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존 이론

[스크랩] 아인슈타인의 E=mc^2 그 진실과 오해를 알게되면 제로존 이론을 열광케 한다.

자유지향 2013. 2. 7. 22:06

 

아인슈타인의 E=mc^2 그 진실과 오해를 알게되면 제로존 이론을 열광케 한다.

 

I have deep faith that the principle of the universe will be beautiful and simple. (Albert Einstein)

 

 

 

나는 우주의 원리가 아름답고 단순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물리학자

 

출생-사망1879년 3월 14일 (독일) - 1955년 4월 18일

 

띠 토끼띠

 

신체175cm

 

 

<아인슈타인>이 유명인이 된 후 <채플린>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채플린>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네 주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누구나 당신의 예술을 이해하고 열광하니까요."

 

그러자 <채플린>은 바로 받아서 한마디 했습니다.

 

 

찰리 채플린 (Charles Chaplin)

 

영화배우, 영화감독

 

출생-사망1889년 4월 16일 (영국) - 1977년 12월 25일

 

본명 Charles Spencer Chaplin별자리양자리 띠소띠

 

신체165cm

 

가족딸 제랄딘 채플린, 외손자 제임스 시어리

 

데뷔1914년 영화 '생계'

 

 

 

<채플린>이 <아인슈타인>의 말을 받아서 한말은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아닙니다. 당신이야말로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아무도 당신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열광하니까요."

 

 

 

<아인슈타인>과 <채플린>이 서로 만나 담소하고 있는 사진 입니다.

 

 

 

실제의 <채플린>의 모습은 뭇 여성들이 열광할만한 미남이지 않습니까?

 

키는 <아인슈타인>이 한 10cm 정도 큽니다.

더보기

제로존 ;

우리의 영웅 <아인슈타인>이 태어난 해가 1879년 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34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955년에 세상을 떠났으니까 <아인슈타인>은 76살까지 이 세상에 산 것 같습니다.

그는 독일의 촌도시 울름(ulm)에서 태어났는데 그 이름을 보면 재미난 구석이 있습니다.

einstein = ein + stein --> one stone --> 하나 + 돌 --> 한돌 --> 일석(一石)

그러니까 <아인슈타인>의 이름은 제로존 이론에서 나오는 숫자 '1' 의 물리적 정의에 의하면 '빛 알갱이 하나' 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하튼 <일석>은 우리 인류가 낳은 참으로 위대한 물리학자임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전기에 의하면 <아인슈타인>, 일석은 태어났을 때 돌대가리라 할 만큼 네살때까지 말을 잘 못하고 어벙벙해서 부모는 혹시 지진아가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고 합니다.

거의 10세 때까지도 모국어인 독일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염려를 끼쳤으며 학교에서는 교사가 도저히 쓸모있는 인간이 되기에 글렀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대학교수직을 얻기 위해서 강사 생활을 한 모양인데 후원자 격인 교수가 수업을 참관하면서 그의 강의 능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여 어렸을 적부터 타고난 언어적 능력의 미성숙이 도리어 창의력 등의 다른 곳으로 분출되어 나중 불세출의 천재적인 면모를 꽃피게 하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아인슈타인>은 약 200년 간 굳건히 지켜 왔던 고전 자연과학의 근간을 뒤흔드는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는데 그 때가 바로 1905년 입니다.

첫 논문, 특수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해 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08년 전의 해가 되겠네요.

물리학자들은 입을 모아서 이 해를 '기적의 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물리학자들은 입을 모아서 '기적의 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요?

그전에도 수많은 위대한 자연 과학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 입니다.

 

영어권인 서구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혹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떤 언어학자가 옥스퍼드 대백과 사전을 펴 놓고 오랜 시간동안 분석해 보니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 바로 시간이었습니당.!

시간, time !

그러고 보니까 그럴 듯하게 들려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그 경과 기간인 세월이라는 타임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지불식 간에 의식이나 인식의 한 가운데 빈틈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니 그 보다도 존재에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세월이라는 시간은 참말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스테리 그 자체 입니다.

요즘 제로존은 초침까지 귀에 들려오는 듯 합니다.

착칵 착칵 착칵 .....신문 방송에 나이 60이 넘어가는 사람에게 항시 붙어있는 수식어 '노인 !'

그 참 딱 듣기 싫은 소리 입니다.

장년이라고 하면 어디 덧나나?

 

금방 진료실에 제로존이 잘 아는 제로존 가족 한명이 들렀는데 나이가 올해 마흔 여덟이라고 대화중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로존이 말하기를 '한 10년 있으면 니도 환갑이네 !' 하니까 극구 부인하더군요.

오십 여덟이나 육십이나 거기서 거긴데 하니까 절대로 아니라고 하더군요. ㅋㅋ

참 세월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특별히 한 일 없이 허무?하게 지나가고 있다고 요즘처럼 빠른 세월을 생각합니다.


우리의 주인공 <아인슈타인> 할아버지는 우리 모두가 일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시간, time'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그야말로 일찌기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혁명적인 사건의 도화선을 불태웠던 것 입니다.

그 사건의 일지를 따라가 보면 바로 그의 첫 논문인 <특수 상대성 이론>이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이전에 수많은 학자들이 시간의 수수께기나 정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왔지만 그중에서 나름대로 이론적인 설명을 가한 것이 대표적으로 바로 <뉴턴>의 시간 입니다.

<뉴턴>의 시간은 모든 사람들이 심증적으로 그러하리라고 생각했던 시간에 대한 해석을 성전에 올린 글처럼 제대로 새겼던 것 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이 갑이나 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흐르고 있다는 바로 그 시간 개념 입니다.

갑이 다섯 시간이 지나면 을도 다섯 시간이 지나고 갑이 나이 10년을 묵으면 을도 10년을 묵는 것이 거의 상식적이고 일반화 된 논리로 생각해 왔던 것 입니다.

이런 <뉴턴>의 시간을 물리학자들은 '절대 시간'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절대적인 시간인 누구나 공평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그 시간의 흐름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인해서 시간의 흐름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고무줄 같이 된 것 입니다.

바로 고무줄 시간 입니다.

아, 제발 그런 고무줄 시간이 이 세상에 존재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로존은 한없이 순수한 그 어린 시절의 꿈같은 시간으로 되돌아 가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대로 가고....... ㅋㅋㅋ

형님 동생이 달라지겠지요. 삼강오륜이 물구나무 서는 것이 예사롭게 됩니다.

바로 이 시간의 개념에서 <아인슈타인>의 쌍둥이 패러독스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빛은 좋겠네, 빛은 나이를 전혀 묵지 않으니까요.

벌써 우리는 시간의 개념에 대해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아인슈타인> 때문이지요. '기적의 해'라는 말이 고스톱 점수 계산처럼 그냥 나오지 않았던 것 입니다. !

 

 

...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면 시간을 거슬러서 옛날 옛적 그리운 그러한 설 날 풍경에 마음 껏 젖어보고 싶습니다.

위의 댓글에서 언급했듯이 지난 1905년은 물리학자들이 <아인슈타인>의 시간과 공간에 관한 혁명적인 상대성 이론 등을 위시해서 논문 5편이 나왔다고 두고 두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사가들은 말하기를 또 한번의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부르는 해가 있었는데 바로 과학의 아버지라고 칭송하는 <뉴턴>이 그전까지의 물리학을 정량적 과학으로 변화시킨 해로 1666년이 바로 그 해 입니다.

1905년과 달리 '고전 과학의 기적의 해'라고 부르는 모양 입니다.

1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뉴턴>은 역학의 기본 법칙(뉴턴역학), 보편 중력의 법칙, 광학적 발견을 이룩해 냈던 것 입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뉴턴>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은 모양입니다.

 

<뉴턴>은 한 광신적인 청교도로부터 한 처녀를 죽인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있는 모양입니다.

게다가 동성연애의 경향을 감추고 있었던 사람으로 잔악하고 사소한 것에 분노를 쉽게 터트리는 성품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는 한 때 조폐국장을 역임했는데 위조한 사람에게 가혹한 형벌을 가하는 생사여탈권을 행사함과 동시에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여러가지 사건으로 자신의 개인적 야망을 추구하는 일에 거의 파렴치할 정도의 사람이라고 쓴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가들은 그러한 심리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뉴턴>은 오늘날 <아인슈타인>을 제외하고 넘겨 볼 사람이 없는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성취했다는 점만은 누구나 부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적 업적을 제외하고서라도 <아인슈타인>은 개인적 면모의 여러가지 측면에서 살펴 볼 때 오늘날 '위대함의 표준' 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혼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 입니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 청문회 나가면 <아인슈타인>은 일사천리 수상으로 추대받고 <뉴턴>은 바로 아웃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시대적 상황이 전혀 달랐기 때문에 인간적 위대성과 관련하여 단순 비교 해석 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1905년 소위 기적의 해에 여러달에 걸쳐서 발표한 논문을 두고 오랜세월 동안 히틀러 치하의 물리학자들은 공식적으로 특히 상대성 이론을 거부한 바 있습니다.

약간의 진부한 지식에 얼마간 제멋대로 첨가한 것으로 이루어진 얼빠진 이론들이라고 폄하했던 것 입니다.

 

구 소련 백과사전에서는 1925년에 상대성 이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으로부터 수용할 수 없다고 선언한 바 있는데 스탈린 사후에야 겨우 수용하기에 이르렀던 것 입니다.

그 이후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적대성을 과학적 연구와 독단 사이의 낡은 갈등이 쉽게 끝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번 정도로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관한 저서를 접하게 된 사람들도 새로이 기억이 나겠지만 그는 말단 하급 관리로서 특허국에 있으면서 연구해 온 환경은 현대 과학자들로서는 도저히 불가능 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에 있었다고 전해 옵니다.

전문적 물리학자들 뿐만 아니라 전문서적, 학술지 조차도 접할 수 없는 상황으로 특허국 사무실은 말할 것도 없고 베른 대학 도서관에서도 당시 이러한 참고서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고작 물리학 정식 수업을 받았던 취리히 공과대학에서는 맥스웰 방정식을 취급하는 강의조차 없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지도나 격려 없이 오직 혼자서 자기 스스로의 연구에만 의존했을 뿐이라는 것 입니다.

 

첫 논문을 발표했던 1905년을 지나 1909년까지 근 4년 동안 정규직인 직책을 얻지 못하고 한 때는 오늘날말로 생활비 마련의 돈 때문에 죽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되고 있습니다.

그의 첫 부인은 세르비아 출신 여학생으로 <밀레바 마리치>이며 1903년에 결혼하여 1904년에 첫 아들을 두고 1910년에 둘째 아들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공과대학 과학 교사 양성을 위한 학부에 소속되어 있다가 부인을 만난 것으로 첫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그 시기의 1905년에 역사적 논문을 발표했는데 <아인슈타인>은 나이가 들었을 때 그 당시의 해를 뒤 돌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1905년 그 해는 내 마음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때의 나이가 <뉴턴>이 겨우 스물네살 때 첫 논문을 발표했을 때라면 <아인슈타인>은 겨우 스물 여섯 나이였습니다.

 

1905년 3월 논문은 빛의 입자적 본성에 관한 논문을 양자역학이라는 큰 구조물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으며 4월 논문은 박사 학위에 관한 논문이었으며 5월 논문은 브라운 운동에 관한 것이었으며 6월에 이르러 드디어 특수 상대성 이론에 관한 논문이 발표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E=mc^2 이라는 공식이 등장하는 논문은 바로 6월 논문의 예기치 못한 결과로서 나온 논문으로 바로 동년 1905년 9월 논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1905년에는 그야말로 폭풍이 휘몰아 치듯 영감과 직관속에 나온 시리즈 논문 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가장 주목할 논문은 거의 10년 뒤에 발표된 일반 상대성 이론 입니다.

 

프린스턴에서 함께 일했던 물리학자 <루돌프 라덴브로크>는 <아인슈타인>의 독자적 연구 행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 당시 베를린에는 두 종류의 물리학자들이 있었다. 한 종류는 <아인슈타인>이고 다른 한 종류는 나머지 모든 사람이었다."

특히 그가 발표한 1905년의 3월의 첫 논문은 빛 입자론은 들고 나왔는데 발표한지 20년 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름과 이론이 물리학자들에게 본격적으로 먹혀 들어가기 시작한 계기는 폭풍이 몰아치던 1905년의 기적의 해에 이룩한 논문들이 아니고 1915년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나온 한 예측이 영국 물리학자 <에딩턴>에 의해서 확증되던 다음해부터 였습니다.

말하자면 1917년 <아인슈타인>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는데 노벨 물리학상 위원회는 강하게 거부했습니다.

위원회 위원들은 어느 누구도 상대성 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더 나아가 <에딩턴> 실험의 타당성까지 의심하기에 이르렀던 것 입니다.

소속된 물리학상 위원회의 한 지도위원은 다음과 같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설사 온 세상이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아인슈타인>은 결코 노벨상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나마 위원회 중에 든든한 후원자 한명이 있었는데 바로 <칼 빌헬름 오젠>이었습니다.

1905년 3월 논문에서 제시된 빛 입자론은 물리학자들에게 널리 거부되고 있었기 때문에 수상 명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3월 논문에서 다루어졌고 <로버트 밀리칸>에 의해서 정밀하게 검증된 듯 광전효과 이론이 수상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던 것 입니다.

어쨌든 상대성 이론에 대한 반감은 지독했는데 여론은 무시할 수 없고 해서 광전효과 법칙을 발견한 공로로 물리학상 위원회의 합의가 어렵게 나왔습니다.

그해가 바로 1921년 이었는데 사전에 위원회의 약정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 약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대성 이론에 관해서는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벨상 수상 강연은 반드시 광전 효과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1922년 12월에 있었던 공식 노벨상 수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뒷날 그는 노벨상 강연을 1923년 여름에 스톡홀름이 아닌 고텐부르크에서 하기로 조정했습니다.

그 강당 맨 앞줄에는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프 5세>가 참석했는데 이 국왕이 하필 상대성 이론에 관해서 너무나 호기심이 많았던 나머지 그 이론의 설명을 듣고 싶어했던 것 입니다.(나도 다시 젊어질 수 있겠나?ㅋ)

결국 <아인슈타인>은 노벨상 강연회에서 약정에 관계없이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 입니다.

주최국 국왕이 듣고 싶어 하는데 그 권위를 떨치고 있었던 노벨상 위원회조차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 입니다.

'만사왕통'이라는 말이 안 나온것이 이상하지요.

 

이제 제로존은 게시글에 올린 상대성 이론에 약방의 감초처럼 나오는 그 유명한 질량 에너지 등가 원리로서 나오게 된 E=mc^2 의 오해와 진실에 대해서 소개할까 합니다.

1905년 논문에는 함축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공식과 이것의 정확한 해석은 그가 발표했던 독일 잡지 <물리학 연보>에 실린 3페이지 가량의 논문 '물체의 질량이 그 에너지 함유량에 의존하는가?'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도 수학적 표현이 거의 나타나 있지 않으면 그 대신 사고 실험을 고안하여 이것을 주의깊게 분석함으로써 결과를 얻는 특이한 방법을 쓰고 있었던 것 입니다.

이 논문에서는 빛 반사 즉, 감마선을 방출하여 방사선 붕괴를 한 후 원자나 또는 어떤 다른 입자를 가상했던 것 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붕괴과정에서 에너지와 운동량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원리를 적용하고 로렌츠 변환을 교묘하게 이용함으로써 붕괴 후의 원자는 처음 원자보다 질량이 작아진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던 것 입니다.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E=mc^2 의 표현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했습니다.

"한 물체가 방사의 형태로 에너지E를 방출하면 이 물체의 질량은 E/c^2 만큼 감소된다."

1905년 9월 논문의 방정식엔 질량은 유형 성분, 에너지는 무형성분으로 이 둘을 등가로 만듦으로서 그 둘을 하나로 묶은 것 입니다.

이때 수식의 c^2 에 관한 오해와 진실에 관해서 명확히 이야기해 두려고 합니다.

이해를 확실히 해 두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봅니다.

----------------

<질문>:

E=mc^2과 관련하여 이 수식이 특별이 어떤 조건하에서만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되거나 또는 어떤 조건하에서만 에너지가 질량으로 변환된다고 해석하면.......

이 주장은 오해일까요? (틀린 주장일까요?)

아니면 맞을까요? (옳은 주장일까요?)

 

이 질문에 답을 정확히 하는 사람은 수식의 c^2 의 오해와 진실에 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 입니다.

그리고 등가원리(principle of equivalence)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는 질량 단위 Kg 과 에너지 단위 J 이 '같은' 단위인가 '다른' 단위인가에 대한 개념을 잘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소위 기적의 해라고 하는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쓴 6월 논문에서 주장하는 첫번째 중요한 사실을 소개해 봅니다.
(여기서 시계와 시간의 용어를 잘 살펴보기 바랍니다.)

-----------------

한 사건에 대한 객관적 시간이라고 하는 것의 의미는, 사실에 있어서는, 두개의 사건들 즉,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건과 시계 바늘들이 시계 문자판의 특정한 숫자들을 가르킨다는 사건의 동시적인 발생을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표현을 빌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말하기를, '기차가 7시에 도착한다' 고 말할 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내 시계의 작은 바늘이 7 이라고 적힌 자리를 지나가는 것과 기차가 도착하는 것의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다' 고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두 사건이 '동시' 에 일어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가령, 전형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발생하는 사건과 시계를 보고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상 생활에서는 더 이상 이 과정을 분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주의 깊게 좀 더 곰곰히 생각해보면 빛의 속도가 무한대가 아니기 때문에 이 사건을 비춰주는 빛이 우리 눈에 도달하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소요되며 따라서 '이미' 일어난 사건과 시계를 비교하고 있는 것 입니다.

보통은 빛이 너무 빨리 움직이고 빛이 지나오는 거리가 매우 작기? 때문에 이러한 '지연 효과'는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무시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가령 달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시간을 지구상의 시계로 측정하려고 한다면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가 장난이 아니니까 이러한 지연 효과는 충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아인슈타인>이 이런 지연 효과에 대한 물리적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지요.

직접적인 실험없이 머리로 실험하는 사고 실험으로 말 입니다.

 

구체적으로 빛이 달까지 왕복하는 시간은 약 2.5 초 입니다.

이러한 점은 지상에서 일어난 사건과 달에서 일어난 사건 사이의 '동시성(simultaneity)'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이 그냥 간과하지 않은 것 입니다.

우리는 태양에서 오는 빛이 5분정도 걸린다고 알고 있는데 태양이 갑자기 폭발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사건이 생겨도 지구에서 볼 때는 5분 뒤에야 그 사건을 인지한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 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빛이 진행하는 속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정의해 놓았기 망정이지 그런 개념 이해가 없으면 상당한 혼란을 가중시켰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광속 일정의 원리(principle of constancy)' 가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의 중요한 출발 가정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 입니다.

광속 일정의 원리는 그 당시 상대적 속도 개념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일대 큰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시속 100km를 달리는 버스와 그 방향으로 추적하는 오토바이가 시속 80km 이었다면 오토바이에 탄 사람은 버스가 시속 20km 로 달리고 있다고 판단하는 그 속도 개념 말 입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특유의 사고 실험으로 우리가 빛을 발하는 손전등을 가지고 이것이 발하는 빛의 속도를 측정한다고 할 때 이 손전등에서 발하고 있는 빛의 속도는 이 빛을 내고 있는 손전등이 관측자에 대해서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빛의 속도는 관측자의 운동 상태와 관계없이 항시 일정한 동일 속도를 내고 있다는 원리가 바로 그것 입니다.

 

우리가 정지하고 있든 오토바이를 타든 버스를 타든 로켓트를 타든 그 곁을 지나가는 빛의 속도는 항시 일정하다는 그 원리는 <아인슈타인>의 이름 앞에 위대하다는 형용사를 붙이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 입니다.

비단 그 당시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 시각에도 도대체 빛의 속도가 최대인가에 대한 의문을 종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빛보다 빠른 그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드디어 현대에 들어서 빛보다 빠른 증거를 포착했다는 학자가 나타났습니다.

이 증거는 엄청시럽게 복잡한 이론이나 시설, 또는 기구없이 간단히 어떤 행위를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입니다.

자, 잘 들어보십시요.

빛보다 빠른 그 증거를 !

그 학자는 칠흙같이 캄캄한 밤에 손전등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손전등을 하늘로 비춰 본 것 입니다.

한 손으로 이쪽 하늘 끝과 다른 쪽 하늘 끝을 향하여 빛을 비추어 본 것 입니다.!

 

단순히 손목 하나 트는 것만 하더라도 빛은 그 넓고 깊은 밤하늘의 이쪽에서 부터 저쪽까지 지나간 것 입니다.

그 거리가 초당 달리는 거리 299792458m 보다 더 멉니다.!

빛이 멀리 멀리 더 나아가면 그야말로 이쪽 우주 지평선에서 저쪽 우주 지평선으로 초초광속으로 횡단한 셈이 됩니다.

아니 이기 뭥미?

분명히 1초보다 빠르게 하늘 저쪽 끝과 이쪽 끝을 가로지른 것 입니다.!!!

이건 제로존이 증명한 것이 아니고 쫌 괴짜같은 물리학자가 한 행위인데 물리학자들은 이에 대한 해석을 두고 머리에 쥐가 났던 것 입니다.

그래서 겨우 나온 해석이 이렇습니다.

분명히 그 빛은 초당 달리는 빛의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횡단한 것이 명확히 확실하다.

그런데 이런 짓을 해서 무얼 얻겠다는 것이냐? 앙 !!!!!!!

 

곧 빛의 속도에 개념을 추가해서 '정보(information)'라는 개념을 덧 씌워서 빛의 속도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정보 전달 속도 상한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 입니다.

이래 저래 빛의 속도는 아직까지 머리좋은 물리학자들을 몽땅 설득시키는데 이 시간까지 실패한 것 입니다.

제로존이나 공지글에 올린 이론 물리학자인 고 <데이비드 봄>은 빛의 속도가 우리가 현실에서 정보를 얻기 위한 하나의 비율로서 모든 것의 척도 개념에 해당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비율(ratio)이 빠르다는 이야기가 논리 모순에 해당된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회의적인 생각을 접어서는 안 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