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스크랩] 평범하게 살라

자유지향 2008. 9. 2. 12:39

쉬운 것이 바른 것이다. - 장자

 





마음은 장자의 문제를 풀 수 없다, 마음은 전적으로 무력하다,
장자는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참으로 기이한 천재였다,
자신의 이야기만 해도 만드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가르침은 매우 단순했다.
계속 장자와 함께 머문 제자들은 모두 깨달았다, 이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장자는 스승인 노자마저도 넘어섰다,
노자 문하에서는 소수의 제자들만 깨닫고 나머지 대부분은 무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장자는 붓다도 넘어섰다.
붓다 아래에서도 소수의 제자들만이 깨달았다,
제자들의 전체 숫자에 비하면 깨달은 제자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붓다의 제자는 수천 명이 넘었지만 깨달은 사람은 열 명 남짓이었던 것이다.

장자는 신비가의 역사에서 매우 희귀한 존재다,
그의 제자는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깨달았다,
장자는 깨닫지 않는 제자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깨닫지 않은 제자는 장자가 늘상 쫓아다녔기 때문에
모두들 ‘차라리 빨리 깨닫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장자는 매일같이 골치 아픈 문제를 들고 왔다,
골치 아픈 문제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빨리 깨닫는 게 최고였다.






장자의 방편은 매우 단순했다, 오늘 보게 될 시는 장자의 시각을 예리하게 보여준다.

쉬운 것이 바른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와 반대로 사람들은 바른 것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문명에 의해 조건화된 사람들에게는 그릇된 것이 쉽고 바른 것이 힘들다,
바른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고 수련이 필요하고 억압이 필요하며
세상을 떠나야 하고 삶의 기쁨을 포기해야 한다,
거짓은 쉽고 진리는 어렵다, 조건화된 인간의 마음은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장자는 더없는 혜안의 소유자였다, 장자는 말한다.
“쉬운 것이 바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바른 것을 어렵게 만드는가?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른 것을 어렵게 만든다,
왜 그런가?
인간의 에고에게는 어려운 것만이 훌륭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대상이 어려워야 에고는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등반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에드먼드 힐러리가 최초 등반에 성공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에베레스트에서 죽어 나갔다,
20세기 내내 수많은 등반대가 오르고 또 올랐다,
에드먼드가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도달했을 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상에는 쉴 만한 공간조차 없었다, 그저 한 사람이 서 있을 만한 공간밖에 없었다.
훗날 에드먼드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무엇을 위해 에베레스트에 도전했습니까?
수많은 등반가들이 에베레스트를 오르다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잘 아실 텐데......
왜 그렇게 위험한 도전을 했습니까?“
에드먼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도전을 해야 했습니다,
등반가의 자존심 때문에 그냥 있을 수 없었어요,
저는 등반을 사랑합니다,
에베레스트가 거기 있는데 아무도 정복을 못했다는 사실은 수치처럼 다가왔습니다,
무엇을 찾기 위해 정상에 오른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는 사실에 정말로 행복합니다.“

이런 행복은 대체 무슨 행복인가?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도 행복하다?
여기에서 인간의 에고가 명확히 드러난다.
‘나는 에베레스트에 오른 최초의 사람이다,
이제 그 누구도 내 자리를 빼앗을 수 없다,
다음에 오르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두 번째, 세 번째가 될 것이다,
나는 역사상 최초의 인물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에드먼드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으나
부푼 에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에드먼드는 이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종교는 모두 바른 것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어려운 것이 훌륭해 보이기 때문이다,
에고의 눈에 훌륭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고는 진리가 아니다, 바른 것도 아니다,
에고는 어려운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
성인이 되기 위해 진리와 바른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대상이 더 어려울수록 에고이스트는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에고는 바른 것이 아니다, 에고는 인간에게 일어난 것 중에서 최악이다,
에고를 통해서는 바른 것에도, 진리에도 도달할 수 없다,
에고는 에고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다,
장자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쉬운 것이 바른 것이다.”
에고는 쉬운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대가 쉬운 것을 찾아가면 에고는 죽기 시작한다,
더 이상 죽어야 할 에고가 남아 있지 않으면
그대는 자신의 실체 - 바른 것 -, 진리에 도달한다.

진리와 바른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야 한다,
쉬운 것이란 곧 자연스러운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쉬운 것은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찾을 수 있다,
쉬운 것이 바르다는 말은 곧 자연스러운 것이 바르다는 말이다,
노력하지 않는 상태가 바르며 에고 없는 상태가 바르다는 말이다.





바른 것에서 시작하라, 그러면 쉬워진다,
쉬운 것을 계속하라, 그러면 바르게 된다.
바름과 쉬움은 동전의 양면이다,
바른 삶에서 시작했는데도 삶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른 게 아니었던 것이다,
바른 것에서 시작하면 삶은 점점 쉬워진다,
내맡김 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간다, 삶의 강물과 하나되어 흐른다.

삶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어렵지만 삶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삶에서 가장 쉬운 것,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선택하면 그대는 바르게 될 것이다,
혹은 먼저 바른 것을 택하여 갈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바름이 쉬움과 편안함을 가져오는 것이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쉬운 것을 계속하라, 그러면 바르게 된다.
어려운 것은 에고를 강화할 뿐이다,
에고는 그대를 눈멀게 하고 귀먹게 하고 가슴이 열리지 못하게 한다,
에고는 사랑하고 춤추고 노래하지 못하게 한다, 이 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쉬운 것을 계속하라.
삶 전체가 쉬운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살 때 에고를 만들지 않고 자연스런 존재가 된다,
그냥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
장자에게나 나에게는 평범함이 가장 큰 비범함이다,
비범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빗나가고 만다,

그러므로 평범하게 살라. 

- 오쇼 라즈니쉬 -





 
Donovan My Timeless Cosmic Friend by Oliver Sh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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