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금강경

자유지향 2009. 4. 23. 23:10

  금강경

 

般若金剛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원 문 해 설
法會因由分 第一 법회인유분 제일
제1분 법회가 열리게 된 동기
如是我聞하 시오니 一時에 佛이
여시아문                  일시     불

在舍衛國祈樹給孤獨園하사
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으로 俱러시니 爾時에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              구         이시

世尊이 食時라 着衣持鉢하시고 入舍衛大城하사
세존     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

乞食하실세 於其城中에 次第乞已하시고
걸식              어기성중    차제걸이

還至本處하사 飯食訖하시고 收衣鉢하시고 
환지본처           반사흘         수의발

洗足已하시고 敷座而坐하시다.
세족이            부좌이좌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 큰 비구들 천이백오십인과 함께 계시었다. 

그때 세존께서 공양하실 때가 되어,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드시고 사위성에 들어 가시어 걸식하시었다. 그 성중에서

차례대로 걸식하시고 나서 본래의 처소로 돌아오시어

공양을 드셨다.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으시었다.

善現起請分 第二 선현기청분 제이
제2분 선현이 법을 청하다.
時에 長老須菩提가 在大衆中하시다가
시     장로수보리     재대중중

卽從座起하야 偏袒右肩하시며 右膝着地하시고
즉종좌기          편단우견            우슬착지

合掌恭敬하사와 而白佛言하사대 希有世尊이시여
합장공경            이백불언              희유세존 

如來는 善護念 諸菩薩하시며
여래     선호념    제보살 

善付囑諸菩薩하시나니 世尊이시여 善男子
선부촉제보살                 세존         선남자

善女人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이는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應云何住며 云何降伏其心이니이까. 佛言하사대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                   불언  

善哉善哉라 須菩提야 如汝所說하야 如來가
선재선재    수보리         여여소설         여래

善護念 諸菩薩하며 善付囑諸菩薩하나니
선호념     제보살         선부촉제보살

汝今諦聽하라 當爲汝說하리라. 善男子 善女人이
여금제청         당위여설             선남자 선여인

發阿耨多羅 三藐三菩提心한이는 應如是住며
발아뇩다라     삼먁삼보리심             응여시주

如是降伏其心이니라. 唯然이니다.
여시항복기심               유연

世尊이시여 願樂欲聞하나이다.
세존             원요욕문

그 때 장로인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에 옷을 벗어메고, 오른쪽 무릅을 땅에

꿇고 합장하여 공경히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호념하시며 모든 보살들에게 잘 부촉해 주십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는 어떻게 안주하여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착하구나 수보리여! 네 말과 같이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생각하고 보호해 주며 모든 보살들을 잘 축복해 준다.

 

너는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해 말하리라.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는 응당히 이와 같이 머물고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느니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듣고자 하옵니다.

大乘正宗分 第三 대승정종분 제삼
제3분 대승의 바른 종지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諸菩薩摩訶薩이 
불     고수보리             제보살마하살
     
應如是降伏其心이니 所有一切衆生之類인 若卵生과
응여시항복기심             소유일체중생지류         약난생

若胎生과 若濕生과 若化生과 若有色과 若無色과
약태생     약습생       약화생    약유색      약무색 
      
若有想과 若無想과 若非有想非無想을
약유상       약무상      약비유상비무상

我皆令入無餘涅槃하야 而滅度之하리니
아개영입무여열반             이멸도지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하되
여시멸도무량무수무변중생
     
實 無衆生이 得 滅度者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실무중생      득멸도자          하이고     수보리


若菩薩이 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하면

약보살       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卽非菩薩이니라
즉비보살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응당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 받을지니라.

세상에 있는 일체 중생의 무리인 알에서 태어난 것,

태에서 태어난 것, 습기로 태어난 것, 변화로 태어난 것,

형색이 있는 것,형색이 없는 것,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들을 내가 다 무여열반에 들게하고 제도하리니.

이와 같이 한량없고,셀 수 없고, 끝이 없는 중생들을

제도하였지만 실은 제도받은 중생은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이나 인상이나

중생상이나 수자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妙行無住分 第四 묘행무주분 제사
제4분 보살은 조건없이 보사한다.

復次 須菩提야 菩薩은 於法에 應無所住하야  
부차 수보리        보살     어법      응무소주 
     
行於布施니 所謂 不住色하고 布施하며 不住聲香 
행어보시       소위    부주색        보시        부주성향

味觸法하고 布施니라 須菩提야 菩薩은
미촉법         보시         수보리     보살
     
應如是布施하야 不住於相이니 何以故오 若菩薩이  
응여시보시             부주어 상       하이고     약보살 
     
不住相布施하면 其福德이 不可思量이니라 
부주상보시            기복덕      불가사량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東方虛空을 可思量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          가사량부  
     
不也니이다. 世尊하 須菩提야 南西北方 四維上下
불야            세존     수보리      남서북방    사유상 하

虛空을 可思量不아 不也니이다 世尊하 須菩提야  
허공     가사량부     불야            세존      수보리
     
菩薩의無住相布施하난 福德도 亦復如是 하야 
보살    무주상보시            복덕      역부여시 
     
不可思量이니라 須菩提야 菩薩은
불가 사량          수보리       보살 
     
但應如所敎住니라
단응여소교주

또 설명하겠다. 수보리야, 보살은 모든법에 안주하지 말고

보시를 행하라. 이른바 물질에 안주하지 말고 보시를 하라.

소리와 향기와 맛과 감촉과 일체작용에도 안주하지 말고

보시를 하라.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에 안주하지 말지니라.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상에 안주하지 않고 보시를 하면

그 복덕은 가히 생각하여 헤아릴수 없느니라.
如理實見分 第五 여리실견분 제오
제5분 참된 이치를 바로 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身相으로 見如來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        견여래부 
     
不也니이다 世尊이시여 不可以身相으로 得見
불야           세존         불가이신상         득견

如來니 何以故오 如來所說身相은 卽非身相일새니다
여래     하이고      여래소설신상       즉비신상 
      
佛告 須菩提하사대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니
불고    수보리            범소유상      개시허망

若見諸相非相이면 卽見如來니라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수보리여, 너의 생각은 어떠한가?

 

외모를 보는 것으로 여래를 본다 하겠는가?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외모만으로는 여래를 알수 없나이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외모는 곧 외모가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온 누리 온갖 만물이 모두 허망하니 만약 모든 현상이 현상이

 

아닌줄 알면 바로 여래를 보리라.

正信希有分 第六 정신희유분 제육
제6분 바른 믿음은 희유한다.
須菩提白佛言하되 世尊이시여 頗有衆生이
수보리 백불언           세존         파유중생  
      
得聞 如是 言說章句하고 生實信不이까   
득문    여시   언설장구         생실신부 

佛告 須菩提하사대 莫作是說하라
불고    수보리            막작시설
     
如來滅後 後五百歲에 有持戒修福者하야
여래멸후     후오백세       유지계수복자
     
於此章句에 能生信心하야 以此爲實하리니
어차장구       능생신심          이차위실

當知하라 是人은 不於 一佛二佛三四
당지        시인     불어   일불  이불  삼사

五佛에 而種善根이니 已於無量千萬佛所에
오불      이종선근           이어무량천만불소

種諸善根하야 聞是章句하고 乃至一念이라도
종제선근          문시장구          내지일념 

生淨信者니라 須菩提야 如來 悉知悉見하나니
생정신자         수보리      여래   실지실견

是諸衆生이 得如是無量福德이니라
시제중생        득여시무량복덕

何以故오 是諸衆生이 無復我相 人上
하이고    시제중생     무부아상  인상
     
衆生相 壽者相하며 無法相하며 亦無非法相이니 
중생상 수자상         무법상          역무비법상

何以故오 是諸衆生이 若心取相하면 卽爲着我
하이고     시제중생     약심취상           즉위착아 

人 衆生 壽者니 若取法相이라도 卽着我 人
인  중생  수자     약취법상          즉착아  인

衆生 壽者며 何以故오 若取非法相이라도 卽着我
중생 수자      하이고      약취비법상           즉착아
      
人 衆生 壽者일새니라 是故로 不應取法이며
인  중생  수자             시고      불응취법

不應取非法이니라 以是義故로 如來常說하되
불응취비법             이시의고       여래상설
     
汝等比丘 知我說法을 如筏喩者하라하나니
여등비구     지아설법      여벌유자

法常應捨어든 何況非法이리요
법상응사         하황비법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들이 이러한 말씀이나 글귀를 듣고 진실한

 

마음을 내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러한 말을 하지말라. 여래가 열반한 이천오백년

뒤에도 계를 지키고 복을 닦는 이가 있어서 이 글귀에 신심을

내어 이것을 진실하게 여기리라.

마땅히 이 사람은 한 부처나 두 부처, 셋, 넷, 다섯

 

부처님께 선근을 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부처님께  

선근을 심는 가운데 이 글귀를 듣고 한 생각이라도 깨끗한

믿음을 낸 이들이니라.
 
수보리여, 여래께서는 이 모든 중생이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복덕을 얻으리라는 것을 다 알고 있나니라.

왜냐하면, 이 모든 중생이 다시는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이 없으며, 법이라는 생각도 없고, 법 아니라는

생각도 없기 때문이니라. 그 까닭은 이 모든 중생이 만약  

마음에 고집을 내면 곧 나다, 남이다, 중생이다,

오래 산다는 생각에 집착한 것이니. 가령 법이란 생각을

내도 곧 나다, 남이다,중생이다, 오래 산다는 생각에

집착한 것이니 왜 그러느냐 하면 고집을 내더라도 곧 나다,

남이다, 중생이다, 오래 산다는 생각에 집착한 것이 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법에도 집착하지 말고,

법 아닌 것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나니. 그러므로

여래가 항상말씀하시기를 “너희 비구들은 나의 법문을 

뗏목과 같은 비유임을 알라”했느니라. 법도 오히려

버리는데 하물며 법아닌 것이랴! 하였느니라.

無得無說分 第七 무득무설분 제칠
제7분 얻을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得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득
     
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아 如來
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     여래
     
有所說法耶아 須菩提言하되
유소설법야     수보리언
     
如我解 佛所說義컨대 無有定
여아해 불소설의         무유정
     
法을 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며
법     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亦無有定法을 如來可說이니다
역무유정법     여래가설
     
何以故오 如來所說法은 皆不可取며
하이고     여래소설법      개불가취
     
不可說이며 非法이며 非非法이니
불가설         비법         비비법
     
所以者何오 一切賢聖이 皆以無爲法으로
소이자하     일체현성      개이무위법
     
而有差別일새니이다
이유차별    

수보리야, 너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여기는가?   

또 여래가 법을 설함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수보리가 여쭈었다.

 

제가 부처님의 말씀하신 뜻을 알기로는 정(定)한 법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옵고,

역시 정한 법 없는 것을 여래께서 설하셨나이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법은 다 취할 수 없으며, 또 말할 수도

 

없으며,  법도 아니며, 법 아님도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그것은 모든 현성(賢聖)이 다 무위법 가운데 차별이 있는

까닭이옵니다.

依法出生分 第八 의법출생분 제팔
제8분 모든 것은 법으로부터 나온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若人이
수보리     어의운하     약인
     
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 以用
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
     
布施하면 是人의 所得福德이
보시          시인      소득복덕
     
寧爲多不아 須菩提言하되 甚多니이다
영위다부     수보리언         심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是福德이
세존              하이고    시복덕
     
卽非福德性일세 是故로
즉비복덕성         시고
     
如來 說福德多니이다 若復有人이
여래 설복덕다             약부유인
     
於此經中에 受持乃至四句
어차경중     수지내지사구
     
揭等하야 爲他人說하면 其福이
게등          위타인설        기복
     
勝彼하리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승피              하이고    수보리
     
一切諸佛과 及諸佛의 阿耨多羅
일체제불     급제불     아뇩다라
     
三藐三菩提法이 皆從此經出 일새니라
삼먁삼보리법     개종차경출
     
須菩提야 所謂佛法者는 卽非佛法이니라
수보리     소위불법자     즉비불법

수보리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 세계에 칠보를 가득히 쌓아서

보시를 한다면 이 사람의 지은 복덕이 많다고 하겠는가?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다고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복덕은 성품이 있는 복덕이 아니기

때문에 여래께서 복덕이 많다 하셨나이다.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에서 네 글귀로 된 

한 게송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남을 위하여 말해 주면 그

복덕이 저보다 나으리니. 왜냐하면 일체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모두 이경에서

 

나왔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여! 불법이라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니니라.

一相無相分 第九 일상무상분 제구
제9분 하나의 상도 없어야 한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須陁洹이
수보리     어의운하     수다원
     
能作是念하되 我得須陁洹果不아
능직시념         아득수다원과부
     
須菩提가 言하되 不也니이다
수보리     언         불야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須陁洹은
세존              하이고    수다원
     
名爲入流로되   而無所入이라
명위입류           이무소입
     
不入色聲香味觸法일새  是名
불입색성향미촉법           시명
     
須陁洹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
수다원                 수보리     어의
     
云何오 斯陁含이 能作是念하되
운하    사다함      능작시념
     
我得斯陁含果不아 須菩提言하되
아득사다함과부    수보리언
     
不也니이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불 야             세존               하이고
     
斯陁含은 名一往來로되 而實
사다함     명일왕래         이실
     
無往來일새 是名斯陁含이니이다
무왕래         시명사다함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阿那含이
수보리     어의운하    아나함
     
能作是念하되 我得阿那含果不아
능작시념         아득아나함과부
     
須菩提言하되 不也니이다
수보리언         불야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阿那含은
세존              하이고    아나함
     
名爲不來로되 而實無不來일새
명위불래         이실부불래
     
是故로 名阿那含이니이다
시고     명아나함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阿羅漢이
수보리     어의운하     아라한
     
能作是念하되 我得阿羅漢道不아
능작시념         아득아라한도부
     
須菩提言하되 不也니이다
수보리언         불야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實無有法하야
세존              하이고    실무유법
     
名阿羅漢이오니 世尊이시여
명아라한             세존
     
若阿羅漢이 作是念하되 我得阿
약아라한     시작념         아득아
     
羅漢道라하면 卽爲着我 人 衆生
라한도            즉위착아  인 중생

     
壽者일새니이다 世尊이시여
수 자                     세존
     
佛說 我得無諍三昧 人中에
불설 아득무쟁삼매 인중
     
最爲第一이라 是第一離欲阿羅漢이라하시오나
최위제일         시제일이욕아라한
     
世尊이시여 我不作是念 我是 
세존               아불작 시념 아시
     
離欲阿羅漢이니이다 世尊이시여
이욕아라한                  세존
     
我若作是念하되 我得阿羅漢道라하면
아약작시념         아득아라한도
     
世尊이 卽不說須菩提 是樂阿蘭那行者
세존     즉불설수보리 시요아란 나행자
     
라하시련만 以須菩提 實無所行일새
                     이수보리 실무소행
     
而名須菩提 是樂阿蘭那行이니이다
이명수보리 시요아란나행

수보리여, 너의 생각은 어떠한가?

수다원이 능히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수다원의 경지를

 

얻었다 하겠는가?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수다원은 성인 류에 든다는

 

이름이오나 실은 들어간 일이 없사오니 모양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느낌과 법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이름하여

수다원이라 할 뿐이옵니다.

수보리여, 너의 생각은 어떠한가?

사다함이 능히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사다함의 경지를 얻었다 하겠는가?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사다함은 한 번만 윤회한다는 뜻이나,

실은 가고 옴이 없는 까닭에 사다함이라 하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나함이 능히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아나함의 경지를 얻었다 하겠는가?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아나함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이나, 

실은 다시 오지 않음이 없는 까닭에 아나함이라 하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라한이 능히 이런 생각을 가지되,

내가 아라한의 경지를 얻었다 하겠는가?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아무런 법도 없는 것을 아라한이라 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생각하되 내가 아라한의

경지를 얻었다 하면 이는 곧 나다, 남이다, 중생이다,

 

오래 산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제가 번뇌와 다툼을 벗어나

 

삼매를 얻은 사람 가운데에서 제일이라 하셨나이다.

 

이는 욕심을 떠난 아라한 중에 으뜸이라는 말씀이오나,

세존이시여! 저는 내가 욕심을 떠난 아라한이다 하는

 

생각이 없나이다. 제가 만약,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가 아란나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이오니 실은

수보리가 행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수보리에게

 

아란나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이옵니다.

莊嚴淨土分 第十 장엄정토분 제십
제10분 불국토를 장엄하다.
佛告須菩提 하사대 於意云何오
불고 수보리             어의운하
     
如來가 昔在然燈佛所하야 於法에
여래     석재연등불소         어법
     
有所得不아 不也니이다 
유소득부    불야
     
世尊이시여 如來 在然燈佛所하사
세존              여래  재연등불소
     
於法에 實無所得이시니이다
어법     실무소득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菩薩이
수보리     어의운하     보살
     
莊嚴佛土不아 不也니이다
장엄불토부      불야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莊嚴佛土者는
세존              하이고    장엄불토자
     
則非莊嚴일새 是名莊嚴이니이다
즉비장엄         시명장엄
     
是故로 須菩提야 諸菩薩摩
시고     수보리     제보살마
     
訶薩이 應如시 生淸淨心이니
하살     응여    생청정심
     
不應住色生心하며 不應住聲香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
     
味觸法生心이니   應無所住하야
미촉법생심           응무소주
     
而生其心이니라
이생기심
     
須菩提야 譬如有人이 身如須
수보리     비여유인     신여수
     
彌山王하면 於意云何오 是身이
미산왕         어의운하      시신
     
爲大不아 須菩提言하되 甚大니이다
위대부    수보리언          심대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佛說
세존             하이고     불설
     
非身을 是名大身일새니이다
비신     시명대신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옛적에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법을 얻은 바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연등불 처소에서 실로 법을 얻은

것이 없아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한다 하겠는가?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기 때문에 장엄이라 하는 것이옵니다.

수보리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내어야 하느니라.

모양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며, 소리와 향기와 맛과

 

닿음과 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고, 마땅히 아무데도

머무는 데 없이 그 마음을 낼 것이니라.

수보리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의 몸이 수미산만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몸을 크다고 하겠는가?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크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큰 몸은 곧 몸이 아니기에 큰 몸이라 이름하신 것이옵니다.

無爲福勝分 第十一 무위복승분 제십일
제11분 무위복이 으뜸이다.
須菩提야 如恒河中 所有沙數하야
수보리     여항하중소유사수
     
如是沙等恒河를 於意云何오
여시사등항하     어의운하
     
是諸恒河沙가 寧爲多不아
시제항하사     영위다부
     
須菩提言하되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수보리언         심다             세존
     
但諸恒河도 尙多無數어든
단제항하     상다무수
     
何況其沙니이까 須菩提야 我今에
하황기사             수보리     아금
     
實言으로 告汝하노니 若有善
실언         고여             약유선
     
男子善女人이 以七寶로 滿爾所
남자선여인     이칠보      만이소
     
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하야
항하사수삼천대천세계
     
以用布施하면 得福이 多不아
이용보시         득복     다부
     
須菩提言하되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수보리언         심다             세존
     
佛이 告須菩提하사되
불     고수보리
     
若善男子善女人이 於此經中에
약선남자선여인     어차경중

     
乃至受持四句偈等하야 爲他
내지수지사구게등          위타
     
人說하면 而此福德이 勝前福德이니라
인설          이차복덕    승전복덕
     

수보리여, 항하 가운데 있는 모래의 수와 같이 그렇게 많은

 

항하가 있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모든

 

항하의 모래가 많다 하겠는가?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다고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다만 저 한 항하의

 

모래도 셀수 없이 많거늘 하물며 그 여러 항하의 모래오리까?

수보리여, 내가 이제 진실로 너에게 말하리라.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그렇게 많은 저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삼천대천 세계에 칠보를 가득히 채워서 보시한다면,

그 복덕이 얼마나 많겠는가?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에서 네 글귀로 된 한 게송 만이라도

 

받아 지니거나,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준다면 이 복덕이

 

저 칠보로 보시한 복덕보다 더 많으느니라.

尊重正敎分 第十二 존중정교분 제십이
제12분 바른 가르침을 존중하라.
復次須菩提 야   隨說是經하되
부차수보리        수설시경
     
乃至四句偈等하면 當知此處는
내지사구게등         당지차처
     
一切世間天人阿修羅가 皆應供養을
일체세간천인아수라     개응공양
     
如佛塔廟어든 何況有人이
여불탑묘         하황유인
     
盡能受持讀誦이리요
진능수지독송
     
須菩提야 當知하라 是人은 成就
수보리     당지         시인     성취
     
最上 第一希有之法이니 若是
최상 제일희유지법          약시
     
經典所在之處는 卽爲有佛하야
경전소재지처     즉위유불
     
若尊重弟子니라
약존중제자

수보리여, 또 이 경의 네 글귀로 된 한 게송만을 설하더라도

 

일체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가 모두 공양하기를

부처님의 탑과 같이 할 것이거늘, 하물며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전부 수지하며 읽고 외움에 있어서야!

수보리여, 이 사람은 가장 높고 제일 가는 희유한 법을

 

성취할 것이니,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은, 곧 부처님과

 

휼륭한 제자가 계신 곳처럼 존중히 여길 것이니라.

如法受持分 第十三 여법수지분 제십삼
제13분 법과 같이 받아 지니라.

爾時에  須菩提가  白佛言하되
이시      수보리      백불언 
     
世尊이시여 當何名此經이며 我等이 
세존              당하명차경        아등
     
云何奉持리이까 佛告須菩提
운하봉지             불고수보리
     
하사대  是經은  名爲  金剛般若
              시경      명위  금강반야

     
波羅密이니 以是名字로 汝當奉
바라밀       이시명자       여당봉
     
持하라  所以者何오   須菩提야
지          소이자하       수보리 
     
佛說般若波羅密이 則非般若
불설반야바라밀     즉비반야


波羅密이요 是名般若波羅密일
바라밀         시명반야바리밀
     
새니라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수보리      어의운하
     
如來 有所說法不아 須菩提가
여래   유소설법부   수보리
     
白佛言하되  世尊이시여  如來
백불언          세존              여래
     
無所說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
무소설                 수보리     어의

云何오 三千大千世界의 所有
운하      삼천대천세계      소유
     
微塵이 是爲多不아 須菩提言
미진     시위다부     수보리언
     
하되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심다               세존 
     
須菩提야 諸微塵이 如來說非
수보리      제미진    여래설비
     
微塵일새 是名微塵이며 如來說
미진          시명미진        여래설
     
世界도 非世界일새 是名世界니라
세계     비세계         시명세계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三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
     
十二相으로 見如來不아 不也니이다
십이상         견여래부     불야
     
世尊이시여 不可以三十二相으로  
 세존             불가이삼십이상
     
得見如來니    何以故오
 득견여래       하이고
     
如來說 三十二相이 卽是非相
여래설 삼십이상     즉시비상
     
일새 是名三十二相이니이다
         시명삼십이상
     
須菩提야 若有 善男子 善女人이
수보리     약유 선남자 선여인
     
以恒河沙等 身命으로 布施하고 
이항하사등 신명         보시
     
若復有人이   於此經中에
약부유인       어차경중 
     
乃至受持四句偈等하야 爲他人
내지수지사구게등              위타인
     
說이라도 其福이 甚多니라
설             기복     심다

그 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 이름을 무엇이라 하며, 우리들이 어떻게

 

받들어 모시리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이니 이 이름으로

 
너희들이 받들어 지녀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여!

 

여래가 말한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니 

 

이름을 반야바라밀이라 한 것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법을 말씀한 것이 있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법을 말씀하신 것이 없나이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미진을 많다 하겠는가?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나이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여래가 말씀한 모든 미진은 미진이 아니기 

 

때문에 미진이라 하고, 여래가 말씀한 세계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곧 세계라 한 것이니라.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삼십이상의 거룩한 외모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삼십이상의 거룩한 외모로는 여래를 볼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삼십이상은 곧 상이 아니기

 

때문에 삼십이상이라 하는 것이옵니다.

수보리여!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많은 목숨으로 보시했을지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서 네 글귀로 된 한 게송만이라도 받아 지녀서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한다면 그 복이 저 복보다 더 많으리라.

離相寂滅分 第十四 이상적멸분 제십사
제14분 상을 여윈 적멸.

爾時에 須菩提가 聞說是經하고
이시     수보리     문설시경

     
深解義趣하야    涕淚悲泣하며 
심해의취            체루비읍
     
而白佛言하되 希有世尊이시여
이백불언         희유세존 

佛說如是甚深經典은 我從昔來
불설여시심심경전           아종석래

所得慧眼으론 未曾得聞如是之經이니
소득혜안        미증득문여시지경 
     
이다 世尊이시여 若復有人이 得聞是經
         세존             약부유인     득문시경 

하고 信心淸淨하면 卽生實相하리니   
         신심청정          즉생실상          

當知是人은 成就第一希有功德이니이다 
당지시인     성취제일희유공덕

世尊이시여 是實相者는 則是非
세존             시실상자     즉시비

相일새 是故로 如來說名實相이니이다
상      시고        여래설명실상

世尊이시여 我今得聞如是
세존            아금득문여시

經典하고 信解受持는 不足爲難이어니와
경전        신해수지      부족위난

若當來世 後五百歲에
약당내세     후오백세       

其有衆生이 得聞是經하고 信解受持하면
기유중생     득문시경          신해수지 

是人은 卽爲第一希有니이다 何以故오
시인         즉위제일희유         하이고

此人은 無我相하며 無人相하며
차인    무아상           무인상

無衆生相하며 無壽者相이니 所以者何오
무중생상         무수자상         소이자하

我相이   卽是非相이며   人相衆生相
아상       즉시비상           인상중생상

壽者相이 卽是非相이니 何以故오
수자상     즉시비상         하이고

離一切諸相이 則名諸佛일새니이다 
이일체제상      즉명제불

      
佛告須菩提하사되  如是如是니라
불고수보리              여시 여시 


若復有人이 得聞是經하고
약부유인      득문시경

不驚不怖不畏하면 當知하라
불경불포불외         당지 

是人은  甚爲希有니   何以故오
시인         심위희유    하이고

須菩提야 如來說第一波羅密이
수보리     여래설제일바라밀

則非第一波羅密이요 是名第一
즉비제일바라밀         시명제일

波羅密일새니라 須菩提야 忍辱
바라밀                수보리      인욕

波羅密이 如來說非忍辱波羅密일새
바라밀     여래설비인욕바라밀

     
(是名忍辱波羅密이니) 何以故오
시명인욕바라밀            하이고 

須菩提야 如我昔爲歌利王이  
수보리     여아석위가리왕

     
割截身體할새   我於爾時에
할절신체           아어이시

無我相하며 無人相하며 無衆生相하며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無壽者相하니 何以故오
무수자상         하이고

我於往昔節節支解時에  若有
아어왕석절절지해시            약유

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이면
아상  인상 중생상수자상

應生瞋恨일새니라     須菩提야 
응생진한                     수보리

又念過去 於五百世에 作忍辱
우념과거     어오백세        작인욕

仙人하야 於爾所世에 無我想하며  
선인          어이소세    무아상

無人相하며   無衆生相하며
무인상           무중생상

無壽者相하니라 是故로  須菩提야 
무수자상             시고      수보리

菩薩은  應離一切相하고  發
보살        응리일체상        발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不應住色하고 生心하며 不應住
불응주색         생심         불응주

聲香味觸法하고 生心이요 應生
성향미촉법         생심        응생

無所住心이니라  若心有住하면
무소주심              약심유주 

卽爲非住니 是故로 佛說菩薩心은
즉위비주     시고     불설보살심  

不應住色布施라하니라 
  불응주색보시

須菩提야 菩薩이 爲利益一切
수보리     보살     위이익일체

衆生하야 應如是布施니 如來說
중생         응여시보시     여래설 

一切諸相은 卽是非相이며 又說
 일체제상    즉시비상         우설

一切衆生이  則非衆生이니라
 일체중생     즉비중생

須菩提야  如來는  是眞語者며
수보리      여래      시진어자

實語者며 如語者며 不誑語者며
실어자      여어자    불광어자


不異語者니라 須菩提야 如來所
 불이어자        수보리     여래소

得法은 此法이 無實無虛니라
득법     차법     무실무허

須菩提야  若菩薩이  心住於法하야
수보리       약보살     심주어법

而行布施하면 如人이 入闇하야  
이행보시         여인     입암 

卽無所見하며    若菩薩이 
즉무소견            약보살 

心不住法하야   而行布施하면 
 심불주법          이행보시

如人이  有目하야  日光明照에
여인      유목          일광명조

見種種色이니라 須菩提야 當來
견종종색            수보리      당래

之世에 若有 善男子 善女人이
지세     약유 선남자 선여인 

能於此經에 受持讀誦하면 卽爲
능어차경     수지독송         즉위

如來가  以佛智慧로  悉知是人하며  
여래      이불지혜      실지시인

悉見是人하나니  皆得成就
실견시인              개득성취

無量無邊功德이니라
무량무변공덕

그 때에 수보리가 이러한 말씀을 듣고, 깊은 뜻을 깨달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사뢰었다. 희유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심히 깊은 경전을 설하심은 드문 

 

일이옵니다. 제가 옛적부터 수행해 오면서 얻은 지혜의 눈으로

 

일찍이 이 경을 듣지 못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신심이 청정하면

곧 실상을 깨달을 것이니, 이 사람은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이라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참된 모양은 곧 모양이 아니므로 여래께서 참된 모양이라 

 

하셨나이다. 세 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 경을 듣고 그대로 믿어

 

받아 지니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거니와, 만약 장차 

 

이천오백년 후에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듣고, 그대로 믿어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은 곧 제일 희유한 이가 될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이 없는 까닭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생각은 생각이 아니며,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은 곧 생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일체의 모든 모양을 여의는 것을 곧

 

부처라 이름하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거나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이는 참으로 희유한 사람이니라.

 

왜냐하면 여래가 말씀한 제일바라밀은 제일바라밀이 아닌

 

것을 제일바라밀이라 했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여, 욕됨을

 

참는 바라밀도 욕됨을 참는 바라밀이 아닌 것을 욕됨을 참는

 
바라밀이라고 한 것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여! 내가 옛날

 
가리왕에게 신체를 베이고 찢길 적에 나라는 생각도 없었고,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니. 그 것은 내가 그 당시 마디 마디 사지를

 

찢길 적에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마땅히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었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여,

또 지난 예날 오백 년 동안 욕됨을 참는 신선(忍辱仙)이 

 

되었을 적을 생각하면, 그 때도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이 없었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일체상을 여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낼 것이니 모양에 머물러

 

마을 내지 말며, 소리와 향기와 맛과 느낌과 법(法 )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며 마땅히 머무름이 없이  마음을

 

낼 것이니, 설사 마음이 머무는 데가 있어도 곧 머무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부처님이 말하기를 “보살은 마음이

 

모양에 머물러 보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 것이니라.

 

수보리여, 보살이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하나니 여래가 말씀하신 일체의 모든 모양도 곧

 

모양이 아니며, 일체 중생도 곧 중생이 아니니라.

수보리여, 여래는 참된 말만을 하는 이며, 실다운 말만을

 

하는 이며, 진리를 말하는 이며, 속이지 않는 말만을 하는

 

이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이니라.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법은  그 법이 진실하지도 아니하고 허망하지도 않느니라.

수보리여,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러 보시하는 것은 어두운

 

데 있는 사람이 물건을 보지 못하는 것 같고,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것은 눈밝은 사람이 햇빛 아래서 

 

가지가지 모양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여, 이 다음

 

세상에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여래는 부처의 지혜로 다 알아 보느니라.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가이 없는 공덕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니라.

持經功德分 第十五 지경공덕분 제십오
제15분 경을 지니는 공덕.

須菩提야 若有 善男子 善女人이
수보리       약유   선남자  선여인

初日分에 以 恒河沙等身으로
초일분     이 항하사등신

布施하고 中日分에 復以恒河沙
보시         중일분     복이항하사

等身으로   布施하며    後日分에
등신           보시            후일분

亦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야
역이항하사등신         보시

如是無量百千 萬億劫에 以身
여시무량백겁      만억겁      이신

布施라도 若復有人이 聞此經典하고
보시         약부유인     문차경전

信心不逆이면 其福이 勝彼하리니
신심불역        기복      승피

何況書寫受持讀誦하야 爲人解說이리요
하황서사수지독송         위인해설    

須菩提야 

수보리

以要言之컨대  是經은  有不可思議 
이요언지          시경      유불가사의

不可稱量 無邊功德하나니 如來
 불가칭량 무변공덕            여래 

爲發大乘者說이며 爲發最上乘
위발대승자설         위발최상승

者說이니라 若有人이 能受持讀誦하야
자설             약유인     능수지독송 

廣爲人說하면 如來가 悉知是人하며
광위인설         여래     실지시인  

悉見是人하야
실견시인

皆得成就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개득성취불가량 불가칭  무유변

不可思議功德하리니 如是人等은
불가사의공덕             여시인등 

卽爲荷擔 如來가 阿耨多羅
즉위하담  여래    아뇩다라 

三藐三菩提니라 何以故오 須菩提야
삼먁삼보리         하이고     수보리

若樂小法者는 着我見 人見
약요소법자     착아견 인견 

衆生見 壽者見이라 則於此經에
 중생견  수자견       즉어차경

不能聽受讀誦하야 爲人解說이니라
불능청수독송         위인해설

須菩提야 在在處處에 若有
수보리      재재처처    약유


此經하면 一切世間 天人阿修羅의
차경            일체세간천인아수라 

所應供養이니 當知此處는
 소응공양        당지차처

則爲是塔이라 皆應恭敬하며
  즉위시탑       개응공경

作禮圍繞하고 以諸華香으로
작례위요         이제화향

而散其處하니라 
이산기처

수보리여,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항하 모래와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낮에도 다시 항하 모래와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에도 또 항하 모래와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여, 이와 같이 한량없는 백천 만억 겁(劫)을

 

몸으로 보시할지라도, 만약 다른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보고

 

믿는 마음으로 거역하지 아니하면, 그 복덕이 저 복덕 보다

 

나을 것이거늘, 하물며 이 경을 베끼고 수지독송하고,

 

타인을 위하여 일러줌에 있어서랴!

수보리여, 요점을 들어 말하자면, 이 경에는 생각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많은 공덕이 있느니라.

 

여래는 대승의 마음을 낸 이를 위해 이 경을 설하고,

 

가장 높은 마음을 낸 이를 위해서 이 경을 설한 것이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수지독송하고 여러 사람을 위하여

 

들려주면, 여래가 이 사람을 다 아시고 이 사람을 다 보시어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한없고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성취하게 하시리니. 이러한 사람들은 여래의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를 얻게 될 것이니라. 수보리여, 왜냐하면, 만약 

 

작은 법을 좋아하는 이는 나라는 소견, 남이라는 소견, 

 

중생이라는 소견, 오래 산다는 소견에 집착하여, 이 경을

 

능히 알아 듣고 읽고 외운다든지 남을 위해서 해설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여, 어느 곳이든 이 경이 있으면 일체 세간의 하늘·

 

사람·아수라들이 마땅히 공양할 것이니 이 곳은 부처님의

 

탑을 모신 곳이 되므로 모두 공경하여 예배드리며, 그 곳에

 

꽃과 향으로 흩뿌리게 되느니라.

能淨業障分 第十六 능정업장분 제십륙
제16분 업장을 깨끗이 하다.
復次須菩提야 善男子 善女人이
부차 수보리    선남자 선여인

受持讀誦此經하되 若爲人輕賤이면 
수지독송차경         약위인경천
         
是人은 先世罪業으로
시인     선세죄업

應墮惡道언마는 以 今世人이
응타악도             이   금세인

輕賤故로 先世罪業이 則爲消滅하고
경천고     선세죄업     즉위소멸

當得 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당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야 我念過去  無量阿僧
수보리     아념과거  무량아승

祇劫하니  於 然燈佛前에  得値
 지겁        어   연등불전     득치

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하야
  팔백사천만억나유타제불 선세죄업

悉皆供養承事하야 無空過者니라 
실개공양승사         무공과자

若復有人이 於 後末世에 能受持 讀誦此經하면
약부유인      어  후말세       능수지    독송차경

所得功德이 於我所供養諸佛功德으로 百分에
소득공덕       어아소공양제불공덕              백분

不及一이며 千萬億分과 乃至
불급일        천만억분       내지

算數譬喩로 所不能及이니라
산수비유     소불능급

須菩提야 若善男子 善女人이
수보리     약선남자 선여인

於後末世에 有受持讀誦此經하야
어후말세     유수지독송차경

所得功德을   我若具說者면
소득공덕       아약구설자

惑有人聞하고    心則狂亂하야 
혹유인문            심즉광란

狐疑不信하리니 須菩提야 當知하라
호의불신            수보리      당지

是經은 義도 不可思議며
시경     의     불가사의

果報도 亦不可思議니라
과보     역불가사의

또 수보리여,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수지독송함으로써

 

만일 다른 이로부터 천대(賤待)를 받게 되면, 이 사람은 

 

선세(先世)의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 천히 여김으로써 선세의 죄업이 곧 소멸되고,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라. 수보리여,

 

내가 생각해 보니 과거 무량아승지겁에 저 연등불

 

전(前)에서 팔백사천만억 나유타의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고 모두 공양하고 받들어 섬겨서 그냥 지나쳐 본

 

적이 한 번도 없거니와, 만약 어던 사람이 이 다음

 

말법 세상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얻은 공덕에

 

비하면 내가 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는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 분의 일 내지 숫자의 비유로는 도저히

 

미칠 수 없느니라.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후 

 

말세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공덕을 내가 만일 다

 
말하게 되면, 이 말을 듣는 이는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의심하여 믿지 않을 것이니라. 수보리여, 이 경은 그 뜻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고 과보 또한 헤아릴 수 없느니라.

究竟無我分 第十七 구경무아분 제십칠
제17분 구경의 무아를 밝히다.
爾時에    須菩提가   白佛言하되
이시         수보리      백불언

世尊이시여 善男子 善女人이 發
세존              선남자선여인     발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云何 應住며  云何  降伏其心이니까 
운하 응주      운하  항복기심

佛告 須菩提하사대 若 善男子 善女人이
불고 수보리             약선남자   선여인

發 阿耨多羅三藐
발 아뇩다라삼먁

三菩提(心)者는  當生如是心이니
삼보리(심)자      당생여시심

我應滅度 一切衆生하리라하야
아응멸도일체중생

滅度 一切衆生已하야는  而無
멸도 일체중생이              이무

有一衆生도   實滅度者니라
유일중생       실멸도자

何以故오 須菩提야 若菩薩이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이면
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卽非菩薩이니 所以者何오
즉비보살         소이자하

須菩提야 實無有法하야 發阿耨
수보리     실무유법         발아뇩

多羅三藐三菩提(心)者니라
다라삼먁삼보리(심)자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가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於然燈佛所에 有法하야 得阿耨
어연등불소     유법         득아뇩

多羅三藐三菩提不아 不也니이다
다라삼먁삼보리부     불야

世尊이시여 如我解 佛所說義로는
세존             여아해 불소설의

佛於然燈佛所에 無有法하야
불어연등불소     무유법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이다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佛言하사되 如是如是니라   須菩提야  
불 언            여시여시           수보리

實無有法하야     如來得
실무유법             여래득

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 須菩提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若有法하야   如來得 阿耨多
약유법           여래득 아뇩다

羅三藐三菩提者인댄 然燈佛이
라삼먁삼보리자         연등불

則不與我受記하사 汝於來世에
즉불여아수기         여어내세

當得作佛하야 號釋迦牟尼라하리라
당득작불         호석가모니

하시련만  以實無有法하야   得
                  이실무유법           득

阿耨多羅三藐三菩提일새 是故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고

然燈佛이 與我受記하사 作是言하사되
연등불     여아수기       작시언

汝於來世에 當得作佛하야
여어내세     당득작불

號釋迦牟尼라 하리라 하시니라
호석가모니

何以故오 如來者는 卽諸法如義니라 
하이고     여래자     즉제법여의

若有人이   言하되    如來得
약유인       언            여래득

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야   實無有法하야    佛得
수보리       실무유법            불득

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야 如來所得 阿耨多羅
수보리     여래소득 아뇩다라

三藐三菩提는 於是中에 無實無
삼먁삼보리     어시중      무실무

虛니라 是故로 如來說 一切法이
허         시고     여래설 일체법

皆是佛法이니라 須菩提야 所言
개시불법             수보리    소언

一切法者는 卽非一切法일새
일체법자    즉비일체법

是故로 名一切法이니 須菩提야
시고     명일체법         수보리

譬如人身長大니라  須菩提言하되
비여인신장대          수보리언

世尊이시여 如來說人身長大는
세존             여래설인신장대

則爲非大身일새 是名大身이니이다
즉위비대신         시명대신

須菩提야 菩薩도 亦如是하야 
수보리     보살     역여시

若作是言하되   我當滅度
약작시언           아당멸도

無量衆生이라하면 則不名菩薩이니 
무량중생                 즉불명보살

何以故오  須菩提여  實無有法을
하이고      수보리      실무유법

名爲菩薩일새니 是故로 佛說一切法이
명위보살            시고      불설일체법

無我 無人 無衆生 無壽者니라
무아무인 무중생  무수자 

須菩提야 若菩薩이 作是言하되
수보리     약보살     작시언

我當莊嚴佛土라하면 是 不名菩薩이니
아당장엄불토            시 불명보살

何以故오如來說莊嚴佛土者는
하이고    여래설장엄불토자 

卽非莊嚴이요 是名莊嚴일새니라
즉비장엄         시명장엄

須菩提야   若菩薩이
수보리       약보살 

通達無我法者면 如來說名
통달무아법자     여래설명

眞是菩薩이니라
진시보살

이 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이는어떻게 마음을 머무르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하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이는

 

마땅히 “내가 일체 중생을 다 열반에 이르도록 제도하리라"

 

하는 마음을 내어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지만 실은 한

 

중생도 일찍이 제도한 바가 없느니라.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여, 그 까닭은 실로 어떤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이가 없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불 처소에서 어떤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기로는 부처님이 연등불 처소에서 어떤 법이 있어 아뇩다라

삼먁삼보리 법을 얻은 바가 없아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렇다! 수보리여, 진실로 어떤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은 바가 없느니라.” 수보리여,

 

만일 어떤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면, 연등불이 나에게 수기하시기를네가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하지 아니하셨을

 

것인데 실로 어떤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바가없으므로 연등불이 내게 수기하시기를 “네가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 하신

것이니라. 왜냐하면 여래라는 말은 곧

“모든 법이 진리롭다”는 뜻이기 때문이니라. 어떤 사람들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지만 실로 어떤 법이

 

있어서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바가 없느니라.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그 가운데 참도

없고, 허망함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말씀하시기를

 

“일체 법이 다 불법(佛法)이다”고 하는 것이니라.

수보리여, 일체 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체법이 아니기 때문에

일체법이라 하는 것이니라.

수보리여, 비유하여 말하면, 사람의 몸이 크다는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가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사람의 몸이 크다고 하시는 말씀은,

 

큰 몸이 아니기 때문에 큰 몸이라 하신 것이옵니다.

수보리여,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내가 마땅히 한량없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하면, 보살이라 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여, 실로

한 번도 없는 것을 보살이라 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말한 일체 법은 나라는 것도 없고, 남이라는

것도 없고, 중생이라는 것도 없으며, 오래 산다는 것도 없는

 

것을 말하느니라. 수보리여, 만일 보살이 말하기를

“내가 불국토(佛國土)를 장엄하리라”하면 이는 보살이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여래가 말하는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장엄이 아닌 것을

 

장엄이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여, 만일 보살이

 

“내가 없다”는 진리를 아는 이가 있다면 여래가 참으로

 

진실한 보살이라 하느니라.

一體同觀分 第十八 일체동관분 제십팔
제18분 하나의 진여체로 다 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
수 보리        어의운하        여래

有肉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이시여
유혜안부     여시              세존

如來 有肉眼이니이다  須菩提야
여래 유육안                  수보리

於意云何오  如來  有天眼不아
어의운하      여래  유천안부

如是니이다   世尊이시여    如來
여시                세존                 여래

有天眼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
유천안                  수보리       어의

云何오  如來 有慧眼不아   如是
운하      여래 유혜안부       여시

이니이다  世尊이시여  如來有慧眼
                  세존               여래유혜안

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수보리        어의운하

如來 有法眼不아  如是니이다
여래 유법안부      여시

世尊이시여 如來有法眼이니이다
세존              여래유법안

須菩提여 於意云何오  如來 有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유

佛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이시여
불안부     여시             세존

如來有佛眼이니이다   須菩提야
여래유불안                   수보 리

於意云何오 (如)恒河中所有沙를
어의운하      여 항하중소유사

佛說是沙不아  如是니이다
불설시사부      여시

世尊이시여 如來說是沙니이다
세존              여래설시사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一恒
수 보리     어의운하      여일항

河中 所有沙하야 有如是沙等恒
하중 소유사         유여시사등항

河어든    是諸恒河의   所有沙數
하            시제항하       소유사수

佛世界가 如是하면  寧爲多不아
불세계     여시          영위다부

甚多니이다     世尊이시여    佛告
심다                  세존                 불고

須菩提하사대     爾所國土中에
수보리                 이소국토중

所有衆生의 若干種心을  如來
소유중생     약간종심       여래

悉知하나니 何以故오 如來說諸心이
실지              하이고     여래설제심

皆爲非心일새 是名爲心이니
개위비심         시명위심

所以者何오 須菩提야 過去心도
소아자하     수보리     과거심

     
不可得이며 現在心도 不可得이며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未來心도 不可得일새니라
미래심     불가득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육안(肉眼)이 있는가?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육안이 있아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천안(天眼)이 있는가?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천안이 있아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혜안(慧眼)이 있는가?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혜안이 있아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법안(法眼)이 있는가?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법안이 있아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불안(佛眼)이 있는가?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불안이 있아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항하 가운데 있는 저 모래를 여래가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모래이야기를

 

하셨아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항하 가운데 있는 모래 수처럼 그렇게 많은 항하가 있고,

 

이 모든 항하에 있는 모래수 만큼의 불세계가 있다면

참으로 많다 하겠는가?

 

그러하옵니다. 매우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많은 세계 안에 있는 중생들의 여러 가지 마음을

여래는 다 아느니라. 왜냐하면 여래가 말한 모든 마음은 다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라 한 것이니라.

수보리여! 그 까닭은 과거(過去)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現在)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未來)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法界通化分 第十九 법계통화분 제십구
제19분 법계를 교화하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若有人이
수 보리    어의운하      약유인

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    以用
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

布施하면  是人이   以是因緣으로
보시          시인         이시인연

得福多不아  如是니이다 世尊이시여
득복다부      여시             세존

此人이  以是因緣으로 得福이
차인      이시인연         득복

甚多니이다   須菩提야   若福德이
심다                수보리      약복덕

有實인댄  如來 佛說   得福德多
유실           여래 불설  득복덕다

언마는 以福德이  無故로 如來說
             이복덕      무고     여래설

得福德多니라
득복덕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히 쌓아서 보시한다면, 이 사람은 이 인연으로 받는

 

복이 많겠는가?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그는 이 인연으로 받은 복이 매우

 

많겠나이다.

“수보리여, 만일 복덕(福德)이 참으로 있는 것이라면,

 

여래가 복덕이 많다고 말하지 아니하련만, 복덕이 없는 것이

므로 여래가 복덕이 많다고 하는 것이니라.”

離色離相分 第二十 이색이상분 제이십
제20분 몸매와 상을 여의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佛을 可以
수 보리    어의운하     불     가이

具足色身으로 見不아 不也니이다
구족색신         견부     불야

世尊이시여  如來를  不應以具足
세존               여래       불응이구족

色身으로 見이니이다    何以故오
색 신        견                    하이고

如來說具足色身은   卽非具足
여래설구족색신       즉비구족

色身이요 是名 具足色身일새니이다
색신          시명구족색신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를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可以具足諸相으로 見不아 不也니이다
가이구족제상        견부     불야

世尊이시여 如來를 不應以
세존             여래     불응이

具足諸相으로 見이니이다 何以故오
구 족제상        견                 하이고

如來說諸相具足이 卽非具足이요
여래설제상구족     즉비구족

是名諸相具足일새니라
시명제상구족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처를 부처의 거룩하신

 

모습에서 볼 수 있겠는가?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거룩하신 모습에서는 볼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거룩한 모습이란, 거룩한 육신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거룩한 모습이라 한 것이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모든 상을 갖추었다고

 

보겠는가?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모든 상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나이다. 그 까닭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든 상은 모든

 

 

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름하여 모든 상이라 한 것이옵니다.

非說所說分 第二十一 비설소설분 제이십일
제21분 설법 아닌 설법을 하다.
須菩提야    汝勿謂如來作是念하되
수보리        여물위여래작시념

我當有所說法이라하라   莫作是念이니
아당소유설법                   막작시념

何以故오  若人이 言하되
하이고      약인     언

如來有所說法이라하면  卽爲謗佛이니
여래소유설법                  즉위방불

不能解我所說故니라  須菩提야
불능해아소설고          수보리

說法者는 無法可說을
설법자     무법가설

是名說法이니라   爾時에    慧命
시명설법               이시        혜명

須菩提가 白佛言하되 世尊이시여
수보리     백불언         세존

頗有衆生이  於未來世에   聞說
파유중생      어미래세        문설

是法하고 生信心不이까 佛言하사되
시법          생신심부        불언

須菩提야 彼非衆生이며 非不
수보리     피비중생         비불

衆生이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중생            하이고      수보리

衆生衆生者는 如來說非衆生이요 
중생중생자     여래설비중생

是名衆生이니라
시명중생

수보리여, 너는 여래가 “내가 설법한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여래가

설법하신 바가 있다”고 말하면, 이 것은 곧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며, 나의 말하는 뜻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수보리여, 법을 설한다는 것은 법을 설함이 없기 때문에

 

이름하여 법을 설한다 하느니라.

 

그 때에 지혜로운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거나 다음 세상에 이런 법문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수보리여, 저들은 중생이 아니며, 중생도 아님도 아니니

 

왜냐하면, 중생이라 함은 중생이 아니기 때문에 여래가

중생이라 하느니라.

無法可得分 第二十二 무법가득분 제이십이
제22분 법을 얻음이 없다.
須菩提가 白佛言하되 世尊이시여
수 보리    백불언         세존

佛이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불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爲無所得耶이까     佛言하사대
위무소득야             불언

如是如是니라  須菩提야   我於
여시여시          수보리       아어

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乃至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내지

無有少法可得일새 是名 阿耨
무유소법가득        시명  아뇩

多羅三藐三菩提니라
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라를 얻으신 것은

 

얻은 바가 없기 때문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렇다. 수보리여!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해서

 

조그마한 법(法)도 얻은 바가 없으므로 그 이름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하느니라.

淨心行善分 第二十三 정심행선분 제이십삼
제23분 깨끗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라.
復次須菩提 야  是法이  平等하야
부 차수보리     시법       평등

無有高下일새 是名阿耨多羅三
무유고하         시명아뇩다라삼

藐三菩提니 以無我 無人 無衆生
막삼보리     이무아무인   무중생

無壽者로   修一切善法하야
무수자       수일체선법

則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즉득아뇩다라사먁삼보리

須菩提야  所言善法者는  如來說
수보리     소언선법자        여래설

卽非善法일새  是名善法이니라
즉비선법          시명선법

수보리여, 또 이 법은 평등(平等)하여 높고 낮음이 없기

 

때문에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한 것이니

나(我)도 없고, 남(人)도 없고, 중생도 없고, 오래 삶도 없는

 

것으로 일체 착한 법을 닦음으로써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수보리여, 착한 법이라고 하는 것은 착한 법이 아니므로

 

여래가 착한 법이라 한 것이니라.

福智無比分 第二十四 복지무비분 제이십사
제24분 복덕과 지혜가 비교할 수 없다.
須菩提야   若三千大千世界中에
수보리      약삼천대천세계중

所有諸須彌山王의 如是等七寶聚를
소유제수미산왕     여시등칠보취

有人이 持用布施어든  若人이 
유인     지용보시          약인

以此般若波羅密經의   乃至
이차반야바라밀경        내지

四句偈等을 受持讀誦하야 爲他
사구게등    수지독송          위타

人說하면  於前福德으론  百分에
인 설         어전복덕          백분

不及一이며  百千萬億分과 乃至
불급일         백천만억분      내지

算數譬喩로 所不能及이니라
산수비유    소불능급

수보리여, 어떤이가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있는 모든 수미산들

처럼 그렇게 많은 칠보(七寶)의 무더기를 가지고 보시하고,

 

또 다른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경에서 네 글귀로 된 한 게송만

 

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다른 사람들에게 일러 준다면

 

앞에서 말한 칠보로 보시한 복덕으로는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만억분의 일 내지 숫자의 비유로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할 것이니라.

化無所化分 第二十五 화무소화분 제이십오
제25분 교화한 바 없이 교화한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汝等은
수 보리       어의운하       여등

勿謂如來作是念하되  我當度衆生
물위여래작시념          아당도중생

이라하라 須菩提야 莫作是念이니
                 수보리     막작시념

何以故오 實無有衆生하야  如來
하이고    실무유중생           여래

度者니 若有衆生하야 如來度者
도자    약유중생          여래도자

인댄 如來卽有我 人 衆生 壽者
         여래즉유아 인 중생 수자

일새니라 須菩提야 如來說有我者는
                 수보리     여래설유아자

則非有我어늘 而凡夫之人이
즉비유아         이범부지인

以爲有我니 須菩提야 凡夫者는
이위유아     수보리     범부자

如來說卽非凡夫요   是名凡夫니라
여래설즉비범부       시명범부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너희들은 여래가 “내가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하지 말라.

수보리여! 이런 생각을 가지지 말지니 왜냐하면, 진실로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없기 때문이니, 만약 여래께서

제도할 중생이 있다면, 부처님도 곧 나다, 남이다, 중생이다,

 

오래 산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여,

여래가 말한 나라고 하는 것은 곧 나라는 생각이 아니건만,

 

범부들은 나라는 생각을 두느니라. 수보리여,

범부라는 것은 실로 범부가 아닌 것을 이름하여 범부라 한다고

 

여래는 말하느니라.

法身非相分 第二十六 법신비상분 제이십육
제26분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三
수 보리      어의운하        가이삼

十二相으로 觀如來不아  須菩提
십이상         관여래부      수보리

言하되  如是如是니이다    以三十
언          여시여시                이삼십

二相으로 觀如來니이다   佛言하사대
이상          관여래              불언

須菩提야  若以三十二相으로
수보리      약이삽심이상

觀如來者인댄  轉輪聖王도 則是
관여래자         전륜성왕      즉시

如來니라    須菩提   白佛言하되
여래             수보리   백불언

世尊이시여 如我解佛所說義인댄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不應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니이다
불응이삼십이상           관여래

爾時에 世尊이 而說偈言하사대
이시     세존     이설게언

若以色見我나  以音聲求我하면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是人이  行邪道니  不能見如來니라
시인      행사도      불능견여래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능히 서른 두가지의 상호를 가지고 여래를 볼 수 있겠는가?

 

수보리가 사뢰었다.

 

그러하옵니다. 서른 두 가지 상호로 여래를 볼 수 있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 서른 두가지의 상호로 여래를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전륜성왕도 곧 여래라고 할 수 있겠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 뜻을 아옵기로는

 

서른 두가지 상호로는 여래를 볼 수 없나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

“만약 육신의 모습 보고 나라 하거나, 말하는 음성따라

 

여래를 구하면 이들은 삿된 도에 빠져 결코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無斷無滅分 第二十七 무단무멸분 제이십칠
제27분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하되  如來
수보리       여약작시념          여래

不以具足相故로 得阿耨多羅三
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

藐三菩提하라  須菩提야 莫作是
먁삼보리          수보리     막작시

念하라     如來不以具足相故로
념             여래불이구족상고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하되   發
수보리       여약작시념           발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說諸法斷滅가 相莫作是念하라
설제법단멸     상막작시념

何以故오  發  阿耨多羅三藐三
하이고      발  아뇩다라삼먁삼

菩提心者는 於法에 佛說斷滅
보리심자     어법     불설단멸

相이니라

수보리여, 네가 생각하기를 “여래는 거룩한 몸매를

 

갖춤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수보리여, 너는 여래가 거룩한 몸매를 갖추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말 것이니라.

수보리여, 너는 혹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이가

 

“모든 법은 아주 없다”고 말하리라 생각하는냐?

그런 생각을 말 것이니,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이는 법에 대해서 아주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不受不貪分 第二十八 불수불탐분 제이십팔
제28분 받지도 않고 탐내지도 않는다.
須菩提야    若菩薩이   以滿恒河
수보리        약보살       이만항하

沙等世界七寶로  持用布施어던
사등세계칠보      지용보시

若復有人이   知一切法無我하야
약부유인       지일체법무아

得成於忍하면  此菩薩이 勝前菩薩의
득성어인         차보살      승전보살

所得功德이니     何以故오
소득공덕             하이고

須菩提야   以諸菩薩이   不受福
수보리       이제보살       불수복

德故니라   須菩提가   白佛言하되
덕고           수보리       백불언

世尊이시 여 云何菩薩이   不受福
세존              운하 보살      불수복

德이니까   須菩提야  菩薩은  所作
덕               수보리      보살      소작

福德에   不應貪着일새     是故로
복 덕      불응탐착             시고

說不受福德이니라
설불수복덕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세계에

 

칠보를 가득히 채워 보시하여도 다른 사람이 일체법에 내가

 

없다(無我)는 진리를 알아서 위없는 지혜를 성취하면,

 

이 보살이 먼저 보시한 보살의 공덕보다 더 수승하느니라.

수보리여, 왜냐하면 모든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아니하옵니까?

수보리여, 보살들은 짓는 바 복덕에 탐(貪)내어 고집하지

 

아니하므로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니라.

威儀寂靜分 第二十九 위의적정분 제이십구
제29분 여래의 모습은 고요하다.
須菩提야     若有人이      言하되
수 보리        약유인          언

如來  若來若去   若坐若臥라하면
여 래 약래약거   약좌약와

是人은    不解我所說義니
시인         불해아소설의

何以故오  如來者는  無所從來며
하이고      여래자     무소종래

亦無所去일새  故로  名如來니라
역무소거         고       명여래

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가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하면 이 사람은

 

나의 말한 뜻을 알지 못한 것이니 왜냐하면,

여래라는 것은 어디로부터 오는 일도 없고, 가는 데도 없으므로

여래라고 하는 것이니라.

一合理相分 第三十 일합이상분 제삼십
제30분 진리와 현상이 하나로 합하다.
須菩提야    若 善男子  善女人이
수 보리       약 선남자  선여인

以三千大千世界를  碎爲微塵하면
이삼천대천세계      쇄위미진

於意云何오       是微塵衆이
어의운하           시미진중

寧爲多不아 須菩提言하되 甚多니이다
영위다부     수보리언         심다

世尊이시여 何以故오 若是
세존              하이고     약시

微塵衆이 實有者인댄 佛則不說
미진중    실유자         불즉불설

是微塵衆이니 所以者何오 佛說
시미진중        소이자하      불설

微塵衆은 則非微塵衆일새 是名
미진중     즉비미진중         시명

微塵衆이니이다   世尊이시여
미진중                   세존

如來所說    三千大千世界는
여래소설    삼천대천세계

則非世界일새 是名世界니  何以故오
즉비세계        시명세계       하이고

若世界가 實有者인댄  則是
약세계    실유자           즉시

一合相이니    如來說一合相은
일합상            여래설일합상

則非一合相일새   是名一合相이니이다
즉비일합상          시명일합상

須菩提야    一合相者는
수보리        일합상자

則是不可說이어늘  但 凡夫之人이
즉시불가설              단 범부지인

貪着其事니라
탐착기사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먼지를 만든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먼지들을 많다고 하겠는가?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다고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만약 이 먼지들이 참으로 있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곧 이

 

것을 먼지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을 것이옵니다. 그 까닭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먼지들은 곧 먼지가 아니기 때문에

 

먼지라 하는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삼천대천세계도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세계라 한

 

것이옵니다. 왜냐하면, 만약 세계가 참으로 있는 것이라면 이

 

한덩어리의 상(一合相)일 것이오니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한 덩어리의 상은 한 덩어리의 상이 아니기 때문에 한

 

덩어리의 상이라 하신 것이옵니다.

수보리여, 한 덩어리의 상은 한 덩어리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인데 범부들이 거기에 집착하는 것이니라.

知見不生分 第三十一 지견불생분 제삼십일
제31분 일체의 지견을 내지 말라.
須菩提야    若人이   言하되   佛說
수보리        약인       언           불설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하면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是人이
수보리       어의운하        시인

解我所說義不아   不也니이다
해아소설의부       불야

世尊이시여  是人은  不解如來所
세존               시인       불해여래소

說義니   何以故오  世尊 說我見
설의        하이고      세존설아견

人見  衆生見  壽者見은    則非
인견  중생견  수자견         즉비

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이요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是名我見 人見 衆生見 壽者見
시명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이니이다  須菩提야   發阿耨多羅
                  수보리       발아뇩다라

三藐三菩提心者는  於一切法에
삼먁삼보리심자      어일체법

應如是知하며  如是見하며  如是
응여시지          여시견          여시

信解하야 不生法相이니라 須菩提야
신해          불생법상           수보리

所言法相者는   如來說卽非
소언법상자       여래설즉비

法相일새 是名法相이니라
법상          시명법상

수보리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이 나라는 소견, 남이라는 소견, 중생이라는 소견,

 

오래산다는 소견을 말씀하셨다”고 한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람이 나의 말한 뜻을 알았다 하겠는가?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여래께서 설하신 뜻을

 

모르는 것이니, 그 까닭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나란 소견,

 

남이란 소견, 중생이란 소견, 오래 산다는 소견은 곧 나란

 

소견, 남이란 소견, 중생이란 소견, 오래 산다는 소견이

 

아니기 때문에 나란 소견, 남이란 소견, 중생이란 소견,

오래 산다는 소견이라 하는 것이옵니다.

 

수보리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사람은 일체법에

대해 마땅히 이와 같이 알며, 이와 같이 보아, 이와 같이

 

믿고 이해하며 이것이 진리란 생각을 내지 말지니라.

수보리여, 말한 바 생각은 곧 “진리란 생각이 아니기

 

때문에 이름을 진리의 생각이라 한다”고 여래가

말했느니라.

應化非眞分 第三十二 응화비진분 제삼십이
제32분 변화하는 것은 참되지 않다.
須菩提야    若有人이   以滿無量
수보리        약유인       이만무량

阿僧祇世界七寶로  持用布施어든
아승지세계칠보      지용보시

若有  善男子  善女人이  發
약유  선남자  선여인       발

菩薩心者가  持於此經하되  乃至
보살심자      지어차경          내지

四句偈等이라도   受持讀誦하야
사구게등              수지독송

爲人演說하면  其福이  勝彼하리니
위인연설          기복      승피

云何爲人演說고   不取於相하야
운하위인연설       불취어상

如如不動이니     何以故오
여여부동             하이고

一切有爲法은  如夢幻泡影이며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如露亦如電이니  應作如是觀하라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佛說是經已하시니    長老
불설시경이                장로

須菩提와   及諸比丘比丘尼와
수보리       급제비구비구니

優婆塞 優婆夷와    一切世間
우바새 우바이        일체세간

天人阿修羅가     聞佛所說하고
천인아수라         문불소설

皆大歡喜하야 信受奉行하니라
개대환희         신수봉행

수보리여, 어떤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아승지 세계에 가득찬

칠보로 보시하더라도,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보살 마음을 낸

 

이가 있어서 이 경과 이 경의 네 글귀로 된 한 게송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남을 위해 일러주면 그 복이 저 앞의

복보다 뛰어나리라.

어떻게 하는 것이 남을 위해 연설함인가? 일체에 집착하지

아니하여 한결같은 마음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일체의 현상계는 꿈결과 같고, 그림자 꼭두각시

 

물거품이며, 풀끝의 이슬이요 번개 같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니,

장로수보리와 모든 비구·비구니와 우바새·우바이와 일체

 

세간의 하늘·사람과 아수라들이 모두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크게 환희하여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더보기

金剛般若波羅蜜經



  1. 法會因由分

    如是我聞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爾時世尊食時着衣持鉢入舍衛大城乞食於其城中次第乞已還至本處

    飯食訖收衣鉢洗足已敷座而坐


  2. 善現起請分

    時長老須菩提在大衆中卽從座起偏袒右肩右膝着地合掌恭敬而白佛

    言希有世尊如來善護念諸菩薩善付囑諸菩薩世尊善男子善女人發阿

    耨多羅三藐三菩提心應云何住云何降伏其心佛言善哉善哉須菩提如

    汝所說如來善護念諸菩薩善付囑諸菩薩汝今諦請當爲汝說善男子善

    女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應如是住如是降伏其心唯然世尊願樂

    欲聞


  3. 大乘正宗分

    佛告須菩提諸菩薩摩訶薩應如是降伏其心所有一切衆生之類若卵生

    若胎生若濕生若化生若有色若無色若有想若無想若非有想非無想我

    皆令入無餘涅槃而滅度之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實無衆生得滅

    度者何以故須菩提若菩薩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則非菩薩


  4. 妙行無住分

    復次須菩提菩薩於法應無所住行於布施所謂不住色布施不主聲香味

    觸法布施須菩提菩薩應如是布施不住於相何以故若菩薩不住相布施

    其福德不可思量須菩提於意云何東方虛空可思量不不也世尊須菩提

    南西北方四維上下虛空可思量不不也世尊須菩提菩薩無住相布施福

    德亦復如是不可思量須菩提菩薩但應如所敎住


  5. 如理實見分

    須菩提於意云何可以身相見如來不不也世尊不可以身相得見如來何

    以故如來所說身相卽非身相佛告須菩提凡所有相皆是虛妄若見諸相

    非相卽見如來

  6. 正信希有分

    須菩提白佛言世尊頗有衆生得聞如是言說章句生實信不佛告須菩提

    莫作是說如來滅後後五百歲有持戒修福者於此章句能生信心以此爲

    實當知是人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而種善根已於無量千萬佛所種諸

    善根聞是章句乃至一念生淨信者須菩提如來悉知悉見是諸衆生得如

    是無量福德何以故是諸衆生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無法相亦無

    非法相何以故是諸衆生若心取相則爲着我人衆生壽者若取法相則着

    我人衆生壽者何以故若取非法相卽着我人衆生壽者是故不應取法不

    應取非法以是義故如來常說汝等比丘知我說法如筏喩者法尙應捨何

    況非法


  7. 無得無說分

    須菩提於意云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如來有所說法耶須菩

    提言如我解佛所說義無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無有定法如

    來可說何以故如來所說法皆不可取不可說非法非非法所以者何一切

    賢聖皆以無爲法而有差別


  8. 依法出生分

    須菩提於意云何若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以用布施是人所得福德寧

    爲多不須菩提言甚多世尊何以故是福德卽非福德性是故如來說福德

    多若復有人於此經中受持乃至四句偈等爲他人說其福勝彼何以故須

    菩提一切諸佛及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皆從此經出須菩提所謂

    佛法者卽非佛法


  9. 一相無相分

    須菩提於意云何須陀洹能作是念我得須陀洹果不須菩提言不也世尊

    何以故須陀洹名爲入流而無所入不入色聲香味觸法是名須陀洹須菩

    提於意云何斯陀含能作是念我得斯陀含果不須菩提言不也世尊何以

    故斯陀含名一往來而實無往來是名斯陀含須菩提於意云何阿那含能

    作是念我得阿那含果不須菩提言不也世尊何以故阿那含名爲不來而

    實無不來是故名阿那含須菩提於意云何阿羅漢能作是念我得阿羅漢

    道不須菩提言不也世尊何以故實無有法名阿羅漢世尊若阿羅漢作是

    念我得阿羅漢道卽爲着我人衆生壽者世尊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最

    爲第一是第一離欲阿羅漢世尊我不作是念我是離欲阿羅漢世尊我若

    作是念我得阿羅漢道世尊則不說須菩提是樂阿蘭那行者以須菩提實

    無所行而名須菩提是樂阿蘭那行


  10. 莊嚴淨土分

    佛告須菩提於意云何如來昔在燃燈佛所於法有所得不不也世尊如來

    在燃燈佛所於法實無所得須菩提於意云何菩薩莊嚴佛土不不也世尊

    何以故莊嚴佛土者卽非莊嚴是名莊嚴是故須菩提諸菩薩摩訶薩應如

    是生淸淨心不應住色生心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應無所住而生其心

    須菩提譬如有人身如須彌山王於意云何是身爲大不須菩提言甚大世

    尊何以故佛說非身是名大身


  11. 無爲福勝分

    須菩提如恒河中所有沙數如是沙等恒河於意云何是諸恒河沙寧爲多

    不須菩提言甚多世尊但諸恒河尙多無數何況其沙須菩提我今實言告

    汝若有善男子善女人以七寶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以用布施

    得福多不須菩提言甚多世尊佛告須菩提若善男子善女人於此經中乃

    至受持四句偈等爲他人說而此福德勝前福德


  12. 尊重正敎分

    復次須菩提隨說是經乃至四句偈等當知此處一切世間天人阿修羅皆

    應供養如佛塔廟何況有人盡能受持讀誦須菩提當知是人成就最上第

    一希有之法若是經典所在之處則爲有佛若尊重弟子


  13. 如法受持分

    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當何名此經我等云何奉持佛告須菩提是經名

    爲金剛般若波羅蜜以是名字汝當奉持所以者何須菩提佛說般若波羅

    蜜卽非般若波羅蜜是名般若波羅蜜須菩提於意云何如來有所說法不

    須菩提白佛言世尊如來無所說須菩提於意云何三千大千世界所有微

    塵是爲多不須菩提言甚多世尊須菩提諸微塵如來說非微塵是名微塵

    如來說世界非世界是名世界須菩提於意云何可以三十二相見如來不

    不也世尊不可以三十二相得見如來何以故如來說三十二相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須菩提若有善男子善女人以恒河沙等身命布施若復有

    人於此經中乃至受持四句偈等爲他人說其福甚多


  14. 離相寂滅分

    爾時須菩提聞說是經深解義趣涕淚悲泣而白佛言希有世尊佛說如是

    甚深經典我從昔來所得慧眼未曾得聞如是之經世尊若復有人得聞是

    經信心淸淨則生實相當知是人成就第一希有功德世尊是實相者則是

    非相是故如來說名實相世尊我今得聞如是經典信解受持不足爲難若

    當來世後五百歲其有衆生得聞是經信解受持是人則爲第一希有何以

    故此人無我相無人相無衆生相無壽者相所以者何我相卽是非相人相

    衆生相壽者相卽是非相何以故離一切諸相則名諸佛佛告須菩提如是

    如是若復有人得聞是經不驚不怖不畏當知是人甚爲希有何以故須菩

    提如來說第一波羅蜜卽非第一波羅蜜是名第一波羅蜜須菩提忍辱波

    羅蜜如來說非忍辱波羅蜜是名忍辱波羅蜜何以故須菩提如我昔爲歌

    利王割截身體我於爾時無我相無人相無衆生相無壽者相何以故我於

    往昔節節支解時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應生嗔恨須菩提又念過

    去於五百世作忍辱仙人於爾所世無我相無人相無衆生相無壽者相是

    故須菩提菩薩應離一切相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不應住色生心不

    應住聲香味觸法生心應生無所住心若心有住則爲非住是故佛說菩薩

    心不應住色布施須菩提菩薩爲利益一切衆生應如是布施如來說一切

    諸相卽是非相又說一切衆生卽非衆生須菩提如來是眞語者實語者如

    語者不誑語者不異語者須菩提如來所得法此法無實無虛須菩提若菩

    薩心住於法而行布施如人入闇則無所見若菩薩心不住法而行布施如

    人有目日光明照見種種色須菩提當來之世若有善男子善女人能於此

    經受持讀誦則爲如來以佛智慧悉知是人悉見是人皆得成就無量無邊

    功德


  15. 持經功德分

    須菩提若有善男子善女人初日分以恒河沙等身布施中日分復以恒河

    沙等身布施後日分亦以恒河沙等身布施如是無量百千萬億劫以身布

    施若復有人聞此經典信心不逆其福勝彼何況書寫受持讀誦爲人解說

    須菩提以要言之是經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邊功德如來爲發大乘者

    說爲發最上乘者說若有人能受持讀誦廣爲人說如來悉知是人悉見是

    人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無有邊不可思議功德如是人等則爲荷擔如

    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以故須菩提若樂小法者着我見人見衆生見

    壽者見則於此經不能聽受讀誦爲人解說須菩提在在處處若有此經一

    切世間天人阿修羅所應供養當知此處則爲是塔皆應恭敬作禮圍遶以

    諸華香而散其處


  16. 能淨業障分

    復次須菩提善男子善女人受持讀誦此經若爲人輕賤是人先世罪業應

    墮惡道以今世人輕賤故先世罪業則爲消滅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須菩提我念過去無量阿僧祗劫於燃燈佛前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

    諸佛悉皆供養承事無空過者若復有人於後末世能受持讀誦此經所得

    功德於我所供養諸佛功德百分不及一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

    及須菩提若善男子善女人於後末世有受持讀誦此經所得功德我若具

    說者或有人聞心則狂亂狐疑不信須菩提當知是經義不可思議果報亦

    不可思議


  17. 究竟無我分

    爾時須菩提白佛言世尊善男子善女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云何

    應住云何降伏其心佛告須菩提若善男子善女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

    提心者當生如是心我應滅度一切衆生滅度一切衆生已而無有一衆生

    實滅度者何以故須菩提若菩薩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則非菩薩所

    以者何須菩提實無有法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須菩提於意云何

    如來於燃燈佛所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不也世尊如我解佛所

    說義佛於燃燈佛所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佛言如是如是須菩

    提實無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須菩提若有法如來得阿耨多

    羅三藐三菩提者燃燈佛則不與我授記汝於來世當得作佛號釋迦牟尼

    以實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故燃燈佛與我授記作是言汝於

    來世當得作佛號釋迦牟尼何以故如來者卽諸法如義若有人言如來得

    阿耨多羅三藐三菩提須菩提實無有法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須菩

    提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於是中無實無虛是故如來說一切法

    皆是佛法須菩提所言一切法者卽非一切法是故名一切法須菩提譬如

    人身長大須菩提言世尊如來說人身長大卽爲非大身是名大身須菩提

    菩薩亦如是若作是言我當滅度無量衆生則不名菩薩何以故須菩提實

    無有法名爲菩薩是故佛說一切法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須菩提若菩

    薩作是言我當莊嚴佛土是不名菩薩何以故如來說莊嚴佛土者卽非莊

    嚴是名莊嚴須菩提若菩薩通達無我法者如來說名眞是菩薩


  18. 一切同觀分

    須菩提於意云何如來有肉眼不如是世尊如來有肉眼須菩提於意云何

    如來有天眼不如是世尊如來有天眼須菩提於意云何如來有慧眼不如

    是世尊如來有慧眼須菩提於意云何如來有法眼不如是世尊如來有法

    眼須菩提於意云何如來有佛眼不如是世尊如來有佛眼須菩提於意云

    何如恒河中所有沙佛說是沙不如是世尊如來說是沙須菩提於意云何

    如一恒河中所有沙有如是沙等恒河是諸恒河所有沙數佛世界如是寧

    爲多不甚多世尊佛告須菩提爾所國土中所有衆生若干種心如來悉知

    何以故如來說諸心皆爲非心是名爲心所以者何須菩提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未來心不可得


  19. 法界通化分

    須菩提於意云何若有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以用布施是人以是因緣

    得福多不如是世尊此人以是因緣得福甚多須菩提若福德有實如來不

    說得福德多以福德無故如來說得福德多


  20. 離色離相分

    須菩提於意云何佛可以具足色身見不不也世尊如來不應以具足色身

    見何以故如來說具足色身卽非具足色身是名具足色身須菩提於意云

    何如來可以具足諸相見不不也世尊如來不應以具足諸相見何以故如

    來說諸相具足卽非具足是名諸相具足



  21. 非說所說分

    須菩提汝勿謂如來作是念我當有所說法莫作是念何以故若人言如來

    有所說法則爲謗佛不能解我所說故須菩提說法者無法可說是名說法

    爾時慧命須菩提白佛言世尊頗有衆生於未來世聞說是法生信心不佛

    言須菩提彼非衆生非不衆生何以故須菩提衆生衆生者如來說非衆生

    是名衆生


  22. 無法可得分

    須菩提白佛言世尊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爲無所得耶佛言如是如

    是須菩提我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乃至無有少法可得是名阿耨多羅

    三藐三菩提


  23. 淨心行善分

    復次須菩提是法平等無有高下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無我無人

    無衆生無壽者修一切善法則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須菩提所言善法

    者如來說卽非善法是名善法


  24. 福智無比分

    須菩提若三千大千世界中所有諸須彌山王如是等七寶聚有人持用布

    施若人以此般若波羅蜜經乃至四句偈等受持讀誦爲他人說於前福德

    百分不及一百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25. 化無所化分

    須菩提於意云何汝等勿謂如來作是念我當度衆生須菩提莫作是念何

    以故實無有衆生如來度者若有衆生如來度者如來則有我人衆生壽者

    須菩提如來說有我者卽非有我而凡夫之人以爲有我須菩提凡夫者如

    來說卽非凡夫是名凡夫


  26. 法身非相分

    須菩提於意云何可以三十二相觀如來不須菩提言如是如是以三十二

    相觀如來佛言須菩提若以三十二相觀如來者轉輪聖王則時如來須菩

    提白佛言世尊如我解佛所說義不應以三十二相觀如來爾時世尊而說

    偈言若以色見我以音聲求我是人行邪道不能見如來

  27. 無斷無滅分

    須菩提汝若作是念如來不以具足相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須菩提

    莫作是念如來不以具足相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須菩提汝若作是

    念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說諸法斷滅莫作是念何以故發阿耨多

    羅三藐三菩提心者於法不說斷滅相


  28. 不受不貪分

    須菩提若菩薩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持用布施若復有人知一切法無

    我得成於忍此菩薩勝前菩薩所得功德何以故須菩提以諸菩薩不受福

    德故須菩提白佛言世尊云何菩薩不受福德須菩提菩薩所作福德不應

    貪着是故說不受福德


  29. 威儀寂靜分

    須菩提若有人言如來若來若去若坐若臥是人不解我所說義何以故如

    來者無所從來亦無所去故名如來


  30. 一合理相分

    須菩提若善男子善女人以三千大千世界碎爲微塵於意云何是微塵衆

    寧爲多不須菩提言甚多世尊何以故若是微塵衆實有者佛則不說是微

    塵衆所以者何佛說微塵衆卽非微塵衆是名微塵衆世尊如來所說三千

    大千世界卽非世界是名世界何以故若世界實有者則是一合相如來說

    一合相卽非一合相是名一合相須菩提一合相者則是不可說但凡夫之

    人貪着其事


  31. 知見不生分

    須菩提若人言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須菩提於意云何是人解我

    所說義不不也世尊是人不解如來所說義何以故世尊說我見人見衆生

    見壽者見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須

    菩提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於一切法應如是知如是見如是信解

    不生法相須菩提所言法相者如來說卽非法相是名法相


  32. 應化非眞分

    須菩提若有人以滿無量阿僧祗世界七寶持用布施若有善男子善女人

    發菩薩心者持於此經乃至四句偈等受持讀誦爲人演說其福勝彼云何

    爲人演說不取於相如如不動何以故一切有爲法如夢幻泡影如露亦如

    電應作如是觀佛說是經已長老須菩提及諸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尼

    一切世間天人阿修羅聞佛所說皆大歡喜信受奉行


- 金剛般若波羅蜜經 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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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1. 法會因由分
  2. 법회인유분

    如是我聞 一時佛 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
    여시아문 일시불 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

    俱爾時 世尊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於其城中 次第乞已
    구이시 세존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 걸식어기성중 차제걸이

    還至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환지본처 반사흘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3. 善現起請分
  4. 선현기청분

    時長老須菩提 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着地 合掌恭敬
    시장로수보리 제대중중 즉종좌기 판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

    而白佛言 希有世尊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世尊善男子
    이백불언 회유세존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세존선남자

    善女人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佛言
    선녀인 발아뇩다라삼뱍삼보리심 응운하주 응하항복기심 불언

    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선재선재 수보리 영영소설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汝今諦請 當爲汝說 善男子 善女人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
    여금제청 당위여설 선남자 선녀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唯然世尊 願樂欲聞
    응여시주 여시항복기심 유연세존 원요욕문

  5. 大乘正宗分
  6. 대승정종분

    佛告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降伏其心 所有一切衆生之類
    불고수보리 제보살마하살 응여시항복기심 소유일체중생지류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 若有色 若無色 若有想 若無想
    약란생 약태생 약습생 약화생 약유색 약무색 약유상 약무상

    若非有想 非無想 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 如是滅度
    약비유상 비무상 아개영입무여열반 이멸도지 여시멸도

    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 得滅度者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무량무수무변중생 실무중생 득멸도자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則非菩薩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즉비보살

  7. 妙行無住分
  8. 묘행무주분

    復次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不住色布施
    부차수보리 보살 어법 응무소주 행어보시 소위부주색보시

    不主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부주성향미촉법보시 수보리 보살 응여시보시 부주어상 하이고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須菩提 於意云何 東方虛空
    약보살 부주상보시 기복덕 불가사량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

    可思量不 不也 世尊 須菩提 南西北方 四維上下虛空 可思量不
    가사랑부 불야 세존 수보리 남서북방 사유상하허공 가사량부

    不也 世尊 須菩提 菩薩 無住相布施福德 亦復如是 不可思量
    불야 세존 수보리 보살 무주상보시복덕 역부여시 불가사량

    須菩提 菩薩 但應如所敎住
    수보리 보살 단응여소교주

  9. 如理實見分
  10. 여리실견분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身相 見如來不 不也 世尊 不可以身相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 견여래부 불야 세존 불가이신상

    得見如來 何以故 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 佛告須菩提 凡所有相
    득견여래 하이고 여래소설신상 즉비신상 불고수보리 범소유상

    皆是虛妄 若見諸相 非相 則見如來
    개시허망 약견제상 비상 즉견여래

  11. 正信希有分
  12. 정신희유분

    須菩提 白佛言 世尊 頗有衆生 得聞如是言說章句 生實信不
    수보리 백불언 세존 파유중생 득문여시언설장구 생실신부

    佛告須菩提 莫作是說 如來滅後 後五百歲 有持戒修福者
    불고수보리 막작시설 여래멸후 후오백세 유지계수복자

    於此章句 能生信心 以此爲實 當知是人 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
    어차장구 능생신심 이차위실 당지시인 불어일불이불삼사오불

    而種善根 已於無量千萬佛所 種諸善根 聞是章句 乃至一念
    이종선근 이어무량천만불소 종제선근 문시장구 내지일념

    生淨信者 須菩提 如來 悉知悉見 是諸衆生 得如是無量福德
    생정신자 수보리 여래 실지실견 시제중생 득여시무량복덕

    何以故 是諸衆生 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無法相 亦無非法相
    하이고 시제중생 무부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무법상 역무비법상

    何以故 是諸衆生 若心取相 卽爲着我人衆生壽者 若取法相
    하이고 시제중생 약심취상 즉위착아인중생수자 약취법상

    卽着我人衆生壽者 何以故 若取非法相 卽着我人衆生壽者 是故
    즉착아인중생수자 하이고 약취비법상 즉착아인중생수자 시고

    不應取法 不應取非法 以是義故 如來常說 汝等比丘 知我說法
    불응취법 불응취비법 이시의고 여래상설 여등비구 지아설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여벌유자 법상응사 하황비법

  13. 無得無設分
  14. 무득부설분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耶 如來有所說法耶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득야뇩다라삼먁삼보리야 여래유소설법야

    須菩提言 如我解佛所說義 無有定法名阿뇩多羅三먁三菩提 亦無有定法
    수보리언 여아해불소설의 무유정법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역무유정법

    如來可說 何以故 如來所說法 皆不可取 不可說 非法 非非法 所以者
    여래가설 하이고 여래소설법 개불가취 불가설 비법 비비법 소이자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

  15. 依法出生分
  16. 의법출생분

    須菩提 於意云何 若人 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
    수보리 어의운하 약인 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시인

    所得福德 寧爲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何以故 是福德 卽非福德性
    소득복덕 영위다부 수보리언 심다 세존 하이고 시복덕 즉비복덕성

    是故 如來說福多 若復有人 於此經中 受持乃至四句偈等 爲他人說
    시고 여래설복다 약부유인 어차경중 수지내지사구게등 위타인설

    其福勝彼 何以故 須菩提 一切諸佛 及諸佛阿뇩多羅三먁三菩提法
    기복승피 하이고 수보리 일체제불 급제불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

    皆從此經出 須菩提 所謂佛法者 卽非佛法
    개종차경출 수보리 소위불법자 즉비불법

  17. 一相無相分
  18. 일상무상분

    須菩提 於意云何 須陀洹 能作是念 我得須陀洹果不 須菩提言 不也
    수보리 어의운하 수다원 능작시념 아득수다원과부 수보리언 불야

    世尊 何以故 須陀洹 名爲入流 而無所入 不入色聲香味觸法 是名須陀洹
    세존 하이고 수다원 명위입류 이무소입 불입색성향미촉법 시명수다원

    須菩提 於意云何 斯陀含 能作是念 我得斯陀含果不 須菩提言 不也
    수보리 어의운하 사다함 능작시념 아득사다함과부 수보리언 불야

    世尊 何以故 斯陀含 名一往來 而實無往來 是名斯陀含 須菩提
    세존 하이고 사다함 명일왕래 이실무왕래 시명사다함 수보리

    於意云何 阿那含 能作是念 我得阿那含果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어의운하 아나함 능작시념 아득아나함과부 수보리언 불야 세존

    何以故 阿那含 名爲不來 而實無不來 是故 名阿那含 須菩提 於意云何
    하이고 아나함 명위불래 이실무불래 시고 명아나함 수보리 어의운하

    阿羅漢 能作是念 我得阿羅漢道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아라한 능작시념 아득아라한도부 수보리언 불야 세존 하이고

    實無有法 名阿羅漢 世尊 若阿羅漢 作是念 我得阿羅漢道
    실무유법 명아라한 세존 약아라한 작시념 아득아라한도

    卽爲着我人衆生壽者 世尊 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 最爲第一
    즉위착아인중생수자 세존 불설아득무쟁삼매인중 최위제일

    是第一離欲阿羅漢 世尊 我不作是念 我是離欲阿羅漢 世尊 我若作是念
    시제일이욕아라한 세존 아부작시념 아시이욕아라한 세존 아약작시념

    我得阿羅漢道 世尊 卽不說須菩提 是樂阿蘭那行者 以須菩提 實無所行
    아득아라한도 세존 즉불설수보리 시요아란나행자 이수보리 실무소행

    而名須菩提 是樂阿蘭那行
    이명수보리 시요아란나행

  19. 莊嚴淨土分
  20. 장엄정토분

    佛告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昔在燃燈佛所 於法 有所得不 不也
    불고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석재연등불소 어법 유소득부 불야

    世尊 如來在燃燈佛所 於法 實無所得 須菩提 於意云何 菩薩
    세존 여래재연등불소 어법 실무소득 수보리 어의운하 보살

    莊嚴佛土不 不也 世尊 何以故 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
    장엄불토부 불야 세존 하이고 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

    是故 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生淸淨心 不應住色生心
    시고 수보리 세보살마하살 응여시생청정심 불응주색생심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須菩提 譬如有人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수보리 비여유인

    身如須彌山王 於意云何 是身 爲大不 須菩提言 甚大 世尊 何以故
    신여수미산왕 어의운하 시신 위대부 수보리언 심대 세존 하이고

    佛說非身 是名大身
    불설비신 시명대신

  21. 無爲福勝分
  22. 무위복승분

    須菩提 如恒河中 所有沙數 如是沙等恒河 於意云何 是諸恒河沙
    수보리 여항하중 소유사수 여시사등향하 어의운하 시제항하사

    寧爲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但諸恒河 尙多無數 何況其沙 須菩提
    영위다부 수보리언 심다 세존 단제항하 상다무수 하황기사 수보리

    我今 實言告汝 若有善男子善女人 以七寶 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
    아금 실언고여 약유선남자선여인 이칠보 만이소항하사수삼천대천세계

    以用布施 得福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佛告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이용보시 득복다부 수보리언 심다 세존 불고수보리 약선남자선여인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而此福德 勝前福德
    어차경중 내지수지사구게등 위타인설 이차복덕 승전복덕

  23. 尊重正敎分
  24. 존중정교분

    復次 須菩提 隨說是經 乃至四句偈等 當知此處 一切世間天人阿修羅
    부차 수보리 수설시경 내지사구게등 당지차처 일체세간천인아수라

    皆應供養 如佛塔廟 何況有人 盡能受持讀誦 須菩提 當知是人
    개응공양 여불탑묘 하황유인 진능수지독송 수보리 당지시인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 若是經典 所在之處 則爲有佛 若尊重弟子
    성취최상제일회유지법 약시경전 소재지처 즉위유불 약존중제자

  25. 如法受持分
  26. 여법수지분

    爾時 須菩提 白佛言 世尊 當何名此經 我等 云何奉持 佛告須菩提
    이시 수보리 백불언 세존 당하명차경 아등 운하봉지 불고수보리

    是經 名爲金剛般若波羅蜜 以是名字 汝當奉持 所以者何 須菩提
    시경 명위금강반야바라밀 이시명자 여당봉지 소이자하 수보리

    佛說般若波羅蜜 卽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 須菩提 於意云何
    불설반야바라밀 즉비반야바라밀 시명반야바라밀 수보리 어의운하

    如來 有所說法不 須菩提 白佛言 世尊 如來無所說 須菩提 於意云何
    여래 유소설법부 수보리 백불언 세존 여래무소설 수보리 어의운하

    三千大千世界 所有微塵 是爲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須菩提 諸微塵
    삼천대천세계 소유미진 시위다부 수보리언 심다 세존 수보리 제미진

    如來說非微塵 是名微塵 如來說世界 非世界 是名世界 須菩提 於意云何
    여래설비미진 시명미진 여래설세계 비세계 시명세계 수보리 어의운하

    可以三十二相 見如來不 不也 世尊 不可以三十二相 得見如來 何以故
    가이삼십이상 견여래부 불야 세존 불가이삼십이상 득견여래 하이고

    如來說三十二相 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여래설삼십이상 즉시비상 시명삼십이상 수보리 약유선남자선여인

    以恒河沙等身命 布施 若復有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이항하사등신명 보시 약부유인 어차경중 내지수지사구게등

    爲他人說 其福 甚多
    위타인설 기복 심다

  27. 離相寂滅分
  28. 이상적멸분

    爾時 須菩提 聞說是經 深解義趣 涕淚悲泣 而白佛言 希有世尊
    이시 수보리 문설시경 심해의취 체루비읍 이백불언 희유세존

    佛說如是甚深經典 我從昔來 所得慧眼 未曾得聞如是之經 世尊
    불설여시심심경전 이종석래 소득혜안 미증득문여시지경 세존

    若復有人 得聞是經 信心淸淨 則生實相 當知是人 成就第一希有功德
    약부유인 득문시경 신심청정 즉생실상 당지시인 성취제일희유공덕

    世尊 是實相者 卽是非相 是故 如來說名實相 世尊 我今 得聞如是經典
    세존 시실상자 즉시비상 시고 여래설명실상 세존 아금 득문여시경전

    信解受持 不足爲難 若當來世後五百歲 其有衆生 得聞是經 信解受持
    신해수지 부족위난 약당내세후오백세 기유중생 득문시경 신해수지

    是人 卽爲第一希有 何以故 此人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시인 즉위제일희유 하이고 차인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無所以者何 我相 卽是非相 人相衆生相 壽者相 卽是非相 何以故
    무소이자하 아상 즉시비상 인상중생상 수자상 즉시비상 하이고

    離一切諸相
    이일체제상

    卽名諸佛 佛告須菩提 如是如是 若復有人 得聞是經 不驚不怖不畏
    즉명제불 불고수보리 여시여시 약부유인 득문시경 불경불포불외

    當知是人 甚爲希有 何以故 須菩提 如來說第一波羅蜜 卽非第一波羅蜜
    당자시인 심위희유 하이고 수보리 여래설제일바라밀 즉비제일바라밀

    是名第一波羅蜜 須菩提 忍辱波羅蜜 如來說非忍辱波羅蜜
    시명제일바라밀 수보리 인욕바라밀 여래설비인욕바라밀

    是名忍辱波羅蜜 何以故 須菩提 如我昔爲歌利王 割截身體 我於爾時
    시명인욕바라밀 하이고 수보리 여아석위가리왕 할절신체 아어이시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何以故 我於往昔節節支解時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하이고 아어왕석절절지해시

    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應生嗔恨 須菩提 又念過去於五百世
    약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응생진한 수보리 유념과거어오백세

    作忍辱仙人 於爾所世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是故 須菩提
    작인욕선인 어이소세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시고 수보리

    菩薩 應離一切相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 不應住色 生心
    보살 응리일체상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불응주색 생심

    不應住聲香味觸法 生心 應生無所住心 若心有住 卽爲非住 是故
    불응주성향미촉법 생심 응생무소주심 약심유주 즉위비주 시고

    佛說菩薩心 不應住色布施 須菩提 菩薩 爲利益一切衆生 應如是布施
    불설보살심 불응주색보시 수보리 보살 위이익일체중생 응여시보시

    如來說一切諸相 卽是非相 又說一切衆生 卽非衆生 須菩提 如來
    여래설일체제상 즉시비상 우설일체중생 즉비중생 수보리 여래

    是眞語者 實語者 如語者 不狂語者 不異語者 須菩提 如來所得法
    시진어자 실어자 여어자 불광어자 불이어자 수보리 여래소득법

    此法 無實無虛 須菩提 若菩薩 心住於法 而行布施 如人入闇 卽無所見
    차법 무실무허 수보리 약보살 심주어법 이행보시 여인입암 즉무소견

    若菩薩 心不住法 而行布施 如人有目 日光明照 見種種色 須菩提
    약보살 심부주법 이행보시 여인유목 일광명조 견종종색 수보리

    當來之世 若有善男子善女人 能於此經 受持讀誦 卽爲如來以佛智慧
    당래지세 약유선남자선녀인 능어차경 수지독송 즉위여래이불지혜

    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 無量無邊功德
    실지시인 실견시인 개득성취 무량무변공덕

  29. 持經功德分
  30. 지경공덕분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初日分 以恒河沙等身 布施 中日分
    수보리 약유선남자선녀인초일분 이항하사등신 보시 중일분

    復以恒河沙等身布施後日分
    부이항하사등신보시후일분

    亦以恒河沙等身 布施 如是無量百千萬億劫 以身布施 若復有人
    역이항하사등신 보시 여시무량백천만억겁 이신보시 약부유인

    聞此經典 信心不逆 其福勝彼 何況書寫受持讀誦 爲人解說 須菩提
    문차경전 신심불역 기복승피 하황서사수지독송 위인해설 수보리

    以要言之 是經 有不可思議 不可稱量無邊功德 如來爲發大乘者說
    이요언지 시경 유불가사의 불가칭량무변공덕 여래위발대승자설

    爲發最上乘者說 若有人 能受持讀誦 廣爲人說 如來 悉知是人
    위발최상승자설 약유인 능수지독송 광위인설 여래 실지시인

    悉見是人 皆得成就不可量 不可稱無有邊 不可思議功德 如是人等
    실견시인 개득성취불가량 불가칭무유변 불가사의공덕 여시인등

    卽爲荷擔如來阿뇩多羅三먁三菩提 何以故 須菩提 若樂小法者
    즉위하담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 하이고 수보리 약요소법자

    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卽於此經 不能聽受持讀誦 爲人解說 須菩提
    착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즉어차경 불능청수지독송 위인해설 수보리

    在在處處 若有此經 一切世間天人阿修羅 所應供養 當知此處
    재재처처 약유차경 일체세간천인아수라 소응공양 당지차처

    卽爲是塔 皆應恭敬 作禮圍繞 以諸華香 而散其處
    즉위시탑 개응공경 작례위요 이제화향 이산기처

  31. 能淨業障分
  32. 능정업장분

    復次 須菩提 善男子善女人 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 先世罪業
    부차 수보리 선남자선녀인 수지독송차경 약위인경천 시인 선세죄업

    應墮惡道 以今世人 輕賤故 先世罪業 卽爲消滅 當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응타악도 이금세인 경천고 선세죄업 즉위소멸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 我念過去無量阿僧祗劫 於燃燈佛前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
    수보리 아념과거무량아승지겁 어연등불전 득치팔백사천만억나유타제불

    悉皆供養承事 無空過者 若復有人 於後末世 能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실개공양승사 무공과자 약부유인 어후말세 능수지독송차경 소득공덕

    於我所供養諸佛功德 百分不及一 千萬億分 乃至算數譬喩 所不能及
    어아소공양제불공덕 백분불급일 천만억분 내지산수비유 소불능급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於後末世 有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我若具說者
    수보리 약선남자선녀인 어후말세 유수지독송차경 소득공덕 아약구설자

    或有人聞 心卽狂亂 狐疑不信 須菩提 當知 是經義 不可思議 果報
    혹유인문 심즉광란 호의불신 수보리 당지 시경의 불가사의 과보

    亦不可思議
    역불가사의

  33. 究竟無我分
  34. 구경무아분

    爾時 須菩提 白佛言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
    이시 수보리 백불언 세존 선남자선녀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 佛告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운하응주 운하항복기심 불고수보리 약선남자선녀인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者 當生如是心 我應滅度一切衆生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당생여시심 아응멸도일체중생

    滅度一切衆生已 而無有一衆生 實滅度者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멸도일체중생이 이무유일중생 실멸도자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所以者何 須菩提 實無有法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즉비보살 소이자하 수보리 실무유법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者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於燃燈佛所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어연등불소

    有法 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不 不也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유법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부 불야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佛於燃燈佛所 無有法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佛言 如是如是 須菩提
    불어연등불소 무유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불언 여시여시 수보리

    實無有法 如來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須菩提 若有法
    실무유법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약유법

    如來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者 燃燈佛 卽不與我授記 汝於來世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연등불 즉불여아수기 여어내세

    當得作佛 號釋迦牟尼 以實無有法 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是故
    당득작불 호석가모니 이실무유법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고

    燃燈佛 與我授記 作是言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釋迦牟尼 何以故
    연등불 여아수기 작시언 여어내세 당득작불 호석가모니 하이고

    如來者 卽諸法如義 若有人言 如來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須菩提
    여래자 즉제법여의 약유인언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實無有法 佛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須菩提 如來所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실무유법 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於是中 無實無虛 是故 如來說一切法 皆是佛法 須菩提 所言一切法者
    어시중 무실무허 시고 여래설일체법 개시불법 수보리 소언일체법자

    卽非一切法 是故 名一切法 須菩提 譬如人身長大 須菩提言 世尊
    즉비일체법 시고 명일체법 수보리 비여인신장대 수보리언 세존

    如來說 人身長大 卽爲非大身 是名大身 須菩提 菩薩 亦如是 若作是言
    여래설 인신장대 즉위비대신 시명디샌 수보리 보살 역여시 약작시언

    我當滅度無量衆生 卽不名菩薩 何以故 須菩提 實無有法 名爲菩薩
    아당멸도무량중생 즉불명보살 하이고 수보리 실무유법 명위보살

    是故 佛說一切法 無我無人無衆生 無壽者 須菩提 若菩薩 作是言
    시고 불설일체법 무아무인무중생 무수자 수보리 약보살 작시언

    我當莊嚴佛土 是不名菩薩 何以故 如來說莊嚴佛土者 卽非莊嚴
    아당장엄불토 시불명보살 하이고 여래설장엄불토자 즉비장엄

    是名莊嚴 須菩提 若菩薩 通達無我法者 如來說名眞是菩薩
    시명장엄 수보리 약보살 통달무아법자 여래설명진시보살

  35. 一切同觀分
  36. 일체동관분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肉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肉眼 須菩提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육안부 여시 세존 여래유윤안 수보리

    於意云何 如來有天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天眼 須菩提 於意云何
    어의운하 여래유천안부 여시 세존 여래유천안 수보리 어의운하

    如來有慧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慧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佛眼不
    여래유혜안부 여시 세존 여래유혜안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법안부

    如是 世尊 如來有佛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佛眼不 如是 世尊
    여시 세존 여래유법안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불안부 여시 세존

    如來有佛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恒河中所有沙 佛說是沙不
    여래유불안 수보리 어의운하 여항하중소유사 불설시사부

    如是 世尊 如來說是沙 須菩提 於意云何 如一恒河中所有沙
    여시 세존 여래설시사 수보리 어의운하 여일항하중소유사

    有如是沙等恒河 是諸恒河 所有沙數 佛世界 如是 寧爲多不 甚多
    유여시사등항하 시제항하 소유사수 불세계 여시 영위다부 심다

    世尊 佛告須菩提 爾所國土中 所有衆生 若干種心 如來悉知 何以故
    세존 불고수보리 이소국토중 소유중생 약간종심 여래실지 하이고

    如來說諸心 皆爲非心 是名爲心 所以者何 須菩提 過去心 不可得
    여래설제심 개위비심 시명위심 소이자하 수보리 과거심 불가득

    現在心 不可得 未來心 不可得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

  37. 法界通化分
  38. 법계통화분

    須菩提 於意云何 若有人 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 以是因緣
    수보리 어의운하 약유인 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시인 이시인연

    得福多不 如是 世尊 此人 以是因緣 得福甚多 須菩提 若福德 有實
    득복다부 여시 세존 차인 이시인연 득복심다 수보리 약복덕 유실

    如來不說得福德多 以福德 無故 如來說得福德多
    여래불설득복덕다 이복덕 무고 여래설득복덕다

  39. 離色離相分
  40. 이색이상분

    須菩提 於意云何 佛 可以具足色身 見不 不也 世尊 如來
    수보리 어의운하 불 가이구족색신 견부 불야 세존 여래

    不應以具足色身 見 何以故 如來說具足色身 卽非具足色身
    불응이구족색신 견 하이고 여래설구족색신 즉비구족색신

    是名具足色身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可以具足諸相 見不 不也
    시명구족색신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가이구족제상 견부 불야

    世尊 如來 不應以具足諸相 見 何以故 如來說諸相具足 卽非具足
    세존 여래 불응이구족제상 견 하이고 여래설제상구족 즉비구족

    是名諸相具足
    시명제상구족

  41. 非說所說分
  42. 비설소설분

    須菩提 汝勿謂如來作是念 我當有所說法 莫作是念 何以故 若人言
    수보리 여물위여래작시념 아당유소설법 막작시념 하이고 약인언

    如來有所說法 則爲謗佛 不能解我所說故 須菩提 說法者 無法可說
    여래유소설법 즉위방불 불능해아소설고 수보리 설법자 무법가설

    是名說法 爾時 慧命須菩提 白佛言 世尊 頗有衆生 於未來世 聞說是法
    시명설법 이시 혜명수보리 백불언 세존 파유중생 어미래세 문설시법

    生信心不 佛言 須菩提 彼非衆生 非不衆生 何以故 須菩提 衆生衆生者
    생신심부 불언 수보리 피비중생 비불중생 하이고 수보리 중생중생자

    如來說非衆生 是名衆生
    여래설비중생 시명중생

  43. 無法可得分
  44. 무법가득분

    須菩提 白佛言 世尊 佛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爲無所得耶 佛言
    수보리 백불언 세존 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위무소득야 불언

    如是如是 須菩提 我於阿뇩多羅三먁三菩提 乃至無有少法可得
    여시여시 수보리 아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 내지무유소법가득

    是名阿뇩多羅三먁三菩提
    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45. 淨心行善分
  46. 정심행선분

    復次 須菩提 是法平等 無有高下 是名阿뇩多羅三먁三菩提
    부차 수보리 시법평등 무유고하 시명아뇩다가삼먁삼보리

    以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 修一切善法 卽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須菩提
    이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 수일체선법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所言善法者 如來說卽非善法 是名善法
    소언선법자 여래설즉비선법 시명선법

  47. 福智無比分
  48. 복지무비분

    須菩提 若三千大千世界中 所有諸須彌山王 如是等七寶聚 有人
    수보리 약삼천대천세계중 소유제수미산왕 여시등칠보취 유인

    持用布施 若人 以此般若波羅蜜經 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他人說
    지용보시 약인 이차반야바라밀경 내지사구게등 수지독송 위타인설

    於前福德 百分 不及一 百千萬億分 乃至算數譬喩 所不能及
    어전복덕 백분 불급일 백천만억분 내지산수비유 소블능급

  49.  化無所化分
  50. 화무소화분

    須菩提 於意云何 汝等 勿謂如來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提 莫作是念
    수보리 어의운하 여등 물위여래작시념 아당도중생 수보리 막작시념

    何以故 實無有衆生 如來度者 若有衆生 如來度者 如來卽有我人衆生壽者
    하이고 실무유중생 여래도자 약유중생 여래도자 여래즉유아인중생수자

    須菩提 如來說 有我者 卽非有我 而凡夫之人 以爲有我 須菩提 凡夫者
    수보리 여래설 유아자 즉비유아 이범부지인 이위유아 수보리 범부자

    如來說卽非凡夫 是名凡夫
    여래설즉비범부 시명범부

  51. 法身非相分
  52. 법신비상분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 觀如來不 須菩提言 如是如是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 관여래부 수보리언 여시여시

    以三十二相 觀如來 佛言 須菩提 若以三十二相 觀如來者 轉輪聖王
    이삼십이상 관여래 불언 수보리 약이삼십이상 관여래자 전륜성왕

    卽是如來 須菩提 白佛言 世尊 如我解佛所設義 不應以三十二相
    즉시여래 수보리 백불언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불응이삼십이상

    觀如來 爾時 世尊 而設揭言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관여래 이시 세존 이설게언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不能見如來
    불능견여래

  53. 無斷無滅分
  54. 무단무멸분

    須菩提 汝若作是念 如來 不以具足相故 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須菩提
    수보리 여약작시념 여래 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莫作是念 如來 不以具足相故 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須菩提 汝若作是念
    막작시념 여래 불이구족상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여약작시념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者 說諸法斷滅 莫作是念 何以故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설제법단멸 막작시념 하이고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者 於法 不說斷滅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법 불설단멸상

  55. 不受不貪分
  56. 불수불탐분

    須菩提 若菩薩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 持用布施 若復有人 知一切法無我
    수보리 약보살 이만항하사등세계칠보 지용보시 약부유인 지일체법무아

    得成於忍 此菩薩 勝前菩薩 所得功德 何以故 須菩提 以諸菩薩
    득성어인 차보살 승전보살 소득공덕 하이고 수보리 이제보살

    不受福德故 須菩提 白佛言 世尊 云何菩薩 不受福德 須菩提 菩薩
    불수복덕고 수보리 백불언 세존 운하보살 불수복덕 수보리 보살

    所作福德 不應貪着 是故 說不受福德
    소작복덕 불응탐착 시고 설불수복덕

  57. 威儀寂靜分
  58. 위의적정분

    須菩提 若有人言 如來若來若去若坐若臥 是人 不解我所說義
    수보리 약유인언 여래약래약거약좌약와 시인 불해아소설의

    何以故 如來者 無所從來 亦無所去 故名如來
    하이고 여래자 무소종래 역무소거 고명여래

  59. 一合理相分
  60. 일합이상분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以三千大千世界 碎爲微塵 於意云何 是微塵衆
    수보리 약선남자선녀인 이삼천대천세계 쇄위미진 어의운하 시미진중

    寧爲多不 須菩提言 甚多 世尊 何以故 若是微塵衆 實有者 佛 卽不說
    영위다부 수보리언 심다 세존 하이고 약시미진중 실유자 불 즉불설

    是微塵衆 所以者何 佛說微塵衆 卽非微塵衆 是名微塵衆 世尊 如來所說
    시미진중 소이자하 불설미진중 즉비미진중 시명미진중 세존 여래소설

    三千大千世界 卽非世界 是名世界 何以故 若世界 實有者 卽是一合相
    삼천대천세계 즉비세계 시명세계 하이고 약세계 실유자 즉시일합상

    如來說 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須菩提 一合相者 卽是不可說
    여래설 일합상 즉비일합상 시명일합상 수보리 일합상자 즉시불가설

    但凡夫之人 貪着其事
    단범부지인 탐착기사

  61. 知見不生分
  62. 지견불생분

    須菩提 若人言 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須菩提 於意云何 是人
    수보리 약인언 불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수보리 어의운하 시인

    解我所說義不 不也 世尊 是人 不解如來所說義 何以故 世尊
    해아소설의부 불야 세존 시인 불해여래소설의 하이고 세존

    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즉비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須菩提 發阿뇩多羅三먁三菩提心者
    시명앙견인견중생견수자견 수보리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於一切法 應如是知 如是見 如是信解 不生法相 須菩提 所言法相者
    어일체법 응여시지 여시견 여시신해 불생법상 수보리 소언버상자

    如來說卽非法相 是名法相
    여래설즉비법상 시명법상

  63. 應化非眞分
  64. 응화비진분

    須菩提 若有人 以滿無量阿僧祗世界七寶 持用布施 若有善男子善女人
    수보리 약유인 이만무량아승지세계칠보 지용보시 약유선남자선녀인

    發菩薩心者 持於此經 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人演說 其福勝彼
    발보살심자 지어차경 내지사구게등 수지독송 위인연설 기복승피

    云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不動 何以故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운하위인연설 불취어상 여여부동 하이고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佛說是經已 長老須菩提 及諸比丘比丘尼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불설시경이 장로수보리 급제비구비구니

    優婆塞優婆尼 一切世間天人阿修羅 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
    우바새우바이 일체세간천인아수라 문불소설 개대환희 신수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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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회가 열리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1,250명의 스님 제자들과 함께 계시었습니다.

 

이날 세존께서는 공양시간에 가사를 입으신 후에 바루를 들고 사위성에서 한집 한집 밥을 빌어 돌아오셔서 공양을 하시었습니다. 그리고 가사와 바루를 제자리에 정돈하시고 발을 씻고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2. 수보리님이 법을 물으셨다

 

그때, 수보리존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어 합장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언제나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펴주시며 모든 보살들에게 잘 이끌어주고 계셔서 감사드립니다. 세존이시여! 뭇 사람들중 가장 완벽한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한 이는, 응당 어떻게 그 마음(참된 나)을 머무르며 어떻게 마음(생각, 감정, 관념 등)을 항복 받으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질문이십니다. 수보리님! 자세히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뭇 사람들이 최상의 깨달음의 마음을 낸 다음에는 마땅히 이와 같이 유지하고, 마음(생각, 감정, 관념 등)을 항복 받으시면 됩니다.

 

세존이시여! 기쁜마음으로 듣고자 합니다.

 

 

 

3. 대승(大乘)의 올바른 뜻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마음을 닦는 이(보살, 이하 보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마음(생각, 감정, 관념 등)을 항복받으면 온갖 중생들 모두 무여열반에 들어 해탈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이 수많은 중생들을 해탈시키지만, 실은 한 중생도 해탈을 얻게 하였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수보리님! 만약 마음을 닦는 이에게 '나라는 관념(我相)', '내가 사람이라는 관념(人相)', '내가 생명체라는 관념(衆生相)', '나는 수명이 있다는 관념(壽者相)'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진정한 '구도자(보살)'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 머무름이 없는 보시를 하라

 

 

또한 수보리님! 보살은 마땅히 그 어떤 관념에도 머무르는 바 없이 보시(베품)를 해야 하니, 이른바 형상에 얽매임이 없이 보시를 해야 하며,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감촉 등의 오감이나 생각에 얽매임이 없이 보시를 해야 합니다.

 

수보리님!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하여 어떠한 '고정관념(패러다임, 相)'에도 집착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만약 보살이 고정관념에 집착을 하지 않고 보시를 하면 그 복덕이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수보리님! 당신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동쪽 허공의 크기를 헤아리실 수 있겠습니까?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남쪽이나 서쪽, 북쪽 등의 허공과 동남, 서남, 동북, 서북쪽과 위아래의 허공의 크기를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님! 보살이 고정관념에 집착하지 않고 베푸는 보시의 복덕 또한 이와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들께서는 지금 말씀드린대로 마음을 유지하셔야 합니다.

 

 

 

5. 여래의 이치로서 실제를 봄

 

 

수보리님! 당신은 몸의 겉모습(身相)을 통해 여래(참다운 본성)를 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겉모습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나이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몸의 겉모습 또한 겉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님께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있는 바 고정관념(相)은 다 헛되고 망령된(실체가 없는) 것이니 만약 모든 관념(相)이 진실이 아님을 보면 곧바로 진실한 여래(참된 나, 진정한 깨달음)를 보게 됩니다.

 

 

 

6. 바른 믿음은 흔하지 않다

 

수보리님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중생들이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걱정마십시오. 여래가 열반에 든 후 오백세에 계를 지키고 복을 닦는 자는 이 가르침에서 한 생각에 능히 깨끗한 믿음을 낼 수 있습니다. 수보리님! 여래는 이러한 모든 이들이 한량없는 복덕을 얻음을 능히 다 알고 보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이들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는 관념도 없고, '이것이 법이라는 관념(法相)'도 없으며, '이것이 법이 아니리는 관념(非法相)도 없기 때문입니다.

 

무슨 까닭일까요? 만약 이들이 마음에 어떤 고정관념을 취하게 되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한 것이 됩니다. 또한 이것이 법이라는 관념(法相)에 빠지게 되면 앞에 말한 관념에 집착한 것이 되며, 이것이 법이 아니라는 관념(非法相)에 빠지게 되면 이것도 앞에서 말한 관념에 집착한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법이 아닌 것에도 집착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까닭에 제가 항상 제가 한 말을 뗏목(쓰고 버릴 수 있는 것)처럼 여겨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법도 놓아야 하는데 법 아닌 것은 더욱 놓아야겠지요.

 

 

 

7. 얻은 것도 없고, 설한것도 없다.

 

수보리님! 당신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여래가 '가장 완벽한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었다'라고 말합니까? 또는 여래가 '말한 바 법이 있다'라고 말합니까?

 

수보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의 뜻을 알기로는 '가장 완벽한 깨달음'이라고 이름 지을 만한 정해진 법도 없으며,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정해진 법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법은 가히 다 취할 수도 없고, 가히 다 말할 수도 없으며, 법도 아니고, 법이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든 현명하고 성스러운 이들은 다 ‘함 없이 행하는 방법(無爲法)’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8. 법에 의해서 태어나다

 

수보리님!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어떤 사람이 온 세계에 가득 찰 만큼의 일곱가지 보배(금,은, 유리, 산호,진주, 마노 파리 등)로써 보시를 하였다면, 그 사람의 복덕은 어떨까요?

 

수보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매우 많기는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복덕은 복덕의 최고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속의 네 구절이라도 받아 지녀서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해 준다면, 그 복덕은 앞에 말한 금은을 보시한 복덕보다 훨씬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수보리님! 모든 부처님과 진정한 깨달음의 법이 모두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다시 부처님과 법이라고 이름붙이고 형상화 하면 그것은 또 부처님 법이 아닌 것이 됩니다.

 

 

 

9. 하나의 관념도 없어야 한다

 

수보리님! 당신 생각은 어떠십니까? 수다원(성현의 초입에 이른 사람)에 이른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수다원의 경지를 얻었노라'라고 하겠습니까?

 

수보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수다원을 입류(入流)라고 하지만 들어간 바가 없으니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촉감을 느끼고, 감정을 느끼고, 법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으므로 수다원이라 이름 하는 것입니다.

 

수보리님! 사다함(깨달았으나 잠깐씩 욕망이 일어나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사다함이라는 경지를 얻었노라'고 하겠습니까?

 

수보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다함을 이름하여 일왕래(一往來)라 하지만, 실제로는 가고 옴이 없으므로 사다함이라고 이름 하는 것입니다.

 

수보리님, 아나함(욕계(欲界)의 번뇌를 끊어버린 성자)이 나는 아나함의 경지를 얻었다는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수보리님이 답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아나함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이오나 실은 오지 아니함이란 없기 때문에 이름 하여 아나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보리님,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불제자들이 도달하는 최고의 계제)의 도를 얻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수보리님이 답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실로 법이 없음을 깨달은 이를 아라한이라 이름 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나는 아라한의 도를 이루었다'고 한다면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저에게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 마음의 고요를 얻은 사람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욕망을 떠난 아라한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나는 아라한의 도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님은 아란나행(일체의 경계를 끊어 버리는 삼매의 수행을 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고는 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수보리가 행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수보리님 이야말로 아란나 행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10. 정토를 장엄하다

 

부처님께서 다시 수보리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제가 전생에 '연등불' 회상에 있을 때에 법을 얻은 바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연등불 회상에 계실 때에 법에 대하여 얻으신 바가 없습니다.

 

수보리님, 보살이 국토를 장엄(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꾸밈)합니까? 혹은 그렇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국토를 장엄한다 함은 곧 장엄이 아니오며 다만 장엄이라고 일컬을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님, 그러므로 모든 구도자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어야 할 것입니다. 결코 형상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어서는 안 되며, 소리, 냄새, 맛, 감촉, 방법에 집착하는 등의 마음을 내어서는 안 됩니다.

 

수보리님, 비유하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의 몸이 '수미산'만 하다면 그 몸집이 크다고 하겠습니까? 크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수보리님이 대답하였습니다.

 

매우 큽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말씀하시는 큰 몸은 몸이 아니라 이름이 큰 몸이기 때문입니다.

 

 

 

11. 무위복덕이 으뜸이다

   

수보리님, 항하에 있는 모래 수만큼의 항하가 있다면 그 모든 항하에 있는 모래수가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러 항하만 하여도 많은데 하물며 그 모래야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수보리님, 제가 그대에게 진실한 말로서 이르니, 뭇사람이 그 항하의 모래 수만큼이나 되는 세계에 가득찬 칠보로 보시한다면 얻는 바 복덕이 많겠습니까? 적겠습니까?

 

수보리님이 대답하였습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님에게 거듭 일러 말씀하시었습니다.

 

만약 뭇 사람이 이 가르침 가운데 다만 네 구절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또 남을 위해 설명해 준다면 그 복덕이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칠보로 보시한 복덕보다 훨씬 크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2. 바른 가르침을 존중함

   

또 수보리님! 이 경을 설해 주거나 다만 네 구절만이라도 설명하여 들려 주면, 온 세상의 하늘, 사람, 아수라들이 공양하기를 마치 부처님 탑에 공양하듯 할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이 가르침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함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겠지요. 수보리님, 이 사람은 가장 높고 제일가는, 세상에서도 드문 법을 얻게 될 것이니 이 경전이 있는 곳이 곧 부처님이 계시고 부처님의 제자가 머무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3. 법대로 받아 지님

   

그때 수보리님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오며 우리들이 어떻게 받들고 지녀야 하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었습니다.

 

이 경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니 그 이름으로써 그대들은 받들어 지녀야 합니다. 수보리님, 그 까닭은 제가 말한 반야바라밀은 그것이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님, 그대는 어찌 생각하고 계십니까? 여래가 말한 바 법이 있습니까?

수보리님이 대답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말씀하신 바가 없으십니다. 수보리님, 그대는 온 우주에 있는 티끌의 수가 많다고 생각합니까?

 

엄청나게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님, 여래는 모든 티끌이 티끌이 아니라, 그 이름이 티끌이라고 말하였으며 세계도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을 세계라고 말하였습니다.

 

수보리님. 당신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겉모습으로서 여래를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32상만 보고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32상은 그 이름이 32상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님, 만약에 뭇사람이 저 항하의 모래 수만큼이나 많은 몸과 목숨을 바쳐 보시했더라도, 어떤 사람이 이 경의 네 구절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이것을 남을 위해 설명해 준 복덕만 못할 것입니다.

 

 

 

14. 상(관념)을 여의고 적멸에 이름

   

이때 수보리님은 이 경을 설하시는 것을 듣고 그 깊은 뜻을 이해하고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세존께서 이처럼 뜻이 깊고도 깊은 말씀을 설하신 것은 처음이옵니다. 저의 혜안으로도 일찍이 이런 말씀을 듣지 못했던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이가 이 말씀을 듣고 믿는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곧 그 실상을 깨닫고 마땅히 세상에서도 드문 공덕을 성취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실상이라는 것도 실은 상이 아니므로 세존께서는 다만 그 이름이 실상일 뿐이라고 설하시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이와 같이 경을 듣고 믿고 깊이 깨달아 받아 지니기는 어렵지 않사오나, 만약에 내세 오백세후가 되었을 때 중생들이 이 경을 듣고 믿고 깨달아 받아 지니면 그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나라는 관념도 없고, 남과 분별하는 관념도 없으며, 내가 생명체라는 관념도 없고, 내가 수명이 정해졌다는 관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아상이 곧 상이 아니고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상을 여의면 곧 부처라 이름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님에게 말씀하시었습니다.

 

옳으십니다. 혹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매우 훌륭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수보리님, 왜냐하면 여래가 설한 제일바라밀이 제일바라밀이 아니라 다만 그 이름이 제일바라밀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님, 여래가 인욕바라밀도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설하는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수보리님, 제가 전생에 가리왕에게 몸을 베이고 잘리고 할 때에 저에게는 아상도 인상도 중생상도 없었고 수자상도 없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전생에 제가 온몸의 마디마디와 사지를 찢길 때 만약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었다면 마땅히 성내고 원통한 마음을 일으켰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님, 또 제가 전생 오백세에 인욕선인이었을 때를 생각하니 그 세상에서도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수보리님,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을 떠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진정한 깨달음)의 마음을 내야 할 것이니 마땅히 형상에 머무르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되며 마땅히 색, 향, 미, 촉, 법(오감과 진리라는 관념)에 머무르는 마음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마땅히 머무름이 없는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만약에 마음에 머무름이 있다면 그것은 곧 머무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보살의 마음은 마땅히 형상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수보리님, 보살은 마땅히 일체 중생에게 이익되는 머무르지 않는 보시를 해야 합니다. 여래가 말씀한 일체의 상도 곧 상이 아니며, 또 일체중생도 곧 중생이 아닙니다. 수보리님, 여래는 진리를 말하고, 진실을 말하고 실상대로 말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두 가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수보리님, 여래가 얻은 이 법은 실도 없고 허도 없습니다. 수보리님, 만약에 보살이 법에 머무르는 마음으로 보시를 하면, 마치 사람이 어둠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 만약에 보살이 법에 머무르는 마음 없이 보시하면 마치 눈 밝은 사람이 밝은 햇빛 아래서 모든 것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수보리님, 장차 오는 세상에 어떤 뭇사람이 있어 능이 이 가르침을 수지 독송하면 여래가 부처님의 지혜로써 그 사람을 보나니 모두가 한없는 공덕을 얻게 됩니다.

 

 

 

15. 경을 지니는 공덕

   

수보리님, 만약 어떤 뭇사람이 한량없는 긴 세월 동안을 아침마다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나투어 보시하고, 낮에도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나투어 보시하고, 저녁에도 또한 항하의 모래수 만큼의 몸을 나투어 보시하고, 이와 같이 하여 백천만억겁의 세월동안 몸을 나투어 이 경전을 듣고 삿된 마음 없이 믿는 이가 있다면 그 복덕이 훨씬 뛰어날 것이니 하물며 이 경을 쓰고 베끼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고 다른 사람을 위해 알기 쉽도록 설명해 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수보리님, 이 경은 실로 불가사의하고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대승의 마음을 낸 사람을 위하여 이 경을 설명하며, 최상승의 마음을 낸 사람을 위해 이 경을 설하는 것이니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널리 다른 사람을 위해 들려주면 여래는 그 사람을 낱낱이 보시기 때문에 이루 헤아릴 수 없고 이루 말할 수 없고 한이 없는 불가사의한 공덕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곧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궁극의 깨달음)를 얻게 됩니다.

 

수보리님, 작은 법을 즐기는 자는 아견(나라는 견해), 인견, 중생견, 수자견에 집착하여 이 경을 알아듣지도 못하며 받아 지니지도 못하고 읽고 외우지도 못하므로 따라서 남에게 설명해 주지도 못합니다.

 

수보리님, 만약 어디서든지 이 경만 있으면 하늘 사람, 세상사람, 아수라가 반드시 공양할 것입니다.

 

이곳은 곧 부처를 모신 탑과 같아 응당 모두 와서 공경하고 절하고 둘레를 돌며 온갖 아름다운 꽃과 향을 뿌리게 될 것입니다.

 

 

 

16.능히 업장을 깨끗이 함

 

또 수보리님, 뭇사람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하여도 혹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게 된다면, 그는 전생에 악도에 떨어질 죄를 지은 때문이며, 금생에 이런 경멸.천대를 받으므로 해서 전생에 지은 그 죄업은 소멸되고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궁극의 깨달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수보리님, 제가 지난날의 헤아릴 수 없는 과거 동안을 생각해 보면 연등불회상에서 8백 4천만억 나유타의 여러 부처님을 다 만나 뵙고, 모두 공양하고, 그 뜻을 받들어 섬기고 하여 한 분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았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뒷날 말세에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공덕을 얻는다면 내가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한 그 공덕으로는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며 천만억분 내지 어떤 숫자적 비유로도 능히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수보리님, 뒷날 말세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하여 받는 그 공덕에 대하여 제가 다 설한다면 혹 어떤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어지러워 의심하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

 

수보리님, 명심하십시오. 이경은 그 뜻이 가히 불가사의할 뿐 아니라 그 과보 또한 능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17. 마침내 무아(나라는 집착이 없음)에 도달함

 

이때 수보리님이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뭇사람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진정한 깨달음)의 마음을 내고는 어떻게 머무르고 어떻게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습니다.

 

뭇사람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는 마땅히 '내가 일체의 중생을 열반에 이르도록 제도하니라'고 마음 먹고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고 나서는 '실은 한 중생도 제도한 바가 없다'고 인식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내가 제도했다는 나라는 관념과 상대편, 중생이 있다는 관념, 깨달았다는 관념이 바로 상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수보리님, 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는 법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수보리님, 여래가 연등부처님 회상에 있을 때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겠습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에 따르면, 세존께서 연등부처님 처소에 계실 때 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어떤 법이 있어 얻은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보리님. 실로 법이 없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입니다. 수보리님, 만약에 법이 있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면 연등부처님께서는 나에게 '그대는 장차 오는 세상에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며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하고 수기를 내리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로 법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며 그러므로 연등부처님께서 '그대는 내세에 반드시 부처가 되리니 그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래란 곧 '모든 법이 진실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한다면 실로 법이 없기 때문에 부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입니다.

 

수보리님, 부처가 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가운데는 실도 없고 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다 불법'이라고 여래가 설하는 것입니다. 수보리님, 일체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일체법이 아니며 다만 그 이름이 일체법일 뿐입니다.

 

수보리님, 비유하여 말하면 사람의 몸이 크다는 것과 같습니다.

 

수보리님이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사람의 몸이 크다고 하신 것은 곧 큰 몸이 아니라 그 이름이 큰 몸인 것입니다.

 

수보리님, 보살도 역시 이와 같아서 '내가 반드시 무수한 중생을 제도 하리라' 하고 말한다면 곧 보살이라 이름하지 못할 것이니 실로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일컬어 보살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일체법이란 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라'고 설하는 것입니다. 수보리님, 만약 보살이 '나는 반드시 불국토를 장엄(아름답게 꾸밉니다)하니라'고 말한다면 보살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여래가 설한 불국토의 장엄은 곧 장엄이 아니라 다만 그 이름이 장엄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님, 만약에 보살이 무아의 법에(나라는 생각이 없는-아상(我相)이 없는 법) 통달했다면 여래는 이야말로 진실한 보살 이라고 일컬을 것입니다.

 

 

 

18. 한몸이 되어 한가지로 봄

 

 

수보리님, 여래에게 육안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육안이 있습니다.

 

여래에게 천안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천안이 있습니다.

 

여래에게 혜안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혜안이 있습니다.

 

여래에게 법안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법안이 있습니다.

 

수보리님, 그렇다면 여래에게 불안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불안이 있습니다.

 

‘항하 가운데 있는 모래알’이라고 부처가 모래 이야기를 한 일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모래 이야기를 하신 일이 있읍니다.

 

수보리님, 그렇다면 만약 한 항하 가운데 있는 모래 수만큼의 항하가 있고 그 모래알 수대로 부처의 세계가 있다면 가히 많다 하겠습니까?

 

대단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다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었다.

 

그렇게 많은 국토 가운데의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을 여래는 낱낱이 다 알고 있습니다. 여래가 말하는 갖가지 마음이란 마음이 아니라 다만 그 이름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님, 왜 그러냐 하면 과거의 마음도 가히 얻을 수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9. 법계를 통하여 교화함

   

수보리님, 만약 어떤 사람이 온 우주에 가득찬 칠보로 보시한다면 그 인연으로 해서 얻는 복이 많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이 보시의 인연으로 얻는 복덕이 심히 많을 것입니다.

 

수보리님, 만약에 그 복덕이 실로 있다면 여래는 ‘복덕을 많이 얻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겠지만 복덕이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래는 ‘복덕을 많이 얻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0. 형상과 관념을 여의다

 

수보리님, 부처가 색신(형상)을 갖추고 있다고 봅니까?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색신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색신을 갖추고 있다함은 곧 색신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색신을 갖추고 있다’ 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수보리님, 여래는 가히 모든 상(관념)을 갖추고 있다고 보겠습니까?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모든 상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모든상을 갖추고 있다’함은 곧 상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모든 상을 갖추었다고 할 뿐입니다.

 

 

 

21. 설하되 설한 바 없다

 

수보리님, ‘여래가 법을 설한 바 있다’고 말하지 말며 그런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가 설한 바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부처를 비방하는 일이 됩니다. 이는 제가 말한 바를 잘 이해하지 못한 때문인 것입니다.

 

수보리님, 법을 설한다 함은 설할 법이 없으되 다만 그 이름을 설한다고 일컬을 뿐입니다.

 

그때 수보리님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많은 중생들이 다음 세상에 있어서 여래께서 설하신 법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시었다.

 

수보리님 그들은 중생도 아니고 중생이 아님도 아닙니다. 중생, 중생하는 것은 여래가 중생 아닌 것을 말하는 것이며 다만 그 이름이 중생일 뿐입니다.

 

 

 

22. 법은 얻을 것이 없음

 

수보리님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진정한 깨달음)를 얻으심은 얻으신 바가 없음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시었다.

 

그러합니다, 수보리님. 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조금도 얻음이 없으니 그 이름이 다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일 뿐입니다.

 

 

 

23. 깨끗한 마음으로 선을 행함

 

수보리님, 또 이 법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므로 그 이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입니다. 그러므로 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상으로 일체의 착한 행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입니다.

 

수보리님, 착한 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여래가 말하는 것이 착한 법이 아니라 다만 그 이름이 착한 법일 뿐입니다.

 

 

 

24. 네 구절의 복덕과 지혜는 위대함

  

수보리님, 어떤 사람이 온 우주 가운데에 있는 수미산 왕만한 칠보의 더미를 모두 보시한 것과, 또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경의 네 구절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해 설해 준 것을 비교한다면 앞서 말한 복덕은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만억분 내지 어떠한 숫자의 비유로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25. 교화하나 교화한 바가 없음

  

수보리님, ‘여래가 응당 중생을 제도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런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실로 여래가 제도할 중생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다면 이는 곧 여래에게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는 뜻이 됩니다. 수보리님, 여래가 아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곧 아상이 있음이 아니라 다만 범부들이 아상이 있다고 생각할 따름입니다.

수보리님, 범부라는 것도 여래의 말한 바는 범부가 아니나 그 이름이 범부일 뿐입니다.

 

 

 

26.법신은 상이 아님

 

수보리님, 가히 32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합니다. 32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었습니다.

 

수보리님, 만약 32상으로 여래를 본다면 전륜성왕도 곧 여래라 하겠습니까?

 

수보리님이 부처님께 대답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해주신 바에 따르면 32상만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시었습니다.

 

만약 형상을 통해 참나를 보거나 음성을 통해 참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가질 뿐 여래(근원의 본성)을 능히 보지 못할 것입니다.

 

 

 

27. 끝남도 멸함도 없음

 

수보리님, 그대는 ‘여래가 32상호를 갖추므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합니까? 수보리님, ‘여래는 구족상을 갖추었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킨 사람은 모든 법이 끊어지거나 없어지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낸 사람은 법이 끊어졌느니 멸했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8. 받지도 않고 탐내지도 않음

 

수보리님, 만약에 보살이 항하에 가득 찬 모래와 같은 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 보시하더라도, 일체법이 무아임을 알고 또 인욕바라밀을 성취한다면 이 공덕이 훨씬 뛰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보리님. 모든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보리님이 다시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사옵니까?

 

수보리님, 보살은 지은 바 복덕을 탐내거나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29. 여래는 오고 가는 것이 아니다

 

수보리님,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참다운 본성)가 혹은 온다, 간다, 앉는다, 눕는다’고 말한다면 이는 제가 설한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것입니다.

 

본래 여래란 어디서 오는 것도 아니며,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여래라 일컫는 것입니다.

 

 

 

30. 모두가 하나이다

 

수보리님, 만약 뭇사람이 온 우주를 가루로 내어 티끌로 만든다면 그 티끌의 수가 많겠습니까?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만약 그 티끌의 무리가 정말 있는 것이라면 세존께서는 그것을 티끌의 무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 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티끌의 무리는 곧 티끌의 무리가 아니라 그 이름이 티끌의 무리인 까닭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온 우주도 그것이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일 뿐 입니다.

 

세계가 정말로 있는 것이라면 이는 곧 티끌들이 모여 잠시 세계라는 형상을 이루고 있을 뿐이어서 여래께서 설하신 일합상(一合相)은 곧 일합상이 아니라 다만 그 이름이 일합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님, 일합상이라는 것은 가히 말할 수 없는 것이거늘 다만 범부들이 일합상이라는 것에 집착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31. 생각을 내지 않음

 

수보리님, 만약 어떤 사람이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을 부처가 설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제가 설한 참뜻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뜻을 잘 알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은 곧 그 이름이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일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낸 사람은 일체 법에 대해서 법상(현상계에 대한 관념)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여래는 법상이 아닌 것을 말하나 다만 그 이름이 법상일 뿐입니다.

 

 

 

32. 현상계는 진실이 아님

  

수보리님, 만약 어떤 사람이 온 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 보시하더라도 이 경의 네 구절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또 남을 위해 설하는 이가 있다면 그 복이 칠보로 보시한 보덕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러면 남들을 위해 어떻게 설할 것인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관념에 집착하지 않고 본래 모습 그대로 흔들리지 마셔야 합니다. 일체의 현상계는 꿈(매트릭스)이요, 허상이요, 물거품이요, 그림자요, 이슬같고, 번개불같은 것으로 바라 보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설하시니 장로 수보리님을 비롯하여 모든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그리고 온 세상 천지에 있는 하늘사람, 세상사람, 아수라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를 듣고 모두 크게 환희하고 즐거워하며 이를 받들어 믿고 행하였다고 합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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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에 대하여 - 도올 김용옥 

 

조선의 불교는 『금강경』을 적통으로 한다라고 말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大藏經』이라고 하는 거대한 바구니속에 三藏의 浩瀚한 경전이 즐비하지만,

우리 민중이 실제로 불교를 생각할 때 가장 많이 독송하고 암송하고 낭송하고 인용하는 소의경전을 꼽으라 하면

 

그 첫째로 『般若心經』이 꼽히고,

둘째로 『金剛經』이 꼽힌다.

우리나라 불교, 특히 우리에게서 가까운 조선왕조시대의 불교사,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불교를 이야기하면 臨濟류의 禪을 적통으로 하는 禪宗중심의 역사이고 보면,

禪宗에서 거의 유일하게 소의경전으로 삼는 것이 『金剛經』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금강경』이야말로 선종의 기초경전인 것인냥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건대,

『금강경』과 禪宗은 역사적으로 일푼어치의 직접적 관련도 없다.

다시 말해서 『금강경』이 선종에서 나온 것도 아니요,

『금강경』에서 선종이 나온 것도 아니다.

禪이란 본시, 중국의 唐代에나 내려와서,

이전의 一切의 교학불교를 부정하는데서 생겨난 不立文字, 直指人心의 아주 래디칼한 토착적 운동이고 보면,

禪은 文字로 쓰인 모든 경전을 부정하는 일종의 反佛敎운동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禪은 불교라고 말하기 보다는 중국인들의 어떤 詩的 靈感(poetic inspiration)이라해야 옳을 것이다.

禪은 그 근본이 아나키스틱(무정부주의적)한 것이요,

따라서 물론 『금강경』도 禪의 입장에서 보면 부정되어야 할 교학불교의 대표 경전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禪과 『금강경』이 항상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마치 『금강경』이 선종의 대표경전인냥 착각되어온 소이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역사적 이유(historical reason)요,

그 하나는 논리적 이유(logical reason)다.

첫째로,

역사적 이유라 함은 中國禪의 실제 開祖라 할 수 있는 역사적 인물인

 

慧能(638~713)의 삶의 이야기와 『금강경』이 얽혀있다 함이다.

혜능의 전기적 자료로서 으뜸이라 할 『六祖壇經』과 『傳燈錄』,

 『指月錄』등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성립한다.


혜능의 속성은 원래 盧씨요, 그 본관은 范陽이었다.

그의 父親, 行?는 武德년간에 좌천되어 嶺南으로 유배되어 新州(廣東省, 新興縣)의 백성이 되었다.

불행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혜능 3세때에 그 부친이 돌아가셨다.

후에 혜능은 노모와 함께 南海로 이사갔고 거기서 밑창이 째지라 가난한 사람을 이끌게 되었다.

혜능은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시장에 지게짐을 놓고 팔아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공부할 겨를이 없는 일자무식의 나뭇꾼 노동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어느 손님이 나무를 한짐 사더니,

그 나무를 자기가 묵고 있는 여관까지 배달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혜능은 그 여관까지 다 배달을 해주고 그 손님에게 돈을 받았다.

그리고 여관 문밖을 나서려는데 바로 문깐 방에 묶고 있던 어느 손님이 徑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경전의 내용이 귀에 쏘옥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 徑이 바로 문제의 『금강경』이었고,

문제의 구절은 현금의 텍스트 第十分 「莊嚴淨土分」,

第五節에 있는 "應無所住而生其心"(반드시 머무는 곳이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라는 구절이었던 것이다.

 

나뭇꾼 혜능은 그 구절을 듣자마자 마음이 활짝 개이는 것 같았다.


"그 徑이 무슨 경이오?"


"『금강경』이외다."


"선생은 어디서 오셨길래 그런 훌륭한 경전을 가지고 계시오?"


"나는 州(기주) 黃梅縣 東馮母山(동풍모산=동산) 東禪寺에서 왔소.

그곳에 五祖 弘忍大師께서 주석하고 계시면서 많은 사람을 감화하고 계신데,

그 門人이 일천명이나 넘소.

내가 그 산에 가서 홍인대사님께 절을 하고 이 徑을 받았소이다.

대사님께서는 항상 僧俗에 권하시기를 이 『금강경』만 몸에 지니고 있어도,

곧 스스로 見性할 것이요, 단박에 成佛하리라 하시었소."


이 말을 들은 혜능은 그 자리에서 勃然하여 出家求法의 결심이 스는지라,

어느 손님에게 구걸하여 銀十兩을 얻었다.

그 돈으로 노모의 의복과 식량을 충당하고 노모에게 엎드려 사직하고 발길을 黃梅로 재촉하였던 것이다.

 

三十餘日이 못되어 黃梅에 도착,

곧 五祖 弘忍을 뵈올 수 있었다 云云…….

이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사실인가 아닌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바로 禪家의 開祖들이 소의경전으로서,

이 『금강경』이라는 경전을 중시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五祖 弘忍이 『금강경』을 강설하였고,

六祖 慧能의 出家의 동기가 바로 이 『금강경』에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慧能이 得道成佛한 후에도 이 『금강경』을 계속 說破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금강경』과 禪宗은 떼어 놓을래야 놓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혜능의 수제자인 荷澤 神會는 아예,

五祖·六祖부터가 아니라 初祖인 達磨(달마)로부터 이 『금강경』을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서 傳乘하여 왔다고 못박았다.

따라서 荷澤 神會이래,

神秀系의 北宗이 『楞伽經』을 중시한데 비하여,

慧能系의 南宗에서는 『금강경』이 그 所依經으로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된 것이다.

두째로,

논리적 이유라 함은 뭔말인가?

禪宗의 출발이 역사적으로 8세기초 중국에서라고 한다면,

『금강경』은 인도에서 대승불교의 초기에 성립한 산스크리트原典(梵本)의 存在가 확실한 경전으로,

그 성립시기를 學界에서 대강 AD 150~200년경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서,

『금강경』과 禪은 최소한 500년 이상의 시간거리와,

인도와 중국이라는 문화적·지리적(공간적) 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금강경』을 그 자체로 독립된 단일 경전으로 흔히 오해할 수도 있지만,

『금강경』이란 원래 "般若經"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또 많은 사람들이 "반야경"이라는 말을 어떤 단일한 책의 이름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반야경이란 단권의 책이 아니요,

반야사상을 표방하는 一群의 책들에 붙여지는 일반명사인 것이다.

반 야경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오는 책들은 한두권이 아니다.(漢譯된 것만도 42종) 그런데 반야사상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반야(prajna)라는 것을 공통으로 표방하는, 기독교의 『신약성경』이 쓰여지기 시작한 1세기, 같은 시기에, 초기 불교승단에서 불꽃같이 타오른 새로운 운동을 말하는 것이다. 아주 쉽게 말하면, 반야사상의 성립, 즉 반야경의 성립이 곧 대승불교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출발과 대승불교의 출발은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언어문자권(희랍어-산스크리트어)내에서, 아주 비슷한 혁신적 생각을 표방하면서 인류사에 등장한 一大宗敎운동이었던 것이다.

소승 아라한(arhan)에게 주어지는 실천덕목으로 원시불교의 八正道를 든다면, 대승보살(bodhisattva)에게 주어지는 실천덕목은 "六波羅蜜"(六度)라는 것이다. 이 6바라밀이란, 1) 布施, 2) 持戒, 3) 忍辱, 4) 精進, 5) 禪定, 6) 智慧의 여섯 덕목을 말하는데, 앞의 前五波羅蜜은 최후의 지혜바라밀을 얻기 위한 준비수단으로서 요청되는 것이다. 바로 이 최후의 지혜바라밀, 즉 혜지의 完成, 그것을 우리가 반야("쁘라기냐"의 음역)라고 부르는 것이다. 바로 반야사상(=반야경의 성립)이라는 최후의 바라밀, 즉 지혜바라밀을 統括적으로 이해하면서 아주 새로운 혁신적 불교운동을 선포하기에 이른 일련의 흐름 전체를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금강경』은 이 반야운동의 초기에 성립한, 반야바라밀사상을 完成시킨 결정체인 것이다.

1) "보시"(布施)란 요새말로 하면 "사랑"이요, "베품"이다. 내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눔"이다. 그렇다면 내가 만원이 있기 때문에 천원을 남에게 주면, 그것이 보시가 될까? 그럼 이천원은 어떨까? 그럼 아예 만원을 다 주면 어떨까? 아니 아예 남에게 꾸어다가 이만원을 주면 어떨까? 길거리 지나가다 나보다 헐벗은 자가 있으면 내 옷을 다 벗어주고 가야할텐데! 과연 나는 그러한 보시를 실천하고 있는가? 그럼 추운데 내옷 다 벗어주고 빨개벗고 간다고 나는 보시를 과연 완성한 것인가?

2) "지계"(持戒)란 계율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우리 삶의 도덕성이요, 일정한 삶의 규율성이다. 그런데 시내에서 모처럼 친구를 만났는데 술한잔은 어떠할까? 담배 두가치는 너무해도 한가치? 아니, 한모금은 어떠할까? 조갑지에 꽉물리면 곤라해도 살짝 스치는 김에 담구었다 빼면 안될 것도 없다. 아니, 아예 그 물건을 작두로 짤러버리면 어떠할까? 계율을 완벽하게 지키시는 율사님의 사생활에는 과연 흠잡을 구멍이 없을까?

3) "인욕"(忍辱)이란 욕됨을 참는 것을 말한다. 욕됨을 참는다는 것은 "용서"를 의미한다. 나에게 욕을 퍼붓는 모든 자들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원망이나 복수의 마음을 품어서는 아니된다. 사실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은, 기독교의 교설을 빌리지 않아도, "참음"과 "용서함"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까지 참는가? 어디까지 용서하는가? 나를 죽이려 칼을 들고 덤비는 자에게 고스란히 창자를 내어주는 것이 인욕인가? 아니 너무 극한적 비유를 들지 않더라도, 잠결에 따꼼하게 물어대는 모기를 때려 죽여야 할까? 그대로 인욕해야 할까?

4) "정진"(精進)이란 올바른 삶의 방향으로 흔들림없이 매진하는 것을 말한다. 오로지 구부림없이 佛道를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올바른 삶의 방향이란 말인가? 내가 정진하고 있는 가치관이 과연 최선의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서 받아야 할 것인가? 과연 무엇이 佛道이며, 과연 무엇이 올바른 예수님의 가르침인가? 무엇이 과연 내가 정진해야 할 종교적 삶인가?

5) "선정"(禪定)이란 명상에 의한 정신의 집중과 통일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도인이나 희랍인에게 공통된, 테오리아적 삶의 가치관의 우위를 반영하는 덕목이다. 그러나 구태여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주목" 즉 "어텐션"(attention)의 능력이 없는 삶은 결국 정신분열의 삶이 되고 만다.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란 우리가 책을 보거나 대화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강의를 듣거나 시험을 치거나, 모든 삶의 행위의 순간순간에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훈련을 인도인들은 "요가"라는 수행으로 정형화시켰고, 중국인들은 "調息" "導引"으로 공부화시켰고, 그것은 후대 坐禪이라는 갖가지 형태로 발전·정착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승려나 불자들이 "禪"과 "좌선"을 일치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럼 "臥선"은 어떠하고, "行선"은 어떠하며 "處處事事선"은 어떠한가? 그렇다면 도대체 "선"이란게 무엇이냐?
나는 동안거·하안거 결제를 100번이나 거쳤다. 어간에만 앉는 최고참 최상등자다! 그래, 그래서 그대는 成佛했는가? 뇌리꾀리 꾀죄죄한 얼굴이나 하고 앉아 지댓방조실의 笑話나 경청하고 있는 신세가 되질 않았는가? 과연 禪定이 成佛을 보장하는가?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의 다섯 바라밀은 종교생활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이 실천해야 할 덕목임에 틀림없다. 사랑을 실천하며, 계율을 지키고, 참고 온유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진하는 생활을 하며, 고요히 명상하고 기도하는 생활, 佛子나 耶蘇子나 가릴 바가 없는 덕목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다섯 바라밀은 마지막 바라밀, 즉 지혜의 바라밀이 없이는 완성될 수가 없는 불완전한 덕목인 것이다. 아무리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을 완벽하게 해도, 그것이 지혜를 缺할 때는, 형식주의적 불완전성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그럼 第六度, 즉 여섯 번째의 바라밀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반야 즉 지혜란 무엇인가? 바로 여기에 대한 대답이 곧 『금강경』이란 서물을 구성하는 것이다. 『금강경』은 곧 『금강반야바라밀경』의 약칭이며, 『금강경』이야말로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을 최초로 명료하게 규정한 대승운동의 본고장인 것이다.

내가 "논리적 이유"라 말한 뜻은 무엇인가? 논리적 이유라 함은, 비목 『금강경』의 성립과 禪宗의 성립사이에 5·6세기의 시간이 가로놓여 이지만, 그리고 禪宗의 不立文字的 정신으로 볼 때, 『금강경』은 부정되어야 할 文字로 이루어진 초기경전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禪宗이 "不立文字·直指人心·見性成佛" 등의 말을 통하여 표방하고자 하는 모든 논리적 가능성이, 아니, 정확하게는 논리 이전의 가능성이, 이미 『금강경』이라는 대승불교의 초기경전속에 모두 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금강경』이라는 대승교학의 바이블은 비록 그것이 교학불교의 濫觴을 이루는 원천적인 권위경전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禪이요, 가장 "禪的인" 경전으로 禪師들에게 비추어졌던 것이다.(The Diamond S tra is considered the Sanskrit work closest in spirit to the Zen approach. EB) 그러므로 이 『금강경』이야말로 대승불교의 최초의 운동이면서 최후의 말미적 가능성을 포섭하는 포괄적인 내용의 위대한 경전인 것이다. 『금강경』이야말로 대승불교의 全史의 알파요 오메가다. 선종이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는 것은, 곧 禪의 가능성이 초기불교운동內에 이미 구조적으로 내장되어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며, 동시에 역으로 禪이 反佛敎的임에도 불구하고, 대승운동의 초기 정신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역사적 정황을 잘 대변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금강경』처럼 사상의 폭이 넓은 불교경전이 없으며,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전불교사를 通하여 가장 많이 암송되고 낭송되고 독송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이 내재하는 것이다. 『금강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대승불교정신의 알파 - 오메가를 다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 경전이 소략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불교全史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없이는 그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다.

반 야사상을 집대성한 기념비적 반야경으로서 우리는 玄 이 詔譯한 『大般若經』을 꼽는다(이것은 『大品般若經』과는 별도의 책임으로 혼동치 말것). 이 기념비적 반야경의 스케일은 대장경을 뒤적거리는 우리의 눈길을 경악으로 이끈다. 그것은 十六會 六百卷에 이르는 참으로 방대한 분량의 서물인 것이다. 이 방대한 분량의 『大般若經』을 뒤적거리다 보면, 第九會 卷第五百七十七에서 「能斷大金剛分般」이라는 한 채프터를 만나게 된다. 이 채프터에 실린 「能斷金剛分」의 내용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는 『금강경』과 일치하는 것이다. 『금강경』에 해당되는 「能斷金剛分」은 지금 「大正大藏經」의 편집체제로 불과 6페이지에 지나지 않는다(7/980~985). 그런데 『大般若經』 전체의 분량은 『大正』으로 세책(5~7)에 해당되며, 그 페이지수는 자그만치 3,221쪽이나 되는 것이다. 3,221쪽의 분량의 방대한 서물(오늘날의 작은 활자본, 큰 판형의 서물기준이니까 이것을 한번 목판으로 계산해보라! 이 책 한종만 해도 몇만장이 되겠는가?)의 6쪽에 해당하는, 즉 600권 중의 577권에 자리잡고 있는 서물이 바로 우리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이 『금강경』이라는 것이다. 그럼 『금강경』은 본시 『대반야경』의 한 卷을 분립시킨 것인가?

그렇게는 말할 수 없다. 玄 의 『대반야경』은 唐나라 때, 660~663년 사이에 성립한 것으로, 그 내용은 실로 600년 이상에 걸친 반야사상운동의 표방경전들을 한 종으로 묶어 낸 것이며, 따라서 그 내용은 이전에 독립경전으로 存立하고 있었던 것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러면 玄 의 『대반야경』 이전에 독립경전으로써 한역된 『금강경』이 있었는가? 물론 있다! 그럼 왜 玄 은 그것을 구태여 다시 번역했는가?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쉬앤짱(玄 , 602~664)이라고 하는 역사적 인물의, 『대반야경』을 위시하여 瑜伽師地論, 攝大乘論, 唯識論, 俱舍論 76部 1,347卷에 이르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 개인의 방대한 역경사업(62세밖에 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에 걸쳐 논의 되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쉬 앤짱의 문제의식은 中國漢譯佛敎의 格義的 특색에 관한 비파적 검토로부터 출발한다. 한마디로 그의 문제의식은 한역불교의 모호함과 애매함에 대한 답답함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이런 종류의 고민과 비슷하다. 日帝시대를 통해 일본교사, 내지 그들에게 배운 사람들을 通하여 이해된 "서양철학," 데카르트가 어떻구 칸트가 어쩌구 쇼펜하우어가 저쩌구 하는데 도무지 모호하다. 그러지 말구, 직접 서양에 가서 그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사상 체계가 발생한 문화적 분위기를 익히고, 그 사람들을 알아보자! 그래서 유학을 간다! 직접 가서 알아보자! 그는 河南省 洛陽의 사람! 그가 살었던 시기는 隋唐교체의 亂世였다. 長安·成都 각지에서 스승을 구하고, 涅槃經, 『 攝大乘論』, 小乘의 諸論에 通達했으나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몸소 직접 산스크리트原典에 기초하여 그 뜻을 철저히 考究하고 싶은 학문적 열망으로 가득찬 27세의 청년, 獨力으로 萬難을 각오하고 長安을 출발하여 求道行의 걸음을 내친 것이 貞觀3년(629)! 간난신고를 무릅쓰며 신강성 북로를 뚫고, 西터키스탄, 아프카니스탄을 거쳐 北인도로 들어가 中인도의 那爛陀寺에까지 이르렀다. 그곳에서 戒賢( labhadra, 529~645)을 스승으로 모시고, 無着·世親系의 瑜伽唯識의 敎學을 배웠다. 인도 각지의 佛跡을 방문하고, 佛像·佛舍利를 비롯하여 梵本불경 657部를 수집하여, 파미르고원을 넘고 天山南路南道를 통하여 長安에 도착한 것이 貞觀19년(645)! 그의 나이 43세! 唐太宗은 너무 기뻐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62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19년동안 弘福寺, 慈恩寺, 玉華宮에서 번역한 그 방대한 사업이 오늘 『대장경』의 위용의 골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의 여행기인 『大唐西域記』가 明代에 戱曲化된 것이 바로 『西遊記』!

排佛의 유교국가임을 자처하는 조선의 궁궐의 용마루 처마에도 그의 西遊의 塑像들이 나란히 서 있고, 오늘 우리 코메디 입담에도 "사오정"이 판을 치고 있는 실정, 그 위대한 법력을 어찌 내가 새삼 논구할 필요가 있으랴!

玄裝의 번역의 특징은 가급적인 한 산스크리트어 원전에 충실하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음역도 가급적이면 원래의 발음에 충실하려한다. 예를 들면, "samadhi"를 "三昧"라 하고, "yojana"를 "由旬"으로, "sattva"를 "衆生"으로 번역하는 것으로 묵약되어 있었지만, 玄 은 이를 모두 訛謬로 간주하고 "三摩地," "踰 那," "有情"으로 고친다. 발음과 의미를 모두 원어에 충실케 하려는 자세인 것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字數나 리듬에 얽매인 번역을 산문화시켜 상세히 衍述 한다. 『금강경』의 경우 그 유명한 四相의 번역에 있어서도, "衆生相"(sattva-samjna)은 "有情想"(정이 있는 자라는 생각)이 되어 버리고, 마지막의 "pudgala-samjna"는 아예 "補特伽羅想"으로 음역해 버린다.

이러한 식의 玄 의 번역을 우리는 中國譯經史의 특수용어로서 "新譯"이라고 부르고, 玄 이전의 번역을 "舊譯"이라고 부른다. "구역"의 대표로서 우리는 鳩摩羅什(Kumarajiva, 350~409년경)과 眞諦(Paramartha, 499~569)를 꼽는다. 그렇다면 대체적으로 신역이 구역보다 더 정확하고 우수한가? 반드시 그렇게 일괄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사계의 정론이다. 나 역시 신역이 구역의 아름다움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玄 의 번역은 唐나라 때의 국제적인 문화의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 해야 할 것이다.

『금강경』의 경우, 한역본으로 우리는 보통 다음의 6종을 꼽는다. 이를 시대적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後秦 鳩摩羅什(Kumajiva)譯, 『金剛般若波羅蜜經 』(一卷), 402년 성립.
2. 元魏 菩提流支(Bodhiruci)譯, 『金剛般若波羅蜜經』(一卷), 509년 성립.
3. 陳 眞諦(Paramartha)譯, 『金剛般若波羅蜜經』(一卷), 562년 성립.
4. 隋 多(Dharmagupta)譯, 『金剛般若波羅蜜經』(一卷), 590년 성립.
5. 唐 玄 譯, 『大般若波羅蜜多經』 「第九能斷金剛分」(一卷), 660~663년 성립
6. 唐 義淨譯, 『佛說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一卷), 703년 성립.

그런데 이 많은 판본 중에서(모두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 저본이 된 산스크리트 원어 텍스트 자체도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것을 과연 『금강경』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닌 역사의 선택이었다.

우 리가 보통 『금강경』이라 부르는 것은 玄 譯本을 저본으로 삼지 아니한다. 역사적으로 『금강경』으로 유통되어 온 것은 바로 最古譯이라할 수 있는 꾸마라지바(鳩摩羅什)의 역본이다. 다시 말해서 신역이 아니라 구역인 것이다. 신역이 구역의 권위에 눌렀기 때문인가? 그렇지는 않다. 平心而論컨대 신역이 구역의 아름다움과 고결함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중의 선택이었다. 현재 다행스럽게도, 上記의 六種번역이 모두 말끔하게 정돈되어 『大正대장경』에 실려있다. 玄 의 번역은 第七冊, 980~985쪽에 실려있고, 나머지 5개의 번역은 第八冊, 748~775쪽에 순서대로 실려있어서 아주 손쉽게 六者를 비교검토해볼 수 있다.(菩提流支[?~527]의 譯本의 경우는 異本 2개가 실려 있다.) 이 六本의 텍스트의 본격적인 비교연구 또한 우리 불교 학계의 주요한 연구테마가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금강경』이라고 부르는 텍스트는 羅什의 역본, 『金剛般若波羅蜜經』을 梁나라의 昭明太子가 三十二分으로 分節하여, 각분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 分節이 반드시 학구적으로 올바른 나눔이라 말할 수 없는 상황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텍스트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그 이름 또한 모두 그 分의 내용을 개관하고 있는 의미있는 명칭으로 대체적으로 적절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 昭明太子(501~531)가 누구인줄 아는가? 그가 바로 『碧巖錄』 第一則의 주인공, 達磨와 初面하고 "몰라"(不識)의 일화를 남긴 그 유명한 大菩薩황제, 南朝佛敎의 極盛시대를 연출한 梁武帝(464~549)의 長子였다. 名은 蕭統, 字는 德施, 태어난 다음해 바로 皇太子가 되었고, 인품이 총명하고 인애롭고 好學의 一道를 걸었다. 그의 서재의 장서 3萬! 劉孝綽 등의 文學의 士를 자택에 불러들여 같이 편찬한 그 유명한 『文選』은 萬古의 名著로 남아있다. 바로 그 昭明太子가 羅什의 『金剛經』을 오늘의 三什二分텍스트로 만든 것이다. 그 다섯자로 이루어진 분의 이름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法會因由分 第一
善現起請分 第二
大乘正宗分 第三
妙行無住分 第四
如理實見分 第五
正信希有分 第六
無得無說分 第七
依法出生分 第八
一相無相分 第九
莊嚴淨土分 第十
無爲福勝分 第十一
尊重正敎分 第十二
如法受持分 第十三
離相寂滅分 第十四
持經功德分 第十五
能淨業障分 第十六
究竟無我分 第十七
一體同觀分 第十八
法界通化分 第十九
離色離相分 第二十
非說所說分 第二十一
無法可得分 第二十二
淨心行善分 第二十三
福智無化分 第二十四
化無所化分 第二十五
法身非相分 第二十六
無斷無滅分 第二十七
不受不貪分 第二十八
滅儀寂靜分 第二十九
一合離相分 第三十
知見不生分 第三十一
應化非眞分 第三十二

이 分名만을 일별하여도 昭明太子가 얼마나 불교의 이치를 깊게 攻讀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分節이나 題名이 우리의 이해를 그르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아울러 幷記해둔다. 그리고 보통 第一分을 序分이라 하고, 第二分부터 第三十一分까지를 正宗分이라 하고, 第三十二分을 流通分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규정은 『금강경』의 내적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자들이 형식적으로 희론하는데 불과하다. 『금강경』은 그러한 식의 序-正宗-流通의 구조로 되어 이지 않다.

한가지 텍스트 上의 문제로 특기해 둘 것은 鳩摩羅什 텍스트에서 第二十一分의 후반부분("爾時慧命須菩提白佛言"부터 "是名衆生"까지의 62字)은 羅什텍스트에 不在했던 것으로 菩提流支 텍스트에서 빌려와 補完한 것이다.(唐 長?二年에 靈幽法師가 補入한 것.) 현재의 『大正』 및 『고려해인사』 羅什텍스트는 補完된 상태로 실려 있다. 그 부분을 잘 들여다 보면 그것은 분명히 羅什의 譯本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선택한 용어와 문장스타일이 크게 다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 부분에 대해 그릇된 주석을 달고 있는 상황도 쉽게 목격된다. 후학들의 주의를 요청한다.

내가 여기서 강해하려는 『금강경』은 물론 羅什이 譯한 『금강경』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羅什의 『금강경』의 판본이 또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羅什의 『금강경』의 가장 正本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해인사 장경각에 보존되어 있는 『고려대장경』판본인 것이다. 그리고 사계의 가장 정밀한 판본으로 통용되고 있는 일본의 『大正大藏經』도 바로 우리의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통탄스러운 것은 조선조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모든 『금강경』이 이 正本인 우리 『고려대장경』 本을 거의 하나도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의 『금강경』강해는 『고려대장경』판본을 최초로 사용한 우리말 『금강경』이라는데 무한한 자부감을 느낀다. 『고려』本을 원칙으로 하고 『大正』본과 비교해가면서 나의 텍스트를 정확하게 구성할 것이다. 그리고 이 텍스트에 昭明太子의 分節을 따른다. 콘체도 이 分節을 썼다. 이 『고려』本 羅什텍스트를 주축으로, 가능한 모든 텍스트를 비교 연구하여 현재 여기에 있는 우리 한국사람들에게 가장 의미있는 방식으로 나의 譯文의 문의를 창조해 나갈 것이다.

『고려대장경』이 라 하는 것은 현종때 새긴 초조대장경판이 1232년(고종19) 몽고군의 침입으로 불타자 당시의 집권자인 崔瑀등을 중심으로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16년만에 再雕, 완성한 것이다. 『고려대장경』은 정확하게 말하면 "高麗國大藏都監版"이라 해야 옳다. 우리의 『금강경』은 1238년(戊戌)에 彫造된 것이다.

나의 생애에서 이 지혜의 서를 처음 접한 것은, 60년대 내가 당시로서는 폐찰이 되다시피 쇠락하였던 고찰, 천안의 광덕면에 자리잡고 있는 廣德寺에서 승려생활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계통을 밟아 정식 출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깎고 승복입고 염불을 외우며 승려와 구분없이 지냈으니 出家人과 다름이 없었다.

그 런데 어느 날, 구멍 숭숭 뚫린 판자때기로 이어붙인 시원한 똥숫간에 앉아 있는데, 밑닦으라고 꾸겨놓은 휴지쪽 한 장에 『般若波羅蜜多心經 』이 현토를 달아 뜻이 통하도록 해석되어 있는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랫도리에 힘을 주는 일도 잊고 꾸부린 가랑이가 완전히 마비되도록 하염없이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랫도리에 힘을 주는 일보다 내 시선이 닿고 있는 휴지쪽에서 튀어나오는 의미가 내 몸뚱아리에 헤아릴 수 없는 모종의 전율을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문자그대로 불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불교학개론 강의를 듣고 불교를 몸소 체득하고 싶어 출가승이 되었건만, 나는 "반야심경"이란 그냥 아무런 의미도 되지 않는 그냥 염불용의 기호체계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것이 어떤 일정한 의미를 갖는 경전 텍스트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중노릇을 하기 위해 외우고만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나같이 문외한인 자들에게는 리얼할 수 있는 무지의 소치였다.
한줄, 한줄,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엉성한 현토 문장들을 따라가면서, 그것이 나에게 던지는 어슬프레한 영감은 나의 짧은 생애에서 미처 경험할 수 없었던 어떤 태고의 푸릇푸릇한 이끼와도 같은 신비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사실 "불교"에 대해 최초의 영적 체험을 하게 된 것은, 어느 대선사와의 만남이 계기가 된 것도 아니요, 내가 수없이 들었던 세계적인 불교학 석학의 열띤 강의속에서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싱그러운 호도닢 향기바람이 구수한 분뇨에 배어 태고의 토담의 정취를 한층 더 짙게 만들어주는 바로 그 측간의 마루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지쪽 한 장과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의 전율이 나의 인생에 "佛學"이라고 하는 인류지혜의 보고를 맞아들이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우리네 인생이란 참으로 우연의 연속인 것이다. 그 때 나는 『반야심경』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분명 내가 평생토록 考究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진리의 체계가 담뿍 含藏되어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고, 언젠가 내손으로 그것을 상세히 파헤쳐 보리라고 결심하면서 마비된 다리를 어루만져가면서 그 뒷깐을 절룩절룩 걸어나왔던 생각이 난다. 그 "언젠가"가 삼십여년의 세월을 소요하게 될 줄이야!

그 뒤로 나는 불자 독송의 경전들을 똥숫간에 가지고 가서 뒤적이고 앉아 있는 취미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다음으로 접한 책이 바로 그 유명한, 『다이아몬드 수뜨라』라고 불리우는 『금강경』이었던 것이다. 『금강경』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우선 "금강석" 즉 "다이아몬드" 생각이 나고, 무언가 보석 중의 보석,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무엇, 그리고 가장 귀한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어 『금강경』하면 뭔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 이는 지혜로 가득찬 위대한 경전이라는 선입견이 들었던 것이다. 지혜의 다이아몬드를 발견하자!

나는 곧 실망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반야심경』을 접했을 때는, 그 분량이 매우 적고, 또 그 압축된 뜻이 가물가물했지만, 아주 정확한 논리체계들이 수없이 착종되어 있고, 그것을 풀어내기만 하면 우주의 비밀이 다 풀릴 것과도 같은 그러한 농축된 秘義의 느낌이 강렬히 들었다.
그러나 『금강경』은 비교적 짧은 글이기는 했지만 『반야심경』처럼 압축되어 있지도 않았고, 우선 나에게 아무런 "논리적인" 사색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바가 없었다. 그리고 같은 말의 반복이 심했고, 따라서 아주 진부하고 상투적인 말의 나열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마디로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금강경』은 "대중을 위한 용속한 경전"일뿐, 학문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유치한 책이라고 덮어버리고 말았다. 『반야심경』과 『금강경』과의 최초의 해우는 이러한 나의 대비적 인상속에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그렇게 3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는 『금강경』을 내 인생에서 다시 꺼내볼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여유를 얻지 못했다. 『금강경』과의 眞劍一戰은 30세기가 종료를 고해가는 1999년 여름, 도올서월 제12림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푸릇푸릇한 동승의 모습이 이제 원숙한 노승의 모습으로 변했건만 진정코 내가 그 반야의 一端이라도 체득했단 말인가?

회고컨대, 푸릇푸릇한 청춘의 시기에, 지적인 갈구에 영혼의 불길이 세차게 작열하고 있었던 그 시기에 내가 『심경』을 포하고, 『금강경』을 폄한 것은 실로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금강경』과 『심경』은 그 성립시기가 약 4세기정도(정확한 시기를 추정키는 어렵지만)의 세월을 격한다. 비록 『심경』은 『금강경』에 비해 분량이 극소한 것이지만, 그 내용은 『금강경』보다 훨씬 더 복잡한 개념과 논리적 결구로 이루어져 있다. 『금강경』은 원시불교의 아주 소박한 수뜨라의 형태, 즉 "如是我聞"으로 시작하여 "歡喜奉行"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소박한 붓다설법의 기술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심경』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심경』은 이미 이러한 초기 대중운동이 당대의 최고의 식자들에게 소화되면서 집필되기 시작한 모든 철학적 論書의 개념들을 소화하고, 그것을 압축하여 놓은, 실생활적 설법이 아닌 철학적 논설이다. 따라서 『心經』의 진정한 이해는 龍樹의 『中論』書와 같은 三論의 논지라든가 반야경 계열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空사상에 대한 역사적이고 개념적인 인식의 전제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심경』이, 『금강경』에서 표방하고 있는 사상내용의 5세기 동안의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전개를 압축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면, 『금강경』은 『심경』의 모든 가능성을 포섭하고 있는 비개념적·비논리적 胚胎와도 같은 것이다.

예 를 들면, 『심경』하면 우리는 그 유명한 "色卽是空, 空卽是色"하는 空사상의 문구를 떠올리고,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滅"하는 八不中道의 문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금강경』에는 "空"(sunya)이라는 mf자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금강경』은 반야경전의 대표경전임에도 불구하고, "반야사상=空사상"이라는 일반적 도식이 성립하기 이전의 초기경전인 것이다. 그리고 『금강경』원문에는 "小乘"이라는 표현도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표방하는 사상운동을, "小乘"에 대한 "大乘"이라고 개념적으로 규정짓는 역사적 의식이 형성되기 이전에 성립한 경전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승경전이 사용하고 있는 일체의 상투적인 개념들이 『금강경』에는 개념화된 형태로 등장하는 바가 없다. 『금강경』은 古拙하나 참신하기 그지없고, 소략하나 세밀하기 그지없고, 밋밋하나 심오하기 이를데 없다. 개념과 개념의 충돌의 벌판에서 논리의 창칼을 휘두르는 好戰의 만용을 즐기었던 동승, 도올이 그러한 고졸한 청신의 맛을 흠상하기에는 너무도 어렸던 것이다. 삼십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겨우 그 일단의 妙味를 씹게될 줄이야!

인도 古語인 산스크리트語 데와나가리(Devanagari)는 장음과 단음의 주기적인 배열, 우리말에서 보기 어려운 복자음의 중첩, 그리고 자음과 모음, 받침의 율동적인 배열, 그리고 모든 자음뒤에 숨어있는 "아" 음…… 하여튼 데와나가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것은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이기 전에 하나의 신적 영감을 표현하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經"(수뜨라)이라고 부르는 원래의 최초의 의미는 "구슬을 꿴 스트링, 코드"라는 것인데, 이것은 바라문교에서 說敎의 내용을 짧은 문구로써 간결하게 압축시켜 암송에 편리하게 만든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최초의 의미는 "經"이라는 역사적 의미 전반에 남아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원래 산스크리트어의 교의전통은 일차적으로 써서 보는 것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암송하여 듣는 것을 위한 것이었다. 데와나가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우빠니사드 전체를 정확히 암송하는 자가 많다고 한다.

예 를 들면, 龍樹의 『中論』은 분명 문자로의 집필이 구전에 앞섰을 것이다. 그러나 『금강경』은 문자화되기 전에 口傳으로 성립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서 『금강경』은 보고 분석해야 할 철학서가 아니라, 듣고 즐기고 깨달아야 할 음악이요, 한 편의 詩인 것이다.
『금강경』을 잘 들여다보면, 第一品으로부터 전체의 절반에 해당되는 第十六品까지가 하나의 단락을 형성하고(如是我聞…果報亦不可思議) 第十七品으로부터 第三十二品까지가(爾時須菩提白佛言……皆大歎喜, 信受奉行金剛般若波羅蜜經) 또 하나의 큰 단락을 형성하여 前半의 주제를 後半에서 반복하고 있는 인상을 받는다. 이러한 『금강경』의 전반과 후반의 語句文義의 似同을 놓고 역사적으로 주석가들이 논의를 폈다. 그 유명한 鳩摩羅什의 수제자 僧肇는 前半은 衆生空을 說한 것이요 後半은 法空을 말한 것이라 했고, 智?와 吉藏은 이를 重說重言으로 간주하고, 전반은 前會衆을 위한 것이요 후반은 後會衆을 위한 것이며, 또 전반은 利根을 위한 것이요 후반은 鈍根을 위한 것이며, 또 전반은 緣을 盡한 것이요 후반은 觀을 盡한 것이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논의가 결국 『금강경』이 보는 책이 아니라 듣는 음악이요 시라는 그 원초적 성격과, 그리고 문헌비평상 간파될 수 있는 구전문학 편집구도의 특이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구차한 논설이라고 생각한다.

베 토벤의 "운명교향곡"을 잘 분석해보면, 처음에 베토벤의 멀어가는 귀를 두드리는 운명의 사자의 소리라 하는 "따다다 따안~"하는 테마가 나온다. 그리고는 그 테마가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되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전체가 하나의 테마의 변주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주제와 변주"라는 이러한 형식은 확대, 축소, 혼합, 세분, 생략과 부가, 반진행, 역행, 반진행의 역행 등의 다양한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베토벤은 화성음악시대에 있어서 이러한 변주를 "자유변주"라는 아주 독특한 새로운 형식으로 개발하여 뛰어난 예술적인 경지를 개척했던 것이다. 주제의 각종요소를 성격적으로(음형, 화성, 리듬의 변화를 통하여) 변화시킴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본래의 주제와 전혀 다른 국면을 전개시키게 되는 것이다.

나는 『금강경』이 바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과 같은 음악적 구성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교향곡을 들을 때, 많이 들은 사람들은 거개가 그 교향곡의 멜로디를 다 암송하고 듣는다. 마찬가지로 『금강경』은 현실적으로 그것을 다 암송하는 자들에게 만 들리게 되어 있는 명심포니중의 명심포니인 것이다. 『금강경』은 외워야 한다. 『금강경』은 受持讀誦해야 한다. 『금강경』은 생활속에서 느껴야 한다. 『금강경』은 그 향기속에 취해 있을 때만이 그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 묘미는 곧 간결한 주제와 그 반복의 묘미인 것이다.

『금강경』은 어느 경우에도, 한 구절도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 다르게 되어 있다. 그것은 반복이 아니라 변주다. 그리고 그러한 반복이 없으면 『금강경』은 『금강경』의 오묘한 맛을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금강경』은 워낙 심오하고 워낙 근본적이고 워낙 철저한 "無我"의 주제를 說하고 있기 때문에, 그 주제는 끊임없이 변주형식으로 반복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인지될 길이 없다. 그것은 철학의 논서가 아니라 깨달음의 찬가이다. 그것은 번쇄한 개념의 나열이 아니라 득도의 환희를 불러일으키는 신의 부름이다. 아~ 위대하도다! 금강의 지혜여!

『금강경』은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죠니워커나 발렌타인 보다도, 까오량이나 마오타이 보다도 더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昭明太子가 이에 취해 그 유명한 分節을 창조했다면, 나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 『금강경』의 향기에 취했던 자로서, 두 얼굴의 사나이, 총명과 예지로 번뜩이는가 하면 탐욕과 음험한 살육의 화신인 사나이, 경세치용의 명군인가 하면 조선의 역사를 부도덕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나이, 首陽大君 世祖를 서슴치 않고 들겠다.

우리날 조선왕조의 초기의 사상적 형세는 실로 불교와 유교라는 兩大 의식형태의 충돌로 특징지워진다. 조선왕조가, 교과서에 나오듯이 1392년 7월 17일 武將 李成桂가 王으로 추대되는 사건으로 성립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수 집단들 사이에서 일어난 권력의 변화에 불과할 뿐이요, 역사의 章이 한날 한시에 바뀌는 예는 없다. 박정희의 등극으로 하루아침에 우리나라가 경상도 왕국이 된 것도 아니요, 김대중의 취임 그날로 우리나라가 전라도 왕국이 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박정희의 치세기간동안에 사회각계각층에 경상도 사람이 점진적으로 득세한 것이 어김없는 사실이라면, 그에 안티테제를 걸고 나온 김대중의 치세기간에 경상도 일변도의 인재포진에서 전라도 사람들의 득세가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간의 변화는 점진적일 뿐 아니라 많은 충돌과 타협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사태라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조선왕조초기의 불교와 유교의 대립형국은 이와 비슷한 것이다. 유교는 새로운 조선왕조의 이념기반이었다. 그리고 유교적 이념을 구현하고자 하는 儒臣들은 고려왕조에서는 권력층에서 비교적 소외되었던 신진세력이었다.
김대중정권의 성립과 동시에 전라도사람들의 입지가 싹 바뀌듯이, 이성계정권의 성립과 동시에 유신들의 입지가 싹 바뀌었다. 조선왕조에 들어오면, 유교는 유신들을 중심으로 하는 엘리트 관료주의 철학이 되어버리고, 구왕조의 기반이었던 불교는 기묘하게도 역으로 민중사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유교의 문치주의의 極盛을 과시하는 세종조의 찬란한 치세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 만년에 세종이 불교에 기울어 佛敎式 祭禮를 거행하고, 孝寧大君의 漢江水陸齋를 지원하고, 興天寺를 重修하고, 佛經의 金書와 轉經法會를 강행하고, 世宗 30年에는 급기야 內佛堂을 건립하였던 것은 그 나름대로 피치못할 역사의 아이러니를 잘 말해주고 있다. 廣平·平原大君의 두 아들이 죽고, 中宮 昭憲王后를 연이어 잃고,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는 인간적 연약함을 틈타, 유교적 合理主義 정신의 한계가 노출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세종의 好佛은 인간적 차원 이상의 조선왕조초기 권력구조 자체의 구조적 갈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세종 자신이 집현전을 창출하였고 또 집현전을 통해 길러진 인재들의 活用으로 조선왕조의 유교적 기반을 공고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년에 이를수록 집현전의 비대와 그 성격의 언론·정치기관으로의 변모가 왕권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자초하게 되었다. 집현전의 권위가 팽대됨에 따라 원로학자들은 『周禮』적인 관념론이나 막연한 幕華주의에 빠져 현실감각을 상실해 갔고, 정치적으로도 그들은 자연히 國王專制체제보다는 儒臣權門에 의한 귀족정치를 원하게 되었다. 이러한 王權고립, 특히 엘리티즘속에 경색되어가는 王權의 민중으로부터의 소외감을 막기 위한 世宗말년의 두가지 장치가 있었으니, 그 하나가 바로 "한글창제"인 것이요, 그 하나가 "好佛"인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지배권력을 대변하였던 불교가, 조선조에 내려오면, 민중의 갈망을 대변하는 형태로 바뀌는 것 또한 역사의 ?轉이다. 요즈음 현세적 권력과 결탁하는 대부분의 엘리트들이 기독교세에 직접·간접으로 가담하고 민중들은 불교에 노출되는 현상과, 당대의 유교-불교의 관계는 상응성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한글창제라는 우리민족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이, 집현전학사들의 외면과 반대 속에 진행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유교를 견제하는 의도에서 나온 好佛정책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후에 『금강경언해』 등의 佛經국역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 『月印千江之曲』이니 『釋譜詳節』이니 하는 우리말로 이루어진 위대한 불교서사시가 창작되었다는 사실, 또 인류역사에 유례를 보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우리민중 자신의 불교음악인 『靈山會上曲』이 작곡되었다는 사실 등등은, 抑佛崇儒정책을 추구하는 유교이념국가인 조선에서 왜 언문과 불교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등장했는가에 대한 절묘한 역사의 틈새를 엿보게 하는 것이다.

세조는 원래 세종의 아들 중에서는 가장 영민하고 왕위에 걸맞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렇게 흘러가지 않은 역사를 武斷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世祖의 실책이다. 世祖의 치세는 어느 왕 못지 않은 훌륭한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교정치의 생명은 名分이요 도덕이다. 세조의 쿠데타는 이 땅의 많은 士林들을 변절자로 만들었고 이 땅의 지식의 도덕적 정통성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世祖의 業은 이방원이 지어놓은 業의 연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방원의 惡業은 그 나름대로 역사적 필연성이 있었다. 그러나 세조의 惡業은 개인의 탐욕에 불과했다.

세조는 이미 수양대군시절부터 世宗이 內佛堂을 건립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도왔고, 승려 信眉의 아우인 金守溫과 함께 佛書의 번역을 監掌했다. 그가 군주가 된 후에는 그는 大護佛王이 되었다. 그의 행적은 바로 『金剛經』이 說하는 진리에 모두 위배되는 業의 삶이다. 그러나 그는 『금강경』에 몰입했다. 오늘 우리에게 전해내려오고 있는 『금강경언해』는 바로 世祖가 직접 한글로 吐를 단 것이다. 『世祖實錄』 卷三十二, 十年甲申二月八日(辛卯)條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보인다.

工曹判書 金守溫, 仁順府尹 韓繼禧, 都承旨 盧思愼 등에게 命하여 『金剛經』을 譯하게 하였다.

국 역은 주로 한계희가 한 것이라 하고, 孝寧大君과 判敎宗事인 海超 등의 승려에게 교정케하였다 한다. 哀史의 주인공 端宗, 사육신 등, 세조의 잔악한 칼날에 베힘을 당한 수없는 원혼의 피맺힌 한을 압구정 앞을 흐르는 도도한 한강물에 씻어보내기라도 할 셈이었나?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의 칠보공덕의 무상함을 깨닫기래도 했단 말인가? 자신을 질타하고 있는 『금강경』의 無我相의 명령에 무릎을 꿇을 줄 알았던 과거 君主들의 인간적 고뇌와 정신적 깊이를 다시 한번 새겨 본다.

『금강경언해』는 昭明太子가 分節한 羅什漢譯本과 六祖 慧能의 『口訣』이 실려있고 이 兩者의 국역이 다 실려 있어, 나는 그 판본과 국역을 다 참조하였다. 불행하게도 세조언행본 『금강경』판본은 아주 후대에 성립한 열악한 판본이며 우리 해인사 本과는 出入이 크다. 연세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에 있는 張景俊君(도올서원 제12림 재생)이 『금강경언해』를 내가 활용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타이프치고 古語를 현대말로 옮겨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공로에 감사한다. 내가 『금강경』을 번역함에 있어 우리 옛말의 아름다운 표현이 참조될 부분이 있을 대는 그것을 살리도록 노력하겠다. 내가 참고로 한 판본은 弘文閣 영인본 『金剛經諺解 上·下』(1992)이다.

우 리나라에는 일찍이 元曉가 『金剛般若經疏』(散佚하여 傳하지 않는다)와 같은 주석서를 남겼고 그 뒤로도 『금강경』에 대한 주석이 끊이지 않았으나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鮮初의 高僧, 涵虛堂 得通己和(1376~1433)의 『金剛經五家解說誼』를 든다. 여기 五家解란, 唐 圭峰宗蜜의 『金剛經疏論纂要』, 六祖慧能의 『金剛經解義』(口訣), 梁雙林傳大士의 『金剛經提綱頌』, 宋 冶父道川의 『金剛經』 着語와 頌, 宋 豫章宗鏡의 『金剛經提綱』을 지칭한다. 이 다섯 종의 책이 이미 중국에 단행본으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 다섯 종이 合本으로 등장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金剛經五家解說誼』에서부터이다. "說誼"란 바로 이 五家解에 대한 기화스님의 주석이다. 『說誼』 이전에 『金剛經五家解』란 책이 기존하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으나 그것이 과연 중국에서 편찬된 것인지, 한국사람들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조차 확실치는 않다. 『五家解』의 성립 자체가 己和스님의 『說誼』를 위하여 편집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己和스님의 "說誼"는 오직 『金剛經』 本文과 冶父와 宗鏡의 저술에 한정하여 주해했을 뿐, 나머지 圭峰, 六祖, 傳大士의 三家에 대해서는 오자의 정정에 그칠 뿐 손을 대지 않았다. 이것은 己和스님 자신의 사상적 경향과 관련이 있다. 즉 冶父(야보)와 宗鏡의 주해만이 禪家的 입장을 드러내는 참고서적 가치밖에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己和는 『금강경』을 敎外別傳의 禪風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후의 성종때 출간된 언해본인 『金剛經三家解』는 冶父의 『頌』과 宗鏡의 『提綱』과 己和의 『說誼』만을 따로 분리하여 국역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금강경』 이해의 선적 취향을 잘 나타내준다고 하겠다. 나는 『金剛經五家解說誼』도 참고하였다. 우리시대의 존경스러운 석학, 高翊普先生의 피땀이 서려있는 東國大學校『韓國佛敎全書』(第七冊)本을 썼다.

그런데 나는 본시 기존의 주해서들을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 참으로 필요하지 않으면 쳐다보지 않는다. 元曉정도나 된다면 혹 내가 심복할 것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과거 중국의 善知識이나 한국의 高僧의 주해들을 쳐다보면 대부분이 말장난이요, 그 말장난의 이면에 그들의 심오한 뜻이 숨어있는지는 몰라도 이미 우리의 인식체계나 언어표현과 맞지를 않아 크게 답답함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주해는 『금강경』 산스크리트 원문과 그 인도철학·인도문화적 배경을 정확히 이해하질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한계가 너무도 명백한 것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금강경』은 근본적으로 禪風으로 접근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내가 깨달은 바를 說할 뿐이다. 나는 도올서원 제12림에서 『금강경』을 강의할 때 기본적으로 『금강경』 羅什譯 고려본과 산스크리트 원문이외는 읽지를 않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나온 모든 『금강경』 해설서의 공통된 결함은 자기 자신의 이해를 빼놓고 객관적인 주석만을 달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본문의 해석에 있어서 조차도 명료한 논리적 구조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읽어봐도 뭔말인지 모르게만 문장을 구성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글 씀씀이가 아주 인색하여 『금강경』이 나에게 미칠 수 없는 먼 책으로 만들어 놓거나, 쓸데없는 남의 주석이나 나열해 놓거나, 그렇지 않으면 되도 않는 자기말만 주절거려서 도무지 한문원전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게 흐려놓고 있다는 것이다.

『금강경』은 梵本이 엄존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금강경』은 梵本의 번역서이다. 그러나 우리가 『금강경』을 말할 때는 결코 梵本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금강경』이라는 인식을 형성해 온 것은 羅什의 『金剛經』이다. 그리고 그 의미체계는 범본과 무관한 독자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범본의 의미체계가 羅什本 『금강경』의 우리이해를 돕기위한 레퍼런스(참고서)가 될 수 있을지언정, 한문 『금강경』이 梵本으로 환원되어야 비로소 그 정당한 의미가 드러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려는 『금강경』은 일차적으로 羅什의 漢譯 『금강경』 自體의 의미체계인 것이다. 그리고 그 正本은 오직 우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장판이 유일한 것이다. 그것이 한문으로서 이해되어온 역사적 의미의 총체를 명료하게 밝히는 작업이 『금강경』이해의 최초 관문이다. 그것에 준하여 他本이나 他梵本을 비교연구함이 타당하다. 梵本 자체가 定本이 없는 상황에서(여러 異本이 있을 뿐이다) 어찌 本을 밝히지 않으면서 末의 雜華만을 쫓을손가! 나는 羅什 한역 『금강경』의 한문의 정확한 의미를 나의 실존의 의미에 드러난 그대로 說할 뿐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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