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존 이론

[스크랩] 고립무원의 정치인 카다피와 물리학자 볼츠만의 자살

자유지향 2011. 3. 3. 18:27

 

 

 

 

 

 

 

 

 

 

VS

 

 

             볼츠만                                            마흐

 

 

유엔 안보리가 2011년 2월 26일 채택한 결의 1970호는 카다피 정권의 진압으로 1000여명이 숨진 최근 상황을 '반(反)인도적 범죄'로 간주, 이를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즉각 조사토록 요구했다.


카다피가 체포돼 ICC의 재판을 받게 될 경우, 최고 형량은 무기징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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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는 1969년 9월 국왕 이드리스 1세가 해외여행을 하는 틈을 타서 쿠데타를 결행하고, 혁명평의회 의장에 취임, 대령으로 승진되어 군 사령관을 겸임하여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카다피는 악명 높은 독재자이면서 부패한 정치인으로 약 40여 년간을 여론을 총칼로 통치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테러까지 자행하여 자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진리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시민들로부터 원성을 받아온 바 있습니다.


혁명동지이며, 그를 측근에서 보좌해왔던 친구들까지 2월 25일 유엔에서 그를 처벌해야 한다며 눈물로 호소하여 그는 이미 살아 있어도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게 되었습니다.


제로존 이론 공식 카페 여러분!


진리와 정의, 그리고 평화에 대하여 무자비한 독재자였으며, 부패한 정치 지도자로서 카다피와는 달리 또 다른 학문적 방향의 대척점에 있어서 세계의 진리와 정의, 그리고 평화와 사랑으로 62년의 평생을 살아 왔던 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소위 우리가 사는 자연과 우주에 있어서 이론과 실재 또는 실체와의 갭 속에서 고뇌했으며, 방황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모든 물리학자들로부터 진리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받는 그의 혁명적인 이론이 당시에는 시대적 사유를 앞섰다는 이유로 권위와 명성을 가진 학자들로부터 고립무원의 위치에 서 있도록 강요당한 바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루트비히 볼츠만 [Ludwig Eduard Boltzmann, 1844.2.20~1906.9.5]이라는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입니다.


<볼츠만>을 그토록 화나게 했으며, 우울증과 함께 끝내는 자살하게 한 사연은 무엇일까요?


제로존은 제로존 이론을 발표하기 전에 비슷한 환경으로 <볼츠만>과 같은 불우한 환경에 놓이게 했던 결코 적지 않은 사례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사전을 통하여 간단한 그의 약력을 알아볼까요?


오스트리아의 이론물리학자. 통계역학 건설자의 한 사람이며, 볼츠만방정식을 도입하여 맥스웰볼츠만분포를 확립했다.


또한 열역학 제2법칙의 비가역성을 역학의 입장에서 해명했고, 엔트로피 개념을 통계역학적으로 정식화하였다.


오늘 제로존 이론 공식 카페에서 특별하게 볼츠만을 소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수학적 순수 이론과 물리학적 실재, 또는 실체와 사이에는 어떤 유령과 같은 간격이 존재하고 있는가?


이러한 간격에 대한 논쟁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바 없는 것 같습니다.


제로존이 보기에 여기서 간격(gap)이란 물리학자들만이 담당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정의’ 또는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너무나 자주 또는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 되어왔기 때문에 진부하기 짝이 없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제로존은 이러한 간격의 논쟁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는 사건과 관련하여 자주 거론되는 핵심 질문이 유난히 돋보이는 아주 적절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번 게시글에서는 치열한 논리적 쟁점에 대해서 이론 물리학자이며, 저명한 저널리스트로 이미 소개한 <데이비드 린들리>가 펴낸 물리학에 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논쟁,‘볼츠만의 원자’라는 저서를 인용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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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9월 7일 금요일 아침에 빈의 《신자유신문 Neue Freie Presse》기자가 트리에스테, Trieste에서 멀지 않은 아드리아해 연안의 휴양지인 두이노, Duino에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작은 성당을 찾았다.


도중에 그는 “비통한 광경”을 목격했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태운 두 대의 마차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을 달려가고 있었다.


첫 번째 마차에는 노부인과 세 딸이 타고 있었고, 두 번째 마차에는 군복을 입은 젊은이와 성직자가 타고 있었다.


마차는 빈으로 가는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트리에스테로 덜컹거리며 달려가고 있었다.


자그마한 산 지오바니 성당으로 달려간 기자는 키가 작고 뚱뚱한 남자의 시신이 검은 천으로 덮인 채 안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방금 보았던 마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슬픔에 빠져있었던 것은 바로 그 남자 때문이었다.

 

신문에는 외딴 마을에서 쓸쓸하게 죽어간 남자의 이야기 이상의 소식이 담겨 있었다.


자살한 사람은 빈 출신으로 62세였으며,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물리학자이면서 수학자였던 <루트비히 에두아르트 볼츠만>이었다.


그는 “그의 시대와 나라를 빛낸”사람이었지만, 그가 병과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친구와 동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9월 5일 수요일 저녁 6시경에 <헨리에테 볼츠만>과 딸들은 <볼츠만>을 호텔 방에 남겨두고 수영을 하러 바다로 내려갔다.


그는 가족들에게 잠시 후에 가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헨리에테>는 걱정하기는 했지만, 크게 염려되지는 않아던 모양으로 15세의 딸 엘사를 호텔로 보내서 아버지를 데려오도록 했다.


튼튼한 창틀에 목을 맨 아버지를 발견하고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란”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평생 동안 이 무시무시한 장면에 대해서 한 번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들 <아르투르 볼츠만>은 아버지가 죽은 후에야 도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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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던 가역성의 문제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들고 나온 것도 <볼츠만>을 괴롭혔다.


1893년에 프랑스의 위대한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 Henri Poincare>는 닫혀진 역학계는 시간이 지나면 초기 상태로 되돌아와야만 한다는 회귀 정리를 증명했다.


그의 결론은 <볼츠만>과 <맥스웰>이 모두 알고 있었으면서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두 사람은 기체를 통계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면서 증명하지는 못했지만, 원자 집단이 어떤 동역학적인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끊임없이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기체가 모든 가능한 상태를 거쳐 간다는 무작위성을 도입했었다.


<푸앵카레>의 증명은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그런 무작위성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었다.


<푸앵카레>의 정리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계가 반드시 초기 상태로 되돌아와서 똑같은 변화를 반복하게 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었다.


<푸앵카레>는 자신의 새로운 정리 때문에 “영국의 기체 운동론”이라고 부르던 이론이 난처하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2년쯤 지난 후에 <막스 플랑크>의 학생이었던 <에른스트 제르멜로, Emst Zermelo>가 바로 그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했다.


<푸앵카레>의 정리가 요구하듯이 기체를 구성하는 원자들이 언젠가는 정확하게 초기 상태로 되돌아와야만 한다면, <볼츠만>의 H-정리는 언제나 성립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H가 감소해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더라도 결국 계는 H가 다시 증가해서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제르멜로>의 주장은 새로 등장한 강력한 정리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로 슈미트>나 영국의 반대론자들이 제기했던 것보다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볼츠만>도 계의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인정하고 있었다.


<푸앵카레>는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클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었다.


수학적으로 어떤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거나 또는 우리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기간 동안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명백히 다르다.


<볼츠만>은 이번에도 상당히 지친 심정으로 논쟁에 끼어 들었다.


<제르멜로>의 주장에 대한 그의 답변에는 비웃음과 언짢음이 섞여 있었다.


그는 서문에서 “제르멜로의 논문은 그가 내 연구의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독일에서 내 연구 결과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뜻에서 그의 논문을 환영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마친 후에 “역학적 관점에서 자연을 설명하는 이론에 대한 모든 반론은 알멩이가 없는 잘못된 것이다. 기체이론 법칙에 따른 명백한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제르멜로>씨의 충고처럼 이 문제를 포기해야만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볼츠만>은 자신의 주장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상온에서 약 1㎝³의 통 속에 들어있는 약 10억 개의 원자로 구성된 계가 <푸앵카레>가 증명했던 것처럼 정확하게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올 때까지 걸리는 대략적인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그가 얻은 시간을 초 단위로 표시하면 0이 10억 개나 붙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긴 시간이었다.


만약 하늘에 있는 항성들이 모두 태양과 같은 수의 행성을 가지고 있고, 모든 행성에 지구와 같은 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 사람들이 모두 10억 년씩 산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수명을 모두 합친 시간을 초 단위로 표시하면 0이 50개 이하가 된다.


결국 <푸앵카레>의 회귀 정리는 수학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제르멜로>의 반박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엄격한 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1천 개의 주사위를 충분히 여러 번 던지면 모든 주사위가 1이 되는 경우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과가 나타날 확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작다.


<볼츠만>은 <제르멜로>가 “아직까지 그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자신의 주사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같다”고 했다.


<푸앵카레>의 회귀 정리와 <볼츠만>의 H-정리는 확률과 시간 척도의 차이에서 다를 뿐이었다.


무한히 오랜 세월 동안 관찰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나에서 다를 뿐이었다.


무한히 오랜 세월 동안 관찰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우주적인 관점에서는 계가 반드시 초기 상태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푸앵카레>와 <제르멜로>가 옳았다.


그러나 인간의 시간 척도에서는 물론이고 십억 년의 십억 년에 해당하는 시간의 범위에서도 회귀의 가능성은 무시 할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따라서 기체가 가능한 모든 동역학적 상태를 무작위적으로 차지하게 된다는 가정은 엄격하게는 진실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런 가설이 현실에 충분히 가깝기 때문에 아무런 차이도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물질의 물리학에 대한 <볼츠만>의 생각이 옳다고 밝혀지게 되었다.


<볼츠만>은 1895년에 《네이처》에 발표했던 논문이나 1896년에 <제르멜로>의 반박에 대한 답변에서 자신의 그런 주장을 조금씩 확대해나갔다.


일반적으로 영원하다고 생각한 우주 전체가 당시 천문학자들이 밝혀내기 시작했던 것처럼, 항성과 행성, 그리고 빈 공간으로 구성된 불균일한 우주가 아니라, 모든 것이 완벽하게 균일하고 완벽하게 안정된 평형의 상태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클라우지우스>는 우주가 아무런 구조도 없는 정지의 상태로 진화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그런 상태를 “열적 죽음”이라고 불렀다.


이제 <볼츠만>은 그런 상태에서도 확률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일시적으로 일반적인 평형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평형의 상태로 되돌아오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인류가 차지하고 있는 우주의 일부분은 엔트로피가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다가 다시 증가하고 있는 바로 그런 곳이라고 주장했다.


<볼츠만>은 우주의 어느 곳에서는 엔트로피가 감소하고 있을 것이고, 그런 곳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볼츠만>에게는 그런 추측이 기체 운동론의 깊이와 흥미를 증진시켜주는 가능한 짐작으로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에게는 <볼츠만>이 자신의 주장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써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억지처럼 보였다.


이제 <볼츠만>은 H-정리가 명백하게 옳은 결과가 아니라 우주의 특별한 곳에서 한정된 시간 동안에만 성립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가역성에 대한 의문에서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때까지도 확률을 이용한 논리에 익숙한 물리학자는 거의 없었다.


계가 결국은 초기의 상태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푸앵카레>의 이론은 완벽한 진실이었다.


<볼츠만>도 그런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그런 사실이 현실적으로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제르멜로>는 다시 한 번 짧은 답변을 통해서 <볼츠만>이 열역학 제2법칙이 절대적이 아니라 확률적인 법칙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분별 없이 인정했다는 점에서 놀랍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제르멜로>는 <플랑크>의 학생이었고, 1890년대 중반까지도 그런 생각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그 뿐이 아니었다.


영국에서 (1892년에 캘빈 경이 된) <윌리엄 톰슨>도 확실성이 아니라 확률의 계산에 지나지 않는 이론적 예측에 반대하기 시작했고, 겉으로 드러나게 된 모순 때문에 혼란스러워 했다.


1895년 (몇 년 전부터 편지를 주고받아 왔던) 그는 <볼츠만>에게 “내가 되돌아 갈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맙소사! 그런 관점에서 나는 절대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열역학 전체가 그런 것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이 정말 슬프답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다.


많은 물리학자들에게 <제르멜로>의 반박은 심각한 것이고, <볼츠만>의 답변은 종잡을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플랑크>와 <캘빈>은 존경받고 있던 사람들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볼츠만>은 다시 한 번 불행하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외로운 존재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마흐>의 제자들은 <볼츠만>을 원자론의 “마지막 기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젊은 물리학자들의 회고에 의하면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독일과 프랑스의 원로들은 원자론적인 기체 운동론은 막을 내린 것으로 여겼고, 당시의 원자론자들은 방어적인 입장에 있었다.”


<맥스웰>은 오래 전에 사망했고, <클라우지우스>도 1888년에 사망했으며, <슈테판>과 <로슈미트>도 마찬가지였다.


<볼츠만>은 1890년대의 빈에서 자신이 적대적인 지식인들로 둘러싸여 있고, 젊은 무리학자들도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제르멜로>의 반박과 그에 대한 답변을 발표하기 위해서 학술지의 편집자에게 보냈던 편지에서 <볼츠만>은 자신이 얼마나 고립되어 있고, 열세에 처해 있다고 느끼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는 “이제 나는 아주 힘든 형편에 처하게 되었습니다”고 했다.


그는 <플랑크>가 그 학술지의 고문이고, <제르멜로>가 그의 학생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플랑크 씨가 내 답변르멜로의) 답변을 게재하지 말고, 그들이 원하고 그럴 수가 있다면 추후에 발간되는 학술지에 게재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같은 편지에서 <볼츠만>은 자신의 포위된 입장을 “이제 맥스웰, 클라우지우스, 헬름홀츠 등이 모두 사망한 상태에서, 내가 자연은 에너지론이 아니라 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최후의 에피고네로서, 나는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내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라고 표현했다.(그리스 신화에서 에피고네는 테베를 함락시키려다가 죽임을 당했던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 테베를 함락했던 7명의 전사였다.).


같은 편집자에게 보냈던 다른 편지에서 <볼츠만>은 “내가 오늘날의 독일 과학계의 방향을 반대하는 유일한 사람이 될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볼츠만>의 적들은 “마지막 기둥”이라고 불렀고, 그도 가끔씩 자신에 대한 그런 평가를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였다.


그런 상활에서도 그는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더보기

제로존;
제로존 이론의 출발 공준에 K(볼츠만 상수) = 1이 들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모두 거인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제로존이 그 거인의 어깨에 올라 설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해봅니다.

여기에서의 거인은 게시글에서 말한 볼츠만임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책상 위에서 끄적거리는 수학과 실험으로 확증하는 물리학은 다르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험으로 확증하는 것은 그러면 몇 가지로 확증해야 가능한지에 대해서 의문이 있을 수 있겠지요?


이론을 발표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실험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확증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우습지 않습니까?

아인슈타인이 발견해낸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 혹시 또다른 실험에서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그러면 물리학 이론은 어느 정도까지 증거를 확보해야 속이 시원할까요?

수학적 이론과 물리적 실재의 간격은 그래서 과학철학 속으로 이어져나갑니다.

 

 

 

이피리;
제로존이론 논문( ~ http://www.jstage.jst.go.jp/article/dsj/8/0/94/_pdf) 97페이지 하단부 식(3)에 등장하는 7가지 가정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에 대한 논의가 가끔씩 있어 왔지만, 이 참에 볼츠만 상수와 관련한 가정 Q[k] = 1 의 의미에 대해 간략하게 되집어 볼까 합니다. 여기서 Q[.] 는 단위를 가지는 물리상수인 볼츠만상수 k (소문자) 를 단위까지 무차원수(Qunit)로 변환하는 Q변환 operator 를 나타냅니다.

CODATA 에서 2006년에 발표한 볼츠만상수 k는 다음과 같습니다

-> k = 1.380 6504×10^(−23) J/K --- (1)

여기서 J는 에너지(E) 단위 줄(Joule)이고
대문자 K는 온도(T)를 열역학온도(절대온도)로 나타내는 단위 캘빈(Kelvin)입니다.

식(1)로 나타낸 볼츠만상수는 단위 절대온도(T = 1 K)가 몇 J의 에너지에 대응하는가를 나타내는 비례상수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단, 이러한 대응관계는 이상기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요

동일한 볼츠만 상수(소문자 k)를 위의 식(1)과 다른 단위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이 여러가지 표현이 가능합니다

-> k = 8.617 343×10^(−5) eV/K --- (2)
(에너지 단위를 전자볼트 eV 로 나타낸 경우)

-> k = 3.297 6268×10^(−24) cal/K --- (3)
(에너지 단위를 칼로리 cal = J/4.184 로 나타낸 경우)

위 식(1), (2), (3)을 비교해 보면 볼츠만상수의 계수(단위를 제외한) 값이 선택된 단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선택된 단위에 따른 비례상수로 계수 그 자체가 절대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 인공물(artefact)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어떤 량의 에너지(E)를 가지는 이상기체 입자의 온도(T)를 나타내기 위해 아래와 같은 관계식이 적용됩니다

-> T = E/k --- (3)

즉, 에너지를 볼츠만상수로 나누면 온도가 얻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잘 알려진 식입니다.

위식 (1)에서 볼츠만상수를 k = 1.380 6504×10^(−23) J/K 라고 나타낸 것은
에너지 E = 1.380 6504×10^(−23) J 를 온도로 측정할 때 T = 1 K 라고 표시하겠다는 것으로
결국 눈금(Tick Mark) 한 개를 절대온도(1 K) 로 표시하고, J 단위의 에너지에 대응시키는 온도계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이제, 제로존이론 가정 k=1 에 대해 살펴보면(이 부분은 자연단위계와 완전히 동일함)
위의 식(3)에 k=1을 대입하여 아래와 같이 나타낼 수 있습니다

-> T = E --- (4)

위 식(4)에서 에너지(E)와 온도(T)사이의 관계식에서 볼프만상수(k)가 사라졌지요.
이는 온도와 에너지의 단위가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온도계의 눈금을 절대온도 단위 캘빈(K)로 나타내는 대신 에너지단위 J로 그냥 표시하겠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온도계의 눈금(Tick Mark) 하나가 1 J(...1 K 가 아니고...) 에 해당하게 됩니다.

볼츠만상수와 유사하게 광속과 관련된 가정(c = 1) 대해 살펴보면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식 E = mc^2 에서 에너지(E, J)를 광속제곱(c^2)으로 나누면
질량(m, kg)이 아래와 같이 얻어집니다

-> m = E/c^2 --- (5)

위식(5)에서 광속 c = 299792458 m/s 의 무차원계수 299792458 역시 선택된 단위에 의해 정해진 인공물(artefact)라는 생각은 볼츠만상수와 동일합니다. 즉, 길이단위를 미터(m) 대신 킬로미터(km)를 선택하면 광속은 c = 299792.458 km/s 와 같이 계수값이 299792458과 다른 값이 되기 때문이지요

이제 c = 1 을 위 식(5)에 대입하면

-> m = E --- (6)

보통은 어떤 에너지(E)를 가지는 물질의 질량 mass(m)을 kg 단위로 측정 위해
저울 눈금(Tick Mark) 하나를 1kg 으로 나타내지만,
제로존이론을 적용한 식(6)의 경우는
저울 눈금 하나를 그냥 에너지 단위 1J 로 측정한다는 것이 볼츠만상수와 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