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스크랩] 빛나는 태양을 즐겨라 & 논리는 그만큼만 간다

자유지향 2017. 3. 7. 22:18


빛나는 태양을 즐겨라

Enjoy the Sun That Shines

Heavenletter #5946

Published on: March 6, 2017

http://heavenletters.org/enjoy-the-sun-that-shines.html





신이 말했다.

 

가끔 너는 구부려야만 한다. 가끔 너는 뻗쳐야만 한다. 가끔 낮게 구부리고, 높이 뻗치는 것은 하나이고 같은 것이다.

 

가끔 너는 세상의 삶이 너에게 너무나 많은 것이고, 네가 그것의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느낄 수 있다. 너는 이런저런 때에 네가 한 번 더 타격을 가능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의 진실은 네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진실은 네가 해왔다는 것이고, 네가 삶이 너에게 도달할 때 삶을 영원히 더 많이 수용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주어진 사실이다.

 

너는 틀림없이 뻗어나갈 수 있다. 너는 제한이 없다. 너는 제한 없는 존재이다. 네가 하나의 타격을 받았거나, 여러 타격을 동시에 받았다는 것은 네가 만드는 하나의 해석이다. 너의 해석이 세상의 모든 차이점을 만든다. 만약 네가 너의 삶을 판단하지 않았다면, 그때 너의 삶이 무엇이 될 수 있겠느냐? 너의 해석들은 너의 정당화이다. 상당히 많은 정당화들이 네가 어떻게 느끼는가에 대한 핑계들이다. 삶을 비난하는 것이 또한 쉬운데, 마치 삶이 외부 체험이라는 듯이.

 

확실히 네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이 삶에 일어나지만, 너는 너의 전망에 대해 책임이 있다.

 

물론 너의 감정들은 네가 그처럼 끄고 켤 수 있는 수도꼭지가 아니다. 동시에 네가 무슨 이유로든, 혹은 이유 없이 화를 낼 때, 너는 분노를 택했다.

 

삶은 너에게 하나의 선물로서 주어졌다. 네가 삶을 어떻게 보는가는 너에게 달려 있다. 단번에 너는 너의 삶의 견해를 바꿀 수 없지만, 너는 네가 삶을 어떻게 보는가의 재해석을 향해 자랄 수 있다. 너의 생각을 다시 정해라. 이것은 네가 하는 척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너의 현재 겉치레는 너의 널리 신봉하는 신념이나 신념들이 될 수 있다. 너는 삶이 너를 배신했다고, 그러는 내내 삶이 너를 이용했다고 확신했다.

 

실로 너의 삶이 용기를 가질 때들이 있다. 그때 용기를 가져라.

 

삶에 무엇이 일어나든, 너는 그것에서 앞으로 움직이는 것이 요구된다. 너는 단지 가만히 서있을 수 없다. 또한 너는 과거를 해지하거나 삶이 그것이 되어버린 방식에 대해 뉘우치게 만들 수 없다.

 

무엇보다도, 삶은 결코 이런저런 식으로 되지 않는다. 삶은 바로 지금 다시 구부러진 길을 돌아오고 있다. 너는 불행을 숙고하는데 능했을 수 있다. 사랑하는 이들아, 이것은 하늘의 별들을 보기 시작할 하나의 확실한 신호이다. 너는 어떤 계단들을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도 너를 대신해 그것들을 올라갈 수 없다. 오직 너만이 너 자신을 더 높이 들어 올릴 수 있다.

 

삶은 결코 아편이 든 약이나, 진정제나 만병통치약이 되기로 되어 있지 않았으며, 또한 삶은 고통을 겪게 되어 있지 않다. 너 자신과 삶의 선함 속에 너의 믿음을 다시 가져라. 사랑하는 이들아, 너의 눈을 들어 올려라. 삶을 환영해라. 너의 영혼과 너 자신이고 삶인 그 신성을 포용해라.

 

삶은 네가 그것에게 신용을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삶을 네가 현재 소금 한 알갱이로 그것을 볼 때 받아들이기 시작해라.

 

지구상의 어떤 몸들이 탈락하고, 다른 몸들이 계속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너는 몸의 죽음이 불공평과 상실감, 그리하여 비통함으로 돌릴 수 있다. 그러나 너의 가족의 영혼은 살아있고, 다른 계에서 잘 있다. 사실상 너는 가족의 상실을 실제로 떠나기 수년 동안 슬퍼할 수 있다. 너는 너의 가족 없이 네가 얼마나 가능하게 살 수 있는지를 염려한다. 내가 너의 가족을 나의 사랑의 팔로 안을 때 너는 너의 상실을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로 슬퍼한다.

 

실제로 너는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들의 긴 리스트를 쌓아놓았을 수 있는데, 마치 큰 두려움과 슬픔이 너의 삶으로 엮어져야만 한다는 법률이 있다는 듯이 말이다. 너는 ‘삶이 참을 수 없다Life IS insufferable’는 전제로부터 삶을 시작했을 수 있고, 그리하여 너는 네가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너의 관점으로부터, 그것이 네가 잃은 가족이든, 혹은 네가 잃은 일자리이든, 혹은 네가 잃은 이미지이든, 너의 해석들이 너의 삶의 기쁨을 취소하게 하지 마라.

 

빛나는 태양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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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는 그만큼만 간다

Logic Goes only So Far

Heavenletter #5947

Published on: March 7, 2017

http://heavenletters.org/logic-goes-only-so-far.html





신이 말했다.

 

지구상의 모든 이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너는 너 자신이나 누군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내가 단지 이해할 수만 있었다면. 내가 단지 왜 그렇고 그러한 일이 일어난 지를, 왜 나의 삶에서 꽃들이 시드는지를, 왜 난투들과 심통이 모든 이에게 – 부자든 가난하든 - 떨어지는지를 이해하기만 할 수 있었다면. 신이여, 당신이 우리가 기쁨을 갖도록 만든 세상에 어떻게 고통이 도대체 있을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이들아, 들어라. 네가 어떤 원인을 지적하는 것이 네가 더 좋게 느끼게 만들 것이라는 것은 너의 추측이다. 삶의 모든 것은 지구의 시각의 의미에서, 비록 네가 모든 자손들을 추적할 수 있다 해도, 네가 상실감을 고수하는 한, 너의 가슴이 아프다. 너희 의미에서 삶은 주고, 삶은 가져가는데, 마치 삶이 산수가 된다는 듯이 말이다.

 

네가 소유한다고 믿는 무엇이든 가져야만 하고, 너 옆에 가까이 유지해야만 한다는 어떤 깊은 세상의 믿음이 있다. 너는 삶이 무지개의 다른 끝에서 그것을 너로부터 뺏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너 가까이 유지한다.

 

만약 삶의 모든 것이 단지 상상된 것이라면,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 너의 상상된 삶의 일부라면, 그때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을 어떻게 너로부터 빼앗아갈 수 있느냐? 아, 논리는 단지 그만큼만 간다. 다른 방도가 없을 때, 논리는 봉사하지 않는다.

 

동시에, 단지 하나의 생각idea이 아닌 것으로 무엇이 세상에 존재하느냐? 그러므로 너의 비통함을 정착시킬 생각들을 가져라. 비통함보다는 받아들임을 가져라. 슬픔은 가치가 있을 필요가 없고, 또한 나는 네가 무정하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무엇이든 빈둥거리며 보내라고 요청하지 않을 것이다.

 

나가서, 네가 상실이라고 보는 것을 울부짖어라. 얼마나 많은 때들을 너는 울부짖어야만 하느냐?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하는 시간 동안 세상이 너에게 울부짖으라고 말하느냐? 비록 세상이 상복을 입는 것이 1년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듯이 보인다 해도, 아직 세상이 이것을 법률로 제정하지 않았다 해도, 여전히 이 동시대적 날과 시대에, 비통함으로 가는 것은 쉽다.

 

물론 네가 느끼는 슬픔은 네가 너의 고집으로 연장하는 무엇이 아니지만, 너의 슬픔은 계속 가며, 네가 그것을 기대하지 않을 때에도 반복된다. 갑자기 슬픔이 너의 가슴을 뒤흔든다. 너의 팔로 그 슬픔을 안아라, 그런 다음 앞으로 나가라, 태양이 여전히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의 슬픔은 너에게 문제가 되는 것으로 너를 더 가깝게 느끼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좋아, 그래서 너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는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똑같은 두 개가 없다. 삶은 많은 측면들을 가진 하나의 다이아몬드이다. 측면들이 슬픔과 고통과 같은 이름들을 가져야만 하는가? 기억이 너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며, 너는 너의 가슴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너의 삶을 산다.

 

잊어버림을 깨닫는 것이 또한 너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며, 너는 이 특별한 종류의 통증에도 불구하고 너의 삶을 산다. 아, 심통은 그 자신의 달콤함을 나른다. 그것은 한때 네가 어떤 큰 사랑을, 두 번이나, 더 많이 가졌다고 너에게 말한다.

 

주된 일은 네가 오늘 사는 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슬퍼하고, 그리고 여전히 너의 걸음 속에 가벼움을 갖는 것은 좋다. 너의 삶에서 동시에 흐르는 몇 개의 흐름들을 갖는 것이 허락할만한데, 어떤 것은 자유롭게 흐르고, 어떤 것은 둑으로 막으면서.

 

삶이 네가 그것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것은 진실인데, 안 그러냐? 아, 삶이 또한 네가 그것으로 만들지 않는 것을 포함한다.

 

삶과 휴전을 만들어라. 삶과 평화를 만들어라. 네가 과거와 정착하지 않을 때 동시에 삶과 정착해라. 가끔 삶은 네가 길가에서 만나는 한 이방인과 같다.

 

너는 삶 속에서 얽힌다. 삶은 너의 일이다. 그것은 또한 너의 취미이다. 삶은 네가 가는 학교이다. 삶은 열려있는 하나의 문과 같고, 너는 들어가서 삶을 멋지게 만들라고 항상 초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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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 AH(http://www.abundanthopekorea.net/)