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숫타니파아타

자유지향 2009. 4. 28. 13:16

숫타니파아타


『숫타니파아타』의 뜻은 '경들의 모음' 즉, 경집(經集)이다. 『숫타니파아타』는 1,000여 개의 게송이 5품 70경으로 되어 있다. 『숫타니파아타』 전체가 한문으로 번역되지는 않았고 오직 제4품만 『의족경(義足經)』 이라는 이름으로 한역되었다.『불설의족경』은 2권으로 되어 있다. 인도 재가불자인 지겸이 중국에 와서 기원후 223년과 225년 사이에 번역했다. 팔리어본은 팔리대장경 속에 있거니와 이 『의족경』의 직접적인 범어 원본은 현재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단지 한역본과 일치하지 않는 범어본 『숫타니파아타』의 파편이 나타났는데 많은 불경과 논장에서 이 『숫타니파아타』가 중국어로 음역된 범어 이름으로 인용되고 있다.

이경은 파리어(語) 5부(部)중 소부(小部)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파리어 3장 중에는 많은 경이 있는데 이 경만을 특히 "경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른 경들은 각각 특정한 이름을 붙일만한 특징이 있으나 이 경에는 그러한 특징이 없기 때문이다. 주로 길고 짧은 시들을 모은 시집인데 때로는 산문도 섞여 있다.

숫타니파아타의 구성은 "사품:蛇品" "소품:小品" "대품:大品" "의품:義品" "피안도품:彼岸道品"의 5장(章)으로 되어있고, 이들중 "의품"과 "피안도품"은 다른 장보다 먼저 성립된 것이다. "사품"은 12경, "소품"은 비교적 짧은 14경, "대품"은 약간 긴 12경이 수록되어 있고, "의품"은 8편의 게(偈)로 이루어져 "8게품"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16경이 들어 있다. "피안도품"은16학동(學童)과 석존과의 문답형식 16절에 서게(序偈), 결어(結語)를 합쳐 모두 18절로 다른 품들과는 달리 전체가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숫타니파아타』도 한글을 비롯해서 영어·독어·일어 등의 현대어로 수 차례 번역되었다.

『숫다니파아타』는 가장 오래된 불경 중의 하나로 근본불교 사상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경전으로서, 부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간결하고 소박하게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부처님의 입김과 숨결이 풍겨 오는 듯한 원음으로 담겨 있다. 여기에는 아무런 현학적인 교리가 없다. 해탈의 피안을 향해 구도자가 가야할 길에 대해서 간단 명료하게 설해져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부처님이 멀리 있는 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숫다니파아타』의 말씀들은 인간이 봉착하는 문제들을 통달한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말해 주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인생의 고뇌로부터 해탈하는 방법과 초탈한 사람의 생활 등에 대해서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경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로 모아져 있지는 않았고 각 품의 경들이 따로 떠돌아 다니다가 뒷날 모아졌기 때문에 경전의 앞뒤가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각 품의 각 경을 떼어서 읽어도 된다.




숫타니파아타

범우사 :김운학 옮김,



1.뱀(蛇)의 장(章) : 사품



1.뱀


(1)뱀의 독이 퍼지는 것을 약으로 다스리듯,치미는 분노를 억누르는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2)연못에서 자라는 연꽃을 물속에 들어가 꺽어버리듯, 말끔히 애욕을 끊어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3)급히 흐르는 애착의 물줄기를 남김없이 말려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4)몹시 세차게 흐르는 물이 연약한 갈대의 둑을 무너뜨리 듯이 교만한 마음을 남김없이 없애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5)무화과나무 숲속에서는 꽃을 구해도 얻을 수 없듯이 모든 존재 속에서 견고한 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6)마음속으로 노여움을 모르고, 세상의 흥망성쇠를 초월한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7)상념(想念)을 남김없이 불살라버리고, 마음속이 잘 정돈된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8)너무 빨리 달려가지도 않고 또 뒤늦는 일도 없이, 망령된 생각을 다 초월한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9)너무 빨리 달려가지도 않고 또 뒤늦는 일도 없이, <이세상의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10)너무 빨리 달려가지도 않고 또 뒤늦는 일도 없이,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탐욕에서 떠난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11)너무 빨리 달려가지도 않고 또 뒤늦는 일도 없이,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애욕에서 떠난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12)너무 빨리 달려가지도 않고 또 뒤늦는 일도 없이,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증오에서 떠난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13)너무 빨리 달려가지도 않고 또 뒤늦는일도 없이,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미망(迷妄)에서 떠난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14)나쁜 버릇이 조금도 없고 악의 뿌리를 뽑아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이.

(15)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인연이 되는 번뇌의 산물(産物)을 조금도 갖지않는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16)사람을 삶에 붙들어 매는 원인이 되는, 애착을 조금도 갖지 않는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17)다섯가지 덮개를 버리고 번뇌없고 의혹을 넘어 괴로움이 없는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2.다니야

(18)소 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는 이미 밥도 짖고 우유도 짜놓았읍니다.마히강 기슭 에서 난 처자와 함께 살고 있읍니다.내 움막은 지붕이 덮여있고, 불이 켜져 있읍니다.그러니 신(神)이시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19)스승은 대답하셨다.

'나는 노여움을 모르며, 마음의 어둠에서 벗어나 마히강 기슭에서 하루밤을 묵었다. 내 움막(즉,자신)은 드러나고(탐욕 의)불은 꺼졌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 를 내리시옵소서'

(20)소 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모기나 쇠파리도 없고, 소 들은 늪가에 우거진 풀을 뜯어 먹으며 걷고 비가 내려도 그들은 참고 견디어 낼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21)스승은 대답하셨다.

'내 뗏목은 이미 잘 만들어져 있다. 역류를 극복하여 이미 강을 건너 피안에 이르렀으니 이제 뗏목은 필요없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22)소 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내 아내는 유순하고 음탕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지만 내 마음에 항상 듭니다. 그녀에게 그 어떤 나쁜점이 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23)스승은 대답하셨다.

'내 마음은 내게 순종하고 이미 해탈했다. 오랫동안 수양을 쌓았기 때문에 잘 다스려져 있다. 나에게는 그어떤 나쁜점도 없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24)소 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는 내 힘으로 살아가며 스스로 자신을 길러가고 있습니다. 내 자식들은 모두 건강합니다. 그들에게 그 어던 나쁜점이 있다는 말도 들은적이 없읍니다.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25)스승은 대답하셨다.

'나는 그 누구의 고용인도 아니다. 스스로 얻은 것으로 온 누리를 걷는다. 남에게 고용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26)소 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아직 길 들이지 않은 송아지가 있고 젖을 먹는 송아지도 있읍니다. 새끼를 밴 암소도 있고 교미를 원하는 암소도 있습니다. 또 그 암소의 짝인 황소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27)스승은 대답하셨다.

'아직 길들이지 않은 송아지도 없고 젖을 먹는 송아지도 없다. 새끼를 밴 암소도 없고 교미를 원하는 암소도 없다. 이 암소의 짝인 황소도 없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28)소 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소를 매어 둔 말뚝은 단단히 박혀있어 흔들리지 않습니다.<문자> 풀로 만든 새 밧줄은 잘 꾀어 있기 때문에 송아지도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29)스승은 대답하셨다.

'황소처럼 고삐를 끊고 코끼리처럼 냄새를 풍기는 풀덩굴을 짓밟았으니 나는 다시 모태(母胎)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신이여, 만일 비를 내리시려거든 비를 내리시옵소서'

(30)갑자기 검은 구름이 비를 뿌리니 골짜기와 언덕에 물이 넘쳤다. 신이 비를 내리시는 소리를 듣고 다니야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31)'우리는 존경하는 스승을 만나 뵙고 실로 얻은바가 큽니다. 눈을 지니신 분이여, 우리는 당신께 귀의(歸依)합니다. 당신께서는 우리의 스승이 되어 주시옵소서.위대하신 성자여.

(32)아내도 저도 순종하면서 부처님의 곁에서 깨끗한 마음과 올바른 행을 닦을것입니다. 그리하여 삶과 죽음의 피안에 이르러 괴로움을 벗어나게 될것입니다.'

(33)악마 파아피만이 말했다.

'자녀가 있는 자는 자녀로 하여 즐거움을 얻고, 소를 가진자는 소로하여 즐거움을 얻는다. 인간이 사물에 집착하는 것은 기쁨이니 집착할것이 없는자는 실로 기쁨이 없다.'

(34)스승이 대답하셨다.

'자녀가 있는자는 자녀로 하여 근심하고, 소를 가진 자는 소로 하여 근심한다. 실로 인간이 집착하는 것이 근심이니 집착할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할것도 없다.'


3. 무소의 뿔

(35) 모든 중생에 대하여 폭력을 쓰지말고, 모든 중생의 어느 하나도 괴롭히지 말며, 또 자녀를 두려고 원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걸어가라.

(36)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발생한다. 사랑과 그리움으로 인하여 괴로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서 우환이 생기는 것을 보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 가라.

(37) 벗을 측은히 생각하여 마음이 흔들리면 자기에게 이로움이 없다. 친밀한 속에는 이런 우려가 있음을 알고 무소의 뿔 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38)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애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있는 것과 같다. 죽순(竹筍)이 다른것에 달라붙지 않도록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가라.

(39) 마치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 저기 돌아다니듯이, 슬기로운 사람은 독립된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40) 동반자(同伴者)와 함께 있으면, 몸을 쉬거나 일어서거나 걸어가거나 여행하는데 언제나 참견하게 된다. 남들이 원치않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41) 동반자와 함께 있으면 유희와 환락이 있고 자녀에 대한 애정은 더욱 커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 싫더라도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42)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갖지말고, 무엇이든 가진 것으로 만족하며, 온갖 고난을 견디며, 두려움을 갖지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43) 출가한 사람으로 여전히 불만을 갖는 사람이 있다. 이는 또한 재가자(在家者)도 마찬가지다. 남의 자녀에게 집념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44) 잎이 진 코빌라아라 나무처럼 재가자의 증표를 버리고 재가의 속박을 끊고 용기있는 자는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45)만일 그대가 현명하고, 잘 협조하며, 행실이 올바르고, 영민한 동반자를 얻게되면, 모든 재난을 극복하여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걸어가라.

(46)그러나 만일 그대가 현명하고 잘 협조하며 행실이 올바르고 영민한 동반자를 얻지 못하면 마치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듯이 오직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걸어가라.

(47)우리는 참으로 친구 얻는 행운을 찬양한다.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동등한 친구와는 가까이 지내야한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벗을 얻을수 없으면 허물을 짓지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48) 금세공(金細工)이 잘 만들어낸 번쩍이는 황금팔찌가 한 쪽 팔에서 서로 부딪치는 것을 보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49) 이렇게 두사람이 서로 가까이 있으면 말썽과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 앞으로 이런 우려가 있음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50) 실로 욕망은 화려하고 감미로우며 유쾌하여 여러 가지로 마음을 교란 시킨다. 욕망의 대상에는 이런 우환이 있음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51) 이것이 나에게는 재앙이요, 종기요, 화근이요, 질병이요, 화살이요, 공포다. 모든 욕망의 대상에는 이런 두려움이 있음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52) 추위와 더위, 굶주림과 갈증,  바람과 뜨거운 햇볕, 쇠파리와 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53) 마치 어깨가 잘 발육되고  반점이 있는 큰 코끼리가 그 무리를 떠나서 마음대로 숲속을 돌아다니듯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54) 모임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한때의 해탈에 이를  겨를이 없다. 태양의 후예 불타(佛陀)가 한 말씀을 명심하여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55) 서로 논쟁을 일삼는  철학적 이론을 초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결론에 도달하여 도(道)를 얻은자는 <나는 지혜를 깨쳤으니 인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56)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덮어두지 말라. 혼탁과 미망을 버리고 세상에서  일체의 애착을 버린자가 되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57) 의(義)롭지 못한 것을 보고  비뚤어진 길에 사로잡혀 있는 나쁜벗을 멀리하라. 탐욕에 빠져 게으른 사람과 친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58) 아는 것이 풍부하고  진리를 분간하며 고매하고  영특한 친구와 사귀라. 이는  여러 가지로 이로우니,  의혹에서 떠나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59) 세상의 유희나 오락, 쾌락에 만족하지 말고, 이에 끌리는 일 없이 겉치레를 떠나  진실을 말하며,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60) 처자나 부모 친척, 그리고 재산이나 곡식, 그밖의 욕망까지도 다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61) <이것이 집착이구나. 여기에는 즐거움과  유쾌함이 적은 반면에 괴로움이 많으며, 따라서 이것은 물고기를  낚는 낚시다> 라고 깨닫고 현명한 자는 무소의 불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62) 물속의 물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또한  이미 불이 다 탄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63) 우러러 보고 정처없이 헤매지  말며, 여러 가지 감관(感官)을 막아 마음을 지켜,  번뇌가 흘러나오는 일없이, 번뇌의 불에 타는일없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64) 잎이 진 파아리차타나무처럼, 재가자(在家者)의 여러가지 증표를 버리고 집을 나와 법의(法衣)를 걸치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65) 여러 가지 맛에 탐닉하지 말고  욕구하지 말며, 남을 부양하지 말며 문전마다 걸식하며 어느 집에도  집착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66) 마음의 다섯가지 덮개를 부숴버리고 모든 번뇌에서 떠나 의지하지 말며, 애욕을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67) 일찍이 경험한 즐거움과 괴로움,  그리고 기쁨과 두려움을 버리고, 맑고 고요한 마음으로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68) 최고의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힘쓰며,  마음을 늦추지 말고 행동을 게을리 하지 말며, 힘차게 활동하여 체력과 지력을 갖추어,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69) 홀로 앉아 선정(禪定)을 버리지 말고, 모든 행동을  항상 참된 이법(理法)에 좇아서 하며 여러 가지 삶에  우환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70) 애착을 없애기 위해 꾸준히 힘쓰고, 벙어리도 되지 말고, 학식이 있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법을 확실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71)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또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72) 뭇 짐승의 왕으로 이빨이 강한 사자가 다른 짐승들을 물리치고 억누르듯이, 변경(邊境)에서 사는 샐활에 친숙하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73) 자비와 평정과 연민, 그리고 해탈과 즐거움을 때에 따라 잘 다스려, 세상을 등지는 일없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74) 탐욕과 증오와 미망을 버리고, 집착의 매듭을 끊어, 목숨을 바치는 일이 있더라도 두려워 하지말며,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75)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귀며 또  남을 섬긴다. 오늘날 이익을 구하지 않는 친구는 찾아볼수 없다. 자기 이익 만을 아는 사람은 마음이 께끗하지 않으니,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4. 밭을 가는 바아라드바아자

내가 들으니 언젠가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의  남산에 있는 <하나의 새>라는 바라문 마을에 계셨다. 그때 밭을 가는 농부인  바아라드바아자가 씨를 뿌리기 위해 오백개의 쟁기를 소에게 매었다. 그때 스승께서는 오전에 내의를 입고 중의를 걸친 뒤 바리때를  들고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가 일하는곳에 계셨다. 때 마침 그는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있었다.

스승이 그곳에 가까이 가 한쪽에 멈춰선즉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가 음식을 얻기위해 서 계신 스승을 보고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뒤에  먹기로 하였습니다. 스승께서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뒤에 공양을 하도록 하시지요.'

스승께서 대답해 말씀하시기를,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갈고 뿌린 다음 먹는다.'

바라문이 말하기를,

'그렇지만 스승께서는 멍에도 쟁기도 쟁깃날도 고무래도 소도 찾아볼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당신은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갈고 부린 다음 먹는다>하십니까?'

이렇게 말하고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는 시로써 다음과 같이 스승에게 물었다.


(76) '당신은 농부라고 자칭하시지만은 우리는  당신이 밭을 가는 것을 본일이 없습니다. 당신이 밭을 간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들을수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77)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신앙은 내 씨앗이고, 고행은 비(雨)이며, 지혜는 내 멍에와 쟁기이고, 부끄러운 마음은 쟁깃대며, 의지는 밧줄이고, 사념(思念)은 내 쟁깃날과 고무래다.

(78) 나는 몸을 조심하고 말을 삼가며 음식을 절제하여 과식하는 일이 없다. 나는 진실을 김매듯 가꾸고, 온유함은 내 멍에를 벗어버리는 것을 뜻한다.

(79) 노력은 내 황소로, 편안한 곳으로 나를 인도해준다. 뒤로 물러서는일 없이 앞으로 나아가 그곳에 이르면 근심걱정이 없다.

(80) 이 밭갈이는 이와같이 이루어져 감로(甘露)같은 과보를 가져온다. 이 밭을 갈면 모든 고뇌로부터 해방된다.

그대 밭을 가는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는  큰 청동 바리에 우유죽을 하나가득 담아 스승에게 올렸다.

'고오타마께서는 감로같은 과보를 가져오는 밭갈이를 하시는 분이니 이 우유죽을 드시옵소서.'

(81) '시를 읊어서 얻은 것을 내가  먹어서는 안된다. 바라문이여, 이것은 깨달은 자들이 하는 도리가 아니다. 시를  읊어서 얻은 것을  깨달은자들은 물리치는 것이다.바라문이여, 도리에 따르는 것이 깨달은 자들의 생활방도다.

(82) 완전한 자의 대선인(大仙人),  번뇌의 더러움을 다 없애고  나쁜 행위가 소멸한 자의 대해서는 다른 음식을 드리도록 하라. 이것은 공덕을 원하는 자의 복된 터전이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이 우유죽을 저는 누구에게 드려야 하옵니까?'

'바라문이여, 실로 신들과 악마와 범천(梵天)이 한곳에 얽힌 세계에서 신들과 인간, 그리고 도를 닦는자, 또한 바라문을 포함한 모든 중생가운데서 완전한 여래(如來)와 그의 제자를 제외하고는, 이 우유죽을 먹고 능히 소화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바라문이여, 그 우유죽을 풀이 나지않은곳에 버리거나 미물이 없는 물속에 버리도록 하라.'

이리하여 바아라드바아자는 그  우유죽을 미물이 없는  물속에 던져 버리니 종일 햇볕에 단 쟁기날을 물속에 넣었을 때 부글부글 거리며 무럭무럭 김이 솟아나듯이 그 우유죽은 찌-찌- 소리를 내며 김이무럭무럭 솟아나니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는  두려움에 떨며  소름이 끼쳐 부처님에게  가가이 다가가 그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여쭈었다.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키듯, 덮여있는 것을 벗겨주 듯,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켜주듯,  혹 <눈이 있는 자는 빛깔을 보리라>하여 어둠속에서 횃불을 비춰주듯,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로  법을 설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부처님에게 귀의 하며, 또 법과 수행승에게 귀의하고, 부처님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게율을 받겠습니다.'

그리하여 밭을 가는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는 스승이신 부처님의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고 이윽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마음을 오직 한곳으로 가다듬어 뒤에 더없는 청정한  극치를 현세에서 스스로 깨달은 동시에 이를 입증하고 구현하여 나날을 보냈다. <태어나는  일은 끝났다. 깨끗한 행은 이미 이루어졌으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니 인제 다시는 이러한 삶을 얻을수는 없다.>고 깨닫게 되어  바아라드바아자 장로(長老)는 성자의 한사람이 되었다.


5. 춘다

(83) 대장간의 아들 춘다가 말했다.

'위대한 지혜를 가진 성자, 깨달은 이, 진리의 주인,  애착을 떠난 분, 인류의 가장 높으신 분, 뛰어나신 인도자에게 묻습니다. 세상에 어떤 수행자가 있는지 말씀해 주시옵소서.'

(84) 부처님께서 대답해 말씀해 주셨다.

'춘다여, 네종류의 수행자가 있고 다섯종류의 수행자는 없다. 이제 너의 물음에 대해 이를 분명히 알려주겠다.---그것은 <도의 승리자> <도를 논하는자> <도에 사는자> <도를 더럽히는 자>다.'

(85) 춘다는 말했다.

'깨달은 자는 누구를 <도의 승리자>라고 말합니까?  또 <도를 논하는자>는 어찌하여 다른 사람과 비할바가 없습니까?  그리고 <도에 산다>는 말을 설명해주시고 <도를 더럽히는자>도 저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시옵소서.'

(86) '의혹을 초월하고, 고뇌를  더나 열반을 즐기며,  탐욕을 버리고 신들이 포함한 세계를 인도하는자 ---깨달은 자들은 이를 <도의 승리자>라고 말한다.

(87) 이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것을 알고 법을 잘 판단하여 논하며 의혹을 끊어버리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성자를 수행자들 사이에서 <도를 논하는자>라 부른다.

(88) 잘 설명된 법의 말씀인 도에  살며, 스스로 억제하고 생각하는 것이 깊으며, 올바른 말을 따르는 자를 수행자들 속에서 <도에 사는자>라 부른다.

(89) 계율을 잘 지키는 체하며 고집이 세고, 가문을 더럽히며, 거만하고 거짓을 일삼으며, 자제하는 마음이 없고 말이  많으며, 슬기로운 듯 행동하는 자를 <도를 더럽히는 자>라 부른다.

(90)학식이 있고 총명한 재가(在家)의 성스러운  신도는 그들이 이러함을 알고 또한 그들을 이렇게 간주하더라도 그 신도의 믿음은 결코 손상되지 않는다. 그들이 어지 더러운것과 더럽지 않은 것, 깨끗한 것과 깨끗하지 않은 것을 똑같이 볼 수 있겠는가.'



6. 파멸

내가 들으니 어느때 부처님께서 사아밧티이(사위성)의 제타숲 고독한  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장자(장자)의 동산에 계실 때,  용모가 수려한 한 신이 밤중이 지나 제타숲을 샅샅이 비추며 부처님  곁에 다가왔다. 가까이 와서는  스승에게 절을 하고 한쪽에 섰다. 그러고는 신을 향해 시를 지어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91) '우리는 파멸되는 인간의 일에 대하여 부처님께 묻고자 하옵니다.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것인지 스승의 견해를 듣고자 여기 왔습니다.'

(92) 스승께서 대답해 말씀하셨다.

'번영하는 사람을 알아보기는 쉽지만, 이에 못지 않게 파멸에 이르는 사람을 알아보기도 쉽다. 참된 이치를 아끼는 자는 성하고 이를 혐오하는 자는 패한다.'

(93)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것이 첫 번째의 파멸입니다. 두 번째 것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것입니까?.'

(94) '착한 사람을 아끼지 않고 악한 사람을 아끼며  그 버릇을 즐기는 것이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

(95)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것이 두 번째  파멸입니다. 세존이시여, 세 번째 것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 것입니까?'

(96) '잠꾸러기이며 여럿이 모이는 것을 즐기며  애써서 노력하는 일이 없이 게으르고 곧잘 화내는 것을 능사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

(97)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것이 세 번째의  파멸입니다. 세존이시여, 네 번째 것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 것입니까?'

(98) '풍족하게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늙고  쇠약한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이가 있으니 이것이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

(99)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것이 네 번째의  파멸입니다. 세존이시여, 다섯 번째것을 말씀해 주시옵소서.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것입니까?.'

(100) ' 바라문과 또는 도를 닦는자와 그 밖의 걸식하는 자를 속인다면 이는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

(101)'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파멸입니다. 세존이시여, 여섯 번째 것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 것입니까?'

(102) '재산이 많아 황금과 식량이 풍부한자가 좋은 음식을 혼자서 먹으면 이는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

(103)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파멸입니다. 세존이시여, 일곱 번째 것을 말씀해주시옵소서. 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 것입니까?'

(104) '혈통을 자랑하고 재산을 자랑하며 가문을  자랑하되 자기의 친척을 경멸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

(105)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 파멸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덟 번째 것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 것입니까?'

(106) '주색에 빠지고 도박을 즐기며 얻는대로  번번이 잃어버리는 자가 있으니 이는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

(107)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것이 여덟 번째 파멸입니다. 세존이시여, 아홉번째 것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것입니까?'

(108) '자기 아내에게 만족하지 않고 매춘부와 어울리며 남의 아내와 가까이 하는 것은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

(109)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것이 아홉번째  파멸입니다. 세존이시여, 열번째 것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 것입니까?'

(110) '성년기를 지난 사내가 틴발처럼 불룩한 유방을 가진 여자를 유혹하고 또 그녀에의 질투로 밤잠도 자지 않는 것은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

(111)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것이 열번째  파멸입니다. 세존이시여, 열한번째 것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 것입니까?'

(112) '술과 고기로만 배를 불리며 재물을 낭비하는 여자나 남자에게 가업을 맡기는 것은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

(113) '잘 알겠습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것이 열한번째  파멸입니다. 세존이시여, 열두번째 것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파멸에 이르는 문은 어떤 것입니까?'

(114) '무사(武士)의 집에 태어난 자가 권세는 적지만 욕심은 커서  세상에서 왕위를 얻으려고 하면 이는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

(115)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파멸이 있음을 알고 현자와 성자는 진리를 통찰하여 행복한 세계에 이르는 것이다.


7. 천한 사람

내가 들으니 어느때 스승(부처님)께서 사아밧티이의 제타숲속 고독한 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셨다. 귿때  스승께서는 오전에 내의를 입고 바리때와 중의를 걸치고  탁발하기 위해 사아밧티이에  들어가셨다. 때마침 불을 섬기는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의 집에 성화(聖火)가 켜지고, 공물을 준비해(供物)을 준비해 놓았다.

스승께서 바리때를 들고 사아밧티이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탁발하며 그의 거처에 가까이 가셨다.불을 섬기는 바아라드바아자가 스승께서  멀리서 오시는 것을 보고 스승에게 말했다.

'까까중이여, 거기 서 있으라. 거짓 도인이여, 거기 서 있으라. 천한자여, 거기 서 있으라.'

이 말을 듣고 스승게서는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에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대체 천한자를 알고 있느냐?. 그리고  인간을 천하게 하는 조건을 알고 있느냐?.'

'고오타마여, 나는 인간을 천하게 하는 조건을 알지  못하오. 부디 나에게 인간을 천하게 만드는 조건을 알수있게 설명하시오.'

'바라문이여, 그러면 내 이제 설명할 것이니 잘 들어 보아라.'

'어서 말해주오.'

불을 섬기는 바아라드바아자는 부처님께 말했다.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같이 말씀하셨다.

(116) '화를 잘내며 원한을 품고,  흉악하여 남의 미덕을 덮어버리고,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남을 술책하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17) 한번 태어나는것이나 두  번 태어나는 것을  막론하고, 생명있는 것을 해치고 이에 대하여 측은한 마음을 갖지 않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18) 마을이나 거리를 파괴하고 포위하며 일반에게 압제자로  알려진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19) 마을에 있거나 숲속에 있을 때 남의 소유물을 훔치려는 생각으로 이를 취하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20) 실제로 빚이  있는데도 갚아달라는 독촉을  받으면 <당신에게 진빚이 없다>하며 이를 거부하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21) 얼마 되지 않는 물건을 탐내어 길 가는 자를  살해하고 그것을 약탈하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22) 증인으로 심문을 받을 때,  자기나 남, 또는 재물을 위해  거짓 증언을 하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23) 폭력을 사용하거나, 서로 사랑하여 친척이나 친구의 아내를 가까이 하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24) 자기는 재산이 많은데도 늙은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25) 부모나 형제 또는 자매를 떼리거나 욕하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26) 상대방이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물었을 때 해로운 것을 가르치며 거짓 말을 하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27) 악한 일을 하고도 <내가 한일은 아무도 몰라  주었으면> 하고 바라며 속임수가 있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28) 남의 집에 가서는 성찬으로 대접을 받으면서  손님이 왔을때에는 후히 대접하지 않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29) 바라문 또는 도를 닦는자, 그리고  도 그밖의 걸식하는 자를 거짓말로 속이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30) 공양할때가 되었는데 바라문 또는 도를 닦는자를  욕하며 음식을 나눠 주지 않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31) 이 세상에서 어리석음에 덮혀, 사소한 것을 탐내며 거짓말을 하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32)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경멸하며 자만심으로 비굴해진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33) 남을 고뇌속에 몰아넣고, 욕심이 많으며 인색하고 덕이 없으면서 존경을 받으려고 하면서도 부끄러운줄 모르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34) 도를 깨친자와 그 제자인 출가자와 재가자를 비난 하는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135) 실제로 존경 받을만한 자가 못되는데도 존경을  받을만 하다고 자칭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계의 도적인 자--이는 그야말로  가장 천한 자다. 내가 너에게 말한 이들은 다 천한 자임을 알라.

(136) 날때부터 천한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날때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행위의 의해 천한자도 되며, 행위에 의해 바라문도 되는 것이다.

(137) 내가 그 실례를 들고자 하니, 내 이야기를  잘 이해하도록하라. 찬다아라족의 자손인 개백정 마아탕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자가 있었다.

(138) 마아탕가는 실로 얻을 수 없는 가장 높은 명예를 얻었다. 많은 왕족들과 바라문들은 그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모여 들었다.

(139) 그는 신들의  길, 더러운 티끌에서 떠나 큰길을 올라 탐욕을 벗어버리고 범천의 세계에 이르렀다. 천한 태생도 범천의  세계에 태어남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140) 베에다를 애송하는 집에  태어나 베에다의 글귀에  친숙한 바라문들도 때때로 악한 행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41) 그렇게 되면 현세에서는 비난을 받고 내세 에서는 나쁜곳에 태어난다.

이렇게 설법했을 때 불을 섬기는 바아라드바아자는 스승에게 말하기를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키듯, 덮여 있는 것을 벗겨주듯, 길 잃은 자에게 길을 가르쳐 주긋<눈있는 자들은 빛깔을 보리라>하고 어둠속에서 횃불을 비춰주듯,  고오타마께서는 여러 가지로  법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고오타마께 귀의하며 또  법과 수행승들의 모임에 귀의 합니다. 고오타마께서는 오늘부터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저를 귀의한 재가 신도로서 받아주시옵소서.



8. 자 비

(143) 사물에 통달한 사람이 평안의 경지에 이르러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모름지기 슬기롭고 정직하며 바르고 말씨는 부드러우며, 잘난체 하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이다.

(144) 만족할 줄 알고 , 욕심을  기르지 말며, 잡일을 줄이고, 생활은 간소하게 하며, 여러 감관(感官)이 안정되며,  총명하여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며, 남의 집에 가서도 탐욕하지 말라.

(145) 식자(識者)들의 비난을 사는  비열한 행동은 결단코 삼가야  한다.모든 중생은 다 행복하고 태평하고 안락하다.

(146) 어떤 생물이든, 즉  겁이 많은 것이든 담이  큰것이든 또 덩치가 길든 크든 짧든 중간쯤 되든, 그리고 섬세하게 생겼든 육중하게 생겼든.

(147) 눈에 보이는 것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든, 멀리 사는 것이든, 가까이 사는 것이든, 이미 태어난 것이든 앞으로 태어나려고 하는 것이든 일체의 중생은 행복할 것이다.

(148) 상대방이 누구든 속여서는  안된다. 어디를 가나 남을  멸시하지 말라. 또한 남을 골려줄 생각으로 화를 내어 남을 괴롭혀서도 안된다.

(149)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다하여  자기의 외 아들을 지키듯  일체 중생에 대하여 무한한 자비심을 베풀라.

(150) 또한 온 세계에 대하여 끝없는 자비심을 베풀라. 위와 아래 그리고 옆에 장애와 원한과 적의가 없도록 자비를 행하라.

(151) 서나 걸으나 눕거나 잠자고 있지 않는 한, 자비의 마음씨를 굳게 가져라. 세상에서는 마음의 이런 상태를 숭고한 경지라 한다.

(152) 모든 그릇된 견해에  사로 잡히지 말고,  계율을 지키며, 사리(事理)에 밝아 온갖 탐욕에서 벗어난 자는 결코 다시 모태(母胎)로  돌아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9. 설산(雪山)에 거주하는 자

(153) 칠악야차(七岳夜叉)가 말했다.

'오늘은 십오일 보름, 우포사타 포살(布薩)날이다. 빛나는 밤이 다가왔다.  이제  우리는 세상에서도 뛰어난 스승이신 고오타마를 뵈러가자.'

(154) 설산야차(雪山夜叉)가 말했다.

'그는 일체의 중생에 대하여  안정된 마음일까? 그리고 그의  마음은 원하는 것과 원치 않는것에 대하여 잘 억제하고 있을까?'

(155) 칠악 야차가 대답했다.

'그는 일체 중생에 대하여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원하는것과 원치않는것에 대하여 잘 억제하고 있다.'

(156) 설산 야차가 말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는걸  가지려 하지 않는지? 그는  중생을 죽이지 않도록 자제 할수 있는지? 그는 게으름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지? 그는 정신 통일을 그만 두지 않는지?'

(157) 칠악 야차가 대답했다.

'그는 주지 않는 것은 갖지 않는다. 중생을 죽이려  하지 않는다. 게으름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정신통일을 그만 두지 않고 있다.'

(158) 설산 야차가 말했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 혹독한 욕설을 퍼붓지 않을까? 남을 이간 시키는 말을 하지 않을까? 쓸데 없는 말을 하지 않을까?'

(159) 칠악 야차가 대답했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혹독한 욕설을 퍼 붓지도 않는다. 또 남을 이간 시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쓸데 없는 말을 하는일도 없다.'

(160) 설산 야차가 말했다.

'그는 욕망의 향락에 빠지지 않을까?  그의 마음은 흐려 있지  않을까? 그는 미망(迷妄)을 초월하였을까? 만사를 보는 눈을 분명히 가지고 있을까?'

(161) 칠악 야차가 대답했다.

'그는 욕망의 향락에 빠지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흐려 있지 않다. 그는 모든 미망을 초월했다. 그리고 만사를 분명히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162) 설산 야차가 말했다.

'그는 밝은 지혜를 가지고 있는가? 그의 행위에는 전혀 때가 묻지 않았는가? 그의 번뇌는 소멸 되었는가? 그는 이미 다시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없는가?'

(163) 칠악 야차가 대답했다.

'그는 밝은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의 행위에는 전혀 때가 묻지 않았다. 그는 모든 번뇌를 소멸해 버렸다. 그는 이미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다.'

(163-a) 설산 야차가 말했다.

'성자의 마음은 말과 행동에 잘 나타나 있다. 밝은 지혜와 청정한 행을 갖추고 있는 그를 그대가 찬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64) 칠악 야차가 말했다.

' 성자의 말씀은 말과 행동에 잘 나타나 있다. 자,  우리는 밝은 지혜와 청정한 행을 갖추고 있는 고오타마를 뵈러가자.'

(165) 설산 야차가 말했다.

'그 성자는 염소의 다리처럼 마르고 총명하며, 식사를  적게 하며, 탐내는 일 없이 숲속에서 명상에 잠겨 있으니, 우리는 고오타마를 뵈러가자.

(166)  모든 욕망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마치 사자나 코끼리처럼 혼자서 가는 그에게 가까이 가, 우리는 죽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길을 물어보자.'

(167) 두 야차가 말했다.

'열어 보이는 분, 설명해서 밝히는 분, 모든  사물의 궁극에 통달하고 원망과 두려움을 초월해서 눈을 뜬 고오타마에게 우리는 물어보자.'

(168) 설산 야차가 말했다.

'세계는 무엇에서 비롯된 것 입니까? 무엇에 대해서  애착을 느끼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무엇에 집착해 있으며 또 무엇때믄에 해를 당합니까?'

(169) 스승 께서 대답하셨다.

'설산에 사는 자여, 여섯가지가 갖추어 졌을 때  세계는 비롯되며, 세계는 이 여섯가지에 대해 애착을 느끼고, 세계는 이 여섯가지에 집착하며, 이 여섯가

지에 해를 당하고 있다.'

(170) '세상사람들이 다 해를 당하고  있는 집착이란 어떤 것입니까? 거기서 떠나는 길을 말씀해 주십시오. 또 어떻게 하면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171) '세상에는 오욕의 대상이있다. 그리고 뜻(意)의 대상이 여섯 번째가 된다. 이들의 대한 탐욕을 버리면 괴로움에서 벗어날수가 있다.

(172) 이제 세상에서 떠나는 길을 그대들에게 여실히 설명하고 제시 하였다.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였으니 이렇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73) '이세상에서 누가 사나운 물결을  헤치고 건너갑니까? 이 세상에서 누가 대해를 건너 갑니까? 의지할 곳없는 깊은바다에 들어가도 누가 가라앉지 않습니까?'

(174)'언제나 계율을 지키며, 지혜가 있고, 마음을 통일하여 스스로 보살피며, 생각하는 바가 있는 자는 건너기 어려운 사나운 물결을 건널수 있다.

(175) 애욕에 대한 생각을 떠나, 온갖  집착의 매듭을 초월하여 환락을 소멸 시킨자--그는 깊은 바다속에 가라앉지 않는다.'

(176) 설산 야차가 말했다.

'깊은 지혜가 있고, 미묘한 뜻을 통달하시며, 아무것도 갖지 않고, 또 욕심많은 삶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일에 해탈하시고, 하늘의  길을 가는 위대한 선인(仙人)을 보라.

(177) 세상에 명성이 높고, 미묘한  뜻을 통달하시며, 지혜를 가르쳐 주시고, 욕망의 집착에서 떠나 모든 것을 알고, 현명하여 성스러운 길을  가는 저 위대한 선인을 보라.

(178) 오늘날 우리는 훌륭한 태양을 보고 아름다운  새벽하늘을 맞이하여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이는 사나운  물결을 건너 번뇌의 때가  묻지 않은 깨달은 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179) 여기 천이나 헤아리는 야차들은 신통력이 있고 명성도 갖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당신에게 귀의 합니다. 당신은 우리들의 둘도 없는 스승이시기 때문입니다.

(180) 저희들은 이 마을에서 저 마을,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돌아다니며, 깨달은 자와 뛰어난 진리앞에 고개 숙여 예배하겠습니다.'



10. 아알라 바카 야차(夜叉)

내가 들으니, 어느때 스승(부처님)께서 아알라비니나라에서 아알라바카 야차의 처소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아알라바카  야차가 스승에게로 가까이 다가와 그에게 말했다.

'사문이여, 나가주시오.'

'좋다. 벗이여.'하고 스승이 밖으로 나가셨다.

다시 야차가 말했다.

'사문이여, 들어오시오.'

'좋다, 벗이여.'하고 스승은 다시 들어가셨다.  아알라바카 야차는 또 스승에게 말했다.

'사문이여, 나가주시오.'

'좋다, 벗이여.'하고 스승은 다시 나가셨다.

다시 야차가 말했다.

'사문이여, 들어오시오.'

'좋다, 벗이여.'하고 부처님은 다시 들어가셨다.

세 번째 아알라바카 야차는 스승에게 말했다.

'사문이여, 나가주시오.'

'좋다, 벗이여.'하고 스승께서 또 밖으로 나가셨다.

또 야차가 말했다.

'사문이여, 들어오시오.'

'좋다, 벗이여.' 하고 스승은 또 들어가셨다.

네 번째 또 아알라바카 야차는 스승에게 말했다.

'사문이여, 나가주시오.'

이때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이제 나는 나가지 않을것이니 그대 마음대로 하라.'

이에 야차가 말하기를,

'사문이여, 내가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만일 그대가 나에게  확실히 답을 해주지 않으면, 그대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여, 그대의 심장을 찢고 그대의 두다리를 들어 간디스강 너머로 집어던지겠오.'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벗이여, 신들과 악마, 범천을 포함한 모든  세계에서 도를 닦는자와 바라문, 그리고 신들과 인간을 비롯한  모든 중생들중에, 내 마음을  혼란하게 하며 내 심장을 찢고 내 두 다리를 들어 간디스강 너머로 던질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벗이여, 그대가 알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물어보아라.'

이에 아알라바카 야차는 다음과 같이 스승에게 시를 지어 호소했다.

(181) '이세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큰 재산은 무엇입니까? 어떤 선행(善行)이 안락을 가져옵니까? 세상에서 가장  맛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훌룡한 생활이라 할수 있습니까?'

(182) '이 세상에서 신앙은 인간에게 가장  큰 재산이다. 덕행이 두터우면 안락을 가져온다. 실로 진실은 맛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맛이다.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훌륭한 생활이다.'

(183) '인간은 어떻게 하면 사나운 물결을 건너갈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바다를 건너갈수 있습니까? 또 어떻게 하면 괴로움을 초월할수 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완전히 깨끗해질 수 있습니까?'

(184) '인간은 신앙으로서 사나운 물결을 건너가며, 끈기로 바다를 건넌다. 근면으로서 괴로움을 초월하며 지혜로서 완전히 깨긋해질 수 있다.'

(185) '인간은 어떻게 하면 지혜를 얻을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재물을 얻을 수 있습니까? 또 어떻게 하면 명성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친교를 맺을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갔을 때 걱정이 없겠습니까?'

(186) '존경을 받을만한 사람들이 마음의  안정을 얻는 참된 이치를  믿고 꾸준히 노력 한다면, 그 가르침을 받들려는 열망으로 지혜를 얻게 된다.

(187) 알맞게 일하고 인내로서 노력하는  자는 재물을 얻게 된다. 성실을 다하면 명성을 얻고 무엇인가 이로움을 주게 되면 친교를 맺게 된다.

(188) 신앙을 가지고 집에서 생활하는 자에게 성실,  진리, 견고, 보시, 이 네가지 덕이 있으면 그는 내세에 가서도 걱정이 없다.

(189) 만일 이세상에서 성실, 자제(自制), 보시,  그리고 인내보다 더 뛰어난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하여 널리 도를 닦는 바라문들에게 물어보라.'

(190) '무엇 때문에 도를 닦는 바라문에게 널리 물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이미 내세에 이익되는 일을 깨달았습니다.

(191) 아아, 깨달으신 분께서 아알라비에 살기 위해 오신 것은 저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저는 오늘 무엇에  보시하면 위대한 과보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알았습니다.

(192) 저는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돌아다니면서 깨달으신분 진리앞에 고개 숙여 예배하겠습니다.'



11. 승리

(193) 걷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몸을 굽히거나 펴기도 한다. 이것이 육신의 움직임이다.

(194) 육신은 뼈와 근육으로 연결되어 내피(內皮)와 살로  싸이고 표피(表皮)에 덮여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볼수 없다.

(195) 육신은 위와 장으로 가득 차 있으며 또 간, 방광, 심장, 폐, 신장, 비장이 있고

(196) 콧물, 점액, 즙(汁), 지방, 피, 관절액, 담즙, 기름이 있다.

(197) 또한 아홉구멍으로는 언제나 더러운 것이 흘러나온다. 눈에서는 눈곱, 귀에서는 귀지,

(198) 코에서는 콧물, 입에서는  침을 뱉거나 가래를  뱉는다. 온몸에서는 땀과 때를 배설한다.

(199) 그리고 머리는 공동(公洞)으로 이루어 뇌수로  가득차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무명(無明)에 끄리어 이것을 깨끗한 것 으로 안다.

(200) 육신은 죽어 넘어지면 부풀어 오르고 검푸르게 되며, 무덤에 버려져 친척도 그것을 돌보지 않는다.

(201) 개와 들여우, 늑대나 벌레들이 이를 파 먹고  까마귀와 솔개, 그 밖의 것 들이 이를 쪼아 먹는다.

(202)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수행자는 깨달은 자의 말씀을 듣고, 이를 완전히 이해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를 있는 그대로 보기 때문이다.

(203) <저 죽은 육신도 이 산 육신과 같았다. 이 산 육신도 저 죽은 육신 처럼 될 것이다.> 하고 안팍으로 육신에 대한 욕심에서 떠나야 한다.

(204) 이 세상에서 애욕을 떠나 지혜로운  수행자는, 불사(不死)와 평안을 누리는 영원한 열반의 경지에 도달했다.

(205) 인간의 이 육신은 깨끗하지 못하고 악취가  나며 꽃이나 향으로 보호된다. 여러 가지 더러운 물질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206) 이런 육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을 훌륭한 존재로 생각하고, 남을 멸시 한다면 그는 눈먼 자가 아니고 무엇이랴.



12.성 자

(207) 친밀한 데서 두려움이 생기고 가정생활로부터  더러운 먼지가 일어 난다. 친밀도 없고 가정생활도 없다면 이것이 바로 성자(聖者)의 깨달음이다.

(208) 이미 일어난 번뇌의 싹은 잘라버리고 이를 다시 심는 일이 없으며, 또 현재 일어나는 번뇌를 키워 나가지 않고 혼자서 걸어기는 자를 성자라 한다. 저 위대한 선인은 평안의 경지로 본 것이다.

(209) 번뇌가 일어나는 근본을 통찰하고, 그  씨앗을 분별하여, 이에 애착을 느끼는 마음을 기르지 않는다면 그는 실로 생을 떠나 극락을 보는 성자로 망상을 버려 미망에 빠진 부류에 끼지  않는다.

(210) 모든 집착이 일어나는 곳을 알고 그  어느것도 원하지 않으며 탐욕에서 떠나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성자는 애써 구하는 일이 없다. 그는 이미 피안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211) 모든 것을 이기고 온갖것을 알며, 대단히 총명하여 여러 사물에 더럽혀지지 않으며, 일체를 버리고 애착을 없애 해탈하는 자.  이런 현자(賢者)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212) 지혜의 힘이 있고 계율과  맹세를 잘지키며, 마음이 통일되어  선정(禪定)을 즐기며, 생각이 깊고 집착에서 떠나 있으며, 거칠지 않으며, 번뇌에 더럽혀지지 않는자. 이런 현자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213) 혼자서 가며, 게으르지 않은 성자,  비난과 찬양에 마음이 이끌리지 않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않는 바람처럼,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남에게 인도 되는  일없이 남을 인도 하는 자. 이런 현자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214) 남들이 입을 모아 찬양하거나 비난을 퍼 붓더라도, 목요탕의 기둥처럼 태연히 우뚝 서서 애욕으로부터 떠나, 모든 감관을 잘 진정시킨자.  이런 현자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215)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모든 악행을 혐오하며, 옳고 그른 것을 통찰 하는 자. 이런 현자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216) 자제(自制)하여 악을 행하지 않으며, 젊거나  중년이 되어서도 성자는 자신을 억제한다. 남을 괴롭히지도 않고 괴로움을 당하지도 않는다. 이런 현자는 그를 성자로 안다.

(217) 남이 주는 것으로 생활하고, 새음식, 먹던 음식, 또는 나머지 음식을 얻더라도 그 음식을 준 사람을 치하하거나 비웃는  일이 없는 사람. 이런 현자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218) 성(性)의 교접을 끊고, 어떤 젊은 여자에게도 마음 주지 않으며, 교만하거나 게으르지도 않은, 속박에서 해탈한 자. 이런 현자는 그를 성자로 안다.

(219) 세상을 잘 이해하고 최고의 진리를 보며  거센 물결과 바다를 건넌 사람, 속박을 파괴하고 의지하지 않으며 번뇌에 물들지 않는자. 이런 현자는 그를 성자로 안다.

(220) 양자(在家者 와 出家者)는 거처와 생활이  다르다. 재가자는 아내를 부양하지만 출가자는 무엇이나 내 것이라고 집착하는  생각이 없다. 재가자는 다른 생명을 해치며 절제하기가 어렵지만,  성자는 자제하여 언제나 생명 있는 자를 지킨다.

(221) 마치 하늘을 나르는 공작새가 백조(白鳥)처럼 빨리 날수 없는 것처럼, 재가자는 세상을 멀리하고 숲속에서 명상에  잠기는 성자나 수행자에게 미치지는 못한다.


2. 조그만 장(章) : 소품


1. 보물

(222) 여기 모인 여러 귀신들은 지상에 있거나  공중에 있거나 다들 기뻐하라.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내 말을 들어라.

(223) 모든 귀신  들이여, 반드시 귀를  기울이라. 밤낮으로 공물(供物)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결코 방임하는  일없이 그들을 수호하라.

(224)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 있는  어떤 재물이나 또는 천계(天界)의 훌륭한 보물이라 할지라도 우리들의 완전한 자와같은 존재는 없다. 이 훌륭한 보물은 눈뜬 자에게 존재한다. 이 진리에 다르면 복되리니.

(225) 마음을 통일한 붓다께서 도달하신 번뇌의 소멸, 욕망으로부터의 이탈, 그리고 불사(不死) 및 뛰어난 것--그 이법(理法)과 같은  것은 아무것도 존재 하지 않는다. 이 훌륭한 보물은 이법속에 존재한다. 이 진리에 따르면 복되리니.

(226) 가장 뛰어나신 부처님이 찬탄하신 깨끗한  마음의 안정을 사람들은 <빈틈없는 마음의 안정> 이라고 한다. 이 마음의 안정과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훌륭한 보물은 그 이법속에 존재한다. 이 진리에 다르면 복되리니.

(227) 선량한 자들이 찬양하는 여덟무리의 사람은  이러한 네쌍의 사람이다. 이들은 부처님의 신도이며,  보시를 받을 만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베푼사람은 커다란 과보를 받으리라. 이  훌륭한 보물은 모임(集)속에 있다. 이 진리에 따르면 복되리니.

(228) 마음을 굳게 갖고 애써 노력하고, 고오타마의 가르침에 따라 욕심이 없으며, 불사(不死)를 얻어 마땅히 도달해야 하는  경지에 이르며, 보상없이 얻어서 평안의 즐거움을 향유한다.  이 훌륭한 보물은 모임속에  있다. 이 진리에 따르면 복되리니.

(229) 마치 성문밖에 서 있는 기둥이 땅속  깊이 묻히면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 처럼 성스러운 진리를 얻어 통찰한 선량한 자들은 이와 같은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이  훌륭한 보물은 모임속에 있다. 이 진리에 따르면 복되리니.

(230) 깊은 지혜를 가진  사람이 말씀하신 성스러운 진리를  분명히 아는 자들은 아무리 방심하는 일이있어도  여덟 번째 생존을 받지  않는다. 이 훌륭한 보물은 모임속에 있다. 이 진리를 따르면 복되리니.

(231) 자신을 실재(實在)라고 보는 견해와 의혹과 외형적인 계율 및 명세의 세가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그가 지견(知見)을 성취하는 즉시 그것들을 버리게 된다. 그들은 네가지 나쁜곳에서 떠나, 여섯가지 무거운 죄를 면하게 된다. 이 훌륭한 보물은 모임 속에 있다. 이 진리를 따르면  복되리니.

(232) 또 그는 몸과 말과 마음속으로 조금이라도  악한일을 하게 되면 이를 감출수 없다. 이는 구극(究極)의 경지를 본 사람은 감출수없기 때문이다. 이 훌륭한 보물은 모임속에 있다. 이 진리를 따르면 복되리니.

(233) 여름철 첫더위에 우거진 나뭇가지가 꽃을 피우듯, 그와 같이 평안에 이르는 오묘한 이법을 부처님께서 말씀 하셨다. 이익이 되는 최상의 일들을 위해서 이 훌륭한 보물이 부처님에게 있다.  이 진리를 따르면 복되리니.

(234) 가장 뛰어난 것을 알고  가장 뒤어난 것을 주고  가장 뛰어난 것을 가져오는 가장 높으신 자가 오묘한 이법을 말슴  하셨다. 이 훌륭한 보물이 부처님께 있다. 이 진리를 따르면 복되리니.

(235) 묵은 업(業)은 이미 다하고 새것은 아직  생기지 않았다. 그 마음은 앞날의 생존에 사로 잡히지 않고 종자를 없애고 그 성장을 원치 않는 현자들은 등불처럼 멸한다. 이 훌륭한 보물은 모임속에 있다. 이 진리를  따르면 복되리니.

(236) 여기 모인 여러 귀신들이여, 지상에 있거나 공중에 있거나 모든신과 인간들이 다같이 섬기는 완성된 부처님을 예배하라. 복되리니.

(237) 또 여기 모인 여러 귀신 들이여, 지상에 있거나 공중에 있거나 모든 신과 인간들이 다같이 섬기는 완성된 진리를 예베하라. 복되리니.

(238) 여기 모인 귀신 들이여, 지상에 있거나 공중에 있거나 모든 신과 인간들이 다같이 섬기는 완성된 모임은 예배하라. 복되리니.



2. 비린 것

(239) '수수, 딩굴라카, 치이나카콩, 잎열매, 구근(救根), 덩굴열매 등을  선량한 사람들로부터 바르게 얻어 먹으면서  욕심을 부리지 말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

(240) 잘 익고 요리가 잘된 음식을 얻어먹고  맛있는 쌀밥에 입맛 다시며 먹는 자는 비린 것을 먹는 것이다. 캇사파여,

(241) 범천의 친족인 그대는  잘 요리한 새고기를 반찬으로  밥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나는 비린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씀 하십니다. 캇사파여, 그대가 말한 비린 것은 어떤 것입니까?'

(242) '생물을 죽이는 것, 그리고 때리고 자르며 결박하는 것,  도둑질하고 거짓말 하는 것, 속이는 것, 그릇된 것을 배우고 남의 아내를 가가이 하는 것  이것이 비린 것이다. 육식(肉食)은 그렇지 않다.

(243) 이 세상에서 욕망을 억제하는 일없이, 맛있는 음식을 탐내고 깨끗하지 못한 생활을 하며 또  허무론(虛無論)을 믿고 옳지 못한 행위를  하는, 완고하고 어리석은자, 이것이 비린 것이다. 육식은 그렇지 않다.

(244) 난폭하고 잔인하며, 남의 험담을  하고  친구를 배반하며, 무자비하고, 거만하며, 인색하여 남에게 주는 일이 없는 사람, 이것이 비린 것이다. 육식은 그렇지 않다.

(245) 성내고, 교만하고, 고집세고, 반항심, 거짓, 질투, 허풍,  극단의 오만함, 불량배와의 사귐, 이것이 비린 것이다. 육식은 그렇지 않다.

(246) 성질이 나쁘고, 빚을 갚지 않으며, 밀고를 하고 거짓증언을 하며, 정의를 가장하고 사악을 저지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자들,  이것이 비린 것이다. 육식은 그렇지 않다.

(247) 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생하고, 남의  것을 약탈하고, 또한 그들을 해치려고 애쓰며, 성질이 나빠 욕심이 많으며,  난폭하고 무례한 자들, 이것이 비린 것이다. 육식은 그렇지않다.

(248) 살아있는 생물에 대해 탐내고 배반하며,  부당한 행동을 하고, 항상 흉악한 일만 꾸미며, 죽어서는 암흑에 이르러 지옥에 거꾸로 떨어지는 자들, 이것이 비린 것이다. 육식은 그렇지 않다.

(249) 생선, 육식, 단식, 나체, 삭발이나  기르는 것, 사슴의 가죽, 화신(火神)앞에 곡물을 차려 놓고 섬기는 것, 또는 세상에서 불사(不死)를 얻기위한 고행, 신주(神呪), 제물제사, 계절에 따른 고행도 모두 의혹을 초월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깨끗하게 할수없다.

(250) 통로인 여섯 개의 기관을  지키며, 그 기관을 이겨서  행하라. 참된 이법을 확립하여 올바르고 순박한 것을 즐기며 집착을 떠나 모든  괴로움을 벗어버린 현자는 보고 듣는 일로 더럽혀지지 않는다.'

(251) 이와같은 말씀을 존경하는 스승께서는 되풀이해서 말씀하셨다. 베에다에 정통한 바라문은 이것을 알고 있다. 비린  것을 멀리하고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어서 그뒤를 따르고 싶어하는 성자는  여러 가지 시구(詩句)로 이를 설법하셨다.

(252) 눈뜬자가 가르치신 지혜로운 말씀을 듣고, 그 바라문은 경건한 마음으로 그 온전한 이(如來)를 예배하고 그 자리에서 출가하기를 원했다.



3. 부끄럼

(253)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싫어하여 <나는  그대의 친구다>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지 않는 사람은 <내 친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254) 여러 친구들에게 실천되지 않을 말만을 그럴 듯하게 하는 자는 <말 뿐이지 실제로 실천하지 않을 자>임을 현자는 잘 알고 있다.

(255) 언제나 우정이 깨어질까 염려하는 마음에서 아첨하면서도, 항상 친구의 결점만을 보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자식이  어머니 품에 의지 하듯이 그 사람에게 의지하며 다른사람 때문에 그 사이가 벌어지는 일이 없는 사람이 참 친구다.

(256) 좋은 결과를 바라는 사람은 힘에 적당한 짐을 지고, 기쁨을 낳고 찬양을 받으며 안락을 가져오는 원인을 닦는다.

(257) 멀어지고 떠나는 맛과 평안해지는  맛을 알고 법열(法悅)을 맛보는 사람은 고뇌에서 떠나고 악에서 벗어나 있다.



4. 최상의 복

내가 들으니 어느때  사아밧티이의 제타숲속, 고독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실 때 용모가 수려한 신이 밤중이 지나 제타숲을 샅샅이 비추며 부처님곁에 다가왔다. 가까이 와서는 스승에게 절을 하고 한쪽에 섰다. 그러고는 신을 향해 시를 지어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258) '여러 신과 인간들은 행복을 원하고  축복을 바랍니다. 최상의 복을 말씀해 주십시오'

(259) '어리석은 자들과 친하지 말고, 현자와 가까이 하며, 존경할만한  사람들을 받드는 것, 이것이 최상의 복 이니라.

(260) 적당한 장소에 살며, 전세에 공덕을 쌓아, 스스로 올바른 목적을 달하려고 마음에 다짐하는자, 이것이 최상의 복 이니라.

(261) 박애와 기술과 훈련을 쌓고, 그 위에 언변이  능한 것, 이것이 최상의 복이니라.

(262) 부모를 섬기고 처자를 사랑하며 일에 질서가 있어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 이것이 최상의 복이니라.

(263) 보시와 이법에 맞는 행위와 친족을 사랑하고  비난을 받지 않는 행위, 이것이 최상의 복 이니라.

(264) 악을 싫어해서 멀리하며 술을 금하고 덕행에 소홀하지 않는 것, 이것이 최상의 복이니라.

(265) 존경과 겸손과 만족과 감사와, 때때로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 최상의 복 이니라.

(266) 참고 견디며, 양순하고 도를 닦는  사람들과 만나며, 때때로 이법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 이것이 최상의 복이니라.

(267) 수양과 깨끗한 행위와 성스러운 진리를 보며, 안정을 확실히 느끼는 것, 이것이 최상의 복 이니라.

(268) 세습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두려움이 없으며, 악에 물들지 않고 마음이 안정되어 있는것,이것이 최상의 복이니라.

(269) 이와 같은 일을 행하면,  어떤일에 대하여도 패(敗)하지 않는다. 어디를 가나 행복에 도달할수 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최상의 복이니라.'



5. 수우칠로마 야차

내가 들으니, 어느때 존귀하신 스승께서 가야아 마을의 탕키타 석상(石床)에 있는 수우칠로마 야차의 처소에 계실때였다.  카라 야차와 수우칠로마 야차가 스승이 계시는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카라 야차가 수우칠로마 야차에게 말했다.

'그는 도를 닦는 자이다.'

그러나 수우칠로마 야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참으로 도를 닦는 자인지 혹 거짓으로 도를 닦는 자인지 내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는 참된 도를 닦는자가  아니고 그릇된 도를 닦는 자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수우칠로마 야차는 스승곁에 가까이 갔다. 그러나 스승은 몸을 피했다. 수우칠로마 야차가 스승에게 말했다.

'도를 닦는 자여, 그대가 나를 두려워 합니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벗이여, 나는 그대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와 부딪히는게 내게는 좋지 않다.'

다시 수우칠로마 야차가 말했다.

'도를 닦는 자여, 만일 그대가 나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면, 그대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여 심장을 찢고, 두 다리를 들어  간디스강 너머로 던져 버리겠오.'

스승께서 대답해 말씀하셨다.

'벗이여, 신들과 악마와 범천을 포함한 세계에서,  도를 닦는 자와 바라문과 신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중생들 가운데서, 내 마음을 혼란케  하여 심장을 찢고 두 다리를 들어 간디스강 너마로 던질수 있는자를 나는 찾아 볼 수 없다. 벗이여, 그대가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

이에 수우칠로마 야차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부처님에게 물었다.

(270) '탐욕과 혐오는 어떤 원인으로 생깁니까? 즐거움과 고통과 소름끼치는 일들은 어디서 생깁니까? 갖가지 망상은 어디서 일어나 마음을 방황케 합니까? 마치 아이들이 까마귀를 놓아 보내듯이.'

(271) '탐욕과 혐오는 자신으로부터 일어난다.  즐거움과 고통과 소름끼치는 일들도 자신으로부터 일어난다. 갖가지 망상도 자신으로부터 일어난다. 마치 아이들이 까마귀를 놓아 보내듯이

(272) 그것들은 애착에서 일어나고, 자신으로부터  나타난다. 마치 바니안 나무의 가지에서 새로운 어린  싹이 움트듯이. 널리 온갖  욕망에 집착해 있는 것은, 마치 풀덩굴이 숲속에 벋어 있는것과 같다.

(273) 야차여, 들으라. 번뇌가 일어나는 원인을  아는 자는 번뇌를 없앨수 있다. 그들은 건너기 어렵고 아직은 건넌 사람이  없는 사나운 물결을 건너가며, 다시 생존을 받는 일이 없다.'



6. 이법에 맞는 행동

(274) 이법에 맞는 행동, 깨끗한 행동, 이를 최상의 보물이라 일컫는다. 아무리 집을 나온 출가자가 되더라도.

(275) 만일 난폭한 말을 하며 남을 괴롭히기를  좋아하는 짐승 같은 성격이 있으면 그 사람의 생활은 더욱 악해지고 더러워 질 것이다.

(276) 논쟁을 즐기고, 정신이 흐리멍텅한 수행자는 눈뜬자의 설법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한다.

(277) 그는 무명(無明) 현혹되어, 수양 쌓은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며, 번뇌가 지옥으로 가는 길임을 알지 못한다.

(278) 이러한 수행자는, 고난에 빠져 모태(母胎)에서  모태로 암흑에서 암흑으로 전생(轉生)한다. 그리고 죽은 후에도 고통을 받게 된다.

(279) 시일이 지남에 따라 마치 똥통에  똥이 가득 차듯 부정(不淨)한 사람은 참으로 깨끗하기 어렵다.

(280) 수행자 들이여, 이와 같이 출가 수행자는 집에 의지하는 자이며,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혀 비뚤어진 생각으로 옳지 못한 행위를 하며, 나쁜곳에 있는 자임을 알라.

(281) 그대들은 다 화합해서 그런 사람을 배척하라. 곡식껍질을 날려보내 듯 그를 날려 보내라.

(282) 그리고, 도를 닦는자가 아닌데도 도를 닦는 자로 자처하는 곡식 껍질도 날려보내라.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혀 비뚤어진 생각을 하고, 옳지 못한 행위를 하며, 나쁜곳에 이른 그들을 밖으로 불어버려라.

(283) 스스로 깨끗한 자가 되어 서로 생각해주며, 깨끗한 자들과 함께 살도록 하라. 그곳에서 사이좋게 지내며, 총명을  잃지 말고, 고뇌를 없애도록 하라.



7. 바라문다운 것

내가 들으니, 어느때 존귀하신 스승님께서 사아밧티이의 제타숲속 고독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실 때 였다. 코오살라 땅에 사는 대부호인 바라문들은 스승이 계신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스승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기억에 남을만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는 한쪽으로 가서 앉았다. 대부호인  바라문이 스승에게 말했다.

'고오타마이시여, 대체 오늘의 바라문들은 옛바라문들이 지켜온 계율을 따르고 있습니까?'

'바라문들이여, 오늘의 바라문들은 옛바라문들의 계율을 따르고 있지않다.'

'그렇다면, 고오타마시여, 옛날 바라문들이 지킨  계율을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럼 바라문들이여, 주의해 들으라. 내가 말할터이니.'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대부호인 바라문들은 스승에게 대답했다.

스승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284) '옛 선인(仙人)은 자신을 억제하는 고행자였다. 그들은 오욕의 대상을 버리고 참된 의(義)를 행하였다.

(285) 바라문들에게는 가축이나 황금, 곡식도 없었다. 베에다의 낭독을 재보로 삼고 이를 곡식으로 생각하여 브라만의 창고를 지켰다.

(286) 그들을 위해 집집마다 문 앞에 마련해놓은 음식을 신도들은 바라문들에게 주려고 생각했다.

(287) 여러 색깔로 아름답게 물들인 옷과 침실, 그리고 집들을 많이 가지고 영광을 누리는 지방이나 나라 사람들은 모두 바라문에게 경례했다.

(288) 바라문들은 법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살해하거나 이겨서도 안돼었다. 그들이 문 앞에 서있는 것을 아무도 막을수가 없었다.

(289) 옛 바라문들은  48년간 동정(童貞)의  순결을 지켜왔다.  그리고 지(知)와 행(行)을 탐구했다.

(290) 바라문들은 다른 종족의 여인을 아내로 맞지 아니했다. 또한 그들은 아내를 사들이지도 않았다. 다만 서로 사랑하고  동거하며 화목하고 즐겁게 살았다.

(291) 바라문들은 월경 때문에 멀리해야할때에는 절대로  성의 교접을 행하지 않았다.

(292) 그들은 음행을 하지않고, 계율을  지키며, 정직하고, 온순하며, 고행하고 온유하며, 상해(傷害)하지 않으며, 참고 견디는 것을 찬양하였다.

(293) 그들 가운데서 용감하고 으뜸가는 바라문은 성의 교접을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294) 이 세상에 있는 일부 지혜로운 자들은, 그들의 행동을 본받아 음행하지 않고 계율을 지키며, 참고 견디는 것을 찬양하였다.

(295) 쌀과 침구와 의복과  버터와 기름등을 얻어 법도들이  모아 제사를 지냈다. 절대로 소를 잡는일은 없었다.

(296) 부모형제, 그밖의 친족들처럼, 소는 우리들의 최상의 친구다. 소  한테서는 약이 생긴다.

(297) 그것은 식료품이 되고 기력을 주며, 피부를 윤나게 해주고, 이런 이익이 있음을 알기에 그들은 소를 죽이지 않았다.

(298) 바라문들은 손발이 깨끗하며 몸집이 크고, 용모가 단정하고 수려하며, 명성이 있고 자기 임무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하고, 해서는 안되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세상사람들은 안락하고 영광을 누린다.

(299) 그런데 그들에게 뒤바뀐 견해가 일어났다. 점점 왕자같은 영화와 옷차림이 화려한 부인들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300) 준마(駿馬)가 끄는 마차와 아름다운 옷과 여러 가지로 설계되어 잘 지어진 주택들을 보게 되었다.

(301) 바라문들은, 소의 무리가 번창하고 미녀들에게 에워싸인 인간의 즐거움을 얻고 싶어하고 열망했다.

(302) 그들은 베에다 신주(紳呪)를 편찬하고  저 감자왕(甘蔗王)에게 가서 말하기를 <그대는 재보와 식량이 풍부합니다. 제사를 지내십시오. 그대의 재산은 많습니다. 제사를 지내십시오.>

(303) 수레와 군병의 주인인 왕은, 바라문들의 권유를 받아 제사를 지내고 바라문들에게 재물을 주었다.

(304) 소, 침구, 의복, 성장한 부녀자, 준마와 잘 만든 수레, 아름답게 채색된 수놓은 옷

(305) 잘 설계된 아름다운 저택에 여러 가지 식량과 함께, 이 재물을 바라문들에게 주었다.

(306) 이와같이 재물을 얻게된 그들은 이를 저장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욕심에 빠져, 더 많이 갖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다시 베에다 신주를  편찬하여, 감자왕에게 갔다.

(307) <물과 땅과 황금과 재물과 식량이 중생의 일용품이듯 소는  인간의 일용품이다. 제사를 지내십시오. 당신은 재산이 많습니다.>

(308) 이에 왕은 바라문들의 권유로 수천수백마리의  소를 희생하여 잡게 했다.

(309) 다리나 뿔, 그밖의 무엇으로도 해치는 일이 없는 소는 양처럼 온순하며, 항아리가넘치도록 젖을 짤수 있다. 그런데 왕은 뿔을 잡고 칼로  찔러 소를 죽이게 했다.

(310) 칼로 소를 찌르자,  모든 신들과 조상의 영혼  및 제석천(帝釋天)과 아수라, 그리고 나찰들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고 외쳤다.

(311) 옛날에는 탐욕과 굶주림과 노쇠의 세가지 병밖에 없었다.제사 지내기 위해 여러 가지 가축을 죽였기 때문에 아흔 여덟 가지 병이 생기게 되었다.

(312) 이렇게 살해의 무기를 부당하게 내려 친다는  것은 그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소를 죽였다.  제사를 지내는 자들은 이법에 어긋나 있었다.

(313) 예부터 내려온 이런 좋지못한 풍습은 지혜로운 자들의 비난을 받아 왔다. 일반 사람들도 이런 살생을 볼때마다 제사 지내는 자들을 비난하게 되었다.

(314) 이렇게 법이 무너질 때, 노예와 서민이 분열되고, 여러 왕족들이 분열되었으며, 아내는 남편을 멸시하게 되었다.

(315) 왕족과 범천의 친족  및 종성(種性)의 제도에  따라 지켜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생에대한 말씀을 저버리고 욕망에 지배되기에 이르렀다.'

이와같이 말씀하셨을 때, 대부호인 바라문이 스승에게 말했다.

'놀랍습니다. 고오타마시여, 훌륭하십니다. 고오타마시여, 마치 쓰러진자를 일으키시듯, 덮인 것을 벗겨주듯, 길 잃고  헤매는 자에게 길을 인도하듯, 혹 <눈 있는 자는 빛을 보리라>하며 어두운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듯  고오타마께서는 여러 가지로  법을 밝혀 주셨습니다.  저희들은 고오타마께

귀의합니다. 또 진리와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고오타마께서는 오늘부터 귀의한 저희들을 목숨이 다할때까지 재가의 신도로 받아주시옵소서.'



8.배(船)

(316)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법을 배워서  알게 되었을때에는 그사람을 마치 여러 신들인  인드라신을 공경하듯 해야 한다.  학식이 풍부한 사람은 존경을 받게 되면 즐거운 마음으로 진리를 드러내게 된다.

(317) 현자는 이를 잘듣고 이래하여, 이법에 따라 가르침을 실천하고 그런 학식이 있는 사람에게 가까이 하면 사리를 분별할줄 아는자가 되며  또한 총명한 자가 된다.

(318) 아직 사물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있는 소인이나, 어리석은 자를 가까이  하면 이법을 분별할줄 모르게  되며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319) 마치 사람이 강물에 빠지면 사나운 물결에 휩쓸려버리는 것과 같다. 그런자가 어찌 다른 사람을 건너게 할수 있겠는가.

(320) 그와 마찬가지로 진리를 분별할줄 모르고 학식이 많은 분에게 의를 듣지 않으면 스스로 알수도  없고 의혹에서 벗어날수도 없다.  그런 자가 어찌 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321) 견고한 배를 타고 노와 키가 갖추어진 다음, 그 배를 저을 줄 아는 경험자는 다른 여러 사람을 태워서 건너게 할수 있다.

(322) 그와 마찬가지로 베에다에 통달하여 자신을 수양하여 아는 것이 많으며, 동요되지 않는 성격을 가진자는 진리를 몸소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가르침에 귀기울이며 단정히 앉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323) 그러므로 참으로 지식있고 학식있는 성실한 사람과 가까이 하라. 사물을 알고, 이를 실천에 옮기며 진리를 터득한 자는 안락을 얻게 되리라.



9. 어떠한 도덕이 있는가

(324) 어떠한 도덕이 있으며, 어떠한 행동을  해야하며, 어떠한 행위를 부지런히 해야만 사람들이 바르게 서고 또 최상의 진리에 도달할수  있을것인가?


(325) 어른을 공경하고 질투하지 말며, 스승을  만나뵐 기회를 얻어, 법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얻어서, 그 설법을 정성껏 들으라.


(326) 고집을 버리고 겸허한 태도로, 때를  맞추어 스승을 찾아가라. 사리와 진리와 자제와 깨끗한 행동을 마음에 두고 이를 실행하라.


(327) 진리를 즐기고 진리를 기뻐하며, 진리에 안주하여 진리의 참뜻을 알고, 진리를 해치는 말을 입밖에 내지 말라. 훌륭한 설법의 진실에 따라 생활하라.


(328) 웃음, 농담, 울음, 혐오, 거짓말, 사기,  탐욕, 오만, 격분, 난폭, 더러움, 탐닉하는 일없이, 교만을 버리고 스스로 편히 서서 행하라.

(329) 훌륭한 설법을 듣고, 이를 이해하면 힘이 된다.  듣고서 안 것은 정신의 안정을 바로잡는 근원이 되고 힘이 된다. 사람이 성급하거나 게으르면 지혜도 학식도 얻을수 없게 된다.

(330) 성자가 말씀하신 진리를 기뻐하는 자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최상의 것이 된다. 그들은 안락과 평화와 명상속에 안주하게 되어, 학식과 지혜의 진수(眞髓)에 도달한다.



10. 정진(精進)

(331) 일어나라. 그리고 단정히 앉아  선(禪)을 행하라. 잠만 자면 그대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화살에 맞아 고뇌속에  있는 자들이 잠에 빠지다니.

(332) 일어나라. 그리고 단정히 앉아 선을 행하라.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하여 오직 배우라. <죽음의 왕>은 그대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힘에 굴복한 것을 알고 있다. 그대를 미혹에 빠지게 하지 말라.

(333) 신들과 인간들은 애착에 사로잡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집착을 초월하라. 얼마되지 않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자는 지옥에 떨어져 비통에 젖게되리라.

(334) 게으름은 먼지나 때와 같다. 먼지나  때는 게으름에서 일어난다. 힘써 닦아 밝은 지혜로 자기에게 박힌 화살을 뽑도록 하라.



11. 라아훌라


(335)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라아훌라야, 너는 가까이서 늘 함께 있는 습성에 젖어 현자를 경멸하지는 않았느냐? 여러 사람을 위해 횃불을 올리는 자를 너는 존경하고 있느냐?'

(336) 라아훌라는 대답했다.

'저는 가까이서 늘 함께 있는 습성에 젖어도 현자를 경멸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을 위해 횃불을 올리는 자를 저는 언제나 존경하고 있습니다.'

(337)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사랑스럽고 즐거움이 되는 오욕의 대상을 버리고, 신앙심으로 집을  나와 괴로움을 멸하는 자가 되라.

(338) 좋은 친구와 사귀라.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떠나 조용한 곳에 거주하라. 그리고 음식의 양(量)을 아는 자가 되라.

(339) 옷과 얻은 음식과 물건과 거처 이런것에 대한 욕심을 내지 마라.다시 속세에 돌아가지 마라.

(340) 계율의 규정을 지키고  오관(五官)을 지켜 그대 육신을  바로 보라. 참으로 속세에 싫증을 느끼는 자가 되라.

(341) 애욕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는 모든 외형적인 것을  버리고 생각을 골똘히 하라. 그리하여 몸은 부정(不淨)한 것임을 통찰하고 마음을 하나로 통일하라.

(342) 마음의 자취(相)를 두지 말며 마음속에 숨어있는 오만을 버리라. 그렇게 되면 너는 오만을 없애 마음이 안정된 나날을 보내게 되리라.'

참으로 존귀하신 스승께서는 라아훌라에게 이렇게 시를 지어 되풀이해 가르치셨다.



12. 방기이사


내가 들으니, 어느때  존귀하신 스승께서 아알라비이에  있는 악가알라바 영수(靈樹) 아래 계실 때, 방기이사의 스승으로 니그로다 캅파라는 장로가 악가알라바 영수 아래서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방기이사는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의 스승은 정말로  돌아가셨을까? 아니면 아직 생존해 계실까?> 저녁때가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이 계신곳으로 갔다. 존귀하신 스승에게 인사를 하고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제가 홀로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나의 스승은 정말로 돌아가셨을까? 아니면 아직 생존해 계실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기이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왼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스승에게 합장한 뒤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호소했다.

(343) '세상에서 갖가지 의혹을 물리치시고 세상의 지혜를 지니신  스승님께 묻겠습니다. 세상에서 널리 알려져 있고 명성이 있으며 마음에 평화를 얻은 수행자가 악가알라바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344) 스승이시여, 일찍이 그  바라문에게 스승님께서 니그로다  캅파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오직 진리를  통찰해오신 세존이시여, 그는  스승님을 예배하며 해탈을 구하기 위해 꾸준히 힘써왔습니다.

(345) 널리 세상을 보는 분이시여, 저희들은 스승님의 그 제자의 일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저희들의 귀는 열려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저희들의 스승이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십니다.

(346) 저희들의 의혹을 풀어주십시오. 이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가 아주 세상을 떠나셨는지 아닌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천의  눈을 가지신 제석천이 신들에게 설법하듯 이를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널리 세상을 보시는 분 이시여.

(347) 세상에 있는 모든  속박은 미망으로 가는 길이며 무지와 의혹에서 비롯한 것으로, 완전한 분(부처님)을 만나뵈면 그런 것은 다 사라집니다. 이는 인간을 위한 최상의 눈을 가지신 때문입니다.

(348) 바람이 짙은 구름을 쓸어버리듯, 이분께서 번뇌의 때를 씻어버리지 않으시면, 온 세상은 암흑으로 뒤덮히고 빛을 가진  자들도 빛을 내지 못할것입니다.

(349) 현자는 세상을 비춰주는 분 이십니다.  현자여, 저는 당신을 그런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당신이야말로 확실히 눈뜬자로 알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저희들을 위해 여러 사람 앞에서 니그로다 캅파에 대해 분명히 설명해 주십시오.

(350) 원컨데,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씀해 주십시오. 백조가 목을 치켜들고 천천히 노래하듯, 그런 밝은 목소리로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잡념을 다 버리고 듣겠습니다.

(351) 생사를 다 버리시고 악을 털어버리신 분께 간청합니다. 가르침을 들읍시다. 이는 평범한 자들은  알고자 하거나 말하고자 하는  것을 뜻대로 할수 없지만 모든게 완전하신 분께서는  이를 뜻대로 얼마든지 할수있기 때문입니다.

(352) 이 완전한 예언이 올바른  지자(智者)인 당신으로 인해 유지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마지막 합장을  드립니다. 스스로는 알고 계시면서  이를 입밖에 내지 않음으로 해서 저희들의 생각을 엇갈리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지혜로운 분이시여.

(353) 존귀한 이법(理法)을 낱낱이 알고  계시면서 저희들의 생각을 엇갈리게 하지 마십시오. 한여름의 찌는듯한 더위에 목마른 자가 물을 구하듯, 저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비를 줄줄 내리듯 말씀해 주십시오.

(354) 캅파가 깨끗한 행동으로 달성하려던 목적은 헛된 일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생존의 근원을 남겨둔 것이었습니까? 저희들은 극것을 알고자 합니다.'

(355) 스승께서 대답해 말씀하셨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명칭과 형태에 대한 애착을 끊어 버렸다. 오래 빠져있던 검은 악마의 흐름을 끊어 버렸다.'

 다섯 사람중 가장 뛰어난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356) '제 7의 선인이시여, 당신의 말씀을 듣고  저는 기쁘기 짝이 없습니다. 저의 질문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357) 니그로다 캅파는 말씀하신대로 실천하여 사람을  속이는 죽음의 악마가 펼친 견고한 그물을 찢어 버렸습니다.

(358) 스승이시여, 캅파는 헛된  집념의 뿌리를 발견  하였습니다. 캅파는 가장 건너기 어려운 죽음의 세계를 넘어 선것입니다.



13. 올바른 편력(遍歷)

(359) '지혜가 많고, 사나운 물결을 건너, 피안에 도달하여 완전한  열반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은 성자에게 묻고 싶습니다.  집을 나와 갖가지 욕망을 버린 수행자는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르게 편력 할 수 있겠습니까?'

(360) 스승께서 대답해 말씀 하셨다.

'길조(吉兆)나 천지이변을 헤아리는 점, 해몽 또는 관상 보는 점과 길흉의 판단을 다버린 수행자는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361) 수행자가 생존을 초월하여 참된 이법을 깨치고, 인간세계와 하늘세계의 갖가지 향락에 대한 탐욕을  버린다면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362) 수행자가 두가지 말을 버리고, 분노와  사물에 대한 인색에서 떠나, 역경과 순경에 대한 집념에서 벗어나면,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363)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다  버리고 그 무엇에도 집착을 갖지 말며, 또 이를 돌보지 않고 온갖 속박에서 벗어나면, 이 세상에서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364) 그가 생존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 가운데서 굳은 실체를 보지못하고 온갖 집착에 대한 탐욕을 억제하고, 이를 돌보지 않으며, 다른것에도 이끌리지 않으면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365) 말과 생각과 행위에 어긋남이 없고, 법을 옳게 알아 열반의 경지를 구하면,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366) 수행자가 <그는 나를 숭배한다> 고 생각하여 거만해 하지않고,  비난을 받아도 개의치 말며, 남들에게 먹을 것을  얻었다 해서 교만을 부리지 않으면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367) 수행자가 탐욕과 생존에의 욕망을 버리고 다른 생물의 목숨을 끊거나 몸을 묶는 일없이, 의혹을 초월하여 번뇌의 화살을 뽑아버리면,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368) 수행자가 자기에게 알맞은 것을 알고 세상의 아무것도 해치지 않으며 참으로 이법을 바로 알고 있으면,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369) 어떤 잠재적 헛된 집념도 갖지 않고 나쁜 뿌리가 뽑혀서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으면,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370) 번뇌의 때를 말끔히 씻어버리고, 거만을  버리며, 온갖 탐욕의 길을 넘어 스스로 억제하고 안주하여 마음의 평화를 누리면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371) 믿음이 두텁고, 학식이 많은 현자가 궁극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보고, 여러 당파 사이에서도 그가 맹종하지 않고, 탐욕과 혐오와 분노를  억제하면,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372) 깨끗한 행동으로 번뇌를 극복한 승리자로서, 가려진 온가것을 없애고, 온갖 사물을 지배하고, 피안에 이르러  흔들리지 않고, 생존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정확히 인식하면,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373) 과거나 미래에 대한 기대를 초월하여, 지극히 맑은 지혜가 있어, 변화하는 생존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으면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374) 궁극의 경지를 알고, 이법을 깨달아 번뇌의 때를 없애고, 생존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멸하면, 그로 인하여 세상을 바르게 편력할 수 있다.'

(375)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진실로 그러합니다. 그와 같이 생활하고 스스로 억제하는 수행자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바르게 편력하리라 생각합니다.'



14. 담미카

내가 들으니, 어느때 존귀하신 스승께서 사아밧티이의  제타 숲속 고독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실 때 였다. 담미카라는 재가(在家) 신도가 오백명의 같은 신도와 함께 스승의 곁에 다가왔다. 그들은 스승에게 인사를 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담미카는 스승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시를 지어 여쭈었다.

(376) '지혜가 많으신 고오타마이시여, 묻고  싶습니다. 가르침을 듣고 싶은 자로, 집을 나와 출가하는  것과 집에서 믿는  신도와는  어느쪽이 더 좋습니까?

(377) 당신께서는 모든 신들을 포함한 이 세계의  참된 모습과 구극의 목적을 알고 계십니다. 미묘한 일을 보는 데는  당신과 비교될 자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위대하신 눈 뜬자라고 부릅니다.

(378) 당신께서는 널리 깨달으시고,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기시며, 지식과 이법을 가르치십니다. 널리 보시는 분이시여, 세상에 뒤덮혀 있는 것을 벗겨 주시고, 티 없이 온 세상을 밝히십니다.

(379) 에라아바나라는 코끼리왕은 당신이 승자라는 말을 듣고,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그도 당신의 설법을 듣고 <훌륭하다> 하고 돌아갔습니다.

(380) 비사문 천왕이신 쿠베라도  가르침을 듣고자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그 역시 당신의 설법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381) 아아지이비카 교도나 자이나교도는 물론, 논쟁을 일삼는 어떤 이교도일지라도, 모두 지혜로서는 당신을 능가할수 없습니다. 마치 서 있는 자가 달려가는 자를 추월할수 없듯이.

(382) 논쟁을 일삼는 어떤 바라문 일지라도, 그가 노년이건 중년이건 혹은 젊은이건, 그밖의 <나야말로 참된 논객이다>라고  자부하는 다른 사람들도 다 당신에게 배워 이득을 보려고 했습니다.

(383) 스승이시여, 당신께서 밝혀주신 이법(理法)은 오묘하며 또한 평안을 가져옵니다. 바라오니 저희들에게 설법해주십시오.

(384) 이들 집을 나온  수행자들과 집에 머물러 있는  신도들은 스승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여기 모였습니다. 티  없는 사람의 설법을 듣듯이,  마치 여러 신들이 인드라신의 이야기를 듣듯이.'

(385) 스승께서 대답해 말씀하셨다.

'수행자 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번뇌에서  벗어나는 참된 이법(理法)을 그대들에게 말하리라. 그대들은 각자 이를 잘 지키라. 뜻을  보는 지자(知者)는 출가자에게서 그 행동을 배우고야 행하라.

(386) 수행자는 때가 아닌데 나돌아다니지 말라. 정한 시간에 탁발을 위해 마을로 나가라. 때가 아닌데 나돌아다님은 집념에 사로잡힌 때문이다.  그러므로 눈뜬자는 때가 아닌데 나돌아다니지 않는다.

(387) 갖가지 색, 소리, 맛, 향, 촉감은 사람을 도취시킨다. 이들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정한 시간에 탁발을 위하여 마을로 들어가라.

(388) 그리하여 수행자는 정한 시간에 시주한 음식을 가지고 물러나와 혼자 그늘에 앉으라. 자신을  억제하고 생각을 안으로 돌려  마음을 밖으로 보내지 말라.

(389) 만일 가르침을 들으려는 사람이나 다른 수행자들과 함께 이야기 할 기회가 있으면, 그들에게 훌륭한 진리를 보여주라. 남을 이간시키거나  비방하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390) 흔히 자기를 비방하는 말에 곧잘 반발한다. 이처럼 옹졸한 자를 우리는 칭찬할 수 없다. 논쟁에 대한 집착이  여기저기서 일어나 자신을 속박하므로 각자의 마음을 밖으로 멀리 떠나보내게 한다.

(391) 부처님의 제자는 이 설법을 듣고  음식과 거처와 침구와 태의(太依)의 때를 씻을 물을 주의해서 사용하라.

(392) 그러므로 수행자는 음식과 침구와 태의의 먼지를 없애기 위한 물에 집착하여 더럽혀지는 일이 없다. 이는 마치 연잎에 얹힌 물방울과 같다.

(393) 다음은, 집에 있는자가 할 일에  대하여 말하리라. 이와같이 실행에 옮기는 자는 훌륭한 가르침을 듣는 자이다. 순수한 출가수행자의 대한 규정을, 소유의 번거로움이 있는자가 지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394) 생명이 있는 것을 손수 해쳐서는 안된다. 또 남을 시켜 죽여서도 안된다. 그리고 남들이 살해하는 것을  묵인 해도 안된다. 세상에서  난폭한 것을 두려워하는 모든 생물에 대해 폭력을 거두라.

(395) 그리고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주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또 어디있든 간에 이를 갖지 말라. 또 남을 시켜  가지거나 다른 사람이 갖는 것도 묵인하지 말라. 주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서는 안된다.

(396) 지혜있는 자는 음탕한 행위를 피하라. 마치 붉게 타오르는 불을 피하듯. 만일 음행을 바로 잡을수 없더라도 남의 아내를 범해서는 안된다.

(397) 모임에서나 집단 속에서나 누구도 남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을 시켜 거짓말을 하게 해서도 안된다.  또 다른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을 묵인해도 안된다. 모든 허망한 말을 피하라.

(398) 술을 마시지 말라. 이 가르침을 기뻐하는 재가자는 남에게 술을 마시게 해도 안된다. 남이 술 마시는 것을 묵인해서도 안된다. 이는 끝내 사람을 취하게 함으로써 정신을 빼앗아 가는 것임을 알라.

(399) 어리석은 자들은 취함으로써 악을 행하며 또 남들을 게으르게 만들어 역시 악을 저지르게 한다. 이러함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피하라. 술은 사람을 취하게 하고, 정신을 흐리게 하는데 어리석은 자들은  이를 즐긴다.

(400) ?째, 생명 있는 것을 해치지 말라. 둘째, 주지 않는 것을 가지려 하지 말라. 셋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 넷째, 술을 마시지 말라. 다섯째, 부정한 행동인 음행에서 떠나라. 여섯째, 밤참을 먹지 말라.

(401) 일곱째, 꽃다발을 갖거나  향수를 사용하지 말라. 여덟째,  땅바닥에 마련한 잠자리에 눕도록 하라. 이것이 여덟부분으로 이루어진 우포오사타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난 불타가 널리 가르치는 바이다.

(402) 그리고 각각 그 달의 절반동안 제 8일, 제14일과 15일에 우포오사타를 행하고 또 특별한 달에는 깨끗한 마음으로 여덟부분으로 된  우포오사타를 청정한 마음으로 행하라.

(403) 우포오사타를 행한 식자(識者)는 다음날 이른  아침에,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수행자들에게 음식을 베풀어라.

(404) 법에 따라 얻은 재물로 부모를 부양하라. 정당한 장사를 하라. 이와같이 힘써 살아가는 재가자는 죽은후에 <스스로 빛을 낸다>는 이름을 가진 모든 신들과 함께 태어나리라.

 

 

3. 커다란 장(章) : 대품

 


1. 출 가 (出家)


(405) 눈 있는 자(부처님)는 어째서, 무슨 생각 끝에 즐거이 출가 했는지 나[阿難]는 이야기 하리라.

(406) 집에서의 생활은 비좁고 답답하며, 번거롭고 먼지가 쌓이는 곳이다. 그런데 출가는 드 넓은 들이기 때문에 (번거로움이 없다는 생각에서) 출가한 것이다.

(407) 출가한 다음에는 육신에 대한 악행은 버렸다. 말에 의한 악행도 버리게 되어, 깨끗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408) 눈뜬자는 마가다국의 산으로 둘러싸인 왕사성(王舍成)으로 갔다. 뛰어난 모습이신 분이 탁발하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409) 마가다국의 왕 빙비사아라는 전당위 꼭대기로 나아가 그를 보았다. 뛰어난 모습인 그를 보고 신하들에게 말했다.

(410) '그대들은 저 사람을 보라. 그 아름답고 건장하고 깨끗하며, 행동이 단정해 앞만 볼 뿐이다.

(411) 그는 눈을 아래로 뜨고 정신을 차리고 있다. 이 사람은 천한 가문의 출신이 아닌 모양이다. 사신(使臣)들은 어서달려가 그를 따르라. 그 수행자가 어디로 가는지.'

(412) 왕의 신하들은 그를 따라가며 말했다.
'저 수행자는 어디로 가는 것 일까? 또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413) 그는 모든 감관을 억제하며, 이를 잘 다스리는 한편, 바른 자각을 가지고 집집마다 다니며 음식을 얻어 삽시간에 바리때를 채웠다.

(414) 성자는 탁발을 마치고, 도시 교외로 나와 판다바산으로 향했다. 그는 그곳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415) 고오타마가 자기 처소에 가까이 이르는 것을 보고 왕의 신하들은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한 신하는 왕에게 돌아가 보고했다.

(416) '대왕이시여, 그 수행자는 판다바산 앞 동굴속에 호랑이나 황소, 또는 사자같이 앉아 있습니다.'

(417) 신하의 말을 듣고 크사트리야(빔비이사아라 왕)는 화려한 수레를 타고 판다바산으로 향했다.

(418) 크사트리야는 수레가 갈 수 있는 데까지 타고 가서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419) 왕은 기쁜 얼굴로 인사말을 나누고 말했다.

(420) '그대는 젊음이 넘치는 인생의 봄입니다. 용모도 단정하고 수려하여 귀한 왕족 인 듯 합니다.

(421) 코끼리떼를 앞세운 날쌘 군대를 정비해서 그대에게 선물을 주고 싶소. 이를 받아주시오. 그대는 어느 가문의 출신인가 알고 싶소.'

(422)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왕이여, 저쪽 설산(雪山) 중턱에 한 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옛부터 코오살라 나라의 주민으로 재물과 용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423) 성(性)은 <태양의 후예>라고 하며, 종족은 <석가족>이라 합니다. 나는 그 가문에서 출가했습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424) 모든 욕망에는 근심이 있고 집을 나와 홀로 멀리 떠나 있는 것이 마음 편한줄 알고 정진 합니다.내 마음은 이를 즐깁니다.'



 2. 꾸준한 노력


(425) 네란자야 강가에서 평안을 얻기 위해 힘써 노력하며 명상에 잠긴 나에게

(426) 악마 나무치(破旬)가 위로의 말을 던지며 다가와 말했다.
'당신의 몸이 메마르고 안색이 나쁩니다. 당신은 죽음이 가까웠습니다.

(427) 당신이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은 천의  하나나 될까 말까 하오. 당신은 살아야 합니다. 생명이 있어야 여러 가지 착한일도 할수  있지 않습니까?

(428) 그대가 베에다를 배우는 자로서 깨끗한  행동을 하며, 성화(聖火)에 공물을 바쳐야만 많은 공덕을 쌓을수 있습니다. 그렇게 고행에 힘쓴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429)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길은 가기가 힘들고 행하기도 힘들어 도달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러한 시를 지어 부르고 악마는 눈뜬자(부처님)의 곁에 섰다.

(430) 악마가 그렇게 말하자, 부처님은 이내 말씀 하셨다.
'게으른 자의 친족이여, 악한  자여, 너는 속세의 훌륭한  일을 하기 위해 여기 왔지만,

(431) 나는 속세의 훌륭한 사업을 티끌만큼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악마는 그런 사업을 하여 공덕을 세우려는 자들에게 가서 말하라.

(432) 나에게는 신앙이 있고, 노력이 있으며, 또한 지혜가 있다. 이처럼 힘써 노력하는 나에게 생명에 대한 것을 묻는가.

(433) (힘써 노력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이 바람은 능히 강물도 메마르게 할것이니, 오로지 마음을 다해 수도에 힘쓰고 있는 내 몸의 피가 어찌 마르지 않겠는가.

(434) 피가 메말라버리면 쓸개나 담도  마르며, 살이 빠지면 마음은  점점 맑아지리라. 내 생각과 지혜와 통일된 마음은 더욱 편안하게 되리니.

(435) 나는 이렇게 편안히 살며, 가장  큰 고통을 달게 받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은 갖가지 욕망에 사로 잡히는  일이 없다. 보라, 이 몸과  마음의 깨끗함을.

(436) 너의 첫 번째 군대는 욕망이고, 두 번째 군대는 혐오며, 세 번째 군대는 굶주림과 목마름이요, 네 번째 군대는 애착이다.

(437) 그리고 다섯 번째 군대는 권태와 잠이며, 여섯 번째 군대는 공포요, 일곱 번째 군대는 의혹이고, 여덟 번째 군대는 허영과 고집이다.

(438) 그릇된 수단으로 얻은 이득과 명성과 존경과 영애와 자기를 추켜세우고 남을 경멸하는 것.

(439) 나무치여, 이것들이 너의 병력이다. 검은 악마의 공격군이다. 용기가 없는 자는 이를 물리칠수 없다. 용기가 있는  자는 이를 물리치고 즐거움을 얻게 된다.

(440) 이러한 내가  문자풀을 입에  물고(항복의 표시)적에게 항복하겠느냐? 나는 이 세상의 생은 좋아하지 않는다. 패배하고 살아가느니 보다 차라리 싸워서 죽는 편이 낫다.

(441) 어떤 수행자(比丘)나 바라문들은 (너의  군대에게)멸하여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덕 있는 자가 갈길도 알지 못하고 있다.

(442) 군대가 사방을 에워싸고, 악마가  코끼리를 타고 돌아 다니는  것을 보았으니, 나는 이를 맞아 싸우리라.  너는 결코 나를 이곳에서  물러서게 하지 못하리라.

(443) 신들도 세상사람들도 너의 군대를 무찌를수 없지만 나는 너의 군대를 지혜로서 격파하리라. 마치 아직 불에 굽지 않은 흙사발을 돌로 깨듯.

(444) 그리고 깊이 느끼는 바를 옳게 잡아 굳건한 신념으로 널리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두루 돌아다닐 것이다--제자들을 인도하며.

(445) 그들은 내 가르침을 실제로 행하며, 게을리 하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 그곳에 가면 근심도 욕망도 없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리라.

(446) 이에 악마가 말했다.
'나는 칠년 동안이나 그대 가는 곳마다 그뒤를 한발한발 따라 다녔다.  그러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는 이에게는 뛰어들 틈이 없었다.

(447) 마치 까마귀가 반질반질한 바위를 보고 ,저것은 얼마나 연하고 맛이 좋을까>하고 그 주위를 빙빙 도는 것과 같았다.

(448) 그곳에서 맛있는 것을 얻을 수 없어서 날아가 버린 까마귀 처럼, 나는 지쳐서 고오타마에게서 떠나겠다.'

(449) 근심에 잠긴 악마의 옆구리에서 비파가 떨어졌다. 그러자 그 악마는 기운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3. 훌륭한 설법


내 가 들으니, 어느때  부처님께서 사아밧티이의 제타숲  고독한 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셨다. 그때, 스승은 도를 닦는 여러  사람[沙門]들을 불렀다.
'도를 닦는 자들이여, '
'존귀하신 스승이여,'
사문들이 스승께 대답했다.
' 도를 닦는 자들이여, 네가지 특징을 가진 말은 훌륭한 설법이며, 결코 그릇된 가르침이 아니다. 모든  지혜로운 자들이 들어도 결코  결점이 없어 비난 받지 않을 것이다. 그 네가지란 무엇인가? 도를 닦는 자들이여, 도인이 훌륭하게 가르친 것만을 말하고 그릇된 가르침을 말하지 않으며, 참다운 이법만을 말하고 그릇된  이법은 말하지 않으며, 정다운 말만을 하고 정답지 않은 말은 하지 않으며, 진실만을 말하고  허망한 말은 하지 않는 이 네가지 특징을 가진 말을, 도를 닦는 자들이여, 훌륭한 설법이라 한다. 결코 그릇된 이야기가 아니다. 따라서, 여러 지혜로운 사람들이 들어도 결코 비난 받지 않을 곳이다.'

이와 같이 말씀 하시고 나서, 행복한 사람인  스승께서는 다음과 같이 다시 말씀 하셨다.

(450) '선한 사람들은 가장 훌륭한 설법을 해야한다. 이것이 첫째다.  참된 이법을 말하고 그릇된 이법을 말하지 말라. 이것이 둘째다. 좋은 말을  하고 좋지 않은 말은 하지말라. 이것이 셋째다. 진실을 말하고 허망된  것을 말하지 말라. 이것이 넷째다.'

그때 방기이사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스승이 계신 곳을 향해 합장하고 말했다.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행복한 분이여,'
'기억을 더듬어 말해보라 방기이사여.'
스승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방기이사는 스승앞에 나아가 알맞은 시로 스승님을 찬탄했다.

(451) '<자기를 괴롭히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는 말만을 하라.>  하시니 진실로 훌륭한 설법입니다.

(452) <좋은 말만을 하라.> 이는 환영받을 말입니다. 느낌이 나쁜말은 쓰지 말고, 남을 즐겁게 하는 말만을 해야할것입니다.

(453) 진실은 참으로 영원토록  남는 말입니다. 이는  불멸의 법칙입니다. 선한 사람들은 진실과 진리와 이법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454) 평안에 도달하고 괴로움을 없애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가르친 말씀은 실로 모든 말 가운데서 가장 최상의 것입니다.'


4. 순다리카 바아라드바아자


내 가 들으니, 어느때 부처님께서 코오살라 나라의  순다리카 강가에 계실 때 였다. 바라문 순다리카 바아라드바아자가 강가에서 성화(聖火)를 올려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그는 불에 공양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두루 살피면서 말했다.
'이 공물의 나머지를 누구에게 주면 좋으랴.'
그 때 그는 머지않은 곳에 존귀하신 스승(부처님)이 어떤  나무 아래서 옷을 머리까지 푹 둘러쓰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왼손에는 공물의 나머지를 들고  오른손에는 물병을 들고 스승에게 다다갔다. 스승은 그 발소리를 듣고 머리에 둘러썼던 옷을 내렸다. 이에 순다리카 바아라드바아자는 <이 사람은 머리를 깍고 있다. 삭발한 분임에 틀림없다.> 생각하고 다시 되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기를, <머리를 깍고 있다 해도 이 세상에서 가끔 찾아볼  수 있는 바라문 일지도 모른다. 가까이 가서 그의 출신을 물어보자.> 그는 스승에게 다다가 말했다.
'당신은 어느 가문의 태생입니까?'
바라문인 순다리카 바아라드바아자에게 스승께서 시로 말씀하셨다.

(455) '나는 바라문도 아니고, 왕족도 아니다.  또 바이샤족도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여러 평민들의 성을 잘 알고 있으며, 몸에  가진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다만 깊이 생각하면서 세상을 걸어갈 뿐이다.

(456) 나는 중의(重衣)를 걸치고 집도 없이, 머리와  수염을 짧게 깍고 마음을 편안히 하고, 세상에 물드는 일  없이 세상을 걸어간다. 바라문이여, 내게 성을 묻는 것은 마땅치 않다.'

(457) 바라문이 말했다.
'그러나 바라문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그대는 바라문이 아닌가.>하고 묻기 마련입니다.'
'만일 그대가 바라문이  아니라면 바라문인 나에게  말하라. 난 그대에게 세 구절과 스물 넉자로 된 사아비트리이 찬가가 무엇인지 물으리니.'

(458) 바라문이 말했다.
'이 세상에서 선인(仙人)이나 왕족, 그리고 바라문이나 평민들이, 무엇 때문에 신들에게 갖가지 공물을 바칩니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구극에 도달하여 베에다에 통달한 자가 제사때 공물을 받으면 그 제사는 잘 이루어지리라.'

(459) 바라문이 말했다.
'저는 베에다에 통달한 자를 그렇게 보았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헌공 (獻供)은 이루어질 것이옵니다. (이전에는)그대와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남은 공물을 다른 사람이 먹었사옵니다.'

(460)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그러니까 바라문이여, 그대는 의(義)로운 자로 의를 구해  왔으니 가까이 다가와 물으라. 아마 여기 평온하고 분노의 연기가 사라져, 괴로움을 모르며 욕심이 없는 총명한 사람을 만나보게 되리라.'

(461) 바라문이 말했다.
'고오타마시여, 저는 제사를 즐기며 제사 올리기를 원하지만 무엇에 공물을 드리는 것이 좋은지 잘 모르니 이것을 저에게 가르쳐 주옵소서.'
스승께서 대답해 말씀하셨다.
'그럼 바라문이여, 귀 기울이라. 내 그대에게 설법하리라.

(462) 태어난 가문을 묻지 말고 그 행위를 물으라. 불은 온갖 섶에서  일어난다. 천한 집에서 태어난 자도 성자와 같이 도에 대한 뜻이 굳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근신하면 고귀한 인간이 된다.

(463) 진실로서 자기를 다스리고 여러 감관을 억제하며, 베에다의 오묘한 뜻에 통달하여 깨끗한 행동을 닦는자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64) 온갖 욕망을 버리고, 집 없이 걸어가며, 능히 자기 자신을 억제하고 곧고 올바른 자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65) 탐욕을 떠나 여러 기관(器官)이  평정을 누리고 달이라아후의 손에서 벗어나듯 속박되는 일이 없는  자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66) 집착하는 일이 없이. 언제나 마음을 가다듬어, 자기소유로 생각하던 것을 다 버리고 세상을 걸어가는  자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67) 온갖 욕망을 다 버리고 탐욕을 이겨가며, 삶과 죽음의 끝을 알고 마음의 평안으로 돌아가 맑기가 호수와 같은 완전한 자는 공양을 받을만 하니라.

(468) 완전한 자는 평등한 자로 평등하지 않은자와는 멀리 떠나 있다. 그는 끝없는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더러운 물이 드는 일이 없다. 완전한 자는 공양을 받을만 하니라.

(469) 속이거나 오만하지 않고 탐욕에서 벗어나  이것이라고 집착하는 일이 없으며, 욕심이 없고, 노함이 없이, 마음은 평화로와 우울의 때를 씻어버린 바라문인 완전한자는 공양을 받을만 하니라.

(470) 마음의 집착을 끊고, 아무것에도 사로 잡히지 않으며, 이 세상에 있어서나 저 세상에 있어서도 매이지 않는 완전한 자는 공양을 받을만 하니라.

(471) 마음을 언제나 고요히 하고,  사나운 물결을 건너 최상의  지혜로운 법을 알아, 번뇌의 때를 멸하여 최후의 육신을  가지고 있는 완전한 자는 공양을 받을만 하니라.

(472) 생존의 더러움과 거친말을 제거하고 멸하여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베에다에 정통하고 모든일을 해탈한  완전한자는 공양을 받을 만하니라.

(473) 집착을 넘어서 집착이 없고,  오만한 자들 사이에서도 오만하지  않고, 밭과 집터와 아울러 괴로움을 잘 알고있는  완전한 자는 공양을 받을 만하니라.

(474) 욕망에 끌리지 않고, 멀리  떠나는 것을 보고, 남이  가르치는 다른 견해를 초월하여 어떤 일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완전한 자는 공양을  받을 만하니라.

(475) 이것저것 일체의 사물을 깨달아 그것이  제거되고 소멸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의 평안에 돌아가 집착을 버리고  해탈한 완전한 자는 공양을 받을 만하니라.

(476) 번뇌의 속박과 이 세상의 생존을 없애버린 구극의 경지를 보고, 애욕의 길을 남김없이 끊어버려 깨끗하고 결함이 없으며 더러움이 없이  투명하고 완전한 자는 공양을 받을 만하니라.

(477) 자기가 자기 자신을 알고 인정하지 않으며 마음이 언제나 가라앉아, 육신이 똑바르고 스스로 안주하여 흔들리는 일이  없으며, 마음이 거칠지 않고 의혹을 모르는 완전한 자는 공양을 받을 만하니라.

(478) 미망에 의한 장애가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고, 모든 사물에  대하여 지혜로운 눈을 가지고 있으며,  최후의 육신을 지니고 복된  무상의 도를 깨친----이것만으로 인간은 깨끗해질 수 있다.---완전한 자는 공양을 받을 만하다.'

(479) '당신과 같은 베에다에 통달한 분을  만났으니, 저의 공물은 헛되지 않겠습니다. 범천께서 증인이 되어 살펴주소서.  스승이시여, 원하오니 제게서 받아주소서. 스승이시여, 원하오니 저의 공양을 받아주소서.'

(480) '시를 읊어 얻은 것으로 나는 먹을 수 없다. 바라문이여, 이는  바르게 보는 자들의 도리가 아니다. 시를 읊어서 얻은것을 눈뜬자들은 물리친다. 바라문이여, 일에는 도리가 있으니, 이것이 그들의 생활 방도니라.

(481) 완전한 자인 위대하신 선인(仙人), 번뇌의 때를 씻어버리고, 악행을 소멸한 자에게는 다른 음식을  바쳐라. 이것은 공덕을 바라는  자의 복된 밭이기 때문이니라.'

(482) '스승이시여, 저와 같은 사람의 보시를 받을수 있는분, 또  제사때에 공양할 만한분을 자세히 알고 싶으니 가르쳐 주소서.'

(483) '격렬함을 떠나 마음에 때가 묻지 않았으며, 모든 욕망을 떠나 두려움을 없앤자,

(484) 번뇌를 억제하고, 생사를 다 알며, 성자의 덕성을 몸에 지닌자가 왔을 때,

(485) 그를 대해 눈을 찌푸려 내려다 보지 말고 합장하여 그를 예배하라. 음식으로 그를 공양하라. 그에게 준 보시는 뜻을  이루게 되며 과보를 가져오리니.'

(486) '눈뜬자, 당신은 공양을 받아 마땅하옵니다. 당신은 최상의 복된  밭이며, 온 세상의 보시를 받으실 분이옵니다. 당신께 베푼 시물은 큰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에 바라문 순다리카 바아라드바아자가 다시 스승에게 말했다.
'놀랍습니다. 고오타마시여. 마치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듯, 가려진 것을 벗겨주듯, 길 잃은 자에게 길을 가르쳐주듯, 또는 <눈뜬자는  빛을 보리라> 하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듯, 고오타마께서는  갖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히셨습니다. 저는 고오타마 당신께 귀의 합니다. 그리고 법과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고오타마께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그리하여 바라문 순다리카  바아라드바아자는 스승에게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그러더니 얼마후  이 장로 순다리카 바아라드바아자는 홀로 멀리 떠나 게으르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기에 힘써 얼마 가지 않아 가장 깨끗한 행동의 구극을 현세에서 스스로 깨닫고, 동시에 이를 증명하고 구현하며 나날을 보냈다. <태어나는 일은 끝났다. 깨끗한 행(行)은 이미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했다. 이제 다시는 이런 생존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깨달았다. 이리하여 순다리카 바아라드바아자 장로는 성자의 한사람이 되었다.



5. 마아가


내가 들으니, 어느때 존귀하신 스승(부처님)께서 왕사성의 독수리봉에  계셨다. 이때 마아가라는 청년이 스승이 계신곳으로  찾아가 기쁘고 기억할 만한 인사를 나눈 후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마아가 청년은 스승께 말했다.
' 스승 고오타마시여, 저는 참으로 베푸는 시주(施主)이며, 어질고 너그러워 누구에게나 구하는 자에게 기꺼이 응답합니다. 그리고  법에 의해 재물을 구합니다. 그리하여 이것을 한 사람에게도  주고 두 사람에게도 주며,  세 사람에게도 주고 네 사람에게도 주며, 다섯사람에게도  주고 여섯 사람에게도 주며, 일곱 사람에게도 주고 여덟 사람에게도 주며, 아홉 사람에게도 주고 열 사람에게도 주며, 스무  사람에게도 주고 서른 사람에게도  주며, 마흔 사람에게도 주고 쉰 사람에게도 주며, 백  사람에게도 주고 더 많은 사람에게도 나누어 줍니다. 스승 고오타마시여, 제가 이렇게 주고  이와같이 바치면 얼마나 많은 복과 덕을 얻겠습니까?'
'젊운이여, 그대가 참으로 그렇게 주고  그렇게 바친다면 많은 복과  덕을 얻게 되리라. 젊은이여, 누구나 주는자, 베푸는 자로서, 주는 것을  요구하는 자에게 기꺼이 응하고 법에 따라 재물을  마련하여, 이를 한 사람에게 주고, 나악 백 사람에게도 주며, 더 많은 사람에게도 주면 많은 복과 덕을 얻게 되리라.'
마아가 청년은 이에 시를 지어 여쭈었다.

(487) 마아가 청년이 말했다.
' 가사를 걸치고 집없이 다니시는  너그러운 스승 고오타마께  묻겠습니다. 베푸는 것을 요구하는 자에게 응하는 재가(在家)의 시주, 복과 덕을  구하고 복과 덕을 위해 공물을 바치며, 이 세상에서 남에게 음식을 주는 자가 제사를 올릴 때 누구에게 바치는 공물이 가장 깨끗합니까?'

(488)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마아가여, 보시를 구하는 자에게 응하는 재가(在家)의 시주, 복과 덕을 구하고 복과 덕을 위해 공양을 바치는 자는 이 세상에서 음식을 남에게 주는 참된 보시를 받아야 할 자들을 기쁘게 하리라.'

(489) 마아가 청년이 말했다.
'보시를 구하는 자의 응하는 재가의 시주, 복과 덕을 구하고 복과 덕을 위해 공양을 바치는 자가  남에게 음식을 줄때는, 마땅히  보시를 받을만한 사람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스승이시여.'

(490) '참으로 집착하는 일없이 세상을 걸어가고, 가진 것 하나 없이 자기를 억제하는 완전한 자--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경하라.

(491)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스스로 억제하며, 해탈하여 괴로움을 모르고 욕심이 없는 자--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경하라.

(492) 모든 속박에서 해방되어 스스로 억제하고  해탈하여 괴로움과 욕심이 없는 자--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경하라.

(493) 탐욕과 혐오와 미망을 버리고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고 깨끗한 행을 닦고 있는자--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경하라.

(494) 속이지 말고 거만하지 않으며 탐욕에서 떠나 내것이라 집착하는 일 없이 욕심을 버린자--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경하라.

(495) 참으로 온갖 애착에 사로 잡히지 않고 사나운 물결을 건너 내 것이라 집착하는 일 없이 세상을  걸어가는자--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경하라.

(496) 이 세상이나 저 세상, 그 밖의 어떠한 세상에서도, 갖가지 생존에의 애착이 없는자--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경하라.

(497) 모든 욕망을 버리고, 집 없이 세상을 걸어가며 능히 자기 자신을 억제하며 올바르고 곧은자--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경하라.

(498) 탐욕을 떠나, 갖가지 기관(奇觀)의 평정을 누리고, 달이 라아후에서 벗어나듯 속박되는 일이 없는자--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경하라.

(499) 평안으로 돌아가고, 탐욕을 떠나 화내는 일이 없이, 이 세상에서 생존의 모든 요소를 버리고  살아가는자--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경하라.

(500) 생사를 남김없이 버리고, 온갖  의혹에서 떠난자--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경하라.

(501) 자기를 의지하여 세상을 걸어가며, 아무것도 가진 것 하나없이 모든 것을 해탈한자--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경하라.

(502) <이것은 최후의 생존이며,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다.> 는 것을 이 세상에서 진실로 알고 있는자--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경하라.

(503) 베에다에 정통하여 안정된 마음을 즐기고, 생각이 깊으며 도를 깨달아 많은 사람들을 귀의하게 한자--그들에게 때때로 공물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경하라.'

(504) '참으로 저의 질문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선 제게 보시 받을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스승이시여,  당신께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통찰하고 계십니다. 당신께선 참된 이법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505) 마아가 청년이 말했다.
'보시를 구하는 자에게 응하는 재가의 시주, 복과 덕을 구하고 복과  덕을 위해 공물을 바치는 자가, 이 세상에서 남에게 음식물을 줄 때 완전한 제사가 어떤 것인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스승이시여.'

(506) 존귀하신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마아가여, 제사를 지내라. 제사를 지내는 자는  언제 어디서나 마음을 깨끗이 해야한다. 제사 지낸 자가 전심  할 일은 제사 뿐이다. 그는  여기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악을 버린다.

(507) 그는 탐욕에서 떠나 악을 억제하고, 끝없는 자비심을 일으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한결같이 자비심을 사방에 가득차게 한다.'

(508) '누가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해탈하게  됩니까? 누가 속박됩니까? 그리고 무엇에 의하여 사람들은 스스로 범천에 이르게 됩니까? 성자이시여, 가르쳐 주십시오. 스승이시여, 저는 지금 범천을 눈 앞에  보았습니다. 참으로 당신은 범천과 같은 분  이십니다. 빛을 발하는 분이시여,  어떻게 하면 범천계에 태어날 수 있습니까?'

(509)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마아가여, 세가지 자세를 갖춘 완전한 제사를 지낼수 있는 자는 보시  받는 자들을 기쁘게 한다. 보시를 구하는 자에게  응하는 자가 이렇게 제사를 지내면 범천계에 태어날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마악 청년이 스승에게 말했다.
' 놀랍습니다. 고오타마시여. 마치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듯, 가려진 것을 벗겨주듯, 길 잃은 자에게 깅을 가르쳐주듯, 또는 <눈뜬자는  빛을 보리라> 하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듯, 고오타마께서는  갖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히셨습니다. 저는 고오타마 당신께 귀의 합니다. 그리고 법과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고오타마께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6. 사비야


내가 들으니, 어느때 존귀하신 스승께서 왕사성의 죽림원(竹林園)에  있는 다람쥐 기르는 곳에 거주하고 계실 때 였다.  세상을 편력하는 수행자 사비야에게 옛날의 혈족인 한 신(神)이 말했다.
'사비야여, 도를 닦는 자든 바라문이든 그대가 질문 했을 때 분명히  대답 할 수 있는 자가 있거든 그대는 그 사람에게서 깨끗한 행을 닦을 수 있으리라.'
이 에 수행자 사비야는 그 신으로부터 들은 그러한 가르침을 명심하고, 여섯 스승을 찾아가 질문했다. 즉, 그들은  푸우라나 캇사파, 막카리 고오살라, 아지타 케에사칸바리, 파쿠타 카차야나, 베라티이족의 아들인  산자야, 나아타족의 아들인 니간타등인데, 이들은 도를 닦는자나 바라문으로서 따르는 많은 무리들을 거느린 단체의 스승이며, 널리 이름이 알려진 교파의 교주이며, 많은 사람으로부터 선인(仙人)으로 숭배 받고 있었다. 그들은 수행자 사비야로부터 질문을 받고 만족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때문에, 분노와 미움과 두려운 빛을 얼굴에 나타내고는 오히려 수행자 사비야에게 반문했다. 사비야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들 도를 닦는자나 바라문들은  많은 제자를 거느린  단체의 스승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지고, 또 한 교파의 교조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선인이라 숭배를 받고 있다. 이들 푸우라나 캇사파에서  나아타족의 아들 니간타에 이르기 까지 내 질문에 만족한 대답을 못하고 분노와 미움과 두려운 빛을 얼굴에 나타내고 도리어 나에게  반문 하였다. 이제 나는  속세에 돌아가 갖가지 욕망이나 누려야 되겠다.> 그리고 사비야는 다시 생각하기를, <여기 계신 사문 고오타마도 많은 제자들을 거느린 단체의 스승이며,  널리 이름이 알려진 교파의 교조이며, 많은 사람으로부터 선인(仙人)으로 숭배 받고 있다. 이제 나는 고오타마를 찾아가서 질문해 보리라.> 그리고 수행자 사비야는 다시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여기 있는 도를 닦는자, 바라문들은  이미 나이가 늙어  노쇠 하였지만 윗자리에 있고 많은 경험을 쌓아  집을 나온지 이미 오래고,  또  제자를 거느린 단체의 스승으로 널리 이름이 알려지고, 또  한 교파의 교조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선인이라 숭배를 받고 있다. 즉, 이들 푸우라나 캇사파에서 나아타족의 아들 니간타에 이르는 사람들은 내 질문에 만족한  대답을 못했다. 만족한 대답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분노와  미움과 두려운 빛을 얼굴에 나타내고 도리어 나에게 반문 하였다. 그런데 도를 닦는 고오타마가 어떻게 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줄 수 있을까? 나이도 어리고 집을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고오타마가.....> 그리고 다시 계속해서 수행자 사비야는 생각했다. <도를 닦는 자가 젊다고 해서 얕보거나 푸대접해서는 안된다. 그는  비록 나이가 젊더라도 도를 닦는 자이다.큰 신통력이 있을 것이다. 나는 고오타마에게 가서 물어보리라.> 그리하여 수행자 사비야는 왕사성을 향해 발길을 옮겨 죽림원에 있는  다람쥐 기르는 곳에 계신  존귀하신 스승을 찾아가 뵈었다.  기쁘고 기억에 남을만한 인사를 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시를  지어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510) '궁금 한게 있어서 여쭈어 보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제가 물으면 차례차례로 법에 따라 분명하게 대답해 주십시오.'

(511)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그대는 질문하려고 먼 데서 내게로  왔다. 그대를 위해 그것을  풀어주리라. 그대가 물으면  차례차례로 법에 따라 분명하게 대답하리라.

(512) 사비야여,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물어보라. 나는  하나하나 물음을 풀어주리라.'
그때 수행자 사비야가 생각하기를,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정말 진귀한 일이다. 내가 도를 닦는 다른 바라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던 좋은 기회를 도를 닦는 고오타마께서  나에게 주시는 구나.'
그는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스승께 여쭈었다.

(513) 사비야가 말했다.
'무엇을 얻은자를 수행승이라 부릅니까?  무엇에 의하여 온화한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자기를 억제한  자라 할 수 있습니까? 어째서 눈뜬자라 부릅니까? 스승이시여, 이에 대해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514)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사비야여, 스스로 도를 닦아  완전한 평안에 도달하고,  의혹에서 벗어나 생존과 쇠망을 버리고, 깨끗한 행에 안주하여 이 세상에 거듭나지 않는자 --그가 <수행승> 이니라.

(515) 모든일에 대하여 평정을 가지고 마음이 침착하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해치는 일이 없이, 사나운 물결을 건너 악에 물들지 않고, 정욕에 복받치는 일이 없는 도인--그가 <온유한 자>니라.

(516) 온 세상에서 안팍으로  갖가지 감관(感官)을 잘  다스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떠나, 죽을때를 기다려  수양에 힘쓰는자--그가 <자기를 억제 한 자>라 하니라.

(517) 모든 우주의 시간과 운행과 윤회와 생명 있는 자의 삶과 죽음을 아울러 헤아려서, 이 세상의  티끌을 떠나 때묻지 않고  생을 멸해버리기에 이른자--그를 <깨달은 자>라 하니라.'
그때 수행자 사비야는 스승의  설법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다음과 같이 스승께 여쭈었다.

(518)  사비야가 말했다.
'무엇을 얻은자를 바라문이라  부릅니까? 무엇에 의해  사문이라 합니까? 왜 목욕한 자라고 부릅니까? 어째서  용(龍)이라 불립니까?  스승이시여, 이에 대해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519)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사비야여, 일체의 악을 물리쳐 때 묻지 않고, 마음을 잘 안정시켜 스스로 안주하며, 윤회를 넘어 완전한 자가 되어 구애됨이 없는 자--그를 <바라문>이라 하니라.

(520) 평안에 돌아가 선악을 버리고, 온갖 티끌을 떠나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알고, 생사를 초월한 자--그를 <사문>이라 하니라.

(521) 온 세상에 있으면서 안팍으로 일체의 죄악을 씻어 떨쳐 버리고, 시간에 지배되는 신들과 인간속에 살면서도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자--그를 <목욕한 자>라 부르니라.

(522) 이 세상의 어떤 죄악도 저지르지 않고, 모든 속박의 매듭을 풀어버리고, 모든 것에 사로 잡히는 일이 없이 해탈한 자--이런 사람을 바로 그 때문에 <용>이라 부르니라
이때 수행자 사비야는 스승의  설법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다음과 같이 스승께 여쭈었다.

(523) 사비야는 말했다.
'눈뜬자들은 누구를 가르켜 밭의 승자라 부릅니까? 무엇에 의하여 슬기로운 자라 불립니까? 어찌하여 현자라고 합니까? 또 어찌하여 성자라고 합니까? 스승이시여, 저의 물음에 설명해 주십시오.'

(524)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사비야여, 하늘의 밭과 인간의 밭, 그리고 범천의 밭 등, 모든  밭을 분별하고 모든 밭의 근원인 속박에서 벗어난  자--이런 사람이 바로 그 때문에 <밭의 승자>라고 불리니라.

(525) 하늘의 창고와 인간의 창고, 그리고 범천의 창고  등,  모든 창고를 분별하고 모든 창고의 근원인 속박에서 벗어난 자--이런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슬기로운 자>라고 불리니라.

(526) 안팍 양면으로 흰 것을 분별하여  맑고 밝은 지혜가 있고, 흑백[善.惡]을 초월한 자--이런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현자>라고 불리니라.

(527) 온 세상에서 안팍으로 옳고 그른 법을  알고 인간과 신들의 숭앙을 받으며, 집착의 그물에서 벗어난 자--그를 <성자>라 히니라.'
이때  수행자 사비야는 스승의 설법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다음과 같이 스승께 여쭈었다.

(528) 사비야가 말했다.
'무엇을 얻은자를 베에다에 통달한 자라 합니까?  어떻게 완전히 아는 자라 합니까? 어떻게 하여 정진하는 자가  됩니까? 또 태생이 훌륭한 자는 어떤 사람압니까? 스승이시여, 저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529) 스승께서 대답 하셨다.
'사비야여, 도를 닦는 자 및 바라문들이 갖고 있는 모든 베에다를  분별하여, 자기가 감득한 온갖 것에 대하여 탐내는 일이 없이 일체의 느김을 초월한 자--그는 <베에다에 통달한 자> 이니라.

(530) 안팍으로 병의 근원인 망상의 명칭과 형태를 분명히 알고, 온갖 병의 근원인 속박에서 벗어난 자--그런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완전히 안 자>라 불리니라.

(531) 이 세상에서 모든 죄악을 떠나고, 지옥의 괴로움을 벗어자 애서 노력하는 현자--그런 사람이 <전진 하는 자>이니라.

(532) 안팍으로 집착의 근원인 온갖 속박을 끊어버리고, 모든 집착의 근원인 속박에서 벗어난 자--그런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태생이 훌륭한 자>라 불리니라.
이때 수행자 사비야는 스승의  설법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다음과 같이 스승께 여쭈었다.

(533) 사비야가 말했다.
'무엇을 얻은자를 박식한 자라  부릅니까? 무엇에 의하여  거룩하게 됩니까? 또 어떻게 해야 행이 원만한 자가 됩니까? 편력의 행자는 누구를 말 합니까? 스승이시여, 저에게 설명 해주십시오.'

(534)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사비야여, 가르침을 듣고 나서 세상의 옳고 그른 모든 이빕을 분명히  알고,  모든 것에 대한 정복자, 의혹이 없는 자, 해탈한 자, 그리고 괴로움이 없는 자를 <박식한 자>라 부르니라.

(535) 지혜로운 자는 모든 더러운  장애를 끊으며, 모태에 들어가는  일이 없다. 세 가지 생각과 더러움을 없애 버리고  망상된 분별을 하지 않는자 --그를 <성자>라 부르니라.

(536) 이 세상에서 해야 할 갖가지  일을 다 하고, 슬기롭고 참된 이치를 알아, 무슨 일에도 사로 잡히지 않고 해탈하여 노여움을 모르는 자--그를 <행실이 원만한 자>라 부르니라.

(537) 위로나 아래로, 옆으로나 가운데로, 마땅히 괴로움의 과보가 일어날 행위를 피하며, 모든 행동을 잘 알아서 행하고, 거짓과 교만과 탐욕과  분노와 명칭과 형태를 멸하여, 얻어야 할  것을 마땅히 얻은 자--그를 <편력의 수행자>라 부르니라.'
이때  수행자 사비야는 스승의 설법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상의를 어깨에 걸치고 스승께 합장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시를 지어 눈뜬자이신 스승을 찬양했다.

(538) ' 도를 닦는 모든 사람들의 논쟁에서, 명칭과 문자와 뜻에서 일어난 예순 세가지 이설(異說)을 이기시고 지혜 많으신 분은  거센 물결을 건너 셨습니다.

(539) 당신께서는 괴로움을 멸하고 피안에 도달했습니다. 당신께서는 참된 자요 깨달은 자이며, 번뇌의 더러움을 멸한 자라고 생각합니다. 당신께서는 빛이 있고, 이해가  깊고, 지혜가 풍부합니다.  괴로움을 없앤 분이시여, 당신께선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540) 당신께서는 저에게 의혹이 있음을 아시고 저를 의혹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께 경배합니다.  성자이시여, 성자의 길을 다하신  이여, 마음이 거칠지 않은 태양의 후예이시여, 당신은 인자 하십니다.

(541) 제가 지난날에 품고있던 의문을 당신께서는 분명하게 밝혀주셨습니다. 눈이 있는 자여, 성자이시여, 진실로 당신은 깨치신 분 이십니다. 당신에겐 장애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542) 당신의 번뇌는 다 소멸되고 끊어졌습니다. 당신은 맑고 깨긋하고 자신을 억제하시며, 견고하고 성실하게 사시는 분이십니다.

(543) 코끼리중의 왕이요, 위대한 영웅이신 당신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모든 신들은 나아라다와 팟바타들과 함께 기뻐했습니다.

(544) 귀하신 분이시여, 당신께  경배합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시여,  저는 경배합니다. 신들을 포함한 온 세계에서 당신과 비교  할 만한 이는 없습니다.

(545) 당신은 깨달으신 분이십니다. 당신은  스승이십니다. 당신은 악마의 정복자이며, 현자 이십니다. 당신은 번뇌의 숨은 힘을 끊고 스스로 건넜으며, 또 남들을 건너게 했습니다.

(546) 당신은 속박을 넘어섰고,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없앴습니다. 당신은 집착하는 일이 없는 사자입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547) 아름다운 흰 연꽃이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것처럼, 당신은  선악의 어느것에도 물들지 않습니다. 용감하신 이여, 두발을 내밀어 주십시오. 사비야는 스승께 경배합니다.'
편력의 수행자 사비야는 존귀하신 스승의 두발에 머리를 대고 절하고  나서 말했다.
' 놀랍습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마치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듯, 가려진 것을 벗겨주듯, 길 잃은 자에게 길을 가르쳐주듯, 또는 <눈뜬자는  빛을 보리라>하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듯, 고오타마께서는  갖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히셨습니다. 저는 고오타마 당신께 귀의 합니다. 그리고 법과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고오타마께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사비야여, 일찍이 이교도 였던자가 이 가르침과 계율을 따라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고자 한다면, 그는 넉달동안 따로  살아야 하며 넉달이 지난후 족하다고 생각할 때, 여러 수행승들은 그를 출가시켜 완전한 계율을 받게 하여 수행승이 되게 한다. 이런 경우,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만일 일찍이 이교도 였던자가 이 가르침과  계율을 따라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고자 원하는 경우, 그렇게 하도록 한다면 저는 넉달 아니라 사년 동안 이라도 따로  살겠습니다. 그래서 사년이 지난후, 족하다고 생각 되었을 때 여러 수행승들은 저를 출가시키고 완전한 계율을 받게 하여 수행승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편력의 행자 사비야는 스승의 곁으로 곤 출가하여  스승에게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그러더니  얼마후  이 장로 사비야는  홀로 멀리 떠나 게으르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기에 힘써 얼마 가지 않아  가장 깨끗한 행동의 구극을 현세에서 스스로 깨닫고, 동시에 이를 증명하고 구현하며 나날을 보냈다. <태어나는 일은 끝났다. 깨끗한 행(行)은 이미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했다. 이제 다시는 이런 생존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깨달았다. 이리하여 사비야 장로는 성자의 한사람이 되었다.



7. 세에라


내 가 들으니, 어느때 스승께서 수행승 천 이백 오십명과 함께 앙굿타라아파를 편력하시다가 그 지방의 아아파나라는 앙굿타라아파의 어느  거리에 이르렀을 때 였다. 머리를 기른 케니야라는 수행자는 생각하기를, <석가족의 아들인 도를 닦는 고타마께서는 석가족의 집에서 출가하여, 수행승 천 이백 오십명의 많은 무리들과 함께 앙굿타라아파 지방을  편력하시다가 아아파나에 이르렀다. 그 고타마에게는 참된  자, 깨달은 자, 밝은 지혜와 원만한 행을 지닌 자, 복된  자, 세상을 아는 자, 가장 위대한  자, 사람들을 화목하게 인도 하는  자, 신들과 인간의 스승,  눈뜬 자, 그리고 거룩한 스승이라는 훌륭한 명성이 따르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깨닫고 증명하시며,  신들과 악마와 범천이 있는  이 세계의 도를 닦는 자와 바라문과 신들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중생에게  가르침을 베푸신다. 그는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훌륭하며, 뜻과 문장이 잘  갖추어진 가르침과 원만하고 깨끗한 행을 설법했다.  이렇게 훌륭하고 존경할만한 어른을 뵙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그리하여 머리가 긴 수행자 케니야는 스승이 계신곳으로 가서 인사를  했다. 기쁘고 기억할 만한 인사를 나누고는 한쪽으로 가서 앉았다. 스승께서는 머리 긴 수행자 케니야에게 법에 대한  설법을 하시고, 용기를 복돋아 기쁘게 해주셨다. 이리하여 수행자 케니야는 용기를 얻어 기쁜 마음으로 스승께 말씀  드렸다.
'고타마께서는 수행승의 모임에서 내일 제가 드리는  음식을 받아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스승께서 수행자 케니야에게 말씀 하셨다.
'케니야여, 수행승의 모임은  그 수가  상당히 많아 천  이백 오십명이나 된다. 뿐만 아니라, 그대는 바라문들을 섬기도 있지 않느냐?'
수행승 케니야는 거듭 스승께 말씀 드렸다.
'고타마시여, 수행승의 모임은  사람들이 많아 천  이백 오십명이나 되고 또한 저는 바라문을 섬기고 있지만, 고타마께서는  수행승의 모임에서 내일 제가 드리는 음식을 받아 주십시오.'
스승께서 수행자 케니야에게 다시 말씀 하셨다.
'케니야여, 수행승의 모임은  그 수가  상당히 많아 천  이백 오십명이나 된다. 뿐만 아니라, 그대는 바라문들을 신봉하고 있다.'
머리긴 수행승  케니야는 세 번째로  스승께 말씀 드렸다.
'고타마시여, 수행승의 모임은  사람들이 많아 천  이백 오십명이나 되고 또한 저는 바라문을 섬기고 있지만, 고타마께서는  수행승의 모임에서 내일 제가 드리는 음식을 받아 주십시오.'
스승께서는 침묵으로 이를 승낙하셨다. 그리하여 머리 긴 수행자 케니야는  스승께서 승낙하심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암자로 돌아가서 친구와 친지, 그리고 친척과 친족들에게 말했다.
' 친구와 친지, 그리고 친척과 친족이 되시는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십시오. 나는 사문 고타마를 그 수행승의 무리와 함께 내일 식사에  초대하였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친구와 친지, 그리고 친척과 친지들은 나를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머 리가 긴 수행자 케니야의 친구와 친지, 그리고 친척과 친지들은 그에게 답하고 나서, 어떤이는 솥을 구덩이를 파고,  어떤자는 장작을 패고, 어떤 자는 그릇을 씻고, 또 어떤 자는 물병을 준비히며, 어떤자는 자리를  마련했다. 머리 긴 수행자 케니야는 손수 흰발을 친 회장을 만들었다. 그때 바라문 세에라는 아아파나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세 베에다의 오묘한 이치에 통달하여, 그 낱말의 활용론(活用論 ), 음운론(音韻論), 어원론(語源論)과 제5의 옛 전설의 어구와 문법에 는통하고, 순세론(順世論)이나 위대한 인물의 관상에 통달하여, 삼백명의 소년들에게 베에다를 가르치고 있었다. 이때 마침 바라문 세에라는 삼백명의  소년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가 잠시 쉬기 위하여 여기저기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머리가 긴 케니야의 암자에 가까이 다다갔다. 거기서 세에라 바라문은  케에냐의 암자에 속해 있는 머리 기른 수행자들이  어떤이는 솥을 구덩이를  파고, 어떤자는 장작을 패고, 어떤 자는 그릇을 씻고, 또  어떤 자는 물병을 준비히며, 어떤 자는 자리를 마련했다. 머리  긴 수행자 케니야는 집회장을  만드는 것을 보고 케니야에게 말했다.
'그대 케니야는 아들을  장가라도 보내는가? 딸을  시집이라도 보내는가? 아니면 큰 제사라도 지내게 되는가? 아니면, 마가다왕 세에니야 빙비사아라가 군대를 이끌고 내일 식사에 초대 라도 되었는가?'
' 세에라여, 저에게는 아들을 장가들일 일도, 딸을 시집보낼 일도, 마가다왕 세에니야 빙비사아라가 군대를 이끌고 내일 식사에 초대되지도 않습니다. 저에게는 큰 제사가 곧 있게 됩니다. 석가족의  아들인 도를 닦는 고타마께서는 석가족의 집에서 출가하여, 수행승 천 이백 오십명의 많은 무리들과 함께 앙굿타라아파 지방을  편력하시다가 아아파나에  도착 했습니다. 그 고타마에게는 참된  자, 깨달은 자, 밝은 지혜와 원만한 행을 지닌 자, 복된  자, 세상을 아는 자, 가장 위대한  자, 사람들을  화목하게 인도 하는  자, 신들과 인간의 스승,  눈뜬 자, 그리고 거룩한 스승이라는 훌륭한 명성이 따르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을 수행승들과 함께 내일 식사에 초대 했습니다.'
'케니야여, 그대는 그를 눈뜬자라고 부르는가?'
'세에라여, 저는 그를 눈뜬자라고 부릅니다.'
'케니야여, 그대는 그를 눈뜬자라고 부르는가?'
'세에라여, 저는 그를 눈뜬자라고 부릅니다.'
그 때, 바라문 세에라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눈뜬자란 이 세상에서 그 목소리조차 듣기가 힘들다. 우리의 성전  속에 는 위대한 인물의 상(相)이 32가지 전해지고 있다. 이를 구비하고 있는 위인에게는 두가지의 길이 있을뿐 다른 길은 없다.  만일 그가 집에 머물러 생활하고 있다면 그는 전륜왕(轉輪王)이 되어 정의를 지키는 법왕이요, 사방의 정복자로 국토와 백성을  안전케 하며, 일곱가지의 보물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바퀴(輪)라는 보물, 코끼리, 말, 구슬, 여자, 재물, 그리고 지도자라는 보물이 따를 것이다. 또 그에게는 천명이상의 아들이 있는데 모두가 용감하여 외적을 용감하게  무찌른다. 그는 이 대지(大地)를 사해(四海) 끝까지 무력을 쓰지않고 정의를 정복하고  지배한다. 그런데 그가 만일 출가자가  된다면, 참된자, 깨달은 자가  되어, 이 세상에 덮힌 모든 번뇌를 없애게 될 것이다.>
'그대 케에냐여, 그러면 참된자,  깨달은 자인 고타마께서는  어디에 있는가?'
수행자 케니야는 오른팔을 들고 바라문 세에라에게 말했다.
'이쪽으로 푸른 숲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바라문 세에라는 삼백명의 소년들과 함께 스승이 계신곳으로 떠났다. 그때 세에라 바라문은 같이 온 이들 젊은 바라문들에게 말했다.
' 그대들은 급히 서둘지 말고 조용히 따라오라. 여러 스승은 사자처럼 홀로 걷는 자이며, 가까이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사문  고타마와 얘기하고 있을 때 그대들은  옆에서 끼어들면 안된다. 내  이야기가 끝날때 까지는 기다리고 있으라.'
이 에 바라문 세에라는 존귀하신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갔다. 스승께 절하고 나서, 기쁘고 기억할만한 인사를 나누고 한쪽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세에라는 스승의 몸에 서른 두가지  위인의 상이 있는지 탐지했다. 이리하여 세에라는 두가지를 제외하고는 서른  두가지 위인의 상이 다 갖추어 있음을 알수있었다.  그 두가지 위인의 상에  대해서는 의심이 되어 <눈뜬자>임을 믿을 수 없었다. 이  두가지란 몸안에 감추어진 음부[隱所]와 혀[廣長亂]의 상(相)이다. 이때 스승은 생각했다. <이 바라문 세에라는 내 몸에 있는 서른 두가지의  위인의 상을 거의 발 견했지만, 다만 두가지 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몸 안에 감추어진 음부와 혀의 두가지 상은 그것이 나에게 있을까 하고 의심하며 눈뜬자임을 믿지 않는구나.> 그래서 스승은 바라문 세에라가 몸안에 감추어져 있는 음부를 볼수  있도록 신통력을 발휘했다. 그 다음 스승은 혀를  내밀어 두 귓속을 아래위로 핥고 앞이마를 혀로 핥았다. 이에 바라문 세에라는 생각했다. <도를 닦는 고타마는 서른 두가지 위인의 상을 완전히 갖추고 있지만 불완전 한지도 모른다. 그가 과연 부처님 인지 아닌지를 아직 알 수가 없다. 다만 나는 많은 스승과 그 스승의 바라문들이,모든  <존경할 만한 자, 깨달은 자>는 자기가 찬양을 받을때에는 자기 자신을 남에게 나타내보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적당한 시를  지어 고타마를 눈 앞에서 찬양해 보리라.> 그래서 바라문 세에라는 스승앞에서 시를 지어 찬양했다.

(548) '스승이시여, 힘이 넘치는 분이시여, 당신은 몸이 완전하여 눈  부시게 빛나며, 태생도 훌륭하고 눈은 보기에도  아름답습니다. 이(齒)는 희디 흽니다.

(549) 그리고, 태생이 뛰어난 사람이 갖추고 있는 모습(相)은 모두 당신의 몸에 깃들어 있습니다.

(550) 그리고 눈이 맑고 얼굴빛이 좋으며 몸집이 크고 단정하며, 아름답게 빛나 도를 닦는 자들 속에서 태양처럼 부십니다.

(551) 당신은 얼핏 보아도 훌륭한 수행자로서 그 피부는 황금처럼 빛나고, 용모가 뛰어났으니 무엇 때문에 굳이 도를 닦을 필요가 있습니까?

(552) 당신은 전륜왕이 되어 병정의 주인 으로서 사방을 정복하여 인도의 지배자가 되셔야 합니다.

(553) 크사트리야 지방의 왕들은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 할 것입니다. 고타마시여, 왕 중의 왕 으로서 또한 인류의 제왕으로서 통치 하십시오.'

(554)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세에라여, 나는 왕이지만 최상의 진리의 왕이니라. 진리로써 바퀴를 굴리니라. 거꾸로 돌수 없는 바퀴를.'

(555) 바라문 세에라가 말했다.
'당신은 진리를 바로 깨달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타마여,  당신은 <최상의 진리의 왕이니라. 진리로써 바퀴를 굴리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556) 그럼, 누가 당신의 장군 입니까? 스승의 상속자인 제자는 누구입니까? 이 굴려진 바퀴는 당신 다음에 누가 굴립니까?'

(557)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세에라여, 내가 굴린 바퀴는 최상의 법륜으로, 사리붓다(舍利佛)가 굴리리라. 그는 완전한 자를 따라 세상에 태어났느니라.

(558) 나는 알아야 할 것을 이미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을 이미 닦았으며, 끊어야 할 것을 이미 끊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부처니라. 바라문이여.

(559) 나에 대한 의혹을 버리라. 바라문이여, 나를 믿으라. 깨달은  자들을 만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니라.

(560) 그들이 가끔 세상에 나타나는 것은 그대들에게는 매우 얻기 어려운 일인데, 나는 바로 그 진리를 깨달은 자니라. 바라문이여, 나는 번뇌의 화살을 끊어버린 최상의 사람이니라.

(561) 나는 신선한 자이며, 비길데가 없으며, 악마의 세력을 무찌르고,  모든 적을 항복 시켜 어떤 것에도 두려움 없이 기쁠뿐이니라.'

(562) 세에라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눈뜬자의 말을 들어보라. 그는 번뇌의  화살을 끊은 자이며, 위대한 영웅이다. 이는 마치 사자가 숲속에서 포효하는 것과 같다.

(563) 신성한 자이며 비길데가 없고, 악마의 세력을 무찌른 자를 보고 누가 믿지 않겠느냐. 이는 비록 피부가 검은  종족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믿을것이다.

(564) 따르려고 원하는 자는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고 싶지 않은자는 물러가라. 나는 뛰어난 지혜를 가지신 자의 곁으로 출가 할 것이다.'

(565) 세에라의 제자들이 말했다.
'만일 이 올바른 도를 깨달은 자의 가르침을 스승이 기뻐하신다면, 저희들도 뛰어난 지헤를 가지신 이의 곁으로 출가하겠습니다.'

(567) 세에라가 말했다.
'이들 삼백명의 제자들은 합장하고 원합니다.  스승이시여, 저희들은 당신의 곁에서 깨끗한 행을 닦고 싶습니다.'

(568)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세에라여, 내가 깨끗한 행을 설법했느니라. 이는 곧 눈 앞의 과보룰 가져오리라. 게으르지 않고 출가하여 꾸준히 올바른 길을  닦는 일은 헛된 일이 아니니라.'
바라문 세에라는 여러 제자들과 함께 스승곁으로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때마침 머리를 기른 수행자 케에냐가 그날 밤을 새고 자기 암자에서 맛이 좋고 부드러운 음식을 마련해 스승께 때가 왔음을 알렸다.
'고타마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음식을 마련했습니다.'
이 때 존귀하신 스승께서는 오전중에 내의와 중의를  입고 바리때를 들고, 수행자 케에냐의 암자에 이르렀다. 그리고 여러 수행승들과 함께 미리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수행자 케에냐는 부처님을 비롯하여 다른 수행자들에게 손수 맛좋고 부드러운 음식을 나르면서 맘껏 들도록 권했다.
그리고 스승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바리때에서 손을 떼시자, 수행자케에냐는 한쪽 낮은 자리에 앉았다. 스승은 수행자  케에냐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고마운 뜻을 표하셨다.

(568) '불(火)에 대한 공양은 제사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것이니라. 사아비트리이는 베에다의 시구(詩句)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니라. 왕은 인간 중에서 가장 뒤어난 자니라. 큰 바다는 모든 하천(河川)중에서 가장 크니라.

(569) 달은 여러 별 가운데서 으뜸이니라. 태양은 밝히는 것 중에서 으뜸이니라. 수행승은 공덛을 바라고 공양하는 사람 중에서 으뜸이니라.'
스 승께서 이 시를 지어 수행자 케에냐에게 고마운 뜻을 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났다. 이에 세에라는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을 떠나  다른 사라들을 멀리하고  홀로 게으르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기에 힘써 얼마 가지 않아 가장 깨끗한 행동의 구극을  현세에서 스스로 깨닫고, 동시에 이를 증명하고 구현하며 나날을 보냈다. <태어나는 일은 끝났다. 깨끗한 행(行)은 이미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했다. 이제 다시는 이런 생존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깨달았다.
이리하여 세에라 장로는 성자의 한사람이 되었다. 그후 세에라 장로는 그이 제자들과 함께 스승이 계신곳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스승께 합장하며 다음과 같이 시로 스승께 여주었다.

(570) '스승이시여, 눈뜬자여, 오늘부터 여드레 전에 당신에게 귀의 하였지만, 이레 밤을 지나 저희들은 당신의 가르침  속에서 안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571) 당신께서는 도를 깨달은 자이십니다.  당신은 스승이십니다. 그리고 악마의 정복자이시고 현자이십니다. 당신께서는  번뇌의 뿌리를 뽑아버리시고, 스스로 건너시며, 또 모든 사람들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572) 당신은 모든일을 초월하시고,  온갖 더러운 번뇌를  멸 하셨습니다. 당신은 집착하지 않는 사자(獅子)이십니다. 그리고 무서워 떠는 일이 없습니다.

(573) 이들 삽맥명의 수행자는 합장하고 서 있습니다. 영웅이시여, 다리를 펴 주십시오. 여러 용(수행자)들로 하여금 스승께 경배케 하겠습니다.'



8. 화 살


(574) 이 세상에서 인간의 생명은 정해 있지 않아 언제까지 살지 알 수 없다. 비참하고 짧아 고뇌로 연결되어 있다.

(575) 태어난 것들은 죽음을 면할 길이 없다. 늙으면 죽음이 온다. 진실로 생명 있는 자의 운명은 이러하다

(576) 잘 익은 과일은 빨리 떨어질 우려가  있다. 이와 같이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들은 죽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들은 언제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577) 이를테면, 도공(陶工)이 만든 그릇이 결국은 다 깨어지고 말 듯이, 인간의 생명도 그와 같다.

(578) 젊은이든 장년이든, 어리석은 자든 현자든, 모두 죽음에 굴복하며,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

(579) 그들은 죽음에 붙잡혀 저 세상으로 가지만 아비도 그 자식을 구할 수 없으며, 친족도 그 친족을 구하지 못한다.

(580) 보라, 친족들이 비통한 마음에 잠겨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사라져 간다.

(581)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죽음과 늙음으로 인해 침해를 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명한 자는 세상의 참 모습을 알고 슬퍼하지 않는다.

(582) 그대는 온 자의 길을 모르며, 간 자의 길도 모른다. 그대는 (삶과 죽음의)양 극을 보지 못하고 헛되이 울고만 있다.

(583) 미망(迷妄)에 붙들려 자기를 해치고 있는  자가 눈물과 슬픔에 잠겨 무슨 이득이 있다면 현자도 그렇게 할 것이다.

(584) 울고 슬퍼한다고 해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는 없다. 오직 괴로움만이 더하여 몸만 쇠퇴할 뿐이다.

(585) 스스로 자신을 해쳐 몸은 여위고 추하게 될 뿐이다. 그렇게 한다고 죽은 자가 어떻게 되지도 않는다. 울고 슬퍼하는 것은 헛된 일 이다.

(586) 우환을 버리지 못하는 자는 점점 더 고뇌를 갖기 마련이다. 죽은 자를 생각하여 흐느껴 우는 것은 우환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587) 또한 자기의 업에 좇아 죽어 가는 자들을 보라. 그들 생명 있는 자들은  죽음에 사로 잡혀 떨고 있지 않는가.

(588) 사람들이 여러 가지 소망을 갖더라도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또 기대에 어긋 나는 것도 이와 같다. 세상의 저 모습을 보라.

(589) 비록 사람이 백년 혹은 그 이상을 산다해도 결국 자기 친족들을 떠나, 이 세상의 생명을 버리게 된다.

(590) 그러므로 존경하는 사람의 말씀을 듣고, 죽은 자를 보았을 때에는, <그는  이미 내 힘이 미치지 못하는 존재다.> 이렇게 깨닫고 비통한 생각을 버려라.

(591) 가령, 불난 집을 물로 끄듯, 지혜롭고 총명한 현자들은 우환이 일어나면 그것을 곧 지워 버린다. 마치 바람이 솜을 날려 버리듯.

(592)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구하는 자는 비애와 탐욕과 우환을 버려라. (번뇌의)화살을 빼 버려라.

(593) (번뇌의) 화살을 뽑아버리고, 거리낌 없이,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면, 모든 우환을 초월하여 근심 없는 자, 평안으로 돌아간 자가 된다.



9. 바아셋타


내 가 들으니, 어느 때 존귀하신 스승(부처님)께서 잇차아낭갈라의 숲에 계실때였다. 재산이 많은 저명한 바라문들이 그 마을에 살고 있었다. 이들은 바라문 창킹, 타아룻카, 폭카라사아티. 자아눗소오니, 토오데에야 및  그 밖의 큰 재산가인 저명한 바라문들이었다. 그때 바아셋타와 바아라드바아자란 두 청년이 여기저기 거닐다가 다음과 같은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바아셋타가 말했다.
'바라문이란 도대체 무슨 뜻인가?'
바아라드바아자가 말했다.
'아버지 쪽이나 어머니 쪽 양쪽 다 함께 태생이 올바르고 유서 깊은 순결한 모태에서 7대 조상에 이르기까지 혈통에 아직 험이 없으며, 비난받은 일도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을 바라문이라 한다.'
이에 바아셋타 청년이 말했다.
'사람들이 계율을 지키고 덕행을 갖추면 이런 사람을 바라문이라 할 수 있다.'
이리하여 바아라드바아자 청년은 바아셋타 청년을 설득할  수 없었으며, 바아셋타도 역시 바아라드바아자를 설득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바아셋타가 말했다.
' 바아라드바아자여, 석가족의 후손인 고타마께서는 출가하여 이곳 잇차아낭 갈라 숲 속에 살고 있다. 그 고타마 스승에게는 존경할 만한 자, 눈뜬 자, 밝은 지혜와 원만한 행을 갖춘 자, 복된 자, 세상을 아는 자, 가장 위대한 자,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는 인도자, 신들과 인간의  스승, 눈이 열린 부처, 거룩한 스승, 이런 훌륭한 명성을 가지고 있다. 바아라드바아자여, 사문 고타마에게로 가자. 우리는 사문 고타마의 분명한 대답에 따라 그것을 그대로 따름이 좋을 것이다.' 
 '좋다, 그러자.' 
  이에 바아라드바아자가 대답했다. 이리하여 바아셋타와 바아라드바아자 두 청년은 존귀하신 스승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스승께 절하고 나서 기쁘고도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누고서  한쪽에  가서 앉았다. 바라문 바아셋타가 스승에게 여쭈었다.

(594) '저희 두 사람은 세 베에다의 학자라고 인정하고 있으며,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폭카라사아티의 제자이고,  이 사람은 타아룻카의 제자입니다.

(595) 세 베에다에 쓰여있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베에다의 어구(語句)와 문법에 정통하며 베에다의 낭송은 스승과도 대등합니다.

 (596) 고타마시여, 저희는 태생에 대하여 논쟁하였습니다. 바아라드바아자는 <혈통에 따라 바라문이 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저는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된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바른 눈을 가지신 이여, 이를 풀어 주십시오.

(597) 저희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습니다. 눈뜬자로 널리 알려진 스승께 묻고 싶어 여기 왔습니다.

(598) 사람들이 둥근 달을 향해 가까이 가 합장하고 경배하듯, 세상사람들은 고타마를 존경하고 경배합니다.

(599) <세상의 눈>으로 나타나신 고타마에게 우리는 묻습니다. 혈통에 따라 바라문이 됩니까? 아니면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됩니까? 알지  못하는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십시오.---바라문이 무엇인지를.'

(600)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바아셋타여, 그대 들을 위해 갖가지 생물의 태생에 따른 구별을 차례대로 설명하리라.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1) 풀이나 나무에도 종류에  따라 구별이 있음을 알라.  그들은 <우리는 풀이다.> <우리는 나무다>하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 특징은 그들의 태생에 따라 생긴다. 이는 그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2) 구더기나 귀뚜라미, 개미에 이르기까지 벌레에도 (그 종류에  따라 구별이)있음을 알라.  그 특징은 그들의  태생에 따라 생긴다.  이는 그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3)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네  발의 짐승에도   (그 종류에 따라   구별이)있음을 알라.  그 특징은 그들의  태생에 따라 생긴다.  이는 그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4) 등이 길고 배로 땅위를 기어 다니는 것[뱀]에도  (그 종류에  따라 구별이)있음을   알라. 그  특징은 그들의   태생에 따라  생긴다.  이는 그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5) 물속에서   나서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에도  (그 종류에   따라 구별이)있음을   알라. 그  특징은 그들의   태생에 따라  생긴다.  이는 그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6) 공중에 날아 다니는  새들에도 (그 종류에 따라  구별이)있음을 알라. 그 특징은 그들의 태생에 따라 생긴다. 이는 그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7) 이처럼 생물에 있어서는 태생에 따라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태생에 따라 특징이 여러 가지로 다르다고 할 수 없다.

(608) 머리나 머리칼, 귀나 눈, 입이나 코, 입술이나 눈썹에 대해서도,

(609) 목이나 어깨, 배나 등, 엉덩이나 가슴, 음부나 성교에 대해서도,

(610) 손이나 발, 손가락이나 손톱, 종아리나 무릎, 얼굴이나 음성에  대해서도 다른 생물처럼 태생에 따라 생기는 구별이 없다.

(611) 몸을 받을 생물 사이에는 각각 구별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이러한 구별이 없다. 인간에게서 구별이 나타나는 것은 오직 그 명칭 뿐이다.

(612) 인간 중에서 소를 길러서 생활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농부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라. 바아셋타여,

(613) 인간 중에서 갖가지 기능으로 생활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공인(工人)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라. 바아셋타여.

(614) 인간 중에서 매매를 하여 생활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상인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라. 바아셋타여.

(615) 인간 중에서 남에게 고용되어 생활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고용인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라. 바아셋타여.

(616) 인간 중에서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생활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도적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라. 바아셋타여.

(617) 인간 중에서 무술로  생활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무사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라. 바아셋타여.

(618) 인간 중에서 사제직으로 생활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제관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라. 바아셋타여.

(619) 인간 중에서 고을이나 나라를  차지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왕이지 바라문이 아님을 알라. 바아셋타여.

(620) 우리는 (바라문인 여자의)태에서 생겨나고  또 그(바라문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자도 바라문이라 하지 않는다. 그는 <그대여, 라고 불리는 자>로 불린다. 그는 어떤 소유물에 사로 잡혀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고 집착이 없는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고 부른다.

(621) 모든 속박을 끊고 두려움을 모르며, 일체의 집착을 초월하여 사로 잡히지 않은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22) 가죽 끈과 밧줄과 올가미를 끊어버리고,  장애를 없앤 눈뜬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23) 죄 없이 남에게 욕  먹으며, 매 맞고 결박 당하는  것을 참고 견디며, 마음이 용감한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24) 화내는 일이 없고, 도덕을 지키며, 계율을 받들고 욕심을 부리는 일이 없이, 몸을 수양하여 최후의 육신에 도달한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25) 연잎의 이슬처럼, 송곳 끝의 겨자씨  처럼, 갖가지 욕정에 더럽혀지지 않는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26) 이 세상에서 이미 자기의 고뇌가 멸하였음을 알며, 무거운 짐을 내리고 사로 잡히는 일이 없는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27) 지혜가 깊고 총명하여, 온갖 도에 통달하여 최고의 목적에 도달한 자 ---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28) 재가자나 출가자의 어느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집 없이 편력하며, 욕심이 적은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29) 강하거나 약한 어떤 생물에게도 폭력을 쓰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 죽게 하지도 않는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30) 적의를 갖고 있는 자들 속에서도 적의를 품지 않고, 폭력을 사용하는 자들 속에서도  마음이 온유하며, 집착하는  자들 속에서도 집착하지 않는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31) 겨자씨가 송곳 끝에서 떨어지듯,  애착과 거만과 증오와 은폐를  제거한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32) 난폭하지 않고, 말을 전하는  데 진실하며, 말로써 남의  감정을 상케 하지 않는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33) 이 세상에서 길고 짧거나, 가늘거나 굵고, 깨끗하거나 더러운 것을 막론하고, 주지 않는 것은 가지려 하지 않는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34)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라지 않으며,  욕구도 걸림도 없는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35) 무엇에도 매이는 일 없이 일체를 깨달아, 의혹에서 벗어나 결코 죽는 일이 없는 경지에 도달한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36) 이 세상의 화와 복, 그 어느것에도 사로  잡히지 않으며, 근심 걱정이 없고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37) 구름에 가리지 않는 달처럼, 맑고  깨끗하여 흐려지지 않으며, 환락의 생활을 버린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38) 이 힘들고 험난한 길과 윤회와 미망을 떠나, 거센 물결을 건너 피안에 도달하고 정신을 안정시켜 욕심과 의혹과 집착함이 없이 마음이 편안한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39) 이 세상에서 욕망을  버리고 출가하여 편력하며 탐욕에  젖은 생활을 버린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40) 이 세상에서 애착을 끊고, 출가하여 편력하며 애착에 젖은 생활을 버린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41) 인간의 굴레를 버리고, 하늘의 굴레도 벗어나 모든 굴레에서 떠난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42) 쾌락이나 쾌락이 아닌 것도 버리고 깨끗하고  맑아져 사로 잡히는 것이 없이 온 세계를 이긴 영웅---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43)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사를  알고, 집착함이 없는 복된  자, 깨달은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44) 신들이나 귀신이나 인간도 그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 번뇌의 때를 씻어 버린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45) 앞이든 뒤든 중간이든, 가진 것 하나  없고 집착하지 않는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46) 황소 처럼 씩씩하고  기품 있으며, 영웅 대선인 승리자 욕심  없는 자 때를 씻어 버린 자 깨달은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47) 전생을 알고 천국과 지옥을 알며, 생존을  멸해 버린 자---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648) 이 세상에서 부르는 이름이나 성은 통칭에 지나지 않으며, (사람이 태어 났을때)그 때마다 임시로 붙여 전해지는 것이다.

(649) (성명이 임시로 붙여진 것을) 모른 자들은 그릇된 선입관을 오랫동안 갖게 된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말한다.<태생에 다라 바라문이 된다>고.

(650) 태생에 따라 바라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또 태생에 따라 바라문이 안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되기도  하고 또 안되기도 한다.

(651) 행위에 따라 농부가 되고 행위에 따라  공인(工人)이 된다. 행위에 따라 상인이 되고 행위에 따라 고용인이 된다.

(652) 행위에 따라 농부가 되고 행위에 따라 무사가 된다. 행위에 따라 제관이 되고 행위에 따라 왕이 된다.

(653) 현자는 이렇게 행위를 있는 그대로  본다. 그는 그 근원을 보는 자이며, 행위(業)와 그 과보를 잘 알고 있다.

(654) 세상은 행위로 인해 존재하며 사람들도 행위로 인해 존재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업에 매여 있다. 마치 굴러가는 수레가 축(軸)에 연결되어 있듯이.

(655) 고행과 청정한 행과 감관의 억제와  자제---이것으로 바라문이 된다. 이것이 가장 훌륭한 바라문이다.

(656) 세 베에다를 갖추고 마음이 평안하여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없는, 모든 것을 아는 자, 이들이 범천이요, 제석이다. 바아셋트여, 이런 줄을 알라.'
이와같은 말씀을 듣고 바아셋트와 바아라드바아자는 스승을 향해 말했다.
' 놀랍습니다. 고오타마시여. 마치 쓰러진 사람을 일으키듯, 가려진 것을 벗겨주듯, 길 잃은 자에게 강을 가르쳐주듯, 또는 <눈뜬자는  빛을 보리라>하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듯, 고오타마께서는  갖가지 방법으로 법을 밝히셨습니다. 저는 고오타마 당신께 귀의 합니다. 그리고 법과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고오타마께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10. 코오칼리야


내 가 들으니, 어느 때 존귀하신 스승(부처님)께서 사아밧티이의 제타숲속 고독한 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실 때 였다. 수행승 코오칼리야가 스승이 계시는 곳으로 갔다. 스승께 인사를 하고 한쪽에 앉았다. 수행승 코오칼리야는 스승께 말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사아리풋타와 목가라아나는 사악(邪惡)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나쁜 욕심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스승께서는 수행승 코오칼리야에게 말했다.
'코오칼리아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사아리풋타와 목가라아나는 선량한 사람들 이다.'
이에 수행승 코오칼리야는 다시 스승께 말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읍니다만, 사아리풋타와 목가라아나는 사악(邪惡)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나쁜 욕심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다시 수행승 코오칼리야에게 말했다.
'코오칼리아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사아리풋타와 목가라아나를 믿고 사랑하라. 아리풋타와 목가라아나는  선량한 사람들 이다.'
이에 수행승 코오칼리야는 세번 째 다시 스승께 말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읍니다만, 사아리풋타와 목가라아나는 사악(邪惡)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나쁜 욕심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스승께서도 세 번 째 다시 수행승 코오칼리야에게 말했다.
'코오칼리아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사아리풋타와 목가라아나를 믿고 사랑하라. 아리풋타와 목가라아나는  선량한 사람들 이다.'
이 에 수행승 코오칼리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에게 배례하고  오른 쪽으로 돌아 나가버렸다. 수행승 코오칼리야가 나가 버리자 온 몸에 겨자씨만한 부스럼이 돋아났다. 처음에는 겨자씨 만한 것이 점점 녹두알만 해졌다. 녹두알만 하던 것이 다시 콩알 만해졌다. 콩알만 하던  것이 다시 대추씨 만해졌다. 대추씨만 하던 것이 다시 대추 만해졌다. 대추만 하던 것이 다시 감자 만해졌다. 감자만 하던 것이 다시 어린 모과 만해졌다. 어림 모과만 하던 것이 다시 다 익은  모과 만해졌다. 다 익은 모과 만하던 것이  드디어는 터져서 고름과 피가 쏟아져  나왔다. 수행승 코오칼리야는 결국 그  병 때문에 죽었다. 수행승  코오칼리야는 사아리풋타와 목가라아나에게 적의를  가졌기 때문에 죽어서는 홍련(紅蓮)지옥에 떨어졌다. 그 때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은 자정이 지났을 무렵, 화려한  모습을 하고 제타숲속을 샅샅이 밝히며 스승이 계신곳에 이르렀다. 그리고 스승에게 인사를 하고 한쪽에 섰다. 그리고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은 스승에게 말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수행승 코오칼리야는  죽었습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수행승 코오칼리야는   사아리풋타와 목가라아나에게 적의를 가졌기  때문에 죽어서는 홍련(紅蓮)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말을 마치고 스승께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하여, 스승께서는 날이 밝자 여러 수행승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여러 수행승들이여, 어젯밤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은 자정이 지났을 무렵, 화려한 모습을 하고 제타숲속을 샅샅이 밝히며 내가 있는곳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에게 인사를 하고 한쪽에 섰다. 그리고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은 나에게 말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수행승 코오칼리야는 죽었습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수행승 코오칼리야는  사아리풋타와  목가라아나에게 적의를 가졌기 때문에  죽어서는 홍련(紅蓮)지옥에 떨어졌습니다>이렇게 말하고 나서 나에게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한 수행승이 스승에게 말했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홍련 지옥에서의 수명은 얼마나 됩니까?'
'수행승이여, 홍련 지옥에서의 수명은 길다. 이를 몇  백년, 몇 천년, 몇 십만년 이라고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그러나 비유로 설명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수행승이여, 그렇게는 말할 수있다.'
하고 스승께서 말씀 하셨다.
'예컨데, 수행승이여, 코오살라의 말(斗)로  되어서 스무 카알리카의 깨가 있는데  그것을 꺼낸다고 할  때 한 사람이 백년걸려 한 알을 꺼낸다고  하자. 수행승이여, 이런  방법으로 그 스무  카알리카를 다 꺼낸다고 할지라도  한 아붓다지옥도 끝나지 않는다. 수행승이여,  그런데 스무 아붓다지옥은 한 니랏부다지옥과 같다.  수행승이여, 그리고  스무 니랏부다지옥은 한 아바바지옥과 같다. 수행승이여, 스무 아바바지옥은 한  아하하지옥과 같다. 수행승이여, 스무 아하하지옥은 한 아타타지옥과 같다.  수행승이여, 스무 아타타지옥은 한 황련지옥과  같다. 수행승이여, 스무 황련지옥은  한 백수련지옥과 같다. 수행승이여, 스무  백수련지옥은 한 청련지옥과  같다. 수행승이여, 스무 청련지옥은 한 백련지옥과 같다.  수행승이여, 스무 백련지옥은 한 홍련지옥과 같다. 그런데 수행승이여,  수행승 코오칼리야는  사아리풋타와 목가라아나에게 적의를 가졌기 때문에 죽어서는 홍련(紅蓮)지옥에 떨어진 것이다.'
스승께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행복한 자인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657) 사람이 태어날때는 그 입  안에 더러운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자는 더러운 말을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기 자신을 찍는다.

(658) 비방 받을 자를 찬양하고, 찬양해야  할 자는 비방하는 자--그는 입으로 죄를 거듭하여, 그 대문에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659) 도박으로 재산을 잃은 자는 비록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잃는다 할지라도, 그 불행은 대단할  것이 없다. 그러나 완전한 경지에 도달한 자들에 대하여 악의를 품는 죄는 실로 무거운 것이다.

(660) 악의를 가지고 더러운  말로 성자를 괴롭히는 자는 십만  하고도 서른 여섯의 니랏부다지옥과 다섯 앗부다지옥에 떨어진다.

(661) 거짓말을 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또한 실제로 하고도  <나는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도 같다. 이들은 다 비열한 행위자로서, 죽은 뒤에는 같은 내세를 더듬게 된다.

(662) 마음이 깨끗하여 남을 해치려 하지 않는 때  묻지 않는 자를 미워하는 어리석은 자에게는  반드시 그러한 악이  되돌아 온다. 이는 바람을  거슬러 먼지를 날리는 것과 같다.

(663) 갖가지 탐욕을 일삼으며, 신앙심이 없고  인색하며, 불친절하고 이기적이며, 이간질하는 말을 일삼는 자는 말로써 남을 때린다.

(664) 입버릇이 나쁘고 성실히 못한 천한 자여, 생명이 있는 것을 죽이고 사악하여 악행을 일삼는 자여, 야비하고  불량하며 덜된 자여, 이 세상에서 너무 입만 놀리지 마라. 이런 자들은 지옥에 떨어진다.

(665) 그런 자들은 사방에 먼지를  뿌려 해를 불러들이고, 어진 사람들을 비난하여 죄를 지으며, 악한 일을 많이 하여 오랫동안 깊은 구렁(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666) 어떤 업도 멸하는 일이 없다. 그것은 반드시 되돌아와  (그 업을 이룬) 그 입자가 받기 마련이다.  어리석은 자는 죄를 짓고 내세에서  과보를 받는다.

(667) (지옥에 떨어진 자는)  쇠 송곳에 꾀이고, 날카로운 칼이  달린 철창에 찔리기 마련이다. 또한 벌겋게 단 쇳덩이를 (일찍이 지은 업에 해당된) 음식으로 받아야 한다.

(668) (지옥에 있는 옥졸들은<잡아라> <때려라> 할뿐) 부드러운 말도 해주지 않으며,  상냥한 얼굴로 대해  주지도 않고 의지가  되어 주지도 않는다. (지옥에 떨어진 자들은) 누구나  활활 타오르는 무서운 숯불위에  앉아 화염 속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669) 또한 거기서는  (지옥에 있는 나졸들이)  철사로 만든 그물로 (지옥에 떨어진 자들을) 사로 잡아 쇠망치로 사정없이 때린다. 그리하여 이윽고 깜깜한 암흑속에 이르는데 이 암흑은 안개처럼 끝없이 퍼져 있다.

(670) 다음에는  (지옥에 떨어진 자들은)불이  타오르는 구리로 만든 가마솥에 들어간다. 그 끓는 가마솥에서 익혀가면서 가라앉았다 떳다 하게 된다.

(671) 고름이나 피가 뒤섞인 가마솥이 있어, 죄를 범한 자는 그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이들은 그 가마솥에서  어디로 가든 (고름과 피로) 뒤범벅되어 더럽혀 지게 되어 있다.

(672) 다음에는 또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물가마가 있어 죄를 범한  자는 그 속에서 삶아지기 마련이다.  나오려고 버둥거리거나 손을 휘  저어도 붙잡을 데가 없다. 이는  그 가마의 위가 안쪽으로  휘어져 둘레가 모두  한결 같기 때문이다.

(673) 또 날카로운 칼날이 수북하여 (지옥에 떨어진 자들이) 그 속에 들어가면 팔 다리가  짤린다. (지옥의 나졸들은)쇠꼬챙이로  혀를 꿰어 잡아당기며 고통을 준다,

(674) 그리고 (지옥에 떨어진  자들은)예리한 면도날이 있는 베에타라니강에 이르게 된다. 어리석은  무리들은 나쁜일을 하고 죄를  범함으로써 그곳으로 떨어진다.

(675) 거기에는 검정개와  얼룩개, 검은 까마귀 떼와 들여우들이  있어서, 울부짖는 그들을 악착같이 뜯어  먹는다. 독수리나 검은 새들도 살을  쪼아 먹는다.

(676) 죄를 범한 자가 받게  되는 이 지옥살이는 참으로 비참하다. 그러므로 누구나 이 세상에서  삶을 누리고 있는 동안  모쪼록 마땅히 해야할일을 할 것이며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677) 홍련 지옥에 떨어진 자의  수명은 수레에 가득 실은 깨알만큼 된다고, 여러 지혜로운 자들은 헤아렸다. 그것은  즉, 그 횃수는 오조년 하고도 오천 만년이나 된다.

(678) 여기서  말하는 지옥의 괴로움은 아무리  오래 계속된다 할지라도  이 기간은 지옥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깨끗하고 어질고 착한 미덕을 위해 항상 그 말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11. 나아라카


머리말

(679) 언제나 즐거우며 깨끗한 옷을 입고 있는 삼십 명의 신들이 옷깃을 잡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석천(帝釋天)을 극히 찬양하는 것을  아시타 선인(仙人)이  한낮의 휴식 때 보았다.

(680) 기뻐서 춤추는 신들을 보고 선인이 공손히 물었다.
'신들이 무리를 지어 기쁨이 넘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왜 당신들은 옷을 벗어 흔들고 있습니까?'

(681) 비록 아수라와 싸워 이겨서 아수라를  지게 했다 할지라도, 이처럼 몸의 털을 세워 흔들  만큼 기뻐할 수 없을 터 인데, 무슨  희귀한 일을 보았기에 그렇게도 기뻐합니까?'

(682) 그대들은 소리치고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하고 손뼉을 치고, 춤을  추었다. 나는 수미산 꼭대기에  살고 있는 당신들에게 묻습니다. 존귀하신 이여, 저의 궁금증을 어서 풀어주십시오.'

(683) 신들이 말했다.
'비할 데 없이 신묘한 보물인 저  보오디사타(菩薩-未來의 佛)가 만민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인간세계에 태어났읍니다.---석가족의  마을인 룸비니의 부락에 . 그리하여, 우리는 만족해 하고 어쩔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684) 살아있는 생명 있는 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 가장 고귀한 자,  황소 같은 자, 생명 있는  자중에서 가장 높은 자(부처님)는 이윽고 (선인들이 모이는 곳이라는)이름 난 숲 속에서 법륜(法輪)을 굴릴 것입니다. 용감한 사자가 뭇짐승 들을 이기고 포효하듯이.

(685) 선인은 (신들의) 이  말을 듣고 급히 (인간 세계로)  내려왔다. 그리고 숫도오다나왕의 궁전 가까이 가서 앉아, 석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자는 어디 있습니까? 나도 찾아 뵙고 싶습니다.'

(686) 이에 여러 석가족 들은 용광로에서  솜씨 있는 금세공(金細工)이 다듬은 황금처럼 행복에 빛나는 존귀한 얼굴을 가진 어린아이를 아시타에게 보였다.

(687) 타오르는 불꽃같이 빛나고, 하늘을 지나가는 달처럼 맑으며,  구름에서 벗어난 가을  태양같이 빛나는 어린아이를 보고  선인은 환희에 넘쳐 그 기쁨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688) 신들은 살이 천개나 되는 양산을 공중에 폈다. 황금 손잡이가 달린 부채를 아래 위로 부쳤다.  양산이나 부채를 손에 든 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689) 캉하시리(아시카)라는 머리를 묶은 선인은 머리위에 흰 양산을 받치고 붉은 모포 속에 있는 황금 패물 같은 어린아이를 보고 기뻐서 가슴에 안았다.

(690) 관상과 베에다에 정통한 그는 석가족의 황소같은 (훌륭한) 어린아이를 껴안고 그 용모를 살펴 보더니 기쁨을 참지 못하여 환성을 질렀다.
'이 어린아이는 위 없는 사람, 인간 중에서 가장 높으신 자다.'

(691) 그러더니 선인은 자기의 얼마  남지 않은 앞날을 생각하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선인이 우는 것을 보고 석가족이 말했다.
'우리 왕자에게 무슨 장애라도 있습니까?'

(692) 석가족이 이렇게 두려워 하는 빛을 보이자 선인은 말했다.
'나는 왕자에게 불길한 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에게 상서롭지 못한 일은 없습니다. 이 아이는  범상치 않습니다. 주의해서 잘 기르십시오.

(693) 이 왕자는 깨달음의 극에 이를것입니다.  이 아이는 가장 으뜸가는 청정을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고, 불쌍히 여겨 법륜을 굴리게 될것입니다. 그의 깨끗한 행은 널리 세상에 퍼질것입니다.

(694)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내 여생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도중에 나에게 죽음이 방문 할 것입니다.  나는 이 비할 데 없는 큰 힘을  가진 자의 가르침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괴롭고 비탄에  빠져 슬퍼하는 것입니다.'

(695) 이리하여 그 순결한 수행자는 석가족들을 크게 기쁘게 하고 궁으로부터 떠났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조카(나아라카)를 불러, 그  비할데 없는 큰 힘을 가진 자의 설법에 따르도록 전유해 말했다.

(696) '만일 네가 나중에 <눈뜬자가 깨달음을 펴고 진리의 길을 간다>는 말을 듣거든 그때 그곳으로 가서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그 스승에게서 깨끗한 행을 닦아라.'

(697) 남을 위해 걱정하고, 앞날의 있어서의 최상의 청정(涅槃)을 미리 내다 본 그 성자의 가르침대로 온갖  착한 근본을 쌓은 나아라카는 아시타 선인이 말한 위대한  승자(부처님)를 기다리면서 자기 자신의  감관을 지키며 살아갔다.

(698) 드디어 위대한  승자가 법륜을 굴린다는 소문을  듣게 되자, 아시타의  예언이 실현되었을 때,  그는 가장 뛰어난 선인을  찾아보고 기뻐하며 그 거룩한 성자에게 성스러운 행위에 대하여 가르침을 물었다. 

--머리말의 싯구는 이상으로 끝났다.---


(699) 나아라카가 말했다.
'아시타가 한 말을 저는  분명히 알겠습니다. 그러하오니, 고타마시여, 일체의 사물에 통달하신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700) 저는 출가한 몸으로, 탁발의 행을  쌓으려 하오니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성자여, 성스러운 행위와 최상의 도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701)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에게 성스러운  행에 대하여 가르쳐  주리라. 이것은 행하기 어렵고, 이루기 어려우니라. 내 그대를 위해 이를  말하리라. 그러니 의연하고 마음을 굳게하라.

(702) 마을에 가서는 욕설을  듣거나 존경을 받거나 똑같은  태도를 취하라. 욕설을 들어도 화내지 말며, 존경을 받아도 우쭐하지 마라.

(703) 비록 동산의 숲 속에 있어도, 불꽃같은 갖가지 정념(情念)이 일어난다. 때때로 부녀자가 성자도  유혹한다. 부녀자로 하여금 유혹케  하지 말라.

(704) 성(性)관계에서 멀리하며, 갖가지 욕망을 버리고, 약하고 강한 모든 생명체에 대하여 적대하지 말며 애착도 느끼지 말라.

(705) 그들도 나와 같고, 나도 그들과  같다>라고 생각하고, 생명 있는 것을 죽여서도 안되며 또 타인으로 하여금 죽이게 해서도 안된다.

(706) 평범한 이들이  사로잡히는 욕망과 집념에서 떠나,  올바른 눈을 가진  자는 참된 길을 걸어가라. 그리하여 지옥에서 벗어나라.

(707) 배를 줄이고 음식을 절제하여 탐내는  일이 없도록 하라. 욕심을 버리면 마음이 평안을 얻는다.

(708) 성자는 탁발을 위해 돌아다닌 후,  숲으로 돌아와 나무 아래에 앉아야 한다.

(709) 또한 성자는 마음의 안정을  누리는데 마음을 다하여 숲 속에서  즐기고 나무 아래서 명상에 잠겨 스스로 만족 해야 한다.

(710) 날이 밝으면, 마을을  찾아가라. 신들로부터 초대를 받거나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준다해도 결코 기뻐해서는 안된다.

(711) 성자는, 마을에  이르러 급하게  집집을 찾아다녀서는 안된다.  침묵을 지키고 음식을 구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

(712) <얻어서 잘됐다> <얻지  못한 것도 또한 잘된 일이다> 생각하고  완전한 자는  그 어느 경우에도  태연한 마음으로 돌아와야  한다. 마치 과일 나무 밑에 간 자가 과일을 얻지 못해도 태연히 돌아 오듯이.

(713) 그는 바리때를  손에 들고 돌아 다니며,  벙어리는 아니지만 벙어리로 생각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는 것이 적다고  야속하게 생각해도 안된다. 주는 이를 멸시 해서도 안된다.

(714) 사문(부처님) 높고  낮은 갖가지 도를  설법하셨다. 그는 다시 피안에 이르는 일이 없지만 단번에 피안에 이르는 일도 없다.

(715) 윤회의 흐름을 끊어버린 수행승 에게는 집착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야 할 것(善)과 해서는 안될 것(惡)도 다 버렸기 때문에 번뇌가 존재하지 않는다.'

(716) 스승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그대에게 성자의 길을 말하리라.  음식을 구할때는 면도날의 비유로서 하라. 혀로 윗 입술을 누르고 배에 들어갈 음식을 절제하라.

(717) 마음이 침체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쓸데없이 많은 것을 생각해서도 안된다. 버린 것이 없고  걸림이 없는 깨끗한 행을 구극의  근거로 삼아라.

(718) 혼자 앉아 있는  일과 도인을 섬기는 것을 배워라.  성자의 길은 혼자 있는데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혼자 있으면 즐거울 수  있어야 한다.

(719) 이렇게 하면 시방(十方)에서  빛나리라. 그러니 욕망을 버리고 명상에 잠겨 있는 여러 현자의 명성을  들으면 내 제자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믿음이 더욱 일어나리라.

(720) 이 일을 깊은 늪과 얕은 개울물의 비유로 알라. 얕은 개울물은 소리를 내며 흐르지만 큰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721)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한 것은 조용한 법이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절반쯤 들은 병과 같지만  현명한 자는 물이 가득 찬 연못과 같다.

(722) 도인(사문)이 뜻 깊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스스로 알고 그렇게 설법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알고서 많은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723) 그러나 스스로 알고 자기를 억제하여, 여러 말을 하지 않는 다면 그는 성자로서의 행에 맞다. 그런 자는 성자의 행을 체득한 것이다.' 



12. 두가지 관찰


내 가 들으니,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아밧티이의  동산에 있는 미가아라 장자(長者)의 어머니가 사는 누각에 계실 때였다. 그때 존귀하신 스승께서는 정기적인 집회(集會)가 있는 달 밝은 보름 밤에, 수행승(比丘)의 무리에 둘러싸여 집 밖에 계시었다. 존귀하신 스승께서는 묵묵히 앉아있는 수행승의 무리들을 돌아  보시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수행승 들이여, 선량하고 존귀하며, 세속을 더나 깨달음에 이르는 갖가지 진리가 있느니라. 그런데 < 수행승  들이여, 그대들이 선량하고 존귀하게 세속을 떠나 깨달음에 이르는  갖가지 진리를 듣는  까닭은 무엇인가?> 하고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으면 수행승 들이여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라---<두 가지의 진리를  분명히 알기 위함이다>라고. 그렇다면 그대들이 말하는 두 가지의 진리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하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른 길이다>하는 것이 그 두 번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법 하셨다.

(724) '괴로움을 모르고 괴로움이 일어남을 모르며, 또한 괴로움이 남김 없이 소멸되는 것도 모르고 괴로움이 소멸되는 그 길도 모르는 자들 ---

(725) 그들은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이룰 수 없다. 그들은 (윤회를)끊어 버릴 수 없다. 그들은 속된 생과 늙음을 받는다.

(726) 그러나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이 일어남을 알며, 또 괴로움이 남김 없이 소멸되는 것을 알고  괴로움이 소멸되는 그  길을 아는 자들---

(727) 그들은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구현한다.  그들은 (윤회를)끊어 버릴 수 있다. 그들은 속된 생과 늙음을 받지 않는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다 소인(素因)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째  관찰이다. <그러나 소인에서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존귀하신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28) '세상에 있는 모든 괴로움은 생존의 소인으로 일어난다. 실로 그것을 모르고 생존의 소인을 만드는 우둔한  자는 되풀이해서 그것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바르게 알고,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을 관찰하여 소인을 만들지 말라.'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무명(無名)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째  관찰이다. <그러나 무명에서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 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29) '이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되풀이하여 생사의 윤회를  받는 자는 그 귀취(歸趣)가 무명에 있다.

(730) 이 무명이란 커다란 방황인데, 이로 말미암아 영원한  윤회가 나타난다. 그러나 밝은 지혜로  이른 자는 다시는 생존을 받는 일이 없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형성력(形成力)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째 관찰이다. <그러나 형성력을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 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 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31) '어떤 괴로움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다 형성력에 의해서  일어 난다. 이 갖가지 형성력이 소멸되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

(732) <괴로움이 형성력 에서  일어난다.> 는 이 두려운 사실을 알고, 일체의 형성력을 소멸시켜, (욕심을)  억제하면 괴로움은 소멸된다. 이것을 분명히 알라.

(733)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알고, 여러 현자, 즉  베에다에 통달한 자들은 악마의 사슬에서 벗어나 다시는 생존을 받는 일이 없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식별(識)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식별작용을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34) '어떤 괴로움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다 식별작용으로 일어난다. 이 갖가지 식별작용이 소멸되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

(735) <괴로움은 모두  식별작용으로 일어난다.>는 이 두려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식별작용을  조용히 가라앉게 한 수행자는 쾌락을 탐내지 않고 평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접촉(接觸)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접촉을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36) '접촉에 사로잡히고 생존의 물결에 밀려, 그릇된 길을 가는 자는 속박의 소멸에서 멀리 떠나 있다.

(737) 그러나 접촉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평안을 즐기는 자들은 실로 접촉을 모두 없앴기 때문에 쾌감을 떠나  평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감정을 받아들임(感受)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갖가지  감수를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 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38) '즐거움이나 괴로움, 또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을 안팎으로 감수한 모든 것은,

(739) 고뇌임을 알고,  없어지고 말 허망한 사물에  접촉할 때마다, 그 없어지는 것을 보고 이에 대한 애착에서 떠나는 것이다. 갖가지 감수가 소멸되기  때문에 수행승은 쾌락을 느끼지  않고 평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애착(愛着)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애착을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40) '애착을 벗으로 삼는  자는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영원히  유전(流轉)하여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741) 애착은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이 두려운 사실을  알고, 애착에서 떠나 이에 매이지 말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수행승들은 편력해야 한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집착(執着)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집착을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42) '집착에서 그릇된 생존이  일어난다. 생존하는 자는 괴로움을 받는다. 태어나는 자에게는 죽음이 있다.  이것이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이다.

(743) 그러므로, 여러 현자들은 집착을 없애는 이유를 바르게  알고 태어남에 따른 소멸을 바르게 알아 다시 생존을 받는 일이 없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움직임(起動)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기동을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44) '어떤 괴로움이 일어나도  그것은 모두 기동에서 일어난다. 갖가지 기동이 다 없어지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

(745) <괴로움은 기동에서 일어난다.>는 이 두려운 사실을 알고, 일체의 기동을 버림으로서 해탈하여,

(746) 생존에 대한 애착을 끊고  마음이 진정된 수행승은 삶의 윤회를 벗어난다. 그리고 다시 생존을 받는 일이 없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음식(飮食)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음식을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47) '어떤 괴로움이 일어나도  그것은 모두 음식에서 일어난다. 갖가지 식음에서 떠나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

(748) <괴로움은 음식에서 일어난다.>는 이 두려운 사실을 알고, 일체의 음식에 대해 잘 알아, 식음에 의존하지 말며,

(749) 갖가지 더러운 번뇌를 소멸함으로서 병이 나지 않음을 바르게 알고, 반성하여 (음식을)아껴서 참된 이법에 사는 베에다에 이른 자는 (방황하는)어리석은 생존자가 아니다.'
' 수행승들이여, 또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괴로움은 모두 동요(動搖)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그러나 동요를 완전히 떠나 이를 없애버리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50) '어떤 괴로움이 일어나도  그것은 모두 동요에서 일어난다. 갖가지 동요가 다 없어지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

(751) <괴로움은 동요에서 일어난다.>는 이 두려운 사실을 알고, 수행승은 갖가지 (애착의)동요를 버리고,  갖가지 형성력을 종식시켜 무동요, 무집착으로 바른 생각을 가지고 편력해야 한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걸림이 있는  자는 망설인다.>는 것이 첫  번 째 관찰이다. <걸림이 없는 자는 망설이지 않는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 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52) '걸림이 없는  자는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나  걸림이 있는 자는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집착하여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753) <갖가지 걸림  속에 커다란 공포가 있다.>는 두려운 사실을  알고, 수행승은 걸림이 없고  집착 없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편력해야 한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물질의 세계보다 물질  아닌 세계가 한결  더 안정되어 있다.>는 것이  첫 번째 관찰이다. <물질 아닌  세계보다 소멸의 세계가 한결 더 안정되어  있다.>는 것이 두 번 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 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54) '물질의 세계에 태어나는 모든 생존자와 물질 아닌  세계에 있는 모든 생존자는 소멸(열반)을  모르기 때문에 다시 이 세상의 생존으로 되돌아온다.

(755) 그러나 물질의 세계를 분명히 알고 물질 아닌  세계에 안주하며, 소멸로 해탈하는 자는 죽음을 버린 것이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  들이여, 신들과 악마가 함께 사는 세계, 도를 닦는 자(사문), 바라문, 신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이 진리이다.>라고  생각한 것을 여러 성자들은  <이것은 허망하다.>라고 바른 지혜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첫  번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신들과 악마가  함께 사는 세계, 도를 닦는 자(사문),  바라문, 신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허망하다.>라고 생각한 것을 여러  성자들은 <이것은 진리이다.>라고 바른 지혜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두 번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 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56) '보라, 신들과 세상사람들은 나 아닌 것을 나라고 생각하고 명칭과 형태에 집착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진리다>라고 생각 하면서.

(757) 어떤 것을 이러니  저러니 하고 생각해도, 그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그  어리석은 자의)이런 것(생각)이 허무하기 때문이다. 지나가 버리는 것은 허망하기 때문에.

(758) 평안은 허망이 아니다. 여러 성자들은 이를 진리로 안다. 그들은 실로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쾌락을 탐하지 않고 평안으로 돌아간 것이다.'
' 수행승 들이여, 또 다른 방법으로 두 가지 진리를 바르게 관찰 할 수 있는가?> 하고 만일 그대들에게 묻는 자가  있다면, <있다>라고 대답하라.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  들이여, 신들과 악마가 함께 사는 세계, 도를 닦는 자(사문), 바라문, 신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이 안락 이다.>라고 생각한 것을  여러 성자들은 <이것은 고뇌다.>라고 바른 지혜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첫  번째 관찰이다. 수행승 들이여, 신들과 악마가  함께 사는 세계, 도를 닦는 자(사문),  바라문, 신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고뇌다.>라고 생각한 것을 여러 성자들은 <이것은 안락 이다.>라고 바른 지혜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두  번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꾸준히 힘쓰는 수행승  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의 과보를 기대 할  수가 있다. 즉, 세상에서 지혜를 깨치던가  번뇌가 남아 있는 이 혼미한 생존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던가 하는 것이다.'
스승께서는 이같이 말씀 하셨다. 그리고 행복하신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다.

(759)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색깔, 음성, 향기, 촉감,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한결같이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

(760) 그것들을 실로  신이나 세상사람들은 <안락>으로 본다.  그것들이 없을 경우에는 이를 <고뇌>라고 본다.

(761) 자기의 육신을 떠나  소멸되는 것을 <안락>이라고 여러 성자들은 생각한다. (바르게)보는 자들의 이런 것(생각)은 모두 세상사람들 과는 반대다.

(762) 다른 사람들이  <안락>이라고 부르는 것을 여러 성자들은  <고뇌>라고  본다. 다른  사람들이 <고뇌>라고 부르는  것을 여러 성자들은 <안락>이라고 본다. 보라,  진리를 이해하기가 그토록 어려움을. 무지한 사람들은 여기서 방황한다.

(763) 덮여 있는 자에게는 어둠이 있다. (바르게)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암흑이 있다. 선량한 자에게는 열어서 보는  것이 있다. 마치 눈을 뜨고 보는 자들에게 광명이 있듯이. 이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짐승 같은 (어리석은)자는 (평안에)가까이 있어도  이를 모른다.

(764) 생존을 위한 탐욕에  사로잡히고, 생존의 흐름에 휩쓸려, 악마의 세계로 들어간 자들은 이 진리를 깨닫기가 매우 어렵다.

(765) 여러 성자들  외에 대체 누가 이 경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 인가. 이  경지를 바르게 알면 번뇌의 때가  묻지 않는 자가 되어 고요한 평안에 들어가리라.

스승(부처님)께서 이 같이 설법하셨다. 수행승들은 기뻐하면서 스승의 설법을 환희로 받아들였다. 이같이 밝은 설법으로 해서 60명의 수행승들은 집착에서  떠나 때묻은 마음에서 해탈 되었다.

 

 

4. 시(詩)의 장(章)


1. 욕망


(766) 욕망을 달성하려는  자가 만일 뜻대로  되면, 그는 실로  인간이 갖고자 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기뻐한다.

(767) 욕망을 달성하려는 자가 만일 그 욕망을 이룰 수 없게  되면, 그는 화살에 맞은 것처럼 고뇌에 빠진다.

(768) 발로 뱀의 머리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처럼,  갖가지 욕망을 피하는 자는  생각을 바르게 하여 이 세상의  애착에서 벗어 난다.

(769) 논밭, 주택, 황금, 가축,  노비, 고용인, 부녀자, 친족, 그 밖의 온갖 욕망을 탐내는 자가 있다면

(770) 아무 힘도 없는 갖가지 번뇌가 그를 굴복시켜 위험과 재난이 그를 짓밟는다.  그러므로 괴로움이 그를 따른다. 마치  파손된 배에 물이 새어 들 듯이.

(771) 그러므로 인간은  언제나 바른 생각을 가지고, 온갖  욕망으로부터 피하도록 하라. 배에 스며든 물을 퍼내듯이.  그런 욕망을 버리고 거센 물결을 건너 피안에 이르는 자가 되라. 



2. 동굴에 대한 시


(772) 동굴 속에  머물러 집착하며, 갖가지  번뇌에 덮여 미망(迷妄)에 빠진 자--이런 사람은  염리(厭離)하여 멀리 떠나지 못한다.  이는 실로 이 세상의 욕망을 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773) 욕구로 해서 쾌락에 사로잡힌 자는 해탈하기 어렵다.  그들은 미래나 과거를  생각하면서 이러한 현재의 욕망이나  과거의 욕망에 탐한다.

(774) 그들은 욕망에  탐하고 찾으며 빠져들며, 인색하고 부정에  친근하지만 죽을 때에는 괴로움에 눌려 탄식하게 된다.

(775)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가르침을 숭상하라. 세상에서 옳지  않다(不正)고 알려진 것은 어떤 일이라도 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수명은 짧은 것이라고  현자는 항상 말하지 않던가.

(776) 갖가지 생존에 대한 애착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몸부림치는 것을 나는 본다. 못난 자들은 갖가지 생존에 대한 이 애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에 직면하면 운다.

(777) 무엇이든 자기의 소유라고 집착하여 마음이 흔들리는 자들을 보라. 그들의 모습은 메말라 가는 개울에서 허덕이는 물고기와같다. 이 꼴을 보고 <내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세상을 걸어가라.---갖가지 생존에 집착하지 말고.

(778) 현자는 야 극단의 요망을  억제하여 접촉이 무엇임을 분명히 알고 탐내는 일이 없고,  자기 스스로도 비난받을 악행을 하지 않으며, 보고들은 일로 하여 때묻지 않는다.

(779) 생각을 바르게 하여 흐르는 물을 건너라. 성자는  소유하려는 집착으로 때묻지 않으며  번뇌의 화살을 뽑아 수행에 힘써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라지 않는다. 



3. 분노에 대한 시


(780) 실로 노하는 마음 때문에 (다른 사람을)비방하는 자가 있다. 마음이 진실한 자들도 (다른 사람을)비방하는 일이  있다. 비방하려는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성자는 그것에 가까이 하지 않는다. 성자는 무슨 일에도 마음이 거칠어지지 않는다.

(781) 욕망에 이끌리고 욕심에 사로잡힌 자가 어찌 자기의 견해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는 자기가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행한다. 그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언제나 입밖에 내게 된다.

(782) 묻지도 않는데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계율과 도덕을 말하는 자,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이 말하는 자가 있다면, 진리에 이른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성스러운 자리를 갖지 못한 자라고 말한다.

(783) 평안하고 마음에 안정을 이룬 수행승이 계율에 대하여 ,나는 이렇게 하고 있다.>고 자랑하지 말고, 세상에서 번뇌가 성하는 일이 없으면 진리에 이른 사람들은 그를 가르켜 성스러운 진리를 가지고 있는 자라 한다.

(784) 때묻은 교리를 미리 조작해 놓고 한편에 치우쳐 자기만이 열매 를 보려는 자는 뿌리가  없이 흔들리는 것에  의존하여 평안을 얻는다.

(785) 갖가지 사물에 대한 고집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자기의 견해에 대한 집착을 초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러한 비좁은 울타리에 들어 앉아  법을 배척하기도 하고, 또 이에 집착하기도 한다.

(786) 사악(邪惡)을 쓸어 없애버린 자는 이 세상 어디를 가든지  모든 생존에 대하여 그릇된 견해를 갖는 일이 없다. 사악을 쓸어버린 자는 거짓과 오만을 버렸기 때문에 어떻게  윤회를 거듭하겠는 가. 그에게는 이미 의지하고 가까이 할 아무것도 없다.

(787) 무엇에 의지하고 이를 가까이 하는 자는 온갖 비방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어떻게 비방할 수 있겠는가. 그에게는 집착하는 일이 없으며, 이는 그가 이 세상에서 일체의 편견을 쓸어 없앴기 때문이다. 



4. 청정에 대한 시


(788) <나는 병이 없고 가장 깨끗한 것을  본다. 인간이 아주 깨끗하게 되는 것은 견해에 달려 있다.> 라는 생각을  가장 올바른 것으로 알고 있는 자는, 견해를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해서 얻은 지혜로 생각한다. 

(789) 만일 인간이 견해에 따라 깨끗해 질  수 있거나 괴로움을 버릴 수 있다면 번뇌에 사로잡혀 있는 자가 바른길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도 깨끗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를 <편견을 가진 자>라 한다.

(790) 바라문은 바른길 이외에는 본 것, 학문,  계율, 도덕, 사색중 그 어느것도 깨끗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화나 복에  때묻지 않으며, 자아를 버리고 이 세상에서  화나 복을 만드는 일이 없다.

(791) 앞의 스승을 버리고 나중 스승을 따르며, 번뇌가 일어나 흔들리는 데로 좇는 자는 집착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들은 잡았다가 다시 버린다. 마치 원숭이가  나뭇가지를 잡았다가 다시 놓아버리듯이.

(792) 서약이나 계율을 고집하는 자는 그릇된 생각에 잠겨 갖가지 잡다한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베에다에 의해 진리를 이해하며, 갖가지 잡다한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793) 그는 모든 사물에 대하여 보고 배우거나 생각한 것을 자제하고 지배한다. 이렇게 관찰하여 눈이 어두워  지는 일이 없이 행동하는 자는 어찌 이 세상에서 망령된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794) 그들은 망령된 생각에서 사리를 분별하는 일이 없으며, 어떤 것을 특별히 소중히 여기지도 않고 <구극의 깨끗함>을 말하지도 않는다. 결박되어 있는 집착을 버리고  세상의 어떤 사물에 대 해서도 탐내는 일이 없다.

(795) 바라문은 번뇌의 범위를 초월해 있다. 어떤 사물을 알거나 보고도 이에 집착하는 일이 없다. 그들은 욕심을 내지 않으며 이 욕심에서 떠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이것이 최상의 것 이라고 헛되이 집착하는 일이 없다. 

 



5. 가장 우월한 것에 대한 시


(796) 세상에서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생각하는  것을 <최상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러 가지 견해에 사로잡혀 그  밖의 것은 <하위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온갖 논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

(797) 그는 본 것, 배운 것, 계율이나 도덕, 그리고 사색에  대하여 자기 맘대로 결론을 내리고 그것만을 집착하며 그 밖의  다른 것은 다 허위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798) 어떤 특정한 것에만 치중한 나머지 그 밖의 다른 것은 다 유치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장애라고 진리에 이른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므로 수행승은 본 것과 배운 것, 사색  한 것 또는 계율이나 도덕에 의거해서는 안된다.

(799) 지혜에 대해서나 계율이나 도덕에 대해서도  편견에 사로 잡혀서는 안된다. 자기를  다른 사람과 ,같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또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거나 <잘났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800) 그는 가졌던 견해를 버리고 이에 집착하는 일이 없으며, 지혜에 대해 특별히 의존하는 일이 없다. 그는 실로 저 세상을 막론하고 바라는 일이 없다. 온갖 사물에 대하여 확실히 알았다는 어떤 견해를 고집하는 일이 그에게는 결코 없다.

(801) 그는 이 세상에서 본 것, 배운 것, 계율이나 도덕,  그리고 사색에 대하여 조금도 망령된 생각을  만들지 않는다. 어떤 견해에도 고집하지 않는 바라문이 이 세상에서 망령된 생각으로 어찌 사리를 분별 하겠는가.

(802) 그는 망령된 생각으로 사리를 분별하는 일이 없으며, 어느 하나의 견해를 특히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모든  가르침을 원하지도 않는다. 바라문은 계율이나 도덕에 이끌리는 일도 없다. 이러한 자는 피안에 이르러  다시 돌아 오는 일이 없다.



6. 늙음


(804) 아, 짧구나.  인간의 생명이여. 백세에 이르지도 못하고  죽어 버리는가. 아무리 오래 산다해도 결국은 늙어서 죽는 것을. 

(805) 사람들은 내  것이라고 집착하는 물건으로 해서 근심한다.  자기가 소유한 것은 언제나 갖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변하고 멸하기 때문임을  알고 집에 머물러 있지를 말라.

(806) 사람들이 <이것은 내  것이다.>고 생각하는 물건, 그것은 그 사람의 죽음으로 없어진다. 나를 따르는 자는 현명하게 이 이치를 깨닫고, 내 것이라는 관념에 빠지지 말라.

(807) 예컨데, 꿈에서  만난 자를 다시 볼 수 없듯이  눈뜬자는 사랑하던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808) <누구누구>하고 보고 듣던 사람도 죽고 나면 잠시 그 이름만이 겨우 전해질 분이다.

(809) 내 것이라고  집착하여 욕심 내는 자는 근심과 슬픔,  그리고 인색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안온함을 깨달은 여러 성자들은 소유를 버리고 떠난다.

(810) 싫어서 물러나 행을 닦는 수행승은 멀리 떨어진 곳을 즐겨 찾는다. 그가 생존의 영역(사바세계)에서  자기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811) 성자는  일체의 것에  사로잡히지 않고, 사랑하거나  미워하지도 않는다.  슬픔도 인색함도  그를 더럽히지 못한다.  마치 연잎에 얹힌 물방울이 더러워지지 않듯이.

(812)  마치 연잎에 얹힌  물방울이나 연꽃에 맺힌 이슬이 더러워지지 않듯이, 이와 꼭같이 성자는 보고 배우고 사색한 어떤것에도 더럽혀 지는 일이 없다.

(813) 사악을 쓸어  없앤 자는 보고 배우고  사색한 어떤 것에도 집착하거나 생각하는 일이  없다. 그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깨끗 해지려 하지 않는다.  탐하지도 않으며 탐욕에서 떠날 일 조차 없다. 



7. 팃사 멧테이야


(814) 팃사 멧테이야 장로가 말했다.
'스승이여, 성교에 탐닉하는 자의 파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의 가르침을  듣고 저희도 거기서 멀리 할 것을 배우고자 합니다.'

(815) 스승(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 멧테이야여, 성교에 탐닉하는 자는 가르침을  잊고 그 행은 사악하다. 따라서 이것은 그들 안에 있는 천한 요소이다.

(816) 전에는 독신으로 살고  있었는데 나중에 성의 교접에 빠진 자는 마치 수레가 길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다. 세상사람들은 그를 천한 범부(凡夫)라 부른다.

(817) 그리하여 그가 일찍이  가지고 있던 영예와 명성은 다 잃어버리게 된다. 이런 사실로 보더라도 성의 교접은 끊어야 한다.

(818) 그는 온갖  생각 때문에 빈곤한 자처럼 생각만 한다.  이러한 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좋은 평판을 듣고도 스스로 부끄러워 한다.

(819) 그런데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으면  칼날을 갈고 거짓을 일삼게 된다. 이것이 커다란 난점이다.

(820) 독신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는 세상사람들로부터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던 자가 후에 성의 교접에  빠져 어리석은 자 처럼 괴로워하게 된다.

(821) 성자는 이  세상 곳곳에 그러한 환란이 있음을 알고,  굳게 독신을 지켜 성의 교접에 빠져서는 안된다.

(822) 속된 일로부터 떠나는 것을 배워라. 이것은  여러 성자들의 최상의 일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으로 자기가 최상인 자라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는 다만 평안에 가까워졌을따름이다.

(823) 성자는 온갖 욕망을 거들떠보지 않고 이를  떠나 행하며, 흐름을 건넜기  때문에 온갖 욕망에  얽매어 사는 자들은  그를 부러워 한다.' 



8. 파수우라


(824) 그들은 <이것만은 깨끗하다.>고 주장하며, 다른 여러 가지 가르침은 깨끗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기가 따르고 있는 것만이 선(善) 이라 말하면서, 각각 다른 진리를 고집한다.

(825) 그들은 토론을 바라고 모임에 몰려들어  서로 다른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지적하며,  다른 사람(스승)을 업고 나와  논쟁을 벌인다. 자신이 찬사를 받고자 자신을 진리에 도달한자라고 자칭하며.

(826)  모임에서 논쟁에  참가한 자는 찬사를  받고자 애쓴다. 그리고 패배하면 기가 죽어  애서 논쟁의 결점을  찾다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논란되면 노하게 된다.

(827) 여러 심판자들이 그들의 주장에 대하여 <그대는 패배했다. 논파 당했다.> 고 하면 논쟁에 패한 자는 슬퍼 울고 근심에 잠겨 <그는 나를 이겼다>고 비탄에 잠긴다.

(828) 이러한 논쟁이 여러 승려들 사이에서  일어나면 이들 에게는 득의와 실의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논쟁을 떠나야 한다. 이는 헛된 찬사를 받는 외에 다른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829) 어떤 이는 모임에서 논의를 전개하여 찬사를 받음으로서 마음속에 기대했던 덕을 얻어 기쁨에 우쭐해진다.

(830) 우쭐해진다는 것은 오히려 그를  해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교만해지고 더욱 우쭐해진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논쟁을 해서는 안된다. 모두 통달한 자들은 그것으로 청정해 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831) 이는 왕의 녹(祿)을 먹는 용사가 상대편 용사를 찾아 고함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용사여, 그가  있는 곳으로 가라. 상대해 싸워야 할 자는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832) 특수한 철학적 견해를 갖고 논쟁하여 ,이것만이 진리다.>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대들은 그에게 말하라. ,논쟁이 일어나도 그대와 논쟁할 자는 여기에는 없다.>라고.

(833) 또 그들은 번뇌의 군대를 무찌르고 바른 견해가 편견과 모순 되지 않게 하는 자들 이다. 그들에게서 그대는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파수우라여, 그들에게 그대는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파수우라여, 그들에게 오랫동안 <최상의 것> 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834) 그런데 그대는 <나야말로 승리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며 마음 속에는 갖가지 편견을 가지고 사악을 쓸어 없애 버린 자에게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9. 마아간디야


(835)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애착과 혐오와 탐욕을 보고도 그들과 성의 교접을 행하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나지 않았다. 대소변이 가득찬 여자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그 여자들에게 발이 닿는 것조차 바라지 않았다.'

(836) 마아간디야가 말했다.
'만약 당신이 여러 왕자들이 구하던  여자, 그런 보물을  바라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떤 견해와 어떤 계율, 도덕과 생활 방법, 그리고 생존상태로 태어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837)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마아간디야여, 나는 이런 것을 주장한다고 정한 것이  나에게는 없다. 온갖 사물에 대한 집착을  집착이라고 분명히 알고,  온갖 편견에서 과오를 보고 고집하지 않으며, 성찰로써 마음의 평안을 보고 있다.' 

(838) 마아간디야가 말했다.
'성자시여, 당신께서는 깊이 생각해서 세운 정설(定說)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말씀하시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현자들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839)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 마아간디야여, 견해라던가 학문이라던가 지식으로, 또는 계율과 도덕으로 깨끗해 질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또한 견해와 학문과 지식이 없고, 계율과 도덕을 지키지 않아도 깨끗해 질수 없다고도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모두 버리고 고집하지 않으며 걸림이 없고 평안하며, 변화하는 생존을 원하지도 않는다.'

(840) 마아간디야가 말했다.
'견해라던가 학문이라던가 지식으로, 또는 계율과 도덕으로  깨끗해 질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또한 견해와 학문과 지식이 없고, 계율과 도덕을 지키지 않아도 깨끗해  질수 없다고 말씀하시면, 그것은 사람들을 방황케 하는 가르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견해로도 깨끗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841)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마아간디야여, 그대는 자기의 견해에 따라 묻기 때문에  집착으로 미망에 빠졌다. 그대는 이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나의 가르침을 사람들을 방황케 한다고 보고 있다.

(842) <동등하다>든가 <훌륭하다.>든가 또는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자--그는 그런 생각 때문에 다투게 된다. 그러나  이 세 가지에 동요하지 않는 자 --그는 <동등하다>든가 <훌륭하다.>든가 또는 <열등하다>고 생각이 없다.

(843) 그러한 바라문이 어찌 <내 말이 진실하다>고 논할 수 있겠는가. 또 그는 <너의 말은 거짓이다,>고 해서 누구와 다툴 수 있겠는가. 동등하다거나 동등하지 않다거나 하는 일이 없는 자가 누구와 논쟁 하겠는가.

(844) 집을 버리고 거처도 없이  헤매며, 마을에서 친교를  맺지 않는 성자는 모든 욕망에서 떠나 미래에 희망을 두어서는  안되며, 군중들에게 이론(異論)을 내세워 논란을 해서는 안된다.

(845) 용은 온갖 편견을 떠나 세상을 두루 돌아  다니기 때문에 그것들을 고집해 논쟁해서는 안된다. 마치 연꽃이 흙물에 물들지 않듯이, 성자는 평안을 설법하는 자이며,  탐내는 일이 없고  이 세상의 욕망으로 때묻지 않는다.

(846) 베에다를 통달한 자는 그 견해나 사색에 대하여 교만하지 않다. 그의 본성이 그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업에도 끌려들지 않고 학문에도 끌려들지 않는다. 그는 집착하는 곳으로 끌려 드는 일이 없다.

(847) 생각을 벗어난 자에게는 결박이 있을 수 없다. 지혜로  해탈한 자는 방황함이 없다. 그러나 생각과 견해를 고집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충돌하며 세상을 방황한다. 



10. 죽기 전에


(848)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계율을 지닌  자를 <평안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고타마시여, 그 최상의 분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849)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죽기 전에 애착을 떠나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재에 있어서도 이것저것 생각하며 근심 걱정하는 일이 없으면 그는  미래에 대해서도 특별히 염려 할 것이 없다.

(850) 성자는 노여움을 모르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랑하는 일이 없고 후회하지 않으며, 주문을 외거나 들뜨는 일이 없이 조심한다.

(851) 미래를 원하는 일이 없고  과거를 추억해 수심에 잠기는 일이 없다. 감관에 닿는 갖가지 사물에서 멀리 떠나 온갖 견해에 유혹됨이 없다.

(852) 탐욕에서 멀리 떠나는  거짓을 모르며, 욕심을 부리는  일이 없고 인색하지 않으며,  거만하지 않고 남에게  싫은 인상을 주지 않으며 두 개의 혀를 쓰지 않는다.

(853) 쾌락에 빠지지 않고 거만하지 않으며, 말이 부드럽고 온화하며, 믿는 것도 없고 욕망에서 떠날 일조차 없다.

(854) 이익을 바라고 배우는 것은 아니다. 이익이 없다고  해서 노하지도 않는다. 집착 때문에  다른 사람을 거역하는  일이 없으며, 맛있는 음식을 탐닉하는 일도 없다.

(855) 평정을 누리고 언제나 바른  생각을 하며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자기와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자기가 남보다 뛰어 났거나 못났거나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다.

(856) 걸림이 없는 자는 이법을 알기 때문이다. 이  사람에게는 생존을 위한 애착이나 그 생존을 끊어 없애려는 애착도 없다.

(857) 갖가지 욕망을 돌이켜  생각하지 않는 자--그야말로 <평안한 자>라고 나는  말한다. 그에게는 얽매이는  사슬도 없고, 이미 모두 집착에서 떠나 버렸다.

(858) 그에게는 자식도 가축도 논밭도 주택도 없다. 이미  얻은 것도 없고 또 아직 얻지 못한  것도 없고, 이미 모든 집착에서 떠나 버렸다.

(859) 범부(凡夫)나 사문, 또는  바라문들이 그를 비난하여 탐욕의 허물이 있다고 말하겠지만 그는 탐욕을 생각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갖가지 논란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860) 성자는 탐욕에서 떠나고  인색하지 않으며, <자기는 뛰어난 자다.>라든가 <자기는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자다>또는 <자기는 다른 사람보다 못난 자다>라고 말하는 일이 없다. 

(861) 그는 세상에서 소유하는 것이 없다. 또 지닌 것이 없다고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사물에 관심을 가지는  일이 없다. 실로 그는 <평안한 자>라 할 수 있다. 



11. 탐욕 


(862) '투쟁이나 논쟁, 근심과  슬픔, 인색과  오만, 자랑과 욕설은 어디서 비롯되어 일어납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863) '투쟁이나 논쟁, 근심과  슬픔, 인색과  오만, 자랑과 욕설은 애착에서 일어난다. 투쟁과 논쟁은 인색이 따르며,  논쟁이 일어나면 욕설이 나오게 된다.' 

(864) '세상에서 애호하는 일은 무엇을 인연으로 해서 비롯됩니까? 또 세상에 널려 있는 탐내는 일은 어째서 생깁니까? 또한  사람이 내세(來世)에 대하여 희망을 갖고   또 희망을 이루게 되는  것은 어떤 인연에서 생깁니까?' 

(865) '이 세상에서 애호 하는 일과 탐내는 일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사람이 내세(來世)에 대하여 희망을  갖고  또 희망을 이루게 되는 것도 욕망에서 생긴다. 

(866) ' 그러면 세상에서 욕망은 무엇 때문에 일어납니까? 또 단정은 무엇 때문에 일어납니까? 노여움과  거짓말과 의혹, 그리고 도를 닦는 자가 말하는 갖가지 견해는 어디에서 비롯 됩니까?' 

(867) '세상에서 <쾌>와 <불쾌>라고 불리는 것으로  해서 욕망이 일어난다. 온갖 물질적 존재의 생성과 소멸을  보고, 세상사람들은 외적 사물에 사로 잡혀 있다고 단정한다. 

(868) 노여움과 거짓말과 의혹, 이런것도 두가지가 있을 때 일어난다. 의혹이 있는 자는 지혜의 길을 배우라 도를 닦는 자들은 앎이 많아 여러 가지를 설법하게 된다.' 

(869) '쾌, 불쾌는 무엇 때문에 일어납니까?  또 무엇이 없으면 이것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생성과 소멸의 뜻과 그것은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870) '쾌, 불쾌는 접촉 때문에 일어난다. 접촉이 없을 때에는 이것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 생성과 소멸의 뜻과 그 가닭이 되는 것을 그대에게 말하겠다.' 

(871) '세상에서 접촉은 무엇 때문에 일어납니까? 또한 집착은  무엇 때문에 일어납니까? 무엇이  없을 때 아집(我執)이  없어 집니까? 그리고 무엇이 소멸했을 때 접촉이 없게 됩니까?' 

(872) '명칭과 형태로 해서 접촉이  일어난다. 갖가지 집착은 요구에서 일어난다. 욕구가 없을 때에는 아집도 없다. 형태가 소멸되었을 때에는 접촉도 없게 된다.' 

(873) '어떻게 행하는 자에게 형태가 소멸 됩니까? 또한  즐거움과 괴로움은 어떻게 하여 소멸 됩니까? 소멸되는 모습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 했습니다.' 

(874) '있는 그대로 생각 하는 자도 아니고 잘못 생각하는 자도 아니며, 또한 생각이  없는 자도  아니고 생각을 소멸한  자도 아니다.--그렇게 행하는 자는 형태가 소멸된다. 그러나 널리 확대되는 의식은 생각에서 비롯된다.' 

(875) '저희들이 당신께  물은 것을 당신은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저희들은 다른 문제에 대하여 묻고 싶으니 이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어떤 현자들은 이러한 상태가 인간에 있어서 최상의 청정한 경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청정한 경지를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876) '이 세사의 어떤  현자들은 이러한 상태가 최상의  경지라고 말한다. 또 그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끊어 없앰을 말한다. 즉 정신이나 육체가 남김없이 소멸되는 속에 최상의 청정한 경지가  있다고 조용히 말하기도 한다. 

(877) 그러나 생각이 깊은 성자는, 이러한 자들은 <걸림이 없다.>고 알고, 갖가지 걸림을 알며, <현자는  갖가지 덧없는 생존을 받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해탈한자는 논쟁을 하지 않는다.' 



12. 계속되는 응답---단편 


(878) 세상 학자들은 각자의 견해를 가지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자기야말로 진리에 밝은 자라고 하며 여러 가지로  논란한다. <이를 아는 자는 진리를 알고 있으며, 이를 비난 하는 자는 완전한 자가 아니다.>라고. 

(879) 그들은 이렇게 다른 주장을 갖고 논란하며 <저 사람은 어리석은 자로서 진리에 도달한 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야 말로 진리를 깨친 자라고 생각하며 또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이들 중에서 누구의 말이 진실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880) 만일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고 저속하며 지혜가 모자라는 자라면, 그들은 그들의 견해만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어리석은 자며, 또 지혜가 모자라는 자이다. 

(881) 또, 만일 자기 자신의 견해에 다라 깨끗해지고  완전히 청정한 지혜가 가진 가 되며 진리에 도달한 자가 되고 지혜에 밝은 자가 된다면, 그들의 견해는 다 똑같이 완전하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는 지혜가 모자라는 자가 없다. 

(882) 어리석은 자들이 서로 다른 사람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듣고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견해를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본다. 

(883) 어떤 사람들이 <이것이 진리며 진실이다>라고 말하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은 <허위며 허망하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가지고 논쟁한다. 어째서 사문들은 같은 주장을 하지 않는가. 

(884) 진리는 하나지 둘이 아니다. 그것을 알게 된  자는 논쟁하지 않는다. 저들은 각각 다른 진리를 숭상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문은 동일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885) 스스로 진리에 도달 하였다고  생각하면서 말하는 논자들은 어찌하여 갖가지 다른 진리를 논하게 되었는가? 또 그들은 갖가지 다른 진리를 들었을까? 아니면 자기의 사색에 따른 것일까? 

(886) 세상에서 다른 영원한 진리는  없다. 다만 영원한  것이라고 상상할 따름이다. 그들은 갖가지 견해에 대하여 사색하고 탐구하여 <진리다> <허망하다>라고 두 지로 말한다. 

(887) 견해나 전해 내려온 학문이나 계율, 서약이나 사색  등에 따라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의 학설을 단정하여 즐기며 <반대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며,  진리에 도달하지 못했다>라고  두 가지로 말한다. 

(888) 반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보는 동시에 자기를 진리에 도달한 자라고 생각한다. 또 자기는 진리에  도달한 자라 하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한다. 

(889) 그는 지나치게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교만하여 자기를 완전한 자라고 생각하고는  마음속으로 제1인자라고 자처한다. 그의 견해는 자신이 볼 때 그처럼 완성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890) 만일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리석다고 말하기 때문에 어리석게 된다면 그렇게 말하는 자도 상대방과 함께 어리석은 자가 된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베에다에 통달한 자, 현자라고 칭할 수 있다면, 도를 닦는 사람들 가운데 어리석은 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891) <이 나의 주장 이외의 가르침을 베푸는 자들은 악에서 벗어나 깨끗한 자가 못되며 완전한 자가 아니다.>라고  일반적으로 갖가지 다른 주장들을 하는 자들을 말한다. 이는 그들이 자기 견해에 빠져 때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892) 자기 주장만 깨끗하다고 하며, 다른 사람의 가르침에는 깨끗함이 없다고 한다. 이런 갖가지 이설(異說)을 고집하는  자들은 스스로 자기의 길만을 완고하게 내세운다. 

(893) 자기의 길만을 완고하게 내세워 이를 주장하지만 어찌 다른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 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은 어리석고 깨끗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는 스스로 고집불통이 되고 만다. 

(894) 주장을 내세워 결정함에 있어서 스스로 헤아리지만 도한 세상사람들과 논쟁하게 된다. 일체의 철학적 단정을 버리면 세상 사람들은 고집쟁이가 되지 않는다. 



13. 계속되는 응답--장편 


(895) 이런 견해를 고집하면서 <이것 만이 진리다> 하고 논쟁하는 자들--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의 비난을  받는다. 그들은 모두 다만 그 점에 대하여 일부의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을 따름이다.

(896) 비록 찬사를 받는다 할 지라도 그것은 대수롭지 않아 평안을 얻을 수 없다. 논쟁의 결과는 찬사와 비난의 두가지라고 나는 말한다. 이러한 사리를 미루어 보아도 그대들은 논쟁이 없는 경지가 안온한 것임을 알고 결코 논쟁을 하여서는 안된다.

(897) 모든 범속한 무리들이  이런 세속적인 견해에 지혜로운 자는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는 보고 듣는 사물에 대하여 <이것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에 매이는 일이 없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 때문에 사로 잡히게 되었는가. 

(898) 계율을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우러러 보는  자들은 <계율을 지킴으로서 악에서 벗어나 깨끗해 질 수 있다> 고 계율을 지킬 것을 맹세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가르침을 지킬  것이니 그렇게 되면 악에서 벗어나 깨끗하게 될  수 있다.> 고 한다. 진리에 도달 하였다고 말하는 자들은 변화하는 삶에 이끌려 있다. 

(899) 만일 그가  계율이나 도덕을 어기면 그는  그 계율이나 도덕 때문에 괴로움에 떤다. 그는 <여기에만 악에서 벗어나 깨끗해 지는 길이 있다.>고 이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는 캬바반에서 떠난 상인이 대상을 찾아 돌아다니고 집에서 나온  길손이 집을 찾는 것과 같다. 

(900) 일체의 계율이나 서약을  버리고 세상에서 죄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행위마저  버리고, <깨끗하다>든가 <부정하다>하여  무엇을 구하는 일 없이,  이런 것들에 얽매이지 말고  행하라. 평안을 고집하지 말고. 

(901) 또는 하기 싫은 고행이나  보고 배우고 깊이 생각한 바에 따라 음성을 높여  깨끗하게 되었음을 찬미하는 자는  갖가지 생존에 대한 애착에서 떠나 있지 않다. 

(902) 원하고 바라는 자에게는 욕심이 있다. 또 계략이 있을 때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죽음도 삶도  없는 자--그는 무엇이 두려우며 무엇을 원하랴. 

(903) 어떤 사람이 <최상의 것>이라 말하는 가르침을 다른 사람은 <천박한 것>이라 한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이 참된 주장일 수 있겠는가. 그들은 모두 자기야 말로 진리에 도달한 자라 하겠지만-- 

(904) 그들은 저마다 자기의  가르침이 완전하고 다른 사람의 가르침은 천박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고집하여 논쟁함으로서 각자 자기의 가설을 진리라고 주장한다. 

(905) 만일 다른 사람들이  비난하기 때문에 천박한 주장이라 한다면 갖가지 가르침중에 뛰어난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의 주장만을 끝까지 내세워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열등한 것이라 주장하기 때문이다. 

(906) 그들은 자기의 도를  찬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가르침을 존중한다. 그렇다면 모든 이론이 그처럼 정당함을 뜻 하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각자의 이론이 다 악에서 벗어난 깨끗한 것이기 때문이다. 

(907) 바라문은 다른 것에 이끌리는 것이 없다. 또한 갖가지 가르침에 대하여 단정을 내리고 이를 고집하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논쟁을 초월해 있다. 이는  다른 사람의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908) <우리는 안다. 우리는 본다. 또 이것은 사실이다.> 하는 견해로 해서 어떤 사람들은 깨끗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 자신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들은 바른 길에서 떠나, 다른 것으로 해서 깨끗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909) 보는 사람은 명칭과 형태를 본다.  보고나서 이것들--상주(常住),안락, 실아(實我)--을 참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고 싶은 자가 많든 적든 보는 것은 무방하다. 그러나 진리에 통달한 자들은 그렇게 봄으로 해서 깨끗해 진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910) 집착해서 고집하는 자가  자기가 세운 견해를 존중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잡기란 쉽지 않다. 자기가 의거하는 것만을 정당하다고 보며, 그것에서만 깨끗해질 수  있다고 보는 자는 그렇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911) 바라문은 바로 보고 망상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견해에 휩쓸리지 않고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범속한 자들이 말하는 갖가지 견해를 잘 알고 마음에  새겨 두지 않는다.--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집착해도. 

(912) 성자는 이 세상에서 갖가지 속박을  버리고, 논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어느 한쪽에 가담하는 일이 없다. 그는 불안한 자들 속에서 마음이 안정되어  태연하며, 집착하는  일이 없다.--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집착하지만. 

(913) 과거의 대를 벗고  다시 때묻는 일이 없으며,  만사에 욕심을 내지 않고 논쟁을  고집하는 일도 없다.  현자는 온갖 견해를 떠나 이 세상에서 더럽혀지지 않으며, 자기를 탓하는 일도 없다. 

(914) 보고 배우고 생각하는 어떤 사물에  대해서도 맞서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는 모든 부담에서 해방되어 있다. 그는 계략을 세우지 않으며 쾌락에 잠기거나 이를 구하는 일도 없다. 



14.신속 


(915) '태양의 후예이신 위대하신 선인(부처님)께 속세에서 멀리  떠나는 것과 평안에  이르는 경지를 알고자 합니다. 수행승은  어떻게 관찰해야 세상에서 아무 것 에도 집착하지 않고 평안에 들 수 있습니까?' 

(916)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있다고  생각하여 널리 확대되는  의식을 억누르고  마음속에 있는 어떠한 애착도 억제하기 위해 언제나 명심하라. 

(917) 안팎으로 참된 이법을 알라.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거만하게 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을  진리에 도달한 자는 평안이라 하지  않는다. 

(918) 이로  말미암아 <자기가  뛰어났다.>고 생각하거나  <자기가 열등하다.> 또는 <자기가 동등하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갖가지 질문을 받더라고 자기가 잘 났다는 그릇된 생각을 갖지 말라. 

(919) 수행자는 안으로 평안을 누린다.  밖에서 이를 구해서는 안된다. 안으로 평안을 얻는 자는  고집하는 것이 없다. 그러니 어찌 버릴 것이 있겠는가. 

(920) 바다 속에서는 파도가 일지 않고 고요한 것처럼, 그렇게 조용하고 흔들리지 말라. 수행승은 무엇에 대하여서도  욕심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921) '눈을 뜨신 분께서는  몸소 체험하신 법, 위험과 재난의  극복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시 원컨대, 바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계율 규정이나 정신안정의 법을 알고자 합니다.' 

(922) '눈에 보이는 것을  탐내지 말라. 야비한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맛에  탐닉해서도 안된다. 세상에  있는 어떤것에도 집착하지 말라. 

(923) 고통을 당해도 수행자는 결코 비관하거나 한탄해서는 안된다. 생존을 탐하여 구하지 말라. 무서운 것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라. 

(924) 음식이나 의복을 얻어도 이를  저장해서는 안된다. 또 그것을 얻을 수 없다고 걱정하지 말라. 

(925) 마음을 안정 시켜라. 방황해서는 안된다. 후회하지 말라. 게을러서는 안된다. 그리하여 수행자는 한적한 곳에 기거 해야 한다. 

(926) 잠을 많이 자지 말라. 일에 부지런 하며 눈을 바로 뜨고 있어야 한다.  게으름과 거짓, 담소와  유희, 이성과의 교재와  겉치레를 버려라. 

(927) 내 제자들은  아타르바 베에다 성전의 마법을 신봉하거나  해몽을 하고 관상을  보고 점성술을 숭상하지  말라. 또 새나  짐승의 소리로 점을 치거나 잉태법이나 의술을 행해서도 안된다. 

(928) 수행자는  비난을 받더라고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라. 칭찬을 받더라고 거만하지  말라. 그리하여 탐욕과  인색과 분노와  욕설을 멀리 해야 한다. 

(929) 수행자는 장사를 해서는 안된다. 남을 절대로 비방하지  말라. 또 마을 사람들과 친하지도 말라.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과 만나지도 말라. 

(930) 수행자는 거만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이익을 얻기위해 행동하지 말라. 계율이나  도독에 대해서도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931) 거짓말을 피하라. 조심해서 속이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생활이나 지혜, 계율이나  도덕에 대해서도 거친 말로 대꾸해서는  안된다. 선량한 사람들은 적대적인 말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932) 집을 나온  수행자들이나 말이 많은 속인들에게서 욕을  먹거나 불쾌한 많은 말을 듣더라고 거친 말로 대꾸해서는  안된다. 선량한 사람들은 적대적인 말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933) 수행자는 이러한  참된 이법을 잘  알고 언제나 조심하여  잘 배워라. 갖가지 번뇌가  소멸된 상태가 <평안>임을 알고  고타마의 가르침에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934) 그는 스스로  이기되 다른 사람을 힘으로  이기는 일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 들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증명하는 참된 이법을 깨닫는다. 저 불타의  가르침을 게을리하지 말며, 언제나 우러러 배례하고 따르며 또 배우라.' 이같이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15. 몽둥이를 들고 


(935) 논쟁하는  자들을 보라. 저들은  몽둥이를 들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내가  얼마나 그것을 혐오하여 이에서 떠났는가에 대해서 말하리라. 

(936) 물이 적은 웅덩이에서  파닥거리는 물고기처럼 떨고 있는 자들과, 서로 반목하고 있는 자들을 보고 나는 두려움이 일어났다. 

(937) 이 세상은 어디나  진실하지 않다. 사방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 나는 의지할  고장을 구했으나 이미 죽음과  고뇌에 싸여 있지 않는 곳이 없다. 

(938) 살아있는 모든 것이 결국에  가서 재앙을 받게 되는 것을 보고 나는 불쾌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마음속에는 번뇌의 화살이 박혀 있음을 보았다. 

(939) 이 화살에 맞은 자는 사방을 헤매게 된다.  이 화살을 빼버리면 헤매는 일이 없고 구렁에 가라앉지도 않는다. 

(940) 이  세상사람들은 갖가지 학문을  배운다. 이 때문에  갖가미 속박의 굴레에 빠져서는 안된다.  모든 욕망을 잘 살펴 자기자신의 평안을 배워라. 

(941) 성자는 성실해야  한다. 거만하지 말고  속이지 말며, 욕설을 하지 말고 화를 내지 말고, 탐욕과 인색을 초월해야 한다. 

(942) 마음을  평안히 갖는 자는  잠과 게으름과 우울을  극복하라. 게을러서도 안된다. 교만해서도 안된다. 

(943) 거짓말을 피하라. 아름다운 겉모양에 애착을 느끼지 말라. 거만한 마음을 잘 헤아려 포악에서 떠나라. 

(944) 낡은 것을 즐기지 말라.  새것에 이끌리지도 말라. 멸망해 가는 것을 슬퍼하지도 말라. 애착에 끌리지 말라. 

(945) 나는 이끄는 것을 탐욕,  거센 물결이라 부르고, 스며드는 허욕이라 부르며, 또한 술책,  포착이라 부르며, 벗어날 수 없는 욕구의 진흙탕이라 부른다. 

(946) 성자는  진실에서 떠나는 일이  없으며, 바라문은 평안에  서 있다. 그를 가르켜 모든 것을 버리고 <평안에 이른 자>라고 부른다. 

(947) 그는 아는  자이며 베에다에 정통한 자로서  참된 이법을 다 알고 걸림이 없다.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행하고 세상의 아무것도 부러워 하는 일이 없다. 

(948) 이 세상의 모든 욕망에서 떠나고 또한 극복하기 어려운 집착을 벗어난 자는 사나운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속박을 받지 않으며 두려움을 모르고 사모하여 애태우는 일이 없다. 

(949) 번뇌를 쓸어 버리고, 미래에는 그대에게  아무것도 없도록 하라. 현재에도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편안하게 되리라. 

(950) 명칭과 형태에  대하여 자기 소유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자와, 또한 무엇인가가 없다하여 걱정하지  않는 자--그는 실로 세상에서 늙지 않는다. 

(951) <이것이 내 것이다>  또는 <저것은 다른 사람 것이다>하는 생각이 없는 자--이렇게 내  것이라는 관념이 없기 때문에 자기에게 <없다>하여 걱정하는 일이 없다. 

(952) 질시하는 일이 없고  탐내는 일이 없으며, 마음이  흔들려 괴로워하는 일이 없으니, 그는 만물에 대하여  평등하다. 두려워 하지 않는 자에 대하여 묻는  자가 있으면 나는 그의 아름다운  점을 말 하리라. 

(953) 지혜를 가진 자는  마음이 흔들려 괴로워하는 일이  없고, 어떠한 작위(作爲)도 있을 수 없다. 그는 노작(勞作)에서 벗어나 가는 곳마다 안온을 본다. 

(954) 성자는 자기가 동등한 자들 속에서 있다거나 열등한 자 도는 우월한 자들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평안에 돌아가 인색하지 않으며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16. 사아리풋타 


(955) 존자(尊者) 사아리풋타가 말했다.
'저는 아직 본 일도 없고 들은 일도 없읍니다.--이렇게 언어가 아름답고 대중의 주인이신 스승(부처님)께서  투시타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을. 

(956) 눈 있는 자께서는 신들과 세상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일체의 암흑을 없애고 홀로 법의 즐거움을 가지십니다. 

(957) 걸림이 없고 거짓을 모르는 자로서, 이 세상의  태어나신 스승이시여, 사슬에 매인 자들을 위해 묻고자 여기에 왔습니다. 

(958) 수행자(比丘)는 세상이 싫어,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이나 나무아래, 또는 묘지를 사랑하고, 산 속이나 동굴 안에 거주하며, 

(959) 그 밖의 여러 먼곳에 거처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대단히 무섭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한적한 곳이지만 수행자는 이를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960) 또 아무도 가본일이 없는 곳에 발을 옮길 때 커다란 위험이 따르지만 수행자는 어떤 산간벽지에 거주해도 그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961) 열심히 노력하는 수행자에게는 어떤 말이 입에서 흘러 나와야 합니까? 여기서 그는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습니까? 그가 지키는 계율이나 서약은 어떤 것입니까? 

(962) 마음을 안정시켜 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 현자는 어떤 가르침에도 마치 쇠붙이를 다루는 자가 은덩어리의 때를 벗기듯, 자기 에게 물든 때를 씻어 버릴 수 있습니까?' 

(963)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사아리풋타여, 세상이 싫어 사람이 없는 곳에 거처하며 도를 깨치려는 자가 즐기는 경지와 법을 좇아서 행동하는데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대에게 말하리라. 

(964) 바른 정신으로 분수를 지키는 현명한 수행자는 다섯 가지의 공포에 떨어져서는 안된다. 즉,쇠파리, 모기,  파충류와 못된 인간, 그리고 네발 가진 짐승들이다. 

(965) 이교도 들을 받들거나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비록  갖가지 사나운 점이 보인다 해도--선(善)을 추구하여 이러한 위험과 재난을 극복하라 

(966) 병이나 굶주림, 추위와  더위도 견뎌야 한다.  집 없는 자가 비록 이런 것의 침입을 받는다  해도 용기를 내어 굳세게  나가야 한다. 

(967)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약하고 강한 모든 살아 있는 것에 자비심을 가지고 대하라. 마음이 엇갈릴  때에는 <악마의 무리>라 생각하고 이를 제거하라. 

(968) 분노와 교만에 지배되지  말라. 이것들에 지배되지 말고  그 뿌리를 뽑아 버려라. 또한 쾌, 불쾌도 극복해야 한다. 

(969) 지혜를 제일 소중히 여기고 선을 즐기며, 이에 다르는  위험과 재난을 이겨라. 음침한 곳에 눕는 불쾌함을 견뎌라.  다음에 말하는 네 가지 걱정을 감당하라. 

(970) 즉 <나는 무엇을 먹을까> ,<나는 어디서 먹을까?>,<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을까?>,<나는  어디서 잘까?>, 집을  버리고 도를 숭상하는 자는 이 네 가지의 걱정을 억제하라. 

(971) 적당한 시기에 음식과  의복을 얻고 적은  양에도 만족하기 위해 그 의식(衣食)의 양을 알라. 먹고 입는데 대하여 스스로 억제 해야 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마음을 돌아 다닐 것이다.  비록 욕설을 듣는 일이 있더라도 난폭한 대꾸를 해서는 안된다. 

(972) 눈을 아래로 돌리고 배회하는 일 없이 생각을 바로 잡아 완전히 깨어 있으라. 마음을  가라 앉히고 정신을  안정시켜 잡념과 욕망과 회환을 끊으라. 

(973) 다른 사람으로부터 충고를 들었을  때에는 반성하고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하는  자들에게는 부당한 마음을  갖지 말고 좋은 말로 대하라. 그때 온당치 못한 말을 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을 헐 뜯을 생각도 하지말라. 

(974) 이 세상에는 다섯 가지 티끌이 있는데 주의 깊은 사람은 그것을 억제할 방도를 세운다. 즉, 빛깔, 소리, 맛, 향기, 감촉에 대한 욕망을 버려라. 

(975) 수행승은 정신을 가다듬고,  완전히 이런 것에 대한  욕망을 억제하라. 늘 그에 합당한 법을 살펴  마음을 통일하여 암흑을 없애라.'
스승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5. 피안에 이르는 길 


1. 머리말 

(976) 베에다에 밝은 한 바라문(바아바린)은  아무 것도 갖지 않은(無所有) 경지에 이르고자 코오살라족의 아름다운 도시에서 남국으로 내려왔다. 

(977) 그는  앗사카와 아리카 두 나라의  중간 지역을 흐르고 있는 고오다아바아리 강변에서 살고  있었다. 이삭을 줍고 나무  열매를 먹으며. 

(978) 그 강변 가까이에 커다란  마을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 얻은 수익으로 그는 큰 제사를 지냈다. 

(979) 그가 제사를 마치고 자기의 암자로 돌아 왔을 때 어떤 바라문 한 사람이 찾아 왔었다. 

(980) 발은 부르트고 목은 말라 헐떡일 뿐 아니라, 이는 더럽고 머리에는 먼지를 뒤집어 쓴채 바아바린에게  가까이 와 오백금을 구걸 했다. 

(981) 바아바린은 그를 보자  자리를 권하며 그의 안부를 물은 다음 다음과 같이 말했다. 

(982)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은 이미 다 주었지요. 바라문이여, 미안 하지만 내게는 오백금이 없습니다.' 

(983) '내가 구걸하는  데도 그대가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칠일후 그대의 머리가 깨어져 일곱 조각이 될 것이오.' 

(984) 거짓말을 한 그 바라문은 무서운  저주를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바아바린은 고뇌에 빠졌다.

(985) 그는 걱정의 화살을  맞고 나서 음식을 먹지 않고 수심에 잠겨 마음의 안정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 

(986) 바아바린이 두려움에 사로 잡혀 고뇌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암자를 비키는 여신이 그의 곁에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987) '그는 머리를  알지 못한다. 그는 재물을 구하는  사기한(詐欺漢)이다. 그는 머리도, 또 머리가 떨어지는 일도 모르고 있다.' 

(988) '그럼 당신께선 알고 계시군요.  묻고자 하오니, 머리와 또 머리가 떨어지는 일이  무엇인지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989) '나도 그것은 모른다. 그것에  대한 지식이 나에겐 없다. 머리와 머리가 떨어지는 것은 여러 승자께서 알고 있다. ' 

(990)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머리와  머리가 떨어지는  일을 누가 알고 있습니까? 여신이여, 그것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991) '카필라밧투  도시에서 온 세계의 지도자(부처님)가  있다. 그는 감자왕의 후예이며, 석가족의 아들로서 세상을 비추고 있다. 

(992) 바라문이여, 그는 실로 눈뜬자로  모든 사물을 통달하여 일체의 신통력을 갖고, 모든 것에 대한  눈을 가졌다. 모든 것을 소멸하여 번뇌를 없애 해탈하고 계시다. 

(993) 그는 눈뜬자며 존귀하신 스승이요,  바른 눈을 가지신 자로서, 세상에서 법을 설한다. 그대가 그곳에  가 물으면 그에 대한 해답을 얻으리라.' 

(994) 눈뜬자란 말만 듣고도 바아바린은  환희에 휩싸였다. 그는 근심이 얕아졌다. 그는 커다란 기쁨을 얻었다. 

(995) 바아바린은 기쁨과 환희와 감동에 차서 여신에게 물었다.
'세상의 주인은 어느 마을, 어느 거리, 어느 부락에 계십니까? 거기 가서 저는 최상의 정각자(正覺者)에게 경배 하겠습니다.' 

(996) '승자, 지혜가 풍부한 자, 총명한 자, 무거운 짐을 내린 자, 때 묻지 않은 자, 머리가 떨어지는 것을 알고 계시는 자, 우왕(牛王)과 같은 자인 석가족의 아들, 그는 코오살라의 도시 사아밧티에 계시다.' 

(997) 이리하여 그는 여러 제자바라문 들에게 말했다.
'오라, 제자들이여, 그대 들에게 알리 노니 내 말을 들으라. 

(998) 세상에 나타나기 힘든 저 희귀한  눈뜬자, 이름 높은 자가 지금 이 세상에 나타나셨다. 그대들은 어서 사아밧티에 가서 그 최상의 분을 찾아 뵙도록 하라.' 

(999) '그러면 바아바린이시여, 그를 뵙고  우리가 어떻게 그가 <눈 뜬자>임을 알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1000) '여러 베에다 속에 서른 두 가지의  완전한 위인의 상이 전해져오고, 이에 대하여 차례로 설명되어 있다. 

(1001) 몸에 이러한 서른 두 가지의 상이 있는 자--그에게는 두 가지 앞길이 있을 뿐, 제 삼의 길은 없다. 

(1002) 만일 그가 집에 머물러 있게 되면, 이 대지를 정복할 것이다. 형벌이나 무기로 다스리지 않고 법으로 통치 한다. 

(1003) 만일  그가 집을 버리고  나온다면, 덮여진 모든  것이 열려 최상의 눈뜬자 로서 존경을 받게 된다. 

(1004) 내가 태어난  해(年)와 내 성(姓)과 특수한 상,  그리고 베에다와 제자들과,  머리와 머리가 떨어지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에게 진심으로 물으라. 

(1005) 만일 그가 보는데  아무 장애도 없는 부처님 이라면 진심으로 묻는 질문에 대답할 것이다.' 

(1006) 바아바린의 말을 듣고 제자인 16명의  바라문--아지타, 팃사멧테이야, 푼나카, 그리고 멧타구우, 

(1007) 도오타카, 우파시이비, 난다, 헤에마카, 토오데야, 캅파, 현자 쟈투칸닝, 

(1008) 바드라우다,  우다야, 포사라바라문과  지자(智者)모오가라아쟈, 선인 핑기야--- 

(1009) 그들은 저마다 각각 여러 신도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온 세상의 이름을 떨치고  정신을 안정 시키는 자들로서, 마음의 평안을 즐기고 현명하며, 선을 쌓은 자들이다. 

(1010) 그들은 머리를  길러 묶고 염소 가죽을 몸에 걸친  다음, 모두 바아바린에게 오른쪽으로 돌아 예배하고 북쪽으로 떠났다. 

(1011) 그리하여  무라카의 수도  파티타아나에 이르러, 거기서  옛 마아힛사티로도 우제니이, 고오낫다, 베디사, 바나사라 라는 곳으로. 

(1012) 그리고  다시 코오삼비이, 사아케타, 사아밧티이로  갔다. 그리고 다시 세타비야, 카필라밧투, 쿠시나아라아의 도시에 이르렀다. 

(1013) 다시 향락의 도시 파아바아에 갔다가 베사아리이를 거쳐 마가다의 도시 라아자그리아로, 거기서 다시  쾌적한 석묘(石廟)에 이르렀다. 

(1014) 목마른  자가 냉수를 찾듯, 또한  상인이 큰 이익을 원하듯, 무더위에 지친 자가  나무그늘을 찾듯이, 그들은 부처님이 계신 산으로 올라갔다. 

(1015) 존귀하신  스승께서는 그때  여러 승려들의 존경을  받으며, 사자가 숲 속에서 포효하듯 수행승에게 설법하고 계셨다. 

(1016) 빛을 비추는  태양같은, 둥그런 보름달 같은  눈뜬자를 아지타는 보았다. 

(1017) 그때 아지타는 스승의  몸에 원만한 형상이 있는 것을 보고 기꺼이 한쪽에 서서 진심으로 여쭈었다. 

(1018) '저희들의 스승인  바아바린이 태어난 때, 성(姓), 형상 그리고 얼마나 베에다에 통달해 있는 가를 말씀해 주십시오. 제자를 몇 사람 가르치고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1019) '그의 나이는  백 이십 세이고 성은 바아바린이며, 몸에 세가지 특상이 있고, 세 베에다의 깊은 뜻에 통달해 있다. 

(1020) 위인의 특상(特相)과  전설, 의례의 규정에 통달하고 오 백 명을 가르치며, 자신의 진리의 극치에 도달해 있다.' 

(1021) '애착을 끊어버린 최상의 분이시여, 바아바린이 가지고 있는 온갖 특상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저로 하여금 의심이 생기지 않게 해주십시오.' 

(1022) '그는 혀로 자기의  얼굴을 가릴수 있다. 두 눈썹 사이에 길다란 흰털이 있고 그의 음부는 감추어져 있다. 그의 특상은 이러하다.' 

(1023) 질문하는 자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는데 대답하시는 것을 듣고, 모든 사람들은 감격하여 합장하고 생각에 잠겼다.--- 

(1024)  <그는 어떤  사람일까? 신일까,  범천일까, 또는  제석천일까?>이렇게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누구에게 답하신 걸까?> 

(1025) 바아바린은 머리와 머리가 떨어지는데 대하여 질문했다.
'스승이시여, 그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선인 이시여, 저희들의 의혹을 풀어 주십시오.'  

(1026) 고타마 께서 말씀하셨다.
'무명(無名)이 머리임을 알라. 신앙과 생각과 선정(禪定), 욕심과 노력에 결부되어 있는 밝은 지혜(明知)가 머리를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1027) 이에 바아바린은 크게  감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염소가죽으로 만든 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부처님의 두  발 밑에 엎드려 머리를 숙이고 경배했다. 

(1028) 아지타가 말했다.
'존귀하신 분이시여, 바라문 바아바린은 여러 제자들과 더불어 기쁜 마음으로 존귀하신 스승의 발 아래 경배합니다. 눈을 가지신 자여.' 

(1029)고타마 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 바아바린은 여러 제자들과  더불어 안락을 누리라.  그리고 아지타여, 그대도 도한 안락을 누리라. 그리고 오래 살라. 

(1030) 바아바린이나 그대에게서  모든 의문이 사라졌으리라.  마음 속에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으라.' 

(1031) 부처님께서 질문을 허락 하셨으므로  아지타는 합장하고 앉아서 부처님에게 제1의 질문을 드렸다. 



2. 바라문 아지타의 질문 


(1032) 아지타 장로가 말했다.
'세상은 무엇으로 덮여 있습니까? 세상은 무엇 때문에 빛나지 않습니까? 세상을  더럽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커다란  공포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1033)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지타여, 세상은 무명으로 덮여 있다. 세상은 탐욕과 태만으로 하여 빛나지 않는다. 욕심이 세상을 더럽힌다. 고뇌가 세상의 큰 두려움이라고 나는 말한다.' 

(1034) 아지타 장로가 말했다.
'번뇌의 흐름은 어느곳이나 스며듭니다. 그 흐름을  그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흐름을  방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흐름은 무엇으로 막을 수 있습니까?' 

(1035)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지타여, 세상에서 모든 번뇌를 흐름을 그치게  하는 것은 정신을 올바로 갖는데 있다. 그것이 번뇌의 흐름을  방지한다. 내가 말하노니, 그 흐름은 지혜로 막을 수 있다.' 

(1036) 아지타 장로가 말했다.
'지혜와 정신을 올바로 가지는 것은 어떤  경우에 소멸되며, 명칭과 형태는 어떤 경우에 소멸 됩니까?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1037) '아지타여, 그대가 질문 한 것을  답하리라. 식별작용을 없앰으로서 명칭과 형태가 소멸된다.' 

(1038) '이 세상에는  진리를 탐구하여 밝힌 자들도  있고, 또 일을 배우는 자들도 있으며, 그밖에 범속한 자들도 있습니다. 현자여,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1039) '수행승은 갖가지 욕망에  탐닉해서는 안된다. 또 마음이 흐려져서도 안된다. 모든 사물의  진상에 통달하여 정신을 차리고 편력하라.' 



3. 바라문 팃사 멧테이야의 질문 


(1040)  팃사 멧테이야가 말했다.
' 이 세상에서 만족하고 있는 자는 누구입니까? 동요되지 않는 자는 누구입니까? 두 극단을 잘 알아 이를 깊이 생각하여, 그 양단에도 중간에도 때묻지 않는 자는 누구입니까? 누구를 위인 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만나는 여자(번뇌)를 초월한 자는 누구입니까?' 

(1041)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멧테이야여, 갖가지 욕망에 대해서 깨끗한 행을 지키고 애착을 떠나 언제나 정신을 바로 가지고 사물을 밝게 보고 평안에 이른  수행자--그에게는 흔들림이 없다. 

(1042) 그는 두 극단을 잘 알아 이를 깊이 생각하여, 그  양단에도 중간에도 때묻지 않는다. 나는 그를  위인이라 부른다. 또한  그는 이 세상에서 만나는 여자(번뇌)를 초월해 있다. 



4. 바라문 푼나카의 질문 


(1043) 푼나카가 말했다.
'동요되지 않고 근본을 달관하신 당신께 묻고자 여기 왔습니다. 선인(仙人)이나 상인(商人), 왕족이나  바라문은 어찌하여  신들에게 희생의 재물을 바칩니까?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습니다. 이를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1044)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푼나카여, 무릇 선인이나 상인, 왕족이나 바라문들이 널리 신들에게 희생의 재물을 바치는 것은, 현재의 이러한 생존상태를 희망한 나머지 노쇠가 염려되어 그런 재물을 바치는 것이다.' 

(1045) 푼나카가 말했다.
'스승이시여, 세상에서 선인이나 상인,  왕족이나 바라문들이 널리 신들에게 희생의 재물을 바치고 제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들은 생과 노쇠를 초월했습니까? 임이시여,  당신께 묻습니다. 이를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1046)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 푼나카여, 그들은 희망하고 칭찬하며 열망하여 공물을 바친다. 이득을 얻어 욕망을 달성 하려는 것이다.  희생의 재물을 드리는 일에만 염두에 두고 몰두하는 자는 이 세상의 생존을 탐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생과 노쇠를 초월하지 못했다.' 

(1047) 푼나카가 말했다.
' 만일 희생의 재물을 드리는 일에만 전념하는 그들이 제사로 해서 생과 노쇠를 초월하지 못한다면, 임이시여, 신들과 인간의  세상에서 생과 노쇠를 초월한 자는 누구입니까?  임이시여, 당신께 묻습니다. 이를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1048)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푼나카여, 세상에서 이런 저런의 모든 것을 구명하여  아무것에도 흔들리는 일이 없고, 평안에  돌아가, 연기도 고뇌도 욕망도  없는 자--그는 생과 노쇠를 초월했다고 나는 말한다.' 



5. 바라문 멧타구이의 질문 


(1049) 멧타구이가 말했다.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습니다. 이것을 제게 말슴해 주십시오. 당신께서는 베에다에 통달한 분, 마음을 깨끗이 닦은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갖가지 괴로움은 대체 어디서 나타나는 것입니까?' 

(1050) 스승께서 말씀 하셨다.
'멧타구이여, 그대는 내게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물었다. 나는 그대에게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말하리라. 이 세상의 갖가지 괴로움은 집착에서 생긴다. 

(1051) 실로 알지도 못하면서 집착하는 자는  우둔하여 괴로움을 거듭한다. 때문에 아는 바가  있고 괴로움이  일어남을 관찰하는 자는 집착을 가지면 안된다.' 

(1052) '저희가 당신께 물은 것에 대하여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제 또 하나 묻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현자들은 번뇌의 흐름과 생과 노쇠, 근심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원하건데 그것을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께서는 이에 대한 법칙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053) 스승께서 말씀 하셨다.
'멧타구이여, 이승에 전해져 있지 않은 그 법칙을 내가 그대에게 설명 하리라. 그 법칙을 알고 명심해서 행하고 이 세상의 집착에서 벗어나라.' 

(1054) '위대하신 선인이시여, 저는 그 최상의 법칙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것이 무한히 기쁩니다. 그 법칙을 알고 명심해서 행하고 이 세상의 집착에서 벗어나겠습니다.' 

 (1055) 스승께서 말씀 하셨다. 
 '멧타구이여, 상하좌우, 그리고 중간을 막론하고 그대가  아는 어떤 것이라도 그것에 대한 기쁨과 집착과 식별을 제거하여 변화하는 생존 상태에 머물지 말라. 

(1056) 이렇게 하여 정신을 차려서 꾸준히 노력하는 수행자는 자기 소유라고 고집하던 것을 버리고 생과 노쇠와 근심과 슬픔마저 버리고 지혜로운 자가 되어 이 세상에서 괴로움을 벗어나리라.' 

(1057) '위대하신 선인의 말씀을  들으니 기쁘기  짝이 없습니다. 고타마시여, 번뇌의 요소가 없는 경지를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승께서는 분명히 괴로움을 버리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이 법칙을 확실히 알고 계십니다. 

(1058) 성자이시여, 당신께서 간절히 가르치시고 이끌어주신 자들은 괴로움을 버리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용이시여, 저는 당신 가까이서 경배하려 합니다. 스승이시여, 저를 가르쳐 주시고 이끌어 주십시오.' 

(1059) '아무것도 갖지 않고 욕망으로 가득한 생존에 집착하지 않는 바라문, 베에다에 통달했다고 그대가 알고 있는 자-- 그는 분명히 이 번뇌의 흐름을 건너갔다. 그는 피안에  도달하여 마음이 거칠지 않으며, 의혹도 없다. 

(1060) 또한 그는 이 세상에서는 지혜로운 자이며, 베에다에 통달하여 갖가지 생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애착을 떠나 고뇌를 모르며 바라는 것도 없다. 그는 생과 노쇠를 초월했다고 나는 말한다.' 



6. 바라문 도오타카의 질문 


(1061) 도오타카가 말했다.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습니다.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열반에 대하여 배우고자 합니다.' 

(1062)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도오타카여, 그럼 이 세상에서  현명하게 힘써 정진하라. 내 말을 듣고 자기의 평안을 배우라.' 

(1063) '저는 신들과 인간의 세계에서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바라문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을 널리 보살피시는 분이시여, 저는 당신께 경배하오니, 석가시여, 저로 하여금 갖가지 의혹에서 떠나게 해주십시오.' 

(1064) '도오타카여, 나는 세상에서 의혹을 갖고 있는 자는 누구든 해탈 시킬수 없다. 다만 그대가  최상의 진리를 알면 그것으로 해서 그대는 번뇌의 흐름을 건너가게 되리라.' 

(1065) '바라문 이시여, 자비를 베푸셔 속세를 멀리하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그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허공처럼 복잡한 삼라만상을 나타내지 않고, 이 세상에서 고요하게 걸림이 없이 행하겠습니다.' 

(1066)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도오타카여, 이 세상에서 전해  내려오지 않운 이  평안에 대하여 그대에게 설명하리라. 그것을 알고 명심해서 행하여 이 세상의 집착에서 초월하라.' 

(1067) '위대하신 선인이시여, 저는  최상의 평안에 대한 가르침에 대해 한없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를 알고 명심해서 행하여 세상의 집착에서 벗어나겠습니다.' 

(1068)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도오타카여, 상하 좌우, 그리고  중간을 막론하고 그대가 알고 있는 무엇이든 그것은 세상의 집착임을 알고  이것저것 생존에 대한 애착을 가져서는 안된다.' 



7. 바라문 우파시이바의 질문 


(1069) 우파시이바가 말했다.
'석가시여, 저는 아무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  번뇌의 큰 강을 건너갈 수 없습니다. 제가 이 강을 건너갈 수 있는 발판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널리 보시는 분이시여.' 

(1070)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우파시이바여, 힘써 아무 것도 갖지 않을 것(無所有)을 원 하며,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함으로서 번뇌의 강을 건너가라. 갖가지 욕망을 버리고 모든 의혹을 떠나, 애착의 소멸을 밤낮으로 살피도록 하라.' 

(1071) 우파시이바가 말했다.
'일체의 욕망에 대한 탐함에서 떠나 무소유의 견지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최상의 유상 해탈에서 해탈 한 자--그는 태만하지 않고 거기 안주할 수 있습니까?' 

(1072)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우파시이바여, 일체의 욕망에 대한 탐함에서  떠나 무소유의 견지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최상의  유상 해탈에서 해탈 한  자--그는 물러서는 일없이 거기 안주하게 되리라.' 

(1073) '널리 보시는 분이시여, 만일 그가  물러서지 않고 여러 해 동안 거기에 머문다면 그는 해탈하여 청량하게 되겠습니까? 또 그러한 자의 식별작용은 존재하는 것입니까?'

(1074)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우파시이바여, 마치 강한 바람에 날려간 불길은 이미 소멸되어 불이라 말할 수 없듯이 성자는 명칭과 육신에서  해탈하여 멸했으니 이미 생존하는 자라 볼 수 없다.' 

(1075) '멸해 버린 그는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상주(常住)해 무병(無病)합니까? 성자 이시여, 그것을 제게 설명해 주십시오. 당신께선 이 법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1076)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우파시이바여, 멸해버린 자에게는 이를 헤아릴 기준이 없다. 그를 무어라 말할 근거가 없다. 모든 것이 다 단멸 되었을 때 논의의 여지는 없는 것이다.' 



8. 바라문 난다의 질문 


(1077) 난다가 말했다.
'세상에는 여러 성자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것은 어찌된 일 입니까? 세상사람들은 지혜를 갖춘 자를 성자라 부릅니까. 아니면 생활이 갖추어진 자를 성자라 부릅니까?' 

(1078)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난다여, 세상에서 진리에 통달한 자는 그 견해나 학설, 또는 지식으로 해서 성자라 하지 않는다. 번뇌의  악마를 무찔러 고뇌가 없고, 원하는 바가 없이 행동하는 자를 성자라고 나는 말한다.' 

(1079) 난다가 말했다.
' 대개 이런 도를 닦는  바라문들은, 견해나 학문으로  청정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계약이나 서약으로도 깨끗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갖가지 방법으로도 청정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스승이시여, 그들은 그러한 견지에서 스스로  억제하며 행동하지만 과연 생과 노쇠를 초월할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하여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1080)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 난다여, 도를 닦는 바라문들은, 견해로 해서 청정해지고 학문의 계승으로도 청정 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계약이나 서약으로도 깨끗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갖가지 방법으로도 청정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견지에서 스스로 억제하며 행동하고 있더라도 생과 노쇠와 죽음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1081) 난다가 말했다.
' 도를 닦는 바라문들은, 견해나 학문으로 청정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계약이나 서약으로도 깨끗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갖가지 방법으로도 청정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스승이시여, 만일 당신께서 <그들은 아직 번뇌의 강을 건너지 못했다>라고 말씀 하신다면 그렇다면, 신들과 인간의 세계에서 생과 노쇠를 초월한 자는 누구입니까? 스승이시여, 당신께 묻습니다.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1082)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난다 여, 나는 <도를 닦는 바라문들이 모두  생과 노쇠에 싸여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견해나 학문이나  사상, 그리고 계율과 서약을 버리고, 그밖의 갖가지 것을 다 버리고 애착을 분명히 버리고 통찰해 마음에 때묻지 않은  자--그들은 실로 <번뇌의 강을 건너는 자들>이라고 나는 말한다.' 

(1083) '위대하신 선인의 말씀을 듣고 저는 무한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고타마시여, 번뇌의 근심이 없는 경지에 대해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견해나 학문이나 사상, 그리고 계율과 서약을 버리고, 그밖의 갖가지 것을 다 버리고 애착을 분명히 버리고 통찰해 마음에 때묻지 않은 자들--그들은 실로  <번뇌의 강을 건너는 자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9. 바라문 헤에마카의 질문 


(1084) 헤에마카가 말했다.
' 일찌기 고타마 이전에  살고 있던 옛사람들은 <이전에는  이러했다> <미래에는 이러할 것이다>라고 저에게  설명 하셨는데, 이들은 다 한낱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색의 혼란을 일으킬 따름 이었습니다. 

(1085) 저는 이러한 말을 기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성자 이시여, 애착을 버리는 방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를 알고 명심해서 행하여 집착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1086)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헤에마카여,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식별한  아름다운 사물에 대하여 탐욕을 없애는 것이 영원한 열반의 경지다. 

(1087) 이를 분명히 알고 명심하여  이승에서 번뇌에서 완전히 떠난 자들은, 언제나 평안에 돌아가 있다. 세상의 애착을  초월한 것이다.' 



10. 바라문 토오데야의 질문 


(1088) 토오데야가 말했다.
'온갖 욕망에 물들지 않고 애착이 없으며, 온갖 의혹을  벗어난 자.--그는 어떤 해탈을 구하면 좋겠습니까?' 

(1089)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토오데야여, 온갖 욕망에 물들지  않고 애착이 없으며, 온갖 의혹을 벗어난 자--그에게는 달리 해탈이 없다.' 

(1090) '그는 바람이 전혀  없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를  희망 합니까? 그는 지혜가 있습니까? 아니면 지혜로 무언가를  꾸미는 자입니까? 석가시여, 그가 성자임을  제가 알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널리 보시는 분이시여,' 

(1091) 그는 아무 바램도  없는 자이다. 아무 것도 희망하지  않는다. 그는 지혜  있는 자이지만 지혜로 무언가를 꾸미지는  않는다. 토오데야여, 성자는 이러한 자임을 알라. 그는 아무 것도  갖지 않고 욕망으로 생존에 집착하지 않는다.' 



11. 바라문 캅파의 질문 


(1092) 캅파가 말했다.
'무서움이 극에 달하도록 거센 흐름이 밀려 왔을 때 호수 가에 있는 자들, 노쇠와 죽음에 억눌려 있는 자들을 위한 피난처를 말씀해 주십시오.' 

(1093) 스승께서 말씀 하셨다.
'캅파여, 무서움이 극에 달하도록 거센 흐름이 밀려 왔을  때 호수가에 있는 자들, 노쇠와 죽음에 억눌려 있는 자들을 위한 피난처를 말하리라. 

(1094) 아무런 소유도 없고 집착해 얻은 일이 없는 것--이것이 바로 피난처다. 또한 그것을 열반이라 부른다. 그것은 노쇠와 죽음의 소멸이다. 

(1095) 이를 똑똑히 알고 명심하여 현세(現世)에서 번거로움을  완전히 떠난 자들은 악마에게 정복 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악마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12. 바라문 쟈투칸닝의 질문 


(1096) 쟈투칸닝이 말했다.
'저는, 용사(勇士)로서 욕망이 없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거센 물결을 건넌 분에게 묻고자 여기에 왔습니다. 평안의 경지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스승이시여, 그것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십시오. 

(1097) 존귀하신 스승께서는 온갖 욕망을 억제하고 사십니다. 이는 마치 눈 부신 태양이 그 빛으로  대지를 정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혜 많으신 분 이시여, 지혜가  부족한 저에게 설법해  주십시오. 저는 그것을 알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서 생과 노쇠를 버리는 일을.' 

(1098) 존귀하신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쟈투칸닝이여, 온갖 탐욕을 억제하라--떠나는  것(出家)이 평안임을 알라. 그대에게는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있어서는 안된다. 

(1099) 과거에 있었던 것을 말려 버려라. 미래에는  그대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라. 현세에 있어서도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평안 하리라. 

(1100) 바라문이여, 명칭과 형태에 대한 탐욕에서 완전히  떠난 자에게는 온갖 번뇌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죽음에 지배될 염려가 없다.' 



13. 바라문 바드라우다의 질문 


(1101) 바드라우다가 말했다.
'집착의 근원을 버리고 애착을 끊어 동요되는 일이 없으며, 기쁨을 버리고 사나운 물결을 건너서 이미 해탈하여, 계략이 없는 현명한 당신께 원합니다. 용(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이곳에서 떠날 것입니다. 

(1102) 용자시여, 당신의 말씀을 듣고자 많은 사람들이  여러 지방에서 이곳에 모여 들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좋은 말씀을 해주십시오. 당신께서 이 법을 알고 계십니다.' 

(1103)  존귀하신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바그라우다여, 상하 좌우, 그리고 중간을 막론하고 집착이나 애착을 모두 버리라.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집착하는 것이  있으면, 그 때문에 악마가 따르게 된다. 

(1104) 그러므로 수행자는 바르게 알고 명심해서 세상에 있는 무엇에나 집착해서는 안된다. 죽음의 영역에 애착을 느끼는 이런 사람들은 <집착하는 자>임을 알라.' 



13. 바라문 바드라우다의 질문 


(1101) 바드라우다가 말했다.
'집착의 근원을 버리고 애착을 끊어 동요되는 일이 없으며, 기쁨을 버리고 사나운 물결을 건너서 이미 해탈하여, 계략이 없는 현명한 당신께 원합니다. 용(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이곳에서 떠날 것입니다. 

(1102) 용자시여, 당신의 말씀을 듣고자 많은 사람들이  여러 지방에서 이곳에 모여 들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좋은 말씀을 해주십시오. 당신께서 이 법을 알고 계십니다.' 

(1103)  존귀하신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바그라우다여, 상하 좌우, 그리고 중간을 막론하고 집착이나 애착을 모두 버리라.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집착하는 것이  있으면, 그 때문에 악마가 따르게 된다. 

(1104) 그러므로 수행자는 바르게 알고 명심해서 세상에 있는 무엇에나 집착해서는 안된다. 죽음의 영역에 애착을 느끼는 이런 사람들은 <집착하는 자>임을 알라.' 



14. 바라문 우다야의 질문 


(1105) 우다야가 말했다.
'티끌에서 떠나 앉아서 명상에 잠기며, 해야 할  일을 다하여 번뇌의 때를 벗고, 온갖 사물의 피안에  도달하신 스승께 묻고자 여기 왔습니다. 무명(無名)을 깨뜨리고 깨달음으로 해탈에  이르는 길을 말씀해 주십시오.' 

(1106)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우다야여, 애욕과 근심, 이 양자를 버리는 일, 우울한 마음을 없애는 일, 회한에 빠지지 않는 일, 

(1107) 마음의 평정을 얻고 깨끗한 생각과 진리에 대한 사색을 선행하는 일--이것이 무명을 깨뜨리고 깨달음으로 해탈에 이르는 길이라고 나는 말한다.' 

(1108) '세상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속박을 받게 됩니까? 무엇이 세상사람들을 움직이게 합니까? 무엇을 끊어 버림으로서  평안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1109) '세상사람은 즐거움에 속박되어 있다. 생각이 세상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애착을 끊음으로서 평안이 있다고 말한다.' 

(1110) '정신을 바로 가지고 행하는 자의 식별작용은  어떻게 없애게 됩니까? 그것을 알고 싶어 저는 여기 까지 왔습니다. 이에 대하여 당신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1111) '안팎으로 감각에서 오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자--이처럼 정신을 바로 가지고 행하는 자의 식별작용은 없어지는 것이다.' 



15. 바라문 포사라의 질문 


(1112) 포사라가 말했다.
'과거의 일들을 지적하여도 흔들리지 않고, 의혹을 끊어 버리고 모든 사물의 피안에 도달하신 분에게 묻고자저는 여기에 왔습니다. 

(1113) 물질에 대한 상념을  떠나 육신을 송두리째 버리고 안팎으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통찰하는 자의 지혜에 대하여 묻고자 합니다. 석가시여,  그러한 자는 다시 어떻게 이끌어야 합니까?' 

(1114) 존귀하신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포사라여, 모든 식별의 근원을 분명히  알고 있는 완전한 자는 그가 존재하는 모습을 알고 있다. 즉, 그는 해탈하여 이를 근거로 삼고 있음을 안다. 

(1115) 무소유가 성립되는 이유, 즉,<기쁨은 속박>임을 알아  그것에 대해 조용히 관찰한다. 안정된 바라문에게는 이런 분명한  지혜가 있다.' 



16. 바라문 모오라아자의 질문 


(1116) 모오가라아자가 말했다.
'저는 일찍이 석가님을 두  번 찾아 뵈었지만 석가께선 제게  아무런 가르침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신선께서는 세 번  째에는 가르쳐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1117) 이 세상이나 저 세상, 또한 신들과  함께 있는 범천의 세계도 영예로우신 고타마의 견해를 모르고 있습니다. 

(1118) 이렇듯 오묘하신 견자(見者)께 묻고자 여기 까지 왔습니다. 세상을 어떻게 관찰하는 자가 죽음의 왕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까?' 

(1119)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항상 정신 차려  고집하려는 견해를  버리고, 세상의 빈  것(空)을 보라. 그렇게 되면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 이렇게 세상을 보는 자를 죽음의 왕은 볼 수 없다.' 



17. 바라문 핑기야의 질문 


(1120) 핑기야가 말했다.
' 저는 나이를 먹어 힘이 없고 빛도 쇠하였습니다. 눈도 어두워지고 귀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제가  방황하다가 그대로 죽는 일이  없도록 이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것을 알고자  합니다.--이 세상에서의 생과 노쇠를 버리는 데 대하여.' 

(1121)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 핑기야여, 물질적인 형태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해를 입는 것을 볼 수 있고, 물질적인 형태가  있기 때문에 게으른 자들은  괴로움을 받게 된다. 핑기야여, 그러므로 그대는 게으르지 말고 물질적인 형태를 버리고 다시는 생존상태로 돌아 오는 일이 없도록 하라.' 

(1122) '사방과 그 사이와 상하, 이런 시방(十方)세계에서 당신에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생각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원하오니 설법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생과 노쇠를 버리는 길을 저는 알고자합니다.' 

(1123)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핑기야여, 사람들은 애착에 빠지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고 노쇠의 습격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대는 게으르지 말고 애착을 버리고 다시는 생존상태로 돌아오는 일이 없도록 하라.' 



18. 열 여섯 바라문의 질문을 맺는 말 


존 귀하신 스승께서 마가다국의 파아사아나카 사당에 계실 때 위와 같이 설법하시고, 바아바린의 제자인 16명의 바라문이 질문 할 때마다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하셨다. 그 지문 하나하나에 그 뜻을 알고 이법을  알고 이법에 따라 실천에 옮긴다면, 노쇠와 죽음의 피안에 이를  것이다. 이 가르침은 피안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이 법문을 <피안에 이르는 길>이라 부른다. 

(1124) 아지타, 팃사 멧테이야, 푼나카, 그리고 멧타구우, 도오타카, 우파시이비, 난다, 그리고 헤에마카, 

(1125) 토오데야, 캅파, 두 사람과 현자 쟈투칸닝, 바드라우다,  우다야, 포사라  바라문과  지자(智者)모오가라아쟈, 그리고  위대한 선인 핑기야--- 

(1126) 이들은 행이 갖추어진 선인이신 눈뜬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미묘한 질문을 하며 최상의 부처님을 가까이 했다. 

(1127) 그들의 질문에 응하여 눈뜬자께서는 있는 그대로 대답하셨다. 성자는 온갖  질문에 대하여 명확한  대답을 해주었기 때문에 여러 바라문들은 만족했었다. 

(1128) 그리하여 태양의 후예이신 눈뜬자, 눈  있는 분에게 만족을 느끼고, 뛰어난 지혜를 가지신 분 곁에서 깨끗한 행을 닦았다. 

(1129) 하나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눈뜬자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자는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에 이를 것이다. 

(1130) 최상의 길을 닦는 자는  차안에서 피안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피안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므로 이 법문을 <피안에 이르는 길>이라 부른다. 

(1131) 핑기야가 바아바린에게 말했다.
'<피안에 이르는 길>을 일러 드리겠습니다. 티없이 지혜가 많으신 분께서 몸소 통찰하신 그대로 설법하셨습니다.  욕심이 없고, 번뇌의 숲이 없어진 분께서 어찌 헛된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1132) 때와 미망에서 벗어나 거만과 숨김을 버리신 분에 대한 찬사를 자세히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1133) 바라문이여, 암흑을 몰아내고 눈뜬 분,  널리 보시는 분, 세상 구극에 도달 하신 분, 일체의 생존 상태를 초월하신분, 때 묻지 않으신 분, 모든 괴로움을 버리신  분--그는 실로 눈뜬 분 이라고 부르기에 합당하며, 저도 그분을 가까이 모셨습니다. 

(1134) 이는 새가  엉성한 숲을 버리고 과일이  많은 숲에 둥지를 치듯, 저고 또한  소견이 좁은 자들을 떠나  백조 처럼 큰 바다에 도달 했습니다. 

(1135) 일찍이 고타마  이전에 살고 있던 옛  사람들은 <과거에는 이러했다> <미래에는 이러할  것이다.>라고 저에게  설명 하셨지만, 이는 한낱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불과 합니다. 그것은 사색의 혼란만 더할 뿐입니다. 

(1136) 그는 번뇌의  암흑을 버리고 혼자 앉아  눈부신 빛을 발산하고 계십니다. 고타마께서는 지혜가 많으신 분이십니다. 고타마께서는 예지에 넘치는 분이십니다. 

(1137) 그 즉시 효과가  있는,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법, 즉 번뇌를 모르는 애착의 소멸에  대하여 저에게 설명했습니다. 그와 견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1138) 바아바린이 말했다.
'핑기야여, 그대는 지혜가 많으신 고타마, 예지에 넘치는 고타마를 떠나서 살 수 있겠는가? 

(1139) 그 즉시 효과가  있는,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법, 즉 번뇌를 모르는 애착의 소멸에 대하여 나에게 설법해 주었다. 그와 견줄 자는 아무도 없다 했는데.' 

(1140) 핑기야가 말했다.
'바라문이여, 저는 지혜가 많으신 고타마, 예지에 넘치는 고타마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1141) 그 즉시 효과가  있는,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법, 즉 번뇌를 모르는 애착의 소멸에  대하여 저에게 설명했습니다. 그와 견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1142) 바라문이여, 저는  게으르지 않고 밤낮으로  마음의 눈으로 그 분을 보고  있습니다. 또 그분에게 경배하면서  밤을 보냅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의 곁을 떠나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143) 저는 신앙과  기쁨과 마음과  생각은 고타마의 가르침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지혜 많으신 분이 어느 쪽으로 가든 그 쪽을 향해 경배 하겠습니다. 

(1144) 저는 이제 늙어서 기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 몸을 끌고 그곳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항상 그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바라문이시여, 저의 마음은 그와 맺어져 있습니다. 

(1145) 저는 진구렁 속에 누워 이 마을 저  마을 떠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거센 물결을  건너신, 때묻지 않은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1146) 이때 존귀하신 부처님께서 나타나시어 말씀 하셨다.
'밧카리, 바드라우다, 아알라비  고타마가 믿음으로 깨달았듯이 그대도 믿음으로 깨닫도록 하라. 핑기야여,  그대는 죽음의 영역에서 피안에 이르게 되리라.' 

(1147) 핑기야가 말했다.
'저는 성자의 말씀을  듣고 더욱 믿음이 두터워  졌습니다. 깨달은 자는 번뇌의 덮개를 열고 마음이  거칠지 않으며, 말씨가 좋은 자 입니다. 

(1148) 신들은 초월 했다는  것(法)을 알고, 이것저것 일체를 알고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의심을 품고 묻는 자들의 질문에 분명히 답을 해 주셨습니다. 

(1149) 아무데도 비할  바 없고, 빼앗기지  않으며,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저는 분명히 도달  할 것을 확신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저는 조금도 의심 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믿고 또 깨달았음을 인정하여 주십시오.' 



     [숫타니파아타]     끝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영성과 영성과학  (0) 2009.09.08
진리는 이러하다  (0) 2009.06.10
금강경  (0) 2009.04.23
Jessica Cox  (0) 2009.04.22
산은 구름을 탓하지 않는다  (0) 2009.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