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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붓다

자유지향 2024. 7. 3. 23:05

 

붓다

The Buddha

Heavenletter #1755 Published on: September 9, 2005

https://heavenletters.org/the-buddha.html

 

 

신이 말했다.

 

세상은 너를 그 굴레 속에 가두고 있다. 그것은 너를 하나 됨Oneness으로부터 방해한다. 세상은 너무나 많이 바쁘다. 가끔 그것은 모든 것을 소모하고 있다. 세상은 네가 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믿게 만드는데, 마치 너의 바로 그 생명이 그것에 달려있다는 듯이 말이다. 세상은 너에게 행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가르칠 것이다.

 

어쩌면 지구상의 삶은 거북이와 토끼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짜 스토리는 거북이 바로 그가 있었던 곳에 머물면서 경주를 이겼을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그것을 전혀 달리지 않고 경주를 이겼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단순히 존재함으로부터 올라가는 그 생각 덕분에 말이다. 어쩌면 네가 그것으로 올 때, 고요 외에 지구상에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존재의 샘으로부터, 너는 하나의 생각을 하고 있다. 생각은 하나의 가려움과 같고, 너는 그것을 긁어야만 한다고 느낀다. 따라서 너는 어떤 곡예를 하고, 너는 무언가를 했다고 생각하며, 너는 무언가가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세상 속의 삶의 무대이다.

 

만약 내가 모든 곳에 있다면,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에 있는가?

 

만약 네가 행동의 한가운데서 평온하기를 바란다면, 그때 너는 틀림없이 붓다와 같을 것이다. 그는 앉아 있고, 또한 세상은 돌고 있다. 그는 세상 속 존재 하나의 완벽한 예이지만, 그것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의 지탱은 세상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기 생각의 수준으로 세상을 지탱시킨다. 평온의 한가운데서, 삶은 움직인다. 붓다는 달리지 않는다.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리고 세상이 돌고 있으므로, 붓다는 웃는다. 네가 세상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 즐겁지 않은가? 네가 모든 곳에 도달할 수 있고, 네가 앉은 곳의 부동성 안에서 모든 것을 달성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 즐겁지 않은가? 붓다의 육체적 좌선은 생명의 내적 고요에 대한 하나의 은유이다.

 

존재는 고요하다. 존재는 무대를 건너 움직이지만, 존재는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면 우리는 그 존재가 하나의 운동을 가지고 있다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그 사랑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말할 수 있다. 확실히 그것은 모든 것으로 스며든다. 사랑은 모든 곳 속으로 스며드는데, 비록 모든 것이 이미 사랑 속에 잠겨있다 해도 말이다. 사랑의 중심 안에 수립될 때, 가야 할 곳이 어디인가? 도달할 곳이 어디인가? 그리고 거기 도달할 누가 있는가?

 

나 외에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나는 그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주위를 달리지 않는다. 나는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나는 기한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모든 것이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존재로부터, 그리고 내 생각의 잉태로부터 달성되었다. 이것이 내가 모든 것이 잘 있고, 그것을 의미하며, 그것을 알고 있다고 말할 방식이고, 또한 너도 그럴 수 있다.

 

그 소동은 무엇에 대한 것인가? 폭풍은 없다. 존재함이 있다.

 

격동이 없다. 기중기가 사랑을 퍼 올리고, 그것을 뒤집을 수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사랑이다. 스푼이 사랑을 퍼담을 수 있고, 커피를 저을 수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사랑이다. 너는 세상에서 휘저어질 수 있지만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는다. 오직 사랑만이 너를 휘저을 수 있고, 너는 이미 휘저어졌는데, 따라서 너는 완전하고, 사랑이 모든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그 휘젓는 자이고, 그 휘저어지는 것이며, 스푼이 있든 없든, 휘젓는 그 단순한 행동이다.

 

너는 사랑 속에 잠겨 있다. 잠겨질 다른 무엇이 없다. 사랑 외에 잠글 자가 없고, 그리고 사랑은 그 잠김이다.

 

물질적인 세상이 있는가? 그것의 그 생각이 있다. 너는 육체적인가? 너의 몸이 있다. 그리고 너의 몸은 하나의 생각이다. 너는 생각 이상이지만, 네가 사랑을 넘어서 있을 수는 없다.

 

캔디는 캔디이다. 그것은 다양한 맛으로, 모양으로, 크기로 오지만, 여전히 그것은 단지 캔디일 뿐이다. 그것은 캔디 트럭이나 캔디 산타클로스가 될 수 있지만, 여전히 그것은 캔디이다.

 

네가 어떤 형태를 택하든, 너는 사랑이다. 너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될 수 없다. 사랑하지 않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너는 사랑스럽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너는 사랑스럽지 않음의 바로 그 그림이 될 수 있지만, 여전히 너는 사랑인데, 따라서 왜 시인하면서 단지 그것이 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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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 AH(http://www.abundanthope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