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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124편 예수의 어린 시절 후기

자유지향 2012. 8. 23. 01:05

 

유란시아 서


제 124 편


예수의 어린 시절 후기



(1366.1) 124:0.1 갈릴리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예수가 학교에 다니는 더 좋은 기회를 누렸을지 모르지만, 거기서는 최소의 교육 안내를 받고 자신의 생활 문제를 풀어 나가고, 동시에 문명 세계의 모든 구석으로부터 그렇게 온갖 등급의 많은 남녀와 항상 접촉하는 큰 이점(利點)을 누리는 그러한 빛나는 환경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 남았더라면, 그의 교육은 유대인들이, 순전히 유대인 방식으로 지도했을 것이다. 나사렛에서 그는 이방인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를 좀더 적절하게 준비시키는 교육을 확보하고 훈련을 받았으며, 이것은 그에게 히브리 신학의 동부(東部), 즉 바빌로니아 관점과, 서부(西部), 즉 헬라 관점의 비교적 장점에 대하여 더 낫고 균형된 생각을 주었다.



1. 예수가 아홉 살 되던 해 (서기 3년)



(1366.2) 124:1.1 예수가 언제라도 몹시 아팠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어도, 남동생들과 아기 여동생과 함께, 이 해에 그는 어린 시절의 하찮은 병을 얼마큼 앓았다.


(1366.3) 124:1.2 학교는 계속되었고 그는 아직도 총애를 받는 학생이었으며, 달마다 한 주 동안 자유로웠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이웃 여러 도시에 여행하는 데, 그리고 나사렛 남쪽에 삼촌의 농장에서 머무르고 막달라로부터 고기잡이하는 나들이에, 시간을 계속 똑같이 나누어 썼다.


(1366.4) 124:1.3 학교에서 여태까지 닥친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늦겨울에 일어났는데, 이 때 모든 형상•그림•펜화가 우상 숭배의 성질이 있다는 가르침에 대하여 예수는 하잔에게 감히 대들었다. 예수는 도공(陶工)의 진흙으로 아주 다채로운 대상을 빚는 것 뿐 아니라 풍경화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런 종류는 모두 유대인의 율법에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이 때까지 이 활동을 계속하도록 부모가 놓아 둘 정도로, 예수는 부모의 반대를 적당히 누그러뜨렸다.


(1366.5) 124:1.4 그러나 학교에서는 소동이 다시 일고 있었는데, 이 때 뒤에 처진 생도들 가운데 하나가, 교실 마루 바닥에 예수가 목탄(木炭)으로 선생의 그림을 그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낮과 같이 명백하게, 그 그림이 있었다. 여러 장로가 보았고, 그리고 나서 그 위원회가 요셉을 호출하고 율법을 무시하는 맏아들의 성향을 억제하기 위하여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요셉과 마리아의 다능하고 적극적인 아이가 하는 일에 대하여 불평(不平)이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것은 지금까지 그에 대하여 취해진 모든 고발 가운데 가장 심각했다. 예수는 바로 뒷문 바깥에 큰 바위에 앉아서, 그의 예술적 노력에 대한 고발에 얼마 동안 귀를 기울였다. 잘못이라 주장되는 행동 때문에 그들이 아버지를 탓하는 것을 그는 분개했다. 그래서 그는 씩씩하게 들어가서, 고발하는 자들과 겁 없이 맞섰다. 장로들은 혼란에 빠졌 다. 더러는 그 에피소드를 익살스럽게 보려는 경향이 있었지만, 한편 하나나 둘은 그 소년이 신성을 모독하지는 않더라도 거룩한 것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요셉은 어찌할 바를 몰랐고 마리아는 분개했지만, 예수는 말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했고, 용감히 그의 관점을 변호했다. 지극한 자제력을 가지고, 논쟁이 되는 모든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는 이 문제에서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선언했다. 장로(長老) 위원회는 말없이 떠났다.


(1367.1) 124:1.5 마리아는 예수가 이 의심스러운 활동 가운데 어느 것도 학교에서 행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는 조건으로, 예수가 집에서 진흙 빚기를 허락하도록 요셉에게 영향을 미치려 애썼지만, 요셉은 둘째 계명에 관한 랍비의 해석이 지배해야 한다고 판정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그 날부터 아버지 집에서 사는 동안, 어떤 것의 모습도 더 이상 그리거나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가 한 일이 잘못이라고 확신하지 않았고, 아주 좋아하는 그러한 오락을 포기하는 것은 어린 시절에 큰 시련의 하나였다.


(1367.2) 124:1.6 6월 후반에, 예수는 아버지를 동반하여, 처음으로 타볼 산 꼭대기에 올랐다. 이 날은 맑았고, 경치는 훌륭했다. 아홉 살 먹은 이 소년에게는 그가 인도•아프리카•로마를 빼고, 온 세계를 정말로 바라본 듯했다.


(1367.3) 124:1.7 예수의 둘째 여동생 마르다가 9월 13일 목요일 밤에 태어났다. 마르다가 태어나고 3주가 지나서, 집에 한동안 있던 요셉은 집에 덧붙인 건물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통틀어서 작업장이자 침실이었다. 예수를 위해서 작은 작업 벤치가 만들어졌고, 처음으로 그는 자신의 연장을 소유했다. 여러 해 동안, 남는 시간에, 그는 이 벤치에서 일했고, 멍에를 만드는 데 상당히 솜씨가 좋아졌다.


(1367.4) 124:1.8 이 해와 이듬해 겨울은 나사렛에서 몇십 년 만에 가장 추웠다. 예수는 산에서 눈을 보았고, 이전에 몇 번이나 나사렛에 눈이 왔는데, 잠시 동안만 땅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겨울까지 얼음을 본 적이 없었다. 물이 고체•액체•증기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물 끓는 냄비에서 달아나는 수증기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는데―물리적 세계와 그 구성에 대하여 소년으로 하여금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자라는 이 소년 속에 담겨진 인격(人格)은 여태까지, 방대한 한 우주에 두루, 이 모든 것을 실제로 창조하고 조직한 분이었다.


(1367.5) 124:1.9 나사렛의 기후는 혹독하지 않았다. 1월이 가장 추운 달이었고, 기온은 평균 화씨 약 50도였다. 7월과 8월이 가장 더운 달이었고, 그 때 기온은 화씨 75도에서 90도까지 변하곤 했다. 산맥에서부터 요단 강과 사해(死海) 계곡까지, 팔레스타인의 기후는 몹시 추운 날씨로부터 바짝 타는 기후에 이른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유대인들은 세계의 변화하는 기후 지대에 어디서나 살도록 준비가 되었다.


(1367.6) 124:1.10 가장 더운 여름 몇 달 동안에도, 시원한 바닷바람이 보통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쯤까지 서쪽으로부터 불었다. 그러나 이따금 무서운 더운 바람이 동쪽 사막으로부터, 온 팔레스타인에 불어닥치곤 했다. 이 뜨거운 강풍은 보통 2월과 3월, 비오는 철 끝 가까이에 닥쳤다. 그 시절에는 11월부터 4월까지 비는 시원한 소나기로 왔지만, 비가 꾸준히 오지는 않았다. 팔레스타인에는 오직 두 계절, 여름과 겨울, 즉 건조한 철과 비오는 철밖에 없었다. 1월에 꽃이 피기 시작했고, 4월말이 되어서는 온 땅이 하나의 광대한 꽃밭이었다.


(1367.7) 124:1.11 이 해 5월에, 예수는 삼촌의 농장에서, 처음으로 곡식 추수하는 일을 도왔다. 열세 살이 되기 전에, 그는 대장장이 일 외에는 나사렛 근방에서 남녀들이 일하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그럭저럭 무엇인가 발견했고,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대장간에서 몇 달 지냈다.


(1368.1) 124:1.12 일과 카라반 여행이 뜸할 때, 예수는 아버지와 함께 근처의 가나•엔도르•나인으로 구경 삼아, 또는 일 때문에 여러 번 여행했다. 소년일 때도 세포리스를 자주 찾아보았고, 이곳은 나사렛으로부터 북서쪽으로 겨우 4.8킬로미터 조금 넘어서 있었는데, 기원전 4년부터 서기 약 25년까지, 갈릴리의 서울이요 헤롯 안티파스의 거처 중의 하나였다.


(1368.2) 124:1.13 예수는 계속 몸과 머리가 자라고 사회적•영적으로 성장하였다. 집을 떠나는 여행은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그가 더 낫게, 더 너그럽게 이해심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되었고, 이 때가 되어서는 부모조차도 그를 가르칠 뿐 아니라 그에게서 배우기 시작했다. 예수는 소년이었을 때도, 독창성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요 솜씨 있는 선생이었다. 그는 이른바 “구전(口傳) 율법”과 항상 부딪쳤지만, 언제나 집안 풍습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꽤 잘 어울렸지만, 그들의 머리가 더디게 돌아가는 것에 가끔 실망했다. 그는 열 살이 되기 전에―신체적•지적•영적으로―어른 자격 갖추기를 권장하는 사회를 만든 일곱 소년의 무리에서 지도자가 되었다. 이 소년들 가운데서 예수는 여러 가지 새로운 놀이와 개량된 신체적 오락 방법을 소개하는 데 성공했다.



2. 열 살 되던 해 (서기 4년)



(1368.3) 124:2.1 7월 5일, 그 달의 첫 안식일에 아버지와 함께 시골길을 걷는 동안에, 예수는 일생의 사명의 특별한 성질을 자각하게 되고 있음을 가리키는 느낌과 생각을 처음으로 표현했다. 요셉은 아들의 중대한 말을 주의 깊게 들었지만. 거의 아무 논평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무 정보도 자진해서 주지 않았다. 이튿날 예수는 어머니와 함께, 비슷하지만 더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리아도 마찬가지로 소년의 선언(宣言)을 들었지만, 아무 정보도 자청해서 주지 않았다. 그의 성격과 땅에서 그의 사명의 특징에 관하여 자신의 의식 안에서 커지는 이 계시(啓示)에 대하여, 부모에게 예수가 다시 말을 꺼내기까지는 거의 두 해가 흘렀다.


(1368.4) 124:2.2 8월에 그는 회당의 상급 학교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끈질기게 묻는 물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말썽을 일으켰다. 갈수록 더 그는 온 나사렛을 얼마큼 시끄럽게 만들었다. 부모는 찬물 끼얹는 이 여러 질문을 그만두라고 하기 싫었고, 그의 주요 선생은 소년이 보인 호기심•통찰력•지식 욕구 때문에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1368.5) 124:2.3 예수의 놀이 친구들은 그의 행동에서 아무런 초자연적인 것을 보지 못했고, 대부분의 면에서 그는 그들과 아주 비슷하였다. 공부에 대한 관심은 평균이 넘었지만, 온통 특별하지는 않았다. 반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그는 더 많이 질문을 던지기는 했다.


(1368.6) 124:2.4 아마도 가장 특별하고 뛰어난 특성은 그의 권리를 위해서 싸우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이로 보아서 아주 잘 발육된 소년이었기 때문에, 불공평이나 개인적 모욕을 받을 때에도 자신을 방어하기 싫어한 것이 놀이 친구들에게 이상하게 보였다. 우연하게도, 이 특성 때문에 크게 괴롭힘을 받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한 살 더 먹은 이웃 소년 야곱과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요셉의 사업 동료인 석공(石工)의 아들이었다. 야곱은 예수를 크게 찬미하는 사람이었고, 예수가 몸으로 싸우기 싫어한다는 이유로 아무도 예수에게 함부로 굴지 않도록 처리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 았다. 여러 번, 더 나이 많고 촌스러운 소년들이 소문난 온순함을 믿고 예수를 공격했지만, 이들은 그의 보호자로 자처하고 늘 준비되어 있는 방어자, 석공의 아들 야곱의 손에 재빠르고 확실한 징벌을 반드시 받았다.


(1369.1) 124:2.5 예수는 그 시절과 세대의 드높은 이상을 대표하는 나사렛 소년들에게 널리 인정받는 지도자였다. 정말로 그는 어린 친구들한테서 사랑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공평했을 뿐 아니라, 드물고 형편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었고, 이것은 사랑을 가리키며 분별 있는 동정심에 가까웠다.


(1369.2) 124:2.6 이 해에 그는 더 나이 든 사람들과 사귀기를 뚜렷이 좋아하는 성향을 비로소 보였다. 나이 든 사람들과 문화•교육•사회•경제•정치•종교적인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기뻐했고, 그의 깊은 논리와 날카로운 관찰이 어른 친구들을 매혹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그와 함께 이야기 나누기를 무척 좋아하였다. 집을 부양할 책임을 지기까지, 예수는 나이 들고 지식 많은 사람들을 좋아하는 성향을 보였는데, 부모는 이들이 아니라, 그 또래나 거의 그 또래의 아이들과 사귀도록 영향을 미치려고 항상 애썼다.


(1369.3) 124:2.7 이 해에 늦게, 갈릴리 바다에서 삼촌(三寸)과 함께 그는 두 달 동안 고기잡이 경험을 가졌는데,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어른이 되기 전에, 솜씨 좋은 어부가 되었다.


(1369.4) 124:2.8 신체의 성장은 계속되었고, 그는 학교에서 상급에 있고 특권을 가진 생도였다. 그는 집에서 다른 아이들 가운데 가장 위인 아이보다 3년 반 더 나이 먹은 이점을 가졌기 때문에, 어린 남동생과 여동생들과 함께 썩 잘 어울렸다. 예수는 나사렛에서 평판이 좋았다. 다만 좀 둔한 어떤 아이들의 부모는 예수가 너무 톡 쏘며, 적절한 겸손과 어린이답게 삼가는 태도가 모자란다고 자주 말했다. 예수는 어린 친구들의 놀이 활동을 더욱 심각하고 생각 깊은 길로 이끄는 경향을 차츰 나타냈다. 그는 타고난 선생(先生)이었고, 놀이에 빠져 있다고 생각된 때조차, 단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자제할 수 없었다.


(1369.5) 124:2.9 요셉은 일찍부터 예수에게 생계를 잇는 다채로운 수단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는 공업•상업보다 농업(農業)의 이점을 설명했다. 갈릴리는 유대보다도 더 아름답고 번영하는 지역이었고, 거기서 사는 것은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사는 것의 겨우 4분의 1쯤 비용이 들었다. 갈릴리는 농사 짓는 마을과 번성하는 산업 도시들이 있는 지방이었고, 인구가 5천이 넘는 마을이 2백 개 넘고, 1만 5천이 넘는 도시를 30개 포함했다.


(1369.6) 124:2.10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 산업을 살펴보려고 아버지와 처음 여행을 갔을 때, 예수는 어부가 되려고 거의 마음먹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아버지의 직업과 가까운 관계가 그에게 목수(木手)가 되도록 영향을 미쳤고, 더 나중에는 여러 영향이 섞여 새로운 체제의 종교 스승이 되는 마지막 선택으로 그를 이끌었다.

124:3 열한 살 되던 해 (서기 5년)
124:4 열두 살 되던 해 (서기 6년)
124:5 그가 열세 살 되던 해 (서기 7년)
124:6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
http://www.urantia.org/ko/yuransia-seo/je-124-pyeonyesuyi-eorin-sijeol-hu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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