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타니파아타
『숫타니파아타』의 뜻은 '경들의 모음' 즉, 경집(經集)이다. 『숫타니파아타』는 1,000여 개의 게송이 5품 70경으로 되어 있다. 『숫타니파아타』 전체가 한문으로 번역되지는 않았고 오직 제4품만 『의족경(義足經)』 이라는 이름으로 한역되었다.『불설의족경』은 2권으로 되어 있다. 인도 재가불자인 지겸이 중국에 와서 기원후 223년과 225년 사이에 번역했다. 팔리어본은 팔리대장경 속에 있거니와 이 『의족경』의 직접적인 범어 원본은 현재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단지 한역본과 일치하지 않는 범어본 『숫타니파아타』의 파편이 나타났는데 많은 불경과 논장에서 이 『숫타니파아타』가 중국어로 음역된 범어 이름으로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로 모아져 있지는 않았고 각 품의 경들이 따로 떠돌아 다니다가 뒷날 모아졌기 때문에 경전의 앞뒤가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각 품의 각 경을 떼어서 읽어도 된다. |
숫타니파아타 범우사 :김운학 옮김,
'나는 이미 밥도 짖고 우유도 짜놓았읍니다.마히강 기슭 에서 난 처자와 함께 살고 있읍니다.내 움막은 지붕이 덮여있고, 불이 켜져 있읍니다.그러니 신(神)이시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나는 노여움을 모르며, 마음의 어둠에서 벗어나 마히강 기슭에서 하루밤을 묵었다. 내 움막(즉,자신)은 드러나고(탐욕 의)불은 꺼졌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 를 내리시옵소서' 모기나 쇠파리도 없고, 소 들은 늪가에 우거진 풀을 뜯어 먹으며 걷고 비가 내려도 그들은 참고 견디어 낼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내 뗏목은 이미 잘 만들어져 있다. 역류를 극복하여 이미 강을 건너 피안에 이르렀으니 이제 뗏목은 필요없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내 아내는 유순하고 음탕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지만 내 마음에 항상 듭니다. 그녀에게 그 어떤 나쁜점이 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내 마음은 내게 순종하고 이미 해탈했다. 오랫동안 수양을 쌓았기 때문에 잘 다스려져 있다. 나에게는 그어떤 나쁜점도 없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나는 내 힘으로 살아가며 스스로 자신을 길러가고 있습니다. 내 자식들은 모두 건강합니다. 그들에게 그 어던 나쁜점이 있다는 말도 들은적이 없읍니다.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나는 그 누구의 고용인도 아니다. 스스로 얻은 것으로 온 누리를 걷는다. 남에게 고용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아직 길 들이지 않은 송아지가 있고 젖을 먹는 송아지도 있읍니다. 새끼를 밴 암소도 있고 교미를 원하는 암소도 있습니다. 또 그 암소의 짝인 황소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아직 길들이지 않은 송아지도 없고 젖을 먹는 송아지도 없다. 새끼를 밴 암소도 없고 교미를 원하는 암소도 없다. 이 암소의 짝인 황소도 없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소를 매어 둔 말뚝은 단단히 박혀있어 흔들리지 않습니다.<문자> 풀로 만든 새 밧줄은 잘 꾀어 있기 때문에 송아지도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황소처럼 고삐를 끊고 코끼리처럼 냄새를 풍기는 풀덩굴을 짓밟았으니 나는 다시 모태(母胎)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자녀가 있는 자는 자녀로 하여 즐거움을 얻고, 소를 가진자는 소로하여 즐거움을 얻는다. 인간이 사물에 집착하는 것은 기쁨이니 집착할것이 없는자는 실로 기쁨이 없다.' '자녀가 있는자는 자녀로 하여 근심하고, 소를 가진 자는 소로 하여 근심한다. 실로 인간이 집착하는 것이 근심이니 집착할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할것도 없다.' 스승이 그곳에 가까이 가 한쪽에 멈춰선즉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가 음식을 얻기위해 서 계신 스승을 보고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뒤에 먹기로 하였습니다. 스승께서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뒤에 공양을 하도록 하시지요.' 스승께서 대답해 말씀하시기를,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갈고 뿌린 다음 먹는다.' 바라문이 말하기를, '그렇지만 스승께서는 멍에도 쟁기도 쟁깃날도 고무래도 소도 찾아볼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당신은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갈고 부린 다음 먹는다>하십니까?' 이렇게 말하고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는 시로써 다음과 같이 스승에게 물었다. (76) '당신은 농부라고 자칭하시지만은 우리는 당신이 밭을 가는 것을 본일이 없습니다. 당신이 밭을 간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들을수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신앙은 내 씨앗이고, 고행은 비(雨)이며, 지혜는 내 멍에와 쟁기이고, 부끄러운 마음은 쟁깃대며, 의지는 밧줄이고, 사념(思念)은 내 쟁깃날과 고무래다. '고오타마께서는 감로같은 과보를 가져오는 밭갈이를 하시는 분이니 이 우유죽을 드시옵소서.' '바라문이여, 실로 신들과 악마와 범천(梵天)이 한곳에 얽힌 세계에서 신들과 인간, 그리고 도를 닦는자, 또한 바라문을 포함한 모든 중생가운데서 완전한 여래(如來)와 그의 제자를 제외하고는, 이 우유죽을 먹고 능히 소화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바라문이여, 그 우유죽을 풀이 나지않은곳에 버리거나 미물이 없는 물속에 버리도록 하라.' 이리하여 바아라드바아자는 그 우유죽을 미물이 없는 물속에 던져 버리니 종일 햇볕에 단 쟁기날을 물속에 넣었을 때 부글부글 거리며 무럭무럭 김이 솟아나듯이 그 우유죽은 찌-찌- 소리를 내며 김이무럭무럭 솟아나니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는 두려움에 떨며 소름이 끼쳐 부처님에게 가가이 다가가 그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여쭈었다.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키듯, 덮여있는 것을 벗겨주 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켜주듯, 혹 <눈이 있는 자는 빛깔을 보리라>하여 어둠속에서 횃불을 비춰주듯,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로 법을 설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부처님에게 귀의 하며, 또 법과 수행승에게 귀의하고, 부처님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게율을 받겠습니다.' 그리하여 밭을 가는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는 스승이신 부처님의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고 이윽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마음을 오직 한곳으로 가다듬어 뒤에 더없는 청정한 극치를 현세에서 스스로 깨달은 동시에 이를 입증하고 구현하여 나날을 보냈다. <태어나는 일은 끝났다. 깨끗한 행은 이미 이루어졌으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니 인제 다시는 이러한 삶을 얻을수는 없다.>고 깨닫게 되어 바아라드바아자 장로(長老)는 성자의 한사람이 되었다. '위대한 지혜를 가진 성자, 깨달은 이, 진리의 주인, 애착을 떠난 분, 인류의 가장 높으신 분, 뛰어나신 인도자에게 묻습니다. 세상에 어떤 수행자가 있는지 말씀해 주시옵소서.' '춘다여, 네종류의 수행자가 있고 다섯종류의 수행자는 없다. 이제 너의 물음에 대해 이를 분명히 알려주겠다.---그것은 <도의 승리자> <도를 논하는자> <도에 사는자> <도를 더럽히는 자>다.' '깨달은 자는 누구를 <도의 승리자>라고 말합니까? 또 <도를 논하는자>는 어찌하여 다른 사람과 비할바가 없습니까? 그리고 <도에 산다>는 말을 설명해주시고 <도를 더럽히는자>도 저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시옵소서.' 6. 파멸 '번영하는 사람을 알아보기는 쉽지만, 이에 못지 않게 파멸에 이르는 사람을 알아보기도 쉽다. 참된 이치를 아끼는 자는 성하고 이를 혐오하는 자는 패한다.' 스승께서 바리때를 들고 사아밧티이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탁발하며 그의 거처에 가까이 가셨다.불을 섬기는 바아라드바아자가 스승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고 스승에게 말했다. '까까중이여, 거기 서 있으라. 거짓 도인이여, 거기 서 있으라. 천한자여, 거기 서 있으라.' 이 말을 듣고 스승게서는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에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대체 천한자를 알고 있느냐?. 그리고 인간을 천하게 하는 조건을 알고 있느냐?.' '고오타마여, 나는 인간을 천하게 하는 조건을 알지 못하오. 부디 나에게 인간을 천하게 만드는 조건을 알수있게 설명하시오.' '바라문이여, 그러면 내 이제 설명할 것이니 잘 들어 보아라.' '어서 말해주오.' 불을 섬기는 바아라드바아자는 부처님께 말했다.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같이 말씀하셨다.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키듯, 덮여 있는 것을 벗겨주듯, 길 잃은 자에게 길을 가르쳐 주긋<눈있는 자들은 빛깔을 보리라>하고 어둠속에서 횃불을 비춰주듯, 고오타마께서는 여러 가지로 법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고오타마께 귀의하며 또 법과 수행승들의 모임에 귀의 합니다. 고오타마께서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저를 귀의한 재가 신도로서 받아주시옵소서. 8. 자 비 9. 설산(雪山)에 거주하는 자 '오늘은 십오일 보름, 우포사타 포살(布薩)날이다. 빛나는 밤이 다가왔다. 이제 우리는 세상에서도 뛰어난 스승이신 고오타마를 뵈러가자.' '그는 일체의 중생에 대하여 안정된 마음일까? 그리고 그의 마음은 원하는 것과 원치 않는것에 대하여 잘 억제하고 있을까?' '그는 일체 중생에 대하여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원하는것과 원치않는것에 대하여 잘 억제하고 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는걸 가지려 하지 않는지? 그는 중생을 죽이지 않도록 자제 할수 있는지? 그는 게으름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지? 그는 정신 통일을 그만 두지 않는지?' '그는 주지 않는 것은 갖지 않는다. 중생을 죽이려 하지 않는다. 게으름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정신통일을 그만 두지 않고 있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 혹독한 욕설을 퍼붓지 않을까? 남을 이간 시키는 말을 하지 않을까? 쓸데 없는 말을 하지 않을까?'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혹독한 욕설을 퍼 붓지도 않는다. 또 남을 이간 시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쓸데 없는 말을 하는일도 없다.' '그는 욕망의 향락에 빠지지 않을까? 그의 마음은 흐려 있지 않을까? 그는 미망(迷妄)을 초월하였을까? 만사를 보는 눈을 분명히 가지고 있을까?' '그는 욕망의 향락에 빠지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흐려 있지 않다. 그는 모든 미망을 초월했다. 그리고 만사를 분명히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그는 밝은 지혜를 가지고 있는가? 그의 행위에는 전혀 때가 묻지 않았는가? 그의 번뇌는 소멸 되었는가? 그는 이미 다시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없는가?' '그는 밝은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의 행위에는 전혀 때가 묻지 않았다. 그는 모든 번뇌를 소멸해 버렸다. 그는 이미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다.' '성자의 마음은 말과 행동에 잘 나타나 있다. 밝은 지혜와 청정한 행을 갖추고 있는 그를 그대가 찬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성자의 말씀은 말과 행동에 잘 나타나 있다. 자, 우리는 밝은 지혜와 청정한 행을 갖추고 있는 고오타마를 뵈러가자.' '그 성자는 염소의 다리처럼 마르고 총명하며, 식사를 적게 하며, 탐내는 일 없이 숲속에서 명상에 잠겨 있으니, 우리는 고오타마를 뵈러가자. '열어 보이는 분, 설명해서 밝히는 분, 모든 사물의 궁극에 통달하고 원망과 두려움을 초월해서 눈을 뜬 고오타마에게 우리는 물어보자.' '세계는 무엇에서 비롯된 것 입니까? 무엇에 대해서 애착을 느끼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무엇에 집착해 있으며 또 무엇때믄에 해를 당합니까?' '설산에 사는 자여, 여섯가지가 갖추어 졌을 때 세계는 비롯되며, 세계는 이 여섯가지에 대해 애착을 느끼고, 세계는 이 여섯가지에 집착하며, 이 여섯가 지에 해를 당하고 있다.' '깊은 지혜가 있고, 미묘한 뜻을 통달하시며, 아무것도 갖지 않고, 또 욕심많은 삶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일에 해탈하시고, 하늘의 길을 가는 위대한 선인(仙人)을 보라. 10. 아알라 바카 야차(夜叉) '사문이여, 나가주시오.' '좋다. 벗이여.'하고 스승이 밖으로 나가셨다. 다시 야차가 말했다. '사문이여, 들어오시오.' '좋다, 벗이여.'하고 스승은 다시 들어가셨다. 아알라바카 야차는 또 스승에게 말했다. '사문이여, 나가주시오.' '좋다, 벗이여.'하고 스승은 다시 나가셨다. 다시 야차가 말했다. '사문이여, 들어오시오.' '좋다, 벗이여.'하고 부처님은 다시 들어가셨다. 세 번째 아알라바카 야차는 스승에게 말했다. '사문이여, 나가주시오.' '좋다, 벗이여.'하고 스승께서 또 밖으로 나가셨다. 또 야차가 말했다. '사문이여, 들어오시오.' '좋다, 벗이여.' 하고 스승은 또 들어가셨다. 네 번째 또 아알라바카 야차는 스승에게 말했다. '사문이여, 나가주시오.' 이때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이제 나는 나가지 않을것이니 그대 마음대로 하라.' 이에 야차가 말하기를, '사문이여, 내가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만일 그대가 나에게 확실히 답을 해주지 않으면, 그대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여, 그대의 심장을 찢고 그대의 두다리를 들어 간디스강 너머로 집어던지겠오.'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벗이여, 신들과 악마, 범천을 포함한 모든 세계에서 도를 닦는자와 바라문, 그리고 신들과 인간을 비롯한 모든 중생들중에, 내 마음을 혼란하게 하며 내 심장을 찢고 내 두 다리를 들어 간디스강 너머로 던질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벗이여, 그대가 알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물어보아라.' 이에 아알라바카 야차는 다음과 같이 스승에게 시를 지어 호소했다.
12.성 자
4. 최상의 복
'그는 도를 닦는 자이다.' 그러나 수우칠로마 야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참으로 도를 닦는 자인지 혹 거짓으로 도를 닦는 자인지 내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는 참된 도를 닦는자가 아니고 그릇된 도를 닦는 자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수우칠로마 야차는 스승곁에 가까이 갔다. 그러나 스승은 몸을 피했다. 수우칠로마 야차가 스승에게 말했다. '도를 닦는 자여, 그대가 나를 두려워 합니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벗이여, 나는 그대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와 부딪히는게 내게는 좋지 않다.' 다시 수우칠로마 야차가 말했다. '도를 닦는 자여, 만일 그대가 나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면, 그대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여 심장을 찢고, 두 다리를 들어 간디스강 너머로 던져 버리겠오.' 스승께서 대답해 말씀하셨다. '벗이여, 신들과 악마와 범천을 포함한 세계에서, 도를 닦는 자와 바라문과 신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중생들 가운데서, 내 마음을 혼란케 하여 심장을 찢고 두 다리를 들어 간디스강 너마로 던질수 있는자를 나는 찾아 볼 수 없다. 벗이여, 그대가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 이에 수우칠로마 야차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부처님에게 물었다. 6. 이법에 맞는 행동
'고오타마이시여, 대체 오늘의 바라문들은 옛바라문들이 지켜온 계율을 따르고 있습니까?' '바라문들이여, 오늘의 바라문들은 옛바라문들의 계율을 따르고 있지않다.' '그렇다면, 고오타마시여, 옛날 바라문들이 지킨 계율을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럼 바라문들이여, 주의해 들으라. 내가 말할터이니.'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대부호인 바라문들은 스승에게 대답했다. 스승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놀랍습니다. 고오타마시여, 훌륭하십니다. 고오타마시여, 마치 쓰러진자를 일으키시듯, 덮인 것을 벗겨주듯, 길 잃고 헤매는 자에게 길을 인도하듯, 혹 <눈 있는 자는 빛을 보리라>하며 어두운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듯 고오타마께서는 여러 가지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희들은 고오타마께 귀의합니다. 또 진리와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고오타마께서는 오늘부터 귀의한 저희들을 목숨이 다할때까지 재가의 신도로 받아주시옵소서.'
(323) 그러므로 참으로 지식있고 학식있는 성실한 사람과 가까이 하라. 사물을 알고, 이를 실천에 옮기며 진리를 터득한 자는 안락을 얻게 되리라.
10. 정진(精進) 11. 라아훌라
'라아훌라야, 너는 가까이서 늘 함께 있는 습성에 젖어 현자를 경멸하지는 않았느냐? 여러 사람을 위해 횃불을 올리는 자를 너는 존경하고 있느냐?' '저는 가까이서 늘 함께 있는 습성에 젖어도 현자를 경멸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을 위해 횃불을 올리는 자를 저는 언제나 존경하고 있습니다.' '사랑스럽고 즐거움이 되는 오욕의 대상을 버리고, 신앙심으로 집을 나와 괴로움을 멸하는 자가 되라. 참으로 존귀하신 스승께서는 라아훌라에게 이렇게 시를 지어 되풀이해 가르치셨다.
내가 들으니, 어느때 존귀하신 스승께서 아알라비이에 있는 악가알라바 영수(靈樹) 아래 계실 때, 방기이사의 스승으로 니그로다 캅파라는 장로가 악가알라바 영수 아래서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방기이사는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의 스승은 정말로 돌아가셨을까? 아니면 아직 생존해 계실까?> 저녁때가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이 계신곳으로 갔다. 존귀하신 스승에게 인사를 하고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제가 홀로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나의 스승은 정말로 돌아가셨을까? 아니면 아직 생존해 계실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기이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왼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스승에게 합장한 뒤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호소했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명칭과 형태에 대한 애착을 끊어 버렸다. 오래 빠져있던 검은 악마의 흐름을 끊어 버렸다.' 다섯 사람중 가장 뛰어난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13. 올바른 편력(遍歷) '길조(吉兆)나 천지이변을 헤아리는 점, 해몽 또는 관상 보는 점과 길흉의 판단을 다버린 수행자는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14. 담미카 '수행자 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번뇌에서 벗어나는 참된 이법(理法)을 그대들에게 말하리라. 그대들은 각자 이를 잘 지키라. 뜻을 보는 지자(知者)는 출가자에게서 그 행동을 배우고야 행하라. |
3. 커다란 장(章) : 대품
이와 같이 말씀 하시고 나서, 행복한 사람인 스승께서는 다음과 같이 다시 말씀 하셨다. 그때 방기이사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스승이 계신 곳을 향해 합장하고 말했다.
--머리말의 싯구는 이상으로 끝났다.--- (699) 나아라카가 말했다. '아시타가 한 말을 저는 분명히 알겠습니다. 그러하오니, 고타마시여, 일체의 사물에 통달하신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700) 저는 출가한 몸으로, 탁발의 행을 쌓으려 하오니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성자여, 성스러운 행위와 최상의 도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701)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에게 성스러운 행에 대하여 가르쳐 주리라. 이것은 행하기 어렵고, 이루기 어려우니라. 내 그대를 위해 이를 말하리라. 그러니 의연하고 마음을 굳게하라. (702) 마을에 가서는 욕설을 듣거나 존경을 받거나 똑같은 태도를 취하라. 욕설을 들어도 화내지 말며, 존경을 받아도 우쭐하지 마라. (703) 비록 동산의 숲 속에 있어도, 불꽃같은 갖가지 정념(情念)이 일어난다. 때때로 부녀자가 성자도 유혹한다. 부녀자로 하여금 유혹케 하지 말라. (704) 성(性)관계에서 멀리하며, 갖가지 욕망을 버리고, 약하고 강한 모든 생명체에 대하여 적대하지 말며 애착도 느끼지 말라. (705) 그들도 나와 같고, 나도 그들과 같다>라고 생각하고, 생명 있는 것을 죽여서도 안되며 또 타인으로 하여금 죽이게 해서도 안된다. (706) 평범한 이들이 사로잡히는 욕망과 집념에서 떠나, 올바른 눈을 가진 자는 참된 길을 걸어가라. 그리하여 지옥에서 벗어나라. (707) 배를 줄이고 음식을 절제하여 탐내는 일이 없도록 하라. 욕심을 버리면 마음이 평안을 얻는다. (708) 성자는 탁발을 위해 돌아다닌 후, 숲으로 돌아와 나무 아래에 앉아야 한다. (709) 또한 성자는 마음의 안정을 누리는데 마음을 다하여 숲 속에서 즐기고 나무 아래서 명상에 잠겨 스스로 만족 해야 한다. (710) 날이 밝으면, 마을을 찾아가라. 신들로부터 초대를 받거나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준다해도 결코 기뻐해서는 안된다. (711) 성자는, 마을에 이르러 급하게 집집을 찾아다녀서는 안된다. 침묵을 지키고 음식을 구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 (712) <얻어서 잘됐다> <얻지 못한 것도 또한 잘된 일이다> 생각하고 완전한 자는 그 어느 경우에도 태연한 마음으로 돌아와야 한다. 마치 과일 나무 밑에 간 자가 과일을 얻지 못해도 태연히 돌아 오듯이. (713) 그는 바리때를 손에 들고 돌아 다니며, 벙어리는 아니지만 벙어리로 생각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는 것이 적다고 야속하게 생각해도 안된다. 주는 이를 멸시 해서도 안된다. (714) 사문(부처님) 높고 낮은 갖가지 도를 설법하셨다. 그는 다시 피안에 이르는 일이 없지만 단번에 피안에 이르는 일도 없다. (715) 윤회의 흐름을 끊어버린 수행승 에게는 집착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야 할 것(善)과 해서는 안될 것(惡)도 다 버렸기 때문에 번뇌가 존재하지 않는다.' (716) 스승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그대에게 성자의 길을 말하리라. 음식을 구할때는 면도날의 비유로서 하라. 혀로 윗 입술을 누르고 배에 들어갈 음식을 절제하라. (717) 마음이 침체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쓸데없이 많은 것을 생각해서도 안된다. 버린 것이 없고 걸림이 없는 깨끗한 행을 구극의 근거로 삼아라. (718) 혼자 앉아 있는 일과 도인을 섬기는 것을 배워라. 성자의 길은 혼자 있는데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혼자 있으면 즐거울 수 있어야 한다. (719) 이렇게 하면 시방(十方)에서 빛나리라. 그러니 욕망을 버리고 명상에 잠겨 있는 여러 현자의 명성을 들으면 내 제자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믿음이 더욱 일어나리라. (720) 이 일을 깊은 늪과 얕은 개울물의 비유로 알라. 얕은 개울물은 소리를 내며 흐르지만 큰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721)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한 것은 조용한 법이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절반쯤 들은 병과 같지만 현명한 자는 물이 가득 찬 연못과 같다. (722) 도인(사문)이 뜻 깊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스스로 알고 그렇게 설법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알고서 많은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723) 그러나 스스로 알고 자기를 억제하여, 여러 말을 하지 않는 다면 그는 성자로서의 행에 맞다. 그런 자는 성자의 행을 체득한 것이다.' 12. 두가지 관찰 내 가 들으니,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아밧티이의 동산에 있는 미가아라 장자(長者)의 어머니가 사는 누각에 계실 때였다. 그때 존귀하신 스승께서는 정기적인 집회(集會)가 있는 달 밝은 보름 밤에, 수행승(比丘)의 무리에 둘러싸여 집 밖에 계시었다. 존귀하신 스승께서는 묵묵히 앉아있는 수행승의 무리들을 돌아 보시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수행승 들이여, 선량하고 존귀하며, 세속을 더나 깨달음에 이르는 갖가지 진리가 있느니라. 그런데 < 수행승 들이여, 그대들이 선량하고 존귀하게 세속을 떠나 깨달음에 이르는 갖가지 진리를 듣는 까닭은 무엇인가?> 하고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으면 수행승 들이여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라---<두 가지의 진리를 분명히 알기 위함이다>라고. 그렇다면 그대들이 말하는 두 가지의 진리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하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른 길이다>하는 것이 그 두 번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법 하셨다. (724) '괴로움을 모르고 괴로움이 일어남을 모르며, 또한 괴로움이 남김 없이 소멸되는 것도 모르고 괴로움이 소멸되는 그 길도 모르는 자들 --- (725) 그들은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이룰 수 없다. 그들은 (윤회를)끊어 버릴 수 없다. 그들은 속된 생과 늙음을 받는다. (726) 그러나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이 일어남을 알며, 또 괴로움이 남김 없이 소멸되는 것을 알고 괴로움이 소멸되는 그 길을 아는 자들--- (727) 그들은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구현한다. 그들은 (윤회를)끊어 버릴 수 있다. 그들은 속된 생과 늙음을 받지 않는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다 소인(素因)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째 관찰이다. <그러나 소인에서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존귀하신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28) '세상에 있는 모든 괴로움은 생존의 소인으로 일어난다. 실로 그것을 모르고 생존의 소인을 만드는 우둔한 자는 되풀이해서 그것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바르게 알고,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을 관찰하여 소인을 만들지 말라.'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무명(無名)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째 관찰이다. <그러나 무명에서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 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29) '이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되풀이하여 생사의 윤회를 받는 자는 그 귀취(歸趣)가 무명에 있다. (730) 이 무명이란 커다란 방황인데, 이로 말미암아 영원한 윤회가 나타난다. 그러나 밝은 지혜로 이른 자는 다시는 생존을 받는 일이 없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형성력(形成力)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째 관찰이다. <그러나 형성력을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 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 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31) '어떤 괴로움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다 형성력에 의해서 일어 난다. 이 갖가지 형성력이 소멸되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 (732) <괴로움이 형성력 에서 일어난다.> 는 이 두려운 사실을 알고, 일체의 형성력을 소멸시켜, (욕심을) 억제하면 괴로움은 소멸된다. 이것을 분명히 알라. (733)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알고, 여러 현자, 즉 베에다에 통달한 자들은 악마의 사슬에서 벗어나 다시는 생존을 받는 일이 없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식별(識)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식별작용을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34) '어떤 괴로움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다 식별작용으로 일어난다. 이 갖가지 식별작용이 소멸되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 (735) <괴로움은 모두 식별작용으로 일어난다.>는 이 두려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식별작용을 조용히 가라앉게 한 수행자는 쾌락을 탐내지 않고 평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접촉(接觸)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접촉을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36) '접촉에 사로잡히고 생존의 물결에 밀려, 그릇된 길을 가는 자는 속박의 소멸에서 멀리 떠나 있다. (737) 그러나 접촉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평안을 즐기는 자들은 실로 접촉을 모두 없앴기 때문에 쾌감을 떠나 평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감정을 받아들임(感受)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갖가지 감수를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 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38) '즐거움이나 괴로움, 또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을 안팎으로 감수한 모든 것은, (739) 고뇌임을 알고, 없어지고 말 허망한 사물에 접촉할 때마다, 그 없어지는 것을 보고 이에 대한 애착에서 떠나는 것이다. 갖가지 감수가 소멸되기 때문에 수행승은 쾌락을 느끼지 않고 평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애착(愛着)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애착을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40) '애착을 벗으로 삼는 자는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영원히 유전(流轉)하여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741) 애착은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이 두려운 사실을 알고, 애착에서 떠나 이에 매이지 말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수행승들은 편력해야 한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집착(執着)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집착을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42) '집착에서 그릇된 생존이 일어난다. 생존하는 자는 괴로움을 받는다. 태어나는 자에게는 죽음이 있다. 이것이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이다. (743) 그러므로, 여러 현자들은 집착을 없애는 이유를 바르게 알고 태어남에 따른 소멸을 바르게 알아 다시 생존을 받는 일이 없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움직임(起動)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기동을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44) '어떤 괴로움이 일어나도 그것은 모두 기동에서 일어난다. 갖가지 기동이 다 없어지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 (745) <괴로움은 기동에서 일어난다.>는 이 두려운 사실을 알고, 일체의 기동을 버림으로서 해탈하여, (746) 생존에 대한 애착을 끊고 마음이 진정된 수행승은 삶의 윤회를 벗어난다. 그리고 다시 생존을 받는 일이 없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음식(飮食)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음식을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47) '어떤 괴로움이 일어나도 그것은 모두 음식에서 일어난다. 갖가지 식음에서 떠나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 (748) <괴로움은 음식에서 일어난다.>는 이 두려운 사실을 알고, 일체의 음식에 대해 잘 알아, 식음에 의존하지 말며, (749) 갖가지 더러운 번뇌를 소멸함으로서 병이 나지 않음을 바르게 알고, 반성하여 (음식을)아껴서 참된 이법에 사는 베에다에 이른 자는 (방황하는)어리석은 생존자가 아니다.' ' 수행승들이여, 또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동요(動搖)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동요를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50) '어떤 괴로움이 일어나도 그것은 모두 동요에서 일어난다. 갖가지 동요가 다 없어지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 (751) <괴로움은 동요에서 일어난다.>는 이 두려운 사실을 알고, 수행승은 갖가지 (애착의)동요를 버리고, 갖가지 형성력을 종식시켜 무동요, 무집착으로 바른 생각을 가지고 편력해야 한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걸림이 있는 자는 망설인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걸림이 없는 자는 망설이지 않는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 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52) '걸림이 없는 자는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나 걸림이 있는 자는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집착하여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753) <갖가지 걸림 속에 커다란 공포가 있다.>는 두려운 사실을 알고, 수행승은 걸림이 없고 집착 없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편력해야 한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물질의 세계보다 물질 아닌 세계가 한결 더 안정되어 있다.>는 것이 첫 번째 관찰이다. <물질 아닌 세계보다 소멸의 세계가 한결 더 안정되어 있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 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54) '물질의 세계에 태어나는 모든 생존자와 물질 아닌 세계에 있는 모든 생존자는 소멸(열반)을 모르기 때문에 다시 이 세상의 생존으로 되돌아온다. (755) 그러나 물질의 세계를 분명히 알고 물질 아닌 세계에 안주하며, 소멸로 해탈하는 자는 죽음을 버린 것이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 들이여, 신들과 악마가 함께 사는 세계, 도를 닦는 자(사문), 바라문, 신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이 진리이다.>라고 생각한 것을 여러 성자들은 <이것은 허망하다.>라고 바른 지혜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첫 번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신들과 악마가 함께 사는 세계, 도를 닦는 자(사문), 바라문, 신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허망하다.>라고 생각한 것을 여러 성자들은 <이것은 진리이다.>라고 바른 지혜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두 번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 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56) '보라, 신들과 세상사람들은 나 아닌 것을 나라고 생각하고 명칭과 형태에 집착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진리다>라고 생각 하면서. (757) 어떤 것을 이러니 저러니 하고 생각해도, 그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그 어리석은 자의)이런 것(생각)이 허무하기 때문이다. 지나가 버리는 것은 허망하기 때문에. (758) 평안은 허망이 아니다. 여러 성자들은 이를 진리로 안다. 그들은 실로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쾌락을 탐하지 않고 평안으로 돌아간 것이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 들이여, 신들과 악마가 함께 사는 세계, 도를 닦는 자(사문), 바라문, 신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이 안락 이다.>라고 생각한 것을 여러 성자들은 <이것은 고뇌다.>라고 바른 지혜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첫 번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신들과 악마가 함께 사는 세계, 도를 닦는 자(사문), 바라문, 신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고뇌다.>라고 생각한 것을 여러 성자들은 <이것은 안락 이다.>라고 바른 지혜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두 번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 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59)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색깔, 음성, 향기, 촉감,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한결같이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 (760) 그것들을 실로 신이나 세상사람들은 <안락>으로 본다. 그것들이 없을 경우에는 이를 <고뇌>라고 본다. (761) 자기의 육신을 떠나 소멸되는 것을 <안락>이라고 여러 성자들은 생각한다. (바르게)보는 자들의 이런 것(생각)은 모두 세상사람들 과는 반대다. (762) 다른 사람들이 <안락>이라고 부르는 것을 여러 성자들은 <고뇌>라고 본다. 다른 사람들이 <고뇌>라고 부르는 것을 여러 성자들은 <안락>이라고 본다. 보라, 진리를 이해하기가 그토록 어려움을. 무지한 사람들은 여기서 방황한다. (763) 덮여 있는 자에게는 어둠이 있다. (바르게)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암흑이 있다. 선량한 자에게는 열어서 보는 것이 있다. 마치 눈을 뜨고 보는 자들에게 광명이 있듯이. 이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짐승 같은 (어리석은)자는 (평안에)가까이 있어도 이를 모른다. (764) 생존을 위한 탐욕에 사로잡히고, 생존의 흐름에 휩쓸려, 악마의 세계로 들어간 자들은 이 진리를 깨닫기가 매우 어렵다. (765) 여러 성자들 외에 대체 누가 이 경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 인가. 이 경지를 바르게 알면 번뇌의 때가 묻지 않는 자가 되어 고요한 평안에 들어가리라. 스승(부처님)께서 이 같이 설법하셨다. 수행승들은 기뻐하면서 스승의 설법을 환희로 받아들였다. 이같이 밝은 설법으로 해서 60명의 수행승들은 집착에서 떠나 때묻은 마음에서 해탈 되었다. |
4. 시(詩)의 장(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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