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 책

자유지향 2012. 10. 10. 14:26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I Thought it Was Just Me (But it Isn't) ; Brené Brown

 

 

 

 

 

책소개

 

12년에 걸쳐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 하면서, 저자 브라운 박사는 이러한 ‘내 안의 마음감옥’의 정체가 수치심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빨라지고 숨고 싶고 달아나고 싶고 화나게 하고 심지어 파괴적인 행동으로 나를 끌고 가는 이 감정의 정체를 저자는 하나하나 파헤쳐간다. 이 마음의 여정에 동행하면서, 우리는 ‘나를 괴롭혀온 그 오랜 해묵은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운다.

 

 

저자소개

 

저자 : 브레네 브라운

 

저자 브레네 브라운(Brene Brown)은 교육자이자 작가, 미국 최고의 강연가로 꼽힌다. 휴스턴대학교 사회복지학 연구원으로, 수치심, 취약성, 공감을 연구하고 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소속감을 느끼는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한 다양한 연구 활동에 매진해왔다. 우리에겐 TED 강의를 통해 더욱 유명해졌으며, 휴스턴에서의 ‘연약하다는 것의 힘’ 강연과 TED 연례대회에서의 특강 '수치심 - 나만 그런 게 아니야' 강연 통합 700만 회 조회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TED 역사상 역대 10위에 해당하며, 심리학 관련 강연으로는 최고에 해당한다. 저자 스스로 완벽주의와 자기비하의 수렁에서 큰 정신적 붕괴를 겪었다고 말하는 브레네 브라운은 객관적이고 차가운 시선의 학자라기보다, 그 자신과 주변, 그리고 우리 모두의 마음을 돌아보는 편안한 친구처럼 글을 풀어간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자신이 ‘수치심’이라는 이 평생에 걸친 연구 과제를 선택하게 된 일로, 아동보호소에서 근무한 경험을 떠올린다. 그곳에서 그는 ‘수치심을 일으키거나 그걸 자극하는 방법으로는 절대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화두를 얻는다. 그리고 전 세계 최초로 수백 명에 이르는 내담자를 직접 인터뷰하고 포커스그룹을 구성해 토론을 벌이는 동안, 우리를 얼어붙게 만들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수치심의 실체에 누구보다 가장 가깝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역자 : 서현정

 

역자 서현정은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번역작가 양성과정 수료 후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20대 인생에 관한 26가지 거짓말》, 《블랙의 법칙》, 《똑똑하게 사랑하라》, 《여자는 차마 말 못하고 남자는 전혀 모르는 것들》 등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_ 관망하고 질책하며 비난하는 내 안의 평론가, 수치심
왜 나의 가장 큰 적은 나 자신일까?
우리는 왜 수치심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할까?
수치심은 현대사회의 소리 없는 유행병이다
끊임없이 수치심을 가르치는 문화

1장. ‘마음의 수렁, 관계의 비수’, 나를 갉아먹는 감정 이해하기
나를 괴롭히는 이 수치심이라는 감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수치심은 다른 유사한 감정들과 어떻게 다른가?
온갖 사회적 기대로 얽혀 있는 수치심 거미줄
앞으로도 뒤로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이중 잣대
나의 파워를 수치심이라는 감정에게 내어주게 되면
나와 다른 이들 사이의 끈을 끊어버리는 수치심의 위력

2장. 혼자만의 외로운 사투를 멈추고, 공감의 손길을 내밀라
공감은 수치심의 강력한 해독제다
공감, 충분히 대접 받고 있지 못한 그 위대한 힘
공감은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삶의 기술이다
용기 있는 입과 자비 담긴 귀가 공감을 빚어낸다
공감을 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누군가와 진심으로 연결되고 싶다면, 공감을 선물하라
공감으로 연결되려는 순간,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물들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수치심 따위는 없다
수치심으로는 절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수치심 회복탄력성은 어떻게 길러갈 수 있는가?

3장. 감정의 폭풍이 몰아닥치는 순간, 10분의 대응 기술
수치심을 자극하는 나만의 ‘수치심 촉발제’ 찾아내기
나의 무의식에 스며든 암시, ‘원치 않는 정체성’
취약하다는 것은 창조성과 변화의 원천이다
나만의 수치심 촉발제를 찾기 위한 ‘탐구의 여정’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숨겨버리는 기제, 수치심 연막

4장. 리얼리티 체크, 나는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큰 그림 보기, 비판적으로 현실을 인식하기 위한 토대
세상과 내가 만들어낸 ‘기대치’와 ‘현실’ 사이의 괴리
개별화했던 문제를 큰 그림으로 보고 ‘맥락 이해’로 전환하라
맥락 이해가 ‘책임전가’ ‘회피’ 기제와 다른 까닭
당신은, 나는, 우리는 무슨 몹쓸 병에 걸린 게 아니다
모른다고 말할 자유, 자격과 권위에 주눅 들지 않을 자유

5장. 소리 죽여 고통스러워하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주라
수치심은 고립의 산물, 연결만이 그것을 깨뜨릴 수 있다
주변으로 손을 뻗어 모두를 위한 ‘변화 만들기’를 시도하라
분리와 벽 쌓기, 손 내밀기를 가로막는 장애물
연결 네트워크,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감정 구조대

6장. 입 밖으로 꺼내놓으면, 절반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적절한 언어로 번역해내는 법
내가 받은 수치심의 경험을 언어로 해석해내는 법
둘러대거나 미화하려 하지 말고 솔직히 감정을 말하기
‘수치심 거미줄 언어’의 미묘한 특징 파악하기

7장. 완벽하고, 특별하고, 우아하고, 뛰어나지 않아도 괜찮다
완벽주의가 빚어내는 수치심과 두려움이라는 감정
완벽해야 하지만 완벽하려 애써서도 안 된다는 역설
수치심 회복탄력성을 이용해 완벽주의로부터 벗어나는 법
완벽주의 대신, 조금씩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지향하라
실수해도 괜찮다, 다시 돌아가면 된다
평범해도 괜찮다, 쿨 하지 않아도 괜찮다, 두려움 떨쳐내기
불완전함과 평범함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8장. 비난과 책임전가를 넘어서, 자비의 힘을 실천하는 법
분노, 약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
자신의 존재가 무시당했다고 느낄 때 수치심은 분노로 바뀐다
‘주제 파악 좀 하시지!’ 전형화와 꼬리표의 족쇄
나이 먹은 사람에 대한 전형화 역시 공포를 조장한다
트라우마보다 더 큰 상처를 안겨주는 트라우마의 전형화
따돌리기, 소속감을 얻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 제물로 삼는 일
험담의 수레바퀴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비난에 맞서기 위해 연결 네트워크 활용하기

9장. 나는 남과 다르지 않다, 나는 비정상이 아니다
내가 나라고 느끼고 바라보는 나는 ‘진짜 나’인가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부터가 비정상인가?
수치심이 한 인간을 파괴하는 늪, 중독
종교적 신앙은 수치심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진짜 나’를 끌어내어 사랑하고 존중하는 법

10장.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편이다
약해져선 안 된다, 차라리 괜찮은 척하다 죽어라?
우리는 누구나 사랑받고 소속되어 있다는 행복을 느낄 자격이 있다
아무도 우리를, 당신을 쫓아내지 않았다

에필로그 _ 그대, 이제 절대 더 이상 홀로 외롭지 마라

 

 

책 속으로

 

가치 있고 사랑 받기 위해, 남의 기준에 맞춰 사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잘 안 되면 화가 나고 두렵다. 우울감에 괴로워하고 가까운 이에게 마음에도 없는 매몰찬 말을 던진다. 그러나 남는 건 지독한 고독감뿐. -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태어나 우리는 서서히 수치심을 배운다. 처음부터 그런 게 아니다. 인기가 있고 없고, 예쁘고 아니고, 잘나고 못나고, 젊고 늙고, 매력 있고 없고, 그 기준 중 몇 개나 내가 만들었는가? 수치심은 우리 밖에서 온다. -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우리는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야 마땅하다. ‘내가 잘못이다’가 아니라. 잘못된 것은 나의 행동이지 나 자신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새 ‘나는 잘못된 사람’이 되어버린다. 스스로를 폄하하고 손가락질한다. 미워한다. -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공감과 연민은 다르다. 공감이 필요한데 연민을 줘선 곤란하다. 연민은 이것이다. ‘나는 여기 있고 너는 거기 있다. 네가 당한 일에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분명히 하자. 그 일은 너한테 벌어진 것이고, 너와 나는 다르다.’ -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나에게 적용한다. ‘남들이 어떻게 볼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나 그건 진짜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남들이 ‘원할 것’이라고 예상한 그림일 뿐이다. 그것으론 내가 행복해질 수 없다. -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는 심리를 ‘에다마메 공포’라 부른다. 에다마메는 일본식 전채로 그걸 아느냐가 상류층의 기준처럼 통용된다. 벽을 쌓고자 하는 측은 이런 단순한 것으로 상대를 소외시킨다. 또 우리는 소외된다. -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상대가 끝없이 수치심 덫을 놓는다면, 그걸 알아차려야 한다. 상대의 취약점을 공격해 상처 받게 함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경감시키려는 부류의 사람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분별하라. 그들을 피하라. 멀리하라. -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완벽할 필요 없다. 완벽할 수도 없다. 불완전함과 평범함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특징이며, 혁신과 변화와 창조의 원천이다. 변화 앞에 우리는 약해진다. 창조를 위해 불완전함을 알아야 한다. 완벽주의야말로 실현불가다. -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감추고 싶은 부족함을 들켰을 때 수치심과 함께 분노와 비난이 생겨난다. 무진장 애를 쓰며 감추려 했던 것이 드러난다는 것은, 완벽할 수 없고 가치 없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분노와 비난이야말로 관계의 독이다. -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이 세상은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지금 이대로 사라져도 괜찮은, 쓸모없고 하찮은 존재다.’라는 그 느낌 속에서 우리는 말할 수 없이 깊은 수치심을 느낀다. 그러나 누구도 그렇지 않다. 그렇게 느낄 뿐이다. -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트라우마보다 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속삭이는 꼬리표’다. ‘저런 일을 당하고도 견딜 수 있을까?’‘저 사람 망가졌어’ 불필요한 호기심이 동반된 이 꼬리표를 웃어넘겨라. 대신 진정으로 공감해줄 이들에게서 위안을 얻어라. -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누구와 함께 있든 여전히 나로 존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짜 나’, ‘자아감각’의 핵심이다. 자연스럽고 참되고 꾸미지 않고 솔직하고 개방적인 나. ‘완벽한 나’가 아니라 ‘진짜 나’를 추구하는 편이 훨씬 행복하다. -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우리 시대 남자들은 ‘약함’을 드러내지 말라고 배운다. 백마에서 낙마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거기 올라탄 채로 죽기를 바란다. ‘강한 남자’라는 작은 상자 속 고통 받는 당신의 남자야말로, 보듬고 공감해야 할 1인이다. -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출판사 서평

 

700만 명의 눈물 | TED 최고의 강의에 빛나는 브레네 브라운의 역작!
“이 책을 만나기 전에는, 나만 홀로 이토록 외롭고 고통스러운 줄 알았다!”
완벽을 향한 여정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힘겹게 만든다. 우리는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이 되려고 너무나 많은 힘과 시간을 낭비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너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돼’, ‘이래서야 남들이 뭐라고 하겠어?’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왜 우리는 진짜 나 자신이 아닌, 타인 혹은 세상이 만들어낸 ‘완벽한 모습’을 향해가려고 발버둥 칠까? 진실하고 꾸밈없는 사람에게, 자기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자기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에게 더 끌리면서도 우리는 왜 마음 편히 그렇게 되지 못할까?
‘불완전함’은 ‘부적합함’이 아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강요할 수 없다.
12년에 걸쳐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 하면서, 저자 브라운 박사는 이러한 ‘내 안의 마음감옥’의 정체가 수치심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빨라지고 숨고 싶고 달아나고 싶고 화나게 하고 심지어 파괴적인 행동으로 나를 끌고 가는 이 감정의 정체를 저자는 하나하나 파헤쳐간다. 이 마음의 여정에 동행하면서, 우리는 ‘나를 괴롭혀온 그 오랜 해묵은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운다.

Amazon 심리 분야 최장기간 1위, 전 세계 700만 명이 열광한
‘TED 위대한 강의 Top 10 ’의 주인공 브레네 브라운의 책이 드디어 한국 독자를 찾아온다!

브레네 브라운은 탁월한 언변이나 카리스마 넘치는 기교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녀가 매번 연단에 설 때마다 예의 ‘아줌마 같은 외모에 파르르 떨리는 입술’이 오히려 듣는 이를 더 긴장하게 만든다. 그러나 약하디 약한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 마음을 두드리고 그걸 열고 심장으로 따뜻하게 스며든다.
마침내 한국 독자를 찾아온 브레네 브라운의 책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역시 그녀의 강연처럼, 조용한 가랑비인 양 우리를 적신다. 그리고 그 어떠한 웅변보다 더욱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그것이 평범하고 고단한 우리 모두의 삶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명확한 솔루션을 주는 책
지금,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의 인생 앞에’ 바로 놓아주고 싶은 책

우리를 괴롭히는 완벽주의 신화란 무엇일까? 브레네 브라운은 이렇게 정의한다. ‘일, 가정, 외모, 건강……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야 해. 그리고 그걸 하느라 얼마나 애썼는지도 다른 사람이 모르게 해야 해. 여기서 낙오되는 순간,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아.’
미디어에 등장하는 ‘완벽함의 이상향’은 우리를 주눅 들게 한다. ‘행복한 은퇴를 위해선 몇 십 억이 필요하다’, ‘평범한 부부는 주 2회 섹스를 한다’, ‘아이를 낳고도 2개월 만에 처녀 때 몸을 되찾는다’, ‘나이 들어서도 우아하고 품위 있게’, ‘이혼녀라도 직장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고 연하 남자와 행복한 결말’, ‘모든 걸 갖추고 말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백마 탄 왕자’……. 그러나 그 모든 완벽성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할 리도 없다.
우리는 우리 머릿속에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렌즈를 넣어두고, 나의 일거수일투족, 가족, 배우자, 자녀의 모든 것을 그 렌즈를 통해 바라본다. ‘이건 틀렸고, 이건 괜찮고’, 그렇게 품질확인증을 받듯 내 인생을 점수 매기는 동안, ‘진짜 나’는 점점 더 연약해지고 도움을 필요로 하고 대화에 목말라 하며 서서히 말라간다. 우리는 나 자신 혹은 주변의 소중한 사람과 진정으로 소통하기보다, 내 머릿속에 있는 24시간 감시카메라를 만족시키는 데 온 에너지와 시간을 허비한다. 만족시키려 해도 절대 만족시킬 수 없는 바로 그 대상을. 그렇게 내 안에 내가 만든 ‘마음감옥’을 지어놓고 그 안에 갇혀 아무도 보지 않을 ‘트루먼 쇼’를 찍고 있다.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다, 무슨 몹쓸 병에 걸린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등을 가만히 두드려주는 이 시대 최고의 심리서

사실 브레네 브라운이 말하는 ‘우리가 만든 우리 안의 마음감옥’의 실체는 ‘수치심(shame)’이다. 그러나 문화권을 막론하고 수치심이라는 단어는 그걸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된다. 극단의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매일의 좌절, 절대기준과의 끊임없는 비교,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벽을 쌓고 남과 나를 분리하는 모든 ‘단절’의 이유는 사실, 이 수치심으로부터 비롯된다. 수치심이란 ‘내가 갖고 있는 무언가를 남이 알게 되거나 밝혀지면, 내가 가치 없어지거나 사랑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여기는 감정’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버려질 것이 두려워, 다른 사람과 단절한다. 뚱뚱해지면, 못생겨지면, 돈이 없어지면, 지위를 잃으면, 똑똑하지 못하면, 리더십이 없으면…… 버려질까봐, 애써 괜찮은 척한다. 그리고 그런 서로를 보면서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부족하다’는 생각에 또 다시 자기 자신을 닦달한다. 이 감정이 쌓이고 쌓여서 안으로 침잠하면 우울로 나타나고, 곪고 곪아서 밖으로 폭발하면 분노, 비난, 책임전가, 폭력으로 드러난다.
브레네 브라운은 이러한 우리 안의 ‘마음의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명쾌하게, 그리고 실제 사례에 근거해 풀어낸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처음엔 동병상련의 놀라움이, 그 다음엔 너무도 사실적인 다른 이들의 고백에 당혹감이, 그리고 이윽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똑같으며 분명히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느껴진다.
평범한, 그리고 그래서 인간다운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이 마음감옥의 실체에 들어가 보고 싶지 않은가. 더군다나 브레네 브라운의 친절한 손을 잡고 함께 떠날 수 있다면, 더없이 편안한 여행이 될 것이다.

추천사
우리는 왜 있는 그대로 행복하지 못할까? 우리는 왜 끊임없이 인정받고 완벽해지려 애쓸까?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대신, 거절당할까봐 혹은 무시당할까봐 두려워하고 상처받을까? 저자 브레네 브라운은 우리 마음 속 깊은 고독을 어루만진다. 아무 조건 없이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려준다. ― CNN

어른이 되기만 하면, 강하고 완벽하고 훌륭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 안에는 언제나 연약하고 상처 받기 쉽고 서툰 아이가 있다. 그리고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자기 주위에 감정의 옹벽을 쌓는다. 창조와 변화와 자유의 원천으로서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법, 내 안의 작은 아이를 더 사랑하는 법이 이 책 안에 있다. ― 워싱턴포스트

어딘가에 속하기 위해 당신을 바꿀 필요가 없다. 사랑받기 위해 조바심 낼 필요도 없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훌륭하고 아름답다. 퉁명스럽고 괴팍한 비평가의 시선 따위는 던져버리자. 정신병동의 구속복처럼 우리를 옥죄는 그것을. ― 오프라 라디오

저자 브레네 브라운은 현대인들의 고립감과 좌절에 대한 심리적이고 종합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수치심, 취약성,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방어기제에 대한 탁월한 분석이 돋보인다. 단연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심리서로 꼽을 만하다. ― 사이콜로지 투데이

 

 

출처                참고

 

 

http://www.ted.com/talks/lang/ko/brene_brown_on_vulnerability.html

더보기

자 그럼 이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죠:
한 2년전에 제가했던 어떤 강연회에 관련되 이벤트 플래너가 저한테 전화를 했죠.
그녀가 말하길, "이 전단지에 당신을 뭐라고 소개해야 할 지 굉장히 고민하고 있어요."
저는 "뭐가 고민일까?" 라고 생각했죠.
그녀가 말하길 "저는 당신의 강연에 가본 적이 있는데 당신을 연구원이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이 지루하고 쓸모 없는 강연일 거라고 생각하고 아무도 안 올까봐 걱정이 되서 그래요."

(웃음)

오케이.
그리고 그녀는 "당신 강연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당신이 이야기를 잘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러니까 스토리텔러라고 소개하면 어떨까요?"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학자로서 불안감을 느낀 제 일부는 "날 뭐라고 부르겠다고요?"라는 식으로 반응했죠.
그녀는 "스토리텔러라고 부르면 어떨까요?"라고 말했고 저는 "아예 마법요정이라고 부르지 그래요?" 그런 식이었죠.

(웃음)

저는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말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용기를 불러 오려고 노력했죠.
그러고는 스토리텔러가 맞다는 생각을 했지요.
저는 질적(質的) 연구자에요.
저는 이야기들을 수집해요. 그게 제가 하는 일이죠.
이야기라는 것은 어쩌면 영혼이 담긴 데이터일지도 모르고 저는 그냥 스토리텔러일지도 모르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죠. "있잖아요, 그냥 연구자 겸 스토리텔러라고 하면 어떨까요?"
그랬더니 그녀는 "하하, 그런 게 어디 있어요?"라고 하더군요.

(웃음)

어쨌든 저는 연구자 겸 스토리텔러고,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과제는 우리의 인식(Perception)을 확장시키는 것이죠 --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해서 제가 제 연구 과정의 일부로 인해 제 자신의 인식(Perception)이 근본적으로 확장되었으며, 또한 그로 인해 제가 살고, 사랑하고, 일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이 실지로 어떻게 바뀌게 됐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제가 박사 과정을 밟는 중인 젊은 연구원이었던 첫 해에 제 지도교수님은 저희들에게 이런 말을 하셨죠.
"그러니까 말이지, 측정할 수 없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네."
저는 그가 그냥 농담 비슷하게 한 말이라고 생각했죠.
제가 "정말요?" 그랬더니 교수님은 "물론이지."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제 개인적 배경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때 사회복지학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사회복지학 박사 과정을 하고 있었지요.
그러니까 저는 '삶이란 것은 엉망이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속에서만 공부를 한셈이죠.
그런데 저는 삶은 엉망이니까 더러운것은 치우고, 고를건 골라서 도시락 통에 잘 정돈해서 넣자는 타입이였지요.

(웃음)

그래서 저는 제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죠.
제가 앞으로 갈 길을 찾았다는 거죠.
사회복지사들은 종종 '힘든 일을 찾아서 하라'는 말을 합니다.
그당시 저는 제 머리를 두들겨 패서라도 모두 A 학점을 받자는 모토를 가지고 있었죠.
저는 사회복지에 대해 매우 열정적이었고 그것이 제 천직이라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저는 골치 아픈 일들에 관심이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런것들을 골치 아프지 않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저는 복잡한 것들을 이해하고 싶어했습니다.
저는 복잡한 것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파고 들어가서 그 본질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저는 "커넥션(연결)"에서 부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복지사로서 10년 정도 경험을 쌓으면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는 바로 '연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죠.
우리 삶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연결'이죠.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연결' 입니다.
사회 정의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정신건강, 학대, 방치를 다루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우리가 연결되 있다는 것, 즉 우리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우리가 신경생물학적으로 타고 난 것이며 또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저는  '연결'에서부터 제 연구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분이 상사로 부터 평가를 받을 때 37가지를 매우 잘한다고 칭찬을 받은 다음에 "개선의 여지가 있는" 한 가지에 대해 이야기 듣는 그런 상황을 잘 아시죠?

(웃음)

그러면 여러분은 그 부분만 개선할려고 몰두하게 되죠.
제 연구도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그들은 이별의 아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소속감에 대해 물으면 그들은 소외되어 가장 괴로웠던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연결'에 대해 물어보면 그들은 '단절'에 대한 이야기를 이야기 했지요.
그런데 제가 연구를 시작하자 마자 -- 아마 제가 연구를 시작한지 6주 정도 되었을때 -- 저는 이름도 없고 제가 이해도 못하고 들어 본 적도 없는 완전히 단절된 '연결'이라는 것과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구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게 무엇인지 알아야만 했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그것의 정체는 수치심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수치심이란 것은 단절에 대한 공포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즉, 나에 대한 어떤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되거나 또는 보게 될 때, 나와 관계를 맺을 가치가 없다고 느끼겠다는 생각이죠.
그런데 이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생각이라는걸 제가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거나 '연결'할 능력이 없는 사람만 수치심을 경험하지 않죠.
수치심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수치심에 대해 말을 안하는 사람일수록 수치심을 더 많이 가지고 있죠.
이러한 수치심을 뒷받침 하는 것은, "난  이러이러해서 못났어"라는 것인데 우리들 모두는 그런것에 대해 잘 알죠.
"난 충분히 --- 하지 않아", "난 충분히 날씬하지 않아, 충분히 돈이 많지도,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괜찮은 지위에 있지도 않아" 그런것들 말입니다.
이런 수치심을 뒷받침하는 것은 우리의 극심한 취약성이지요.
우리가 다른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남들에게 보여야 한다는 정말로 눈에 띄게 보여야만 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취약성을 몹시 싫어하죠.
그래서 저는 이것 저것을 잣대로 측정하면 취약성을 퇴치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어떻게 해서든, 도대체 이게 뭔지 알아내겠어.
한 일 년 정도를 수치심을 완전히 해체시키는데 보내고 취약성이라는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면 난 취약성보다 한 수 더 앞서 갈 수 있을거야.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자신감에 꽉 차 있었죠.
그런데 여러분이 짐작하시다시피 잘 되진 않았어요.

(웃음)

여러분은 그럴 줄 아셨겠죠.
제가 수치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드릴 수는 있지만, 그럴려면 제 평생을 바쳐도 다 못할 거에요.
어쨌든,  요점은 이겁니다 --
그리고 이건 제가 십년에 걸쳐 연구를 통해 배운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지요.
애당초에 제가 계획했던 일 년은 6년으로 늘어났고, 저는 수천 개의 이야기들을 수집했으며, 수백 개에 달하는 긴 인터뷰들과 포커스 그룹 미팅을 했죠.
한 때는 사람들이 저에게 학술지나 그들의 이야기를 저한테 보내주기도 했죠.
6년간 수천 개의 데이터들을 다루다 보니 점차 수치심에 대해 좀 알게되는 것 같았어요.
수치심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좀 알 것 같았지요.
그래서 저는 수치심에 대한 책을 썼고 이론도 발표했지만 뭔가가 이상했어요 --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인터뷰했던 사람들을 자기 자신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자신에 대한 가치감이 없거나 자기 자신이 충분히 괜찮은지를 몰라 항상 몸부림치는 두 그룹으로 나눴지요 - -
그 이유는, 결국 깊이 파고 들어가면 자신에 대한 가치감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니까요.
자신에 대한 가치감을 가진 사람들은 사랑을 느끼고 어디에 소속되었다는 강력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요.
견고한 사랑과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들과 그런 것을 가지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 간에는 단 하나의 차이 밖에 없었습니다.
즉, 견고한 사랑과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받고 소속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었죠.
바로 그거예요.  그들은 자신이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연결'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 스스로를 연결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걱정하는데 있다는 것은 제 개인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제 연구를 위해서도 좀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저는 느꼈죠.
그래서 저는 자기 자신  스스로가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의 인터뷰 서류를 모두 제 앞에 펼쳐 놓고 살펴보았지요.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저는 사실 문구류 중독자죠.
그런데 그건 번지수가 좀 다른 이야기고요.
저는 마닐라 서류철과 샤피 마커를 들고 이 연구를 뭐라고 부를까 생각했습니다.
제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는 "전심전력(wholehearted)"이었어요.
이들은 자신이 가치있다는 깊은 신념을 가지고 전심전력하며 사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서류철 상단에 그렇게 써 넣고 데이터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실 4일간에 걸친 집중적인 데이터 분석에 몰두하면서 각종 인터뷰, 이야기 및 사건들의 기록들을 뽑은 후 그것들의 공통된 테마와 패턴이 무엇인지 조사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연구하는 모드로 들어가서 잭슨 폴록처럼 미친듯이 일을 할때는 제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죠.
저는 제 연구를 통해서 자신에 대한 가치감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은 용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용기(courage)와 용감함(bravery)의 차이를 잠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영어 단어 'courage(용기)'는 심장을 의미하는 라틴어 'cor'에서 왔는데 원래 의미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당신의 온 마음을 통해 솔직히 이야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간단히 말해서,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말을 할 용기가 있었다는 거죠.
그들은 우선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고 그 다음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친절할 수 있는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 있었는데 -이 부분이 어려운 부분이죠 - 그것은 진정한 자신을 보여 준 결과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의 지각을 버리고 '진짜 자아(authentic self)'가 되어야 했었는데 그것은 '연결'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제가 연구했던 사람들의 공통점의 하나는 그들은 모두 그들의 취약성을 완전히 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취약하게 만드는 것들이 자신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취약성 때문에 편안하게 느낀다거나 또는 수치심 인터뷰에서 들었던 것 처럼 괴롭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자진해서 먼저 말하고, 아무런 보장이 없이 어떤 일을 할 용의를 가지고 있고, 유방 촬영사진을 찍은 후 의사가 연락할 때 까지 조용히 기다린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은 성사가 날지 안날지 모르는 관계에도 개인적인 투자를 할 용의를 보이기도 했죠.
그들은 그런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자신은 그런 것이 배신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연구조건을 컨트롤하고 예측하는 것인데 이 연구를 하겠다고 제가 자진했다는 것은 기가 찰 만한 일이었지요.
그런데  컨트롤과  예측을 필요로 하는 제 연구가 밝혀낸 것은 우리가 취약성을 유지하며 살려면 컨트롤하고 예측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였지요.
그래서 전 신경쇄약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

(웃음)

-- 사실은 이 정도였지만요.

(웃음)

정말 그랬어요.
저는 신경쇄약이라고 그랬지만 제 심리치료사는 '정신적인 각성'이라고 불렀죠.
정신적인 각성이란 표현은 신경쇄약 보다 더 듣기 좋지만 신경쇄약이었던 것은 틀림없었어요.
저는 제 데이터를 모두 치워버리고 심리치료사를 찾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친구들에게 "심리치료사가 필요한데 혹시 아는 사람이 있니?"라고 물어 보면 누가 친구고 누가 친구가 아닌지 알 수 있어요.
왜냐하면, 제 친구 대여섯 명이 저보고 "아이고, 니 심리치료사가 불쌍하다."라고 말했으니까요.

(웃음)

그래서 제가 "그게 무슨 말이니?" 라고 했더니 그들은 "하여튼, 심리치료사를 만나러 갈 때 잣대는 가지고 가지마" 라고 하더군요.
전 그래서 "알았어" 라고 했죠.
그렇게 해서 전 심리치료사를 한명 찾았습니다.
제가 제 치료사였던 다이애나를 만났던 첫날 저는 전심(全心)으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가를 적은 목록을 가지고 갔었어요.
다이애나가 "잘 지내세요?" 라고 묻고 저는 "네, 아주 잘있어요." 라고 했죠.
다이애나는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다이애나는 다른 심리치료사를 치료하는 치료사인데, 그런 사람들은 헛소리 고단자니까 우리는 그런 치료사를 보죠.

(웃음)

그래서 저는 "사실 저는 지금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무엇때문에 고생이시죠?"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 취약성 문제 때문에 그래요 - - 저는 수치심, 공포심 때문에 고민하고, 삶의 가치를 가지려고 발버둥 치는것의 근원은 우리의 취약성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알고 보니 우리의 기쁨, 창의성, 소속감, 그리고 사랑도 우리의 취약성으로부터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바로 그게 문제예요.  그래서 제가 도움이 필요해요" 라고 말했죠.
그러고 제가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
"가족 이야기나 어렸을 때의 문제 같이 개떡같은 이야기는 빼고 말해주세요."

(웃음)

"그냥 방향제시만 해주세요." 라고 말했죠.

(웃음)

(박수)

감사합니다.
그랬더니 그녀가 이렇게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웃음)

제가 "그럼 제 말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에요?" 라고 물었죠.
그랬더니 그녀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아요" 라더군요.

(웃음)

"좋은건 좋고 나쁜건 나쁘겠죠" 라고 하더군요.
전 그래서 "난 이제 죽었구나--" 라고 생각했죠.

(웃음)

하여튼 좋은 날, 나쁜 날 해서, 저는 약 일년에 걸려 심리치료사의 치료를 받았죠.
어떤 사람들은 취약성과 마음의 부드러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 관계에 온 몸과 마음을 맡기지요.
그런데 첫째로, 저는 그런 타입이 아니고 둘째로, 저는 그런 사람들은 상대도 안해요.

(웃음)

저에게는 그 첫 일년간은 마치 시가전 같았지요.
백병전의 나날이었으니까요.
어떤 때는 취약성이 이기고 어떤 때는 제가 이겼죠.
결국 저는 그 싸움에서 졌지만 어쩌면 제 삶을 되찾았을지도 몰라요.
저는 다시 제 연구로 돌아가서 전심을 다하는 사람들이 선택을 어떻게 하고 그들의 취약성을 어떻게 다루는 가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데 한 2년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왜 취약성 때문에 고생을 할까요?
취약성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저뿐인가요?
아니지요.
제가 연구를 통해 배운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전화가 오기를 기다릴 때 우리의 취약성을 마비시킵니다.
희한했던 것은 제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당신은 취약성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어떤 것들이 당신을 취약하게 느끼게 만듭니까?"라고 물었을 때 1시간 30분 동안 150명이 응답을 했다는 겁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지요.
저와 제 남편은 그 때 신혼이었는데 제가 아파서 남편한테 도움을 청해야 했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섹스하자는 말을 꺼내야 하고; 남편들도 아내한테 섹스하자는 말을 해야하고; 이성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데이트를 요청해야 하고; 의사가 전화하기를 기다려야 하고; 해고 당하고, 고용인을 해고해야 하고 -- 우리는 이런 삶을 살아야 하지요.
우리는 상처받기 쉽고 피해를 입기 쉬운 세상에 살고 있죠.
우리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는 우리의 취약성을 마비시키는 것이지요.
우리 세대가 미국 역사상 가장 부채가 많고, 비만이고, 중독에 많이 걸려있고, 약 또한 많이 복용하는 세대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취약성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좋은 증거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 이건 제가 제 연구를 통해 배운거죠 -- 감정을 선택적으로 마비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취약성, 비통함, 수치감, 공포감, 실망감 같이 나쁜 것들은 느끼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맥주나 두어개 마시고 바나나 너트 머핀이나 먹자! 그거죠.

(웃음)

난 이런걸 느끼고 싶지 않아.
아하- 그건 뭘 좀 아시는 웃음이군요.
제 직업은 여러분들의 생활을 파고 들어가는 거예요.  미안해요.

(웃음)

그런데 우리의 다른 감정에 영향을 주지 않고 이런 어려운 감정만 마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죠.
선택적으로 감정을 마비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감정을 마비시키면 우리는 즐거움도 마비시키고 고마운 마음도 마비시키고 행복감도 마비시키게 되죠.
그럼 우리는 비참해지고,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으며 취약성을 느끼게 되고, 맥주를  두어개 마시고 바나나 너트 머핀이나 먹게 되죠.
그러면 위험한 악순환이 시작되죠.
우리들이 생각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고 왜 우리 자신을 마비시키는가 하는 것이지요.
방금 제가 말한 중독만 우리를 마비시키는 것은 아니죠.
우리는 불확실한 모든 것들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종교는 신앙과 신비를 믿는 것으로부터 확실한 것을 믿는 것으로 변했죠.
난 옳고 넌 틀리니까 닥쳐!  그런거죠.
그냥 그거에요.
확실한 것만 찾는거죠.
이런건 우리가 두려워질수록, 더 취약해질수록, 더 두려워질수록 더 심해지죠.
오늘의 정치가 바로 이렇죠.
이제는 대화가 사라져서 더이상 담화를 나누지 않죠.
그냥 비난만 하죠.
제 연구에서 비난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아세요?
아픔과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의 하나라고 합니다.
우리는 완벽해지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이렇게 완벽하게 꾸리려고 하죠.
그러나 생각처럼 일이 되진 않죠.
왜냐하면 그건 엉덩이에서 지방을 빼서 뺨에 넣는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웃음)

전 100년 후에 사람들이 이 사실을 회상하고 "와우!" 하며  탄성을 자아내기를 바래요.

(웃음)

그런데 가장 위험한 건,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한다는 거죠.
우리가 아이들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드리죠.
아이들은 애쓰며 살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부모들은 완벽하게 태어난 아기들을 손에 들고 "이 애기는 완벽한 애기야. 그러니까 내 책임은 이 아기가 5학년이 되면 테니스 팀에 들어 가고 7학년이 되면 예일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거야"라고 다짐하죠.
근데 그건 우리의 책임이 아닙니다.

우리의 책임은 아기를 바라보며 "너는 불완전하고 애쓰며 살아가도록 태어났지만, 너는 사랑을 받고 소속될 가치가 있다"라고 말하는 거죠.
그게 우리가 할 일 입니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로 구성된 사회에는 아마 현재 우리 사회에 있는 문제들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처럼 행동하지요.
우리는 우리의 개인생활에서 그렇게 행동하고, 기업들도 긴급금융지원, 오일 유출, 리콜 같은 사건이 생길 때 우리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척 하지요.
저는 그런 회사들에게 우린 이미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말하죠.
그냥 솔직하고 진실한 태도로 "미안합니다. 우리가 고치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다른 방법을 하나 말씀드리겠는데 여러분께서 그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의  깊은 마음속을 남에게 보여주고, 우리의 취약성을 다 보여 주는것; 그리고 우리의 모든 마음을 다해 사랑을 하고, 아무런 보장이 없더라도 말이예요 --
이건 참 어려운 일이지요, 부모로서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들고요 --
"내가 너를 이렇게 많이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이것을 이처럼 열정적으로 믿을 수 있을까?" "내가 이것에 이렇게 격렬할 수 있을까?" "내가 이것에 이렇게 격렬할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을 가질때 무슨 큰 불행이 닥쳐 올까하고 걱정만 하지 말고, 고맙고 기쁜 생각으로 내가 이렇게 취약하게 느낀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말하니까 매우 고맙게 느낀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저는 우리들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나는 충분해"라며 시작한다면 우리는 고함을 지르는 대신 듣기 시작할 것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며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더 관대하고 부드러워질 겁니다.

제가 드릴 말은 이게 전부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http://www.ted.com/talks/lang/ko/brene_brown_listening_to_shame.html

더보기

제가 TEDxHouston에서 했던 강연에 대해 조금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강연을 한 후 아침에 일어났을때는 제 인생 최악의 취약성 숙취에 시달리고 있었죠. 그리고 실제로 약 삼일간은 외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집을 나선 것은 친구와의 점심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도착했을 땐, 그녀는 테이블에 이미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앉자마자 제 친구가 "맙소사, 너 왜 이렇게 안 좋아 보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고마워. 정말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없어" 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무슨 일이야?"라고 묻기에, 대답하였습니다. "얼마 전 약 오백 명에게 내가 취약함을 피하고자 연구원 되었다고 말하고는 취약성이, 즉 상처받을 수도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 전심전력으로 사는 것의 필수 불가결 조건으로 유추되었을때, 이 500여 명의 이들한테 내가 정신적 붕괴를 겪었다고 말했어. '붕괴'라고 쓰인 슬라이드까지 준비했었다니까. 대체 왜 그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걸까? "

(웃음)

그녀가 말하길 "너의 강연을 생방송으로 청취했어. 꼭 너답지는 않더라. 평소의 너랑은 좀 달랐어. 하지만 아주 좋았어." 해서, 제가 말하길 "이것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유튜브, 주최자들이 YouTube에 올린단 말이야. 그럼 이건 600명, 700명이 될 거라고."라고 말했었죠.

(웃음)

그녀는 "음, 내 생각은 이미 늦은 일인 것 같은데."라고 하더군요.

제가 "뭐 좀 물어보자"고 묻자 그녀는 "응, 물어봐"라고 해서 "우리 대학 때, 우리가 상당히 철없고 좀 멍청했잖아, 기억나? "라고 묻자 그녀는 "응"이라고 답하더군요. 그래서 "왜 우리가 진짜 나쁜 메시지들을 남겼었잖아. 우리 전 남자 친구들의 자동 응답기에다가. 그래서 우리가 걔 기숙사 방에 침입해서 그 테이프 지워야 했던거, 기억나?"

(웃음)

그러자 그녀는 "음.... 아니."라고 하더군요.

(웃음)

그래서 당연히 그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응, 나도. 그건... 나도 기억 안 나."

그리고 혼자 생각하길 "브르네, 대체 뭘 하는 거야? 지금 뭐하는 거야? 대체 이 얘기를 왜 꺼낸 거야? 너 정신이 있니? 내 언니, 동생들이 보면 좋아하겠군." 그래서 다시 친구를 쳐다보았더니 그녀가 "너 설마 진짜로 침입해서 그들이 유튜브에 올리기 전에 비디오테이프를 훔치려고?" 해서 "그냥 생각만 하고 있었어."라고 했습니다.

(웃음)

그녀는 "너 정말 최악의 취약성 모델이다."라고 하더군요.

(웃음)

그리곤 전 그녀를 쳐다보며 그 당시엔 상당히 극적인 것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후에 극적이라기보다 예언적인 걸로 나타났죠. 전 이렇게 말했죠. "만약 500명이 1000명 또는 2000명이 되면 내 인생은 끝이야."

(웃음)

저는 4백만 명이 볼 것을 대비한 계획은 없었어요.

(웃음)

제 인생은 정말 그 일이 일어나자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제 인생이 끝남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저에 대해 어려운 무언가를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제 연구를 세상에 알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좌절하는 것만큼이나 그 유명세를 적당한 정도로만 유지하려고 매우 열심히 노력하는 부분이 제안에 있다는 것을요. 하지만 제가 배운 것에 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작년에 배운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취약/연약하다는 것이 약점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연약한 것이 약점이라는 통설은 심히 위험한 사고방식입니다. 여러분께 진지하게 여쭙겠습니다- 미리 제가 심리 치료가로 훈련을 받았다는 경고를 드리겠습니다. 해서 여러분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제질문에 대답해주시기바랍니다. 여러분 들 중 몇 분이나 솔직히, 당신이 취약한 무언가를 한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연약한 어떤 말을 한다고 할 때, "세상에, 이 취약함은 약한 거야. 이거 약점인가?"라고 생각하나요. 여러분 중 몇 명이나 취약함과 약함을 동일시합니까? 대다수가 그렇군요. 자, 이제 이걸 물어보겠습니다. 지난주 동안 TED에서, 여러분 중, 이 무대 위에서 누군가 연약함 드러내는 것을 목격했을 때 그것이 순수한 용기라고 생각했는지요? 취약성은 결코 약점이 아닙니다. 저는 취약성을 정서적 위험 요소, 노출, 불확실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 일상생활의 연료죠. 그리고 이것은 제12년간의 연구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취약성은 용기를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기준입니다. 취약해지고, 자기자신을 드러내고, 솔직해지는것 말입니다.

제 테드강연이 유명해진 이후에, 하나의 재미있는일이 생겼습니다, 전 전국적으로 많은 강연 요청을 받았습니다. 학교나 여러 학부모 모임으로부터 포츈지 선정 500 기업들까지요. 그리고 대부분 통화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네, 브라운 박사님. TEDTalk의 강연 정말 좋았습니다. 박사님을 모시고싶습니다. 다만 취약성이나 수치심은 언급하지 않았으면 고맙겠습니다."

(웃음)

그럼 제가 어떤 내용에 대해서 하기를 원하시나요? 크게 약 세 종류의 대답이 있습니다. 이것은 솔직히 대부분 비즈니스 분야에서 오는 답들입니다. 혁신, 창조성 그리고 변화입니다. 해서 여기서 아예 기록으로 남겨두죠. 취약성이야말로 혁신, 창의력과 변화가 탄생하는 곳입니다.

(박수)

창조한다는 것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취약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변화에 대한 융통성은 모두 취약성에 관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취약점과 용기 사이의 관계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 이외에 제가 두번째로 배운것은 이겁니다: 우리는 수치심에 관해서 얘기해야겠군요. 그리고 여러분에게 전 정말 솔직하게 말할 겁니다. 제가 '취약성 연구원'이 되자 그 때문에 TEDTalk에 초청되었습니다. 농담이 아니에요.

제가 예를 들어 보죠. 약 석 달 전에, 저는 스포츠용품 가게에 있었습니다. 고글과 정강이 보호대 등 학부모가 스포츠용품 가게에서 흔히 사는 것들을 사면서요. 약 30 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런 말이 들리더군요: "취약성 테드! 취약성 테드!"

(웃음)

저는 5세대째 텍사스 주민입니다. 우리 가족의 좌우명은 "전투 준비 태세"입니다. 나는 태생적으로 취약한 연구원이 아닙니다.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내뒤에있으니 그냥 걸으라고.

(웃음)

그리곤 다시 , "취약성 테드!"라고 들렸습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려 돌아서자 그녀는 바로 제 코앞에서 말하길, "정신적 붕괴를 겪으셨던 수치심 연구원이시죠."

(웃음)

이 시점에서 주변 다른 학부모들은 자녀를 가까이 끌어당기며 "쳐다보지 마."라면서요. 전 이 시기에 너무 지쳐있던 때라 그녀를 보면 전 실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하나의 신내림이었다니깐요."

(웃음)

(박수)

그리고, 그녀는 뒤를 살짝 돌아보곤 "저도 압니다."라고 하며 이리 말하더군요. "우리 독서 클럽에 함께 당신의 TEDTalk을 봤어요. 그리고 당신의 책을 함께 읽고 우리끼리 우리 별명을 붙였죠. '붕괴 아가씨들' 그리고 그녀는 "우리의 태그 라인은: '우리는 부서져 가지만, 환상적인 느낌이야.' "

(웃음)

자, 상황이 이러니 이제 제가 교수 회의에선 대체 어땠을지 상상만이라도 해보세요.

해서 제가 '취약성 TED'가 됐을 때, 마치 액션 피규어처럼요, 또는 닌자 바비 인형같이, 다만 이름이 '취약점 TED'인 거죠. 수치심이란 주제는 관두자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수치심을 연구하며 6년을 보냈습니다. 제가 취약점에 대해 쓰고 말하고 다니기 이전에요. 전 '수치심이 끔찍한 주제이기 때문에 아무도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비행기에 말 많은 옆 사람을 조용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죠. "무슨일을 하시나요?" "전 수치심을 연구합니다." "아..."

(웃음)

"그리고 제겐 당신이 보이는군요."

(웃음)

그러나 작년을 살아남는 과정에서 저는 중요한 룰이 생각났습니다. 연구원의 규칙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제가 크면서 배운 규칙이죠- "널 데리고 온 사람과 꼭 춤을 춰야 한다." 전 취약점을 연구하면서 취약점, 용기, 창의력, 그리고 혁신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을 제가 수치심을 연구하며 배우게 된 거죠. 그래서 전 여러분을 수치심의 세계로 데리고 가려합니다. 융 심리학자들은 수치심을 영혼의 늪지대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우린 그곳으로 들어갈것입니다. 그리고 목적은 거기로 들어가 집 짓고 살자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은 방수 덧신을 신고 돌아다니고 통과할 길을 찾자는 거죠. 이유는 이겁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유래없이 대화를 필요로하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도 말이죠. 모든 인종을 초월해서요, 아닌가요? 그렇죠? 우리는 들었습니다. 그렇죠? 수치심 없이는 그 대화를 가질 수 없습니다. 특권을 언급하지 않고는 인종에 대해 말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사람들은 특권에 관해 얘기하면 그들은 수치심에 의해 마비가 되죠. 우리는 수술 중 환자의 죽음을 막는 간단하고 멋진 해결책을 들었습니다. 체크 리스트를 도입하는 거죠. 수치심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치료하는 방법을 가르칠 때 그들은 또한 자존감을 치료해서 다시 파워풀하게 되는 법을 가르치는 거거든요. 그리고 이런 이들에겐 체크리스트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테드 참가자의 이름을 적어 두어야만 했습니다. 제가 이 무대 위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요. 미쉬킨 잉가왈레, 제가 이름을 제대로 말했길 빕니다.

(박수)

여기 다른 테드 발표자들을 첫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기 서서 설명했습니다. 빈혈진단을 돕기 위한 기술 개발에 의욕적이란것을.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죽어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는 "그것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들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 박수를 터뜨렸고 "예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하길, "그것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 그것을 32차례 더 만들었습니다. 그제야 작동을 하더군요."

여러분은 TED의 가장 큰 비밀이 뭔 줄 아십니까?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이 말을 하게 되네요.

(웃음)

테드는 실패담 컨퍼런스와 같습니다. 아니, 정말입니다.

(박수)

이곳이 놀라운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여기서는 오직 소수만이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대에 오른 누구나, 지금까지 제가 봐 온 바로는, 실패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저도 비참하게 실패했었습니다. 여러 번이나요. 하지만 세상은 수치심 때문에 이를 이해하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작년의 저를 구해준 훌륭한 문구가 있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한 말이죠. 많은 사람이 "경기장의 투사"으로 인용합니다. 이겁니다. "중요한 것은 비평가가 아니다. 관중석에 앉아서 선수가 어떻게 헛디뎠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었는지 지적하는 이도 아니다. 업적은 경기장 안에서 얼굴이 먼지와 피, 땀으로 얼룩진 이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가 경기장에 있을 땐 잘하면 이길 것이고, 못하면 질 것이다. 하지만 그가 실패하더라도, 또는 지더라도, 그는 감히 무모하리만치 멋지게 질 것이다."

그리고 제겐 이 테드 컨퍼런스가 그렇습니다. 그것이 삶인 거죠. 대담하게 용기를 내는 것 , 경기장 안에 있는 것 말입니다. 그 경기장으로 가서 여러분이 문에 손을 갖다 대었을 때, 그리고 "나는 들어간다. 나는 이를 시도해 볼 것이다."라고 생각할 때 수치심은 "어, 잠깐만. 넌 자격이 없어." 라고 말하는 괴물입니다. "넌 그 MBA 과정을 다 끝내지 못했잖아. 너의 아내도 너를 떠났잖아. 난 너희 아빠가 실은 룩셈부르크가 아닌 싱싱에 있었다는 걸 알아. 난 네가 자라면서 일어났던 일들을 알아. 난 네가 아주 예쁘다고 생각지 않는 걸 알아. 또는 똑똑하다거나, 재능이 있거나, 힘이 있다고 믿지 않는 걸 알아. 네가 재무 최고 책임자가 되었을 때도 너의 아버지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걸 알아." 수치심은 바로 그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조용히 시키고 경기장으로 걸어 들어가 "이것을 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가 손가락질하며 웃고 있는 비평가들을 올려다보면 99%의 경우 누구이던가요? 우리자신. 수치심은 두 굴레를 사용합니다- "자격미달" 그리고, 만약에 첫번째 굴레에서 벗어나게된다면, "당신이 뭔데?" 말입니다. 수치심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것이 죄책감은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수치심은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죄책감은 행위에 맞춰줘 있죠. 수치심은 "난 나빠"입니다. 죄책감은 "나는 뭔가 나쁜 짓을 했어"입니다. 여러분 중 몇 명이나, 만약 제게 상처를 준후에,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어요."라고 말할 용의가 있으십니까? 여러분 중 몇이나 이 말을 하시겠습니까? 죄책감: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수치심: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입니다.'

수치심과 죄책감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수치심은 중독, 우울증, 폭력, 공격성과 함께 왕따, 자살, 식이장애와 아주 아주 높은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죄의식은 이것들과 반대 방향으로 연관이 있죠. 우리가 이미 저질렀거나 실패한 일에 대해서 우리가 되고자 하는 이상에 빗대어 비교하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적응력이 좋죠. 그것은 불편하지만, 적응할 수 있죠.

여러분이 수치심에 대해 알아야 할 또 한가지는 그것은 절대적으로 성별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수치심이 절 한번 휩쓸고 가고, 크리스를 한번 휩쓸고 가면 그것은 동일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여기 앉아있는 모든 이들이 이 따듯이 적시고 지나가는 수치심의 느낌을 알죠. 우리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유일한 사람은 연결과 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뿐이라는 데 확신하죠. 이는 '네, 전 수치심을 조금 가지고 있습니다.' 이거나 '아니오, 전 반(反)사회적 인격 장애자입니다.' 인 거죠 해서 전 차라리 '그래, 당신은 수치심이 좀 있어.'를 택하겠습니다. 수치심은 남성과 여성에게 동일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별에 의해 분류됩니다.

여성의 경우엔, 제가 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예는 Enjoli 향수의 광고입니다. "저는 빨래를 널고 도시락을 싸고, 가족들에게 키스한 뒤 그리고 9시 출근해서 5시까지 일하죠. 집에 베이컨을 사 와서 프라이팬에 굽고 당신이 나의 남자임을 잊지 않게 하죠. " 여성의 경우, 수치심은 '모든 것을 다 할 것' '완벽하게 할 것' 그리고 '그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 것'입니다. 저는 저 광고가 향수를 얼마나 팔았는지는 모르지만 저것이 많은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를 움직였을 거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웃음)

수치심은 여성에게 되어야 하는 여성상의 불가능하고 모순되며 경쟁적인 기대로 이루어진 그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구속복이죠.

남성의 경우 수치심은 경쟁적이고 모순된 기대들이 잔뜩 모인 것이 아닙니다. 수치심은 단 하나, 어떻게 보이지 말 것, 무엇일까요? 약함. 제 연구의 첫 4년 동안 남자들 인터뷰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남자분이 제 책 사인회에서 저를 보고 "수치심에 대한 당신의 말한 것들이 참 좋습니다. 왜 남자들은 언급하지 않으셨는지 궁금하군요." 묻더군요 그래서 "전 남자들은 연구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자 그가 "그것참 편리하네요."라고 하더군요.

(웃음)

제가 "왜요?"라고 묻자 "당신은 손을 내밀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연약해지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취약해지라고요. 하지만 방금 당신이 서명한 책은 그저 제 아내와 세 딸만을 위한 거란 말인가요?" 전 "그렇습니다"고 답했죠. "그들은 제가 아래로 떨어지는 걸 보느니 차라리 제 백마 위에서 죽기를 원할 겁니다. 우리가 연약해지고 손을 뻗어 도움을 구하면 무진장 얻어맞기만 하죠. 그리고 그것이 남자들과 코치와 아버지한테서 온 거라고는 말하지 마십시오. 제 인생에서 여자들은 누구보다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전 남자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질문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제가 배운 것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남자가 연약하고 두려워할 때 함께 할 수 있는 여자를 본다면 그분은 놀라운 업적을 이룬 여성입니다. 여러분이 뚜껑이 열리기 직전,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상태가 된 여성과 함께 앉아 그가 보이는 첫 반응이 "식기세척기 그릇들은 내가 다 빼놨어."가 아니고 정말로 여자 말에 경청해줄 수 있다면, 왜냐하면 그게 우리가 필요한 전부이기 때문이죠. 이런 분이야말로 엄청난 일을 이룬 남성인 거죠.

수치심은 우리 문화에서 일종의 전염병입니다. 그리고, 그 영향권 아래에서 벗어나 서로에게로 가는 길을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양육하는 데 영향을 끼치고 우리가 일하는 방식, 서로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지 말입니다. 매우 빠르게, 보스턴 대학의 마할릭에 의한 연구에 의하면, 그는 여성이 일반적 여성상에 들어맞기 위해 어떤 것을 인정받아야 하는지를 물었죠 이 나라에서 순위가 높았던 답변은: 착함, 날씬함, 겸손함 그리고 외적인 것에 사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쓸 것. 남자에 대해 물었을 때, 이 나라의 일반적 남성성에 부합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묻자 답변은 이랬습니다. 언제나 감정을 제어하며, 일이 우선으로 와야 한다. 지위를 추구할 것. 그리고 폭력.

우리가 서로에게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해하고 공감해야 합니다. 공감이 수치심의 해독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수치심을 배양 접시에 놓는다면 그것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비밀, 침묵 그리고 편견. 만약 배양 접시에 같은 양의 수치심을 넣고 공감 같은 양을 넣고, 공감으로 휘 섞으면 그것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힘겨워 몸부림칠 때, 가장 강력한 두 단어는... "나도 그래."

그래서 전 이 생각을 여러분께 남기고 떠나고자 합니다. 우리가 방법을 찾으려 하면, 서로에게 가는 길을, 취약/연약함이 그 경로가 될 것입니다. 전 경기장 밖에 있는 것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압니다. 제가 제 인생 내내 그래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알죠. 그리고는 혼자 생각하죠. '난 저기로 들어가서 엄청나게 잘할 거야.' 제가 방탄복을 입고 완벽할 때에요. 그것은 유혹적이죠. 그러나 진실은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만에 당신이 완벽해질 수 있을 만큼 완벽해지고 입을 수 있는 최대치의 보호구를 입어도 당신이 그 안에 들어가면 그건 우리가 보고 싶어 하던 것이 아닐 겁니다. 우리는 당신이 들어가길 바라죠. 우리는 당신과 함께이고 싶고, 마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아끼는 사람들과 우리와 함께 일하는 이들이 '감히 무모하리만치 멋지게' 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수)

 

 

더보기

참고


1. 정리하는 뇌
2. 지능의 사생활
3. 욕망의 진화
4.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5. 클루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자이오니스트들이 무암마르 가다피를 살해한 이유  (0) 2011.10.22
[스크랩] 영혼의 단언   (0) 2011.10.08
般若心經  (0) 2011.02.08
Kiesha  (0) 2011.01.12
[스크랩] 피터김의 영과 진리의 생존자  (0) 2010.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