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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것은 도대체 누구의 인생이냐?

자유지향 2013. 6. 17. 21:31

 

이것은 도대체 누구의 인생이냐?
Whose Life is This, Anyway?
Heavenletter #4587
6/16/2013
http://heavenletters.org/whose-life-is-this-anyway.html

 

 


 

신이 말했다.


그것을 대면하자.  좌절감이란 말은 분노에 대한 또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  좌절감은 너의 외부의 무언가로 초래되는 듯 보인다.  이것이나 저것이 너를 좌절시킨다.   너의 마음 안의 작은 우여곡절로 너는 좌절감이 너를 공격한다고 매우 쉽게 너 자신을 확신시킨다.


분노는 다소 덜 미끄럽다.  너는 정말로 분노 안의 너의 참가를 대면해야만 한다.  너의 분노를 일으킨 것이 무엇이든, 너는 네가 화가 났음을 인정해야 한다.  너는 그 분노를 안고 있다.  너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 안고 있다.


좌절감은 너에게 덜 심각한 듯 보이고, 너는 그런대로 네가 그것으로부터 책임감을 면제받은 듯이 느낀다.  너는 사실상 무고하다.  너의 컴퓨터가 스팸으로 미쳐 날뛴다.  물론 너는 좌절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일이 계속된다.


나는 네가 체험하는 모든 짜증에 대해 책임감을 지라고 재촉한다.  너는 그것을 가질 필요가 없다.  너는 책임감을 가져야만 한다.


우리가 세상과 다른 너의 느낌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것은 우리가 내려오는 매우 기본적인 수준이다.  너는 네가 세상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는 네가 세상이 너를 잡으려 한다고 느꼈음을 깨닫지 않았다.  너는 네가 그것과 다툴 때에도, 이로운 세계의 생각으로 너의 입 발린 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매나 똑 같에” 하고 너는 터뜨리는 듯 보인다. “그게 어떻게 나를 잘못 사용하는지 보세요.  내가 어떻게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것이 일어났고, 저것이 일어났고, 그것들이 나에게 일어났습니다.  나는 수학 문제를 풀 수 없었어요.  나의 신발 끈이 끊어졌어요.  난 피곤해졌어요.  내가 피곤한 게 이상하지 않죠.  오늘 내게 일어난 일을 보세요.”


사랑하는 이들아, 그 무엇을 준다 해도, 너희는 너 자신을 무고한 희생자로 보기를 원하지?  희생자는 또한 주모자이기도 하다.  너희는 너 자신에게 마술을 부렸다.  마치 좌절감이 너에게 조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정말로는 손재주이다.  토끼가 모자로부터 나오지 않았다.  네가 거기 토끼를 넣은 자이다.


아니면 어쩌면 너는 네가 다시 한 번 속여진 순진한 희생자였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나의 친애하는 애들아, 너희는 다른 곳에 책임감을 놓은 범인이다.


아무도 너의 자동차가 고장 난 것이나 너의 좌절감에 기여한 일들의 무엇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러나 지금 와서 너 자신의 눈을 곧장 쳐다보고, 너 자신의 비난 받을 여지를 인정해라.


너는 또한 네가 홍역이나 모기가 문 것이나 뒤틀린 위장의 무고한 희생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이제 책임이 있다.  너는 네가 반응하는 방식에 대해 책임이 있다.  대신 행동해라, 좋은 느낌으로 행동해라.


사랑하는 얘들아, 숨는 것은 없다.  너의 생각들이 그 망을 쳤다.  아끼지 말고 베풀어라, 그 모든 것을.


만약 네가 국 냄비를 떨어뜨렸다면, 너는 그것을 떨어뜨렸다.  의도 하지는 않았지만, 너 외 다른 누가 떨어뜨린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마루에 난장판을 치워야 하는 것은 너이다.


너의 손톱이 부러졌을 때에도, 부러진 것은 너의 손톱이다.  너는 네가 좋아하는 무엇에 너의 부러진 손톱을 비난 할 수 있지만, 여기 네가 있다.  그것은 너의 부러진 손톱이다.  너는 네가 충분한 칼슘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너에게 말한다.  “칼슘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은 것은 누구냐?”


네가 무고함에 빠지는 것은 너의 최선의 이익도, 누구의 최선의 이익도 아니다.  네가 어느 누구의 기준으로도 완전히 무고하다고 말하자, 그러나 나는 되풀이 하는데, 네가 무고할 때에도, 누가 이제 그 경주를 달려야 하느냐?


만약 네가 물에 빠져 죽고 있다면, 너는 죽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텐데, 너는 무엇을 하겠느냐?  너는 단지 말하겠느냐?  “난 물에 빠질 것을 청하지 않았어.”  혹은 너는 헤엄치면서 너 자신을 빠져 죽는 것으로부터 구하겠느냐?


누군가가 너에게 충고를 주고 네가 듣기를 원하지 않을 때, 너는 중얼거릴 수 있다.  “이게 어쨌든 누구의 인생이지?”


그리고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누구의 인생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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