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인간은 글자그대로 감정에 의해 지배된다.

자유지향 2008. 6. 12.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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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elian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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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글자그대로 감정에 의해 지배된다.
Humans are governed by emotions -- literally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감정의 반응은 공공 정책과 국제적 사건들에 심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 정부 관료들이 9.11사건과 같은 위기에 대해서, 장기적 결과는 거의 고려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도록 만든다고 카네기 멜론대학과 피츠버그 법과대학의 학자들이 말한다. 이 논문은 Chicago-Kent Law Review(시카고-켄트 법학 리뷰)지에 게재되었으며 피츠버그대학의 법학교수 Jules Lobel과 카네기 멜론대학의 경제학 및 심리학 교수인 George Loewenstein교수에 의해 집필되었다.


강렬한 감정들은 조심스러운 결정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의식할 때조차도 사람의 이성적 결정능력을 훼손시킨다. 공공정책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화가나있거나, 두려워하거나, 또는 격앙된 감정적 상태일 때, 그들은 더 실질적이고 복잡하지만 궁극적으로 더 효과적인 정책이 필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상징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만족시켜주는 해결책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40년간, 이점이 미국을 2번의 값비싸고 모순적인 베트남과 이라크의 전쟁으로 이끌었다. 이때 국회의원들은 숙고할만한 충분한 시간이 남겨져 있지 않았던 인지된 위기에 대한 반응으로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권력을 부여했다.


“전쟁이란 종종 그 영향력으로 인한 장기적 손실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즉각적 감정들과 열정들이 계속 동요할 때의 정점 사건이다.”라고 Lobel이 말했다.


이 저자들은 최근의 연구에서 인간의 의사결정이 2개의 신경계 즉 신중함과 감정적인 것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을 설명했다. 후자(감정적)는 저자들이 emote control(감정적 통제)라고 호칭한 것으로서 전자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유아기 인간들에게 있어서 기초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위험을 가려내 빠르게 반응하도록 함으로써 적응역할로서의 구실을 한다. 그러나 인간이 성장함에 따라 감정적 요소들은 그들 행동의 장기적 결과를 고려하게 되고 선택으로 인한 손실과 이득을 저울질 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했다. 신중함의 신경계는 두뇌의 전두엽 피질 부위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최고 정점까지 성장하지만 더 오래된 신경계를 대체하지는 않았다.



“인간의 행동은 감정 또는 신중함 한쪽만의 제어를 받는 것이 아니고, 이 두 가지가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나타난다.”라고 Loewenstein교수가 말했다.


emote control(감정적 통제)는 빠르지만 그 반응은 제한된 상황들로만 한정될 수 있으며, 반면 숙고는 훨씬 더 적응범위가 넓지만 상대적으로 느리고 힘이 든다. emote control(감정적 통제)는 본능적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신중함은 새로운 상황 또는 정확한 반응이 분명하지 않을 때 끼어든다.  emote control(감정적 통제력)은 생생한 영상, 즉시성, 참신성에 높게 반응을 보이는데, 이것의 의미는 감정적 신경계는 최근 과거에 일어났던 뜻밖의 시각적인 상황과 연상되는 사건들에 더 쉽게 반응하고, 또한 익숙하지 않고 적응할 시간이 없었던 사건들에 대해 쉽게 반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감정은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법과 사회적 방침에 따라 자신들이 접하는 사람과 사물들을 전부 “우리들” 그리고 “그들”이라는 구분으로 민감하게 분류한다. 그리고 emote control(감정적 통제)는 Loewenstein과 Lobel 교수에 따르면 숙고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알맞은 정도의 두려움, 화 또는 어떤 다른 형태의 부정적인 감정은 신중함의 신경계에게 뭔가 잘못되었고 그것은 너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외고집스럽게도, 감정이 격화되면 그것은 신중함의 신경계에 역할을 넘겨 최선의 행동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만 할 때 조차도 행동에 대한 통제를 떠맡아 정반대의 행동을 하기도 한다.”라고 Loewenstein교수가 말했다.


이것의 의미는 대부분 주의 깊고, 충분히 이성에 의거한 반등들을 필요로 하는 상황들이 감정들로 인해 우리의 장기적 이득이 아주 쉽게 방해받을 수 있는 상황 속에 놓여있음을 뜻한다. 미국의 건국자들은 열정이 원칙을 집어삼킬 수 있음을 이해했고 그래서 대통령에게 보다는 권력이 수 십 명의 의원들에게 분산된 신중한 조직체인 국회에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권한을 귀속시켰다. 그러나 이 헌법적 안전장치가 냉전기간 동안 출현해 2001년 9월 11일 테러공격으로 확대된 영구적 위기감을 이유로 20세기에 침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공격의 재난적 본질은 미국인들에게 극히 낮은 수치임에도 테러공격에서 진짜 살해당할 수 있다는 왜곡된 위기감을 심어주었다. 또한 정책입안자들은 연방법 실시권한의 확대와 귀찮은 보안조처와 새로운 전쟁이라는 궁극적으로 자멸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만약 예를 들어 공항검색 절차들로 인해 사람들이 항공편 보다는 자동차를 더 이용하게 되면, 교통참사가 증가하게 될 것이고, 자동차는 항공편보다 훨씬 더 위험하기 때문에 지속적 테러공격을 감안하더라도 자동차 사고도 더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


“생생하고 감정적인 위험의 오인문제는 특히 반테러정책의 상황에서 격심하다. 그 이유는 두려움이란 특별히 강한 감정이고 판단력을 둔감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Lobel이 말했다.


물론 Lobel과 Loewenstein교수는 감정들이 항상 나쁜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적절히 고삐가 잡힌 열정들이 나치주의를 패배시키고 인간을 달에 착륙시켰으며, 공기오염을 줄이는데 일조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감정들을 폭발시킬 수 있으므로, 사회 전체적으로 우리들은 감정이 공공정책에서 일으킬 수 있는 대혼란을 인식해야한다. 또한 정부는 의사결정의 속도를 늦추는 법률적 안전장치들을 채택해서 입안자들이 자신들의 선택의 결과를 저울질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인간의 심리는 많이 변하지 않았지만 정치인들과 상인들은 대중의 감정들을 조작해서 그들을 조작하는데 한층 더 교묘해졌다. 법률의 기능 중 한 가지는 특히 최고조의 감정이 최고도로 필요해질 때, 두드러지게 신중한 억제력을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Source:
http://www.scienceblog.com/cms/humans_are_governed_by_emotions_--_literally_9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