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스크랩] 판단의 오류

자유지향 2010. 2. 11. 16:46

A는 말한다.

아 이것은 길군요,
아 이것은 좋아요,
당신은 틀립니다.
이 사건은 이러쿵저러쿵……. 합니다.
등등….

B가 묻습니다.

B - "그것이 그렇다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이죠?"

A - "제 경험상 그것은 그래 왔습니다. 제 경험을 기준으로 판단했습니다."

B - "당신은 존재하는 모든 경험을 하셨나요?"

A - "그렇지는 않죠, 혹 제 판단이 틀렸다면, 상식적으로도 봐도……. 그것은…. 이래서 맞고…., 그리하는 것이 상식 아니겠어요?"
      
B - "당신은 지금 보편성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까?"

A - "네, 역사적으로, 관습적으로, 도덕적으로……. 많은 이들이 인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그렇다고 보는 거죠"  

B - "혹시, 사람 아닌 다른 생명체(동물, 식물)에게도 이것을 적용해도 맞나요?"

A -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동물이나, 식물과 대화가 되지 않으니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지요."

B - "그럼 그 보편성은 사람의 인식을 기준으로, 사람이 만든 것이네요?"  

A - "그렇다고 봐야죠 뭐."



B - "인간들의 상식, 논리, 철학, 사상, 종교, 과학, 문화 등에서 가지는 보편적 가치는 인간만이 인식하는 것으로 인간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이는 마치, 온 우주에 인간만이 생각할 수 능력이 있는 유일한 생명체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B - "그것은 유머인데,
        '우리는 우리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무엇을 판단한다.'라는 것은,
        '당신의 발톱에 끼어있는 때를 위해 당신은 존재한다.'는 것보다 더 유머입니다.
B - "많은 이들이 '티끌'에 비유를 하듯이, 인간들이 인식하고 있는 범위는 극히 협소합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판단하지 마세요, 오류가 많습니다."

B - "무엇을, 누구를, 어떤 상황을, 어떤 사건을 판단하기 위한 전제는,
        '모든 것을 안다.'라는 것입니다."

B - "당신에게 묻습니다, 아니 당신들, 인간 모두의 보편성에 묻습니다…….
       당신들은 모든 것을 압니까?"
      
B - "대부분의 당신들은 '나'라고 하는 존재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이해합니까?
       당신은 당신의 신경계를 제어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맥박을 제어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면역체계에 조금의 기여를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음식을 먹고 그것을 분해해서, 당신이 원하는 부분으로 그것을 줄 수 있습니까?
       등등…….
      
B - "거의 모든 당신들은 '나'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또 어떻게 존재가 유지되는지 조차도 모릅니다."

B -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을 너무나도 명확한데,
       우선 '자신부터 알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나 아닌 것'은 그 후의 문제입니다.

A - "'나'를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나요?"

B - "진정 당신 자신을 알고 싶습니까?"

A - "네 알고 싶습니다. 내가 누구이며, 무엇인지,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B -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무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들 모두는……."

B - "당신들이 갖고 있다고 믿는 능력은, 당신의 의식이 가지는 한계 때문에 오류를 많이 포함하고 있으며, 그 능력으로 무엇을 할 때 그것은 오류를 범하게 되며, 흔히들 그것을 '카르마'라고 부르는데, 그 오류로 인한 결과를 당신은 보는 것입니다.

B -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진정 당신 자신을 알고 싶습니까?"

A - '네, 꼭 알고 싶습니다. 알려주세요."

B - "그럼 우선, 오류를 범하는 '나'를 버리세요."

B - "무엇을 '판단한다.'라는 것은,
       그것의 주체인 '판단하는 나'를 자동으로 만듭니다.
       '나'와 '나 아닌 무엇'은 전에 말씀드린, '2'의 상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여기에, '그 무엇'을 '나' 안에 있는 것(체험으로 얻은 의식)'과 비교하는 과정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B - 다시 말하면 '판단하는 나'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지요.
    판단하는 행위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당신이 자기가 누구이고 무엇인지를 알려는 전제가 있다면
    이렇게 자동으로 '나'를 만드는 '판단하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B - "당신이 그 '판단하기'를 의식적으로 멈출 때, 당신은 '1'의 상태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당신은 왜 '판단하기'를 멈춰보라고 하셨는지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B - 그때, 당신이 '1'의 상태에 있을 때, 당신 스스로 그 상태를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은 또한, 사람마다, 가지는 고유한 에너지 형태 때문에 사람마다 다 다른 방식으로 옵니다.
     '당신만이 알 수 있는 방식'
     '당신에게 맞추어진 방식'으로 오기 때문에
    다른 이가 '2'에서 '1'로(깨달음의 길로) 가는 방법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자기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B - 깨달음의 길은,
     어린아이에게도,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욕쟁이 할머니도,
     구걸하는 걸인에게도,
     지능이 많이 떨어져 보이는 장애우에게도,
     등등….
     모두에게 주어지는 공평한 기회이며,
     모두가 그들에게 맞는 방식으로 주어집니다.
    
B - 그것은 오히려, 가진것이 많은 이들이 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2'에서 '1'로 가는 것 중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딱 한가지는 모두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진것이 많을수록,
      그것이 물질이든, 욕망이든, 명애든, 지식이든.....,
      그것을 버리기가 어려운데,
      물질을 버리는것은 그나마 쉬운편이고,
      가장 어려운 것이 '나'를 버리는 것이지요.
      '판단하는 나',
      '논리적인 나'
      '상식적인 나'
      '합리적인 나'
      '체면, 양심, 도덕, 종교, 가치관, 지식 등등 .......을 갖고 있는 나'
       이런 것들이 모두 '나'의 부분들입니다.

A - "어떻게,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일어나는 판단을 의식적으로 멈추게 할 수 있나요?

B - "판단은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판단을 비롯해서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B - "우선 당신은 물질로부터 자유로워 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깨달을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한다고 믿는 최소한의 의, 식, 주를 마치 참새들처럼 아무 걱정 없이 그날그날 주어진 것을 먹고, 입고, 살 수 있습니까?"

B - "사람들 대부분은 항상 내일을 위해 무언가를 쌓아두는데, 이것이 굶어 죽는 이들을 만드는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내일을 걱정하는 나'
'그것에 대비하는 나'
'생존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나의 창고 가득 물질을 쌓는 나'
'나의 자식을 위해 좀 더 많이 쌓아두는 나'
:
B - "우선 물질에 대한 욕망, 소유, 집착 등을 갖는 '나'를 버리셔야 합니다.
이것은 내 안으로부터 많은 저항과 고통이 따릅니다.
이것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다 버린 척'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또한,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과정입니다.

A - "저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노동자입니다. 저는 집도 없고, 저축해둔 돈도 없고, 남한테 해를 입힌 적도 없고, 착하게, 하루하루를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왜 자구 일이 안 풀리고 꼬여만 가는지...."

B - "그러한 당신은 하늘에 가깝습니다.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나에게 물질적인 욕망을 없애시려고, 물질이 전부가 아니구나! 마음이 우선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주신 상황이라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B - "당신 앞에 놓인, 당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물질 또는 돈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 앞에 잠시 옮겨진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당신의 돈을 엉덩이(지갑)에서 손으로 옮기듯,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아무 저항 없이 그것을 다른 이의 손에 옮길 때, 당신은 '내 돈을 당신에게 준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 엉덩이에 있던 돈을 다른 이의 손에 옮긴다.'로 생각하세요.

B - "물질은 마음이 만들어 낸 환영입니다. 그것의 설명은 나중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이해하려면, 수와 도형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형태의 에너지 틀에 마음의 에너지가 작용을 하면 거기서 물질이라는 환영이 만들어지는데……. 그것은 나중에 말씀드리지요..."

A - "물질에 대해 제가 자유로워진 후, 또 무엇을 해야 하나요?"

B - "'나라는 의식'을 버리는 것입니다.

B -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으로 사물을 인식하며, '그것이 무엇이다.'라는 교육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또한, 커가면서 갖는 많은 경험을 통해 그것들 모두를 '나 아닌 것'이라는 전제하에 나의 의식에 쌓아 둡니다.
이렇게 '내'가 있고 '나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2' 상태의 '나'를, 이 상태의 '나의 의식'을 버리는 것입니다.

B - "한꺼번에 의식을 버리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일단 귀를 버리는 것의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있습니다.
그의 나이는 74세,
그는 바이올린 연주를 7세부터 시작해 '바이올린의 귀재'라는 소리는 듣고, 그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평생을 연주가로 살았고, 지금도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연주는 특별합니다.
그는 내 마음을 아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그는 청중들이 나의 연주를 어떤 느낌으로 듣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후로 모든 것을 청중의 귀에 집중합니다….
저 사람은 내 연주소리를 어떻게 듣고 있을까?
나는 이런 느낌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을 알까?
이런 마음으로 그의 모든 신경을 듣는이에게 집중합니다.

조금씩 저 사람이 나의 연주를 어떤 느낌으로 듣고 있는지 느껴집니다. 조금씩…….
그는 더욱더 청중의 귀에 집중합니다.
그가 집중하면 할수록 청중이 어떤 느낌으로 듣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는 그런 실험을 계속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연주실력도 무르익어 갔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청중이 듣고 있는 나의 연주소리가 마치 내 귀로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청중의 귀를 내가 달고 있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그들이 그 소리를 어떤 느낌으로 듣는지, 그들의 느낌이 마치 내 느낌처럼 왔습니다.

그것은 그가 65세가 되던 해에 일어났는데,
그때, 그는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들은 것은 자기만의 귀로 들은 것뿐이며,
나의 연주를 내 귀로 듣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고,
모든 이들이 각각 듣는 귀가 다르고, 느낌 또한 다르다는 것을…….,

내가 연주를 하고 내가 듣는 것은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며,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연주를 듣는이가 어떻게 듣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이제 자기의 연주 소리를 자기의 귀로 듣는 것에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청중의 귀로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의 연주를 다른 이가 어떻게 듣고, 느끼는지 압니다.
그는 그들과 함께 자기의 연주를 즐깁니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기쁨으로…….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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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은 가장 간단한 형태의 자유선택의 요소이다.

'하나가 나머지 둘 중에서 어떤 것을 선호함'  .....

우리의 의식은 이것을 거의 자동으로 한다.
그래서 3을 사람의 마음이라고도 한다.
또한, 이것은 선택의 속성상 혼돈을 만들고, 그래서 3을 '혼돈'의 수 라고도 한다.

이런 자유선택의 결과로,
하나의 사건(선택하는 나)과 나머지 둘의 사건(선택을 받는 나 아닌 것) 간에 거리가 만들어지는데,
이때 선호하는 것은 당겨지고, 그렇지 않은 것은 밀려진다.

이런 자유선택의 현상을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하는데 적합한 방법으로,
하나와 다른 둘 사이를 잇는 간단한 도형인 '삼각형'을 사용한다.

자유선택권이 있는 우리는 각각 일정한 형태의 삼각형을 가지며,
삼각형 세 내각의 각도와 세 변의 길이가 비슷한 삼각형은 있을 수 있으나, 똑 같은 삼각형은 없다. 나와 같은 삼각형은, 나와 같은 자유선택 의지를 갖는 사람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이 삼각형은 다음과 같은 속성이 있는데,

> 자기의 것과 비교해서 그것이 길면,
   덥다, 짜다, 뜨겁다, 많다, 크다, 좋다, 행복하다. 강하다, 등등…. 으로 인식하며,

> 자기의 것과 비교해서 그것이 짧으면,
   춥다, 싱겁다, 차다, 적다, 작다, 나쁘다, 고통스럽다, 약하다, 등등…. 으로 인식한다.

> 또한, 자기의 것과 각도가 같으면 그것은 맞다,

> 자기의 것과 다르면 그것은 틀린 것이라고 인식한다.

> 이 삼각형은 자기의 각도와 길이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인식하는 속성을 가진다.

> 또한, 대부분의 삼각형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기가 '정삼각형'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삼각형은 한 변이 유난히 긴 불균형한 삼각형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나'로 인식하며 사는데,
자기의 삼각형은 자기의 눈으로는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보는 자기의 눈도 자기의 삼각형과 똑 같기 때문에 '비교' 또는 '판단'의 현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삼각형을 보는 유일한 방법은 나와 모양이 다른 '나 아닌 것의 눈'으로 보는 것밖에 없다.

동서고금의 모든 성인들, 종교, 사상, 철학, 수학, 과학, 모든 형태의 예술, 또 근래의 메세지 등등…. 의 글과 말씀 행위로, 이 사실을 표현하셨다.

"모든 것이 너희의 불균형한 마음에서부터 비롯되니, 서로 판단하지 말고, 서로 돕고 살며, 불균형한 마음을 버리도록 노력하려는 자세로 살아라."

"너희가 불균형한 삼각형을 다 버릴 때, 그때, 너희 안에 있는 균형잡힌 에너지(결정체, 크리스탈과 같이)가 활성화되어, 나와 교신할 수 있으며,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나의 뜻과 의지를 알 수 있으며, 너 자신을 알 수 있으며, 네가 왜 이곳에 존재하는지, 네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수와 도형은 말과 글 이전의 표현 방식이며, 말과 글이 갖는 이원성(그것을 쓴 이 또는 말하는 이와, 그것을 보고 듣는 이)의 오류를 최소화시키며, 하늘과 땅에 있는 다양한 의식체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표현방식의 하나이다.

 

 

'2'

두개의 서로 다른 에너지,
'나와 나 아닌것'

우주에 오직 '나' 밖에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때 '나' 라는 인식은 사라진다.
'나'라는 인식은 '나 아닌것'이란 인식이 있을때만 작용하는 인식으로, '2'는 각각이 '나'라는 인식을 갖게하는 최소의 단위이다.


또한, 2개의 에너지가 만날 때, 각각의 진동(에너지) 정도와 거리에 따라,
둘 사이에 '무수히 많은 에너지 중심'들이 만들어지며, 이것들을 또다시, '나 아닌것'으로 인식한다.
이런 '2'가 만들어 내는 현상을 '선형적인 인식', 선형적 사고', '이원적인 사고', '이원성', '분리의식' 등등.... 으로 말하곤 한다.


또한, 2개의 에너지가 일정한 거리와 주기로 돌고,
역시 같은 방식으로 '2'와 또 다른 '2'가 만나 일정한 거리와 주기로 돌고,
또 그런 '4'와 또 다른 '4'가 만나 일정한 거리와 주기로 돌고,
계속 같은 방식으로......뭉쳐지는데,
이것들을 또다시, '나 아닌것'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2'의 속성을 통해 '에너지들의 다양한 모양의 뭉침 또는 연결'이 만들어지며,
우리는 이것들을 원소 주기율표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그것을 '물질'이라고 인식한다. 또한 그것들이 아주 아주 많이 뭉쳐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땅'이라고도 표현한다.


우리는 매일 해가 뜨고 지는것을 본다.

우리는 해가 비추는 빛의 정도에 따라 그것을
최초 '밤'과 '낮'이라는 인식으로 부터 시작하여,
다시 그것들을 세분하여,
동틀 무렵,
이른 새벽,
아침,
오전,
이른 오후,
낮,
초저녘,
저녘,
밤,
늦은 밤,
깊은 밤, 등등..으로 구분하여 사용하는데,
이것들 모두는 지구가 자전하는 현상 때문에 갖는 밝음의 정도로, 사람의 인식을 기준으로 만든 개념일 뿐이며, 우리의 인식은 이 '다양한 밝음'을 그것의 정도에 따라 여러가지로 표현을 하는 것이다.

반면에 지구의 입장에서, 내가 만약 '지구'라면, 내 눈과 지구의 눈을 바꿔달면.........,
그것은 항상 낮인데, 따라서 나는 그것을 따로 구분하여 인식하지 않을 것이고, '낮'이란 개념 조차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밝음',........ '빛'만 있고,
본질은......  
"내가 이 '빛'을 을 얼마만큼, 어느정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이다."


이처럼 하나의 사건을 분리시켜 또는 뭉쳐서, '나 아닌것'으로 인식하는 현상을 만드는 것이........
'2'가 가지는 속성이다.  


우리가 표현하는 '글'과 '말'은,
'2'의 속성을 가지며,
'2'로 부터 출발하고,
'2'라는 것을 전재로 한다.
따라서 이것이 가지는 표현의 한계로,

'2' 보다 우선하는, '2'의 근본이 되는 '상위 개념'을 '2'의 방식으로 전달하려 할 때, 많은 오류가 발생한다.

 

 

 

'1'

'글'이나 '말'로 표현 불가능한 그 무엇......
'2'의 상태에서는 인식할 수 없는 무엇,
'2'를 만든, 상위개념 또는 상태,
'나'라는 의식 이전의 의식
유일한 실존,
우주 삼라만상,
무한 에너지,
모든 빛,
2개 이상의 에너지가 기하학적으로 완전한 균형을 이룬 상태,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최상위 신,
등등…….

'1'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극히 제한된 인식을 갖고 있는 우리는,
그 인식이 허용하는 범위안에서 표현한 것일 뿐이며,
온전한 표현은 불가하고, 그 때문에 오류가 만들어지며, 혼돈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1'을 비유의 말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A는 책을 무척 좋아한다.
어느 날 낮, A는 허름한 서점에서 그동안 무척 읽고 싶었으나, 구하지 못하던 책을 발견하고 너무너무 기뻤다. 그 책을 구입하고, 당장 집으로 향했다.
A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가방에서 그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한참 시간이 흘러 저녁 때가 되었다. A는 그 책이 너무 재미있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

'A의 어머니'가 부엌에서…….
'A의 어머니' - "얘야, 저녁밥 먹어라~~~상 차려놨다."
'A의 어머니' - "밥 먹으라니까~~~~"
'A의 어머니' - "밥 먹으라는데 너 뭐하니~~~"
'A의 어머니' - "너 내 말 안 들리니~~~"
'A의 어머니' - "쟤가 자고 있나!!!"

'A의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A의 방으로 왔다.
책을 읽고 있는 A를 보시고 화가 나셨다.
등을 치시며,
'A의 어머니' - "너 또~~ 그놈의 책을 읽고 있구나!"
'A의 어머니' - "어미가 밥 먹으라는 소리 안 들리니? 이놈아~"
'A' - "못 들었는데요……. 죄송해요. 엄마", "지금 갈게요"
'A의 어머니' - "너는 그놈의 책만 보면,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모르겠구나.."
'A' - "헤헤헤...."
A가 머리를 긁적인다.



A가 책에 열중해 있을 때,
그때, 그의 '나'라는 의식은 사라진다.
그의 의식이 '나는 지금 책을 읽고 있는 중'이 아니고…….
'나 = 책'이 되어 버린다. 책을 읽는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만약 그의 의식이 '나는 지금 책을 읽고 있는 중'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다른 말로…….
책을 읽고 있는 '나가 있음'의 상태 일 때,
그는 그의 어머니의 "밥 먹어라."라는 외침을 인식한다.

A가 책을 읽는 사건은 실존하지만, 그 당사자인 A가 그것을 '내가 하고 있다.'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노자는 그러한 것을 '무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셨다.


이번 '1'의 글과, 앞서 '2'와 '3'의 글에서 필자가 전하고 싶은 것은…….

의식체가 갖는 '1', '2', '3'의 상태는 신이 만들어 놓으신 법칙이며,
그것에 좋고, 나쁨은 없으며,
우리는 그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그 상태(특히 '1'의 상태)에 있으려면 무슨 특별한 공부를 해야 한다고 표현하는데…….,

진리는
남녀노소,
배운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선한 이와 그렇지 않은 자.
착한 이와 그렇지 않은 자,
믿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
등등…. 을 구분하지 않고 적용됩니다.

비가 오는 것과 같습니다.......
비는 특정한 누구에게 더 많이 내리는 법이 없습니다.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무수히 제공되는 기회이며,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나의 선택'입니다.

다만, 너무 많은 과정에 '2'와 '3'만 하셨기에 이제는 '1'도 선택해 보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서구의 과학계에서….

힘과 운동을 규정하는 자연의 법칙은

뉴턴의 만유인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이렇게 4가지로 분류합니다…. 현재까지는

그런데 이 4가지도 대상에 따라 서로 결과가 틀리게 나옵니다.

거시 물체에서의 운동법칙은
뉴턴의 법칙이…. 잘 적용되고,
극소 물질인 원자의 운동은 양자역학이…. 잘 적용됩니다.

그러나 서로는 잘 맞지 않는 오류가 생기는데,
예를 들어,
야구공을 어느 정도의 힘으로 어떤 방향으로 던지면,
어디에 떨어지는지 뉴턴의 운동법칙을 사용하면 잘 맞는데,
원자 내의 전자의 운동을 뉴턴의 법칙을 적용하면, 엉뚱한 답이 나옵니다.

이런 이유로 서구의 학자들은 지금도, 모든 물체에 다 적용해도 맞는 통일된 힘의 법칙을 찾고 있습니다.

이런 원자 물리학 중에서 원자 내의 전자의 운동을 알기 위한 양자역학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이런 미시적인 세계의 운동법칙을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데,
아직 그것을 정확히 규정할 딱 들어맞는 법칙이 나오지 않았으며, 확률함수, 분포함수, 등의 대략적인 식만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메시지들에서 '양자적' 또는 '양자'란 용어를 인용하여 무엇을 설명을 하려는 의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는
'종교와 과학은 관련이 없는 서로 다른 분야다.'
'그 둘은 양립될 수 없다.'
'종교는 논리적이지 못하다.'
'종교는 형이상학이다.'
라는 관점을 바꾸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과학계에서도 예외 없이 '2'의 관점에서는
양자적 미시세계에서의 전자의 운동법칙을 찾아낼 수 없는데,
수 '1' 를 배제한 상태에서는 이 분야 역시 많은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양자적인 미시세계에 대한 과학자들의 접근이 '2 상태의 관점'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양자'란 용어를 인용하는 이유는…….
우리가 보는 현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보이는지,
실제로 양자적인 차원의 미시세계에서 에너지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우리의 마음이 양자적인 세계에 작용하여 만들어낸,
마치 입체사진과 같은 세계입니다.

싯달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그리고 '공'의 개념….


진리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아니, 진리는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합니다.
진리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 논리, 철학, 수학, 예술, 정치, 문화, 종교, 등등….
모든 곳에 적용해서 오류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은 '부분'이지 진리가 아닙니다.

이전까지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했던(과학, 논리, 철학, 수학, 예술, 정치, 문화, 종교, 등등….) 것은 진리의 부분집합들입니다.



이후, 우리에게는 전체를 포괄하는, 어떤 것에도, 어떤 분야든, 과학계에서도 적용해도 맞는 우주적 진리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기에 과학계 첨단의 분야인 원자 물리학의 용어를 도입하여, 메시지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고대의 문명에는 '1'의 의미와 개념, 상태를 알고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그들의 피라미드에는 '수', '도형', '시간', '공간', '에너지' 등등의 우주법칙이 많이 들어 있으며, 이것은 '1'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적용할 수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모든 것의 근원은 '1'입니다.

 

 

 

'4' - 기도, 요청하다, 땅에서 하늘로

 

 

'3'이 지닌 의미 중 대표적인 것은 '혼란', '혼돈', 입니다.
'2'가 지닌 의미 중 대표적인 것은 '이원성', '물질', '땅'입니다.
'1'이 지닌 의미 중 대표적인 것은 '하늘', '하느님', '공평', '균형'입니다.

  
수 '4'가 내포하는 의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3 - 혼돈'의 상태에 있을 때, '1 - 하늘'에 해결을 구하는, '4 - 기도'입니다.
3(혼돈) + 1(하늘) = 4(기도)

'4'는 하늘과 관련된 수이며,
우리와 하늘을 연결해주는, 우리의 바램을 하늘로 보내는 송신의 수단입니다.

또한, '4'는 '3'과 조합하여, 중요한 수 '12'가 만들어집니다.
'12'는 나중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또한,
'4'와 '3' 사이에는 사각형이 있으며,
'3'과 '2' 사이에는 삼각형,
'2'와 '1' 사이에는 원이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늘과 땅의 연결은 '원'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1'과 '1'이 둘 사이 어떤 지점을 중심으로 원 운동할 때, '물질',곧 '땅'이 만들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나중에 다른 수와 도형이 조합되어, 물질의 생성과 우주의 기원, 원자역학에서 힘의 작용 등에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땅과 사람의 연결은 '삼각형'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이전의 글 '3' 참조)
사람이 하늘에 무엇을 구하려면 '사각형'을 통해 '4'를 하여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기도의 방법,

A가 기도를 드릴 때,
"저에게 B를 주소서"라고 하면…….,
하느님은 무엇을 주실까요?

하느님께서는,
"알았다. '저에게 B를 주소서' 받아라." 하십니다.

그러면 A는 또 기도를 드린다.
"저에게 제발 B를 주소서"

하느님께서는,
"알았다. '저에게 제발 B를 주소서' 받아라." 하십니다.

A - "주님 저에게 지혜를 주소서, 제가 둔하여 당신의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느님 - "알았다. '주님 저에게 지혜를 주소서, 제가 둔하여 당신의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받아라." 하십니다.

우리가 B를 원할 때 "B를 주세요" 하면, 하느님께서는 'B'를 주시지 않고, 'B를 주세요'를 주신다. 다시 말하면 'B를 주세요'라는 상황을 주신다.

우리가 B를 원할 때, "B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드리면,
'B를 주셔서 감사한' 상황을 주신다.


하늘에서는 무엇을 주실 때, 그것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상황까지 포함하여 주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결과에만 집착하여 과정도 생략한채, 하늘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항상 감사하라는 말씀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시, 우리가, '3 - 혼돈'의 상태를 '2 - 이원성'으로 해결하려 할 때,
'5'의 개입이 들어옵니다.
3(혼돈) + 2(이원성) = 5

수 '5'는 하늘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외부인' 또는 '의식체'의 의미가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라면, 하늘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도형 5각형을 이용하여, 변칙적인 체계를 만들고, 자신들이 '신'의 행세를 하겠다는 외계인을 말합니다.

우리의 주변에도 5각형의 심벌들이 간혹 보이는데, 이는 그들의 영향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접근할 때, 우리의 의식으로 오는데,
이 말은 '내 생각'으로, '나'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그들의 의식에 조종되고 있는지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의식에 침투하여,  이기적인 생각, 탐욕, 분열, 폭력, 전쟁 등등 부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우리에게 '3 - 혼돈'의 상태로 빠지게 한 후, 다시 그것을 해결해 주겠다는 '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신'의 행세를 합니다. 이런 일은 우리 주위에 비일비재합니다.  

또한, 우리가 흔히 '미스터리 서클'이라고 부르는 것도 수와 도형의 기본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일종의 언어입니다. 그것들 중에도 5의 개입이 있습니다.


저도 조금밖에 모르지만, 제가 계속해서 수에 대해서 글을 올리는 이유는,
꼭 알아야 할 기본적인 수의 의미와 도형의 의미를 모르면 '우주의 법칙'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수와 도형은 '2'의 상태에서 '1'을 이해하는데 가장 오류가 적은 '2의 표현'입니다.  
고대로부터 수비학이나, 피타고라스의 비급, 카발라, 천부경 등에서 부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들이 있는데, 이 또한 그것을 직접 받으신 분들은(지혜를 받으신 당사자)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셨다고 생각되지만, 그분들의 제자들에서 제자들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왜곡, 오류, 분실이 되어 온전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3'의 혼돈의 상태에서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1'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종교를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아는 이들이, 곧 진리를 원하는 이들이 기본적으로 취하여야 할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빛'이라 하면
흔히 우리가 인식하는 가시광선의 범위를 빛이라 한다.

여기에 과학계에서는 좀 더 범위를 넓혀, 빛의 스펙트럼에서 붉은 색보다 진동수가 적은 적외선, 보라 색보다 진동수가 많은 자외선, 또 그보다 더 높은 진동을 하는 X-선,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등을 빛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 빛의 구분은 인간의 인식(눈)을 기준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또, 적외선보다 진동수가 적은 마이크로선, 라디오파, 등등으로 구분하고,
그보다 더 적은 진동을 소리라고 합니다. 우리의 가청 주파수는 일반적으로 20Hz ~ 20Kh 인데,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며, 동물들과는 많은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가시광선도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색의 인식이 조금씩 차이가 나며, 동물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은 이처럼 각각 진동을 하고 있으며, 진동 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심지어 지구, 달, 태양, 은하 등의 천체들도 고유한 진동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식은 이들이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진동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엄연히 자체적으로 자전을 하며, 더 큰 천체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진동을하고 있습니다.
진동, 회전, 주파수, 주기는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빛'을 규정함에 있어서 인간의 인식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있는데 이는, 사물을 보는 과정에서 그것의 실체보다는 우리의 눈으로 인식되는 가시광선 범위의 현상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물의 실체에는 우리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빛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것이 단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계로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한정된 논리만으로, '그것은 없다'로 규정합니다.

'모르는 것'을 '없다'로 인식하는 방식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간은 우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깨닫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란,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는지를 깨닫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안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것' 입니다.

깨달음의 길에 있을 때, '오만한 척', '겸손한 척'을 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들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는 그것을 안다' 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내가 얼마나 많이 모르고 있는가'조차 모르는 '2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음도 나쁨도, 옮음도 그름도 아닙니다.


'빛'이란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창조주가 만들어 놓으신,
'회전하는 모든 것',
'진동하는 모든 것',
'주기를 갖는 모든 것'
'존재하는 모든 것'
'실재로 존재하는 모든 것'
:
'존재하는 모든 것'
'존재를 유지시키는 모든 것'
'인식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조금씩 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알아 가야 할 그 무엇' 입니다.



서구의 과학계에서는,
이런 미시적인 원자를 구성하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 다시 그들을 구성하는 미립자, 쿼크 등을 연구하여, 물질의 최소단위를 밝히기 위해, 또한 우주생성의 비밀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그들은 빛을 규정함에 있어, 빛이 '입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 모두를 갖는 이중성이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으며, 빛이 왜 이원성을 가지는지는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과학계에서 기본적으로 의심없이 그들에게는 진리라고 여겨지는 법칙 중에,
'질량은 있다.' '중력은 있다.' '만유인력은 있다.',가 있습니다.
이를 의심없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모든 우주의 현상은 이를 바탕으로 하여 해석하려 합니다.


이에 반해, 동양의 싯달타의 가르침 속에는 공의 개념이 있는데,
이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우주에 대해 상반되는 두가지 인식이 있습니다.
과학계는, 물질을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그 무엇이 '있다',와
불교에서는,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없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초의 학자 중에 현대 우주론에 버금가는 이론을 펼치신분들이 계시는데....., 이황, 이이가 계십니다.
이황의 '주리론'과 이이의 '주기론'은 사물을 이루고 있는 근본에 대해 각각의 논리를 펴고 있은데, 이는 불교의 형이상학적인 의미들을 좀더 논리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풀이하려는 시도였으며, 현대인들의 우주관보다 앞서는 이해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대치되는 개념들이 통합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우리가 이런 각각의 주장이 왜 그런지 또 서로가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하며,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데,

혹시, 이 둘의 논리를 설명하고, 이 둘의 개념을 포함하는 더 큰 개념이 있지 않을런지요.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는.....

만약, 이 두가지를 포함하는 논리적인 개념이 있다면, 그것은 진리일까요?
그런것이 있다면 혹시 성경에 나오는 창조론에 위배되지는 않을까요?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여태까지 각각 진리라고 말한 모든 것들, 그러나 서로에게 증명하지 못한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
그 모두를 포함하는 논리가 있을까요?


답은 '이미 있다' 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이미 쥐어져있습니다.  

창조주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너희들끼리 서로 도우며 기쁘게 살아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이미 너희에게 각각 나누어 주었으니 그것을 합하여 다시 함께 나누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합치면 합칠수록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물질이란........,

실존하는 '빛'이 '뭉쳐' 또는 '연결되어져'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빛이 특정한 기하학의 형태를 토대로 뭉쳐서 특정한 물리적, 화학적, 전기적 현상을 유지할 때, 우리는 그것을 물질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재로 있다'고 인식 합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은 물질은 '스스로 뭉쳐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중력이란 없는 것이며, 질량 또한 없습니다. 그것들이 있는것 처럼 보이게 만드는 에너지의 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빛의 조각들을 뭉쳐지게 만드는 힘의 작용이 있는데, 아직 우리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으며, 그것의 실체 또한 인식을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우주 물리학에서는 '암흑물질'이라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부분이며, 이것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제가 자주 수와 도형에 대해 글을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빛이 뭉치고, 뭉쳐진 것을 유지하며,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다'로, 보일 수 있게, 만져질 수 있게 하며,
그래서 물질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미립자에서 우주의 큰 천체들을 포함하여 모든 물질에 작용하고 있는 것


그것은...........,

'에너지의 망'
'에너지의 틀'
'아주 높은 진동수를 갖는 에너지 그물'
'균형잡힌 기하학적 구조를 갖는 높은 에너지의 흐름'
'서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으로는 '없음'으로 간주되는 무엇'
'물리적, 화학적, 전자기적으로 '0'의 균형 상태인 에너지의 흐름'  
'아직 인간의 장비로는 측정되거나, 관측되지는 않지만,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엇'
:
등의 많은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에너지의 기하학적 도형이며, 그것에는 '균형'과 '공평', '사랑', 등의 기본적인 개념들을 포함하며,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물질, '2 - 땅'을 만드는 '1 - 하늘의 법칙'이 있습니다.

물질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하늘의 법칙에 의해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런 하늘의 능력을 부여 받아,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 때, 그것이 하늘의 '에너지 틀'을  울리고 하늘은 그 울림에 반응하여 자신의 빛을 내어 주고, 다시 그 빛을 모으고 뭉칩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현실이라는 물질의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우리가 가지는 마음의 삼각형이(글 3 - 마음, 혼돈 참조) 균형을 이룰수록 그 울림은 강해지며, 그에대해 반응 또한 빠르게 나타나고, 현실이 가까워집니다.

3 -> 2 -> 1 의 상태로 갈수록 마음의 도형은 균형을 이루며,
이러한 빛들이 뭉칠 때,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이 엄청난 화음음 내며,
마침내 빛의 진동수에 이르고, 빛을 낼 것입니다.

 

'우주'

우리는 그것이 무한하다고 인식합니다.
그것은 우주가 표현하는 범위가 우리가 가지는 인식의 한계를 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이루고 있는 성분, 구조, 힘의 작용, 역할, 크기, 모양 등,
모두다 우리의 인식을 뛰어 넘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그 안에 존재하고 있으며, 항상 똑 같은 의문을 갖고 그것을 매일 바라보고 있다. '우주란 무엇인가?'



우주에 대해 우리가 보편적으로 갖는 인식중에, 그것은 엄청난 크기의 공간으로 되어 있으며, 빅뱅으로 시작되었으며, 질량이 있고, 이것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만들어 서로 뭉쳐져 다양한 전체들이 형성되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근래에는 공간에 대해 다양한 관점의 해석이 시도되고 있는데, 가장 최근의 이론은 '초끈이론'으로 공간이 마치 피아노 줄의 형태와 같이 좀 더 미세한 공간으로 말려있으며, 여러 차원으로 되어있다고 해석합니다.



'물질우주'의 출발은 '우리의 인식'을 전재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우주를 해석하려 할 때, '우주를 인식하는 우리가 있음'을 당연한 것으로 전재한,  
'2'로부터 출발된다.
'2'에서부터의 출발이, 우주를 해석하려 할 때 발생하는 오류의 근원입니다.
왜냐하면, 우주는 '1'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우주는 빛의 기하학적 흐름의 '에너지 틀'에 담겨져 있습니다.
다른 말로, 물질은 기하학적 형태로 된 빛의 그릇에 담겨져 있는데,
이해를 돕기 위한 예로, 근래의 플라즈마를 이용하는 발전기 연구에서 그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발전에 사용하려는 플라즈마는 높은 고열로 인해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어 고안한 방법이 강력한 전자기장을 이용하는 것인데, 강력한 전자기장을 발생시켜 플라즈마를 가두는 방식이다. 이것은 물질을 에너지의 흐름 속에 즉, 공간에 가두는 하나의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물질우주 또한 이와 비릇한 원리로 에너지 틀에 담겨지는데(가두어 지는데), 에너지 틀의 형태는 수와 도형을 바탕으로 하며, 그것의 모양에 따라 그 안에 담기는 물질, 삶, 또는 삶의 과정, 마음 등등이 영향을 받으며, 그것의 형태에는 그것을 만드신 의식체의 의도가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빛의 강력한 흐름이 '물질우주'를 담고 있는데,
우리가 인식하는 '공간'이란, 이런 에너지 흐름의 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빛의 흐름 사이에 '공간'이 형성되며,
그 '공간'에 역시 빛이 뭉쳐져 '물질'로 인식되어 집니다.


'공간'은 에너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만들어지며, 그것은 우리가 추측하듯, 차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빛의 가시광선 범위밖에 인식하지 못하듯, 공간 또한 우리의 인식을 벗어나는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공간은 다양한 크기의 공간이 중첩되어 있고, 우리는 그중에 일부만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를 이야기할 때, 빛이 공간을 관통하는 것을 전재로 하는데,
이것은 에너지가 이동되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합니다.
에너지는 공간을 관통할 수도 있지만, 틀의 형태로 옆의 틀에 전달되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이 방식은, 같은 에너지의 형태를 갖는 에너지 틀은 하나가 진동할 때, 그와 같은 형태의 틀은 모두 공명을 하며, 이때, 그것과 같은 진동수, 오타브, 또는 화음를 이루는 에너지 틀도 같이 공명합니다.
이런 방식은 온 우주에 거의 동시에 전달되며, 시간의 허상을 벗어나 '즉시', '지금' 일어납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 때 만들어지는 에너지'도 이런 방식에 포함된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의 에너지는 '지금' 이순간 온우주에 전달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 순간,
창조주 아버지는 동시에 인식하며,
자신의 몸인 빛을 내어 주시고,
그것이 형상화 되도록 하시며,
우리는 그것을 현실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물질우주는 유한하며, 그 안에 담겨 있는 많은 전체는 그 '계'(태양계, 은하계, 지역우주, 소우주, 우주 등)를 형성할 때, 창조주의 의도에 따라 고유한 형태의 에너지의 그릇을 가지며, 그것이 그 계에서는 '법칙'으로 작용하여, 물질(땅)을 만들 때, 또는 유지하는데 작용합니다.
여기서 물질우주를 '유한계', 그것을 만드는 하늘의 법칙을 '무한계'로 부를수 있습니다.

우주에 있는 크고 작은 무수한 천체들은 그 계를 담고 있는 '에너지 법칙'에 영향을 받으며, 또한 그 계를 포함하는 그보다 더 큰 계에 예속되어 그것의 영향을 받습니다. 당연히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분자, 원자, 미립자)에도 에너지 그릇의 힘은 예외 없이 작용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구를 담고 있는 에너지 그릇의 형태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아직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에너지의 법칙이며,
이것을 알기위해서는 '2의 상태'를 벗고, '1의 상태'로 사물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마음(의식)에도 작용을 하는데, 우리의 마음도 에너지의 흐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성하는 '영', '몸', '마음'중에서 '몸'과 '마음'이 지구의 에너지 그릇에 영향을 받는다. 또 상위의 에너지의 그릇에도....  



물질우주 전체를 담고 있는 기본적인 에너지 틀(그릇) 중에 대표적인 것이 '12'입니다.
이것을 '12'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가지는 고유한 기하학적 형태 때문인데, 그것이 물질우주 안에 있는 물질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계는 '12'를 기본 틀로 하여, 수와 도형을 이용하여 에너지의 흐름이 덧 붙여져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는데, 그것에 따라 그 계의 기본적인 물질형성과 유지, 생명체의 형태, 마음의 작용, 삶에 영향을 줍니다.
'12'는 너무 많은 내용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따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질량, 중력, 시간, 공간, 물질 등, 물질우주에 존재한다고 인식되는 모든 것은 '빛'이 만들어 낸, '빛의 흐름'이 만든 허상이며, 우리에게는 단지 그것이 '있다'로 인식하는 의식의 작용이 있는 것이고, 의식의 진화에 따라 인식의 범위가 확장되며, 무엇이 허상이며, 무엇이 실체인지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물질우주를 형성하는 기본 재료인 '빛'은 창조주 아버지로 부터 무한히 제공되는데, 그것에는 법칙, 사랑, 믿음, 의지, 나눔, 기쁨, 지혜 등등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들이 들어있고, 그분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2의 상태'에서 '1의 상태'를 해석하려할 때, 많은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인식의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이것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은 옳은 방식이 아니며,
우리는 사물을 대할 때,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창조주의 의도에 대하여 보다 겸허한 자세가 전재되어야 한다. 이러한 자세가 되어 있지 않는 한 '3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으며, 한정된 주기 안에 주어진 과제를 풀지 못하는 과정을 되풀이 할 것입니다. 이것이 사라진 문명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그 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려는 마음은, 온우주의 모든 의식체가 갖는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6' - 부류, 휩쓸림,  정체성의 상실



수 '6'이 지니는 의미는,


'3'(혼돈) + '3'(혼돈) = '6'(부류)
또는 '5'를 '1'로 여기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른 말로,
혼돈에 혼돈이 가중된 '극심한 혼돈'의 상태,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상태,
판단도 없이 우왕좌왕 휩쓸리는 상태,
'남이 하니, 나도 한다.'는 책임의식이 없는 상태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지는 많은 메시지들 중에는,
지나온 과정들 속에 만들어진 많은 불균형한 에너지를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하늘의 계획이 있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체계를 만드실 때,
그것의 에너지 형태가 좌우상하가 대칭이 되고,
힘이 균형을 이루도록,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것이 '없다'로 인식되는데,
우리가 이런 에너지의 틀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할 때,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은 '대칭' 입니다.
어떤 에너지의 형태가 대칭을 이루지 못하는 형태가 있다면 그것은 하늘의 체계를 벗어나는 '5'의 세력이 만든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5의 세력들이 5각형을 바탕으로 만든 에너지 체계는 '비대칭의 불균형한 체계'라는 것입니다.


예로, 모두가 아는 '45 로또'가 있습니다.
45의 에너지 형태는 5 X 9의 형태로,
5각형을 기본으로 각 변에 삼각형을 만들고, 각각의 삼각형을 '9'등분하면, 모두 45개의 삼각형이 만들어 집니다.
45개의 삼각형으로 둘러싸인 5각형,


또한, 수'9'에는 순환의 원리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창조주께서 만드신 하늘의 법칙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들의 체계를 숨기기 위해 5각형의 밖에 하늘의 체계를 붙여, 정상적인 체계로 위장하여 우리의 의식에 침투합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들의 체계를 주입하여 잠식해 나갑니다.


그러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수로 표현한다면 어떤 수가 될까요?


지구상의 인간이 갖는 의식의 총합은 이미 '6'의 상태를 넘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의식(지구상의 인간이 갖는 의식의 총합)은 '자유주의', '물질만능', '개인주의', 자본주의', '합리주의', '실용주의' 등등
그것들이 갖는 장점보다는 단점들에 오히려 지배를 당하는 상태에 있으며, 또한 그것들이 지니는 가치는 사람의 목숨보다 귀하다고 여기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삶의 과정에서, 가장 혼돈을 만드는 요인 중에 하나는, 물질 몸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의식 중 대부분이 물질 몸을 '나'로 생각합니다.
몸은 나를 이루는 하나의 부분일 뿐이며, 하나의 사건, 하나의 테마를 위하여 갈아 입은 의상과 같은 것입니다.


하늘의 법칙에 반하는 의식은 우리 주위의 에너지를 상당히 불균형한 상태로 변형시키며,
우리는 다시 그것에 반응하여 악순환이 되면서 점점더 불균형한 상태로, 그래서 '3'의 상태에서 '6'의 상태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하늘의 법칙 중 하나는
"어떠한 '가치'도 '존(생명)'을 우선하는 것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을 말하는 것으로,
생명체들 간에는 우열이 없으며 모두 창조주께서 필요에 의해 만드신 것으로, 그들에게도 창조주의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은 땅을 만들고,
그리고 땅은 받은 에너지를 통해 생명을 만듭니다.
물질 몸은 땅의 에너지에 영향을 받으며,
몸을 갖는 모든 생명체는 하늘로 부터 마음을 받고,
그 마음들이 작용하여 현실을 만들어 나가며, 진화의 과정을 통해 창조주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이러한 섭리를 조금씩 이해할수록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동물을 대할 때,
식물을 대할 때,
:

그리고 자연을 대할 때.....,
그동안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알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과 사건


우리가 점집에 가서 점을 치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이 '미래에 대한 궁금함을 점을 통해 해소하려는 인간의 심리' 때문인데,


이것의(점집에 가서 점을 보는 것) 전제는,
'나는 과거에 어떻게 살았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데,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라는 전제는……. ' '시간은 존재한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개념을 갖고 있다.'입니다


'2'의 상태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은 '있음'으로 인식합니다.
또한, '2'의 상태에서는 많은 '사건'들이 '시간이라는 선형적인 선'에 배열된다고 인식합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나의 의식이 2의 상태로 있을 때'는,
'시간은 분명히 있고, 그것은 선형적으로 흐르기 때문에 과거에 있었던 일은 돌이킬 수 없으며, 미래에 일어날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다.'라고 인식합니다.


당신의 의식이 '2'의 상태 일 때, 이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는 더 이상 2 상태로 무엇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싫증나! 나는 1 상태에서 그것을 보기를 원해'라는 선택을 한다면,
당신이 '1'의 상태에서 그것을 보기를 선택한다면,
당신이 '1'을 선택한다면,
그래서 당신이 '1'의 상태로 그것을 보면,


'2'의 상태에서 가졌던 인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그것에(2의 상태에서 가졌던 판단에) 많은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저의 글 '시간'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우주는 우리가 갖는 시간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주는 우리가 갖는 시간의 개념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갖는 시간의 개념으로 우주를 설명하면, 많은 오류를 만듭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1'의 상태에서 의식이 갖는 시간의 개념 중 하나는,
'시작 지점에서 출발해서 다시 그 위치로 올 때까지(주기)'입니다.
아시다시피, 원자는 굉장히 짧은 주기를 가지며,
행성들은 상당히 느린 주기를 갖습니다.
우주의 삼라만상 모든것에는 저마다의 주기를 갖으며, '어떤 임의의 주기'에 '임의의 사건'이 대응되는, 다양한 시간의 틀이 존재합니다.
또한, 하나의 사건에 있는 모든 과정을 '지금'으로 인식합니다.


예를 들어
나의 의식의 크기가 하루 정도의 크기라면,
그 하루 동안 일어난 모든 과정을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하며,
하루 동안 있었던 모든 과정이 단지 하나의 사건이므로 '지금'으로 인식합니다.


'하나의 사건'은 의식의 크기에 따라,
지구가 한번 자전(인간의 개념으로는 24시간)하는 사건을 '지금'으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한번 도는 사건을 '지금'으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4번 도는 사건을 '지금'으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12번 도는 사건을 '지금'으로
태양이 은하를 중심으로 30도(각도) 도는 사건을 '지금'으로
태양이 은하를 중심으로 180도(각도) 도는 사건을 '지금'으로
태양이 은하를 중심으로 한번 도는 사건을 '지금'으로
은하가 우주의 중심을 한번 도는 사건을 '지금'으로
:

우주가 한번 도는 사건을 '지금'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의식이 확장 될수록 '지금'으로 인식되는 폭이 커지는데,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가 같은 비율로 커집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란 말씀이 갖는,
우리의 의식으로는 도저히 인식할 수 없는 방대한 크기의 '의식'…….
그 의식 안에 있는 모든 '사건'은 그분에게는 실제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2'의 상태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알 수 없는 내용입니다.


더해서,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도 하나의 주기이며,
그러기에 당신의 일생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혹시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그 노인은 죽기 직전 어느 한순간,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눈을 감았다."


또는 이런 이야기도…….
'어느 큰 스님이 지팡이를 한 번 꽝 내리치시며, 알겠니? "하시고 떠나셨다.


두 이야기 모두 '지금' 일어난 그래서 '지금'으로 인식되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스님의 사건은 1초도 안 되고, (보통은 '찰나'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
노인의 일생은 70~80년인데"라고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을 대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70~80년은 '2'의 상태에서 우리의 의식이 갖는 허상입니다.


그 노인은 일생을 통해 '나눔' 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표현하셨고,
스님은 찰나을 통해 '치다' 라는 '하나의 사건'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당신의 일생이 단 하나의 테마를 내용으로 가지는 '하나의 사건'인지를 알고 싶습니까?
마치 컴퓨터로 어느 누구의 자서전을 통째로 다운받는 것처럼,
당신의 과거, 현재, 미래가 통째로 하나의 사건이며, 그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듯이 훤하게 알고 싶으십니까?


'2'의 상태를 버려보세요.
'1'을 선택해 보세요.
그 때..........당신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하나로 연결된 하나의 사건이며,
태어나서 죽음까지가 통째로 보이며, 이미 경험했던 나의 과거가
새롭게 인식되고 재정립되며,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그 사건(나의 테마)을 알려주기 위해 하늘이 내게 만들어준 기회라는 것을,
그러기에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면 될것인지 명확해지는 상태........
그리고 사람들 마다 각각 저마다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이 지구에 온다는 것을.....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지는 메시지들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지구의 인류에게 도움을 주는 차원에서

어떤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며,

그것에 대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메시지들의 내용중에는 상당히 심오하고 우리에게는 어려운 개념들이 많이 있으며,

더우기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과정에서

표현(글, 말)의 한계때문에 생기는 정보 전달의 오류도 발생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메시지들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혹은 메시지들을 주관적인 관점으로 잘못 해석할 경우,

또다시 혼돈속으로 빠져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거나,

하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글들을 올리는 의도는 사건을 정확하게 인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사건을 이해하려 하고, 조금식 이해하고, 그래서 아는 상태가 되도록 노력하자는 것입니다.

메시지들의 내용을 '믿는다' 또는 '안 믿는다'의 차원을 넘어서자는 것입니다.



모두 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이런 '믿고, 안 믿고' 게임을 수천년간 해왔습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해서 그래서 알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해 적용했던 '믿고, 안 믿고' 게임......,

이것은 '2 상태'에서, '이원적 의식 게임' 이었습니다.  



당신은 또다시 이('믿는다', '안 믿는다') 게임을 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하는 '이해의 게임', 또는 '앎의 게임'을 하고 싶습니까?

선택은 자유 입니다.

당신의 선택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옳고, 그름도 아닙니다.



다음은 현상황에서,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아야할 사항들 입니다.


1.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인가?

2. 지구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3. 천상은 무엇을 어떻게 하실 것인가?

4.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누구인가?

5. '나'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 '나'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는지, 또는 알고 있는지.....

 

태양, 지구, 달


우리의 태양계에는 크고 작은 행성들과 또 그들을 중심으로 도는 위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며, 다시 지구를 중심으로 달이 공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그리고 우리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천체는 '태양'과 '달'과 '지구'입니다.


하늘의 태양은 빛을 내어 줌으로 생명의 근원을 이루는 에너지를 주고,
그것을 땅인 지구가 받아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렇게 삶을 시작하며,
삶의 과정속에 벌어지는 많은 변화는 달의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들이 어떻게 진동하는지, 어떤 주기로 돌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태양계가 형성될 때, 돌던 관성으로 계속 돌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하나의 계가 만들어 질 때, 그것에는 많은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또한 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에너지의 조절이 있습니다.
우주의 모든 크고 작은 계들은 원자도 포함해서 그것의 주기를 조정하고 유지하는 힘이 작용합니다.


지구의 위성인 달은 지구를 돌면서 지구의 생명체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데,
생물학적인 현상이나 생리적인 현상, 감정, 습관, 삶의 주기, 마음의 변화 등등
주로 삶의 과정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음력은 달의 주기를 중심으로 계산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용하기 복잡하고 주기가 애매하여 중간중간 시간이나 날짜를 보정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달의 주기는 어떻게 되나?
달은 어떤 특정한 주기도 없이 돌고 있는 것인가?


우선 이야기에 앞서,
우선 세개의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선으로 이어 삼각형을 만듭니다.
이때 삼각형의 '무게중심점'(앞으로는 '에너지 중심'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질량은 없는 것이며 따라서 무게라는 표현도 오류이기 때문입니다.)
에는 특이점이 생기는데, 그 이유는 세개의 에너지들이 합쳐지는 지점이기 때문인데,
세 에너지의 진동이 에너지 중심에 에너지 밀도가 큰 지역 또는 공간을 만듭니다.


이 공간을 '7'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모든 물질의 에너지 중심,
그리고 물질을 가두고 있는 에너지 틀의 중심에는,
따라서 물질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미립자부터 우주까지)의 중심에는 '7'이 존재합니다.


'7'의 공간은 밀도가 높으며, 주변의 공간과는 차별화된 공간입니다.
그것은 에너지의 틀과 마찬가지로 아직 우리가 인식 못하는 '무엇' 입니다.
그것을 과학계에서는 블랙홀 또는 화이트홀 웜홀로 부르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부분이고,
아직 정확하게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비유로 말씀드리면,
특이 공간,
신의 숨구멍,
에너지의 통로,
신의 핫라인,
공간 이동의 출입구,
: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그외 아직 모르는 많은 기능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주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 틀에 작용하며,
신은 그것을 통해 매 순간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수 '7'이 갖는 의미이며,
'4'가 땅에서 하늘로라면,
'7'은 하늘에서 땅으로 입니다.
'7'을 '기적의 수'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태양과 지구와 달로 돌아가서,
세 천체(태양, 지구, 달)가 만드는 삼각형에도 역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고대인들이 그토록 태양과 지구와 달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기를 원했던,
그래서 많은 시간을 들여 그들의 정확한 주기를 찾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확한 주기와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7'의 지점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지점은 달의 공전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데,
지구의 내부를 돌고 지표로 나와 다시 지표로 들어갑니다.
이것의 경로를 알기 위해서는 달의 정확한 주기및 위치가 필요합니다.


마야문명은 오랜 관찰을 동해 달의 삭망월은 지구의 항성년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으며,
그들의 관계는 1,781삭망월이 144항성년과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1,781(13 X 137)은 지구의 144(12 X 12) 에너지 틀에 맞춰져 있는데,
이것은 의미하는 바가 매우 많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달은 '13'계열의 에너지틀(천체)에 통제를 받는 천체입니다.
달은 지구가 한번 자전할 때마다 13도씩 서에서 동으로 이동합니다.
또한 태양의 황도와 달의 백도의 차이가 약 5도 정도인데,
이것은 지구의 입장에서는 상하로 10도의 차이를 만듭니다.
다른 말로 우리가 달을 볼 때, 지평선에서 달이 높이 뜰 때와 낮을 때의 각도 차가 약 10도 입니다.


마야인들이 13진법과 20진법을 사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18진법은 지구와 관계되는데, 18은 '9'계열의 수이며,
수 '9'는 '끝', '멸', '죽음', '순환' 등의 의미를 갖는 수입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갖는 개념중에 '모든 것은 순환한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9'의 속성 중 한 부분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마야인들은 그것을 '순환의 끝'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또한 마야인들이 발견한 주기중에 지구의 세차운동과 관련된 것이있는데,
이는 지구의 춘분점이 72년 마다 1도씩 회전하여 25,920년에 한번의 주기를 가지며,
이런 세차운동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은하와 관계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은하는 접시형태를 하고 있으며, 우리의 은하도 접시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접시 형태의 중심면에는, 물질 은하를 가두고 유지하는 에너지 틀이 있으며,
각각의 태양계들이 이 면을 통과할 때, 그것의 에너지를 복구합니다.
다시 말하면,
은하의 중심면, 은하를 가두는 에너지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부터 그 에너지는 감소하기 시작하고,
점점 감소 되다가, 에너지 틀을 다시 만나기 직전에 가장 약화된 상태가 되며,
에너지 틀을 만날 때 다시 그 에너지가 복구되고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회전팔이 없는 은하에 속해 있는 별들은 은하가 한번 회전할 때,
은하면과 두번(대부분의 별들은 '황도'와 '백도'처럼 중심면에서 약간 비스듬하게 회전합니다.
따라서 올라갈 때, 내려갈 때) 만나게 되며,
이는 에너지 재 충전(복구)의 주기가 너무 길어지는 상황이 됩니다.
만약 우리은하가 회전팔이 없는 은하라면, 주기가 약 2억년 정도이므로
약 1억년에 한번 은하 중심면과 만나는 주기가 될 것입니다.
대부분 덩치가 큰 은하들은 회전팔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은하에 소속된 항성들(별)이 은하의 중심면과 만나는 주기를 빨리(자주)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의 태양계는 은하 회전팔의 중심을 돌면서 다시 은하의 중심을 돕니다.
은하의 회전팔을 돌때, 은하면 중심면에 작용하는 에너지 틀과 만나는데,
그것이 지구의 세차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입니다.


지구는 25,920년에 두번 은하면과 만나며, 따라서 12,960년을 주기로 은하면과 만나며,
이때 약해지고, 흩어진 에너지 틀이 복구되고 정상화 됩니다.
천상에서는 이 주기를 하나의 사건으로 정하는데,
하나의 문명이 주어진 주기안에,
다른 말로, 에너지의 틀이 완전히 복구되어 정상화된 위치에서부터 제일 약해지는 위치까지,
또 다른 말로, 정상의 상태에서 어둠의 세력들에 의해
하늘의 상태가 '6'이 되고,
땅의 상태가 '6'이 되서,
우리의 상태가 '6'이 될 때,
이때 피조물의 진화가 어느 정도인지를 판단하십니다.


그리고 결정하십니다......
'8' - '졸업', '축복', '상승' 시킬지
'9' - '낙제', '다시 처음부터', '멸' 하실지를......


이번 주기에는 하늘과 땅과 사람, 모두를 판단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너희들 모두는 '나'를 볼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믿고', '안 믿고'의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당사자인 우리도 알아야 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시작과
기존의 무너짐이 같은 속도로 진행될 것입니다.

mmmmmmmmmmmmmm

 

육각형 - '도형의 완성', '가장 안정적인 균형의 상태', '12 에너지 틀의 안쪽 부분'

 
육각형은 '정화', '보존', '유지' 등의 작용을 합니다.
또한 육각형은 그것이 가지는 기하학적 형태가 12 에너지 틀의 안쪽 부분과 같기 때문에
12 에너지 틀의 진동에 가장 빨리 반응하고 에너지 전달을 신속하게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이런 육각형의 형태를 갖고 있는 물질들이(생명체도 포함해서) 많이 있는데,
이들이 가지는 구조적인 특징으로 신성에 가장 잘 반응하고 그것의 에너지를 가장 빨리 전달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들이 신성에 가깝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물' 입니다.
'물'에 대한 연구는 현재까지 많이 진행되고 있고, 그중에 육각수가 가지는 효과도 포함되는데,
육각수가 우리 인체에 미치는 여러 가지 효과 및 유익함을 이용한 연구와 그를 이용한 많은 제품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왜 그런 작용을 하는지는 정확하게 입증하지 못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것의 작동 원리는 물이 가지는 '육각형'의 기하학적 구조가 12 에너지 틀과 공명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물은 신의 에너지를 가장 잘 전달하는 물질입니다.
물질 몸을 갖는 생명체가 어릴수록 이것의 비율은 높고,
나이가 들수록 이것의 비율은 낮아집니다.


물질 몸에서 물의 비율이 낮아질 때, '우리는 늙는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물은 생명이다', '세례 의식', '정안수에 떠놓고 기원하시는 어머니', 등등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물'에 대한 설화는 모두 '근거 있음' 입니다.


또한 예로, 곤충 '벌'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이 만드는 집은 가장 견고하고, 효율적이며, 그들의 양식을 상하지 않게 보존하게 합니다.
그들은 태양을 이용하여 의사전달을 할 수 있는데, 태양의 빛줄기가 육각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것을 지금 확인할 수 있는데,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태양을 보세요, 또는 태양을 찍은 사진들을 보세요,
그것에는 6개의 빛줄기가 있음을, 그리고 빛줄기가 만드는 각이 육각의 형태를 띠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달도 보세요, 달의 빛줄기는……. 6개의 빛줄기가 나타나지 않으며, 육각 또한 아닙니다. 


물질 우주를 구성하는 에너지 중 육각형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며,
창조주는 이것을(물) 통해 생명체에게 '생명의 에너지'도 주시지만,
이것을(물) 통해 그들을 치시기도 합니다. '물로 심판하신다.'의 의미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시작 되었습니다.
지구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물질은 흩어진 에너지를 받아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마치 경련과 비슷한 현상들이 일어나며, 지구에는 앞으로 점점 더 자연재해가 자주 일어날 것인데,
우리에게는 '자연재해'이지만 지구에게는 그것이 '치유'와 '복구'입니다.


우리가 '물'을 파괴할 때, 우리의 신성을 파괴하는 것이며,
신께서는 하늘의 법칙에 따라 그것에 대해 다시 '물'로 그것을 상쇄시켜 '0'의 상태로 만드십니다.
모든 원인은 '나', '우리' 모두에게 있으며, 누구도 탓할 수 없습니다.


"내가 너희를 심판할 때 너희들은 물이 하늘을 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창조주께서 결정하신 일', 그것의 실행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더 몸과 마음의 상태를 '1 - 하늘'의 상태에 맞추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mmmmmmmmmmmmmm

우리는 흔히 '진리를 찾는다.' 또는 '깨달음을 구한다.' 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이는 궁극으로 '나'를 이루고 있는 어딘가에 '나'의 모든 여정이 '1'로 향하게 프로그램 되어 있고,
물질 우주의 삼라만상 모두는 '1'로 부터 와서 '1'로 되돌아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1'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실존하는 '빛'이 시작이며, 근원입니다.
빛의 조각들이 서로 서로 원 운동하면서,
'2'라는 것을 통해 물질이 생성되며,'나'라는 개체성을 인식하게 하고,
거기에 삼각형의 형태로 자유선택의 의지를 가지는 '3'의 마음이 주어지고 다양한 삼각형이 만들어 지며,
그 '3'들이 작용하여 많은 '나 아닌 것'을 만들며 진화의 과정을 발습니다.

때로는 '4'의 형태로 신을 의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5'에 현혹되어 '6'의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은 '7'을 통해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의 삶에 공동으로 참여하십니다.
신은 아주 작은 미립자에서 부터 온 우주까지 모든 것의 삶에 참여하시는데,
그것은 피조물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자 하시는 그분의 의지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에는 많은 크고 작은 주기들이 있는데,
각각의 의식체들과 약속한 주기에 도달하면…….
다른 말로, 각각의 크고 작은 의식체들과 함께하시는 '1로 되돌아오기 게임'의 끝에 도달하면,

그들의 에너지 상태가 어느 정도 균형 상태에 있는지를 보시고, 공평하게 판단하시는데,
'8'의 '구원' 또는 '축복'을 주실지,
'9'의 '순환', '끝', 혹은 '다시 시작'할 것을 결정하십니다.

 

이렇게 '1'에서부터 '9'까지가 우리의 삶에 관련된 수이며,
물질우주는 '9'의 속성인 삶, 순환, 불균형, 불완전성, 유한성 등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으며,
이런 삶이 행해지는 물질우주를 담고 있는 것이 '12의 틀인 빛의 그릇' 입니다.

 

깨달음이란
각자가 이('1로 되돌아오기 게임') 게임에서 어느 정도를 인식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하늘'과 '땅'과 '사람'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는지에 해당되는 '법칙'의 부분과
그것을 안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해야 하는지에 해당되는 것이
'자세'의 부분입니다.


깨달음이란 가질 수 있는 무엇이 아니며,
얻을 수 있는 무엇도 아닌,
나의 의식과 그 의식에서 나오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표현하는 '상태'입니다.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금방 밥을 먹고 난 후,
당신이 원한다고 배고픔의 상태를 가지거나 얻을 수 있나요?

'배고픔'은 오랫동안 무엇을 먹지 않아 속이 비었을 때 일어나는 '상태'입니다.
'깨달음'은 당신이 속을 비울 때 나타나는 '배고픔'과 같이,
당신의 의식을 비울 때 나타나는 '상태'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의식에 무엇을 채워서 얻어지는 상태가 아니며,
오히려 비워야 올 수 있는 상태입니다.

 

많은 이들이
'내가 무엇을 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이렇다, 저것은 저렇다.'
'너는 어떻고, 제는 어떻다.' 등등 표현할 때,
그는 '깨달음의 상태에 있지 않음' 입니다.

그것의 상태는 각자 본인이 명확하게 알 수 있으며, 속일 수도 없는 자신의 상태 입니다.
이 상태에 있지 않은 자가 계속 '나는 깨달았다.'라고 한다면,
그는 '깨닫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 입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의 상태란,
자기의 부족함을 아는 것이기에,
'나를 틀린 것'으로 '나 아닌 것이 모두 맞는 것'으로 출발하는 것이며,
가장 먼저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어떤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삶의 과정에서 옳음이 무엇인지 찾으려 것은 중요합니다.

깨달음을 통해 '나' 스스로를 알고 '나 아닌 것'에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며,
내 주변의 사람, 동물, 식물, 자연, 환경 나아가 지구와 우주 속에 스며있는 하늘의 법칙에
위배되지 않게 순응함으로서,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사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mmmmmmmmmmm

 

초등학교 수학수업 시간입니다.

 

 

선생님 - "여러분 오늘은 곱셈을 공부하기로 해요."

학생님 - "네 ~ ~ 선생님"

선생님 - "2 X 3 은 2를 3번 더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2+2+2 해서 6이 됩니다. 알겠지요?"

학생들 - "네 ~ ~"

선생님 - "2 X 4 는 2를 4번 더하는 것으로, 2+2+2+2=8이 됩니다. 알겠지요?"

학생들 - "네 ~ ~"

선생님 - 자 그럼, 3 X 4 는 뭘까요?

학생들 - "……"

 

학생 A -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믿습니다."

선생님 - ?

학생 B - "저도 선생님을 믿습니다. 선생님은 저희에게 거짓말을 할 분이 아니십니다."

선생님 - ??

학생 C - "그건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학생 D - "그건 처음들은 이야기 입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학생 E - "선생님의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 - ???

 

 

이렇게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믿는 그룹과 의심의 눈으로 믿지 못하는 그룹으로 나누어 졌습니다.

 

선생님은 다른 예를 들어, 또다시 설명해 주고,

또 다른 예를 주고 설명하고,

:

선생님은 황당하고 당황스러웠고,

수업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학생들은 선생님의 의도도 모른 체 두 그룹으로 나뉘어 '믿는다.' '안 믿는다.'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메시지들에 대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천상에서 주는 메시지들은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 중에서 극히 일부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우리의 의식 수준에 맞춰,

지금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힌트를 주고,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우리가 스스로 문제를 풀어 나아가길 바라는 의도가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마치 유치원의 원생들을 돌보시는 선생님들의 마음과도 같이…….

우리로부터 믿음을 바래서 주는 메시지는 더더욱 아닙니다.

 

 

주어지는 모든 메시지들은 실체의 극히 작은 일부이며, 힌트들 입니다.

일들의 실체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 합니다.

아무도,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그것을 아는 이는 없습니다.

 

주어진 메시지를 가지고

‘그것은 이렇다.’고 단언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 안다는 것'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없다’, ‘이렇다’, ‘저렇다’를 논하기에 앞서

내 스스로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되돌아 보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합니다.

 

 

실체의 일부는 이렇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싯다르타님이 오시기도 전에,

또 많고 많은 성인들이 오시기 전에…….

이 일을 계획하시고, 진행하시고, 총 지휘하시는 한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물론 진리, 절대적 신권, 우주의 법칙, 질서 등

표현은 달리 될 수 있으나, 오직 창조주 한 분이십니다.

 

그 분께서는 이 일을 진행하시면서,

천상에서 땅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각각 능력에 따라 역할을 분담하여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등급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정한 것이므로

‘높고’, ‘낮고’,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이 역할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달란트의 바른 해석입니다.

하지만 이 역할은 '내가 좋아하는 일',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일' 등으로

간단히 해석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역할을 이해하려면,

정확히 하느님께 받은 싸인, 즉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손쉽게 내 '역할'이 무엇이라 이야기 하지만.

수없는 혼돈과 절대 신을 빙자하여 의식을 교란시키는 어둠의 메시지와 하느님의 메시지를

정확하고 철저하게 구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그 역할을 받아 실행할 수 있습니다.

 

그 상태까지 이르기 위해서

우리가 감내해야 할 고통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쉬운 일이 아니며,

나를 버리는 과정을 겪는 것입니다.

 

혼돈과 무질서로 혼탁해진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 즉 ‘참나’를 다시 찾는 것이 먼저이므로

버린다는 과정이 가장 먼저 수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그 과정을 끝낸 사람들은

그분의 계획에 따라,

 

계획을 전하는 역할, 진행을 조율하는 역할, 근위대, 친위대, 직속부대, 수행 천사들…….

하늘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하늘의 의식체들을 담당하시는 분들…….

땅의 에너지 틀을 다시 조율하시는 분들과 역할,

땅에서도 세분하여 우주, 은하, 태양계, 지구 등등을 담당하시는 분들과 역할,

사람들을 담당하시는 분들과 역할, 다시 그것을 세분하여 교육, 이주, 사랑, 안정, 복구, 치유…….

등등 많은 역할들이 있으며, 있고, 있고, 또 있습니다.

 

이 일의 규모와 미치는 영향은 오직 그분만이 아십니다.

 


단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끊임없이 어떤 사건에 대해 준비와

우리의 이해를 위해 알려주시는 부분으로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대비를 위해 어떤 일이 어찌 진행이 되는지 전체는 아니어도,

우리의 의식이 열려있는 만큼, 하늘은 메시지를 통해 알려주시며,

우리는 그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진행하는 조직의 형태는, 마치 군사조직과 유사한데,

그 분의 말 씀 한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지고, 모두 순응하는 것은,

그 분만이 완벽하시고 공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도 역할을 주셨는데,

우리의 의식수준에 맞춰 아주 작은 역할을 주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이십니다.

 

"우선, 너희는 각자 스스로를 돌보아라,

너희를 둘러싸는 지구의 에너지 틀이 바뀔 때,

너희의 마음이 계속 완고하여 이원성에 집착한다면

혼돈 속에서 고통을 받을 것이며,

그 마음을 담고 있는 물질 몸, 즉 현상 또한 버티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우선 너희의 마음속의 모든 것을 버려라."

"이것은 모두에게 해당되며, 예외는 없다."


"이는 너희가 99%를 버렸다 해도 그것은 버린 것이 아니다. 1 ~ 99% 까지가 같음이라.

그것은, 마지막 1%가 언제든 되돌아 다시 욕망으로, 혼돈으로 되돌기 때문이다."

 

"최후의 마지막 1%는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것은 목숨과도 바꿀 수 없다고 느낄 정도로 고통일 것이다.

이는 마치 너의 몸에서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피를 뽑아내는 것과 같다."

 


"이것은 너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알고 모르고, 진리에 가깝고 멀고, 혹은 현명하다 미련하다 등의 기준이 없는

모든 사람이 하늘에 가까이 가기 위해 겪는 과정이다."

 

이는 철저하게 '너(개인)'와 '나(신)' 사이의 문제이며,

누구도 도울 수 없으며, 너보다 너를 더 잘 아는 나(신) 이기에,

너는 너를 속일 수 있다 해도, 나를 속일 수 없음이라." 

 


"너희는 거짓으로 나를 찾거나, 부르지 말라,

나는 사랑의 하느님 보다 법칙이 우선하는 하느님이라."

 


"네가 모든 것을 버릴 때 그 때,

나는 너에게 새롭게 너를 모두 채워 줄 것이며,

그것에는 우주의 법칙은 물론, 너의 역할까지도 포함되어 있으니

너는 그것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삶의 과정에서 체험했던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

사실 나는 너희 각자의 역할들을 위해 너희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것을 훈련시켰다.

단지 너희는 그것을 모르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너희의 삶의 과정에 있었던 모든 일들은 우연이 아니며,

'모든 것'에는 나의 의도가 있음을 너희는 깨닫게 될 것이다."

 

mmmmmmmmmmmmmmmm

 

'12' - 에너지의 틀, 물질을 담는 빛의 그릇

 

'12'


이것은 많은 메시지에서 설명하려는 '무엇'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아직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는 '무엇'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운 '무엇'입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그것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하는 이유는, 앞으로 다가올 현실에 대비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2개의 빛의 흐름이 균형과 조화로 기하학적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 뭉쳐진 빛 조각들인 ‘물질우주’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12는 하늘에 속해있는, 하늘의 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의 기하학적 형태에 대해 핵심적인 부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상으로 그것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우선 '3'
세 개의 에너지(빛 흐름, 진동)
그것을 잇는 삼각형,

 

그 삼각형의 안쪽에서는 세 개의 에너지 진동(회전)에 의해,
마치 선풍기의 날개가 회전하면서 뒤쪽의 공기를 앞으로 밀어내듯, 
빛의 조각을 삼각형의 에너지 중심 쪽으로 미는 힘(구심력)이 작용합니다.

 

이렇게 빛의 조각이 세 개의 빛의 진동에 의해 가두어지게 되며,
그것의 중심에는 '7'의 공간이 만들어 지고,
빛의 조각은 가두어진 상태에서 계속 원 운동을 하는데,

 

가두고 있는 세 개의 진동이 정삼각형에 가까워질수록,
혹은 그들의 진동이 균형과 조화를 이룰수록 공명이 커지고,
에너지는 높아지며, 가두어진 빛 조각의 회전도 빨라지며,

 

정삼각형의 형태에서 멀어질수록, 균형과 조화가 깨질수록, 공명은 낮아지며 에너지도 낮아지고,
가두어진 빛 조각의 회전도 느려지며, 여기서 점점 더 균형이 깨지면, 삼각형의 구조도 깨어지고,
각각 흩어져 빛의 조각으로 남습니다.


세 개의 빛의 흐름이 점점 더 균형과 조화로 공명하고 에너지가 증폭되어 한계의 상황에 이르면,
이때, '7'의 공간(신)으로부터 에너지가 공급되며, 각각의 진동이 '7'을 중심으로 반대 방향에
'분신'을 만들며, 그 삼각형과 형태는 같고, 방향만 반대인 삼각형이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삼각형 두 개가 교차하는 형태(다윗의 별이라고도 함)의 빛의 흐름이 형성됩니다.
삼각형 두 개가 만드는 빛의 흐름은 훨씬 더 빛의 조각을 견고하게 가두며,
진동의 한계도 높아지고, 점점 더 에너지가 높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듭니다.

 

두 개의 삼각형이 더 공명하여, 에너지가 한계의 상황에오면,
그것은 '확장'을 하는데, 삼각형 두 개를 내접하는 원에, 다시 그 원을 내접하는 삼각형이 만들어지며,
다시 에너지가 높아지면, 역시 그 삼각형의 반대 방향에 '분신'을 만들어, 다윗의 별 두개가 만들어지는데,

처음 만들어진 다윗의 별이 나중에 만들어진 다윗의 별에 안쪽에 있는 형상입니다.

 

이렇게 최초의 한 개의 삼각형으로부터 에너지가 증가하여 네 개의 삼각형으로 확장되고, 형태를 갖출 때,
최초의 삼각형에 내접하는 원의 지름이 2이고, 확장된 다윗의 별을 내접하는 원의 지름이 8이 될 때,
'새로운 하나의 계'가 만들어 집니다.

 

 

12개의 빛의 흐름,
그것이 만드는 4개의 삼각형,
2개의 다윗의 별,
두 원의 지름의 비율 2 : 8

 


이것이 '12'의 형태이며, 이것은 마치 우주라는 비밀의 방을 열수 있는 열쇠와 같은데,
그 곳에는 많은 우주의 비밀들이 들어 있습니다.
물질 형성, 테래파시 원리, 피라미드의 용도, 사라진 문명, 공간이동, 무한 에너지의 원리,
비행접시의 원리, 상위 의식체들과의 교신 등등 다가올 문명에서 사용할 많은 유익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것의 핵심적인 정보는 극히 제한되어 있는데, 이것이 가지는 엄청난 파괴력 때문입니다.
하늘의 뜻을 이해하고 이것을 모두에게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의식의 단계에 도달되었다고,
신의 판단이 내려질 때,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피타고라스는 '자연화음(길이가 1인 진동이 길이가 2/3인 진동과 가장 잘 공명하는 현상)을 발견하였고,
그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알아냈을 것으로 추정되나, 비급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12'는 음악과도 유사한 점이 많은데, 이것의 크기는 음악의 옥타브와 같이 길이에 관련되며, 확장, 수축합니다.


우리의 의식에는 많은 찌그러진 삼각형들이 있으며,
그것들을 모두 '나'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나'를 버리라 함은 이런 불균형한 의식들을 버리는 것을 말하며,

'나'를 이루고 있는 '영'의 에너지 형태가 '12'의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나의 의식'을 '12'의 형태에 맞추지 않는 한 '나의 영'과 교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나의 의식'이 점점 더 균형을 이룰수록 그것은 계속 확장되며,
더 밝은 빛이 나고, 더 큰 의식체들과 접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누구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신의 축복입니다.
모든 것에는 '빛'이 실존하며,

 

우리에게도 언젠가 만날 날을 기다리는
'나의 빛'이 있습니다.

 

다시 만날 때…….

그 빛은 밝은 미소로 나를 감쌀 것입니다.  

 

참고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란
5~6살짜리 꼬마가 유치원에 처음 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곳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땅에서 가지고 놀던 장난감인, 욕망, 집착, 탐욕, 체면, 자존심, 명예, 돈, 물질,
관계, 감정, 등등……. 나의 의식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버리셔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알면서도 계속 땅에서 놀기를 원합니다.
이 유치원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갈 수는 없습니다.
엄마도 그곳으로 가는 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알아서 와야 합니다.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있다면, '모두 버리기'가 유일한 것이고,
각각의 에너지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마지막 1%가 제각기 다 다릅니다.


이 1%에는, 당신의 생각에는 버리지 않아도 좋은 것 같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사랑, 선, 체면, 양심, 주체의식, 자존심, 명예, 모성애…….
다 버리고 '꼭 한 가지'가 죽어도 못 버릴 정도로 남아, 당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당신이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각자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그것으로 '다 버렸다'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버릴 수 없는 그 '무엇'이 지금까지 '나'라고 여기게 만든, 바로 그 '무엇'입니다.
이것을 버리면, '나'가 우주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그 '무엇'은 자기가 살기위해…….

그 몸 안에 남기 위해…….

이 최후의 '나'는 끝까지 저항할 것입니다.

 


'3'의 상태인, '이원성'을 보는 '나'에서
'2'의 상태인, '모든 것은 진리'이고 그것을 보는 '나'로 바꿔보시기 바랍니다.

 

'밤과 낮'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에만 있는 개념이고, 허상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다양한 '밝음'만 있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이 있는 것이 아니고,
'행복과 덜 행복한 것'이 있을 뿐입니다.

 

'맞다', '틀리다'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하나의 사건'이 있는 것입니다.

 

'길다', '짧다'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길이'만 있는 것으로,

 

'왼쪽', '오른쪽'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방향'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세요.


우리가 가지는 모든 이원성, 분리의식, 차별화 등
'이것은 저것과 다르다.'라고 인식하는 의식은 '허상'입니다.

 


실존하는 것은 '빛'밖에 없으며, 다양한 '빛'만이 실존합니다.

 


시작은 끝과 맞물려 있고,
오른쪽 끝은 왼쪽 끝에 맞물려 있으며,
틀린 것은 맞는 것과 맞물려 있으며,
좋은 것은 싫은 것과 맞물려 있습니다.

 

가장 '악한 이'와 가장 '선한 이'는 바로 옆에 서로 붙어 있으며,
가장 '높은 이'와 가장 '낮은 이'도 바로 옆에 서로 붙어 있습니다.


모든 이원성의 극단의 끝은 이렇게 서로 붙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볼 수 있을 때,
당신은 그것의 모양이 '원'이 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당신 자신도 그 '원'에 일부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와 '1' 사이에는 '원'이 있습니다.
물질을 생성하는 것과 반대 방향입니다.


'원'은 '1 이라는 방'의 문을 여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그 '원'이 있어야 그 방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원'은 '2의 상태'에서 '1의 상태'로 가는 열쇠입니다.

 

 


많은 이들이 '유치원'에 가기를 원합니다.
유치원의 문은 항상 열려 있으며, '연중무휴' 입니다.
수업료도 없으며, 자격제한 또한 없습니다.

 

유치원의 문을 열고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마당에 있는 놀이 기구만 타고 놀다 가시지 말고,
현관문을 열고 복도로 들어오세요,

복도에서 창문 너머로 교실만 바라보지 마시고,
교실문의 손잡이를 잡고 교실 문을 여세요,
 
교실 문을 열고 망설이지 마세요.
많은 이들이 그 교실에 들어가면, '나'의 존재가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을 갖습니다.

그래서 망설입니다. 들어갈까……. 말까…….


교실 문을 열고 손잡이를 잡고, 한발을 넣었다 뺐다 합니다.
이렇게 한참을 망설이고, 고민하다가,

유치원을 나와서, 그 곳에 갔었다고, 유치원 과정을 받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 유치원의 '교실에 있는가.', '아닌가.' 입니다.
그가 지금 유치원에서 '나와서 밖에 있음'은 '유치원에 가지 않음과 같음' 입니다.

 

많은 이들이,
땅에서 놀던 것들을 손에 잔뜩 움켜쥔 체, 혹은 주머니에 넣고,
그 교실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 교실은 땅의 것은 모두 놓고,
빈 몸으로 밖에는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세요…….
그리고 의자에 앉으세요,
그냥 그곳에 있으세요, 그냥 그렇게 있으세요…….

 

그 곳의 원생들은 서로가 알아볼 수 있는데,

가슴에 커다란 이름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은 깨달음의 여정에 첫 발을 들여 놓았고,
거기서 많은 것들을 배울 것입니다.

 

 

유치원의 과정이 끝나면,
초등학교 과정,
중학교 과정,
고등학교 과정,
대학교 과정,
대학원 과정,
박사 과정, 그들을 가르치는 교수.
우리의 교육 과정과 유사합니다.

 

이것이 깨달음의 길에 발을 들여 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옳고 그름도 아닙니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자기의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