추어?인지 프로인지 한 수학자가 항시 그렇듯이 남이 해 놓은 내용에 대한 정보를 잘 모르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무신 말인고 하니...

이 작도의 문제에서 가장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자와 컴퍼스만으로 작도할 때 어떤 것까지를 작도할 수 있는 가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4칙계산과 제곱근 구하기의 5가지 연산≫ 만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은 작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와 컴퍼스만으로는 임의의 각을 3등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이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기구(각을 3등분 하는 T자 무늬 기구)를 사용하면 어떤 각이라도 3등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지금 모르는 학자들도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무조건 유명한 작도의 3대 난문에 대해서 어디서 불가능하다는 어깨 너머 소리만 듣는 페이퍼 학자가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은 이제 정확히 좌우분별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혹시 난리를 친 그 분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인생의 헛다리를 짚은 것입니다!)

직4각형 넓이와 같은 넓이의 정4각형을 만들 수 있는가?

이것이 원적 문제입니다.(위의 문제는 미적분의 지식을 동원하면 증명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원주율 π가 동원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 정도로 알고 있으면 좋습니다.

정육면체의 2배의 부피를 갖는 정육면체를 만드는 일도 계산의 조건에 따라서 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 좋습니다.

이렇듯 간단한 듯한 계산에는 짧으나 기나, 굽으나 바르나 간에 ‘길이’ 개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무엇을 ‘길이(length)’로 정하느냐의 문제는 지금 이 시각까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1차원적인 길이 문제도 이렇게 쉽지 않으니까 넓이, 체적에 관한 정의 개념도 이렇다할 통일된 개념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나오는 개념이 ‘차원’개념인데 차원정의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입니다.

차원의 개념은 공간의 개념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정도로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적 시절부터 알고 있는 공간은 유클리드 공간입니다.

공간도 경험적으로 느끼는 공간(지각공간), 물리적 공간, 수학적 공간(사영, 위상, 함수, 거리, 힐베르트, 바나흐 공간) 등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한술 더 떠서 시간을 공간의 한 개념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친숙한 공간에 이런 시간의 개념을 넣어도 말 같은 소리를 해라 하는 학자들이 없습니다.

광속이 제일 빠르다고 해놓고 광속 제곱이 또 뭐꼬? 이건 물리적 의미가 있나요? 문제를 잘 모르면 궁색한 끝에 물리적 의미 찾습니다.

물리적 의미 좋아하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사람은 물리학에 물리적 의미가 없으면 안 된다고 장황하게 설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참 쪼다 아임니까? 말귀를 몬 알아 들어요!

여하튼 계산에는 ‘길이’란 개념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1m의 길이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 얼마나 무씩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가를 함께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1m의 길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도대체 이 길이가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만들어졌는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금 쓰이고 있는 미터법은 약 200년 전인 1790년 프랑스 국민의회에서 제안 된 것입니다.

당시 프랑스는 혁명이 한창 중일 때였고, 나라안의 질서가 문란해지고 특히 계량기의 사용이 제멋대로 였습니다.

이 무렵 프랑스 국내에서 쓰인 자만도 400종이 되었다고 하니까 그 무질서 상태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의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조 말기의 우리나라는 마을마다 되가 다르고 집집마다 자가 달랐다고 했으니, 그 무질서는 이 보다 더 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는 도량형의 무질서 상태를 시정하기 위해서 혁명 후, 최초의 의회에서 이 문제가 중요한 의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도량형 통일위원회에서 길이의 기준으로 다음 3가지 안이 상정되었습니다.

첫째안, 주기가 1초인 시계의 길이

둘째안, 지구 적도의 길이

셋째안, 지구 자오선의 길이의 4,000만 분의 1

이 중에서 첫째안은 길이의 단위를 정하는데 시간이 끼어들기 때문에 좋지 않고, 둘째안은 실제로 측량을 위해서 접근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셋째안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세 번째 안은 프랑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각국이 채택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되는 것이 지구적 규모이어야 한다는 많은 위원들의 의견을 충족시킨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자오선의 결정을 위해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프랑스의 뒹케르크 사이가 선택되었으며, 1792년 6월부터 6년동안 측량이 행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코미디 같은 짓입니까? 쌩 난리를 친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의 1m의 기원입니다.

이 1m를 표시하는 원기는 백금 90%, 이리듐 10%의 합금으로 만들어졌는데 당시로서는 이론상으로 온도나 그밖의 원인으로 의해 변형이 생기는 율이 가장 작은 것이었습니다.

1m 표선의 굵기는 7~8미크론(1미크론 = 1/100만m) 쯤이나 되므로 아무리 정밀하게 측정해도 0.1미크론 정도의 오차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기는 그대로 보관해 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대조하기 위해서 밖으로 꺼내야 하는데 요때 공기에 닿아서 화학변화를 일으킬 수가 있고 그렇지 않아도 지진이나 화재 등의 사고로 손상될 우려도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원기가 없더라도 정확히 1m를 표시할 필요가 절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1960년에 다음과 같은 길이의 단위가 다시 정의 되었습니다.

크립톤 86원자가 발산하는 빛의 진공 중에서의 파장의 1650763.73배를 1m로 한다.

그 결과 측정의 정밀도는 두자리 올라갔지만 10억 분의 4m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이르러 더욱 고도의 측정 정밀도가 필요하게 되자 이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빛이 진공 중을 통과하는 속도가 일정하다는 성질을 근거로 m를 재정의하게 되었습니다.

1983년 10월 국제도량형 총회에서 의결된 것입니다.

이 새로운 정의에 의해서 측정의 정밀도는 1조분의 1까지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m'를 광속으로 정의할 때는 레이저 광선을 발사하는 장치만 갖춘다면 광속의 파장(10미크론~0.6미크론)을 측정하여 그것을 기준으로 속도를 잴 수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1m를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정밀도는 더욱더 높아지겠지만, 결코 그 오차를 0이 되게 만들 수 없습니다.

도량형의 단위를 정밀하게 정해두어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정밀하게 할 것까지는 없지 않는가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적지않습니다.

왜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야단이야. 그런 것쯤 대강대강 해두어도 되지 않는가?

도로가 약간 패인다고 해도, 보도블록이 약간 울퉁불퉁해도, 집 모양이 좀 반듯하지 않아도, 장롱 밑이 마루에 딱 붙지 않아도 그런대로 지낼 수 있지 않는가... 대충대충 살지 뭐...

그러나 이런 식으로 비행기나 미사일, 원자로를 만든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 뉴스를 들어 봤을 것입니다. 우주인 이소연씨가 탄 우주선이 지상에 내려올 때, 약간의 계산 각도가 틀리더라도 착륙지점이 수백 킬로미터를 빗나가서 위험한 순간을 맞기도 했습니다.

지금 항공기의 경우, 길이는 1천만분의 1m, 질량은 20만분의 1g, 시간은 1백만분의 1초의 정확성을 갖도록 설계되어 있어 이 정도의 기술 수준에 있지 않으면 기술개발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니, 선진기술을 이전받지도 못하는 형편입니다.

이제 꼼꼼히 따지는 것은 괜한 극성이 아니라 정보화 시대에 사는 사람의 필요불가결의 자세인 것입니다.

이러한 정밀성을 문제 삼은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고도기술 시대가 다가오기 훨씬 이전부터의 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한낱 길이 정의에 이정도이니 다른 단위들에 대한 개념 정리가 얼마나 어렵고 또 이들 간의 상관관계를 알아내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은 2010년 5월 19일 현재시각으로 현재의 기본단위 7개 중에서 어떤 단위가 어떤 이유로 해서 유도 될 수가 없어서 최소한 어느 정도의 불확도 이내로 개선될 수 없다는 것을 밝힐 수 있는 수준까지 와 있습니다.

이 수준은 이미 지금 알려져 있는 불확도보다도 개선할 수 있다는 여지를 거의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수학과 물리학에 큰 영향을 끼친 <리만>은 자연과학의 계산과 측정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거리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필요한 지식이란,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 가꿔야 합니다.

제로존 이론은 거리 개념을 빛 알갱이(빛 에너지입자) ‘하나’를 기준으로 해서 정의한 바 있습니다.

수학에는 자연수를 비롯한 정수, 유리수, 실수, 복소수를 어떤 식으로든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숫자’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수’가 아임니다.

‘숫자’는 우리가 어떤 약속을 하면 정의된 개념을 세워서 기호로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수’란 우리가 여태껏 알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의 개념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산을 하기위해서 만든 ‘수’란 셈의 개념에 조작적으로 정의를 내린 것이고 수학의 대상으로서 그 형식적 체계가 모순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가한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1 + 2 는 왜 3인가에 대한 구문론적이며, 수학적 해석에 모순이 드러나지 않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자연수는 이탈리아 수학자 <페아노>가 만든 공리체계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명제학적 논리로 쉽게 표현하면 (a + b) ⊃ c 여기서 ‘⊃’의 기호는 if... then의 뜻으로 만약~ 라면 의 뜻을 가진 논리 기호입니다.

해석은 만약 a와 b를 더하면 c라는 뜻입니다.

군더더기 말이 없고 씰데없는 자연어가 가지는 오만가지 해석을 피하자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물리학에서는 그 기둥이 되는 주춧돌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빛’을 가지고 놉니다.

그러니까 수학과 물리학은 ‘숫자’와 ‘빛’을 가지고 노는 격입니다.

제로존 이론은 숫자와 빛을 함께 가지고 놉니다.

별별 희안한 소리를 하는 소피스트의 궤변과 집합의 정의로부터 발생된 역설이 난무하자 수학의 위기가 닥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독일의 <힐베르트>가 앞장서서 너무 ‘의미론’에 치우치지 말자고 형식체계를 사용하여 모순이 생기지 않는 논변을 사용하기 위해서 무의미한 유한한 기호조합과 유한한 기호열, 구성법칙, 변환법칙 등을 두어서 엄밀한 수학의 세계를 만들자고 제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무리 역설을 피하기위해서 무미건조한 기호조합으로 형식체계를 만들더라도 수학적 해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라믄 의미론을 극복하자고 만든 동기가 수학적 해석 때문에 골치가 아프게 되었습니다.

<괴델>이 나선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습니다.

별별 방법을 다 쏟더라도 수학적 논리체계가 참이라 하더라도 그 논리체계 속에서 산술체계를 포함한 그 논리를 무모순적으로 밝힐 수 없다고 증명한 것이 바로 ‘불완전성 정리’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와 수학이 이야기하고 있는 증명 사이에는 결코 그 간격을 지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 사람들이 뚫렸다고 하는 입 땜시 생기는 언어장난이 골치가 아픈 것은 따지고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와 수학적 증명 사이의 간격을 맹그러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댓글 초입에서 이야기한 계산 문제는 우째 됩니까?

제로존이 생각한 것은 계산과 측정의 언어가 되는 단위에 대한 정의 문장 그 자체를 고유한 숫자로 번호매김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느그가 길이와 시간, 질량, 온도, 전류, 아보가드로수, 칸델라에 대해서 뭐라고 떠들든 제로존은 알 바가 없다.

아니, 참견할 자격도 위치에도 없다고 생각하여 각각의 문장에 고유한 숫자를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는 시간이 되는대로 보충설명을 할 것입니다.

명제 논리학으로 설명하면 어떤 정의된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 유한한 기호를 만들고 그 기호를 이용하여 특정한 유한한 기호열을 만듭니다.

여기서 기호는 정리나 증명을 하기위한 사전 준비된 어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리에서 출발한 첫 기호열은 공리를 근거로 한 것이고 둘째 기호열은 첫째 기호열이 가진 일정한 개념을 유전 받는 것입니다.

셋째열은 둘째열의 개념을 받고 해서 전체적으로 토톨로지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토톨로지는 그게 다 그것 아닌가 가 아니라 일정한 규칙을 지키면서 논변을 편 것으로 논리에 하자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표를 작성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리 → M1 → M2 → M3 .... Mn

제로존 이론이 이 세상의 모든 것, 모든 이론 통합적으로 이론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산술 그 자체도 수학적 대상이라는 초수학의 개념을 이어받아서 괴델이 결코 완료하지 못한 미완의 숙제를 현실적 세계에서 이룩하고자 하는 꿈이 바로 ‘빛’과 ‘숫자’입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물리학적 현실을 직시하면 그 불완전성 정리 그 자체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해답의 단서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차원의 해체이고, 단서의 머리와 꼬리가 바로 거듭 강조하고 있었던 허수에 있었던 것입니다.

초입에 이야기했지만 직선의 모임과 곡선의 모임에서 완벽한 이음새를 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원주율 파이와 같은 수학적 초월수와 함께 물리학의 상수에 있다는 점을 어렴풋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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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존 :

....

‘바다해님’을 대신하여 제로존이 지상의 저명한 수학자들을 소집한 바,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창조주께 정식 답변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조주 : 나의 답변을 듣고 싶다고라~?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진리’가 무엇인지 듣고 싶다 이거겠지?

그러나 내가 ‘진실’을 말하면 질문한 너는 혹, 받아들이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진실’이라고 이야기한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진리’로 받아들이겠나? 라고 또 물어 오겠지.

어떻게 그것이 ‘진리’가 될 수 있는가 질문한 사람에게 오히려 100% 완벽하게 설득할 수 있는 증거를 대라고 고함을 칠 것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아서 확인할 수 있는 그 정도 이상으로 그 ‘진리’에 대한 보증서를 확보하려고 노력한 대가가 바로 신뢰란 이름으로서 등장하게 된 학문으로서 수학이 나타난 거야.

보증 또는 신뢰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분야라 할 수 있지.

최소한의 신뢰 보증서이지... ‘진리’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나 흐르는 세월에 관계없이 항시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지.

가령 예를 들면 직각 삼각형에 대한 ‘진리’가 'a^2 + b^2 = c^2' 이란 기호로 나타난 거야.

직각을 서로 이웃하고 있는 두 변 길이의 각각의 제곱의 합은 나머지 한 변의 제곱과 같다는 것으로 우리가 태어나기 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변함없는 그런 ‘진리’를 말하는 것이지.

창조주 : 그러면 너희들은 이러한 ‘진리’들이 무한히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이러한 무한히 많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는 다양한 ‘진리’를 일반적으로 말해서 간단하게 설명하는 방법이 없을까?

바로 이것이 모든 수학적 근거에 대한 추론형태를 요약하는 연역법 방식이 될 것이야!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라!

‘한국 사람은 동이족이다.

어제 내가 만난 두 사람은 한국 사람이다.

그 두 사람은 동이족이다.‘

창조주 : 이 문장이 결론적으로 말하는 바, 제로존이 ‘진리’의 당체를 말해보지 않겠나?

제로존 : 전제가 ‘진리’ 또는 ‘참’ 이라면 그 두사람이 동이족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참’에 어긋나지 않고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수학에서 연역법을 도입하는 것은 확실하고 명확한 논설과 논증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경험 부스러기를 이리저리 모아다가 진리 또는 진실이라고 이야기하는 물리학을 위시한 경험 과학은 어떻게 보면 사이비 진리나 진실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의 전제를 어떻게 ‘진리’ 또는 ‘참’으로 모순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때 네델란드의 수학자 <브라우어(Brouwer)>가 끼어들었습니다.

브라우어 : 우리가 사는 세상에 ‘진리’ 또는 ‘참’이라고 한다면 ‘참’의 반대말인 ‘거짓’밖에 없을까?

말하자면 참과 거짓의 중간상태, 참이라고 할 수도 있고, 거짓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존재하지 않을까?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참이라도 할 수 없고, 거짓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데 과학의 여왕이라고 하는 수학체계는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명제를 일단 정의해두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실을 관련시켜 추론하는 절차를 거쳐서 참과 거짓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부정하거나(모순율) 참 아니면 거짓 오직 두 가지 명제만을 선택하여 제 3의 또다른 명제가 존재할 수 없다는 규칙(배중률)을 만들어 놓으면서 우리가 소위 말하는 진리를 캐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서기 1년과 서기 2년에 동시에 태어날 수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진리를 선택하는 기준에서 수학의 모순율입니다.

또 예수는 서기 1년에 태어났는가, 아니면 서기 1년이 아닌 가에 대한 단, 두 가지 경우의 질문을 물어볼 수 있습니다.

서기 1년도 아니고 그 이외의 년수도 아닌 출생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는 서기 1년에 태어났다고 전제하면 서기 1년 이외의 년수를 말하면 수학의 배중률의 법칙에 적용 되어 거짓 명제가 됩니다.

내가 수학 분야를 연구해 보니까 수학에서 대부분의 수학자들이 모순율과 배중률을 동치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유한의 계산에서 어떤 명제가 참이라 판단할 수도, 거짓이라고 판단할 수 없는 명제가 나타난단 말이지요.

자주 언급하는 이야기이지만 원주율을 표시하는 숫자가 어떤 위치에서 특정한 자릿수가 거듭 나타날 수 있는 가에 대한 참 또는 거짓에 대한 판단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엄밀한 수학에서 자유로운 배중률의 사용을 철저하게 제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로존 : 그런 경우가 명확하게 어떤 경우이지요?

브라우어 : 주로 무한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입니다.

제로존 : 수학에서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무한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인데요?

브라우어 : 그래서 수학에서 처리하는 수학적 대상이 애매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때 영국의 저명한 수학자 <하디>가 이에 결론적인 지적을 하고 나섰습니다.

하디 : 서양 장기에서 갬빗(gambit)은 유리한 공격을 시도하기 위해 졸 또는 그 이외의 말을 희생시키는 여러 가지 가능한 첫 수 중 하나입니다.

배중률은 서양 장기에서 어떠한 갬빗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갬빗입니다. 왜냐하면 장기를 두는 사람은 졸이나 다른 말을 희생물로 바치지만, 수학자는 경기 한 판 전체를 희생물로 바치기 때문입니다.

제로존 : 아~, 그러니까 ‘진리’라는 큰 한 판을 얻기 위해서 배중률에서 생긴 사소한 문제는 졸이나 다른 희생물 정도로 되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결국 문제는 ‘진리’라는 것이 우리 현실 사회에 들어와서 그 엄밀한 정의를 밝히는 것이 무슨 처음 출발하는 기준이 있어야 할텐데 이 문제는 자기 언급문제로서 유명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전에서 다른 용어를 차용해야 하고, 그 차용된 용어를 또다시 설명해야 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용어를 차용하는 무한 순환이 될 것입니다.

이때 수학자 <드 수아(F. De Sua)>가 나타나서 또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드수아 : 막연히 종교를 그 기초가 믿음이라는 요소에 의존하는 임의의 규율이며, 나타날 수 도 있는 논리의 요소와는 무관하다고 정의한다고 가정합시다.

이와 같은 정의에 따라서, 보기를 들면 물리학에서 양자 역학은 분명히 종교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수학은 그와 같은 분류가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한 엄밀한 증명을 갖고 있는 신학의 유일한 분야로서의 특유한 위치를 차지할 것입니다.

유명한 수학자 <러셀>도 빠질 수 없어 이때 쯤 나타났습니다.

러셀 : 잘 아는 바와 같이 논리적 논설에서 정의의 순환은 용납될 수 없기 때문에 정의는 어떤 점에서 멈춰야만 합니다.

따라서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원소와 관계 및 연산에 대해 명시적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그 논설의 ‘기본적인 용어’라고 우리는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논설의 문장을 논리적으로 유도하려는 노력도 있습니다.

출발을 위해 옳지 않은 순환을 피하기 위해서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문장은 완전히 증명되지 않은 상태로 남겨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문장을 그 논설의 공준, 또는 공리 또는 ‘기본적인 문장’이라 부릅니다.

제로존 : 미터법에서 길이나 시간, 질량을 정의하는 문장이 바로 ‘기본문장’, 그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수학 분야에 있어서 공준(가정) 또는 결론의 참과 거짓을 고려하지 않고 가정으로부터 결론에 이르는 논증의 정당성에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즉 우리의 논증은 형식적으로 정확하다 또는 관련된 조건 명제는 과정과 결론의 참과 거짓에 관계없이 참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 조건 명제는 반드시 항진 명제이어야 합니다.

다음 문장의 조건 명제를 살펴볼 때 참인 명제인가요? 거짓인 명제일까요?

문제 1 : 11이 소수이면 3 곱하기 2는 6이다.

문제 2 : 12가 소수이면 3 곱하기 2는 6이다.

문제 3 : 12가 소수이면 3 곱하기 2는 8이다.

문제 4 : 11이 소수이면 3 곱하기 2는 7이다.

위의 문제를 살펴볼 때 ..... 이면 .... 이다라는 형식을 모두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 이면의 앞 문장과 .... 이다의 뒤의 문장은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가령 비가 오면 출발하지 않는다. 라는 문장이 있으면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일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비가 오면 2 곱하기 3은 6이다 라는 문장이 함께 결합되어 나타날 수 있을 까요?

여기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우리는 앞 문장과 뒷 문장의 결합에 대하여 상식적으로 생각하지만 어떻게 일관적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일단 멈춥니다.

 

어제 댓글에 이어 글을 올립니다.

우리가 과학, 과학 할 때, 이 말은 신뢰, 신뢰 이 말과 같습니다.

과학의 기저가 되는 학문이 수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댓글은 수학이론, 공준집합, 논리학, 명제함수, 기호논리학, 기본적인 결합이라는 용어를 대강 기억하면서 ≪수학형식 체계에 있어서 ‘의미’보다는 ‘구조’가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먼저 수학이론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두 가지 요소가 머꼬, 우째서?”


수학이론은... 첫째, 공준(공리)집합과 둘째, 논리학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가정이라는 이름을 쫌 폼 나게 부르는 공준(공리)집합은 이론이 출발하는 기초를 형성하고 논리학은 그와 같은 기초를 정리들의 무리로 확장시키는 규칙들을 형성합니다.

아~, 그리니끼니 수학에는 논리학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됩니다.

특히 컴퓨터쟁이들은 수학보다도 논리학에 대해서 멀 쫌 알아야 좋은 프로그램을 맹글 수 있다는 겁니다.

컴퓨터를 부수고 나중에 조립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은 기술쟁이나 하는 소립니다. 이런 것을 두고 컴퓨터를 안다고 하면 곤란합니다.

특히 오늘 댓글은 컴퓨터쟁이들이 읽으면 더 좋습니다. 다음 내용은 무씩한 물리학자나 해당 전문 분야가 아닌 수학자들도 잘 모릅니다.

우쨌든... ≪수학이론 또는 수학체계는 공준들과 정리들로 형성된 명제 전체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상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문장을 외우고 있으면 인텔리 냄새가 납니다.)

공리적 방법을 대강 기술해봅니다.(관련 전문 사이트를 찾아보면 더 좋습니다.)

공리를 둘 때 상식적으로 판단하여 그럴듯한 용어(점, 선, 면 등)를 사용하여 공리를 만드는 것을 실질적 공리학이라고 합니다.

이는 대표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공리학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용어를 써서 공리를 만드는 것은 20세기의 형식적 공리학입니다.

지금 과학에서 기호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공리계를 말합니다.

현대적인 개념인 공리학에 '명제함수(propositional function)'라는 것이 도입되어 있습니다.

명제함수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봅니다.(첨 들어보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가 아는 체하면 아래의 (3)을 들고 이게 명제인가 물어보면 됩니다.

수학기초이론을 쫌 아는 물리학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른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이번 과총에서 열린 제로존 이론의 토론회에 참석한 “그게 무슨 물리적 의미가 있노?”라며 이야기한 폼새를 가진 아~덜은 잘 모를 겁니다.

(1) 봄은 계절이다.

(2) 6은 소수이다.

(3) x는 y이다.

이 문장들은 모두 같은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문장 (1), (2)는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문장 (3)은 오직 형식만을 갖고 있습니다.

명제는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문장인데, 그러고 보면 문장 (1), (2)는 명제입니다.

(1)은 참 명제 이고, (2)는 거짓 명제입니다.

그러나 문장(3)은 명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명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 없으므로 참일 수도 없고, 거짓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장 (3)은 명제는 아니지만 틀림없이 명제의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문장을 ‘명제함수’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형식 ‘x는 y이다’의 변수 x와 y에 명확한 의미를 갖는 용어를 대입하면 명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입된 용어가 이 명제함수를 참으로 입증하면 참인 명제가 되고, 대입된 용어가 이 명제함수를 거짓으로 입증하면 거짓명제가 됩니다.

물론 x와 y에 대입된 어떤 용어는 이 명제함수를 아주 의미 없는 문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여기서 참고로 제로존 이론이 DSJ에 제출된 논문에서 s = 1 이라는 가정이 있는데, 기호와 등호 숫자로 이루어진 형식은 명백히 명제입니다.

즉 내용이 없는 명제함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s = second’ 로 논문 내용 중에서 이미 표현해 두고 있기 때문에 기호 ‘s’ 는 미터법에서 정의된 내용을 지시하는 ‘기호(symbol)’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미터법에서 정한 기본 단위인 시간의 정의 그 자체를 ‘1’로 두고 있다”는 공준 명제입니다.

그런데 공준의 성립과 <기호논리학>의 문턱에도 가지 못한 사람, 가령 한국표준연구원에서 “시간의 정의를 제멋대로 정의한다”고 하거나, “이것의 물리적 의미가 무엇이냐”고 용감하고 씩씩한 쌩무식으로 묻습니다!(입 다물고 있으면 무씩한 것이 폭로가 나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DSJ에 실린 제로존 이론은 언뜻 보면 쉬운 것 같아도 해당 전문가가 아니면 그 형식체계나 해석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s = second, h = plank constant .... 이라는 기술이 무슨 형식적 의미를 두고 있는지 잘 모른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현대 공리학의 체계입니다.(기회가 있을 때 이야기하겠지만, 순수수학과 추상수학의 차이가 이 공준의 체계에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위에서 고려한 형식은 두 개의 변수를 갖는 명제함수이며, 이 두 변수의 값을 대입했을 때 이 명제함수를 참으로 입증하는 값은 당연히 무한히 많이 존재합니다.

명제함수에서 변수를 x, y,....와 같은 기호로 나타낼 필요는 없으며, 통상적인 단어로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상적인 단어로 이루어진 어떤 문장이 그 단어들이 이해되는 감각에 비추어 볼 때 아무런 의미없이 논설에 나타나면 그 논설에서 그 문장은 명제라기보다도 실제로 명제함수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용어를 명백히 하기 위해서 모호하거나 정의되지 않는 용어들은 x, y, .... 와 같은 기호로 대체시키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통상적인 자연언어를 써서 논리학에 대한 현대적인 고찰을 논의하는 것은 거의 가망성이 없는 작업이 될 수 있습니다.

특정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엄밀하고 과학적인 취급이 요구되기 때문에 기호적인 언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기호에 대한 표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이어진 취급방법을 <기호논리학> 또는 <수리논리학>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수학자 <괴델>을 수학자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이론 수학자라기보다도 기호를 가지고 연구를 하는 ‘수리논리학자’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이점도 이 기회에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머 그게 그거지만.....

기호논리학이 바람직함을 진지하게 고려한 최초의 사람은 독일의 수학자 <라이프니츠>입니다.

추론 과정의 길잡이를 위한 경제적이고 실현가능한 기호체계로 표현된 보편적이고 과학적인 언어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제로존 블로그에서 <라이프니츠>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보편문법으로 구상한 아이디어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제로존 이론으로 탄생했다는 것을 이쯤에서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괴델>도 <라이프니츠>의 생각을 맘에 두고 있었습니다.)

기호논리학의 현대적인 연구는 제로존 블로그에서 자주 언급된 독일 논리학자 <프레게>입니다.

이분이 숫자 ‘1’, ‘집합’, ‘단위’라는 개념을 가지고 한권의 책을 썼다는 것을 자주 언급한 바 있습니다.

<프레게>가 ‘집합(set)’을 정의하다가 한 방 얻어맞게 한 학자가 그 유명한 수학자<러셀>입니다.

우리는 <러셀>의 역설을 교양과학에서 자주 듣습니다.

<러셀>은 ‘집합’의 정의에 대해서 기술하다가 역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역설을 피하기 위해서 물리학의 차원처럼 계층 구조를 복잡하게 설명한 학자입니다.(제 1술어계, 제 2술어계 등)

엄청나게 복잡한 수학이야기를 <화이트 헤더>와 함께 썼는데, 주위 학자들이 읽지 않는 수학책(수학의 원리) 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1+1=2’ 이기 우째서 이렇게 되노? 하고 한 권의 책을 썼답니다.

나중에 자연수의 산술계산의 공리계에 제대로 기술하여 성공한 사람이 수학자 <페아노>입니다.

<러셀>과 <화이트 헤더>의 논리가 너무 복잡하고 알아주지도 않아서 쫌 불운한 학자들입니다.

그러나 요즘 컴퓨터 과학을 하는 학자들은 이 둘의 수학자가 쓴 저서를 열심히 보고 있답니다.

또, 기호논리학의 발전에 엄청스럽게 기여하기도 했지요.

여하튼 논리 계산을 사용해서 모든 수학을 표현하고자 하는 소망을 편 사람은 그 유명한 자연수 공리계를 만든 <페아노>입니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수학자 <괴델>은 <러셀>의 역설을 파악하고 <페아노> 공리를 이용해 묵은 사람입니다.

자주 블로그에서 나오고 있는 수학자 <힐베르트>는 수학의 모순성 없음을 입증 가능하도록 기호논리학을 사용하여 수학을 건설하자고 시도한 사람입니다.

이번에는 저번 댓글과 관련하여 <화이트 헤더>와 <러셀>에 의해 개발된 소위 명제계산(propositional calculus)에 대하여 기호논리학 개념을 이해하는 순서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시간에 내어준 문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기호논리학에서는 명제들의 다양한 기본적인 결합을 적절한 기호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5가지 기호를 도입하는데 이 설명부터 먼저 들어야 됩니다.

첫 번째 기호 p ∧ q -----
읽는 법 : (p 이고 q 이다.)라 읽는다.
해석 : p와 q가 동시에 모두 참일 때 그리고 이때에만 ‘참’인 명제를 나타낸다. 이런 꼴의 명제를 합접(conjunction) 명제라 한다.

두 번째 기호 p ∨ q -----
읽는 법 : (p 이거나 q 이다.)라 읽는다.
해석 : 두 명제 p와 q 중 적어도 하나가 참일 때, 그리고 이때에만 ‘참’인 명제를 나타낸다. 이런 꼴의 명제를 이접(disjunction) 명제라 한다.

세 번째 기호 p → q -----
읽는 법 : (p 이면 q 이다)라 읽는다.
해석 : 두 명제 중 p가 참이고 q가 거짓일 때, 그리고 이때에만 ‘거짓’인 명제를 나타낸다. 이런 꼴의 명제를 조건 또는 함의(implication) 명제라 한다.

네 번째 기호 p ↔ q ----
읽는 법 : (p 이기 위한 필요 충분 조건은 q 이다.)라 읽는다.
해석 : p와 q가 동시에 모두 ‘참’이거나 모두 ‘거짓’일 때, 그리고 이때에만 ‘참’인 명제를 나타낸다. 이런 꼴의 명제를 동치(equivalence) 명제라 한다.

다섯 번째 기호 ~p ----
읽는 법 : (p가 아니다.)라고 읽는다.
해석 : p의 부정 또는 모순을 나타낸다. 즉 ~p은 p가 거짓일 때 참이고, p가 참일 때 거짓인 명제를 나타낸다. 이런 꼴의 명제를 부정(negation) 명제라 한다.

위의 다섯가지 합접, 이접, 함의(조건), 동치, 부정에 대한 학자들마다의 기호는 표준화 되어 있지 않고 조금씩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자, 그러면 5월 24일 제시된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정해 봅니다.

문제 1 : 11이 소수이면...(참) 3 곱하기 2는 6이다...(참)
참, 참 이므로 따라서 참 명제입니다.

문제 2 : 12가 소수이면...(거짓) 3 곱하기 2는 6이다....(참)
거짓, 참이므로 따라서 참 명제입니다.
여기서 헤까닥~ 잘 모르는 사람은 세 번째 기호에 대한 해석을 다시 읽어보기 바랍니다.

문제 3 : 12가 소수이면...(거짓) 3 곱하기 2는 8이다...(거짓)
따라서 거짓, 거짓이므로 참 명제입니다.

문제 4 : 11이 소수이면...(참) 3 곱하기 2는 7이다...(거짓)
참, 거짓이므로 따라서 딱 요기서는 거짓 명제가 됩니다!

무신 이야긴가 하면 기호논리학에서는 명제의 의미를 일절 생각하지 않고 단지 명제의 진리 값만을 고려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 결과들은 예상할 수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즉 가정과 결론 또는 원인과 결과에 조건 명제는 이것을 이루고 있는 명제들의 참과 거짓의
하나 하나의 ‘의미(meaning)’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조(structure)’에 의존한다는 점을 깊이 깊이 명심해야합니다.

그래서 참, 거짓 명제를 판단하기 위해서 기호해석과 정의에 따라서 진리표를 만듭니다.(컴퓨터의 논리 설계 때 중요하지요.)

왜 이런 복잡한 기호, 구조, 해석을 일일이 정하면서 두면서 수학형식을 정하느냐 하면 아마도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그 노무 말, 말, 말의 해석 때문에 많은 논쟁과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이번에 천안함 사태에서 물에서 건져올린 결정적인 증거라고 국방부 합동조사단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어뢰 추진체에 머? 1번이라고 써 놓았는데, 이 1번의 해석을 가지고 얼마나 논쟁이 많습니까?

“아, 북한 놈들이 자주 1호, 2호 쓰는데, 이번에는 왜 1번을 쓰느냐” 하는 논쟁입니다.

이것은 이 자체 사실만을 두고 볼 때 엄밀한 수학적 세계에서 드러내는 결정적인 증명(proof)을 토대로 한 결정적인 물리학적 증거(evidence)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함수나 함미의 상태 등 여러 가지 정황 증거의 하나로 보는 것이지요.

제로존이 생각하기에는 사실 건져 올린 어뢰의 추진체 부분에 결정적인 증거라고 내놓은 유성 매직 글씨 기호나 설계 도면보다는 침몰한 날짜와 수집해서 올린 날짜 사이의 추진체의 화학적 부식 변화 과정(염수에 노출된 정도)의 분석에서 대략 1 ~ 2 개월 이내로 판정되면 북한 측도 꼼짝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혹시 우리 쪽에서 수작을 부린 것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쫌 아쉽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신문기사에 보면 ‘과학적’, ‘객관적’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과학이라는 용어의 개념에 객관적이라는 개념이 이미 함의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말하는 구태여 ‘객관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정부나 다른 국가기관들을 설득할 수 있는 실질적 증거(proof) 이외에 다양하게 수집된 정황 증거와 관련된 제반 논설이나 해석에 관한 사항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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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존 :

....

양자역학을 탄생시키고 양자론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의 중심 인물인 <보어>는 ‘음양사상’을 가진 ‘태극마크’를 자신의 문장으로 애지중지했습니다.

<데이비드 봄>은 인도의 성자라고도 불리는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와 오랜 교우를 가진 바 있고, 파동역학으로 유명한 <슈뢰딩거>는 ‘우파니샤드 철학’을 강의하곤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인생 후반에 그야말로 신비주의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가진 바 있습니다.

과학자가 종교에 관한 자기 생각도 학문이 깊어질수록 다양하고 섬세하며 질적으로 성장합니다.

처음엔 종교에 대해서 딱딱한 무신론자가 되었다가 불가지론 쪽으로 흐르는 듯하다가 어떤 상황에서 극적으로 변화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처참한 살육이 벌어지는 전쟁터에서는 누구나 예외없이 무신론을 버리기도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우째 이런 일이 생깁니까?”

“쿠오바디스!”

내가 알기로는 나로호 발사까지 근 8년간 고생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밤을 지새우고 연구했던 항우연 관계자들은 많은 경험을 얻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쉬운 말로 한술밥에 배부르지 않다는 속담이 그것입니다.

요즘 생활이 예전 연구생활 속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처음에 예사롭게 보았던 용어나 문장들이 요즘 무척 새롭게 다가옵니다.

이번 본글은 책에서 오래전에 본적이 있는데 얼마 전에 다시 그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현대 과학기술의 구체적인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 가 하나하나 나름대로 챙기면서 얼마 전에 ‘집합’의 새로운 정의에 대해서 번뜩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다음 문제를 생각해 봅니다.

덧셈과 곱셈의 경우가 일치하는 경우입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tanα + tanβ + tanγ = tanα * tanβ * tanγ

이런 문제를 생각하면서 모든 과학의 기초개념이 되는 수학의 계산이 발생하는 진원지를 살펴보게 된 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수학에서 ‘집합(set)’이라는 용어를 생각하는 순간, 그 찰나 모든 것이 비틀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집합의 정의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데 갑자기 벼락치 듯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입니다.

그동안 수학자를 위시한 심오한 과학사상을 이야기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아구가 맞아 떨어지는 것을 살펴보게 되었고, 이제 그냥 간과했던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다가온 것입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얼마나 놀라움으로 다가왔는지 모릅니다.

매우 조심스러운 용어이다 보니 여기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논쟁이 벌어질 것 같아서 추후 종교와 철학, 기호논리학과 함께 전체적인 접근(holistic approach)을 가진 분에게 좋은 토론 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로존 이론의 후속논문에 게재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집합’이란 수학 용어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본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집합’의 잘 알려진 사전적 일반적인 정의를 살펴봅니다.

수학용어의 하나로 어떤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요소의 모임을 말하며, 그 요소를 집합의 원소라고 한다. 어떤 원소가 그 집합에 들어 있는지, 들어 있지 않은지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하고, 집합에서 취한 두 원소가 서로 같은지, 같지 않은지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본글을 올리면서 문장 하나하나에 ‘집합’이란 용어를 투사해 보았습니다.

장회익 교수님은 본글의 논문을 작성할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구체적인 모임’으로서 ‘집합’에 대해서 다양한 생각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대로 ‘집합’의 용어를 간파하게 되면 양자라는 물리학적 용어도 쉽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됩니다.

양자역학에 관한 이론이 완성되기 1년 전인 1926년, <길버트 뉴턴 루이스>라는 사람이 ‘빛알(photon)’이라는 용어를 도입한 바 있습니다.

보통 광자라고 하지만 한국 물리학회의 물리학 용어집에는 한글 용어인 ‘빛알’로 번역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빛알’을 빛 입자로 부르는 ‘광양자’로 표현했습니다.

플랑크는 흑채에서 방출되는 빛의 에너지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양자’라는 용어를 도입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대단히 주목할 만할 내용이 있습니다.

<플랑크>의 양자관념은 ≪빛 자체에 적용된 것이 아니라≫ 그 대신 흑채 공동 내부의 ‘공명체들(resonators)’에 적용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빛 자체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우리는 쉽게 빛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빛에 대한 근본적인 해석을 내 놓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빛에 대해서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참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 그러면 빛과 계산의 전제가 되는 개념으로서 ‘집합’이라는 용어가 어떤 관계가 있을 까요?

그러고 보니 제로존 이론이 숫자 ‘1’이 빛 알갱이 하나라는 해석이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를 참으로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어떻게 해서 그때 이런 생각을 했는지 참으로 신기?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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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님의 질문 내용 중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하고, 미래가 결정되어 있는 가에 대한 것은 조금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무슨 말이냐면 우리에게 익숙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용어부터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3시제를 표현하는데 관련된 시간(time)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지금 이 시점 또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꼬집어봐서 아프면 현실이 틀림 없다고요?

잠깐 눈을 붙이면 그 눈 붙인 시간에도 현실이란 인식이 작용할까요?

깨어나 봐야 압니다.

여하튼 꿈과 현실에 대한 구별은 쉽지 않습니다.

물리학에서는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일(work)과 관련된 에너지와 달리 ‘열’은 적어도 두 계에 있어서 온도 차가 있는 환경에서 에너지 척도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에너지라는 개념은 보통 역학적인 관점에서 일(work)을 고려하는 에너지 척도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에너지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라고 정의하는 것은 바로 역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work)은 힘 곱하기 일정한 구간으로서 거리 개념이 있지만 ‘열’ 개념이 도입되는 열역학에서는 반드시 두 계 간의 경로에 관계없이 ‘온도차’라는 물리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물리학에서는 어떤 물체가 담을 수 있는 열량은 계량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열 그 자체를 물질의 자체속성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A라는 물질계가 열량 Q를 얻고 난 후, A와 접촉하고 있는 B라는 물질계가 온도가 더 낮아서 열량 Q를 전달 받았다면 아래와 같은 열과 일(work)에 관한 수식이 표현됩니다.

Q_A - Q_B = ∆U = Q - W

이 수식은 열(Q)이 일(W)로 전환하는 데는 모든 열(Q)이 모든 일(W)로 100% 전환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일은 몽땅 100% 열로 전환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의 수식에서 ∆U는 내부 에너지의 변화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경험법칙에 의한 것으로 에너지보존법칙을 제 1법칙이라고 한데 비해서 ‘에너지 제 2법칙’이라고 합니다.

이 제 2법칙은 사실 추상적이거나 관념적 원리로 정확하게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이해하기 힘들지만 응용적인 곳에 사용하면 대단히 실용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입니다.

열역학법칙은 그 기본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관찰할 수 있는 거시세상을 표현하여 부피 V, 온도 K, 압력 P, 열량 Q라는 물리량을 사용하여 상태함수를 구축하여 물질의 가장 기본적인 그 무엇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열역학은 그 자체학문으로 의미가 없고, 통계학과 함께 사용합니다.

고전 통계학은 미시적인 원자의 존재를 미리 가정해서 출발한 분야입니다.

그 다음 그 원자들의 집단적인 물리적 법칙을 열역학 법칙을 이용하여 수립합니다.

따라서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통계학은 그냥 단순 통계학이 아니라 역학의 일부로서 통계역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를 ‘양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양자’라는 용어는 모든 빛을 흡수하는 이상적인 계, 이를테면 흑체(Black Body)라는 모델을 이용해서 나온 것입니다.

뜨거운 그 무엇으로 가득 찬 흑체내부는 밖으로 뜨거운 그 무엇이라는 에너지를 밖으로 방출합니다.

이것을 ‘흑체복사’라고 합니다.

이 흑체복사를 오랫동안 연구한 독일 물리학자 <플랑크>가 열역학 법칙과 통계역학을 이용하여 실험실 데이터와 요리조리 비교한 끝에 마음에 썩 들지 않지만 그 유명한 ‘양자법칙’을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E = nhv(여기서 h는 플랑크상수, v는 진동수를 이야기합니다.)

이때가 1900년입니다.

여기서 양자란 hv 만큼의 양을 말하는데, n = 0, 1, 2, 3, .... 사람을 셀 때 한 사람, 두 사람 하듯이 가장 작은 단위인 사람은 결코 쪼갤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뭉치 hv는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단위라는 것입니다.

연필만을 만들어서 무역하는 사람은 연필을 일정한 개수로 묶은 것을 ‘타스’라는 단위로 사용할 것입니다.

그런데 연필에 있어서는 타스라는 단위보다도 ‘개’라는 단위가 더 작은 단위의 기본적 단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단위 개념을 이해하면 물리학에서 계산에 사용하는 단위를 살펴본 것이 바로 개, 명, 타스라는 단위 대신에 ‘양자’라는 단위입니다.

개는 연필이나 구슬 등을 세는데 가장 작은 단위가 될 것이고, 명은 사람의 숫자를 세는데 가장 작은 단위가 될 것이고, 타스는 연필 12자루를 하나의 묶음으로 생각할 때 가장 작은 단위가 될 것입니다.

단위를 생각할 때 가장 작다든지, 가장 적다든지 할 때 이 단위는 바로 기본 단위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양자’는 겉으로 고상하고 그럴듯한 이름으로 보여도 ‘에너지’라는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품목을 세는데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되는 셈입니다!

따라서 ‘양자’는 어떤 작은 단위로 사용할까요? 바로 ‘에너지’를 하나, 둘 세는 단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물리학에서 양자라고 하면 바로 ‘에너지 양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연필, 구슬, 사람 등에 대한 물질 대상은 이해하기 쉬운데, 에너지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 또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에너지라는 용어만 나오면 물리학자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압니까?

얄마~! 그냥 에너지라는게 있다고 생각해! 별걸 다 따지고 있네~!(물리학 공부 좀 하고 따져 보던지...)

에너지에 대해서 어떤 양을 계산 할 때, 역학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열역학, 전자기학, 통계학, 등 모든 분야를 고려하여 설명할 수 있는 정의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보통의 물리학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파인만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에너지의 정의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개념이 되고 있는 용어가 수학에서 바로 ‘집합’이라는 용어입니다.

무엇인가 셈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집합’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틈을 타서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에너지를 ‘氣’라고 하는 표현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따지기 전에 아까 위의 수식에서 설명한 바 있는데, ‘일(work)’보다도 ‘열’이라는 개념이 더 포괄적이라는 것을 우선 이해할 것입니다.

또 ‘열’보다도 ‘에너지’라는 개념이 더 포괄적인 것으로 일단 이해할 것입니다.

사람보다도 동물이라는 개념이 더 포괄적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리고 플랑크가 흑체라는 모델의 내부에서 얻은 그 무엇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에너지 복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구에서 따뜻한 기온을 느끼는 것은 태양에서 오는 태양열로 인한 태양열의 에너지 복사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펴기 위해서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포함한 많은 기초학습을 준비한 바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물질의 거동과 ‘에너지’라는 복사(물질 복사라는 말은 없습니다.)에 관해서 상당히 개념의 혼란을 느낀 바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의 혼란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혼란을 가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과학은 무엇보다도 먼저 <용어의 정련에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새삼 떠오르게 합니다.

여기까지 간략히 핵심을 소개하면 무엇이든지 물질은 그 이름을 붙여서 하나, 둘, ... 셀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자 1개, 중성자 1개, 책상 1개, 사람 한명, 아니, 1개라고 해도 좋습니다.

보이는 대상에 대해서는 이렇듯 숫자를 부여하여 셀 수 있는데,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셀 수 있을까요?

물리학에서는 물질 입자로서 보이든 파동으로서 보이지 않든, 그 모든 것의 셈하는 대상으로서 기본적인 품목이 ‘에너지’라는 품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에너지 양자’라는 단위를 더 응용해 보면 자석이라는 성질을 가진 어떤 물리적 양의 집합을 ‘자석 양자’라고 합니다.

자석에 양자 단위를 붙인다면 전기에도 붙일 수 있습니다.

‘전기 양자’라고 할 수 있겠군요.
 
현대물리학을 이끈 최대의 공헌이 된 분야가 바로 ‘양자전기역학 量子電氣力學, quantum electrodynamics’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줄여서 ‘QED’라고 합니다.

여유가 있는 분들은 양자전기역학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전기는 쉽게 이야기해서 +, - 의 전기적 성질을 띠는 전하의 흐름의 전류라 하는 것을 통칭하는 것입니다.

아주 미세한 전기를 띠는 물질입자는 ‘전자’입니다.

전자 한 개는 기본 전하량(elementary charge)이라는 하나의 전하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하는 어디서 갑자기 튀어 나온 것일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그냥 현상론적으로 존재한다는 것만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전자보다도 약 1,830배 무거운 질량을 가진 양성자나 중성자도 하나의 전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물질의 고유한 물리적 속성의 하나를 설명하는데 ‘전하’라든가 ‘질량’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전하나 질량의 개념을 떠올리면 바로 전자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그러면 전자는 어디서 유래하는가를 따지면 ‘에너지가 있었다’라는 가정을 미리 두면서 빛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듣게 됩니다.

또 그러면 빛은 어디서 유래했는가를 따지게 됩니다.

여하튼 지각할 수 있는 중력은 전하량에 관계없이 질량만 가지면 자기들끼리 중력법칙이 성립합니다.

전자기력은 질량에 관계없이 전하만 가지면 자기들끼리 전자기력법칙이 성립합니다.

곧, 전하를 표현하는 ‘쿨롱’이라는 물리량을 사용하는 ‘쿨롱법칙’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무엇인가 기원을 살피는데 너무 복잡해지기 시작하여 무엇인가를 포괄적으로 세기(counting) 위해서 에너지라는 품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잘 알다시피 제로존 이론은 에너지 대신에 동서양, 우리가 오래전부터 익숙한 빛을 에너지라는 품목 대신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로존 이론에서 과학의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계량적 개념을 부여하기 위해서인데, 빛 하나 하나를 헤아리기 쉽게 하기 위해서 ‘빛알갱이’라고 한 것입니다.

빛이 입자든 파동이든 빛 알갱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눈에 보이는 물질을 표현하는 속성으로서 질량개념과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의 속성으로서 에너지가 겉으로 다르게 부르지만 사실은 하나의 똑같은 속성으로 보고 표현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E = mc^2, ‘에너지 질량 등가원리’입니다.

제로존 이론은 <모든 것의 계량적 단위>에 기본 품목을 설정한 것이 ‘빛 알갱이’입니다.

이 ‘빛 알갱이’로 지금까지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는 에너지로 표현하는 힘, 거리라는 물리량 이외에도 열역학에 사용하는 물리량, 부피, 온도, 압력, 열량이나, 통계역학에 사용하는 미시입자들에 사용하는 모든 물리량 등을 계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을 정리한 것이 바로 제로존 이론의 가정, 또는 공준이 된 것입니다.

여유가 있으면 E = mc^2에서 왜 하필 c^2인가를 설명할 것입니다.

이 수식에는 물리학자들이 말하듯이 수식의 양변 단위를 단순히 맞추기 위한 방편을 넘어선 심오한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물리학 용어에 새로이 생각할 점이 많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시간’이라는 물리량입니다.

이 ‘시간’이라는 물리량을 더욱 쉽게 이야기한 것이 이 또한 빛 알갱이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미래라는 용어조차도 시간이라는 개념에서 나왔기 때문에 무엇이 미래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June님’이 불쑥 질문한 내용이지만 아주 흥미롭고 재미난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결정된 것인가?에 대해서 질문하기 보다도 도대체 미래란 무얼 미래라고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합니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가?라는 질문 속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래란 무엇을 미래라고 하는가?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미래뿐만 아니라 ‘하나’라도 결정되어질 수 있는 내용이 있는가?

참으로 큰 담론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담론에 답하기 위해서 과학이라는 학문에 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바도 있지만 과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 자연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럴듯한 논리체계를 구축하는 분야입니다.

이 논리체계를 구축한다는 의미가 깔고 있는 제 1 복선은 바로 ‘믿음주기’입니다.

그 믿음주기의 형식적 요건으로 바로 과학이론에서는 현실과는 다르지만 논리를 유연하게 구축하기 위해서 모델을 만듭니다.

이 모델이 도저히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인 경험의 결과로 확인하고 유추하는데 하나의 실용적인 방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모델의 가장 드라마틱한 예로 열역학에서 기본적인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상기체입니다.

여러분들은 인터넷을 사용하여 이상기체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완존히 소설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 추상적인 모델을 사용하면 현실적 경험 테두리 내에서 아주 훌륭하게 실험적 사실과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열역학에서 사용한 이 이상적인 기체라는 모델은 역학의 한 분야로서 통계역학과 잘 버무려서 우리가 직접 관찰하고 확인할 수 있는 현실적 실태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기본적인 일반역학을 설명하는데 사용하는 단위는 바로 길이단위 m, 질량단위 kg, 시간단위 s 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3대 역학 단위라고 하지요.

이런 점을 이해하면서 일반적인 역학과 달리 열역학이 관심을 가진 분야가 다르다는 것을 이미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열역학에서는 기본단위로서 온도단위 K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열역학에서 흑체복사를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플랑크가 양자이론을 발견할 때 사용한 이 모델에서 흑체의 내부에서 외부로 에너지 복사가 되는 주체가 그의 논문에서 공명체라고 한 것은 바로 전자의 파동적 성격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열역학은 통계역학과 쌍두마차식이라고 이야기했지요.
 
여기에서 전자의 입자와 파동에 관한 성질 및 온도와 에너지에 관련된 볼츠만 상수, 아보가드로 수에 대한 개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로존 이론에서 일관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 자연에 대한 설명을 묘사하는 형식체계를 고려한 것이 바로 제로존 이론의 공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곧, 수학에서 계산의 기초로 출발하고 있는 집합개념에서 현재 이 시각까지 가장 치열한 개념이 되고 있는 ‘하나’와 ‘집합’을 연계하되 ‘단위’와 ‘상수’의 개념을 함의하고 있는 물리적 원리나 법칙을 고려한 내용이 그것입니다.

결코 적지 않은 세월동안 유럽의 DSJ측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논문을 게재하는 결정이 있을 때까지 DSJ측의 아주 전문적인 세부사항을 수정해 주었습니다.

당연히 저자들이 의도하는 내용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로존 이론이 정식으로 이 세상에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 3월의 일입니다.

Q[s] = Q[c] = Q[h] = Q[e/me] = Q[k] = Q[NA] = Q[b] =1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받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받으면서 저절로 눈물이 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외쳤습니다.

대!~한!~민!~국! 자짜짝 ~ 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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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9, 2009

 

Your paper expression of all SI Units by one Parameter with Acceptable Uncertainties has been accepted for publication in the Data Science Journal. Because the paper has been edited for readability and format, we require your acceptance of these changes. Please read over the attached revision carefully to make sure that nothing of the meaning has been changed. Upon receipt of your acceptance, we will send you a License to Publish, which must be agreed to before publication.

 

Thank you.

 

Ms. Diane Smith


Editorial Assistant
Data Science Journal
Jrum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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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존 :

......

먼저, CODATA의 DSJ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이 분야에 대단히 ‘전문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겠다는 점입니다.

왜 이런 말을 쓰느냐면 제로존이 여러번 언급하다시피 단위계를 전문적으로 전공하고 있는 분은 물리학의 다양한 분야 중에 논문을 내는 분야는 그 논문의 SCOPE(해당분야)를 우선 참조합니다.

단위계에 관련하여 논문을 제출하려고 하면 SCOPE가 물리상수 분야(physical constants)입니다.

scope가 별도의 units로 나와 있지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physical constants 쪽으로 논문을 제출하면 저널의 편집 관계자가 파악하기로 이론 물리학자 중에서 units를 잘 알고 있다고 고려되는 관련 학자들에게 논문을 심사의뢰 합니다.

왜 이런 과정을 밟느냐면 관련 이론 물리학자는 기본적인 수학 이론을 이수했기 때문에 논문의 형식체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댓글에서 ‘물리학은 수학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래서 “이기 무슨 물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는 간혹 쌩뚱 맞은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쌩뚱 맞다?

“물리학이 수학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물리학과 관련된 논문을 볼 때 전가의 보도처럼 함부로 쓰는 경향이 있는데, 물리학은 수학이라는 수단을 써서 표현하기 때문에 이런 말은 비 전공분야나 일반인이나 쓰는 소리이지 이론 물리학을 연구한 사람들은 감히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꼭 이런 말을 쓸 때는 공준과 유도과정, 그리고 결론에 이르렀을 때 이론적 계산이 아닌 ≪현실 실제의 측정 내용≫과 괴리가 있을 때 한에서 이런 말을 씁니다.

예를 들어서 서론, 본론과 이어서 논문의 결론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10차원 이라든지 11차원으로 나온다든지... 그 다음 블랙홀에 대해서 수학적 이론을 써서 나온 결론이 해석하여 구체적으로 언급될 때나 이런 이야기를 씁니다.

또 무신 이야기를 하느냐면 물리학에서 ‘질점역학’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질점을 사전적 정의를 알아봅니다.

질점 [質點] : 물체의 크기를 무시하고 질량이 모여 있다고 보는 점. 이 점으로 물체의 위치나 운동을 표시할 수 있으며, 역학 원리 및 모든 법칙의 기초가 된다.

여기서 물체의 크기를 무시하고 질량이 모여 있다고 보는 점이 무슨 물리적 의미가 있겠습니까?

크기는 없는데 질량이 있다는 말이 도대체 이해가 됩니까?

그런데 물리학은 엄연히 자연스럽게 이런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현대 물리학의 대들보가 되는 표준 이론에서도 가령 소립자 물리학에서 나오는 소립자들은 그 기원을 따져보면 모두 질점역학에서 근거한 것들입니다.

현재의 물리학 해석에 의하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자도 크기가 없는데도 질량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곧 어떤 질점에 이러한 질량이 고도로 집적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관측상태마다 상대적으로 해석하여 진동수가 많으면(파장이 짧으면) 입자성으로 드러날 확률이 높고 진동수가 적으면(파장이 길면) 파동성으로 드러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끈 이론 등에서는 이런 해석이 애매하여 질점역학을 무시하고 소립자가 ‘점’이 아닌 1차원의 ‘끈’이 운동하는 여러 가지 타입을 두고 소립자를 규명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실~실~ 하느냐면 공준에서 나오는 용어를 살펴보면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정의가 없는 무정의 용어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점, 선, 면을 설명할 때 위치, 크기, 폭 등) 최소한 어떤 기호를 논문 초입에 사용할 때는 정의를 이미 사용하고 있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씰데 없는 용어에 대한 물리적 의미나 해석은 일체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사람들 중에 순수 수학자나 응용 수학자, 이론 물리학자들은 거의 100% 없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물리학자들 중에서 주로 응용 물리학자들이 이런 말을 끄집어냅니다!

현재 과학에서 논문의 형식 체계는 거의 판에 박힌 듯이 일정하여 루틴합니다.

그리고 논문에 반드시 필요한 전문용어를 쓸 때는 예전에 잘 정의된 기본용어를 이용하여 사용합니다.

그러니 그런 전문용어에 대해서 별도로 해석하거나 의미를 붙이는 일이 없습니다.

특별히 자기만 아는 전문용어를 낼 때는 처음부터 ‘기본용어’라고 설명하고 나름대로의 정의 내용을 붙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논문을 살펴보면 제로존 이론을 보면 특별한 기본용어가 업심니다.

기래서 제로존이 지 멋대로 기호를 쓰고 해석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간혹, 잘 알려진 용어들을 함께 쓸 때 참고적인 해석을 붙일 따름입니다.

예를 들어 제로존 논문에서 'Q[]'라는 기호를 쓸 때 설명을 부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외에는 절대적이니, 상대적이니 이런 용어나 해석을 안 씁니다.

CODATA의 DSJ논문을 심사한 물리학자들은 이론 물리학자들입니다.

그래서 용어에 대한 의미나 해석을 질문하는 경우가 일체 없습니다.

제로존 이론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s = 1, 299792458m/s = 1

이런 수식에 대해서 심사자는 일체의 멘트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표준연의 구박사는 위의 이런 표현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정말 어처구니 없는 페이퍼 학자 같은 소리를 합니다.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면 화가 부글부글 끓어 오릅니다.

이건 논쟁이 될 거리조차 안 됩니다!

이런 말을 쓸 때 우리나라 학자들 수준이 이 정도인가 하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이런 질문은 수학이나 물리학의 형식체계를 모르는 사람에게나 동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본 논문의 심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심사하는 것은 논문의 형식체계와 유도 과정만을 보는 것이며, 유도 과정의 결과가 현재 잘 구축되어 있는 실험데이터와의 정합성을 따져 보는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특별히 하자가 없으면 공준의 내용이 ‘물리적 의미가 있다’라고 판단하고, 이때에 공준에 쓰인 기호들에 대해서 해석을 붙이는 것입니다.

저자들도 논문의 결론 후반부에 해석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씰데 없이 유도 과정에서 의미론을 넣으면 논쟁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준의 초입이나 유도과정에는 씰데 없는 의미나 해석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보니까 논문에 쓰인 그 기호들이 요렇게 해석해도 되고, 조렇게 해석해도 될 수 있다고 의미를 부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바람님이 말한 것처럼 제로존 이론은 광속 c가 광자와 관련되어 해석된 것이 맞습니다.

아니, 광속 c가 광자라니?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로존 이론에서 나온 무차원수는 광자의 개수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논문의 결정적인 ‘하자’와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고, 부루님이 게시글을 올린 곳에서도 논문은 기호가 관련된 유도과정에 대한 형식만을 고려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현재 수학이나 물리학은 거의 의미가 없다기 보다도 기호가 정의한 그대로를 사용하여 숫자와 기호만으로 추론하고 논증하는 형식체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기호논리학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수학의 경우 별도의 기호를 쓸 때는 이미 잘 정의된 기호 등을 죄다 동원하여 설명하기 때문에 잘 정의된 기호를 모르면 논문의 기본용어에 대한 정의 조차도 무슨 뜻인가를 알수 없을 정도입니다.

자연단위계의 일종인 원자단위계(Atomic units)의 공준을 보면 ....

e = m_e = ħ = 1/4πε_0 = k_B = 1, c= 1/α

어라 이 단위계에서도 전자의 기본전하량과 전자질량이 등가로 표현되어 있네요!

그리고 광속이 무차원인 미세구조 상수의 역수로 되어있네요!

여기서 여러분들이 물리적 의미를 해석하겠습니까?

모르면 표준연의 구박사에게 쫌 물어보라고 하세요!

구박사는 틀림없이 엉터리라고 할 것입니다!

또 재밌는 자연단위계의 일종인 소립자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natural units의 공준을 보십시오.

c = e = m_e = ħ = k_B = 1, 1/4πε_0 = α

쫌 다르지요?

그런데 엥? 광속 c 가 전자전하량 e와 전자질량m_e와 등가로 되어 있네요!

이건 또 어떻게 해석 할 것입니까?

광속이 전자랑 등가라고 하니까 물리적 의미가 없겠네요?

그러니 일반인들과 다르게 논문의 형식체계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의미론은 그 논문의 형식적 체계가 받아들여 질 때 비로소 꽃이 피는 것입니다.

이렇듯 다양한 자연단위계가 현재 존재하는 것을 보면 자연의 다양한 현상에 대한 올바른 계산 및 측정, 그리고 해석을 찾으려고 얼마나 쌩고생을 하는 가를 잘 알 것입니다.
 

 
행복 :
 
절대와 상대의 관계는
이미 자체적으로는 '각각의' 상대적인 의미(가치)를 가지면서
동시에 '하나'의 절대적인 구조를 가지기도 하는 평등한 관계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복합적 관계를 단순한 방식으로 인식하여 말하기는 매우 쉽지 않은 일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어떤 사실적인 표현이라도
상대적인 견해와 절대적인 견해를 오락가락하는 말이 되어
스스로가 인식하려는 대상과 그러한 방법론사이에서 방황하는 혼란이 자초되는것 같습니다.

제로존이론에서의 절대와 상대의 혼용문제에 대한 바람님의 지적역시
이러한 현실적 혼란에 대한 합리적 해결책은 무엇인가를 의문하는것이라 봅니다.
즉, 지금까지의 인식적 패러다임으로는
이러한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관계를 동시에 언급하는 제로존이론이
매우 혼돈스럽다는 자조적인 말씀으로도 들립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실 우리가 무슨 말을 할때는
알든 모르든 이미 상대적이거나 절대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로존이론이 무슨 없던말을 갑자기 만들어 낸 것이 아님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상대적 현상계와 절대적 본체계를 대등하게 인식할 수 없어서
무한한 상대적 의미체계에만 주로 의지한채 본질적 동일성에는 무지했던 그간의 패러다임에 대해
좀 더 본질적 차원에 입각한 순수한 방법론을 대등하게 내세우므로서
기존의 인식론을 정면으로 위배한다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발전을 통해 궁극적 인식을 무한히 꾀하려는 전환기적인 패러다임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상대적인 의미체계가 더욱 밝혀지는 효율적인 노력이 따라야 하는것은 당연지사이며,
그러한 발전을 지속가능하게 할 순수이론적 방법론에 대해 절대적 차원으로 충분히 인식할 수 있어야
제로존 이론이 말하는 바를 대체적으로나마 조금씩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여겨 봅니다.

어째든 살펴본바와 같이 절대와 상대의 관계에 대한 물리적 의미나 물리적 구조를
어떻게 인식할것인지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제로존 :

오늘은 2010년 5월 28일 금요일입니다.

바람님의 게시글을 보면 한사람의 이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담금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원칙론적인 이야기이고 잘 알면서도 어떤 환경에 처해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잘 망각하곤 합니다.

논쟁의 과정에서 “저게~ 적절한 비유가 아닌데...”, “아이고 속 답답해서 몬 살아~”, 라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었습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야기가 헛돌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요?

사건에 대한 평면적인 해설만 해서는 큰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만, 제로존 이론이 나아가야할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을 가진 분들을 위하여 도움이 되고자 틈틈이 책에서 읽은 내용을 첨삭하여 게시글의 내용에 참고할 수 있는 내용으로 소개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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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철학자가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저명한 수학자를 만났습니다.

소박한 철학자는 철학 종교를 위시하여 인문사회학 분야에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을 대표하여 저명한 수학자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소박한 철학자 : 어느 정도의 수학이 현재의 세상에 알려져 있소?

수학자 : 내가 알고 있는 대학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수학책들을 어림잡아 계산해보니 평균적인 부피의 책으로 환산하면 약 20만권이라는 수치를 얻었습니다.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정도양의 지식과 정보는 어떤 사람의 이해력도 훨씬 초월하는데 이것은 물리학, 의학, 법률학, 문학 등과 같은 다른 소장품과 비하면 아주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40년대 말에 <폰 노이만>이라는 능숙한 수학자도 통용되고 있는 수학 중 겨우 10%정도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저는 0.1%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소박한 철학자 : 아~, 물리학에서 노벨상을 받은 <유진 위그너>가 지상에서 오직 천재라고 한사람 예를 든 바로 그 <폰 노이만>말입니까?

그 <폰 노이만>도 수학자 <괴델>을 천재라고 했으니까 <괴델>의 이론을 수정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진짜 천재겠네요?

그건 그렇고, 수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려면 얼마나 많은 수학책을 읽어야 할까요?

수학자 : 평균적인 지망생은 학부과정에서 약 14~18개의 수학과목과 대학원 과정에서의 16개의 수학과목을 수강할 것입니다.

각 과목에 대해 한 권씩 계산하고 부교재와 참고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수치를 2배로 하면 약 60~80권이라는 수치를 얻습니다.

소박한 철학자 : 수학 박사라 하더라도 20만권에 100권이니 1/2000 정도 밖에 안 되네요. 된장#@%^!

수학을 분류하면 대략 몇 가지가 될까요?

수학자 : 올해가 2010년인가요? 짐작하긴 어렵지만 제가 한참 공부할 1980년도 아주 오래된 미국 수학학회(MOS)의 분류표에 따른 수학의 개략적인 분류가 있는데, 수학 문헌을 상세하게 분류하면 3천 가지 이상의 범주로 나누어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3천 가지 범주의 대부분에서 새로운 수학이 일정한 증가율로 창조되고 있으며 수학의 바다는 깊이와 폭 모두에서 확장되고 있습니다.

매년 약 20만개 이상의 새로운 수학 정리가 발표되고 있다니 나도 놀랍습니다.

“수학자는 미친 사람입니다.”라는 저서를 쓴 수학자 <에어뒤시>는 수학정리를 심사하는 수학자는 대강할 수밖에 없고 그 대강에는 수학정리를 쓴 사람의 뒤에 누가 지도교수인가를 고려한다고 하지요.

그러니, 대한민국에서 나온 제로존 이론은 지도교수가 없어서 그 논문 제대로나 보겠습니까?

소박한 철학자 : 당신은 얼마 전에 저에게 말하기를 다른 전문분야의 학자가 쓴 정의를 보고도 잘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는데, 그 말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연구하는 수학 분야의 일반적인 특징과 목적을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 까요?

수학자 : 측도 공간 Ω 위에 정의된 매끄러운 함수 f를 생각해 봅시다. 이 함수는 포화된 형태의 수렴 구조를 갖는 싹들의 총공간에서 값을 취합니다.

가장 간단한 경우에...

소박한 철학자 : 아~, 아...! 고마합시다! 당신의 연구 응용에 대해서나 한마디 해 주시겠소?

수학자 : 죄송하지만 당신에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소박한 철학자 : (퉁명스럽게) 잘 알겠소. 순수 수학자 중에서 당신의 연구를 잘 알고 있고,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수학자 : 아닙니다. 아주 극소수일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10명 남짓할 것입니다.

소박한 철학자 : 그건 그렇고, 수학적 증명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합니까?

제가 기하학, 대수학, 미적분학에서 증명이라고 부르는 논법을 봤는데, 제가 진실을 알고 싶은 것은 증명의 예가 아니라 증명의 정의입니다.

수학자 : 내가 알기로는 논리학자 <타르스키>와 다른 사람들, 아마 <러셀>이나 <페아노>가 그 모든 것을 분명히 해결했습니다.

어쨌든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주어진 기호나 알파벳의 목록을 사용해서 당신의 이론에 대한 공리들을 형식언어로 써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똑 같은 기호체계 내에서 당신의 정리의 전제를 써내려갑니다.

그 다음에 그 전제를 논리학의 규칙들을 이용해서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한 단계, 한 단계 변환시킬 수 있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묻고 싶은 증명의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박한 철학자 : 아~, 그러니까 수학적 증명을 할 수 있기 전에 형식언어와 형식논리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합니까?

수학자 : 물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적게 할수록 더 좋습니다. 그 내용은 어쨌든 매우 추상적이고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박한 철학자 : 무의미하다고라? 그렇다면 증명이란 도대체 이해할 수 없군요!

수학자 : 글쎄올시다. 증명은 당신에게 확인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주제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납득시키는 논법입니다.

소박한 철학자 : 그 주제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라? 그렇다면 증명의 정의는 매우 주관적이군요.

어떤 것이 증명인지를 결정하기 전에 전문가가 누구인지를 먼저 결정해야만 하나요?

수학자 : 아니요. 증명에서 주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해당 분야의 책을 읽어 보고 유능한 수학자의 강의를 먼저 들어보세요.(쪼금 짜증스럽게)

소박한 철학자 : 그러면 당신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수학자 : 나는 철학에 흥미가 없습니다. 나는 수학자입니다.

소박한 철학자 : 당신들은 ‘존재에 대한 엄밀한 증명’에서 철학적 넌센스를 범하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관찰되어야 하고 적어도 관찰 가능하다는 사실을 당신은 모릅니까?

수학자 : (역성을 내며)여보세요! 나는 당신과 철학적 논쟁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철학자들이 스스로 말하고 있는 내용을 알고 있는지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철학자들이 말하는 내용을 내가 이해할 수 있고 철학자의 논법을 점검할 수 있는 명확한 형태로 서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박한 철학자 : 글쎄요, 나는 당신에게 너무 심한 말을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실재에 대해 당신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상상하는 것이 당신의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수학자 : 거듭 이야기하지만 나는 철학자가 아닙니다. 철학은 나를 왕짜증나게 만듭니다.

당신들은 논의하고 또 논의하지만, 결코 어느 것도 얻지 못합니다. 나의 업무는 ≪정리를 증명하는 것≫이지, ≪정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박한 철학자 : 또 왕짜증나게 하는 질문 같지만 당신은 진실성과 확실성에 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소?

수학자 : 수학 자체는 모형입니다. 이론 물리학이 말하듯이 물리학 이론도 실재에 대한 일시적인 모형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모든 종류의 과학연구는 일시적인 성질을 갖기 때문에 수학의 진실성 또는 확실성에 관한 문제는 내게는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정도 진실될까’가 아니라 ‘어느 정도 좋을까’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에서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많이 존재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진짜’라고 주장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제시할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랄 수 있는 최상은 부분적으로 진실된 모형입니다. 이것은 일시적이지만, 최선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모형은 적어도 어떤 현상을 꽤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런 수준에서도 모형을 구성하는데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수학자 : 이상적 모형은 예언적인 가치를 가져야만 합니다. 따라서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판단을 도와줄 수 없는 모형을 만드는 것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형이 너무 복잡한지 아닌지는 현재의 수학 또는 계산 기술의 상태에 의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형으로부터 수학적인, 따라서 물리학적인 결과를 유도하는 입장에 있어야만 하고 , 만약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명되면 그 모형은 그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박한 철학자 : 당신들은 수식을 써 놓고 아름답다고 표현하는데, 그 말을 쉽게 설명해 줄 수 있소?

수학자 : 이번에는 적절한 지적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단순한 아름다움은 이익을 주는 것과 쫌 다릅니다. 저는 아름답다는 말을 이 세상의 어떤 현상을 ‘분석 가능하다’라는 말로 바꾸고 싶습니다.

저는 내 모형이 아름답고 효과적이며 예언적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진정한 목표는 상황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형은 반드시 분석 가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해는 분석 가능성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대단히 훌륭한 성공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의 당면한 목표는 ‘분석 가능성’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부연 설명을 하면 자신의 연구가 수학적 추론 또는 연역으로 묘사될 수 있는 요소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에서의 진실은 정확한 물리적 관계로 유도되는 추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학자 : 그러므로 진실된 추론의 수학적 증명형태로 제시될 수 있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증명이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증명은 결점을 감추는 목적이 있고, 우리 생활에서의 불안정함을 어느 정도 감소시켜 줍니다.

한국에서 나온 제로존 이론은 비록 실험데이터를 분석하여 결론이 나온 것을 수학적 형식으로는 분명히 연역식을 택하고 있으며, 기호로 표현하여 분석하기 용이하고 그 분석의 추론형태가 물리적 관계로 유도되고 있어 심사자가 이해하기가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수학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어떤 직관?이 나와서 예측하는 모형도 제시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자연단위계들도 예측하는 모형이 있지만 실험적 정합성에 들어가지 않을뿐더러 아예 수치까지 틀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분적으로 성공한 모델이 되겠지요.

SI단위계와 호환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박한 철학자 : 직관이라고라? 과학적 또는 수학적 직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수학자 : 직관은 경험의 표현이고 축적된 경험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어떤 사람은 직관력을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얻습니다.

소박한 철학자 : 직관이라고 하지만 그 직관이 자신을 속일 수도 있을 것인데요?

수학자 :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드물지 않게 나타납니다. 내 자신의 연구의 많은 부분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스로 이 모형은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았던 경험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내 모형은 다른 모형보다 더 좋은가? 하고 자문합니다. 그리고 저는 십중팔구 직관에 근거해서 대답하게 됩니다!

소박한 철학자 : 배가 출출하니 좀 묵고 합시다! 오줌도 누고 ...

수학자 : 미~투...!
 


밥 묵으러 가고 오줌 누러 간 사람들이 아직 오지 않아서 제가 글을 올립니다.

오늘이 벌써 5월 29일 토요일이군요. 제가 미국에서 한국에 온지도 몇 년 되었습니다만, 한국 날씨 참 좋습니다.

오늘 같이 좋은 날씨에는 가까운 바닷가 백사장을 찾아서 일광욕을 쫌 즐기려고 합니다.

그 전에 바람님이 올려주신 본글을 읽어보면서 한마디 하고 싶어서 책상 앞에 이렇게 앉았습니다.

아마 제가 이후로 하는 이야기는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를 다룬 논문을 어렵지 않게 읽는 수학자만이 제대로 이해할 것입니다. (너무 고깝게 생각하지 마시고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런 말을 쓰면 무식한 놈도 성질이 나서 또 읽게 됩니다. 여하튼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Sci카페에서 이런 저의 글을 읽는 것도 아마 행운이 될 것입니다!

바람님이 <제로존 이론의 과제>라 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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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c"를 광자가 아닌 광속으로 해석하면 상대단위인 시간단위(초)가 적용되어 "c"는 2.99×10^8m/s이란 상대적 물리량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절대값인 "c=1"과 상대값인 "c=2.99×10^8m/s"가 서로 같은 값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광속으로서의 "c"의 상대적 물리값(2.99×10^8m/s)이 절대값인 "1"과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모순 없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또 비슷한 관점을 아래에 쓰고 있습니다. )


→ 시간단위인 "s"를 해석할 때 단위가 없는 무차원수로 보았을 때는 절대상수가 될 수 있어 "s=1"로 정의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s"를 "1초"로 정의하게 되면 "1초"는 절대 값이 아닌 상대값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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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정신보게나, 제 소개를 하지 않았네요.

저는 컬럼비아 대학의 철학교수 <어니스트 네이글>입니다.
 

바람님이 올린 본글 중에 ‘상대적’이니, ‘절대적’이니 이런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용어를 쓰는데 사실은, ≪얼마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바람님은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믿고 제가 글을 올리겠습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기하학의 공리형태는 오랜 세월동안 위대한 사색가들에게 과학적 지식이 지닐 수 있는 최적의 모델이었습니다.

따라서 기하학이외의 학문도 확실한 공리적 기초위에 세워질 수 있느냐는 의문을 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유클리드 기하학이외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발견되어 수학의 기초에 대한 위기가 초래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무신 위기?

19세기 이전의 수학자는 누구도 한쌍의 모순되는 정리가 언젠가 그 공리에서 추론될 수도 있다는 의문을 품은 적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기하학의 공리는 분명한 자명성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전통적인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순수수학의 진정한 목표는 공준화된 가정에서 정리를 유도하는 것이란 의식이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가설로 택한 공리가 실제로 참 값인가를 따지는 것≫은 수학자의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비판적인 안목에서 수학의 기초를 연구한 결과로 얻은 종합적인 결과는 수학을 '양의 학문(science of quantity)'이라 생각하던 과거의 관념이 잘못된 것이고 부적절한 것이란 깨달음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나온 제로존 이론이 JFS에 게재된 논문을 읽어 보았답니다.

수학의 기초에 관심이 없는 일반학자들은 저자 양동봉씨가 써 놓은 논문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관념적인 철학 냄새가 난다고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양동봉, 제로존이 논문에서 이야기한 것은 바로 물리학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표현 그 자체를 물리학의 궁극적 탐구 대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다양한 현상을 계산하고 해석하기 위해서 소위 단위계, 미터법을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은 단위계, 그 자체를 물리학의 탐구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기 눈에 비친 사물은 보았지만 자기 눈, 그 자체를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번에 JFS에서 제로존의 논문을 보십시오.

제로존은 단위, 그 자체 개념, 그 자체도 물리학의 탐구대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소위 자기언급, 그 자체를 분석해 들어간 것입니다.

이런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바람님이 소위 바람을 잡으니까 그렇고 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소박한 철학자와 수학자의 대화에서 쫌 쓴 미소도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은 바람님이 올린 ‘절대성’과 관계있는 개념이라는 것을 아쉽게도 사람들은 쉽게 이해를 하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제로존 이론의 위대하고 심오한 개념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소수의 위대한 논리학자나 철학자 이외에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 논문이 이 세상에 나왔다는 그 자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로존은 절대성이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직까지 논란의 불을 지피지 않기 위한 전략인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메타 피직스’입니다.

제로존이 실제로 보여준 ‘메타 피직스’는 수학에서는 ‘메타 수학’이 됩니다.

‘메타 수학(meta mathematics)’이라고요?

계속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수학은 유한수의 공리와 공준에서 논리적으로 함축된 결론을 끌어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문으로서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수학적 추론의 유용성은 공준을 서술하는데 사용된 낱말이 지닌 의미와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까지 이르렀습니다.

결국 수학은 전통적으로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학문으로 인식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수학적 명제는 한정된 수효의 대상이나 그 대상의 특징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임의의 것에 대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더욱 추상적이며, 수학적 증명의 유효성이 특정한 논제의 ≪성격(의미론)≫에 근거하기보다는 명제의 ≪구조≫, 그 자체에 기초를 두기 때문에 더욱 형식적입니다.

이제 메타 수학이란 말이 감이 오기 시작합니까?

사전을 찾아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꾸준히 이 용어의 이해에 몰두하면 어느 순간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증명 수학에 속하는 각 분야의 공준들은 원칙적으로 공간, 양, 확률, 각, 통계 등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공준에 사용된 용어 또는 ‘서술적 술어(descriptive predicate)’가 지니는 특별한 의미는 정리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제 자신이 이야기하기 전의 밥 묵으러간 그 수학자님은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절대적인? 순수 수학자가 아닐 수 있습니다.(바람님이 그렇게 따져보니까 저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절대적인? 순수 수학자란, 특정한 논제를 탐구하는데 수학을 사용하는 학자와 구별되는 수학자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순수 수학자란 수학자가 다루는 진정한 문제는 가설로 택한 공준이나 또는 그런 공준에서 도출한 결론이 참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결론으로 추정된 것이 최초의 가설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논리적 결론인가≫를 따지는 것입니다!

수학자 <리만>이 제시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그 자체로 모순되지 않은가? 라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말로 그것들이 서로 모순된 정리를 유도해 내지는 않을 것이란 가정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다른 측면으로 제로존 이론이 가정으로 공리화한 그 내용이 모순된 정리를 유도해 내지는 않을 것이란 가정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제로존이 제 아무리 실험데이터를 들고 나와서 요것도 맞고 저것도 맞으니 모순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 공준 자체로 된 무모순 증명이 아닐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만 그런가요?

현재 ≪모든≫ 물리학 증명이 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자연과학이 가지고 있는, 귀납적 증명이 가진 자체 수학적 무모순성에 대한 어려움이 바로 이것입니다!

<리만>의 공준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무모순성을 빌어서 자신의 무모순성을 해결한 것입니다.

<리만>의 공리에서 평면이라는 용어는 유클리드 구면의 표면을, 점이란 용어는 그 표면 위의 한점을, 직선이라는 용어는 그 표면 위의 커다란 원의 호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리만>공준은 한결 같이 유클리드의 정리로 변환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석할 경우, 예를 들어 <리만>의 평행선 공준은 구의 표면 위의 한점을 통과하도록, 커다란 원에서 주어진 호와 평행하게는 그려질 수 없다고 다시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모순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만 <리만>의 기하학도 모순되지 않는다는 결과일 뿐입니다.
 

 
 
부루 :
 
"유클리드 기하학이 모순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만 <리만>의 기하학도 모순되지 않는다"

==> 유클리드 기하학 형식체계의 무모순성은 <리만>기하학을 포함하여 앞으로 출현할 지 모를 다른 기하학의 무모순성을 검증하는 기준이 된다는 말씀으로 확장하여 이해됩니다.

결국 기하학 뿐 만 아니라 다른 학문에서도 <절대적>인 형식체계의 무모순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말씀으로 들리며, 이 절대형식체계가 메타학문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금해지는군요...
 


제로존 :

이제 오늘 결론 이야기가 다가 왔습니다.

<힐베르트>가 이런 과정을 꿰뚫어서 자신이 한 증명은 다른 체계의 무모순성을 근거로 한 상대적 증명일 것, 절대적 증명일 수는 없었습니다.

드디어 <괴델>의 아이디어가 드러날 순간입니다.

<괴델>의 증명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예비적 단계로 ‘절대적 증명’이란 접근법을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쫌, 논리적인 수학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절대적 증명의 첫단계는 ≪연역체계의 '완전한 형식화(complete formalization)≫라는 점을 주목해야합니다.

드디어 바람님이 그렇게도 원했던 ‘절대적’이란 용어가 이제 실~실~ 나오기 시작하군요.

그러니 처음에 제 이야기가 쉽지 않다고 이미 이야기했지요?

오늘 바닷가 해변에 나가서 일광욕을 쫌 즐기렵니다.
 
 
 
부루 :
 
절대적 증명은 자신이 자신을 증명하는 구조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괴델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에 불완전성 정리를 말했을 것입니다. 결국 상대성이라는 원죄 또는 업보를 탈피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한계 때문에 예수님도 "나는 나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겠고요.

그런데 루팡님의 말씀들은 이러한 상대성을 극복하는 절대적 형식체계가 가능하다는 말로 이해가 됩니다.

제가 난독증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궁금합니다만...^^.
 


제로존 :

그러면서 제로존의 메타 물리학이 어떻게 메타 수학이 되고 그 결론을 어떠한 모델의 기호로 표현할까? 제 나름대로 예측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아마 제로존은 끝내 논문에서 절대적이라든지, 상대적이라든지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보여줄까요?

아마 추상 기호의 열로 이어지는 메타 언어(meta language)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소박한 철학자님과 수학자님에게 테클을 걸어서 송구스럽습니다.

좋은 주말 되십시오!
 

오늘은 2010년 5월 31일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지만, 5월의 마지막 날이기도 합니다.

부루님이 견디다? 못해서 한 수 던지네요.^^

제로존 이론의 출구가... ... 보이는 듯합니다.

부루님이 얻고자 하는 바로 그것은 똥그레미입니다.

(언론에서 제로존 더러 숫자 '1'을 신비화한다고요? 이 '1' 속에서 집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 똥그레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제로존 이론의 제로도 될 것이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비유하면... 아마 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냥 물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그야말로 흐르는 물일 것입니다.

물이 일부로 힘을 들여 흐르고 싶어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적 구조가 그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루님과 나는 아마 흐르는 물과 같은 관계에 있을 것입니다.

엄청난 거리를 달리는 물은 스스로 깨져서 그 깊이를 더욱 확장시킵니다.

이 내용을 오늘 올린 Fun-Today를 보십시오!

http://blog.naver.com/top_fun/100106381968


오랜 시간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연구하면서 순간 순간 변함없이 다가오는 그 무엇은...

바로 ≪마음≫이 무엇인가란 주제였습니다.

동양의 노자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최상의 방법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마음≫ = ≪흐르는 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학시절부터 틈틈이 인문사회, 철학, 종교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서 느껴온 주제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삶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였습니다.

이 주제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씩 가져보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서 사람들과 부대껴 살아가면서 우연한 기회에 수학을 비롯하여 물리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 중점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머리결에 흰 눈이 하나 둘씩 내려앉는 지금 생각해 봅니다.

자연과학 분야의 끄트머리에는 바로 대학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분야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우주, 자연, 삶이라는 단어보다 바로 ≪마음≫이란 단어가 그러했습니다.

제로존 이론에 대한 브릭의 Sci 카페가 개설되어 지금까지 다양한 제목을 가진 게시글과 이에 대한 댓글들은 바로 ≪마음≫이라는 최종 도착역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제로존 이론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마지막 결론부를 향하여 온갖 요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이 시작점에서 끝으로 흐르듯 마음도 그러할 것입니다.

마음의 시작과 끝의 여정을 오늘 댓글로 살펴볼까합니다.

자연과학의 여왕이라고 하는 첨단 수학이론에서는 마음의 본질과 그 기능을 해명하는 것으로 달리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인간의 사고를 무엇인가의 ‘기호’로 충분히 표현하여 다룰 수 있다는 독일 수학자 <라이프니츠>의 주장은 기호논리학(symbolic logic), 곧 수리논리학의 시초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라이프니츠>의 '단자론(Monade)'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로존은 과학과 종교, 철학이 서로 접속이 되고 있는 가교로서 ‘모나드’라는 단어에 대해서 지독?하게 관심을 가진 바 있습니다.

제로존 이론에서 수와 숫자의 의미를, 그리고 실수와 허수의 의미를 이 ‘모나드’란 단어와 분리 할 수 없는 일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로존 이론과 함께 동양적 정신과 개념을 널리 서양에 알릴 수 있는 가장 적절하고 유효한 매개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로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일부로라도 다시 한번 이글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모나드론 [Monadenlehre]!

독일의 철학자 G.W.라이프니츠가 만년에 저작한 소품(小品)의 제목.

후에 P.에르트만이 이름을 붙인 것으로 ‘단자론(單子論)’이라고 번역된다. 이 말은 그의 형이상학설(形而上學說) 전체를 나타내는 데도 쓰인다. 모나드(monad)란 원래가 수학상의 용어로 ‘1’ 또는 ‘단위’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모나스(monas)에서 나온 말이다.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모든 존재의 기본으로서의 실체는 단순하고 불가분(不可分)한 것이며, 이를 모나드라고 이름지었다. 모나드는 원자와는 달리 비물질적인 실체로 그 본질적인 작용은 표상(表象)이다. 표상에는 의식적인 것 외에 무의식적인 미소표상(微小表象)도 포함된다.

표상이란 외부의 것이 내부의 것에 포함되는 것으로, 모나드는 이 작용에 의해 자신의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다양성에 관계를 가질 수 있다. 모나드에 의해 표상되는 다양성이란 세계 전체를 말한다. 모나드는 ‘우주의 살아 있는 거울’이라고도 하며, ‘소우주(小宇宙)’를 이룬다.

이들 모나드는 각기 독립되어 있고 상호간에 인과관계(因果關係)를 가지지 않는다. 또 ‘모나드는 창(窓)을 가지고 있지 않다’. 창을 가지고 있지 않은 모나드가 각각 독립적으로 행하는 표상간에 조화와 통일이 있는 것은 신(神)이 미리 정한 법칙에 따라 모나드의 작용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예정조화(豫定調和)’의 생각에 따라 라이프니츠는 심신관계(心身關係)를 설명하고 데카르트적 이원론(二元論)을 극복하려 하였다.

모나드(Monad)는 다음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의 철학에서 모나드(Monad)는 피타고라스(Pythagoras: c. 580-572 - c. 500-490 BC, 그리스),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 5세기 초기, 그리스),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570-480 BC, 그리스), 플라톤(Plato: c. 424-c.347 BC,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 그리스), 플로티노스(Plotinus: ca. 204-270 AD, 이집트)와 같은 고대 철학자들이 신(God), 즉 하나인 존재(the one), 즉 제1 존재(the first being), 즉 전체 존재(the totality of all being: 모든 존재의 총합인 존재)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낱말이다.
나스티시즘(Gnosticism: 그노시즘, 영지주의)에서 모나드(Monad)는 불가시의 무한 상태의 신(the invisible infinite God)이 현현할 때 그 현현된 존재 상태들 중 제일 첫 번째 존재 상태(the most primal aspect)를 의미한다.

모나드(Monad)는 노자(老子, Laozi: BC 6세기부터 BC 4세기 사이)의 도덕경(道德經, Tao Te Ching)에서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道生一、一生二、二生三、三生萬物)"라고 하였을 때의 "도(道)" 또는 "하나(一)"와 그 개념이 상통한다.

모나드(Monad)는 유대교의 신비 가르침인 카발라(Kabbala)에서 무한 상태의 신(God)인 에인 소프(Ain Soph: Ein Sof, Infinite Light, 무한한 빛)가 유한 상태의 애덤 캐드먼(Adam Kadmon), 즉 생명 나무(Tree of Life), 즉 존재의 4계(Four Planes of Being)로 현현할 때의 10개의 세피로트(Sephiroth: 광구들, 빛의 구체들) 중 첫 번째 세피라(Sephira: 광구, 빛의 구체)인 케떠(Kether: Crown, 왕관)와 그 의미가 상통한다. 또는 에인 소프(Ain Soph: Ein Sof, Infinite Light, 무한한 빛)와도 그 의미가 통한다.

이제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란 단어를 ‘흐르는 물’이란 단어와 함께 마음속에 지니면서 글을 계속 올립니다.

<라이프니츠>이후 <불>과 <모르간>은 <아리스토텔레스>이래의 고전논리학에서 다루는 내용과 범위를 모든 대수학적 기호논리로 처리할 수 있음을 증명하여 <라이프니츠>의 구상은 더욱 구체화 시켜 보였습니다.

아직 여기서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개념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라이프니츠> 본인도 개념어로 이야기할 뿐, 기호논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고 있으니 당연한 듯합니다.

유명한 산술의 기초로서 쓴 <프레게>는 수학의 기반이 되는 논리체계의 공리적 형식화(axiomatic formalization)를 통하여 건설하고자 하였습니다.

동 시대의 <페아노>는 실제로 ‘자연수의 산술에 대한 공리체계’(이건 참 대단한 공리입니다!)를 구성하여 수학 내 여러 가지 정리들을 논리적으로 증명하여 보였습니다.

<칸토어>에 이르자 드디어 ‘무한의 문제’를 수학적으로 해결하고자 현대수학의 기원이 되는 집합론을 구성한 바 있습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집합론’은 수학의 기초에 대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여기서부터 드디어 역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다루게 될 ≪마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러셀>의 역설 등 다양한 역설이 발견되면서 ‘집합론’에 근거한 수학의 기반이 위협받는 상황이 초래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세기에 들어와 수학 내의 개별적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수학자체의 구조적 건실성(soundness)을 확립하기 위한 ≪수학기초론≫이 성립되었습니다.

<프레게>는 「개념논리」(1879)를 통하여 “순수한 사고의 표현”을 위한 형식언어로서의 <형식논리학 체계>를 구상하였습니다.

「기본적인 논리분석」을 통해서 수학 내의 정리와 증명들을 ‘본질적 구조’를 밝혀낼 수 있다고 보고하고 수학을 ‘형식논리체계’로 환원시키는 작업의 기초를 제공했습니다.

<러셀>은 이러한 시도가 타당하다고 보고 「수학의 원칙(Principles of Mathematics)」(1903)에서 <프레게>의 계획과 <페아노>의 결과를 결합시켜 산술체계뿐만 아니라 수학의 모든 분야들도 ‘논리’에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화이트헤드>와의 공저(共著) 「수학원론(Principia Mathematical)(1910~1913)」에서는 명제 논리체계(Propositional Logic System)내에서 ‘세분화 유형론’을 사용하여 ‘논리’로부터 수학이 ‘연역가능함’을 보이고자 했습니다.
 

<브로워>는 <크로네커>의 구성주의의 영향과 수학이 본질이 ‘직관’에 있다는 생각에 근거하여 수학을 ‘논리’에 환원 시키는 것을 반대하였고 ‘공리화’에 대해서도 반대하였습니다.

‘논리주의’가 논리적 환원을 통하여 패러독스의 해결을 시도했습니다.

‘직관주의’는 내용의 재구성을 통하여 패러독스의 해결을 시도했습니다.

<힐버트>는 형식체계의 무모순성, 완전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유한적(finitistic)형식과 절차에 의한 휴한적 형식화 방법을 증명한 이론이 ‘증명론(proot theory) 또는 메타수학(Meta mathematics)입니다.

댓글에서 여러번 언급된 바와 같이 20세기 초반에 ‘수리논리학’이 논리주의, 직관주의, 형식주의의 치열한 논쟁을 거치면서 전개되었습니다.

1930년 <괴델>이 <힐버트>가 제시한 미해결 문제 중 ‘페아노의 산술체계’를 포함하는 1계 논리의 완전성 문제를 증명하여 ≪논리 계산의 완전성에 관하여≫로 발표했습니다.

1931년 <괴델>은 ‘페아노 산술체계’의 확장된 형식체계가 오메가-무모순(ω-consistent)하면 그 형식체계 내에서 증명불가능(Unprovable)하면서 반증불가능한(not disprovable)문장, 즉 결정불가능한 문장(formally undecidable sentence)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괴델>의 제 1불완전성정리(1st Incompleteness Theorem)입니다.

완전성이 증명된 1계논리라는 형식체계를 통하여 확장된 형식체계의 불완전성이 증명된 것입니다.

‘형식논리체계’의 안정성이 보장 될 수 없습니다. 즉 ‘논리학’에서 가장 발달된 ‘형식논리학 체계’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괴델>은 <라이프니츠>가 구성한 보편문법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괴델>도 <라이프니츠>의 ‘모나드’가 무엇인지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후 ‘형식 논리’의 한계를 보여주는 정리로 유효적 유한절차(effective finite procedule)가 존재할 수 없음을 증명해 보인 <처치(A. Church)>의 정리(1936)가 있으며, 수리논리학에서 ‘결정불가능성(undecidability)'의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정불가능성’의 문제와 ‘한계이론’ 등은 바로 인간과 기계의 논리적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으로 ‘인지의 한계’ 또는 ‘인지영역의 결정불가능성 문제’와 관련된 ‘인지과학’의 중요한 주제이자, 과제가 되었습니다.

<튜링>은 <괴델>의 ‘증명가능성’ 문제를 컴퓨터에 대한 ‘계산가능성’ 문제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제로존은 ‘계산가능성’ 하면 제로존 이론을 저절로 떠올립니다. 그렇지! 계산 가능하지!

현대과학 이론과 기술은 양을 처리하는 기호, 변수 및 불변수를 처리하는 기호, 술어로 처리하는 기호 등으로 하나의 연쇄체를 이룹니다.

제로존 이론은 숫자 그 자체로 이러한 기호체계를 함의한다는 것을 나중에 이해할 것입니다.

숫자 그 자체가 명령어가 되고 숫자 그 자체가 우리가 얻고자 하는 문장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를 이해하는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0’하면 색즉시공! ‘1’하면 공즉시색!

그러므로 마음은 그 당체가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도 않는 허수와 같습니다.

바로 물이 그러합니다.
 

뒤늦게 이야기하지만 벌써 눈치 채고 있는 분도 있겠지만, 우리가 현재 집집마다 쓰고 있는 ‘컴퓨터’가 사실상 ‘형식논리체계’의 물리적 구현임을 주목해야할 것입니다.

드디어 인류가 창조된 후, 수학이 발전되고 수많은 세월을 거쳐서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이 계산 한계의 큰 장벽을 만난 것입니다.

계산 한계는 ‘컴퓨터’논리의 한계가 되었습니다.

이 한계 장벽이 물리학을 비롯한 화학, 공학, 의학 등 경험과학의 발전에 고삐를 늦추게 한 것은 당연합니다.

‘컴퓨터’가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가의 문제가 바로 우리 인간 두뇌의 문제입니다.

드디어 마음이 우리 두뇌의 구조와 관련 있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수학기초론이 컴퓨터 기술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언어와 마음, 기계와 사고, 마음의 기계적 속성에 대한 문제들이 현실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제 정리해봅니다.

모든 과학의 기초가 되고 있는 수학을 생각합니다.

수학적 증명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한 수학적 증명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전자는 <괴델>의 제 1불완전성 정리에 해당됩니다. 곧 형식체계 S가 무모순이면, S 내에서 결정불가능한 문장이 적어도 하나 이상 존재한다.

후자는 <괴델>의 제 2불완전성 정리에 해당됩니다. 곧 형식체계 S가 무모순이면, S는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 다음 이야기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괴델>의 결론이 우리 모든 사람에게 우울한 해답을 제시한 것은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증명불가능의 명제가 증명가능한 명제와 어느 정도 구별할 수 있는가에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계적으로 확인 될 수 있는 증명에 의해 수학의 대부분이 정확하게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학자들이 <튜링(A. Turing)>, <처치(A. Church)>, <클린(C. Kleene)>, <포스트(E. Post)> 등입니다.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에 대한 인지과학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접근의 3부류가 있습니다.

첫째 부류 : 인간과 기계의 지능에 대한 공동의 근본적인 한계를 증명하는 이론으로 보는 견해

둘째 부류 : 기계에 대한 인간의 우위를 증명하는 이론으로 보는 견해

셋째 부류 ; 인간과 기계의 지능에 극히 부분적으로 적용된다는 견해

그러고 보니 우리는 학문을 대함에 있어서 시건방 떨지 말고 겸손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부루님과 함께 이 글을 보고 있는 모든 분들은 제로존과 함께 흐르는 하나의 물이 되어 있습니다.

그 물은 어쩌다가 먹고 토하는 꾸정물도 되고 어쩌다가는 갈증에 메말라 찾아보는 심해의 깨끗한 청정수가 되기도 합니다.

어쩌다가 쉬어가기도 하고, 어쩌다가는 열심히 흐르다가 자신을 스스로 깨기도 합니다.

마음은 항시 꿈을 꿉니다.

그래서 우리가 찾는 행복은 나비와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

세상이 참 묘~합니다.

아래의 성경의 창세기 1장 세 구절을 함 보십시오.

성경을 누가 이렇게 기술했는지 모르지만 참,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어떤 묘~한 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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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 the beginn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2. And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upon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aded upon the face of the waters.

3.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고대 제임스 왕이 만들게 한 성경을 꺼내서 창세기 1장 첫 세 구절에 주목해 보십시오.

재미난 사건이 일어납니다.

첫 구절(In the beginn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의 단어 10개 중에서 하나만 골라보십시오.

골라낸 단어가 몇 개의 알파벳으로 되어 있는지 세어서 그 수를 n_1 이라고 한 다음, 그 단어로부터 n_1 번째의 단어로 갑니다.

예를 들어, 처음 나오는 the를 골랐다면, 3칸 나가서 created로 가는 것입니다.

또 그 단어가 몇 개의 알파벳으로 되어 있는지 세고, 그 수가 n_2 라면 n_2만큼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창세기 3절에 들어갈 때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 해봅니다.

그러면 항시 특정한 단어와 마주칩니다.

그 단어는 “God"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神이 존재하고 성경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