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존 이론

[스크랩] 미터법 혁명과 우리 민족의 삼족오 원리

자유지향 2009. 11. 10. 14:50

미터법 혁명과 우리 민족의 삼족오 원리

 

제로존은 그동안 블로그에서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하지 못했던 일부 내용을 들려주고자 합니다.

 

블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자주 언급한 바 있습니다.

"모든 대답을 아는 것보다는 질문 몇 가지를 제대로 아는 편이 더 현명하다."(제임스 서버 James Thurber)

 

먼저 키 화두에 대한 설명을 게시하기 전에 '시간의 불가사의'(일본인 쓰즈키 다쿠지 지음 요코하마 시립대학 교수 역임)란 책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인용 소개하고자 합니다.

 

당대 최고의 지은이를 비롯하여 내용중에 나오는 물리학 석학자들이 그들의 전문 분야를 평생 탐구하면서 최종적인 '알짜배기 질문'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이 드러내고 있는 '제대로 된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게 되면 과학 일반에 대한 더없는 성숙한 지식과 더불어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 게시글의 내용을 글자 하나 하나 관심을 기울어서 차분한 마음으로 정독하면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이 신비스러운 우주와 자연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에 대한 선물을 제공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인용된 내용중에 <<  >>또는 "   " 등 인용 부호는 제로존이 강조하기 위해서 임의로 넣은 것입니다.

 

지금부터 '시간의 불가사의'에서 인용된 내용을  소개합니다..............

 

<1> 처음에 상호 작용이 있었다.

 

우주 탄생 후의 그 진화 과정은 결코 우주 물리학만의 필요성에서 연구된 것은 아니었다. 물리학의 중심 과제인 소립자론을 추진시켜 나갔을 때, 좋든 싫든 우주 개벽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극단적으로 작은 소립자의 연구에 광대한(물론 개벽 때는 작았다......고 생각했었지만) 우주를 연류시켜, 현재는 이 양자를 수레의 두 바퀴처럼 하여 자연계의 궁극이 연구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소립자론이란 당연한 일이지만, 물질을 작게 분할해 가면 결국은 무엇에 다다르게 되느냐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위의 질문은 정말 평범한 듯 보이지만 마음 속으로 삼족오 원리를 생각하면서 읽어보면 대단이 핵심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로존 주-)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현재는 6개의 경입자와 6개의 쿼크가 제안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좀더 속 깊이 (관념적이라고나 할까)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우리가 이 세상에 이러이러한 입자가 존재한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입자를 '관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보기 어렵다고 한다면 현미경을 사용한다. 그래도 안되면 '안개상자'라든가 기포상자를 이용하여 비행기운(飛行機雲)과 같은 비적(飛跡)에 의해서 확인해도 된다.

 

비행기운이 형성된다는 것은 입자가 과포화한 수증기와 충돌하는 (이것을 상호 작용이라고 한다) 것을 말하며, 또 형성된 작은 물방울로 산란된 빛과 눈의 시신경(視神經)이 상호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상호 작용이라는 현상이 없다면 모든 것은 투명해져 버리고, 우리는 대상으로서 아무것도 인식할 수가 없다. 철학적인 우회적 표현은 그만 두고, 간단히 말하면 상호 작용이 없다는 것은 '물질'이 없다는 것과 꼭 같다.

 

그러므로 '자연계에는 최초에 소립자가 있었다'가 아니라, '최초에 상호 작용이 있었다'는 것이 된다.

 

(이는 다른 말로 모든 사물의 이치는 <인연>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불교의 연기설을 생각해 낼 수 있다. 과학 이야기에 혹자들은 왜 자꾸 종교이야기를 하느냐고 불평하지만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적 내용을 모른채 횡설수설 하는 것과 무엇인가 중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복선을 삽입하는 것은 다릅니다.  제로존 주-)

 

입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입자간의 상관 관계(즉 상호 작용)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반대로 상호 작용이 있기 때문에 입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그러면 그 상호 작용에 대해서인데, 여기서 소립자론을 전개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론만을 말하기로 한다. 힘이 센쪽에서부터 들면, ① 강한 상호 작용 ② 전자기 상호 작용 ③ 약한 상호 작용 ④ 중력....의 네 종류가 된다.


<2> 아인슈타인의 소원

 

우주 탄생 이후의 경과를 설명하는 도중에 끼여들어, 소립자론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네 가지 힘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네 가지 힘을 설명하기 위해서, 어떤 의미에서는 우주론이 발달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야기를 좀 크게 잡는 것이 아닌지 모르지만, 자연과학이란 무엇일까. 특히 물리학이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 나가면 좋은 학문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것은 차라리 화학 분야가 되겠지만, 가령 수소와 탄소와 금은 어떻게 다르냐고 하는 것은 물질을 식별하는 데에서 중요한 사항이다.

 

각인 각색으로 기체와 고체의 차이, 단단하기의 차이, 도전성(導電性)의 용이성, 심지어는 값의 차이.........들을 들어 말한들 별도리가 없다.

 

그처럼 성질은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셋은 모두 원자로부터 이루어져 있고, 그 원자핵은 수소에서는 양성자가 1개, 보통의 탄소에서는 양성자 6개와 중성자가 6개, 금에서는 양성자 79개와 중성자가 118개, 그리고전자의 수는 모두 양성자의 수와 같다........고 설명했던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전혀 성질이 다른 이들 원소를 양성자니 중성자니 하는 것이 <<'수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간파한 것은 연구로서 큰 성공이며, 과학이라는 것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물을 해결해 가는 것이다.

 

(여기서 '수의 차이'라는 것은 더욱 깊이 들어가 보면 원소의 구성을 분석

하여 기본 입자로서 강입자와 경입자들의 숫자 차이라는 것입니다. 제로존 주-)

 

그래서 물리학에서도 궁극적인 입자는 비교적 적지 않을까..........하여, 결국은 6종류의 쿼크와 6종류의 경입자에 도달했다.

그러나 입자 그 자체보다도 '상호 작용' 쪽이 <<더 본질적이라는 것>>은 앞에서 설명했다. 그렇다고 하면 현재의 물리학의 궁극 과제는 일견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네 종류의 상호 작용(힘)을 어떻게든지 통합해 보고 싶다.

 

('상호 작용'쪽이 더 본질적이라고 한다면 좀 애매한 표현이 됩니다. 제로존 이론은 위에서 이야기한 '수의 차이'란 말과 함께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제로존 주-)

 

결국은 기원을 '하나'로 하는 것임을 확인하고 싶다..........는 방향으로 나아가, 많은 소립자론 학자는 네 종류의 힘의 유사성이라든가 공통성, 그 밖의 여러 가지 면으로부터 검토해 착수했다.

 

질이 다른 네 가지 힘을 <<무언가 양적인 차이>>로써 설명할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기원쪽으로 가서 '하나'라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그리고 이 하나를 무언가 양적인 차이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동서 고금의 과학자들은 드디어 이 지점에서 미로를 헤매게 됩니다! 제로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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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게시글 초입에 다음과 같은 명문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모든 대답을 아는 것보다는 질문 몇 가지를 제대로 아는 편이 더 현명하다."(제임스 서버 James Thurber)

 

쓰즈키 다쿠지는 어떤 질문을 하고 있을까요? 그야말로 오랜 공부를 하고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 글 <1>에서 쓰즈키 다쿠지는 "자연계에는 최초에 소립자가 있었다가 아니라, '최초에 상호 작용이 있었다'는 것이 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글 <2>에서는 현재 물리학이 이야기하고 있는 네가지 서로 다른 힘을 어떻게 하면 통일할 수 있을까? 하는 최대 과제를 설명하면서 "결국은 기원을 하나로 하는 것임을 확인하고 싶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질이 다른 네 가지 힘을 <<무언가 양적인 차이>>로써 설명할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맺고 있습니다.

 

제로존 이론에서는 쓰즈키 다쿠지의 글 <1>에서 이야기한 최초의 상호 작용을 일관성 있는 '수들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수들의 공통적인 관계를 이어주고 있는 주체가 숫자 1임을 금방 알수 있을 것입니다! 즉 어떤 숫자든지 숫자 1이 모여서 된 것이고 또 이런 숫자들은 사칙연산, 가감승제라는 상호 작용을 우리는 '계산'이라는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직 여기서는 '단위'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쓰즈키 다쿠지의 말 그대로 유비하여 설명하자면 자연에는 최초에 '단위'가 있었다가 아니라 최초에 '숫자'라는 것이 존재하여 자연스럽게 상호 관계, 즉 계산이 발생하는 근원으로서 '상호 작용'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제로존 이론에서는 쓰즈키 다쿠지의 글 <2>에서 네가지 힘이 아니라 보다 더 근원적인 설명 곧 힘을 근원적으로 더욱 분석하는 것입니다.

 

곧 '힘'이라는 '단위' 표현 그 아래에 '숫자'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로존 이론에서 결론적으로 설명하면 쓰즈키 다쿠지가 글 <1>에서 "소립자론이란 당연한 일이지만, 물질을 작게 분할해 가면 결국은 무엇에 다다르게 되느냐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물질을 자르고 또 잘라서 분할의 종국에 '그 무엇'이라는 답변이 바로 숫자 1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눈으로 볼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인 숫자 1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 숫자 1이 바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잘 사용하고 있는 '하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쓰즈키 다쿠지의 글 <1>과<2>를 관통하여 자세히 다시 한번 살펴보면 '숫자'→ '숫자 1'→'하나'라는 것으로 연결되어 드디어 '하나'라는 용어가 단순한 '하나'가 아닌 집합적(set)인 용어로 사용하고 있음을 금방 알아 차릴 것입니다. 불교의 연기설이 여기서 과학적 해석의 기원에 다다라서 좋은 설명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러면 당대의 종교학자, 철학자, 수학자, 과학자등의 석학들도 쩔쩔매었던 다음과 같은 질문에 여러분들은 좋은 해석을 내릴수 있는데 지금까지 복습을 통하여 엄청난 힌트를 얻었을 것입니다.

 

"숫자란 무엇인가?"

 

"하나란 무엇인가?"

 

제로존은 위와 같은 내용을 읽고 쓰고 또 읽고 쓰고하는 반복적 학습을 통해 오랜 시간을 걸쳐서 위와 같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냄새를 풍기는 질문에 현실적인 실제'관찰'이라는 용어를 함께 버무려서 드디어 눈으로 볼 수있는 '빛'이라는 용어를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빛이란 용어는 동서양을 통해서 <위대한 함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 둘...세는 기수로서 숫자와 함께 무엇인가 양을 가지는 '양자(Quantum)'의 개념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제로존은 쓰즈키 다쿠지가 지은 <시간의 불가사의>라는 책 87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은 제목을 보고 눈이 휘둥그려 졌습니다.

 

"모든 것은 양자론적 시간으로부터"

 

제로존 이론은 빛(알갱이)하나=s(시간의 정의를 그대로 사용한 기본 단위)=1로 두고 있습니다. 일반인이 볼때 제로존 이론의 출발 가정을 보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잘 알수가 없습니다.

 

이는 마치 물리학에서 역학의 기초로서 부피가 없으면서 질량이 총 집결한  '질점'정의를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는 비현실적인 모형을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질점에서는 '밀도'를 생각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이런 모형을 직접적으로는 문제 삼지않고 이로부터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효과를 나타냈을 때에 가서나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의 출발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립적으로 s=1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길이m 등에 대해 길다랗게 늘여놓은 숫자도 그 자체를 두고 보면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정말 별 볼일 없습니다!

 

모든 이론의 가정에 있어서 가정 그 자체는 정말 별 볼일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측정의 세계에서 이론의 초입에 놓여있는 가정의 참다운 의미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해석을 논하는 것을 일체 문제삼지 않고 이로부터 생기는 현상론적 효과를 예상하고 계산하여 실험적 데이터와의 정합성, 곧 모순없이 잘 이행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미리 감안하고 다음 글을 생각합니다.

 

제로존 이론의 출발 가정에 특별한 물리상수나 단위를 숫자1로 두고 있는데 여기서 또 생각할수 있는 점은 숫자1이 모든 숫자를 만들어 내는 (어머니 태반과 같은) '모태수'라고도 하지만 숫자1은 '허수'로 부터 만들어 질수 있습니다.

 

모든 숫자에는 숫자1이 들어있고 또 숫자1속에는 허수(정확히 말하면 플러스와 마이너스 허수쌍의 결합 상태)가 들어있습니다.,그러면 실수로서 숫자 1이 모든 수의 근원인가 아니면 허수가 모든 수의 근원인가를 물어보는 것도 제대로 된 질문일 것입니다.

 

여기서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허수'와 관련하여 영국의 천체 물리학자의 <스티븐 호킹>의 이야기를 할때가 되었습니다.

 

<호킹>은 1970년 그의 나이 28세때 팽창우주의 '특이점 정리'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주의 시초에 <특이점>이라는 존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특이점은 수학적 용어로서 수학적 극한인 아주 특별한 점을 기술하고 있는데 특이점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예측한 바 있는 블랙홀이란 괴물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데 무한대의 엄청난 밀도 중심부라고 할수 있습니다.

 

블랙홀의 중심부는 엄청난(무한대) 질량이 꽉꽉 다져있어서 중력 또한 무한대, 곧 공간이 무한정으로 휘어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수학적으로 기술하면 원의 반경이 짧을수록 휘어지는 방향은 심하게 되는데 그 정도를 표현하는데 (반경의 역수를) '곡률'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블랙홀의 중심부는 무한대로 휘어지는 공간의 곡률을 가진 셈이 됩니다. 마치 목욕탕의 넘친 물이 내려가는 구멍 중심으로 물결이 나선으로 휘어지면서 급속히 물이 빠지는 경우를 상상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수학과는 달리 현실 물리학에서는 물리적으로 그런 '무한대'라는 용어가 등장할수 없다는 점 입니다. <호킹>은 수학적 극한이론으로서 이 말썽 많은 특이점(질량 무한대, 곡률 무한대)을 제거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시초가 특이점을 가진다고 하면 그곳에서는 일상적으로 통하는 물리 법칙이 결코 존재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우주의 시초가 그렇다하면 될 것인데 사람들(물리학자들도 포함)은 자꾸 우주의 시초 이전을 상상하고 끈질기게 호기심을 발동하는 질문을 제기합니다. 그래서 <호킹>은 자신이 증명했던 특이점 정리를 부정할 수 있는 '경계가 없는' 우주상을 다시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이미 제로존 블로그에서 경계가 없는 <호킹>의 우주상의 이론을 <<무경계 가설(noboundary hypothesis)>>을 여러번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 이론에서 <호킹>은 빅뱅으로부터 빅 클런치에 이르는 우주의 경로를 조사하는데 '경로 적분'이라는 특별한 수학을 사용하게 됩니다. 

 

가령 빛이 출발하는 지점을 A, 빛이 도달하는 지점을 B라고 할때 이 두곳을 잇는 선은 이론적으로 무수히 그을수 있습니다. 왕서방이 모로 가더라도 서울만 가면 되는 식으로 직선과 곡선등의 다양하게 무한한 선분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중에서 임의의 한 선(보통은 곡선)을 잡아두고 '소요 시간'을 계산하는데 하나의 구간을 여러개로 쪼개서(각각의 쪼개진 부분에서는 광속이 다르다)임의의 주목하는 하나의 A-B간의 경로에 대해 그 전체 합을 구하는 것을 '경로합'이라고 합니다. 

 

경로합을 구하는데 실제로는 '변분법'이라는 교묘한 수학적 계산기법을 이용합니다.

 

<호킹>은 특이점을 없애기 위해서 이러한 수학을 사용하여 '시간의 연속성'을 수식으로 제시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이상하게도 수식에 <<시간이 허수로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허수 시간'을 사용하면 우주가 만들어진 출발점이 특이점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허수 시간'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더 알아보기로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는 빛의 속도는 일정 불변한 것이며, 길이나 시간은 측정 방법에 따라서 바뀌어 질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시간도 길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수식에 짜넣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는 좌표가 4차원이 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선 3차원의 공간 좌표를 각각 x,y,z로 둡니다. 시간은 t(변수)이지만 공간과 마찬가지로 길이의 성질을 지니듯이 시간에 광속도를 c를 곱해서 빛이 지나간 직선 거리는 ct로 두게 됩니다.

 

이 시간축의 방향은 x,y,z로 하면 3차원 피타고라스의 식 (ct)2=x2+y2+z2 이 성립합니다.

 

 

이 식의 해석은 빛이 달려간 거리 ct를 세변의 길이가 각각 x,y,z인 직육면체에 입체적인 대각선으로 보는 것입니다.  또는 ct항을 이항하면, -(ct)2+x2+y2+z2=0 이 됩니다.

 

여기서 상대론적 시간을 3차원 공간에서의 1차원의 시간이라는 듯이 기술한다면, 항상 이 네개의 항의 합은 0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수식은 시간과 공간이 구별하지 않는 일반적인 이야기로 옮길 경우 대각선의 길이가 0이 아닌 항상 유한한 값으로 갖는다는 편이 합리적이므로 4차원 기하학에서는 공간과 시간사이에서 다음과 같은 일정값을 갖는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즉, -(ct)2+x2+y2+z2=s2 여기서 s2는 단순히 A에서B로 빛이 달려갈때에 일정한 값에 불과하다고 해석합니다.

 

여기서 호킹은 <드 지터>의 시공이라는 우주 모형을 특별히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이 우주 모형은 일반 공처럼 둥글고 미끈하여 어디가 북극점이고 남극점인줄을 알수가 없다는 특징을 이용해 먹기위해서 입니다. <호킹>은 그의 우주 모형으로서 지구를 닮은 구형을 생각한 것입니다.

 

즉, 구의 표면이 우주의 공간을 나타낸다고 해석하고 빅뱅은 북극점이라 설명합니다. 우주는 북극점에서 시작되고, 시간이 경과하면 우주의 크기는 표면의 위도선에 비유되어 자꾸 팽창해 나갑니다.

 

가장 팽창한 상태를 지구에서의 '적도'라고 생각하고 최후의 빅 클런치는 모형상으로 남극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호킹은 주목하기를 북극점과 남극점은 결코 특별한 점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확실히 그것은 기하학적으로 보더라도 지구표면의 다른 부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또 여기서 호킹은 위 식에서 시간 t를 허수 즉, it라고 슬쩍 표현합니다. 그래도 시간항의 제곱은 -(ict)2=(ct)2이 되어 공간도+, 시간도+ 가 됩니다. 호킹은 북극점 자체 또는 그 근방의 어디를 측정해도, 시간의 제곱도 공간의 제곱도 모두 플러스의 값으로 되어 특별한 점 따위는 없다고 묘하게 둘러 대는? 것입니다.

 

ct항에 허수가 붙어있지 않은 음수(-)가 붙은 위의 수식을 물리학에서는 <확장된 피타고라스의 정리>라고 하는데 <호킹>은 여기서 ct항에 '허수i'를 붙여서 제곱하면 <보통의 피타고라스 정리>로  되는 것을 오히려 역이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호킹>은 시간이 공간과 서로 다르지 않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피타고라스> 정리, 수학의 변분법을 이용한 경로적분, <드 지터>의 우주 모델등을 적당히 끌어 모아서 특이점을 없애는 방법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호킹>은 왜 피타고라스 정리등에 '허수'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었을까요?

 

<호킹>이 허수를 들고 나온 것은 불교의 '연기설'이나 반야심경에 나와있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알고 생각했을리가 만무할 것입니다.

 

1920년대에 만들어진 정통파 양자 역학에서는 전자를 원자핵의 주위에 떼를 지어 모이는 구름처럼 생각한 것입니다. 곧 전자라는 고전적인 입자 모형이 양자 역학에서 구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름을 수학적으로 기술할때에 허수가 포함된 복소수를 사용한 것입니다. 비단 전자뿐만 아니라 마이크로 세계의 대상물이라는 것은 복소수적이라는 것입니다.

 

금속 속에서 자유로이 움직이고 있는 전자도, 상자속에 갇혀진 분자도 그 상태는 원칙적으로 복소수를 사용하여 기술하는데 그야말로 물리학에서는 허수가 실수처럼 활개를 치고 끼어들었습니다.

 

곧, 입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수학적 기술인 파동 함수라고 하는 것은 실수와 허수가 섞인 복소수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험의 결과로 볼수 있는 관측값은 그 수식을 적당히 주무름?으로서 반드시 실수가 되게끔 양자 역학이라는 것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관측되는 것은 '실수'이고 관측되지 않는 상태라고 하는 것은 희안하게도 '복소수(실수와 허수로 구성)'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누가 왜 하필 '허수'를 사용하여 그렇게 수식을 짜맞추냐고 물으면 아무도 합리적으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니까 관측값에 모순없이 잘 맞아지니까(정합성)...라고 둘러대는 것이 현대 물리학의 위대한? 변명입니다.! 현대 과학 논리의 합리성에 관해서는 과학 철학이라는 내용의 두툼한 교과서를 처음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칼 포퍼와 토머스 쿤과의 치열한 논쟁을 흥미롭게 관전할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의 출발 가정을 설명할때 이론의 가정에 관련된 물리량을 두고 온갖 이상한 소리를 내는 국내 학자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이 이러저러한 소리를 내면 이해 될 법도 하지만 s=1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냐, 또는 길이가 어떤 숫자로 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하는 등 이런 학자들이 준공무원의 고위급 위치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1초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대한 과학의 역사를 심도있게 연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별별 소리가 다 나옵니다.

 

겉으로 무늬만 학자였지 자연 과학의 제대로 기초 개념이 대단히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될때가 올 것입니다. 이론에서 정의, 정리, 증명등에 관련된 제반 개념을 새로이 배워야 할 것입니다.

 

지상 천재들의 두뇌 싸움터가 되고 있는 <모든 것의 근본이 무엇일까?>하는 화두의 끝자락에 다가가면 우리는 새삼스럽게도...새삼스럽게도 그 이름도 진부한 하나의 영역으로 들어옵니다.

 

그 진부한 하나의 영역이란 다름아닌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 이름하여 '종교' 영역 입니다. 서양의 기독교 신앙뿐만아니라 통설적으로 두루 말하여 신학을 공부하게 되면 현대과학의 한계가 되는 질문의 영역에 도움이 될만한 단서를 포착하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은 바로 서양의 과학입니다. 그 서양 과학의 모태가 되고 있는 근원지가 바로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누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 신앙의 모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삼위일체 신앙입니다. 소위 삼위일체론은 기독교 신앙의 총괄이며 요약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기독교회는 神의 위격을 셋(3)으로 표현합니다. 곧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지만 또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계신 분이라고 고백해 온 것입니다. 어떻게 한 분 하나님이 세 인격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하나면 하나이고 셋이면 셋이지 어떻게 하나이며 동시에 셋이 될 수 있을까요?

 

최근 삼위일체 신학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삼위일체론을 통해 전통적 유신론을 논박하고 이와 연관된 무신론까지 이론적으로 극복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세 스콜라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부터 칼 바르트, 라너, 판넨베르크, 위르겐 몰트만, 파니카 문도등 쟁쟁한 신학 논리자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펴는 삼위일체 신학의 내용은 그야말로 무궁무진 합니다.

 

우리는 가끔 과학 관련 사이트에서 과학만 이야기할 것이지 왜 쓸데없는 하나님, 神 등을 운운하는 종교 분야까지 끌어들이냐는 볼멘 소리를 자주 듣고 있습니다. 일상적이거나 보통의 과학 이야기에는 사실 종교 분야가 발을 붙일 소지가 거의 없습니다.

 

정색하고 과학 관련 이야기를 하는데 괜히 종교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가는 좀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어떤 때 과학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가 점점 질문이 근원적으로 돌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답변도 좌충우둘 하고 급기야는 제일 위의 글에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심오한 영역으로 질문의 화두꼬리가 모든 것을 시작이나 근본을 이야기할 단계에 진입할때 입니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과학자, 철학자, 신학자, 종교학자가 따로 국밥처럼 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단계를 잘 참아서 소위 정통 과학자라 할지라도 소위 신학분야를 공부하게 되면 평소 자신의 위치를 자신도 모르게 상실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평소 과학의 한계에 대한 거대한 장벽에 묵무부답으로 일관하던 평소의 자신의 태도가 신학의 어떤 내용, 이를테면 삼위일체 신학 공부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급기야는 자신이 의문시 해왔던 질문에 대한 핵심 실마리를 찾을수 있다는 묘한 감정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결코 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평소하는 직업의 내용에 치우치다 보면 그러한 영역까지 공부를 해야할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엄연한 현실의 생활인이라는 직업이나 지위 보존을 유지하려는 관성이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생토록 전통적인 과학 생활을 영위한 학자가 어느 순간 특별한 계기로 인하여 신학이나 종교 공부에 관심을 가져서 이 분야의 공부를 하게되면 지금까지 관성적으로 알고 있었던 터부시한 신학이나 종교 분야가 자기가 알고 있는 그러한 신학이나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절감하며 깨닫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철저한 무신론자 입장에서 유신론을 거칠게 공박하는 내용을 도저히 저사람이 기독교 교인이거나 신학자들이 맞나?하고 믿지 못할만큼 그들도 스스럼없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삼위일체 신학을 공부하게 되면 이 분야가 자기가 그 토록 알고 싶어하던 과학의 한계에 대한 심오한 답변을 얻게 됩니다. 고금을 통하여 거의 모두라 할만큼 위대한 수학자나 물리학자들이 만년에 들어 종교에 깊이 빠져 신비주의자가 되어버리게 된다는 사실 입니다.

 

신비주의자도 말이 신비주의자이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부류의 신비주의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철학이나 종교등 인문학만 공부하던 사람은 그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마음에서 절실하게 답변을 얻고 싶었던 구체적인 화두꺼리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볼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문학의 경우 학문의 성질상 아주 구체적으로 까다롭게 조건화 되어 있는 기호 조합등의 논리 학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별하게도 예외적인 조항으로 인문학도 자연 과학처럼 디테일한 논리적 체계를 요구하는 분야를 공부할때 입니다. 이를테면 논리학, 경제학등 입니다.  

서양의 삼위일체 신학을 공부하다 더욱 파고들면 동양학 분야에서도 삼위일체 신학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역으로 동양학 분야에서 시작하다가 서양의 삼위일체 신학으로 연결점을 확인하는 과정도 그렇습니다.

 

어떤 서양의 전통적인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자 A가 있다고 합시다. 그 A는 전통적인 자연과학을 평생 탐구하다가 과학의 근원이나 인류 시원에 관련된 질문과 맞닿게 됩니다.

 

예를들어 모든 파동들은 그 매개체를 가지는데 빛의 매개체는 도대체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빛은 유일하게도 그 매개체가 불분명 합니다. A는 스스로 묻습니다. 또 그 빛이 공간을 날아다닐수 있도록 하는 동력원은 무엇일까요?

 

제로존 이론의 경우 삼위일체 신학과 관련짓다 보면(삼위일체 신학과 우리나라 경전인 천부경에서  영감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를테면 '3'의 중요성은 오래전부터 인식한 바 있습니다.) 빛은 그 자체가 매개체이고 또 그 자체가 움직이게 하는 동력원이 된다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성자이면서 성령과 그 의미가 하나가 될수 있는가 의문을 제기하는 신학론자 같이 똑같은 질문으로 어떻게 빛이 그 자체가 매개체이고 동력원이 될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드디어 논리를 뛰어넘는 메타논리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과학과 신학, 종교를 만나게 됩니다!

 

성령은 오직 성부 아버지로 부터만 나온다는 논리와 성령은 아버지 성자뿐만 아니라 아들 성자에서도 나온다는 논리 싸움은 천년의 논쟁을 이끌어 왔던 것입니다. 이른바 그 유명한 '필리오케(filioque)' 논쟁입니다. 이 논쟁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내용이 있어 여기에서 구태여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자연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자들도 앞으로 조우할 우주론등의 난제에 대비하여 반드시 이 부분을 철저히 학습하여 이해를 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기 전문 분야만 파고드는 현실적인 환경에서 자신도 모르게 시대적인 학문적 조류나 동향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필리오케(filioque)' 논쟁의 영역에서 책을 백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떠 오른다는 '독서 백편 의자현 (讀書百遍義自見)'에 기대보기 바랍니다. 

 

무릇, 학문적 겸손함과 처절함 없이 자기 안경의 눈높이로만 제로존 이론에 엉뚱하게 태클을 거는 학자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또 태클을 건다고 하여 비슷한 행동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신학자들간의 '필리오케' 논쟁은 전자 논리로 동방교회(그리스 정교와 러시아 정교)와 후자 논리로 서방교회가 분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의 논리 다툼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논쟁의 불씨가 남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과학사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빛의 매개체가 '에테르'라는 논쟁의 소지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에테르라는 용어가 다른 다양한 이름으로 탈바꿈하여 지금까지 완연히 소실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 사정입니다.

 

이 모든 것이 출발 인식의 근원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에 특별히 주목해야 합니다.!

 

제로존은 필리오케 논쟁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에테르라는 용어를 굳이 내세우지 않으면서 '하나'라는 용어로 오랜시간 이론적 재무장을 해 왔습니다. 제로존 이론의 출발 가정에서 제일 처음 생각해 낸 것이 바로 c=h=s=1 ! 상대성 이론에서 나온 빛의 속도(c)와 양자 역학에서 나온 플랑크 상수(h)를 시간(s)이라는 개념과 함께 '하나'다라는 인식의 출발이 그것입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오늘날 눈부신 물질 문명을 이룩하게 한 현대 과학은 두 대들보 이론인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입니다. 이 두 이론은 우연히 일치인지 필연적인지 모르겠으나 공교롭게도 모두 '빛의 성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실 빛의 성질을 제일 먼저 설명한 민족은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의 3대 경전이라고 한다면 천부경, 삼일 신고 그리고 참전 계경 입니다. 천부경은 조화경, 삼일 신고는 교화경, 그리고 참전 계경은 치화경이라고도 하는데 이 모두 양태론적으로 셋이지만 모두 동시적 하나의 근본을 설명하는데 불과할 것입니다.

 

이는 상계(근원 시점)로 거슬러 올라가서 하늘에 삼신(三神)이 계셨으니 곧, 한 분 상제이시라 주가 되는 몸체는 하나의 神인데 각각 神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용이 삼신(三神)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곧 삼신은 일신으로 조화(造化), 교화(敎化), 그리고 치화(治化)의 '셋'으로 작용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바로 서양의 삼위일체 신학이 의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인기리에 방영된 <주몽>이라는 역사 드라마에서 주몽의 깃발에 '삼족오'가 그려진 것도 기억할 것입니다. 고대 신화에 나오는, 빛을 표상하는 태양 안에서 산다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까마귀입니다.

 

하나의 몸체에 발이 세개 달려 있습니다. 또 세개의 발이 하나의 몸체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숫자'3'은 참으로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삼일(三 一)신고의 삼일 원리가 이 모두가 우리 인식 근원에 관한 심오한 상징을 표상하고 있습니다.   

 

<천부경>에서는 '본심본 태양앙명(本心本  太陽昻明)' 이라고 하여 '창조주의 의지를 근본으로 삼아서 밝음을 높여 태양과 같이 하라'는 <빛으로서의 사명>을 엄연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 땅 그리고 사람 곧 천지인 삼극(三極)을 하나로 동일시 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서양의 삼위일체 신학론을 무색케 합니다. 

 

또 다른 경전인 <삼일 신고>에서 삼일(三 一)이라는 교리는 주체는 '하나'이지만 세 작용으로 나뉘고 작용인 '셋'은 다시 '하나'인 근본으로 환원한다는 이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본래적으로(이것을 천부, 天賦라고 하지요)마음(心), 기(氣), 육체(身)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는 다른 용어로 유비하면 마음은 성(性), 기는 명(命), 육체는 정(精)에 해당할 것입니다.

 

제로존은 이곳 블로그에서 처음으로 밝히는 바, 빛 알갱이라는 하나의 양자(量子)가 의미하는 바가 빛 알갱이는 육체(身)요 정(精)이며, 그 빛 알갱이를 나르는 매개체는 마음(心)이며 성(性)이며, 그 빛의 나르게 하는 동력원은 기(氣)이며 명(命)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묻고 있는 '마음'이란 '기'와 '육체'를 떠나서 설명할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는 시간이 속도와 거리와 분리하여 설명할수 없는 이치와 다를바 없습니다. 속도, 거리라는 용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따로 따로 분리할수 없는 성질로서 '하나'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시간:길이:속도=1:1:1 이 되는 상황이 우리가 사는 측정의 세계에서 학자들이 임의로 정한 단위를 붙이면 1s : 2.99792458×108m : 2.99792458×108m/s가 됩니다.

 

우리는 삼족오의 몸체와 세 발간의 관계가 '하나'의 분명하고 명백하게 그 의미를 표상하여 설명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른 용어도 마찬가지이지만 '삼족오', '몸체', '세 발' 이라는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들 용어간의 '관계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삼족오라는 새의 실체가 존재하느냐 아니냐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창조자 신도 그렇고 성부, 성자, 성령이란 삼위의 인격에 대한 논쟁도 그렇습니다. 제로존 이론에서 사용하고 있는 숫자도 그러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현실의 우리가 사는 측정의 세계에서 우리의 총의로 약속한 규정이나 언어들간의 관계, 이들간의 상호작용 자체의 의미를 살펴봄으로서 우리가 사는 세계에 올바른 정보를 얻어내는 것입니다. 그 올바른 정보야 말로 우리가 사는 삶의 의미를 더욱 세련되고 성숙하게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구성 성분들이 결코 독립하여 의미를 가질수 없다는 것에 우리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합니다. 바로 모든 것이 '사랑'과 '자비'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하나'라는 의미가 오늘 또 다시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읽어 보고 삼족오의 그림을 다시 살펴보면 예컨대 하나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표상을 볼수 있을 것입니다. 실수로서 숫자1의 몸체 속에 플러스 허수, 마이너스 허수와 함께 모두 숫자3의 상징을 읽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눈으로 볼수 있는 것이 '하나', 눈으로 볼수 없는 것이 '둘'로써 이들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세개는 형식적으로 하나를 보게 되면서 동시에 시간이 드디어 흘러가는 것입니다. 천부경에서 34성환이라고 하여 세개를 보는 순간 관찰자를 합하여 수리 4가 되어 드디어 법의 바퀴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측정의 세계입니다.

 

모든 것의 근원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우리 민족의 경전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경악스러움을 금치 못합니다. 오늘날 물질문명에 찌든 우리들에게 원래의 자세를 생각하면서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원시반본(原始反本)의 정신입니다.

 

모든 눈에 보이는 사물의 표상들이 사랑과 자비에 대한 동어 반복에 불과한 것이라는 이치는 이것이말로 바로 오늘의 이 민족의 갈길과 세계 인류구원의 위대한 자각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제로존 이론은 겉으로는 물리학의 측정 이론으로서 미터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보여줍니다.

 

"Brand New Tomorrow" 항상 내일은 완전히 새로운 날이다!

 

21세기는 모든 인류가 깊은 마음에서 받아 들일수 있는 '새로운 해석의 시대'입니다.

 

그런 통일적인 해석이 나올수 있을까요?

 

제로존 이론은 멀지않는 미래에 새로운 논문으로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받아 들일수 있는 흥미로운 해석을 보여줄 것입니다!

 

기대해 보십시오.....

 

[출처] 노벨상을 너머 21세기 미터법 혁명과 우리 민족의 삼족오 원리 |

작성자 제로존 : dongbong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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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존 :

제로존 이론은 형식적으로는 <비교 측정>의 근간을 어떻게 설정하는가를 물리적 기호(물리량)로 표현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측정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는 사람이 가진 <인식 출발의 기본적인 상태>에 관해 설명합니다.

무엇인가 '측정한다'는 제개념은 행위를 포함하여 인식 일반상태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인식 일반상태'인가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현재 과학의 시스템은 각설하고 인식 일반상태를 이분법의 진위 판단을 하는 하나의 형식 논리에서 나온 시스템입니다.

물리학에서 자주 듣는 '상태 방정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상태 방정식중에서 고전 역학에서 대표적인 것이 이상 기체 방정식 입니다. 변화하는 세계에서 일종의 '상태'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상 기체인가를 정의하는 것을 살펴보면 참 말도 안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기체 분자는 크기가 없고? 분자 사이에 인력이나 반발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완전탄성운동시 기체 분자들이 충돌할때 에너지는 손실되지 않는다.(아무리 작아도 지면은 크고 작은 요철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완전탄성운동이라는 것은 완벽히 요철이 없는 표면 상태를 상정하는 것입니다. 시쳇말로 말도 안되는 것이지요.)

표준연에서 제로존 이론의 가정에서 크기가 없는 분자를 들먹이면서 이런 이상한 기체 방정식을 정의한다면 말도 안되는....가정부터 틀렸다고 할 것입니다.ㅋ 또는 과학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ㅋ


물체의 운동량과 위치를 표현하는 것도 일종의 상태에 대한 설명입니다.

규모가 큰 세계에서 운동량과 위치의 상태를 표현한 것과 규모가 매우 작은 미시 상태의 운동량과 위치 상태를 표현하는 방법과 해석이 다릅니다.

고전 역학과 양자 역학은 물질의 '상태'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서로 다른 '조작적 정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왜 번잡스럽게 이렇게 할까요?

무엇인가 움직이는 물체에 대해서 측정을 잘하여 유용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유용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한 최초의 미끼 전법?이 조작적 정의에 의한 이분법으로서 옳다/그르다를 매번 상황에 맞추어서 얻어내는 것입니다.

인식 출발의 기본적인 상태를 그리면서 제로존 이론의 출발 가정 안에는 '이분법'이 아닌 '삼분법'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맨 먼저 빛과 관련한 '상태'에 대한 묘사입니다. 찾다보니 기존 물리적 질서를 가진 것 중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핵심이 되는 광속 불변성을 우선적으로 이용해 먹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광속 불변성에 대한 제로존 이론 나름대로의 합리적 이유를 보강합니다.

인식 출발 기본적인 상태를 마음속에 이미 그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빛의 속도와 빛이 달린 거리 그리고 이 관계에서 나온 시간이 1:1:1로 설계한 것이 그것입니다.

빛 알갱이 하나가 가진 속도, 빛 알갱이 하나가 가진 거리, 빛 알갱이 하나가 가진 시간이 무차원수 1로 서로 3등가를 이루고 있다고 설정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 3등가로만 만족하여 우주와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기술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물리학에서 표현하고 있는 다른 상태와 관계를 맺게하는 것입니다.

부족하다는 이유는 매우 중요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 적절한 기회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우선 핵심적인 이야기를 할 것 같으면...

인식 출발의 기본적인 상태를 유일한 사람의 눈높이에만 맞추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인식이라는 말은 매우 어려운 말이지만 사람이외의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또는 존재가 부정된다는 결론이 확실하지 않는한 외계인의 인식도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제로존 이론의 출발 가정이 내포하고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이분법의 맞고 틀리는 진위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측정 세계에서 '유일성'과 '독립성'을 보장하여 서로 다르다는 차별이 아닌 차이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받아 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인식 출발의 기본적인 상태가 등가라는 개념을 내세워야 한다는 현실 비교 측정에 대한 당위성입니다.

당신의 생각이나 판단이 또 다른 존재와 고려하여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더욱 포괄적인 측면에서 다른 입장이라는 것을 출발 이론에서 포함시킨 것입니다.

그리하여 삼분법이 현재 과학의 형식 논리가 내세우고 있는 이분법의 의미를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다음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형식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이분법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심층적으로 들어가면 눈으로 볼수 있는 것이 '하나', 눈으로 볼수 없는 것이 '둘'로써 양태적으로 세개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숫자1이 형식적으로는 허수와 다른 실수라는 이분법의 표상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러나 심층적으로 들어가면 실수 하나와 허수쌍으로 세개가 분리할수 없는 하나의 몸둥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시글에서 보여주는 삼족오의 형상이 보여주는 상징이 그러합니다.

세개의 발을 가진 주인은 양태론적으로 '한 마리'의 까마귀입니다.

다음은 재미나는 우스게 이야기입니다. 이분법이 가진 유머스러운 위기를 활용한 것입니다.


-판매원의 능력-

성경책 판매원을 모집하는 광고에 한 남자가 응시하여 면접시험을 보았다.

"저저저는 서서서성경책 파파판매원이 대대되고 싶습니다."

당연히 면접관은 이 사람의 판매능력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 직장에서의 판매이력을 보고 그 사람을 뽑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 사람들의 놀라움 속에 신입사원의 판매율은 하늘을 찌를 듯이 올랐고 그 회사에서 성경책을 제일 많이 판 사람이 되었다.

얼마 후 회사에서는 그 신입사원에게 판매방법을 강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이건 아아아주 가가가간단합니다. 우우선 초초초인종을 누누누르고 사사사사람이 나오면 이이렇게 마말합니다.

서서서성경책을 사사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제제제제가 드드드들어가서 이이읽어 드드드드드드릴까요?"

외판원을 맞이하는 주인은 외판원의 상태 판단에 대해서 받아 들이느냐 거절하느냐는 이분법에 몰린 것입니다.

여기서 후자는 말 더듬이의 지루한 책 읽기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성경책을 사는 것에 대한 반대 논리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받아 들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책을 사야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또 일상적인 것은 주인이 말 더듬이인 외판원의 이분법과 다른 하나의 상태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책을 사는 것도 아니오 그 반대 논리로서 책읽기를 강요당하는 것은 외판원의 마음속 서로 다른 반대 논리로써 '하나'의 생각이지 내 생각은 또 다른 차원의 '하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른 차원의 하나는 아무 말없이 잽싸게 아파트 문을 닫아 버리는 것입니다. 꽝~

바로 이런 현실이 오늘날 차가운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삼중성의 원리입니다!

너가 가진 두가지의 반대 논리와 내가 가진 하나의 또 다른 논리는 삼위 부정이 됩니다!

아~ 그러니까 (현실에서)삼위 부정이 존재하는 것은 (이론에서) 삼위 일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현실에서 말하는 형식적 이분법이 명실공히 존재하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삼위 일체냐? 삼위 부정이냐? 이것도 이분법이네...?

이제 우리는 신학의 핵심 논리가 되는 삼위 일체냐 삼위 부정에 대한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를 우주의 시원과 함께 아이들에게 쉽게 이야기해 줄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커서 이 두가지 논리에 대한 질문을 해오면 여러분은 게시글의 삼족오 그림을 침묵속에서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


중요한 것은 보기가 아름다운 것으로 " 쌍"의 개념 입니다.

쌍은 숫자 2 로 표상합니다.

서로 부족한 것을 보상합니다. 그런데 숫자 2는 하나라는 숫자1과 삼족오를 표상하는 숫자 3과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오직 유일한 하나의 존재로 계신 하느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는데 6일이 소요 되었고 마지막 7일은 휴식을 취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의 단위를 7일로 하고 있습니다.

숫자 7를 이진법으로 표시하면 어떤 숫자가 나올까요.?

짠~~~ 바로 "111" 입니다! 숫자 1이 연속적으로 3개가 나오네요.

숫자 1속에는 쌍의 개념 2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연속된 숫자3으로 보이지만 한(1)쌍씩(2) 세(3)쌍이 하나로 드러나 보입니다.

하나는 둘이고 둘은 셋이 되는 순간 다시 하나로 돌아 갑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하나가 되는 3.1 원리 곧 삼족오의 원리 입니다.

댄싱유하면 춤추는 당신이 아니라 춤추는 세쌍의 당신들 입니다. 이 세쌍이 하나의 '원'이라는 기하속에서 서로 조화와 미학을 가집니다.

이는 다른말로 '원융 삼제' 라고도 합니다.

쌍이 세쌍은 2x3=6 이되여 이 숫자6은 천부경의 81자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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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존 :

...

주말에 올린 exact2008님의 질문이 매우 예리합니다. 바로 질문에 답하기 전에 좀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제로존이 낡은 노트를 펴 놓았습니다.

블로그를 쭈~욱 훏어보니 제로존 블로그 지킴이 ujy007이 댓글 100을 먹었네요.

우리가 보통 '백'이라는 단어를 쓰면 '꽉 참'또는 모든 것의 '충만'을 생각해 냅니다.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만땅으로 넣어주세요라고 한다면 승용차 기름탱크에 모자람없이 충만의 비율과 관련하여 백 프로로 가득 채워달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면 제로존이 질문합니다.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이런 질문을 받으면 우선적으로 눈으로 무엇인가 확인하여 볼 수있는 그 '무엇'을 먼저 생각합니다.

제로존이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그 '무엇'은 결코 눈으로 볼 수있거나 지각할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것의 시초>와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오랜 세월을 두고 차츰 차츰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 무엇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바로 '추상적인 것'입니다!

추상적인 것이라고 하여 '사랑'과 '아름다움'등 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세상을 만땅으로 가득채우고 있는 것은 다른말로 일단은 생각하기에 빈틈없이 공간을 메우고 있는 그 '무엇'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논리적으로 유추해 보건대, 그 무엇이야 말로 이름을 무엇으로 짖던간에 모든 것을 구성하고 있는 그야말로 참다운 '기본 존재'일 것입니다.!

우리는 위에서 이야기한 용어, '공간'이니 '존재'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그 용어에 대한 지금까지의 상식적인 사고의 틀을 해체시켜야 할 것입니다!

물리학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는 '공간'이라는 용어 자체도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당연한 것 같이 사용하고 있지만 '시간'과 마찬가지로 그 정의가 아직까지도 애매모호 합니다.

실제로 누구에게 '공간'이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 아마 당황 할 것입니다. 공간이 들어간 말 중에서 수학에서 일반적인 집합?을 공간이라고 하는데 위상 공간등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의미는 애매하기 마찬가지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시간을 공간과 같은 등가의 또 하나의 차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시-공간이라고 한 것입니다. 영어 표현으로는 관습적으로 space-time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2008님의 표현대로 중력은 공간의 휘어짐이 아니라 시-공간의 휘어짐이라는 표현이 정확히 맞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공간의 또 다른 등가의 차원이라고 해 놓았지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이 문제란 현재 이 시각까지 물리학에 있어서 끈질기게 해결되지 못한 지독한 미스테리 문제 입니다!

여하튼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은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등등 상하 전후 좌우 위치를 마음대로 바꾸어 가면서 방향을 이동 변경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오로지 과거-현재-미래 순으로 방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자를 공간의 대칭성 후자를 시간의 비대칭성 또는 시간의 화살이라고 자주 표현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을 공간과 등가라고 해 놓았지만 자세히 따지고 보면 시간과 공간은 정확히 등가라고 하는데 무리가 생긴 것입니다.(수학에서 일반 집합을 공간으로 하면서 그 구성 요소를 점으로 고려한 추상공간을 취급하는데 여기서 '점'이 도대체 무엇인가가 애매모호 합니다.)

또 중력을 단순히 공간의 휘어짐이라고 해도 좀 헷갈리는 판에 시간까지 휘어짐이라고 하는 해석이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직까지 어려움을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상대성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학자들이 서너명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했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이 말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채 아인슈타인이 사용한 고급 수학의 수식이 어려운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미분 방정식에 대한 수식의 해석도 대단히 어렵지만 상대성 이론이 난해한 것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시-공간의 왜곡과 관련하여 <시간의 화살> 문제에 대한 지독한 미스테리 입니다.

이 시간이라는 괴물의 거대 담논은 비단 물리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창조 이후 철학 종교등 모든 학문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공간과 함께 시간의 수수께끼에 대하여 상대성 이론의 수식을 사용하여 핵심 화두로 들고 나온 것입니다.

수식의 복잡 난해함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리학의 수식이 어려운 것은 비단 상대성 이론에서 나온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이론에서도 부지기수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이 문제에 대해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시-공간의 등가라 해 놓고 혼자서 엄청스럽게 속병이 생긴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블로그 가족 여러분들도 상대성 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난해함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이해했으리라 믿습니다.

그는 중력이 시-공간의 등가와 관련하여 시-공간의 왜곡이라고 설명했지만 전자기력은 시-공간의 왜곡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또 고민에 빠졌습니다!(exact2008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지금까지도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이론 발표 당시 중력과 함께 전자기력이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중력과 전자기력의 통일에 대한 숙제였습니다. 이름하여 그의 평생의 숙원 사업이었던 '통일장 이론'이 그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그 당시 몰랐던 힘의 문제가 바로 자연의 네가지 힘 중에서 중력과 전자기력 이외에 방사선을 자발적으로 내는 붕괴와 관련된 힘 곧 약력과 원자핵이 안정성을 제공하고 있는 핵력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양자역학이 발전하여 자연에 존재하는 네가지 힘 곧 중력,전자기력,약력,핵력의 통일을 통일장 이론 또는 대통일 이론(Grund Union Theory, GUT)이라고 보통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 1915년 특수 상대성 이론을 업그레이드 한 일반 상대성 이론입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이 <질량과 에너지가 등가>라고 하여 일대 소동을 벌인바 있는데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중력과 가속이 또 등가>라는 것을 밝혀낸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인슈타인은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고 철썩같이 알고 있던 자연에 존재하는 물리량들이 근본에 있어서 다른 것이 아님을 '등가'로 표현하여 하나 하나씩 밝혀 왔던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름 앞에 '물리학의 거목'이라고 후세 사람들이 회자하는 것이 단순히 립 서비스가 아니라는 것을 블로그 가족 여러분들은 또 한번 정녕코 이해했으리라 믿습니다!

매번 이야기 했지만 제로존 이론의 위대함이 바로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모든 물리량들이 근원이 하나라고 하는 등가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말이 이론이지 과학 철학사적으로 깊이 탐구하여 그 의미를 곰곰히 깊이 따져보면 제로존 이론은 놀랍다 못해서 섬뜩스러워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제로존 이론이 한반도 대한민국에서 나왔다는 것이 정말 제로존 조차도 믿기 어려울 정도 입니다.

저번 댓글에서 언급하다시피 대통일 이론을 풀기위해 질주하는 네가지 힘도 결국 '하나'라는 근원에 귀착합니다. 제로존 이론의 논문을 심사한 심사원들도 제로존 이론의 깊은 의미에 대해서 아직까지 잘 모를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제로존 이론이 실험 데이터와의 정합성만을 따져 보았을 것이고 제로존 이론이 만들어 놓은 '자체 검증'을 통하여 논문을 승인한 것입니다.

그들이 오랜 시간동안 검토하여 승인한 제로존 이론의 논문이 그 내용에 있어서 세상에 어떤 파급효과를 낼런지 정녕코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물리학자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아인슈타인이 풀지 못한 미완의 숙제, 곧 자연에 존재하는 네가지 힘의 통일에 대해서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들이 모든 것의 시초에 '추상성'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은 그 추상성의 구체적 표현에 오늘날 모든 것의 비교 계산의 측정에 사용하고 있는 '숫자'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간도 숫자고 시간도 숫자며 힘도 숫자라 그리하여 우주 자연 모든 것에 숫자로 충만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곧 추상성이 바로 모든 것을 채워주고 있는 '충만'입니다.

그 충만의 설계도면에 형식적으로 기하학이 등장합니다. 바로 숫자들간의 심오한 관계로서 기하학은 조화로운 수열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활에 즐거움과 슬픔, 열정과 비탄을 주는 음악은 바로 수열의 관계입니다. 교묘한 수열의 관계는 대칭성을 주고 그 대칭성은 반대칭성, 비대칭성으로 인하여 활력을 제공합니다.

우주의 시초에 에너지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우주의 시초에 숫자들의 조합이 있었다고 제로존 이론은 이야기 합니다. 그 숫자들의 조합이 바로 대칭성과 비대칭성, 반대칭성으로 드러나는 그들간 상호 작용입니다.

그 상호작용에서 '소리'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리학은 바로 음악이라 할수 있습니다. 누군가 제로존 이론이 숫자만이 있고 그 숫자에는 크기만 있고 방향성을 이야기 하는 소위 벡터가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소위 크기만 가진 스칼라 양만 있다고 짜증을 냅니다.

숫자에도 방향성이 있습니다. 단지 조화로운 대칭을 가지면 겉으로 방향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뿐 입니다.

이것을 물리학에서는 방향이 내재되어 단지 보이지 않는 '스칼라 포텐셜'이라고 합니다. 스칼라 포텐셜의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위치 에너지' 입니다. 지상의 어떤 물건이라도 위치 에너지를 가집니다.

이 물건은 방향을 가져서 운동하기 전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다른 말로 크기만 가지고 있는 에너지 곧 '스칼라 포텐셜'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제로존 이론에서 숫자 하나 하나는 그 숫자가 표상하는 크기로 '스칼라 포텐셜'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기와 방향(벡터)을 가진 힘이라는 물리량 조차 물리량들이 상호 작용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힘이라는 독자적인 그 자체의 그 근원을 살펴보면 스칼라 포텐셜일 뿐입니다.

물리량의 계산 과정에는 크기와 방향이 있지만 계산이 종료하는 순간 크기만 가질 뿐입니다.

무릇 모든 관찰 대상인 물질은 빛이 응고한 결정체라고 이야기 합니다. 얼어붙은 빛이라는 것이지요. 제로존 이론에서 빛 하나 하나는 숫자로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물질이라는 것은 계산이 완료된 숫자라는 추상성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시간도 숫자로 표현합니다.

결론적으로 해석해 보면 우리가 보는 모든 물질은 '얼어붙은 시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곧 정지된 시간이라는 것이지요.

크든 작든 모든 물질의 상호 작용은 얼어붙은 시간과의 상호 작용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상호 작용을 하면 그 과정에서 얼어붙은 시간들이 그야 말로 녹게 되어 그 과정에서 흐름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너지의 흐름입니다. 에너지의 흐름은 제로존 이론에서 숫자들간의 상호 계산이 개시되는 과정과 같습니다! 그래서 숫자에는 다행스럽게도 디지털스러운 자연수,정수가 있고 아날로그스럽게도 끝없이 연속적으로 이어가는 원주율 파이와 같은 초월수도 존재하게 된 사연입니다.

그러고 보니 숫자라는 존재가 새삼스럽게도 참으로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제로존은 본 게시글에서 오늘날 물리학자들의 말을 빌려서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이름 곧 '물질'이라는 것을 쪼개고 또 쪼개면 마지막으로 남는 가장 기본적인 그 무엇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분석해 보았더니 <전자>와 <쿼크>라는 물질 입자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 이를테면 하늘,먼지,수증기,박테리아,사람,자동차,나무 등등 이 모두 기본 구성물질이 구체적으로 이름하여 <전자>와 <쿼크>라는 물질 입자라는 것입니다.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전자>와 <쿼크>라는 물질 입자는 이것을 구성하는 내부 구성 성분이 별도의 이름을 가진 그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묻기를 전자와 쿼크를 쪼개고 또 쪼개면 그 안에 또 다른 이름을 가진 더 쬐끔한 존재하는 근본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 현재의 물리학자들은 더 이상 없다고 쐐기를 박는 것입니다.

하기야 보통 사람들은 자주 듣고 있는 전자의 그 작은 크기를 알지 못합니다. 금 한돈의 무게는 3.75그램입니다. 손에 얹혀 놓으면 아주 가볍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이 무게를 생각하면서 전자 한개의 무게(질량)는 0.00000000000000000000000000091그램정도 됩니다.

소숫점 밑으로 동그라미가 27개가 달리는 아주 상상도 하지 못할 적은양 입니다. 이거 동그라미가 몇개인지 일일이 확인할려고 하면 눈알이 피곤해질 것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표현해 놓으니 ujy007이 화면에 눈을 바짝 붙여서 세고 있더군요.ㅋ 그래서 과학자들은 약속을하여 전자 한개의 무게를 10진법을 사용하여 대략 9.1*10^-28g으로 간단히 표현합니다.

과학에서 표현하는 이런 간단한 방식은 모두 '경제적'인 표현이 됩니다.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대자연의 원리와 같은 것이지요.

이제, 머리속으로 상상할수 없는 이렇게 작은 무게를 물리학자들은 어떻게 측정할수 있을까요? 전자 한개를 핀센트로 끄집어 내어서 천칭으로 잴수 없을 것입니다.

이 작은 전자 한개의 무게를 실제로 실험실에서 측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첫째로 할일이 세계 모든 사람들을 대표한 학자들끼리 모임을 가지고 약속하여 <단위 표기법>을 제정해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미터법 단위 제정입니다.

전자 한개의 무게와 관련하여 미터법 제정에는 1kg이 어떤 정도의 양인지 미리 정의해 두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국제적인 무게와 관련된 번거로운 '미터법 원기'를 만들어 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단위와 관련하여 6개의 시간,길이,전류,온도 등의 단위도 미리 정해둡니다.

집안에서 어떤 사람이 총으로 피살되었을때 현장에 도착한 수사관들은 탄환의 다양한 흔적을 조사하거나 부검을 합니다.

상처의 상태나 탄환의 굴절궤적등을 조사하여 어떤 총기인가 어디서 탄환이 날아 왔는가 등 피살과 관련된 다양한 법의학적 분석을 통하여 여기서 간접적으로 총알의 무게등을 이론적으로 계산해 내는 것입니다. 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법의학을 별도로 배웁니다.

작은 전자 한개의 무게를 측정하는 방식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승용차에서 차의 속도를 내는 가속페달이라는 용어를 알고 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아주 작은 입자들을 엄청난 에너지를 이용하여 거의 빛에 속도를 내게 가속시켜 입자들간을 충돌시키거나 과녁에 충돌시키는 가속기(엑셀레이터)라는 거대한 기계장치를 이용합니다.

이 가속기라는 장치를 이용하여 입자들을 충돌시킬때 나타나는 현상을 특수한 장비를 사용하여 충돌에서 생기는 아주 조그만한 쪼가리들의 궤적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오늘 신문을 보니 유럽 공동 원자핵 연구소에서 얼마간 중단되었던 약 10조원을 들인 거대 가속기(LHC)가 수리를 마치고 정상가동 되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특수한 장비중에서 쪼가리들이 기포나 물안개를 만들면서 밖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분석하는 거품 상자도 있습니다. 거대 가속기가 설치된 연구소에는 물리학자나 전문 공학자들이 궤적을 추적하는 현상 검사관이 그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측정에 필요한 이론은 주로 이론 물리학자들이 맡고 실험실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이 이론을 바탕으로 실제의 측정에 참가하는 응용 물리학자들입니다.

그러면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이 세상을 가득채우고 있는 것은 빈공간에 무엇인가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인데 그 무엇에 해당하는 이름이 바로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에너지'입니다. 자~ 그러면 '에너지'라는 용어가 또 나왔습니다.

이점을 추상성으로 마음 속에 깊은 화두로 두고 다음 글을 계속합니다.


빈 공간이란 말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인데 물리학자들은 그 빈공간에 어디서 기원하는지는 말할수 없지만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름하여 '진공 에너지'입니다.

또 여기서 '진공'이란 용어가 나왔습니다. '에너지'와 함께 '진공'이란 또 무엇을 뜻할까요?

현대 첨단 물질문명을 이끌어 온 소위 물리학의 양자역학이란 이론은 <진공 에너지>의 존재를 가정합니다. 이 진공 에너지에서 물질의 기본 입자인 전자와 쿼크가 만들어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무릇 진짜로? 아무 것도 없는 곳(참 진,비울 공의 眞空)에 묘하게도 무엇이 존재한다"는 '진공묘유(眞空妙有)'가 그것입니다. 이 문장은 논리적으로 모순된 문장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진공묘유는 겉만 다른 채 내용적으로는 하등 다를 바 없이 현대 물리학을 선도하고 있는 양자역학의 이론적 가정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흥미롭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제로존 이론의 가정을 두고 국내 학계에서는 "이론의 가정이 잘못되었다고 하거나 물리학적 가치가 없다"고 기자 회견을 한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정말 대단히 희극적인 풍경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제로존은 이러한 해프닝을 생각하면 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이론의 '가정'에 대한 개념 정립에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국내 일부 학자들이 세계 만방에 폭로한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과학계에 몸담고 있는 일부 학자들이 자연과학 기초이론에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 구체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것 저것 따져보지 않고 제로존을 촌놈 비스무리하게 우습게 본 것이지요. 또 다른 말을 하면 국내에서 나오는 논문이 요즘 자주 문제가 되고 있는 것과 같이 지극히 내용이 없이 형식적으로 일관하거나 표절 또는 엉터리가 횡횡 하고 있었다는 사회적 반증입니다.

물리에서는 '사랑','아름다움' 등의 감정이 아닌 어떤 계산 가능한 양,물리량을 정의할 때 이것보다 더 기본적인 물리량을 가지고 정의(definition)합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물리량을 정의할때는 어떻게 할까요? 이때는 물리량을 측정하거나 정하는 방법을 가지고 정의를 합니다. 이런 류의 정의를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라고 합니다.

생각해보건대, 세상에 나온 물리 이론중에 '조작적 정의'를 이용하지 않는 가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정이라함은 구체적으로 따지고 보면 그냥 가정이 아니라 이론적이란 수사가 붙는 그야말로 '이론적 가정'인 것입니다.

이론의 가정치고 '실제적인 가정'이란 말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실험 물리학자들은 소위 물질의 기초가 되는 기본 입자를 만들어 내거나 탐지하는 수단으로 에너지가 무지 많은 빛을 사용합니다. 그러면 에너지와 빛의 관계는 또 무엇입니까?

우리 사람은 시각을 통하여 볼수 있는 빛과 볼수 없는 빛의 영역이 있습니다. 이를 가시광선, 비가시광선 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들은 진동수가 높은 영역의 빛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고 들어 왔을 것입니다.

가령, 사람 눈으로 볼수 없는 빛을 집에서 기르는 개들은 볼수 있습니다. 하늘을 높이 날고 있는 '매'들은 그 예리한 시각으로 수면에서 순간적으로 뛰어 오르는 물고기들을 높은 곳에서 포착하여 순간적으로 물고기를 낚아 채는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총 고기는 물을 발사하는데 수면위에 나와있는 나무에 앉아있는 곤충을 정확히 겨냥하는 사냥 기술이 있습니다.

사람을 위시하여 모든 동물들은 순간 포착 능력이 있습니다. 이 순간 포착 능력은 선천적인 지능이라고 할수 있는데 이 모든 지능과 관련하여 인지 능력은 모두 체내외의 빛을 이용한 상호작용 시스템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면 빛은 그 시초와 관련하여 도대체 어디서 기원했을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일단 빛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백색광을 이용하는데 빨주노초...등의 주파수 대역별로 빛의 스펙트럼이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잘 아는바와 같이 빛의 삼원색은 빨강(red),초록(green),파랑(blue)입니다. 아것을 영어 약자로 쓰면 RGB입니다. 빛이 나오는 것은 외부로 부터 또 다른 에너지의 빛을 받아들였다가(여기상태) 나중에는 다시 원래의 자기 고유의 주파수를 가진 빛으로 회귀할때 입니다.

이 회귀 과정에서 정상 상태로 돌아온 것을 말합니다. 이는 마치 물을 높은 지대로 억지로 끌어 올려두어서 가만히 두면 다시 낮은 지대로 내려오는 것을 말합니다.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외부의 특별한 에너지의 도움없이 그야말로 자연적인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빛은 고유한 자기 상태 곧 운동이 없는 정적 상태(정상상태)로 내려온다는 자연의 원리는 외부의 불필요한 에너지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곧 '자연상태'란 고요한 상태, 자기 고유의 진동수로 회귀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라는 글귀는 '낮은 곳'이란 바로 물리적으로 낮은 지역의 위치나 신분이 낮은 지위나 명예를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고유한 위치로 되돌아 갈것을 주문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스스로 자기의 주체나 개성을 잘 알아서 자기 분수를 지키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는 또 다른 말로 소크라테스가 이야기 하듯이 '너 자신을 잘 알아라'라는 이야기 그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은 결론적으로 <모든 존재의 근본>을 다시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에서 모든 관찰 대상은 자기 고유의 주파수(진동수)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관찰 대상이라 함은 눈으로 보이거나 지각되는 대상뿐만 아니라 눈으로 보이지 않는, 물리학에서 계산 가능한 물리량 그 외의 모든 것까지도 포함합니다. 이점에서 특별히 제로존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물리학은 계산 가능한 양, 물리량만을 이 세상의 모든 비교 측정을 하는 계산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로존 이론은 이를 더욱 확장시켜 어떤점에서 어떤 점까지의 상대적 비교 개념을 표현하는 '거리'라는 개념, 어떤 시점에서 다음 시점까지를 표현하는 개념인 '시간'이라는 개념, 또 어떤 물건의 무겁고 가벼움을 표현하는 상대적 '질량'이란는 개념등이 모든 눈으로 보이지 않는 차원이 다른 개념까지도 고유한 주파수(진동수)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정식 논문에서도 이미 표현하고 있습니다. 2년전 2007년 8월 신동아에서 이야기한 자연의 7가지 원리중에서 '원형성'의 개념이 바로 고유한 주파수 개념입니다.

제로존 이론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볼 여지가 바로 이점입니다. !!!

다시 말하면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모든 비교 인식의 개념 그 자체도 자기 '고유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러한 고유한 주파수 그 자체를 표현하는 가장 근본적인 존재가 바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빛'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빛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특정 조합된 것이 바로 '색(色)'이라는 것입니다. 이 색은 다른 말로 우리가 보통 말하는 보이는 대상으로서 '물질'입니다.

빛의 삼원색과 함께 색의 삼원색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노랑(yellow),마젠타(magenta),사이안(cyan) 약자로 YMC로 표현합니다.

제로존 이론은 어떤 책에서도 없는 세상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빛과 물질들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물질은 다양한 고유 주파수를 가진 빛들이 모여서 색을 만들고 그 만들어진 고유한 주파수를 가진 색들이 또 특정한 모임을 가져서 '현현'된 것입니다.

완벽한 대칭성, 스칼라 포텐셜을 가진 빛은 무한이 내재된 방향을 가져서 겉으로는 특정 방향을 지향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빛은 그 스스로 모든 방향으로 발산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무방향성이 전방향입니다!

거꾸로 빛은 모든 방향으로 부터 편향성이 없이 골고루 빛을 받아 들입니다. 어느 쪽으로요? 바로 육체를 가진 몸의 세포쪽입니다.

모든 세포가 빛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빛의 순환 원리가 됩니다. 하나의 빛이 가진 순환 원리가 바로 모든 자연과 우주의 순환 원리가 됩니다.

빛은 일정한 기하학의 원리(특정한 수열의 조합)에 의해서 색을 만듭니다. 그 색은 또 외관을 계속 확장하여 특정한 빛의 조합을 가진 물질을 만듭니다.

그러고 보면 물질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빛은 색이 되기 힘들고 색은 또 물질이 되기 힘듭니다.

그래서 외부적으로 무엇인가 일을 할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에너지, 곧 또 다른 빛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물질은 단숨에 색이 되기 쉽고 그 색 또한 빛이 되기 쉽습니다. 이것이 세상에 나와서 가역아닌 불가역의 원리가 되고 있습니다.

빛은 그 자체로 가역의 원리를 가지고 있지만 색이 되고 물질이 되는 과정에서 불가역의 원리를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엔트로피의 개념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방성이고 불공평하게 보일줄 모르지만 찰라 찰라 항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그래서 이 세상은 다양성을 가집니다. 이것이 빛이 완벽한 대칭성으로서 평등의 원리 이외에 빛이 가진 또 다른 무한한 자유의 원리가 되고 있습니다.

빛이 가진 평등성과 자유성은 자연과 우주 모든 것에 그 동일한 속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철학적으로 다른말로 이 세계는 '이항의 영원한 대립'으로 해석합니다.

예컨대, 겉으로 드러나는 남자와 여자는 이항의 관계속에 있습니다. 또한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남자와 여자의 속성 또한 이항의 관계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을 결합하면 서로 상각되어 완벽한 대칭을 이룹니다. 방향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질은 눈으로 보이는 딱딱한 입자요 비물질은 눈으로 볼수 없는 부드러운 흐름을 가진 에너지의 파동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하나가 가진 '동전의 양면'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전자 하나가 가진 동전의 양면성 바로 전자 하나가 가진 질량과 전자 하나가 가진 기본 전하량이 그것입니다.

수식으로는 전자 질량과 기본 전하량의 등가가 되어 각각의 비율이 차지하는 양태가 숫자로 표현하면 논문에서 표현한 바와 같이 서로 똑같은 1.23*10^20 이 그것입니다.

이 숫자는 전자 하나가 가진 고유한 정체성, 초당 회전수로서 고유한 진동수가 됩니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빛 하나가 가진 자기 순환의 원리를 구조적으로 표현할수 있는 시간이 올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빛이 가진 기하학입니다. 예컨대, 토러스와 보텍스 구조가 그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수학의 위상 기하학에 대한 학습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순환의 원리에 황금비가 개입 된다는 것입니다.

빛의 기하학은 1차적으로 3위 일체의 개념을 가지지만 입체가 되면 7위 일체의 개념을 가집니다. 곧 정사면체 입니다.

입체중에서 완벽한 대칭을 가진 3개의 구가 빈틈없이 들어서는 기본 입체로서 3개의 구가 4개의 면을 가집니다.

여기서 천부경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34성환의 원리가 들어갑니다. 정사면체는 잘 알려진 플라톤이 발견한 다섯가지의 대칭 입체를 만듭니다.

또 여기서 황금비가 어김없이 개입합니다. 드디어 바닷가 백사장에서 한 소년이 불가사리를 발견합니다.

드디어 현실에 도착했군요...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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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존 :

종종 이론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보고 있는 물질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물질 곧 '원자재(Original mat.)'가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질문합니다.

이 문제는 누구나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하여 질문하는 단순히 종교, 철학적인 배경 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류의 질문에 답하기를 양파 벗기기와 똑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양파껍질을 벗기고 또 벗기면 그 끝이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물리학자들은 당장 발에 떨어진 현실적으로도 유용한 의미를 찾기 위해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첫째로 노리는 점이 이들은 원물질(원자재)만 발견하기만 하면 그 원자재를 이용하여(조립하여) 차곡차곡 쌓아서 모든 물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논리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레고블럭놀이입니다.

둘째 논리는 그 원자재라는 것이 몇종류인지 알아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원자재의 종류가 가능한한 적어야 경제적 효과가 뛰어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 종류만 안다면 기계로 대량생산이 가능하여 원가가 대폭 절감 될 것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셋째 논리는 가능한한 하나, 둘, 셋... 등 으로 셀수 있는 물질입자라야 계산의 효율성이 뛰어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첫째, 둘째, 셋째의 논점은 제로존이 연구노트에 적힌, 세상의 블로그에서 정리한 것으로 정말로!, 참말로!, 진실로!, 억쑤로! 중요합니다!!!.

이 개념은 전문적으로 과학에 몸 담고 있지 않는 일반인이라도 이해할만한 사항입니다.

이 개념속에 묻힌 사유는 대단히 중요한 수리- 철학적, 물리학적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야구경기를 보면 점수가 나지 않고 지루한 공방을 양측이 치루고 있을 때 9회말 가까스로 주자가 1루, 2루, 3루에 출루했을 때 다음 타자가 잘못하면 병살타도 날 수도 있고 해서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적시타입니다.

이피리님이 ‘모나리자의 미소’가 밖으로는 서로 다르게 보이는 다양한 것들이 근원적으로 들여다 보면 자연은 매우 단순한 설계도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원자재’와 관련하여 시의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존재하면 억지로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교류가 일어납니다.

이는 마치 山과 山이 존재하면 자연스럽게 골짜기가 생겨나는 이치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런 골짜기는 단순한 골짜기가 아니라 골짜기의 자연스런 존재와 함께 메아리가 납니다.

이 山과 저 山 그리고 골짜기의 삼위가 ‘하나’가 됩니다. 그 ‘하나’는 메아리라는 표상의이미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제로존이 블로그를 만들면 이피리님과 홀왕홀래님 그리고 덕산님이 나타나서 서로 조화스러운 향기의 메아리를 만들고 있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메아리’가 어디서 나오는 지 궁금해 합니다. 어디서 나오기는요? 바로 山(나)과 山(너)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중앙(中央)이 어디서 나옵니까?

위와 아래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앙이 나오는 것이지요! 위와 아래 그리고 중앙은 삼위가 어울려 ‘하나’가 됩니다.

좀 어렵게 설명하면 우주와 대자연의 변화를 야기하는 ‘운동(movement)’이 어디서 나타났을까요?

이 山과 저 山이 존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山과 山이 존재하면 위치에너지가 저절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해서 형식과 내용, 겉과 속... 등등 이항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사이’를 존재하게 합니다. 자연스럽게 나타난 그 ‘사이’가 <이항이 대립한다>고 설명합니다.

우주와 대자연에는 서로 다른 무한한 ‘고유 존재’가 있었습니다. 제로존은 그것을 ‘원형성’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서로 고유하기에 ‘너’와 ‘나’라고 억지로 분별하였고 후세 사람들은 서로 대립한다는 의미로 드디어 <이분법>의 기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말이 분별이고 모두가 ‘하나’에서 기원되었으므로 ‘대립’이라기 보다도 ‘조화’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여 이름있는 꽃은 그 꽃 주위에 사람들이 별로 관심가지지 않는 잡초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있는 꽃과 잡초는 ‘이항의 대립’이라고 해도 좋고 ‘조화의 미학’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말이 이분법이지 이분법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그 이분법의 해석도 다르게 나옵니다.

이분법으로 분별하는 사람은 바로 중앙에 위치합니다. 이름있는 꽃과 잡초, 그리고 그 ‘이항의 대립’이나 ‘조화의 미학’이라고 해석하는 순간 이 세상에 분별 인식이라는 메아리의 향기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 모두가 바로 삼위가 되어 ‘하나’의 작용만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물리학에서는 고급스럽게 이야기해서 상호작용(inter-action)이라고 합니다.

물리학은 이 입자와 또 다른 저 입자 사이의 변환관계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입자는 바로 고유한 존재로서 ‘원형성’이고 그 ‘원형성’은 바로 ‘너’와 ‘나’를 이야기합니다.

‘너’와 ‘나’가 존재하는 순간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가 자연스럽게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말했습니다.

山과 山이 존재하는 순간 골짜기가 생기는 것이고 그 골짜기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우리가 그 골짜기를 일부러 보지 않아도 메아리를 듣는 것만 하더라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래서 메아리를 듣는 순간 골짜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고 골짜기가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이 山과 저 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이 山과 저 山이 어디서 기원되었을까요? 하고 또 묻습니다

그 질문은 바로 이러한 질문을 내뱉는 나는 어디서 나왔는가를 묻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디서 나왔는가를 정확히 알 수 없더라도 ‘하나’가 생기는 순간 ‘셋'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깊은 학문을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출처에 대한 기원이고 그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삼족오의 원리‘입니다.

게시글에서 삼족오의 그림을 보는 순간 바로 ‘나의 출처’에 대한 사색을 하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시간의 기원이라든가, 공간의 기원이라든가, 변화를 야기하는 운동의 기원이라든가, 상호작용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말인가를 생각할 때 바로 그러한 이미지를 생각하는 ‘나’를 결코 배제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와 대자연의 무한한 이치의 출발을 생각할 때 이 모든 것이 서로 근원의 내용이 다르지 않는 ‘하나’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 때 그 ‘하나’를 설명할 때 생각하는 ‘나’와 함께 또다른 ‘너’의 생각을 도저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은 오늘날 수 많은 ‘너’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내용을 차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형식체계’라는 것입니다. 이 ‘형식체계’도 겉으로는 말이 ‘형식체계’이지 ‘너’들의 고유한 생각이 배어있기 때문에 바로 진실한 내용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통상적으로 진리라고 하는 이름들이 그 이름이 진리이지 언제나 변함없는 진리가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변함없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란 말조차도 그 이름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도 주의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출발과 해석에 ‘山과 山 그리고 메아리가 존재한다’는 것에 유의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이런 이름있는 문장 조차도 '0(ZERO)'가 되는 것이지요.

모든 것의 출발을 상형하여 흔적을 남긴 것이 ‘1’, ‘하나’라고 한다면 그 ‘하나’이전은 ‘0'이 되겠지요.

그러나 ’1‘과 ’0‘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훈육하지 않고 혼자 침묵하면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입니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이렇듯 우주와 대자연은 처음부터 우리가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지금 말로 표현하면 ‘하나로 혼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혼재되어 ‘하나’로 되어있는 것은 서로 차원이 다를 리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고유한 원형성들이 조화롭게 모여있는 것들이 자연이 드러날 때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을 차원이 다르다고 본 것입니다. 조화롭게 모이는 원리는 바로 기하의 원리가 될 것입니다.

기하의 원리를 예를 들어봅니다. 가령 일정한 크기를 가진 구(큰 구슬) 용기 속에 간격을 최대한 좁히면서 이보다 크기가 작은 구(작은 구슬)가 들어갈 수 있는 최대의 수치는 중앙에 그 작은 구와 동시에 맞닿으면서 11개가 되는 이치입니다.

평면의 경우 중앙에 원이 하나 들어가고 그 주위에 6개의 구가 들어갑니다.

입체의 경우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구슬은 11개의 작은 구슬에 맞닿아 있어 찌그러질 듯 하는데 실은 전혀 힘을 받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방향에 놓여 있는 구슬끼리 서로 상호작용하여 힘이 상쇄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하적 특징이 자연에서 볼 수 있는 현상으로 무지막작한 힘을 가진 태풍의 한 가운데는 너무나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과학적 학습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소위 태풍의 눈은 바깥에서 보는 폭력적인 차원과 달리 그야말로 무차원인 셈입니다.

처음 댓글에서 설탕과 소금은 고체입니다. 이 둘을 혼합하려면 손으로 힘을 주어 휘저어야 합니다.

그러나 물에 잉크를 섞거나 산소나 질소를 혼합할 경우 일부로 힘을 가하지 않아도 저절로 섞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물이나 기체를 ‘유체’로 보고 최종적인 입자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학문을 ‘거시물리학’이라고 합니다. 만약 뒤섞이는 단계까지 파고 들어간다면 그 분야는 ‘미시물리학’이 됩니다.

우리가 <고전 물리학>이라고 할 때는 모두 거시적 입장에서 자연현상을 연구해왔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현대 물리학>의 이론기초가 되는 핵심은 <고전 물리학>과 어떤 구체적인 관계를 가지고 시작할까요?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물이라고 할지라도 최종적으로 거시물리학에서는 분자나 원자로 구성된다는 점입니다. 가령 기체혼합은 본질적으로 바둑 알(아주 미세한 알갱이)이 뒤섞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 점입니다.

문제는 흰 바둑 알과 검은 바둑 알을 한데 섞어보아도 분리하는 것은 용이하지만 액체나 기체는 그 일이 만만치 않다는 점입니다.

미시물리학에서는 복잡한 섞임을 고려할 때 ‘분리의 개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개념을 깊이 생각하면서 물질을 쪼개고 또 쪼개서 기본 물질, 원자재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미시물리학에서 거시물리학에서 물질의 최종 형태라고 생각하는 분자나 원자가 아니라 쿼크와 전자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 둘, 셋...으로 계산 가능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며칠전 제로존이 세가지 핵심을 설명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분리’라는 개념이 노리고 있는 것이 바로 <계산 가능성>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둔 것입니다!

그리고 제로존 이론에서는 물질의 최종 형태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물질’이라는 개념을 더욱 ‘해체’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제로존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거시물리학을 거쳐서 미시물리학이 되면 섞임 곧 분리의 개념을 대단히 중요시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바로 핵심이 미시물리학에서 계산 가능성을 염두에 둔 분리의 개념에 ‘숫자’ 그 자체가 아주 더할 수 없이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제로존 이론이 모든 계산의 수단이 되고 있는 그 숫자를 바로 입자 알갱이, 빛 알갱이로 가정하고 있다는 바로 그 점입니다!!!

이제 제로존 블로그 가족여러분들이 <제로존 이론의 가정>에서 숫자를 물리적인 양(물리량)으로 가정하고 있는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숫자 그 자체는 계산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과 동시에 숫자 그 자체를 물리량으로 대체 해버리는 묘수가 제로존 이론의 가장 핵심 개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이제 이해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기존의 물리학 이론은 c=1, h=1 등등 물리량을 숫자 ‘1’로 대체한 이유는 단순히 계산을 편리하게 하기위한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습니다.

2009년 12월 7일 제로존의 댓글에서 <흥부와 놀부의 설탕 한 포대와 소금 한 포대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제로존 이론의 가정에 대한 ‘위대한 해석’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복선을 깐 것입니다!

“첫째, 둘째, 셋째의 논점은 제로존이 연구노트에 적힌, 세상의 블로그에서 정리한 것으로 정말로!, 참말로!, 진실로!, 억쑤로! 중요합니다!!!.”

원자재가 무엇인가? ‘원자재의 종류가 적을수록 좋다, 관측대상이 하나, 둘... 헤아릴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가 그 것입니다.

첫째, 둘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머리가 좋다는 물리학자들이 모여서 만든 앞으로 천년의 밀레니엄 문제입니다. 바로 그들이 이야기하는 노벨상 0순위에 해당되는 문제를 거론한 것입니다.

우주와 대자연을 해명하는 물리적 수단으로써 기본단위가 도대체 몇 개인가? 물질의 가장 근본이 되는 원자재는 도대체 무엇인가? 미세구조 상수 같은 단위없는 상수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과연 우주와 대자연을 해명하는 첫출발 이론이 존재하기나 하는가? 등등 이에 대한 제로존의 답변입니다!

바로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라는 의미가 앞에서 질문한 내용과 관련하여 물리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가에 대해서 제로존 이론의 가정이 물리상수나 단위를 숫자 ‘1’ 곧 ‘하나’로 설명한 것입니다!

셋째는 위대한 천재 수학자 튜링이나 컴퓨터 과학자들이 소프트웨어를 혁명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곧 <계산 가능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입니다.

수학자이면서 철학자이기도한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말, “질문에 답변할 수 없으면 침묵하라!”라는 침묵의 내용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제로존은 침묵의 언어에 대해서 설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제로존이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를 시작해서 서로 합하는 것은 가능한데 분리하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는 이야기의 본질을 슬슬 시작한 것입니다!

숫자로 표현하면 우리 인류가 그토록 해결하고자 하였던 문제에 대해서 그랜드 바겐 (grand bargain), 일괄타결이 가능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천재물리학자 파인만이 외친 질문, “현대과학의 가장 기초가 되는 에너지 보존법칙에서 말하는 그 에너지란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에 대한 답변도 제로존이 제로존 이론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거운 물건을 들 때 힘 곧 ‘에너지’가 소비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 물건을 들 때 질량이나 시간, 길이등이 소비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좀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이제는 제로존 이론이 나와서 무거운 물건을 들 때 힘이나 에너지 대신에 질량이 소비된다, 시간이 소비된다, 길이가 소비된다, 전류가 소비된다, 온도가 소비된다 등으로 이야기 해도 좋을 것입니다! 모두가 에너지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에너지와 질량이 서로 다른 물리량이지만 그 근본은 똑 같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로존 이론은 에너지가 질량 뿐만아니라 더욱 확장하여 다른 모든 물리량과 등가라고 선언하고 그 이야기가 드디어 정식 논문에 게재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관측대상으로써 뿐만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까지도 그랜드 바겐 grand bargain, 일괄타결하여 서로 ‘하나의 근원’이라는 점을 숫자를 물리량으로 대체시킨 위대한 묘수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제로존 블로그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물어보십시오!

제로존 이론이 이래도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숫자 장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제로존 이론이 이래도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숫자 장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제로존 이론이 이래도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숫자 장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제로존 블로그 여러분! 이 세상에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이 이야기를 초라한 제로존 블로그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녕 가슴이 뛰지 않습니까?

흥미진진한 흥부와 놀부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물리학자들이 사용하는 계산의 모든 형식적 표현의 과정을 살펴보면 ‘셈(counting)'을 하기위한 모든 노림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수학자들의 주된 무기가 어찌됐든 ’숫자‘라고 한다면 물리학자들은 이 ’숫자‘를 이용한 계산방식을 물질세계의 해명에 써먹는 것입니다.

어떻게 써먹냐면은요 일단 헤아림 노림수의 구체적인 기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슬(물질 입자)이 어떤 용기에 가득차면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입자를 구슬과 같이 생각하는 모델을 물리학자들은 고체 모형 또는 당구공 모형 이라고 합니다. 어떤 식이든지 ‘분리 개념’을 마음속에 생각한 것입니다.

고체와 달리 기체나 액체의 복잡한 혼합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처럼 구슬을 예를 든 이유는 강조하거니와 하나, 둘, 셋... 등으로 셈(수학)이 어떤 식으로 든지 가능해야 됩니다.

혼합 현상을 설명할 때 섞인 다거나 섞이지 않는다고 입으로 백번 설명해봐야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섞인다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반드시 수학적 입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물리학에서는 이러한 셈이라는 ‘양적인 검토’가 반드시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양적인 검토에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단은 구슬과 같이 <고체 모형>부터 이론적으로 개시합니다. 이렇게 해야 물체간의 힘의 상관관계를 구체적인 숫자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와 B가 붉은 구슬이고 C와 D가 흰구슬이라고 가정하고 이를 혼합해 가는 과정을 경우의 수를 이용하여 개연성 또는 가능성의 개념을 사용하는 이른바 ‘확률’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경우의 수는 고등학교에서 배운 순열, 조합 방법인데 상태를 따지는 경우의 수가 무한히 많아 진다는 것이 다를 방법 뿐 입니다.

그래서 암기할 내용도 많아지고 개념 공부도 착실히 하여 정해진 기호(수학적 정식화)를 자유자재스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이른바 고등교육입니다.

(우선 입에 밥풀부터 해결하려고 하니까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한된 사람만이 주어진 경우가 현실입니다. 그러나 사정을 자세히 알고보면 고등교육도 별 것 아닙니다.)

여하튼,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할 때 공평하게 실현될 수 있는 가정을 통계역학에서 ‘에르고드 가설(Ergodic hypothesis)’이라고 합니다.

모든 입자를 포함하는 체계가 미시적으로 잇달아 다른 상태로 변해질 때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면 이를 각각 다른 상태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태란 입자의 위치, 속도, 방향 등등입니다. 이를 또 다른 말로 변수 조건이라고 합니다 .

오늘날 통계역학은 이 ‘에르고드 가설’을 바탕으로 대체적인 설명을 개시합니다.

붉은 구슬과 흰 구슬의 개수를 각각 동일하게 차츰차츰 그 수량을 늘려나가면서 혼합되는 경우의 수가 균등해지는 경우가 다른 상태에 비해 월등히 많아진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정을 분자가 섞일 때 구슬과 다른 양상을 나타내는데 적당한 변수 조건을 마련해 주면 여러 가지 경우의 수에 대해서 교묘한 계산법을 이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 과 같습니다.

크기만을 문제 삼을 때 A보다 B분자가 더 큰 공간을 차지한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온도(T)와 압력(P)이 일정하다면 같은 수의 분자(6.23*10^23)개의 차지하는 부피는 일정하다는 ‘아보가드로 가설‘ 채용입니다. .

기체일 경우에는 분자간 거리가 멀어 서로 상호작용을 무시해도 좋다. 헬륨이나 아르곤등은 구슬처럼 완전히 구대칭으로 간주하여 둥근 구슬이 공간을 달린다고 계산해도 상관없다.

자석의 성질을 지닌 원자는 막대 자석의 방향에 관한 정보도 이용합니다. 곧 자기 모멘트(자기극의 세기 * 양극간의 거리), 전기 모멘트의 경우는 전하량 * 양원자간의 거리등의 물리적 정보를 사용합니다.

따라서 기체를 연구할 때 분자등을 단순한 구슬로 여겨 ‘경우의 수’를 따져서 수학적 계산을 행하는 것입니다.

전자처럼를 아주 가벼운 입자의 경우에 있어서의 계산은 위에서 이야기한(고전) 통계역학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론’에서 나온 다양한 미세 물리 정보를 이용한 ‘양자통계역학 (量子統計力學, quantum statistical mechanics)‘을 이용합니다

물론, 온도가 충분히 높고 밀도가 매우 작은 극한(極限)에서는 양자통계역학은 고전통계역학과 일치한다고 생각 하면 됩니다.

고전 역학에서 양자 역학으로 넘어가면 ‘(현상의) 다름’을 ‘상태’라고 표현하는데 그 상태라는 것에 대해서 복잡 다양한 세부적 개념과 그 개념을 표현하거나 계산하는 수학적 기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는 자기가 공부하는 내용의 주제가 전체 물리학 개관의 위치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에 자리잡고 있는지 간과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설탕 한 포대와 소금 한 포대가 섞인 상태이고 이 섞인 상태에서 어떤 알갱이가 어떤 상태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시험을 치르는 일, 진급하는 일, 앞으로의 진로 방향에 대해서 자기 앞가림만 하다가 왜 자기가 이런 공부를 하고 있는가를 망각하는 것입니다. 이 때 제로존 이론이 그 앞에 나왔다고 합시다.

띠~웅!

무슨 이야기를 할 것입니까? 딱 요 때 제로존 이론이 엉터리 같다 또는 숫자 장난 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의 가정은 물리학적 표현을 쓰지만 사실은 전 학문의 개관을 살펴보고 첫 말문을 열어서 전체 학문이 어떻게 출발하여 어떤식으로 문제를 풀 것인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문제 풀기의 조건화입니다.

물리학을 공부하면 현상의 해석과 계산에 앞서 경계조건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말이 경계조건이지 사실은 특정한 국소적인 분야에서 문제를 풀기위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경계조건(境界條件, boundary condition)이란 미분방정식의 일반해(一般解)에 포함되는 임의의 상수 또는 임의의 함수를 정하는데 필요한, 영역의 경계에 부과하는 조건을 말합니다.

물리학 및 그 외의 응용 방면에서는 일단은 어떤 유한한 넓이를 갖는 공간이나, 크기가 유한인 물체 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논할 때, 그 공간의 경계 또는 물체의 표면에 이 경계조건을 제공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하기를 미분방정식을 적당한 경계조건하에서 푸는 문제를 ‘경계값 문제’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은 겉으로 보기에 복잡한 자연의 혼합 현상을 분리해 내기 위해서 일단 숫자를 쓰되 그 숫자는 단순한 수학적 숫자가 아닌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정의해 둔 물리량과 연결해 놓았기 때문에 해석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기할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물리량들의 공약하는데 대단히 유용한 도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숫자를 물리량과 연결해 놓은 가정이 실험실 data사정과 정합하는 것인가가 문제가 될 뿐입니다.

제대로 정합한다면 우리가 지금껏 배우고 있는 초, 중, 고, 대학 교과서의 내용을 일대 혁신해야 하는 당면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단히 흥미로운 점은 지금껏 배워온 과학적 체계를 몽땅 바꿔서 혼란을 야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념만 살짝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가령 지금껏 사용하고 있는 미터법도 그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컴퓨터에서 계산 방법만 제로존 이론이 지시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면 될 것이고 계산된 결과는 다시 원래 기존의 방식대로 사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연 과학의 원초적인 개념어가 되는 기본단위에 대한 개념 이해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섞는 것은 쉽지만 분리해 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에 대해서 새로운 과학적 반증을 가하는 것입니다.

다시 결론을 요약해 보면 놀라운 하나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서로 다르다고 고개를 돌린, 그래서 서로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차원들 길이, 시간, 질량, 전류, 온도, 물질량, 칸델라의 7가지 기본 단위들이 서로 섞기가 너무 쉽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리해 내는 것도 너무 쉽습니다.

전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대학 초등 물리 교과서 측정편에 첫 장 제 1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단위 7가지는 서로 차원이 다르다. 서로 차원이 다른 단위들은 서로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이런 단위들을 함부로 섞을 수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분리해 낼 수 도 없다. 이런 계산을 초등학생들처럼 하는 학생들은 낙제 대상이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짜로 이렇게 쓰여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함 물어 보라니까요...물리학 교수에게 물어 보십시오. 물리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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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키를 질량으로 표현 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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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내하고 장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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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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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 덕산님도 고요하고 거룩한 그 곳에서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빵상, 빵상’으로 시작하는 님의 글은 ‘0’ 과 ‘1’의 리듬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덕산님도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제로존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0’ 과 ‘1’의 불가사의한 관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가에서도 화두의 종점으로 간주하고 있는 ‘하나’라는 의미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로존이 생각하기에 덕산님도 과학적 형식의 겉옷만 잘 챙기시면 어디에 어떤 시각에 계시더라도 화두하나에는 모자람이 없는 듯 생각됩니다. 이건 순전히 제로존만의 생각으로 이심전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밖으로 드러난 숫자의 구조가 유전자(geno-type)이면 이를 편집하여 필요한 정보로 바꾸어 놓는 기술은 표현자(pheno-type)입니다.

가령 DNA사슬을 연결하여 요리조리 맞추는 행위는 유전정보를 재편집하는 것으로서 서로 다른 생명체를 접목시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자는 순전히 기술적인 행위입니다.

숫자 ‘0’과 숫자 ‘1’의 관계를 생물학에 비교해봅니다.

숫자 ‘0’은 아직까지 그 정체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 '화석 바이러스(virus)'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 화석 바이러스가 행동을 개시하기 시작하면 바이러스가 됩니다.

이 바이러스는 남의 몸(숙주)을 이용하지 않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곧 숫자 ‘1’(존재)이 아무 것도 없다는 ‘0’에서 나왔지만 숫자 ‘1’은 다른 숫자와 관계를 가지지 않으면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와 유비됩니다.

그래서 제로존은 숫자 ‘1’을 가지고 대자연과 우주를 해석하는 모형을 만들기 위해서 특별한 주문 제작을 시작한 것입니다.

주문 제작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이미 실험실에서 관측되어 정립된 ‘양자적 구조’ 이를테면 적합한 데이터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데이터를 선택하는 방법 및 순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숫자 ‘0’과 ‘1’의 관계를 보다 시각적으로 잘 드러내기 위해서는 숫자 ‘1’과 ‘0’의 관계에 놓인 의미로써 원본(原本)을 잘 보존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편집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어떤 데이터를 선택하는 가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인류가 수집해 놓은 데이터는 고층빌딩의 높이까지 쌓아 놓을 수 있는 엄청난 양입니다.

그래서 그 데이터 중에서 가장 원본을 잘 표현해 놓은 데이터를 찾은 것이 바로 ‘물리상수’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수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렇게나 써놓은 제로존 이론의 가정인 것 같지만 먼저 착수한 것이 ‘0’과 ‘1’의 개념이고 그 다음에는 불교의 ‘인연설’이 실제의 정보편집에 어떻게 유용(활용)할 수 있는지 찾아보았던 것입니다.

며칠 전 제로존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려놓은 바 있습니다. 현재 과학이 자연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 원인과 결과를 반드시 고려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말이 원인과 결과이지 과학에서는 한마디로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변화를 제대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사물에 이름을 붙여야 된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여겨졌던 것도 이야기 했습니다.

너무나 새삼스러운 질문이지만 왜 물질에 ‘이름’을 붙였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게는 어리둥절하게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도 있겠지만 ‘시간과 공간’, ‘원인과 결과’ 즉, 한마디로 ‘변화’에 대한 복잡한 관계의 의미에 복선을 두어서 소위 '알리바이(alibi)'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알리바이라니? 알리바이가 물리학적으로 의미있는 용어가 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어떤 물질이든지 같은 시각에 그 동일한 물질이 다른 장소에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의 방법으로 이용해 먹기 때문입니다.

제로존이 특정시각에 속초에도 있고 서울에 결코 존재 할 수 없다는 이른바 ‘현장 부재증명(알리바이)’입니다.

"아, 그렇군요"

물질에 이름을 붙여 놓으니까 꼼짝달싹 없는 ‘변화’에 대한 논리를 미리 준비해둔 셈입니다.

사물에 이름을 붙여놓은 것은 서로 다른 물질간에 헷갈리지 않게 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일차적인 것이지만 사실은 ‘원인과 결과’라는 시간 개념이 개입되고 이름 붙인 어떤 임의의 물질도 같은 시각에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고유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가정해 두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도 상대성 이론에 시간과 공간이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이론의 가정으로서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특정 물질의 존재에 이런식으로 가정해 둔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명한 이치’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특정 시각에 내가 위치한 고유한 공간에 나의 부인이 결코 슬쩍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와 나의 마누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컵이나 의자등등 모든 물질들이 다 그러합니다. 이를 ‘불가’에서는 그럴듯한 화두를 던집니다.

“나와 나의 마누라는 평생을 같이 살았지만 한 번도 같은 시각에 같이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말은 같은 공간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존재하느냐를 따져보기 때문입니다.

한 집에 같이 있는 것 하고 한 사람은 서울에 존재한다면 후자는 같은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까?

이를 더 확장하면 어떤 행성에 있는 ET가 보기에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같은 시간에 같은 지구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시간’과 ‘공간’이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정의 하고 있는지 소위 엄밀함을 선호하는 과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입니다.

여하튼 이런 시시한 말들이 사실 평소에 들으면 너무나 자명하게 보여서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일일이 번거롭게 풀어쓰면 과학자들이 무슨 흉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즉 일상적으로 범죄수사에 사용하는 ‘현장 부재증명(알리바이)‘을 위해서 과학자들은 사물에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여하튼 ‘인연설’이라는 이야기는 겉으로 세글자에 해당되지 않지만 내부논리를 분석하면 존재하지 않음과 존재함 그리고 존재함으로써 관련되는 시간의 흐름으로서 ‘원인’과 ‘결과’ 그리고 그 ‘원인과 결과’를 보여주는 동반 무대로서 공간의 의미를 동시에 포괄하는 복잡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과학적 의미를 분석하는데 필요한 현장 부재증명(알리바이)은 사물에 우선 이름 짓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하였고 그 이름을 짓는데 있어서 그 이름 간에는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도 뉴턴의 ‘제 2법칙’인 가속도 법칙으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제로존은 이름을 짓는 과정에 ‘인연설’이 작동하지 않는 다는 것도 설명한 바 있습니다.

힘, 질량 그리고 가속도라는 물리량 사이에는 어느 물리량이 원인이고 또 어느 물리량이 결과라는 관계가 성립함이 없이 그 시간 간격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들 물리량간에는 애시당초 시간 간격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서로 다른 물리량들을 모두 숫자로 설명하면 가능하다는 것도 거꾸로 알 수 있습니다.

곧 ‘s = 1’ 의 묘수입니다.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힘이나 질량, 가속도를 모두 단위가 없는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이 숫자들에는 모두 ‘1(1초)’이 들어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로간에 시간 간격이 존재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평범한 숫자들을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아주 아주 오래전 과학자들은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제일 첫 작업이 필요한 단어를 선택하고 그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는 정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의미있는 단어를 이용하여 ‘원인과 결과’라는 ‘변화’의 의미를 해석하고 정량적으로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인연설’이나 ‘인과설’을 해석하거나 계량화 하는데 사용된 첫 번째의 작업에 사용된 단어들 자체 사이에는 ‘인연설’이나 ‘인과설’이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도 거꾸로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로존은 ‘인연설’이나 ‘인과설’이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순전히 ‘작위’라는 점을 저번 댓글에 올린 바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은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물리학과 관련하여 아마 전세계에서 지금은 초라한 제로존 블로그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강조하여 설명합니다.

‘있다’고 하는 것은 먼저 ‘없다’ 라는 말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있다’라는 말이 유용하게 된 것입니다. 거꾸로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또한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이 평범한 이야기가 전문적인 내용과 결합하면 무시무시한 효과를 낼 것입니다.

지금은 정말 아무도 그 무게를 절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며칠전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선덕여왕과 비담간의 ‘불신’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불신’이라는 것이 먼저 ‘믿음’이라는 것이 존재해야 생겨난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 평생토록 신뢰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명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지금 제로존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주 듣는 단어, 여기에서는 인연설이라는 단어를 예를 들어 보고 있는데 이 인연설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하면 단순히 그런 단어들이 있는가 보다 하고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과학적 정보 분석이나 편집(대자연과 우주의 현상에 대한 해석)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내는 것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대자연과 우주의 현상을 정의하고 설명하는데 일단은 ‘원인과 결과’에 따른 ‘변화’의 방법 및 양적으로 인연설(인과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에 착안한다면 제일 먼저 <인연설 곧 ‘변화’가 없다!>는 것을 제일 먼저 출발 이론에 넣어두어야 한다는 것을 오랜 사색 끝에 찾아낸 것입니다.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고로 변화가 없다는 것은 곧 <시간차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차가 없다는 것을 잘 표현해 내기 위해서는 숫자 ‘1’의 특징을 이용해 먹는다는 것을 이론의 작전에 개입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언어(인과설을 설명하는 과학적 언어)가 무엇인지 제일 먼저 찾아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언어들을 일단은 숫자로 표현해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이 점을 마음속에 깊이 고려하여 사람들이 지금 폭넓게 지지를 받고 있는 <특수한 언어>가 바로 기초 물리학 이론에서 사용하는 ‘물리상수’라는 점도 어렵지 않게 알아내게 된 것입니다.

드디어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선택된 데이터가 바로 ‘물리상수’라는 것이 제로존이 찾는 ‘주범’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 이렇게 되면 제법 중요한 문제 하나를 풀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머리 좋고 재능이 뛰어난 천재 물리학자들이 평생토록 그 가슴에 의문하나를 가지고 다음과 같이 절규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폭 넓게 지지받을 수 있는 합리적인 대헌장은 어디서 찾아 볼 수 있을까요?”

단순히 이 이야기만 들어서 이 학자가 어떤 마음에서 이런 호소를 했는지 체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로존이 생각하기에 이 학자는 평생을 물리학에 몸담으면서 모든 것의 가치기준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를 묻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물리학자는 기독교 성경책이나 불교 경전등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이나 불교 경전등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너무 심오하긴 하지만 과학적인 해석과 유의미한 계산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데이터등과 결합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드디어 관련성을 찾는 다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간혹 외국에서 이름있는 물리학자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서 고매한 선사들로부터 화두 한 마디를 듣고 자기가 전공하고 있는 분야와 어떻게 해서든지 모티브를 잡으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귀국하고 만 이야기를 가끔 듣습니다.

이놈아! 마음을 비워라!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가느니라,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니라!

아이고~ 이 화두를 듣고 기본 물질인 전자와 쿼크의 관계가 어떻고 또 기본 단위가 몇가지인지 그 연결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문제는 바로 ‘관계성’이라는 ‘접속’이라는 키워드입니다!
‘접속’을 잘해야 바로 돈을 잘 벌 수 있는 것입니다!

제로존은 계속해서(바로 위에 댓글에서도 설명) 설명한 것이 바로 ‘불(佛)’자의 의미를 설명한 것입니다.

인터넷을 발명한 것이 바로 그 키워드가 ‘접속’입니다. ‘접속’을 잘 시키는 사람이 바로 부처의 법을 제대로 터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접속’의 다른말이 바로 과학자들이 고개를 돌려서 혐오하는 <인연설, 연기설>입니다!

무릇 사건과 사건간의 관계를 기막히게 ‘접속’시키는 기술입니다!

이 ‘접속’기술을 잘 이용해 먹은 사람으로서 선대 과학자(갈릴레오, 케플러)가 이룩해 놓은 업적(천문학적 실험 데이터)을 정리한 <뉴턴>입니다. 그다음은 <아인슈타인>이기도 하지요.

가까이는 택도 없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심리를 활용하여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롤링>입니다.

씨잘대기 없다고 생각하는 감성조합도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접속’시키기 위해서는 기막힌 논리가 필요합니다!

하나 하나씩 보면 거짓말 같은데 이 거짓말도 잘 ‘접속’하면 그럴 듯 한 흥미를 유발합니다.

하나 하나씩 보면 거짓말 같은데 이 거짓말도 잘 ‘접속’하면 그럴 듯 한 흥미를 유발합니다.

이제 제로존 이론이 한반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제로존 이론도 한 조각씩 한 조각씩보면 완전히 어린아이 산수 같고 터무니 없는 사기꾼 이야기 같습니다.

“뭐?! 자기 키를 몸무게로 환산한다고?”
“뭐?! 내일 모레의 시간 간격을 온도로 환산한다고?”
위의 이야기를 제로존이 이야기하면 과학갤러리와 브릭에서는 뭐라고 하는 줄 압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면 제로존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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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하학의 기본 도형은 원과 직선입니다.

제로존 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의미는 뭐니 뭐니해도 <하나> 곧, 숫자 <1>이 가진 의미를 제로존 이론의 가정을 빌려서 역사상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정의해 두면 제로존 이론에서 ‘하나’ 곧, 숫자 ‘1’은 <빛 알갱이 하나>라는 개념만으로 원과 직선의 개념을 빛 알갱이와 거리 개념을 내포하여 한번에 설명하여 우선 기하와 대수의 개념에 대한 정확한 기초를 구축하게 된다는 것을 나중에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선분이나 평면은 폭이나 두께가 ‘0’으로 정의되어 아무리 더해도 전체넓이나 부피가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선분의 예를 들자면 두께가 0인 원판은 아무리 쌓아도 높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분을 넓이의 불가분자(더이상 분해할 수 없는 요소), 평면을 부피의 불가분자라고 이야기한 수학자도 있었습니다.

곧,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선, 면, 부피등의 개념은 운동이나 변화의 개념이 반영되지 못한 정적인 개념으로 알려져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제로존 이론에서는 놀랍게도 선분을 더하면 두께도 될 수 있고 부피도 될 수 있음을 차후 천천히 알게 될 것입니다.

선, 면, 부피를 분해하면 당연히 빛 알갱이 ‘하나’가 됩니다.

그러니까 빛 알갱이가 모든 도형의 기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지금까지 첨단 과학 이론으로도 불가능 했던 아주 재미난 계산이 척척 가능하게 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제로존 이론은 수학의 기초개념부터 송두리째 흔들어 놓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혹자는 마음 속으로 “누구맘대로 지멋대로 놓아둘 것 같으냐?”고 생각 할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논문이나 공식적인 발표회를 통해서 슬슬 제로존 이론의 참다운 매력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미적분학을 발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 발견의 백그라운드에서는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뉴턴의 경우에는 물리학의 연구와 관련있는 운동의 개념을 배경으로 삼았으며, 라이프니츠는 원자론적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적 입장을 그 배경으로 삼았다고 전해집니다.

제로존 이론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점, 선, 면, 부피에 대한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로존 이론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기학적 도형의 요소가 되고 있는 성분의 개념을 운동이나 변화등 동역학적인 물리학적 개념과 연결시켜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물리학에서 정의하고 있는 기본 시간개념인 ‘s’를 ‘1’로 두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수학에서 기본적으로 차원을 분류하고 있는 아주 기본적인 개념으로 기하학적인 점, 선, 면, 부피등에 대한 개념에 운동이나 변화의 개념을 배제하고 있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반성할 날이 가까워 왔다는 것만 우선 알려드립니다.

이런 아주 기본적인 수학적 개념을 기반으로 물리학이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도 엄청난 변혁을 맞이할 때가 바야흐로 다가온 것입니다!

누군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할 것입니다.

“왜 우리는 여태껏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가? 아뿔싸!”

 

 

mmmmmmmmmmmmmmmmmmmmmm

 

종이에 그려놓은 곡선을 보고 우리는 한눈에 전체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시야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서 불과 몇 밀리미터의 길이밖에 볼 수 없다면, 이 눈꼽만큼의 짧은 곡선으로부터 얼마 만큼의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까?

곡선의 극히 일부만으로는 그것이 원인지, 타원이나 포물선인지, 또는 다른 곡선인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이 사실, 즉 그 부분이 구부러져 있는지 직선을 이루고 있는지, 그리고 구부러져 있으면 그 정도가 심한지 완만한지쯤은 알 수 있다.

곡선을 무한히 짧게 나누었을 때 각 부분은 저마다 어떤 원(원호)의 일부로 간주할 수 있다. 이들 ‘원’의 반경을 곡선 각 부분의 ‘곡률반경(曲律半徑)’ 그리고 그 역수 ‘1/곡률반경’을 ‘곡률(曲律)’이라고 한다.

이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곡률의 값이 클수록 - 곡률반경이 짧을수록-구부러지는 정도가 심하다.

공간을 연구하기 위한 획기적인 수단으로 곡률을 도입한 것은, 대수학자 가우스(F.Gauss, 1777~1855)와 그 제자 리만(G.F.B. Riemann, 1826~1866)이다. 가우스는 리만이 전개한 절묘한 곡률의 이론에 흥분한 나머지 시궁창에 빠진 줄도 몰랐다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이 이론을 발표할 때 리만은 ‘수식’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이론은 앞으로 이야기하게 될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확고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기초였기 때문이었다. 리만의 이 역사적인 연구는 사강사가 되기 위한 짤막한 자격 강연에서 발표된 것이다. 이 자격 시험의 시험관은 가우스였다. 여기서 그는 기하학의 기초가 되는 공간의 구조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곡률’이 불가결의 개념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가우스가 3차원 공간에 대해서 다루었던 곡률을 보다 차원이 높은 일반적인 공간에까지 확대하였다.

그러나 곡률의 중요한 성질을 이해하는 데는, 구태여 고차원의 공간을 생각할 필요없이, 1차원의 공간인 곡선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면 곡률을 쉽게 구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곡선을 원(=원주)의 일부로 간주하고 그 원의 중심을 찾아내기만 하면 이 곡선의 곡률이나 곡률반경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원을 찾는다는 것부터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아메는’ 격으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공책에 그린 곡선일지라도 직선에 가까운 부분이 곡률중심(曲律中心), 즉 이것을 원의 일부로 간주했을 때 의 그 원의 중심은 공책 밖으로 튀어나가 버린다. 하물며 이 우주의 구부러진 정도(=곡률)는 극히 적으므로, 곡률반경은 어마어마하게 길어져서 그러한 원의 중심은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된다.

네이버에 ‘곡률’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네이버 백과사전에 그림이 나올 것이다.

임의의 곡선상에 한 점 P와 Q를 찍고 각각의 접선을 그릴 때(화살표 두 개)점 P와 Q의 거리를 S라하고 접선이 만드는 각이 나타날 것이다.

두 화살표 방향의 각도(θ)와 사이의 거리(s)로 나타내면 곡률 = θ/s와 같이 정해진다.

이 곡률을 K로 나타내면 1/K 는 곡률반경이 된다.

곡률은 얼핏 대단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바로 이 곡률을 바탕으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는 세계를 개척할 수가 있었으니 정말 무서운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곡률의 어디에 깜짝 놀랄만한 절묘한 아이디어가 숨어 있을까?

마찬가지로 제로존 이론에서 기본의 시간단위 s = 1 로 두게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수학이나 물리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참으로 놀랍게도 1차원선과 2차원면적, 3차원체적간에 비교계산할 방법이 생기는 것이다!

수학에도 이런 비슷한 사건들이 자주 일어난 바 있다. 문제는 점이나 선, 면적, 부피등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도형사이에 어떤 연관관계를 일관적으로 설명한 수학적 이론은 없다!

제로존 이론이 유일한 경우이다!

이탈리아 수학자 페아노는 움직이는 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기하학 도형중에는 평면상의 영역(평면도형의 내부)까지도 들어있음을 엄밀하게 증명한바 있다.

2차원인 면적과 같아지는 이러한 1차원인 곡선을 페아노 곡선이라고 알려져있다.

수학자 칸토어는 길이가 짧든 길든 점의 수가 동일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물리학자를 비롯하여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위의 수학자들이 이야기하면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가지만 제로존 이론에서는 길이나 부피, 체적등의 차원에 관계없이 계산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여하튼, 곡률의 개념을 다시 이야기해 보자.

곡면의 구부러진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서 계란 표면위의 한 점 P에서 곡률의 생각을 할 수 있다.

재미나는 것은 계란 표면의 한 점 P에서 곡률은 한가지로 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장 구부러진 것의 곡률을 m, 가장 작은 것의 곡률을 n이라고 놓을 수 있다.

이렇게 두고 보면 말안장이나 고갯마루처럼 한쪽은 볼록, 다른 한쪽은 오목하게 구부러지는 곡면이 나타나는데 m을 볼록한 것 중의 최대의 곡률, n을 오목한 것 중의 최대의 곡률이 될 수 있어 부호는 마이너스로 정할 수 있다.

특별한 경우로 m=n이 될 때가 있는데 이점에서는 곡면사이의 모든 곡률이 같아진다. 구면인 경우이다.

여기서 천재 수학자 가우스는 상상력을 펼쳐서 다양한 용어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면 K = m * n을 전곡률 또는 가우스 곡률이라고 한 것들이다.

이 이후에 가우스가 만들어낸 용어들이 많이 있다.

그 다음 곡면과 곡률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자.

구면에서는 전곡률 K 값이 플러스이고 일정하다. K의 값이 마이너스이고 일정한 곡면도 존재할까? 이것이 바로 거짓구라고 하는 의구 또는 위구이다.

유클리드기하학에서는 직선밖의 한 점 P를 지나서 이 직선과 평행인 선은 꼭 하나 있지만 P점을 지나는 평행선이 무한히 존재하는 비유클리드기하학이 발견된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로바체프스키- 보여이의 기하학은 이 위구면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또 리만이 발견한 비유클리드기하학이 있는데 여기서는 평행선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평면이 아닌 구면 위에서 성립하는 기하학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유클리드기하학이 꾸며내는 세계인가? 아니면 서로다른 개념을 가진 비유클리드기하학이 꾸며내는 세계인가를 질문하게 된다.

드디어 이러한 수학적 개념은 물리학으로 넘어오면서 아인슈타인으로 하여금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게 한다.

그는 곡률의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중력’이라는 것이 그 당시까지 알고 있는 힘이 아니라 ‘시공간의 비틀림’이라는 설명으로 새롭게 해석하게 된 것이다.

곡률의 개념에서 파생된 기하학적 개념은 우리가 사는 우주가 열린 우주인가 닫힌 우주 인가에 대해서 지금까지 엄청난 논쟁을 초래하고 있다.

겉으로 별 중요하지도 않고 아무런 물리적 의미도 없을 것 같은 ‘곡률’이라는 개념이 나타나면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유클리드의 원론에서는 ‘점’이란 ‘부분이 없는 것’이며, ‘선’이란 ‘폭이 없는 길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유클리드의 정신을 바탕으로 엮어진 지금의 중학교 교과서에도 점이나 선을 이런 뜻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점’이라고 하면, 잘 깍고 다듬은 연필의 날카로운 심지의 끝을, 그리고 ‘선’이러고 하면 자를 대고 그은 곧은 선을 금방 머리에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20세기 최대의 수학자로 일컬어지는 힐버트는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제로존 이론의 가설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한 사람들은 눈여겨 볼 것이다.)


“‘점’, ‘직선’, ‘평면’이라는 말을 ‘테이블’, ‘의자’, ‘맥주잔’으로 바꾸어 써도 된다. 중요한 것은 이들 사이의 관계이다. 그리고 그 상호 관계를 정하는 것이 공리이다.”

그는 실제로 [기하학 기초론]이라는 책 속에서 이 주장을 실천에 옮겼다. 여기에서는 점이나, 직선, 평면 등에 정의는 전혀 보이지 않고(무정의 용어(無定義用語)), 이것들 사이의 관계를 ‘기하학의 공리’에 의해서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점이다, 직선이다 해도 이름뿐으로 그 밖의 특별한 의미를 덧붙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 사이는, 가설에 지나지 않는 공리에 의해서만 관계되도록 한다. 이것만을 바탕으로 하여 순전히 논리적으로 수학 이론을 전개하는 방법을 ‘공리적 방법(功理的方法)’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학 이론을 공리적 방법에 의해서 전개하는 입장이 소위 ‘공리주의(公理主義)’이다.

힐버트는 공리란 [원론]에서처럼 자명한 진리를 뜻한다든지 우리의 경험을 표현한다는 따위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기본 개념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점’, ‘직선’, ‘평면’이라고 할 때, 그것은 반드시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점이나 직선, 평면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공리를 만족시키기만 하면 무엇이라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힐버트의 말은 “점, 직선, 평면 대신에 테이블, 의자, 컵 등을 사용해도 기하학을 할 수 있다”라는 뜻이었음을 다시 되새겨 보자.

“수학은 대상의 내용을 연구하는 학문은 아니다. 연구하는 것은 대상 사이의 관계이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힐버트 못지않게 현대 수학의 건설에 크게 공헌했던 푸앵카레다. 그러니 이 두 사람이 수학에 관해서는, 혹 장난이라도 빈말을 할 리가 없다.

이것은 공리의 의미가 근래, 특히 19세기 이래 크게 변하게 된 결과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제 ‘정의’는 한낱 약속으로 바뀌었고, ‘공리’는 새로운 명제(정리)를 찾기 위한 ‘가설(假設)’로 탈바꿈하고만 것이다. 이러한 성격을 지닌 현대의 수학을 ‘공리주의 수학(公理主義數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 지금까지 내용을 읽어보면 제로존 이론의 이른바 가설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가를 눈치챈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사람들은 정의, 공리, 증명, 정리등의 개념에 대해서 새롭게 공부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제로존 이론은 잘 정의된 용어(예를들면 기본단위나 물리상수에 대한 정의나 설명)를 가지고 공리를 만들어서 그 공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인가에 대한 증명의 실험데이터와 정합하는지에 대해서 논문을 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논문은 국제연합의 특별위원회에서 발족시킨 CODATA 가 주관하는 저널에서 정식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가설을 이용하여 그 가설이 잘 정합하면 새로운 정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른바 차원에 관계없이 사칙계산이 가능해진다는 '명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런 명제는 지금까지 현대 수학이나 과학이 도저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선봉에 나서는 것입니다.

엄청난 사고혁명이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