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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123편 예수의 어린 시절 초기

자유지향 2012. 8. 23. 01:04

 

유란시아 서


제 123 편


예수의 어린 시절 초기



(1355.1) 123:0.1 베들레헴에서 머무른 동안에 생긴 불안정한 상태와 불안 때문에, 알렉산드리아에 안전히 도착하기까지 마리아는 아기에게 젖을 떼지 않았고, 거기서 이 집안은 정상 생활을 하려고 정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친척들과 함께 살았고, 도착한 뒤에 얼마 안 되어 요셉이 일자리를 잡아놓자 그는 가족을 넉넉히 부양할 수 있었다. 그는 몇 달 동안 목수로서 고용되었고, 그 때 공사 중이던 한 공공 건물에 고용된 큰 무리의 노동자들의 우두머리 자리로 승진되었다. 이 새로운 경험은 그들이 나사렛으로 돌아온 뒤에, 그에게 계약 공인(工人)과 건축자가 되는 생각을 품게 했다.


(1355.2) 123:0.2 예수가 어쩔 수 없던 유아기에 이 처음 몇 해 동안 내내, 마리아는 아이의 복지를 위태롭게 하거나 어떤 면에서도 땅에서 그의 사명을 방해할까 싶은 무슨 일이 닥칠까 두려워 오랫동안 늘 지켰다. 그 여자보다 제 아이에게 더 헌신한 어머니는 없었다. 예수가 어쩌다 있게 된 집에는 그의 나이 또래에 다른 두 아이가 있었고, 가까운 이웃에는 그 자신과 나이가 충분히 가까운 다른 여섯 아이가 있어서 그들은 괜찮은 놀이 동무가 되었다. 처음에 마리아는 예수를 곁에 가까이 두고 싶어했다. 그 여자는 그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뜰에서 놀라고 버려 두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했지만, 요셉은 친척들의 도움을 얻어서, 그러한 과정은 예수가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유익한 체험을 빼앗으리라고 설득했다. 부당하게 감싸고 특별히 보호하는 그러한 계획이 그에게 자기를 의식하고 얼마큼 자기 중심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서, 마침내 마리아는 약속의 아이를 어떤 다른 아이하고도 똑같이 자라도록 버려 두는 계획에 찬성했다. 비록 이 결정(決定)에 승복했어도, 그 여자는 작은 꼬마들이 집 근처나 뜰에서 놀고 있는 동안에 언제나 경계하는 것을 일로 삼았다. 그가 아기였던 이 때와 어린 시절에 아들의 안전을 위해서 마리아가 가슴 속에 지녔던 짐은 오로지 사랑 많은 어머니가 알 수 있을 것이다.


(1355.3) 123:0.3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들이 머무르던 두 해 동안 내내, 예수는 튼튼했고, 줄곧 정상으로 자랐다. 몇 동무와 친척들을 빼고, 아무도 예수가 “약속의 아이”인 것에 관하여 귀띔을 받지 않았다. 요셉의 친척들 가운데 하나가 멤피스에 있는, 아득한 이크나톤의 후손인 몇 친구들에게 이것을 떠벌렸다. 이들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조그만 무리의 지지자들과 함께 요셉의 친척인 후원자의 궁전 저택에서 모였고, 이것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기 얼마 전에 나사렛 가족에게 작별을 알리고 아이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기회에, 모여든 친구들은 히브리 성서(聖書)의 그리스어 번역판의 완전한 사본(寫本) 하나를 예수에게 드렸다.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가 에집트에 남아 있으라고 멤피스와 알렉산드리아의 친구들이 청하는 것을 마침내 물리칠 때까지, 유대인의 이 성스러운 기록의 사본은 요셉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지지자들은 운명의 아이가 팔레스타인에 있는 어떤 지정된 곳보다도, 알렉산드리아의 주민으로서 훨씬 더 크게 세계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설득은 헤롯이 죽었다는 소식을 받은 뒤에, 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떠나는 것을 얼마 동안 늦추었다.


(1356.1) 123:0.4 요셉과 마리아는 그들의 친구 에즈레욘에 속하는, 요파로 가는 배를 타고 마침내 알렉산드리아를 떠났고, 기원전 4년 8월말에 요파에 도착했다. 그들은 바로 베들레헴으로 갔고, 그들이 거기에 남아야 하는가 아니면 나사렛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친구와 친척들과 의논하느라고 거기서 9월 한 달을 꼬박 보냈다.


(1356.2) 123:0.5 마리아는 다윗의 도시,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자라야 한다는 생각을 결코 통째로 버린 적이 없었다. 요셉은 아들이 이스라엘의 임금 같은 구원자가 되리라는 것을 정말로 믿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정말로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 그가 다윗의 자손으로 간주되는 것은 선조(先祖)들 가운데 하나가 다윗 혈통의 후손에 입양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리아는 물론, 다윗의 도시가 다윗 왕좌를 이어받을 새 후보자가 자랄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장소라고 생각했지만, 요셉은 아켈라우스보다 그의 형제, 헤롯 안티파스에게 운을 맡기는 것을 더 좋게 여겼다. 그는 유대 땅의 베들레헴이나 어느 다른 도시에서 아이가 안전할까 크게 두려워했고, 갈릴리에 있는 안티파스보다, 아켈라우스가 아버지 헤롯의 위협적인 정책을 추구할 가능성이 더 많으리라고 추측했다. 이 모든 이유 외에도, 요셉은 아이를 기르고 교육하기에 더 좋은 장소로서 갈릴리를 더 좋아한다고 거리낌없이 이야기했다. 그러나 마리아의 반대를 물리치는 데는 3주가 걸렸다.


(1356.3) 123:0.6 10월 1일이 되어서, 그들이 나사렛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요셉은 마리아와 모든 친구를 설득했다. 따라서, 기원전 4년 10월초에 베들레헴을 떠나서 나사렛을 향했고, 리다와 스키토폴리스의 길을 거쳐 갔다. 그들은 어느 일요일 아침 일찍 떠났고, 마리아와 아이는 새로 산, 짐 싣는 짐승에 올라탔으며, 한편 요셉과 따라오는 친척 남자 다섯은 걸어갔다. 요셉의 친척들은 그들끼리만 나사렛까지 여행하도록 버려 두지 않았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요단 강 유역을 지나서 갈릴리로 가기가 두려웠고, 서쪽 통로도 외로운 두 나그네와 나이 어린 아이에게 아주 안전하지는 않았다.



1.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1356.4) 123:1.1 길 떠난 지 나흘째에, 일행은 목적지에 안전히 이르렀다. 그들은 나사렛 집에 아무런 통지 없이 다다랐다. 그 집은 3년이 넘도록, 요셉의 결혼한 형제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는 정말로 그들을 보고 놀랐다. 아주 조용히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요셉의 가족도 마리아의 가족도, 그들이 알렉산드리아를 전에 떠났다는 것조차 몰랐다. 이튿날 요셉의 형제는 가족을 옮겼고, 마리아는 예수가 태어난 뒤에 처음으로, 자기 집에서 생활을 즐기려고 작은 가족과 함께 정착했다. 한 주도 채 안 되어서, 요셉은 목수(木手)로서 일자리를 얻었고,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1356.5) 123:1.2 나사렛으로 돌아왔을 때 예수는 3살, 2개월쯤 되었다. 그는 이 여행을 모두 매우 잘 견디었고, 건강이 아주 좋았으며, 뛰어다니고 즐길 수 있는 자기 터를 가진 것에 아이다운 기쁨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놀이 친구들과 가졌던 관계를 몹시 서운해하였다.


(1356.6) 123:1.3 나사렛으로 돌아가는 길에, 갈릴리 친구와 친척들 사이에서 예수가 약속(約束)의 아이라는 말을 퍼뜨리는 것이 현명하지 않으리라고 요셉은 마리아를 설득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아무에게도 입밖에 내지 않도록 삼가기로 찬성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이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


(1357.1) 123:1.4 예수가 네 살 되던 해 전부가, 몸이 정상으로 자라고 특별한 정신 활동이 있는 기간이었다. 그 동안 그는 야곱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또래의 이웃 소년에게 아주 가깝게 정이 들었다. 예수와 야곱은 언제나 같이 노는 데 행복했고, 자라서 훌륭한 친구요 충실한 동반자가 되었다.


(1357.2) 123:1.5 이 나사렛 가족의 생활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사건은, 기원전 3년 4월 2일 이른 아침에, 둘째 아이 야고보가 태어난 것이다. 예수는 아기 동생을 하나 가진다는 생각에 기뻤고, 아기의 초기 활동을 그냥 지켜보려고 몇 시간이나 둘레에서 서성거리곤 했다.


(1357.3) 123:1.6 바로 이 해 한여름에, 요셉은 마을 샘물에서 가깝고 카라반이 머무르는 마당 가까운 곳에 작은 작업장을 지었다. 이 뒤에 그는 일당(日當)으로 하는 목수 일이 거의 없었다. 그는 형제들 가운데 둘과 다른 몇 직공을 동료로서 두었는데, 이들을 일하러 밖으로 내보내고, 한편 그는 멍에와 쟁기를 만들고 다른 목공 일을 하면서 작업장에 남아 있었다. 그는 또한 가죽을 가지고, 또 밧줄과 캔바스를 가지고 얼마큼 일했다. 예수는 자라면서, 학교에 가지 않을 때, 어머니의 집안 일을 돕고, 카라반 인도자들과 지구의 사방(四方)에서 온 승객들의 대화와 잡담을 들으면서, 아버지가 작업장에서 일하시는 것을 구경하는 데 시간을 약 반반씩 보냈다.


(1357.4) 123:1.7 이 해 7월, 예수가 네 살 되기 한 달 전, 카라반 여행자들과 접촉해서 생긴 악성 장(腸) 질환이 온 나사렛에 번졌다. 이 유행병에 예수가 노출되는 위험 때문에 너무 놀라서, 마리아는 두 아이를 싸들고 나사렛에서 몇 킬로미터 남쪽에, 사리드 가까이 메기도 길에 있는 동생의 시골 집으로 달아났다. 두 달이 넘도록 그들은 나사렛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예수는 농가(農家)에서 사는 이 첫 경험을 크게 즐겼다.



2. 다섯 살 되던 해 (기원전 2년)



(1357.5) 123:2.1 나사렛으로 돌아온 뒤 1년이 얼마큼 넘는 동안에, 소년 예수는 개인적이고 진심으로 도덕적인 첫 결정을 내릴 나이에 이르렀다.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신성한 선물, 생각 조절자가 함께 거하려고 왔다. 이 조절자는 전에 마키벤타 멜기세덱과 함께 봉사한 적이 있고, 따라서 필사 육체의 모습을 입고 살던 초인간 존재의 육신화(肉身化)와 관련하여, 활동하는 체험을 얻었다. 이 사건은 기원전 2년 2월 11일에 일어났다. 예수는 수많은 다른 아이들보다 신다운 감시자가 오신 것을 더 의식하지 않았으며, 아이들은 그 날 이전과 이후에 그들의 지성에 깃들고, 이 지성을 궁극에 영답게 변화시키고 진화하는 불멸의 혼(魂)이 영구히 살아남게 하기 위하여 일하는 이 생각 조절자를 마찬가지로 받았다.


(1357.6) 123:2.2 2월의 이 날, 미가엘이 아이처럼 육신화한 인격에 관련되는 바, 우주 통치자들이 직접 친히 감독하는 일은 끝났다. 그 때부터 육신화가 인간답게 펼쳐지는 동안 내내, 예수의 보호는 깃드는 이 조절자, 그리고 관련된 수호 천사들의 책임 밑에 맡겨지도록 정해졌고, 이것은 혹성 상관들의 지시에 따라서 어떤 분명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배치된 중도인(中道人)들의 보살핌으로 때때로 보충되었다.


(1357.7) 123:2.3 이 해 8월에, 예수는 다섯 살이 되었고,1 따라서, 우리는 이 해를 그의 생애에서 (달력으로) 다섯 살 되는 해라 부르겠다. 이 해, 기원전 2년, 다섯째 생일이 되기 달포 전에, 예수는 여동생 미리암이 태어나서 몹시 즐거워했고, 여동생은 7월 11일 밤에 태어났다. 이튿날 저녁에, 예수는 여러 집단의 살아 있는 것들이 따로 된 개체로서 세상에 태어나는 방법에 관하여, 아버지와 함께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예수의 초기 교육에서 가장 값진 부분은 생각 깊고 탐구하는 물음에 대답하는 부모로부터 얻었다. 요셉은 소년의 수많은 물음에 대답하는 데 애쓰고 시간을 들임으로 어김없이 임무를 충실히 하였다. 다섯 살 때부터 열 살이 될 때까지, 예수는 줄곧 쏘아 대는 하나의 물음표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물음에 반드시 대답할 수 있지는 않았지만, 그의 질문(質問)을 충분히 검토하고, 또한 그의 재빠른 머리가 내놓는 문제에 대하여 그가 만족스러운 해결에 도달하게 하려는 노력으로, 모든 다른 가능한 방법으로 그를 돕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1358.1) 123:2.4 나사렛으로 돌아온 뒤에, 이들의 집은 바쁜 집이었고, 요셉은 새 작업장을 짓고, 사업을 다시 시작하는 데 특별히 골똘해 있었다. 그가 너무 바빠서, 야고보를 위해서 요람을 만들 시간을 낼 수 없었지만, 이것은 미리암이 태어나기 오래 전에 시정되었다. 그래서 가족이 아기를 보고 감탄하는 동안에, 미리암은 푹 싸여서 잠잘 침대, 아주 푹신한 아기 침대가 있었다. 아이 예수는 이 모든 자연스러운 정상 가정의 체험을 실컷 겪었다. 그는 꼬마 동생과 아기 여동생을 몹시 좋아했고, 동생들을 돌보는 데 마리아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1358.2) 123:2.5 그 시절의 이방 세계에는, 갈릴리의 유대인 가정(家庭)보다 더 낫게 지적•도덕적•종교적 훈련을 시킬 수 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 이 유대인들은 아이들을 기르고 교육하는 체계 있는 프로그람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어린아이의 생애를 일곱 단계로 나누었다:



(1358.3) 123:2.6 1. 갓난아이, 첫날부터 여드렛날까지.
(1358.4) 123:2.7 2. 젖 먹는 아이.
(1358.5) 123:2.8 3. 젖뗀 아이.
(1358.6) 123:2.9 4. 어머니에게 기대는 기간, 첫해 끝까지 지속된다.
(1358.7) 123:2.10 5. 아이의 독립의 시작. 아들의 경우, 아버지가 그 교육을 책임진다.
(1358.8) 123:2.11 6. 청년기의 소년과 소녀.
(1358.9) 123:2.12 7. 젊은 남녀.


(1358.10) 123:2.13 어머니가 다섯 살 되는 생일까지 아이를 훈련하는 책임을 지고, 다음에 그 아이가 소년이면, 그 때부터 계속 그 소년의 교육을 아버지가 책임지게 하는 것이 갈릴리 유대인들의 관습이었다. 그러므로 이 해에, 예수는 갈릴리 유대인 아이의 생애에서 다섯째 단계에 들어갔고, 따라서 기원전 2년 8월 21일에, 마리아는 그가 더 교육을 받도록 정식으로 요셉에게 넘겼다.


(1358.11) 123:2.14 요셉이 이제 예수의 지성 및 종교 교육에 직접 책임을 지고 있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가정 훈련에 관심을 가졌다. 어머니는 집터를 완전히 둘러싸는 뜰의 벽 근처에서 자라는 덩굴과 꽃들을 알아보고 돌보는 일을 그에게 가르쳤다. 어머니는 또한 집의 지붕 위에 (여름 침실) 얕은 모래 상자들을 마련해 주었고, 예수는 그 안에서 지도를 그리고, 아람어, 그리스어, 나중에는 히브리어를 쓰는 초기의 연습을 많이 했는데,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자 그가 세 나라 말을 모두 술술 읽고, 쓰고, 말하기를 배웠기 때문이다.


(1358.12) 123:2.15 예수는 신체적으로 거의 완전한 아이인 듯했고, 정신과 감정 면에서 줄곧 정상으로 진보했다. (달력으로) 다섯 살 되던 이 해의 후반에, 약한 배탈이 났는데, 이것은 처음으로 앓은 작은 병이었다.


(1359.1) 123:2.16 요셉과 마리아는 가끔 맏아들의 앞날에 관하여 이야기했지만, 너희가 거기 있었더라면, 그 때 그 자리에서 오직 정상이고 튼튼하고, 구김 없지만 지나치게 따져 묻는 아이가 자람을 보았을 것이다.

123:3 여섯 살 되던 해의 사건들 (기원전 1년)
123:4 일곱 살 되던 해 (서기 1년)
123:5 나사렛에서 보낸 학교 시절
124.6 그가 여덟 살 되던 해 (서기 2년)
http://www.urantia.org/ko/yuransia-seo/je-123-pyeonyesuyi-eorin-sijeol-cogi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