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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목소리가 부르르르

자유지향 2008. 6. 22. 07:40

  발표 불안

 

           

두려움(불안;不安)

 

"목소리 떨림증…멀쩡하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목소리가 부르르르"

동아일보 | 기사입력 2006.12.04 04:50

 

[동아일보]
《"가슴이 두근거리는 데다 목소리까지 떨리니 이를 어떻게 하지." 대중 앞에만 서면 목소리가 떨려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 직장인 유모(25·여·서울 서초구 서초동) 씨. 그는 평상시엔 거리낌 없이 말을 잘하다가도 흥분한다든지 여러 명 앞에서 발표할 때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린다. 특히 부서 회의 같은 소모임에서 뭔가 의견을 말하고 싶어도 떨리는 목소리가 튀어나올까봐 자신감이 없어지고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 때문에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겨울은 취업 준비생이나 대학입시 수험생의 면접 철이다. 이들 가운데 유 씨처럼 목소리 떨림증을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면접에서 당당한 목소리로 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동세브란스병원 음성언어의학연구소 남도현 교수는 "일반인의 70∼80%가량은 특별한 상황에서 목소리가 떨린다"면서 "목소리 떨림이 다른 사람에 비해 심하더라도 평소 훈련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떨리는 이유를 알자=평소 말을 할 땐 안 떨리다가도 왜 다른 사람들 앞에 서면 떨리는 걸까. 전문가들은 긴장이나 불안 상태로 인해 생기는 호흡의 불안정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과도하게 긴장하거나 흥분하면 심장 박동 수가 늘고 가슴이 두근거릴 뿐만 아니라 호흡이 빨라진다. 목소리는 호흡을 원동력으로 한다. 호흡이 불안정해지면 목소리도 불안정해져 떨리거나 말문이 막히고 기어 들어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 ▽1단계, 정신 훈련을 하자=머릿속에서 예행연습을 해 보자. 이는 골프, 야구 선수들이 즐겨 하는 정신 훈련법이다. 앞으로 다가올 상황에 대한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하나 하나 떠올리며 연상한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사람이라면 회의장에 걸어 들어가 인사하는 모습, 자신이 연단에 서 있는 모습, 말하는 모습 등을 머릿속에 미리 그려보는 것이다.

자신이 대중 앞에서 말을 하거나 의사 표현을 하기로 예정된 곳을 사전 답사하는 것도 좋다. 이번에는 관객 입장이 돼서 조금 전 떠올린 모든 이미지를 영화 감상하듯이 다시 반복한다. 제3자 입장에서 자신의 이미지가 어떻게 보이는지, 내가 대중이라면 나의 어떤 모습이 상대방에게 믿음을 줄 것인지 되돌아본다. ▽2단계, 실전 연습을 하자=몸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안정적으로 숨을 쉬려면  복식호흡이 좋다. 복식호흡이 힘들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쉬는 호흡을 수차례 반복한다. 숨을 쉬면서 '나의 마음은 편안하다'는 자기암시를 준다.

말할 때 턱이 앞으로 나오면 톤이 탁해지고 거칠어진다. 턱을 최대한 뒤로 당기고 귀가 어깨 라인과 일치하도록 한다.

말투가 빠르거나 급하거나 톤이 높으면 흥분한 것처럼 보이고 상대방에게 불안감을 준다. 이를 예방하려면 목소리와 관련된 근육(턱, 혀, 입술)을 이완시켜 줘야 한다. 혀와 입술을 이완시키고 성대를 부드럽게 풀어주기 위해서는 혀 진동과 입술 진동을 해 본다. "따르르∼"하면서 혀를 진동시키고 입술을 '부르르' 떨게 하는 연습이다.

또 입을 크게 움직이면서 '아, 에, 이, 오, 우'를 다소 과장되게 반복 연습한다. 입안에서만 우물우물하면서 자신 없어하는 목소리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입에 나무젓가락을 물고 소리 내어 글을 읽는 연습을 하면 정확하고 또렷한 발음이 되게 하고 목소리 떨림을 없애는 데도 도움을 준다.

평소 말하는 습관을 고치는 훈련도 같이 하자. 가장 좋은 방법은 하루에 5분가량 시 같은 짧은 글을 읽는 것이다. 읽을 때도 감정을 넣어서 마치 발표하듯이 연습을 하면 좋다. 숨을 적당히 쉬어가면서 정확하게 천천히 발음해야 한다. 하루에 30분씩 일주일 정도만 투자해도 변화를 금세 느낄 수 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 목소리 떨림증 예방 발성호흡법▼
①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책을 배에 올린 뒤 숨을 들이쉴 때 책이 올라가도록 수차례 호흡한다.

②1번 자세에서 입을 약간 벌리고 입과 코로 동시에 빨리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는 입술로만 가능한 한 길게 내쉰다.

③익숙해지면 책을 치운 상태에서 2번과 동일한 방법으로 호흡한다.
④의자에 엉덩이를 집어넣고 허리를 펴고 바르게 앉는다. 2번과 동일한 방법으로 호흡한다.
⑤서 있는 자세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호흡하되 흉부가 양 옆으로 확장되는 느낌을 갖는다.
⑥땅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뒤 동일한 방법으로 호흡한다. 숨을 쉬기 가장 힘든 자세로 폐활량을 높일 수 있다.

⑦1∼6번까지의 자세를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되풀이 한다.
(도움말=프라나이비인후과 안철민 원장)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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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배우는 스피치 훈련

 

(아래의 글은 대한스피치&리더십센터 정순인 원장이 월간 앙쥬 4 월호 - 임산부와 아기 엄마를 위한 육아 전문 잡지)에 기고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자신의 스피치를 스스로 점검해 보고 아래 사항에서 한가지라도 해당된다면 스피치의 변화가 요구됩니다.

1, 다른 사람과 대화시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끝말을 흐리게 된다.

2, 말을 할 때 횡설수설하게 되고 자주 할말을 잊어 버린다.

3, 자신의 말에 설득력이 없어 상대로부터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4, 언제나 상대를 의식하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 정작 할말을 못한다.

5, 보통 때 일대일로는 말을 잘하나, 윗사람이나 여러 사람 앞에서는 말이 막히고 더듬는다.

6,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기회가 주어지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그 자리를 모면하려고 하며 침묵만 지킨다.

7, 발표시 긴장하면 몸이 뻣뻣해지고 심장이 쿵쿵거리고 침이 마르며 손발이 떨린다.



*** 스피치 훈련, 집에서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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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 개발은 굳이 전문 강좌를 듣지 않더라도 집에서도 충분히 스피치를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스피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이 가능하지만, 시간을 낼 수 없거나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경우는 집에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스피치 훈련을 실천해 보자.

가족간에 나누는 대화 자체가 스피치 연습이 될 수 있고, 또한 아래에 소개하는 몇가지 행동 강령을 꾸준히 실행하면 개인별 취약점을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1, 모델을 정해놓고 관찰한다.

주변에서 찾아보면 유난히 사교성이 좋고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관철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자신의 모델로 삼아 유심히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훈련이 된다.



2, 상대방 기준에서 이야기한다.

말은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상대방이 자신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상대방의 기준에서 이야기한다.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고 어법에 맞게 문장을 구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생각나는 대로 두서 없이 이야기했다가는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이는 자신에게도 부메랑처럼 돌아와 상처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3. 말하는 요령과 감각을 익힌다.

말이 길어지면 듣는 사람의 집중도가 떨어지고 지루하게 느낄 수 있으므로 정해진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말하려는 목적과 때와 장소, 그리고 듣는 대상의 성비, 나이, 문화적 성향, 교육 정도 등을 고려해서 이야기 한다.



4, TV를 시청할 때 방송인의 화술을 익힌다.

TV나 라디오에 나오는

토론뿐만아니라 전문MC나 아나운서들이 말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거울을 보면서 흉내를 내본다.

이들은 전문적인 스피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모든 스피치는 듣고 모방하면서 시작됨을 명심한다.



5, 글을 소리내서 읽는다.

신문사설이나 칼럼(논리적이고 조리있는 말을 원한다면), 동화, 소설, 잡지등 어떤 글이든 상관없다. 이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여 느낌을 살려서 소리내어 읽는다. 이를 녹음하여 반복해 들으면서 속도와 억양 등을 체크하며 스스로 평가해 본다.

자녀들의 초등학교, 중학교 국어 자습서나 교과서는 일상적인 화술에서 활용 가능한 좋은 지침서가 된다.





6, 가족들을 적극 활용한다.

가족과의 대화를 늘려간다. 정기적으로 가족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도 좋다. 토론의 주제는 아이들도 참여 가능한 쉽고 단순한 것으로 정한다. 가전제품을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좋고, 아이가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겠다는 요구를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지를 주제로 삼아도 좋다. 토론할 때는 설득력이 없는 아이의 주장이라도 무시하지 말고 끝까지 주의 깊게 들어주고 격려해 주면 아이의 발표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이외에도 가족 앞에서 모의 주제 발표, 부녀 회장 정견 발표 등 가상 원고를 작성해서 발표해 본다.



7, 공식적인 장소에서 실행한다.

 

 


 

 

 

불안, 공포의 속성


불안 공포는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아주 약한 더러운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피하면 절대로 안된다. 사람이 한 번 쫓기기 시작하면 한없이 쫓기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많은 대중이 모인 연단 앞에 나와서 이야기 하려면 떨린다. 많은 대중이 있는 연단 앞에 처음 섰는데도 안 떨리고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훈련하고 고치려고는 생각하지 않고 피할려고 하는데서 문제가 생긴다.

이렇게 두려워하는 감정의 흐름은 바로 횡경막을 압박하게 되고 성대, 목구멍, 혀와 입술같이 발성과 호흡에 연결되는 모든 기관에 영향을 주어서 경련을 일으키고 말의 흐름을 막는다. 심호흡을 깊게 여러번 들여마셔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심리학자, 조지 W. 크레인 / '응용 심리학'
"행동은 감정의 선봉임을 기억하라. 감정은 직접적인 통제가 불가능하며 오로지 행위나 동작의 선택을 통해서만 통제가 가능하다."

 

 





완전 정복을 위한 -코멘트-
    불안에 의한 스트레스로 일어나는 신체적인 떨림은, 뇌로 부터 혈액 속에
    긴장을 유도하는 물질을 내보내 육체가 화학적으로 통제 받아 일어나는
    증상이다. 본인의 의지로 제어가 어려운 경우이다. 그러한 원인 물질로부터 지배를 받지 않으려면, 근본적으로 그런 물질이
    생성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불안을 느끼지 않아야 하는데, 인간은 누구나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노출 되면 본능적으로 자기 방어에 들어가기 때문에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간에게 꼭 필요한 기능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안 정도를 낮은 수준으로 만들기는 생각을 조절하므로서 가능하다. 왜냐하면 뇌는 생각의 지배를 받기때문이다. 강한 자신감은 불안의 정도를 낮추는 기능을 한다.
    불안은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알고있으면 불안을 덜 느끼게 된다.
    감정을 이성(사고)으로 통제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자신을 믿지 못해도 불안이 커진다.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된다. 이는 평소의 정신적 습관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쉽게 고쳐지기 어렵지만, 본인이 인식하면 순식간에 고칠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실패나 실수에 대해 관대한 생각을 갖는 등,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인 생각도 바꿔야 한다. 또한 미리 준비하면 급격한 변화를 겪지않아도 되기 때문에 불안도 줄어든다. 모든 것이 이미 예고되어 있다고 느긋하게 행동하는 여유로운 마음 자세는
    정신적인 안정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많은 연습과 경험은 익숙하게 만들므로 불안이 없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만든다. 불안은 내 마음 자세를 바꿈으로서 통제가 가능한 것이다. - 고수의 Trick-
본인에게 아주 익숙하고 안정된 것인양 기분을 즉시 바꾼다.
    # 두려움은 부정적인 내 마음이 만들어 낸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제 3 자가 볼 때 아무것도 아니듯이, 내가 봐도 나 자신에게도 아무것도
    아니다. 미숙하고 민감한 내 상상력이 만들어 내는 자연 현상인 것이다.
    억지로 라도 웃으면 그 결과 기분이 좋아 진다. 마찬가지로 매사 긍정적
    이고 자신감 있는 승자의 자세로 행동하면 승자가 된다. 내 마음을 잘 다루는 태크닉을 배우는 것이 바로 정신의 성장이요 자립인 것이다.
- 만약 네가 너무나 긴장되었다면, 너는 그 긴장을 선택했던 것이다.  네가 책임이 있다.  너 외의 다른 누구도 아니다. -

     

 

 







걱정을 버리는 6가지 방법
      1.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꾸라 문제를 두고 걱정부터 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이 아니라, 나쁜 습관에 불과하다. 걱정하는 습관을 버리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내게 생긴 문제들이 골칫거리가 아니라, 해결점을 찾기 위해 도전하는 힘을 주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자. 2.기분 좋은 잠, 상쾌한 아침을! 매일 잠 잠자리에 들면서 그 날의 걱정거리들을 되뇌이는 것은 내일까지 걱정하는 하루로 만들어 버린다. 잠자리에 들 때 마음을 편안히 하고,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자.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나면, 어제의 문제들을 냉철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3.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라 오늘 해결해야 할 산더미 같은 쌓인 일과 문제들을 헤아려 보느라 마음을 무겁게 하지 말라. 4.긍정적인 말을 하라 생각을 말로 하지만, 말에 따라서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난 못해", "큰일이야!", "어떻게 하지?" 이런 식의 부정적인 말들을 모두 버리자 긍정적이고 확신에 찬 말들로 생활을 채우라. 말하는 습관을 바꾸는 것은 매순간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5.도움을 주는 글귀들을 외우자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고, 힘을 내게 하는 좋은 말들을 외워 두자. 마음에 와 닿는 구절, 명언, 책에서 읽은 아름다운 말들이 나를 성장시켜 주는 한마디가 될 수 있다. 그런 말들이 무의식중에 창조적인 생각으로 바뀌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한다 6.좋은 사람들과 좋은 만남을 가지라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풍요롭고 새롭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내 모습을 반성해 보고, 서로를 격려함으로써 약한 의지를 다시 세울 수 있다. 성경공부 모임이나, 자원봉사단체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기회다. -좋은글 중에서-

 

 


- 부정은 키우지 말자 - + time ---- 확산


불확실       ㅣ       걱정                      분노
모름 (무지) ㅣㅡㅡ>의심ㅡㅡ>두려움ㅡㅡ>불안ㅡㅡ>공포ㅡㅡ>공황ㅡ---
부정적 사고 ㅣ                                  좌절


  • (정보,계획,실천력,자존심의 결핍) - 커지기 전에 초기에 진압하는게 요령 -
  • 두려워하면 그것에 갇혀버린다.          - 생각이 현실이 된다. 긍정적인 생각을하라. - 
                  다만 믿는대로 되어진다.  자신이 창조하기 나름이다.

 

두려움은 하나의 중독이고, 너무나 자주 너는 두려움으로 너의 충성을 맹서한다. 두려움 아래서 나와라. 대신 자유를 선택하라. 자유를 나타내어라. 자유를 고수해라, 자유가 존재하기 때문이고, 두려움이 네가 그것이 멀리서 으르렁거림을 듣고, 네가 그것으로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존중할 때를 제외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의 지배자가 아니다. 네가 너의 지배자이다.








두려워하는 습관




신이 말했다.


네가 두려움의 어떤 자극을 느낄 때, 너는 무서움을 느낀다. 너는 두려움 그 자체를 느끼고, 그런 다음 그 두려움이 다시 왔다는 인식의 또 다른 휘청거림이 있으며, 따라서 지금 너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너는 무서움을 가지고 있다. 너는 무서워하는데, 네가 두려움의 재-등장을 진실의 지문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가끔, 자주, 두려움은 변화에 대한 너 자신의 두려움이다. 너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되었다. 너는 뒤로 물러남으로써 두려움의 종에 대답한다. 너는 무언가를 향해 가기보다는 두려움으로부터 물러난다.


네가 느끼는 두려움은 하나의 습관이다. 그것은 조건화된 반사이다. 너는 두려움을 체험할 필요가 없다. 너는 그것을 충분히 갖지 않았느냐? 언제 그것이 충분한 거냐?


두려움을 다르게 해석해라. 그것을 너의 마스터로 만들지 마라.


직관은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너의 잘못된 해석이다. 너는 그처럼 자주 두려움을 너에게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말하는 직관으로 생각한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할 필요가 없지만, 두려움은 좋은 가이드가 아니다. 그것은 좋은 방해자이다.


직관을 ‘하라고 말하는do-sayer’ 자로 번역해라. 직관이 너를 무언가롤 지도하게 해라. 그것이 너 앞에 가는 빛이 되게 해라, 너를 멈추게 하는 사이렌이 아니라.


단지 너는 항상 너의 직관을 듣지 않으며, 너는 네가 들을 때 항상 그것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만약 네가 항상 과거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너의 직관이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너는 충동과 직관 사이의 차이점을 알 것이다. 너는 너의 가슴을 따르는 것과 두려움을 듣는 것 사이의 차이점을 알 것이다.


봐라, 두려움을 심지어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대담하게 될 필요가 없다. 너는 겁내지 않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너는 풀이 꺾일 필요가 없다.


너는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돌아설 필요가 없고, 또한 너는 그것을 숙달할 필요가 없다. 단지 두려움에게 네가 가지고 있는 그러한 힘을 주지 마라. 너는 두려움으로 너의 장화 속에서 떨 필요가 없다. 두려움은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니다. 두려움은 하나의 생각의 결론이다.


얼마나 많은 때들에서 너는 이런저런 형태로 과거를 되살려야만 하느냐? 만약 네가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태어났다면 어떨까? 두려움은 그 자신의 존재가 없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확대된 무엇이다. 두려움은 네가 기여하는 무엇이다.


나는 말하는데,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그러나 너는 구체적인 사건을 보고,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의문한다.


너는 내가 너에게 두려움을 거부하라고 조언한다고 생각하는데, 마치 네가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듯이. 나는 너에게 조언하는데, 그것을 숭배하기를 멈추라고. 너는 나 위로 두려움을 믿지 않았느냐? 너는 네가 나에게 귀룰 기울이는 것보다 더 많이 두려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느냐? 너는 네가 나를 찾았던 것보다 더 많이 두려움을 찾지 않았느냐?


내 앞에서 다른 신들gods을 숭배하지 마라. 확실히 두려움은 아니다. 나의 이름은 거룩하다. 그것은 내가 진실의 총체성이기 때문에 거룩하다. 두려움은 단지 하나의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신분이 없다. 두려움은 귀신이고, 그는 너를 가지고 놓았다.


두려움으로부터 도망가지 마라. 또한 그것에 복종하지 마라. 두려움을 너에게 온 어떤 정크 메일로 생각해라. 그것을 읽든지 읽지 말든... 그것을 간직하든지, 하지 않든... 그것을 던져버리든지, 버리지 않든... 두려움은 우연한 방문자이다. 그것은 너의 강력한 적수가 아니다. 너는 그것을 증명할 필요로 없고, 논박할 필요도 없다.


두려움을 지나가는 사람으로 고려해라. 그것은 너를 따라오는 듯이 보이는 발자국들로 고려해라. 그러나 너는 그 발자국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래, 실로, 너는 두려움을 신god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안전의 신god of safety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세상은 너희 두려움들로부터 돈을 번다.


너는 두려움을 지원할 필요가 없다. 두려움은 너와 함께 도망갈 필요가 없다. 그것은 너의 납치범이 아니다. 두려움의 크기를 줄여라.



 

 

 

 [어떤 공포라도 극복하는 비결]
 


당신이 물이라든가, 인터뷰라든가, 오디션이라든가, 폐소라든가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합시다.



만일 수영이 무서우면 하루 3~4회씩 5분이나 10분 정도 조용하게 앉아서 자기가 헤엄을 치고 있는 것을 상상하는 것을 지금 시작하십시오.  실제로 당신은 마음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관적인 체험입니다.  마음속에서 당신은 자기를 물 속에 던진 것입니다.  물의 찬 기운과 팔과 발의 움직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현실적이고 선명하며 마음의 기쁜 활동입니다.



그것은 보잘것없는 백일몽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당신은 자기가 상상 속에서 체험하고 있는 것은 당신의 잠재의식 속에서 현상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당신은 마음의 심층에 현상한 화상(畵像)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이것은 잠재의식의 법칙입니다.



산과 높은 곳이 무서울 경우에도 같은 테크닉을 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가 산에 올라가서 있는 것을 상상하며, 그 전체의 현실성을 느끼면서 풍겨을 즐기십시오.

이와 같은 요령으로 마음속에서 계속하면 그것을 육체적으로도 희희낙락 기분 좋게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신념의 힘)  조셉머피 박사의 '잠재의식의 힘' 中 ; '어떤 공포라도 극복하는 비결'

 

 

더보기
모든 긴장의 근본원인은 '되려고 하는 것' 이다.

근본적인 긴장이, 지금 그대인 그것과 그대가 되기를 갈망하는 그것 사이에 항상 존재한다.

긴장이란, 그대가 지금 그대에 기뻐하지 않고, 그대가 아닌 것이 되려고 갈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상태와 갈망되고 있는 상태 사이의 틈"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지'가 유일한 긴장이다.

긴장은 '앎(knowing)'과 '무지'사이에 있다.


그대가 살아있다고, 삶을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   

죽음은 이미 일어났다.
그대가 그 사실을 직시하든 아니든,
그 사실을 바라보든 아니든 간에,
죽음은 이미 여기에 당도해 있다.

죽음은 마치 호흡과 같다.
아기가 태어날 때, 아기는 숨을 들이쉰다.
아기는 처음으로 호흡을 한다.
그것이 삶의 시작이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아이가 나이가 들어 죽게 될 때, 그는 숨을 내쉰다.

죽음은 언제나 숨을 내쉴 때 일어나고,
탄생은 숨을 들이 쉴 때 시작된다.
그러나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것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호흡을 들이 쉴 때마다 그대는 태어나며,
호흡을 내 쉴 때마다 그대는 죽는다.

그러므로 첫째로 이해해야 할 것은,
인류가 항상 상상해 왔듯이,
죽음은 미래의 어느 모퉁이에 웅크린 채,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란 것이다.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다.
죽음은 연속되는 과정이다.
미래로 향하는 과정이 아닌, 지금 여기.

삶과 죽음은 존재의 두 측면이다.
이는 동시 발생적으로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그대는
죽음이 삶에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하도록 배워왔다.
죽음은 삶에 반대하지 않는다 - 삶은 죽음 없이 가능하지 않다.
죽음은 삶이 존재하는 그 근본이다.
죽음과 삶은 두 날개와 같다.
새는 한쪽 날개로는 날 수 없으며,
존재는 죽음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먼저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죽음은 삶이 존재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이다.
죽음은 적이 아니라, 친구이다.
죽음은 미래의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니다.
죽음은 지금 여기에 있다.
죽음은 닥쳐올 일이 아니라, 항상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대가 여기에 있을 때부터 죽음은 그대와 함께 했다.
호흡을 내쉴 때마다 죽음은 일어난다
- 작은 죽음, 조그마한 죽음이 -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미래로 연기했다.

마음은 언제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고 하며,
죽음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중에 하나이다.
오직 세 개의 신비만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삶, 죽음, 사랑이다.
이 세 모두 마음의 영역 밖에 있다.

그래서 마음은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탐구하려 하지 않는다.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일종의 회피수단이다.
그대는 한번도 삶에 대해 숙고하거나 명상해 보지 않는다.
그대는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받아들일 뿐이다.
삶은 엄청난 신비이다.
그대가 살아있다고, 삶을 안다고 생각지 말라.


사랑의 실현이 인간존재의 목적이다  

죽음의 문제에서, 마음은 속임수를 쓴다.
즉 죽음을 연기한다.
지금 여기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끊임없는 염려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마음은 죽음을 미래 어딘 가로 밀어 넣는다 -
그땐 서둘 필요가 없다. 죽음이 닥쳐오면, 그때가서 보면 된다.

그리고 사랑의 문제에서,
마음은 사랑이 아닌 대용물을 만들었다.
때때로 그대는 소유욕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때때로 그대는 집착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때때로 그대는 지배욕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 모든 것은 에고ego의 장난이다.
사랑은 이런 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사실, 이런 장난들 때문에, 사랑이 불가능하다.

삶과 죽음 사이로,
삶과 죽음의 두 개의 둑 사이로,
사랑이라는 강이 흐른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살아있는 존재의 질속으로 깊이 들어가 실존적이고,
진정한 존재가 된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사랑은 죽음을 연기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때 이 두 가지 아름다운 현상 사이로,
사랑의 강이 흐른다.

삶과 죽음은 두 개의 둑과 같다.
사랑의 강이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다만 가능성일 뿐이다.
그대는 가능성을 현실화 시켜야 한다.
삶과 죽음은 존재하지만, 사랑은 실현되어야 한다 -
그 실현이 인간 존재의 목적이다.
사랑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대는 놓친 것이다 -
존재의 전체 핵심을 놓친 것이다.


걱정은 불확실성에서 생긴다   

죽음은 이미 당도해 있다 -
그러나 미래로 연기하지 말라.
그대가 죽음을 미래로 연기하지 않으면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제는 사라진다.
죽음이 벌써 와있다면
- 물론 죽음은 언제나 그대보다 앞서 와있었다 -
그때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하는 문제가 존재치 않는다.
죽음은 그대를 죽일 수 없다.
죽음은 그대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일어났었다.
죽음은 지금 당장 당도해 있으며
죽음이 삶을 무너뜨릴 수 없다.
사실, 죽음으로 인해, 삶은 매순간 새로워진다.
낡은 이파리가 떨어질 때, 새 순이 돋아날 공간이 만들어진다.
시든 꽃들이 떨어질 때, 새 꽃잎이 피어난다.
하나의 문이 닫히자, 그 즉시 또 다른 문이 열린다.
매순간 그대는 죽고 매순간 부활한다.

한번은 기독교 선교사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습니까?"

나는 그렇게 멀리 갈 것까지도 없다고 말했다.

매순간 모든 인간이 부활한다.

그러나 그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어려운 문제다.

그는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믿지요?

부활은 신화일 뿐입니까, 아님 역사적 사실인가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다시,

모든 인간이 매순간 십자가에 못 박힌다고 말했다.

이것이 예수의 십자가처형과 부활의 전체 핵심이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한게 아니다.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매순간 과거는 십자가에 매달린다.

낡은 이파리는 사라진다.
그리고 매순간 새로운 존재가 그대 안에서 일어난다.
부활하는 것이다.
그것은 멈춤 없는 기적이다.

그 다음으로 죽음에 대해 이해해야할 것은
죽음만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 이외에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다른 건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죽음은 확정적이다.
왜냐하면 생명이 태어날 때,
죽음의 한 부분도 함께 딸려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다.
다른 기둥은 어둠 속 어딘가에서 버티고 있다.
그대는 두려움 때문에 이를 직시하지 못하며,
그래서 그대는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죽음은 확실하다!
탄생과 함께, 죽음은 확실성이 되어 버렸다.

일단 이 확실성을 근본적으로 이해한다면,
그대는 이완된다.
무언가가 절대적으로 확실하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걱정은 불확실성에서 생긴다.


삶을 피하려는 시도때문에, 사람은 삶을 놓친다   

지켜보라.
한 남자가 죽어가고 있고, 그는 매우 걱정스럽다.
의사는 말한다.

"이제 당신은 가망이 없소."
이 순간 죽음은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러자 그는 충격을 받는다.

그의 존재는 전율한다.
그러나 그는 곧 체념하게 되며, 그러자 모든 걱정이 사라진다.
누군가에게 그가 죽을 것임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려주면,
그 확실성만으로도 평화가, 침묵이 그에게 찾아온다.

죽어 가는 모든 사람은 그 확실성을 알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의사들은 '불안하게 해서 뭣하게?'라고 생각하며, 이를 숨긴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지,
확실성은 결코 불안을 일으키지 않는다.
죽음의 경계에서, 죽음의 변방에 매인 채,
삶이냐 죽음이냐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
모든 불안의 근본 원인이다.
일단 그대가 죽는 게 확실하다면
손쓸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땐 단순히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 받아들임에 의해, 고요가, 평안이 찾아온다.
그래서 자신이 죽을 것임을 알게 된 사람은
죽음의 순간 평안해진다.

동양에선 수 천년동안 이를 실행해 왔다.
그 뿐 아니라, 티벳과 같은 나라에선
죽는 것을 도와주는 특별한 기술이 발달해 왔다.
티벳인들은 이것을 바르도bardo라고 부른다.
사람이 죽음을 맞이할 때,
친구와 친척 그리고 평소의 지인들이 그의 주변에 모두 모여
그가 죽을 것임을 명확히 알려주고,
그가 편안해 지도록 도와준다.

그대가 전체적인 이완 속에서 죽을 수 있다면,
죽음의 질이 변화하며
어딘가에서 일어날 그대의 환생은 더 높은 질을 획득할 것이다.
탄생의 질은 죽음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잇따라, 탄생의 질은 또 다른 죽음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이것이 사람이 진화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죽음의 확실성을 인정할 때마다,
그 사람의 얼굴에서 빛이 나온다 - 그대는 그것을 볼 수 있다 -
사실, 일종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결코 살아있지 않았다는 듯이 더 살아있게 된다.

인도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불꽃이 꺼지기 전에 그것은 강렬하게 타오른다.

단 한순간 불꽃은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짧은 일화를 읽은 적이 있다.

옛날에 두 마리 벌레가 살았다.

한 놈은 게으르고 준비성이 없었으며, 항상 늦잠을 잤다.

다른 놈은 일찍 일어나서 일하러 나갔다.

그런데 일찍 일어난 벌레는 일찍 일어나 새에게 잡혔고,

늦잠 자던 벌레는 일찍 일어난 낚시꾼에게 미끼로 잡혔다고 한다.

이 얘기의 주제는 '그대는 이길 수 없다'이다.

죽음은 확실하다.
그대가 뭘 하든 간에
-  일찍 일어나든 늦게 일어나든 -
죽음만이 확실하다.
죽음은 이미 도래했다.

그래서 죽음이 확실한 이유이다.
죽음은 이미 일어났다.

그래서 죽음이 확실한 이유이다.
그런데 왜 침대에 누워서 죽을 때를 기다리는가?
왜 지금 당장, 죽음을 확실히 올바른 것으로 만들지 않는가?

다만 지켜보라. 내가 죽음이 확실하다고 말할 때,
내면에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없는가?
바로 그 생각만으로도
- 지금 당장은 생각일 뿐이지, 그대의 경험이 아니다 -
죽음은 확정적이라는 생각만으로도, 그대는 차분하고 고요하다.
그대가 죽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몰론 그대는 경험할 수 있다. 죽음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론을 말하고 있는게 아니며,
이론을 다루고 있는 게 아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실이다.

다만 눈을 떠라.

그리고 죽음을 보라.
그리고 죽음을 피하려고 하지 말라.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
피한다면, 그대는 놓친다.
죽음을 받아들여라.

죽음을 껴안으라.
그리고 매순간 그대는 죽고,
매순간 태어난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라.
죽음이 일어나는 걸 허락하라.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 - 과거는 더 이상 존재치 않는다, 과거는 이미 가버렸다.
왜 죽은 사물을 지고 다니는가?
왜 시체를 메고 다니는가?
그것들을 놓아버려라.
그러면 그대는 가벼워짐을 느낄 것이다.
그대는 짐이 덜어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일단 그대가 과거를 놓아버리면,
미래도 스스로 떨어져 나간다.
미래는 다만 과거의 투사일 뿐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대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지금 마음은 동일한 즐거움을 미래로 투사시킨다.
과거에 그대는 고통을 당했다.
지금 마음은,
그 고통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바램을 미래로 투사한다.
그 바램이 그대 미래의 본질이다.
이 밖에 그대의 미래란 무엇인가?
과거에 그대가 즐거워했던 기쁨은 투사되고, 불행은 제외된다.
그대의 미래는 이것저것 덧입혀지고 수정된 과거이다.
새로 칠해지고, 수선된 과거일 뿐이다.
일단 과거를 버리면, 어느새 미래도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그때 그대는 지금 여기에 남겨진다.
그때 그대는 실존 속에 거한다.

그대는 실존적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유일한 존재의 길이다.
여타의 길들은 모두 삶을 회피하는 방법일 뿐이다.
그대가 삶을 피하면 피할수록,
그대는 더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다.

진정으로 사는 사람들은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대가 올바르게 살면, 그대는 죽음을 종결짓게 된다.
그대는 이미 너무나 기쁘고, 충족되었다.
그러나 그대가 살지 않는다면, 끊임없는 걱정이 이어질 것이다.

"나는 아직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걸 앗아갈 것이다.
죽음이 오면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죽음을 피하려 든다.

죽음을 피하려는 시도 때문에, 사람은 삶을 놓친다.
회피하지 말라.

삶을 살라.
삶을 살면, 죽음이 피해간다.
바로 이 순간, 죽음이 찾아와 미래를 닫아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대는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대는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대는 삶을 살았다.
그대는 존재 속에서 기뻐했다.
그대는 삶을 축하했다.

그대는 만족하고 있다.
불만도, 불평도 없다. 그대는 아무런 유감도 없다.
그대는 죽음을 환영한다.
그리고 그대가 죽음을 환영하지 않는다면,

하나는 확실하다 - 그대는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상대방에게 언제나 기회를 주어라.

그가 그 자신일 수 있도록.

이해란 그런 것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그대 자신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그대의 의도가 좋은 것 일지라도 결과는 안 좋을 것이다. 
좋은 의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독으로 변할 수 있다. 

핵심은 그대의 의도가 좋은 것이 아니다.

진정한 핵심은 상대방에게 그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자유를 주는 것이다.

삶은 계획되어질 수 없다. 

계획이 없기 때문에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계획되어질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죽고 지겨워질 것이다.
아무도 미래를 예언할 수 없는 것으로 삶은 남아 있기 때문에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곳에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자유가 사라진다.
그대가 만일 약간의 이해라도 갖고 있다면
그대의  주위의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자유를 주라.
또한 누구도 그대의 자유를 간섭하도록 허용하지 말라. 

누구도 그대의 노예로  만들려고 하지 말며
그대 자신도 누구의 노예가 되지 말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명심하라.
 
인간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신은 어떤 프로그램도 그대에게 주지 않았다.
 
그대는 프로그램 되지 않았다.
 
운명 같은 것은 없다.
 
그것은 사람들이 꾸며낸 것이다.
 
운명을 운운하는 것은 삶에서 아무것도 이루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의 변명이다.
 
그들은 너무 게으르고 너무 겁장이라서 어떤 모험도 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책임을 신에게로 미룬다.

그들은 그것을 운명, 숙명, 카르마와 같은 수많은 이름으로 부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교묘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삶은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나의 삶은 나의 책임이다.
 
현재의 내가 어떠하든지 내가 그렇게 만들었고,
 
미래의 내가 무엇이 되든지 현재 속에서 내가 만들고 있다.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그러므로 과거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끝났다.
 
그러나 현재는 여전히 유용하고, 현재로부터 모든 미래가 나온다."
 
깨어 있다면 아주 작은 접촉만으로도 모든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의 우리 자신에 대하여 우리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수긍해야 할 첫번째 사항이다.
처음에는 에고ego가 무참하게 부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그것이 나 자신의 책임일까?
 
그렇다면 이 모든 실수를 저질러 온 것이 나이고, 

이 모든 혼란을 초래한 것이 나란 말인가?"
 
그것은 에고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그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단지 몇번 얻어맞는 것으로 슬픈 얼굴이 미소 짓는 얼굴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할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오늘 그것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 뿐이고, 현재면 충분하다.



- 라즈니쉬 -

 

 

 두려움은 항상 무지에서 비롯된다.

-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

 참고

 내성적인 성격 고치기

 

◈ 사실을 직시하라

▷ 내성적 성격을 극복하려면 여러분이 정말 싫어하는 생활 태도를 갖도록 자신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내성적인 성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그러나 그 경우, 조용함에 대한 욕구가 타인을 피하고 싶다는 신경증적 충동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 만일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타인과 있을 때 불안을 느낀다면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 결코 자신을 기만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또한 고독을 좋아한다고 자신을 정당화하지 말아야 한다.
▷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왜 자신이 내성적인가,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알아내야 한다.

◈ 내성적 성격의 시작

▷ 타인과의 관계가 고통과 굴욕으로 이어질 때 여러분은 내성적으로 된다.
▷ 이러한 상태는 보통 여러분이 아직 경험이 적고 혼자서 처신하거나 사물의 가치를 올바로 판단할 수 없는 유년기에 시작된다. ▷ 어린 시절에 느낀 긴장이나 불쾌감은 그 불쾌한 경험을 조금이라도 생각나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되살아난다.
▷ 그러나 어쩌면 여러분의 내성적 성격은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적고, 그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잃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아무리 불편하게 느껴질지라도, 여러분은 좀더 교제를 넓혀야 한다.
▷ 또한 여러분은 신체적 결함이 있기 때문에 혹은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여 내성적인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열등감은 여러분의 의식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경우 엄청나게 과장된다. 여러분의 관심을 부디 주위 사람들에게 돌리도록 하라.

◈ 마음가짐

▷ 여러분의 약점이나 어려움에 대해서 항상 건설적으로 대처하라.
▷ 자신을 실패자로 생각하는 것은 주위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따분한 인간이 될 뿐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실패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 칭찬 받고 싶고 주목받고 싶다는 충동을 조절하라. 그러한 충동에 사로잡히면 타인의 마음에 들려고 지나친 걱정을 하거나,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행동하게 될 뿐이다.
▷ '여러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에 만족한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도 훨씬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 긴장을 조절하라

▷ 다른 사람이 당신을 주시하거나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런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 긴장하거나 겁먹을 일은 없다고 늘 자신에게 들려 주라.
▷ 하나 하나의 근육을 푸는 동시에 마음의 긴장을 풀어라.
▷ 의식적으로 고상하게 행동하려 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자의식 과잉이 되기 때문이다.
▷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타인의 일이나 타인의 대화에 진지한 관심을 갖도록 하라.

◈ 신경과민의 증상

▷ 불쾌한 일을 해야 할 때에는 잠재의식이 항상 그것을 뒤로 미룰 이유를 만들어 준다.
▷ 그 이유는 처음에는 막연한 불쾌감이지만, 쉴새없이 생각을 집중하고 있으면 차츰 더 강하게 의식되어 마침내는 과장이 되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난다.
▷ 그 증상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이외에는 중요한 의미가 없다.
▷ 그 증상은 중요시해서는 안 된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않을수록 고민이 적어진다.
▷ 자신의 일이나 개인적 감정보다는 다른 사람의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노력하라.

◈ 당신과 타인

▷ 그냥 안면이 있는 사람과 참다운 친구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호감을 받고 싶다든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충동을 조절해야 한다.
▷ 타인의 동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 타인의 마음의 움직임에 대해서 과민한 것은 여러분의 감정이 타인에게 좌우당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것을 바꾸지 않으면 여러분의 마음은 끊임없이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 타인이 까다롭게 보이는 것은,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소심함 때문에 고민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친구의 필요성

▷ 친구의 기회를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관심이나 취미를 찾아야 한다.
▷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과의 교제가 즐겁고 좀더 친하게 교제하고 싶다는 심정을 태도로 나타내야 한다.
▷ 친구를, 끊임없이 여러분의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으로 대하면 안 된다. 또 그 친구의 관심을 독점하고 싶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 여러분의 동정이나 이해를 아낌없이 친구에게 주어야 한다. 또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어야 한다.
▷ 친구를 격려자로 생각해야지 자신의 열등감이나 불만감을 메우는 보상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 어색한 순간

▷ 타인의 비평에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한다.
▷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아야 한다.
▷ 늘 편안한 마음으로 있도록 하고, 타인에게 잘 보이겠다는 희망을 억제해야 한다.
▷ 사려가 부족한 사람이나, 소수이긴 하지만 고의적으로 불친절한 사람과 교제할 때에는, 그 영향으로 열등감을 갖거나 우울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누구에게나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는 법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은 '무표정한 얼굴'로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 마지막 충고

▷ 여러분 자신의 일이나 자신의 근심에 대해서 24시간 내내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보다는 자신 이외의 세상일에 더 관심을 가지십시오.
▷ 여러분 자신을 긴장시키지 마십시오. 그럴 때에는 항상 심신을 의식적으로 편하게 가지십시오.
▷ 얼굴이 붉어지는 것과 같은 신경과민의 증상에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않을수록 증상은 감소됩니다. 비록 아무리 고통스럽고 어색하더라도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남의 마음에 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 타인에게서 관심이나 동정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타인이 냉담하다고 해서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에 의해 감정적으로 좌우되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립정신을 키워나가십시오.
▷ 자기는 외롭도록 운명지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을 바쁘게 만들 한두 가지 취미를 갖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사람들과 만나거나 친구를 만드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 여러분 이외에도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쪽에서 손을 뻗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것에 응해 줄 것입니다.
▷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의 생활만으로도 너무나 바빠서 다른 사람을 비판할 틈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 친구를 넋두리의 상대로 삼지 않도록 하십시오. 도 친구의 애정을 독점하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 다음의 사실을 명심해두십시오. 신뢰할 수 없는 '아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보다는, 비록 소수라도 신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쪽이 훨씬 좋은 것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법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자기자신이다.' 라는 말이 있다.

먼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때만이 성공을 바랄 수 있다.

우리 자신 안에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공포, 불안, 자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 그리고 나태하고 안일한 속성이 있다.
이런 부정적인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자기와의 싸움을 생각할 때, 우리는 제일 먼저 불안을 떠올리게 된다.

한 번 실패했거나 잘못을 저지른 다음 다시 도전하려고 할 때 누구나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실패를 하게 되는 원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불안을 체험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불안을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해 버리기 쉽다.
한번 실패하고 나서 똑같은 일에 도전할 때에는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듯한 막연한 느낌 때문에 긴장을 하거나 경계하거나 의욕을 잃게된다.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을 때 이러한 감정은 싫든 좋든 마음속으로 친입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곧 심장이 두근거리고 위장이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다.

오랫동안 불안을 느끼게 되면 일이 그 만큼 잘 되지 않게 된다.
의식의 집중이 불가능하게 되고 사물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일이 잘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초조감까지 생기게 된다.

불안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을 살펴보자.

첫째 불안은 당신을 소심하게 한다.

물론 소심증에 걸리면 당신은 성공할 수 없다. 소심한 사람은 도전할 용기도, 배짱도 없다. 따라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만용을 부림으로써 그것을 피해가거나 내쫓으려 한다.

둘째,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불안을 낳는다.

스트레스가 축적되면 누적효과를 낳는다. 일의 스트레스와 가정에서의 스트레스는 구별된다. 건강이 좋지 못하여 생긴 스트레스, 수면 부족이나 음주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다. 또 성장과정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인해 오는 스트레스가 있다.
이 모든 스트레스가 누적된 결과가 불안으로 나타난다.
물론 어느 특정한 스트레스, 즉 일에 있어서의 문제가 누적되어 그것이 주요 원인이 되어 불안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셋째, 가정에서 스트레스는 일의 능률을 저하시킨다

가끔 사람들은 가정생활과 비즈니스는 완전히 독립된 곳에서의 생활이므로 서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런 사고 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사회생활이든 가정생활이든 하나의 삶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 쪽에서 일어나는 불안이 다른 한 쪽에 스며들게 마련이다.

따라서 비즈니스에서 성공의 목표를 높은 곳에 두고 있다면 가정생활에서도 안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넷째 , 불안은 당신의 사고력을 감퇴시킨다.

당신이 긴장하거나 불안을 느낄 때는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의식중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이것이 상황에 대한 사고를 방해하며 사고의 원활한 흐름을 잃게 한다.
그러므로 신중하게 생각할 수 없게 되고 침착성을 잃게된다.
그리하여 의자에 앉아 있어도 어쩐지 편하지 않아 책상 위의 펜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든가, 담배만 계속 피운다.
두뇌의 기능이 원활하게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당신의 사고 활동이 불안에 의해 방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불안은 당신을 더욱 초조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나쁜 영향을 준다.

당신은 불안을 숨기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노력이다. 당신과 함께 사는 가족이나 직장의 동료들은 그것을 알아차린다. 정신적 상태는 지극히 감염되기 쉽다.
위험한 순간에 누군가가 겁을 먹으면 당신도 역시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명랑한 친구와 함께 있으면 당신도 역시 즐겁게 된다.
불안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회사의 상사인 경우 그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은 극심하다.

성급한 행위나 거친 목소리, 침착하지 못한 태도, 문제를 처리할 때 마음 내키지 않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불안의 징후들이 주위 사람들에 의해 관찰된다.

그러면 주위 사람들은 피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처럼 자신에게 막대한 마이너스를 촐래하는 불안을 쉽게 떨쳐 버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첫째, 일상생활을 할 때 감정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갖는다.

당신은 휴식을 취함으로써 편안함을 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거리를 걸을 때도 휴식을 취할 때와 같은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하라.

마음이 한결 자연스럽고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무슨일을 할 때 항상 편안한 마음을 갖는다면 일의 능률도 오를 것이다.

두 번째, 배짱을 가지는 것이다.

당신이 무슨 일을 시도할 때 불안을 느끼는 것은 그 일이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일에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초조감이나 불안을 가질 필요는 없다. '실패해도 내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단지 최선을 다해 볼 뿐이다' 라는 신념을 가질 때 배짱이 생길 것이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 경주라는 말이 있다.
따라서 먼 훗날을 바라보고 생각할 때 어떤 일이 실패하지나 않을까,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 쇼오코 미리하키 -

 

 

걱정은 마음의 활동 중에서 미움 다음 가는 나쁜 것으로,

거의 최악이라 해도 좋을 만큼 자신을 심하게 파멸시키는 형태이다.

걱정은 일정한 초점 없이 정신 에너지를 쓸데없이 허비하게 만든다.

그것은 또 몸에 해를 주는 생화학 반응들을 창조하여,

소화불량에서 관상동맥 폐색까지 온갖 병들을 일으킨다.

걱정을 그만두면 건강은 이내 좋아질 것이다.

걱정은 마음이 자신과 나(神)의 연관성을 이해하지 못할 때 보여주는 마음의 행동이다.

 

미움은 가장 위험스런 정신상태이다.

그것은 몸에 독을 퍼뜨려, 사실상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빚어낸다.

 

두려움은 '너희'의 모든 것에 맞서는 대립물이다.

따라서 그것은 너희의 정신 건강과 육체 건강에 대립하는 결과를 낳는다.

두려움은 걱정이 증폭된 것이다.

 

걱정과 미움과 두려움은, 그 파생물인 불안, 애달픔, 성마름, 탐욕, 불친절,

심판하기, 비난 따위와 함께 어느 것이나 몸세포들을 공격한다.

이런 조건에서 건강한 몸을 갖기란 불가능하다.

 

자만심, 방종, 욕심 같은 것들은 앞의 것들보다 다소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신체의 질병이나 불편을 가져온다.

 

모든 병은 무엇보다 먼저 정신에서 창조된다.

 

- 신과 나눈 이야기 1권 309P -

 

 

 



진실은 너의 유보에도 불구하고, 네가 너 자신으로부터 저지해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오라, 우리가 함께 산보하자. 너 자신을 이 고립된 과거로부터 잘라라. 과거는 가버렸지만, 너는 한때 있었던 것의 집착을 위해 그것 안에 너 자신을 가라앉혔을 수 있다. 그것은 너의 가슴을 뒤로 잡아당기는 집착이다.


과거로의 집착에게 이별을 고해라. 이제 너는 자유롭다. 너를 묶은 그 사슬들을 풀어라. 숨은 곳으로부터 나와라, 너는 솟아오를 것이다. 너는 높이, 멀리 날 것이다. 방대함인 너는 너의 방대함이 올라가게 허용할 것이다. 너는 심어진 과거를 통해 터져 나올 것이다. 더 이상의 차단이 없다. 빛의 풍부함으로부터 더 이상의 후퇴가 없다.


낡은 이미지들을 버려라. 너는 대신 너 자신을 찾는다. 너는 자유를 찾는다. 너의 운명은 자유이다.


자유는 긴장을 이완시킨다. 긴장은 너 자신과 어긋나 있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다. 이제 네가 너 자신을 둘러쌌을 수 있는 껍질로부터 나오너라. 내부의 아름다움으로 깨어나라. 너는 탐험하고, 너의 앎을 확장한다. 이것이 너의 깨어남이다. 과거는 재들을 구성한다. 과거의 시계를 버려라. 더 이상 너는 그 낡은 사진들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한 낡은 사진들은 지금의 네가 아니다. 그것들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들은 조성된 것이고, 지금 너는 지난해로부터 이 바람들Winds을 보내기 위해 너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


과거로부터 너 자신을 풀어놓아라.
너 자신의 새로운 그림을 가져라.


너의 가치-있음을 주장해라. 그것은 너의 것이다.


너는 결코 가치가 결여된 적이 없었다. 과거 속의 다른 이들이 아마 너를 가치 없다는 그림으로 팔았을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이 잘못 지닌 낡은 의견들은 그들 자신을 반영했다. 그것들은 너를 반영하지 않았다. 그러나 너는 그것들을 사들였다/받아들였다. 너를 억압하는 것은 이제 너 자신의 생각들이다. 낡은 옷에서 걸어 나와라. 드러남에 대한 두려움이 너를 지체시켰다. 사랑하는 이여, 너는 떠오르는 별이다.


너는 빛나는 찬란함이다. 너는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 너의 진정한 존재로 일어나라. 과거의 족쇄들로부터 일어나라. 너 자신에게 진실해져라. 나를 따라라. 과감히 공중으로 걸어라. 너는 높이 날게 되어 있다.


너 자신에게 안녕하고 말해라, 그리고 과거로 이별을 고해라. 지금 내게 오너라. 나의 손을 잡아라, 지금 우리는 상승한다.

 

 



두려움들은 하나의 경험에서 그들 자신의 근거를 가지고 있고 너는 추측된 현실 속으로 그것들을 영속시키는 그 사람이다.
만약 그 ‘만약 어쩌지의 문제들’에 사로잡힌다면 너의 성장을 지체시키는 끝없는 정체의 순환을 만들어낸다.
만약 네가 이것을 방출하도록 너 자신을 허락한다면, 너의 안전지대(적당히 일하는 것)에서 벗어나라 그러면
너는 너의 두려움들 대부분이 전혀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어느 새로운 현실에 도달한다.
 
~ 창조자

 

네가 다른 누군가의 지시를 따를 때, 너는 너 자신의 두려움의 지시들을 따르고 있다. 언제부터 두려움이 너의 삶의 지배자가 되어야만 하느냐? 두려움은 너를 가둔다. 두려움의 모든 종류들이 네가 그것들에 동의할 때 너의 삶을 제한할 것이다. 네가 너의 두려움들로 동의할 때, 그것들은 너의 지배자들이 아니냐?

 

너는 너의 내부 세계를 의식적으로 리모델링할 것을 선택함으로써 어느 주어진 순간에도 너의 삶을 재편할 수 있다. 만약 그 기존의 배열이 너를 기쁘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바꾸어라! 그것은 그처럼 간단하다. 너는 너의 내부 세계로 누구의, 어떤 영향력을 허용할지를 결정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겁에 질려 살래?
Live In Fear?



고통과 결핍, 슬픔, 불안전들, 두려움들, 불신들, 의심들은 그저 암시(힌트)들일 뿐이다.

그것들을 체험하는 것은 네가 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준다.
너는 선택권을 받았다; 그것들을 담요처럼 너 자신의 주위에 감싸고, 영원히 그것들과 기꺼이 동거하기를 감수하거나, 아니면 사랑으로 그것들을 방출하여라.
자유의지는 너의 것이다. ~ 창조자
Doubts, disbeliefs, fears, insecurities, sadness, pain and lack are all pointers.
Experiencing them shows you exactly what you need to change.
You are given a choice; wrap them around yourself like a blanket,
content to live with them forever or release them with love.
Free will is yours. ~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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